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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화: 성녀의 질투와 복귀 1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20 23:43:54
​밤새 쏟아지던 붉은 비가 그치고, 하와이의 아침이 밝았다.

내가 전개한 [프로즌 돔] 덕분에 진주만 기지는 무사했지만, 돔 밖의 풍경은 처참했다.

​'머리 깨질 것 같네...'

​나는 레비아탄 콕핏에서 비틀거리며 내렸다.

마력? 그건 차고 넘쳤다. 내 뱃속의 빙정과 레비아탄의 뇌정이 만들어내는 [무한 동력] 덕분에 에너지는 여전히 풀 충전 상태였다.

문제는 내 [정신력]이었다.

밤새도록 도시 하나 크기의 돔을 미세하게 컨트롤하느라 뇌가 과부하에 걸린 기분이었다. 컴퓨터로 치면 CPU가 열받아서 뻗기 직전이랄까.

​"미스터 하! 일어났소?"

​제임스 장군이 퀭한 눈으로 달려왔다.

​"당신 덕분에 살았소. 돔이 없었으면 우리 기지는 전멸했을 거요. 연합 사령부에서 당신에게 최고 등급 훈장을 수여하기로..."

"훈장은 됐고, 밥이나 주십쇼. 한국 가는 비행기랑."

​나는 손을 휘적거렸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명예가 아니라, 뇌를 쉬게 해줄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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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급 빙신(氷神), 출근합니다   106화: 서울의 봄, 한강의 깍쟁이들 3

    ​콕핏의 관성 제어 시스템이 풀가동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장 전체가 뒤로 쏠리는 듯한 엄청난 중력가속도(G-force)가 전신을 짓눌렀다.​시야에 비친 부산항 앞바다가 순식간에 점으로 사라지고, 한반도의 굵직한 산맥들이 흐릿한 선처럼 뒤로 밀려 나갔다. 빙정이 뿜어내는 절대영도의 냉기가 기체의 과열을 실시간으로 식혀주지 않았다면, 비행 마찰열만으로도 장갑판이 녹아내렸을 속도였다.​부산에서 서울까지. 일반 수송기로도 한참이 걸리는 거리를, 저항 제로의 진공 터널을 뚫고 질주하는 흑기사는 단 몇 분 만에 주파해버렸다.​"목표 지점 확인. 강하한다."​[서울 한강 여의도 둔치]​"크아아악!! 살려줘!!""후퇴해라! 장비 버려! 일단 살고 봐야 할 거 아냐!"​서울의 심장부 한강 둔치는 말 그대로 생지옥이었다.콘크리트 제방을 넘어온 수천 마리의 스틸 사하긴 떼가 날카로운 강철 작살로 공원의 조형물들을 부수고, 벚나무들을 꺾어 던지며 무차별적인 학살을 자행하고 있었다.​그 난장판의 한가운데, 마포대교 진입로 근처에서 화이트 타이거의 최무진 이사는 호위병들을 고기 방패로 세워둔 채 헐레벌떡 방탄 SUV 차량의 문손잡이를 당기고 있었다.​"이, 이 병신들아! 빨리 안 열어?! 내가 여기서 죽으면 화이트 타이거 주식이 휴지 조각이 된다고!"​언론 앞에서 폼을 잡던 그의 명품 슈트는 진흙과 강물로 엉망이 되어 있었고, 거만했던 얼굴은 공포에 질려 콧물까지 흘리고 있었다.​키에에엑-!​그때, 사하긴 무리를 이끌던 덩치 큰 대장 개체 하나가 다리 교각을 박차고 뛰어올라 최무진의 차를 향해 작살을 내리꽂았다.​"히, 히익!! 헬 플레어...!"​최무진이 다급하게 시뻘건 화염구를 쏘아 올렸지만, 놈은 콧방귀를 뀌며 입에서 고압의 물줄기를 뿜어내 불꽃을 단숨에 꺼버렸다. 날카로운 강철 작살이 최무진의 머리통을 으깨기 위해 뻗어 내려오는 절체절명의 순간.​그의 머리 위, 잿빛으로 탁한 서울의 하늘이 일순간 쩍- 하고 두 갈래로 갈라졌다.​파아아아아앗-!!

