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자, 다들 밥값 했으면 밥값 하러 가야지. 일어서자."나는 낡은 군복 외투를 어깨에 걸치며 마당을 가로질렀다.S급 랭커들이 그제야 표정을 굳히고 내 뒤를 바짝 따르기 시작했다.바닷바람을 가르고 도착한 곳은 아크 부대의 지하 100미터 특수 격납고.거대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코를 찌르는 매캐한 오존 냄새와 시퍼런 용접 불꽃이 시야를 어지럽게 때렸다."왔냐, 태수야."방진복을 입은 철수가 다크서클이 턱 밑까지 내려온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녀석의 몰골은 며칠 밤을 새운 건지 거의 걸어 다니는 좀비나 다름없었다."수고 많으십니다, 구원자님! 그리고 글로벌 짐꾼 여러분!"그 옆에서 신수지가 얼굴에 시커먼 기름때를 묻힌 채 용접용 고글을 이마로 밀어 올리며 낄낄거렸다.그녀의 손에는 몽키 스패너가 들려 있었고, 등 뒤로는 격납고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나의 흑기사, 레비아탄이 보였다.하지만 평소와는 묘하게 실루엣이 달랐다.기체의 어깨와 팔, 그리고 다리 장갑판 외곽을 따라 짙은 푸른색의 두꺼운 유선형 파츠들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었다."저게 뭡니까."내가 턱짓으로 기체를 가리키자, 신수지가 도파민이 폭발하는 미친 웃음을 터뜨렸다."크하하하! 묻지 마라! 설명하면 내 천재성에 니들이 기절할지도 모르니까!"신수지가 스패너로 새로 장착된 유선형 장갑판을 깡깡 두드렸다."수심 수천 미터의 심해. 뼈도 으스러지는 압도적인 수압과, 공기 중의 800배가 넘는 물의 마찰 저항력. 아무리 니 깡통 로봇 무력이 미쳤다 한들, 물속에서는 주먹 한 번 뻗는 것도 슬로우 모션이 될 수밖에 없지."그건 나도 아는 사실이다.플렉소 일렉트릭의 무한 동력도, 저항이 극심한 매질 속에서는 출력이 반감될 수밖에 없다."그래서 이 천재 수석 연구원님이 밤을 새워 만들어낸 심해 전용 결전 파츠! 이름하여 '초공동(Supercavitation) 잠항 장치'다!"그녀가 태블릿을 조작하자, 허공에 기체의 시뮬레이션 영상이 홀로그램으로
짭짤한 간장게장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이었다.평상에 둘러앉아 종이컵에 담긴 달달한 믹스커피를 한 잔씩 들이켠 글로벌 S급 랭커들이, 그제야 묻혀두었던 본연의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왔다.미국 1위 헌터 스티브 레오가 두꺼운 손가락으로 휴대용 홀로그램 프로젝터를 마루 한가운데 내려놓았다.위잉- 하는 미세한 기계음.허공을 가르며 시퍼런 3D 입체 지도가 밥상 위로 떠올랐다."식사 대접은 진심으로 감사했소. 하지만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군."스티브가 진지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홀로그램 지도가 핑글핑글 돌더니, 태평양 한가운데의 특정 좌표를 붉은색으로 확대하기 시작했다.그곳은 육지가 아니었다.햇빛조차 닿지 않는 칠흑 같은 심연.수천 미터 아래의 해저 바닥에 기괴하게 솟아오른 거대한 구조물이 희미한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UN 연합 사령부 정보국에서 포착한 3번째 테라포밍 기둥이오."스티브의 손가락이 붉게 빛나는 기둥의 중심핵을 가리켰다."놈들이 해저 밑바닥에 숨어서 붉은 독기를 뿜어내고 있소. 이대로 방치하면 태평양의 해류를 타고 전 세계의 바다가 오염되는 건 시간문제요."나는 종이컵을 구기며 지도를 빤히 쳐다보았다.아마존 정글에 이어 이번엔 심해 밑바닥인가.어디 시원한 에어컨 나오는 빌딩 숲 같은 곳에 기둥을 세우면 좀 덧나나. 