  • EX급 빙신(氷神), 출근합니다   105화: 서울의 봄, 한강의 깍쟁이들 2

    ​위잉- 위이이잉-!!그리고 내 주머니 속의 군용 스마트폰이 기다렸다는 듯 미친 듯이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예. 하태수입니다."​-[하 준위! 방송 봤나! 당장 출동 준비하게! 청와대랑 수도방위사령부에서 지금 우리 아크 부대로 제발 좀 살려달라고 SOS가 수십 통째 빗발치고 있네!]​전화기 너머로 사령관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고막을 때렸다.​"방송은 방금 봤습니다만. 아니, 한강은 길드 놈들이 독점 계약 맺고 지키는 구역 아닙니까? 돈은 지들이 다 쳐먹어놓고 똥 싸니까 왜 남포동에서 잘 쉬고 있는 저한테 짬처리를 한답니까? 서울까지 차비가 얼만데."​-[그 썩어빠진 자본주의 길드 놈들이 지들 살겠다고 도망을 쳤으니까 문제 아닌가! 지금 수방사 전력만으로는 저 물량을 못 막아! 여의도가 뚫리면 서울 시내 한복판이 피바다가 되네!]​사령관의 목소리는 다급함을 넘어 절박했다.​나는 리모컨으로 TV 전원을 툭 끄며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귀찮은 상경이긴 하지만, 평소 꿀이나 빨면서 군부대를 무시하던 그 서울 깍쟁이 길드 놈들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줄 완벽한 명분이 생겼다.​"뭐, 좋습니다. 남이 싸놓은 똥 치우는 특수 청소 비용은 두둑하게 청구할 테니 국방부 예산 빵빵하게 비워두라고 하십쇼. 야간 할증에 시외 출장비, 그리고 내 기체 연료비까지 싹 다 청구할 겁니다."​-[알았네! 백지수표라도 끊어줄 테니 제발 한강 좀 지켜주게!]​나는 전화를 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닥의 온수 매트가 아쉬웠지만, 밥값을 하려면 몸을 움직여야지.​"이모님, 저 서울 출장 좀 다녀오겠습니다."​"아이고, 우리 태수 밥도 안 묵고 우짜노! 내 동태탕 다 끼리놨는데!"​"금방 가서 미꾸라지들 좀 썰고 올 테니까 불 약하게 켜두십쇼. 저녁 밥상 전에는 무조건 맞춰 옵니다."​외투를 챙겨 입고 현관을 나서는 내 발걸음은 가벼웠다.​[아크 부대 지하 7층 특수 격납고]​"태수야! 왔어?!"​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윤철수가 몽키스패너를 든 채 반색하

  • EX급 빙신(氷神), 출근합니다   104화: 서울의 봄, 한강의 깍쟁이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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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급 빙신(氷神), 출근합니다   103화: 3월 3일의 솥뚜껑과 첫 월급 3

    ​"......"​마당을 채우던 왁자지껄한 소음과 솥뚜껑에서 고기가 익어가는 지글거리는 소리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일순간 조용해졌다.​철수는 꾹 다물었던 입술을 떼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 봉투 두 개를 각각 최 여사님과 성배 아저씨의 무릎 앞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이게... 이게 뭐고?"​최 여사님이 당황한 듯 눈을 깜빡거리며 봉투를 집어 들었다. 봉투 겉면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감사합니다'라는 네 글자가 적혀 있었다.​철수가 마른침을 삼키고, 목청을 가다듬었다.​"저... 오늘 삼천 그룹 입사하고 첫 월급 탔습니다. 팀장님이 주신 금일봉 떡값까지 합쳐서, 현금으로 좀 뽑아왔어요."​"첫, 첫 월급...? 아이고 미친놈아, 니가 고생해서 번 돈을 왜 여다 주노! 빨간 내복이나 사 입고 저축을 해야지!"​"맞다, 임마! 니 장가갈 밑천 모아야 할 거 아이가!"​성배 아저씨도 당황하며 봉투를 다시 철수 쪽으로 밀어내려 했다.하지만 철수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뒷걸음질을 쳤다. 녀석의 눈시울이 이미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아닙니다. 이거... 이모님이랑 아저씨가 받으셔야 해요."​철수의 목소리가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녀석은 두 주먹을 꽉 쥔 채, 바닥을 보던 시선을 들어 올려 우리 식구들을 한 명 한 명 눈에 담았다.​"부모님은 각성하지 못한 F급 일반인인 저를 집안의 수치라 부르셨어요. 그래서 삼천그룹에 당당히 입사해 제 존재를 증명하고 싶었죠. 가출해서 이 하숙집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땐… 정말이지 제가 쓸모없는 쓰레기인 줄로만 알았습니다."​철수의 뺨을 타고 굵은 눈물방울이 툭, 하고 떨어져 내렸다.​"근데 이모님은... 3년 동안 쥐뿔도 없는 백수 놈한테 맨날 등짝을 때리시면서도, 아침마다 제일 고봉밥을 퍼주셨잖아요. 돈 없어서 월세 밀려도 쫓아내긴커녕 취직하면 갚으라고 따뜻한 방 내주셨고... 아저씨는 저 면접 보러 갈 때마다 다 닳아빠진 구두 맨날 공짜로 광택 내서 닦아주셨잖아요."​"철수야..."​"

  • EX급 빙신(氷神), 출근합니다   102화: 3월 3일의 솥뚜껑과 첫 월급 2

    ​치이이이익-!!​고기가 뜨거운 쇠 표면에 닿자마자 요란한 파열음이 마당 전체를 울렸다. 돼지기름이 자글자글 끓어오르며 아래쪽으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그 타이밍을 놓칠세라 최 여사님이 잘 익은 묵은지를 포기째로 턱, 하고 솥뚜껑 가장자리에 얹었고, 하루 씨가 깨끗하게 씻은 미나리를 뭉텅이로 듬뿍 올려놓았다. 고기 기름을 머금고 구워지는 김치와 미나리의 파괴적인 냄새가 독기로 텁텁했던 부산의 공기를 완벽하게 정화(?)하고 있었다.​"미쳤다... 냄새 도랐네.""햄! 햄! 내 배고파 죽는다! 빨리 뒤집어라!"​학교에서 막 돌아와 교복도 안 갈아입은 희선이가 젓가락을 양손에 쥐고 방방 뛰었고, 히나 역시 입맛을 다시며 내 곁을 맴돌았다. 성배 아저씨는 "고기엔 역시 쏘주지!"라며 초록색 병을 한 아름 안고 나와 평상에 세팅을 마쳤다.​드르륵, 탁!​그때, 2층 끝방의 미닫이문이 신경질적으로 열리는 소리가 났다.머리를 질끈 묶고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쓴 신수지가, 슬리퍼를 직찍 끌며 계단을 내려왔다. 사흘 내내 랩실에 처박혀 레비아탄의 데이터를 뜯어보던 그녀의 퀭한 눈이 솥뚜껑을 향해 정확히 고정되어 있었다.​"마이야르 반응... 아미노산과 환원당이 120도 이상의 고온에서 결합하며 만들어내는 저 갈색의 시각적 자극과 휘발성 향기 분자..."​중얼중얼. 과학적 용어로 삼겹살의 위대함을 분석하던 그녀는, 빈자리에 털썩 주저앉더니 눈을 번뜩였다.​"젓가락 주십시오. 지금 제 대뇌피질이 저 지방과 단백질 덩어리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아이고, 저 화상. 또 씻지도 않고 기어 나왔네! 무라, 무라! 고기는 산더미니까!"​최 여사님이 혀를 차면서도 신수지 앞에 앞접시를 놔주셨다.​고기가 노릇노릇하게 익자마자 마당은 흡사 전쟁터로 돌변했다.​"얍! 내 고기!""아, 희선아! 내가 찜해놓은 건데 왜 가져가!"​가장 바삭하게 익은 한 점을 두고 희선이와 히나가 젓가락 칼싸움을 벌이는 동안, 신수지는 아예 말없이 묵은지와 고기를 집게로 쓸어

  • EX급 빙신(氷神), 출근합니다   101화: 3월 3일의 솥뚜껑과 첫 월급 1

    ​2026년 3월 3일. 달력 상으로는 분명 봄의 시작을 알리는 3월이건만, 부산의 하늘은 며칠째 쾌청함과는 거리가 먼 누르스름한 잿빛으로 덮여 있었다. ​단순한 중국발 황사나 미세먼지가 아니었다. 코끝을 스치는 바람에서 느껴지는 비릿한 쇳내와 혀끝에 맴도는 씁쓸한 맛. 저 멀리 바다 건너편, 놈들이 득실거리는 심해나 어딘가의 기둥에서부터 바람을 타고 넘어온 옅은 마력의 찌꺼기, 일명 '독기(毒氣)'였다. ​"콜록, 아따 마. 하늘 꼬라지 봐라. 숨쉬기 존나 빡세네." ​아침 일찍 마당 평상에 걸터앉아 기지개를 켜던 나는, 목구멍이 칼칼해지는 불쾌감에 인상을 찌푸렸다. ​물론 내 몸뚱어리는 Z급이다. 단전에 똬리를 틀고 있는 빙정(氷精)이 알아서 혈관으로 침투하려는 독기들을 차갑게 얼려 부숴버리니 생명에 지장이 있을 리는 없었다. 그저 목에 먼지가 낀 것처럼 텁텁할 뿐. 하지만 일반인인 하숙집 식구들에게는 기관지염을 유발하기 딱 좋은 찝찝한 날씨였다. ​드르륵. 그때, 1층 미닫이문이 열리며 앞치마를 두른 최 여사님이 마당으로 나오셨다. 여사님의 양손에는 웬 무식하게 거대한 시커먼 무쇠 쇳덩어리가 들려 있었다. ​"이모님, 그게 뭡니까? 아침부터 웬 캡틴 아메리카노 방패를 들고 나오셨대." ​"방패는 무슨! 솥뚜껑이다, 솥뚜껑! 창고 구석에 짱박혀 있던 거 끄집어냈다 아이가." ​여사님이 마당 한가운데 놓인 평상 옆 휴대용 가스버너 두 개를 이어 붙이더니, 그 위에 지름만 한 1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거대한 무쇠 솥뚜껑을 쿵, 하고 올려놓으셨다. ​"오늘이 며칠이고? 3월 3일 아이가. 삼겹살 데이! 게다가 밖을 봐라. 공기에 몹쓸 먼지구덩이가 꽉 찼는데, 이런 날엔 목구멍에 돼지기름을 쫙 발라가가 먼지를 밑으로 쓸어내려야 하는 기다." ​"아, 돼지기름으로 미세먼지를 씻어낸다는 그 과학적 근거 1도 없는 한국인의 민간요법이요?" ​내가 피식 웃으며 태클을 걸자, 최 여사님이 들고 있던 행주를 둥글게 말아 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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