괴물 새끼들은 꼭 덥고, 습하고, 짜증 나는 지형만 골라서 알을 깐다."그래서, 저기가 정확히 어딘데."내 무심한 질문에, 묵묵히 믹스커피를 마시던 카미키 류지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그의 시선은 홀로그램 지도 위, 기둥 주변에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는 거대한 잔해들을 향해 있었다."도쿄."류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10년 전, 대해식(大海蝕)이라는 재앙과 함께 바다 밑바닥으로 영원히 가라앉아 버린. 나의 조국이자 고향의 폐허 위요."그 순간.쨍그랑-!주방에서 빈 그릇을 정리하던 둔탁한 파열음이 마루의 적막을 찢었다.고개를 돌려보니, 하
"...오 마이 갓."탱글탱글한 게살의 단맛과 숙성된 간장의 폭발적인 감칠맛. 뜨거운 쌀밥과 차가운 알이 섞이며 만들어내는 식감의 교향곡."코리안 라이스 티프(Korean Rice Thief)! 이것이 말로만 듣던 밥도둑입니까!"S급의 위엄 따위는 개나 줘버린 지 오래였다.스티브는 양손에 간장을 줄줄 흘려가며 미친 듯이 게딱지를 파먹기 시작했다.그 옆을 보니 가관도 아니었다.항상 무사도를 운운하며 과묵하게 폼을 잡던 카미키 류지 영감도, 입가에 간장을 시커멓게 묻힌 채 두 손으로 게다리를 부여잡고 미친 듯이 쪽쪽 빨아먹고 있었다.점잖게 예의를 차리던 리 웨이 역시, 화려한 무복 소매를 걷어붙인 채 체통도 잊고 젓가락이 보이지 않을 속도로 양념게장의 붉은 살을 발라내어 입에 쑤셔 넣는 중이었다.방금 전까지 심연의 위기니 인류의 방패니 떠들던 놈들이, 게장 껍데기 하나에 이성을 잃고 짐승처럼 밥그릇을 비워대고 있는 꼴.이게 바로 대한민국 남포동 하숙집 밥상의 위력이었다."아, 짜증 나. 내 몫 남겨놔라."나도 지지 않고 평상에 들러붙어 젓가락을 들었다.가장 크고 알이 꽉 찬 게딱지 하나를 집어 들려는 찰나였다."나의 유일하고도 영원한 구원자시여."갑자기 하얀 수녀복 자락이 펄럭이더니, 훅 끼쳐오는 서양 백합 향수 냄새와 함께 누군가 내 왼팔을 덥석 끌어안았다.바티칸의 성녀 소피아였다.그녀는 게장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맑고 투명한 에메랄드빛 눈동자로 나를 뚫어지게 올려다보고 있었다."당신의 그 자비로운 뇌전을 잊지 못해, 기도와 금식을 전폐하고 이렇게 바다를 건너 달려왔습니다. 저의 영혼을 당신의 곁에 거두어..."그녀의 풍만한 가슴팍이 내 왼팔에 부드럽게 밀착되었다.당황해서 팔을 빼내려 했지만, 성녀라는 직함에 안 맞게 악력이 엄청나게 강했다."어머. 우리 준위님. 외국 여자 취향인 줄은 몰랐네?"뒤통수에서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고개를 돌려보니, 마침 별다방 오후 출근을 앞두고 화장을
초여름의 끈적한 열기가 정수리를 꾹꾹 찌르는 수요일 오후.마당 한구석에 세워둔 선풍기가 미지근한 바람을 토해내며 좌우로 목을 돌리고 있었다.나는 평상 위에 대자로 누운 채 반쯤 감긴 눈으로 파리 한 마리의 비행 궤적을 좇고 있었다.며칠 전 서울 깍쟁이들의 펜트하우스 창문을 두드려주고 온 뒤로, 거대 길드 놈들은 아주 쥐 죽은 듯이 납작 엎드려 있었다.뉴스에서는 연일 길드 연합의 주가 폭락 소식만 떠들어댔고, 내 계좌의 잔고는 평화롭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완벽한 잉여로움.이 훌륭한 백수 라이프를 방해할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끼기기기긱-!평화로운 남포동의 비좁은 골목길을 찢어발기는 거친 타이어 마찰음.뭔 미친놈들이 동네 한복판에서 레이싱을 하나 싶어 미간을 구기며 몸을 일으켰다.쾅. 쾅. 쾅.묵직한 차량 문이 연달아 닫히는 소리와 함께, 흙먼지를 일으키며 시커먼 방탄 밴 세 대가 우리 하숙집 대문 앞을 빈틈없이 틀어막았다.그리고 열린 철제 대문 틈으로, 도저히 이 허름한 달동네 골목과는 어울리지 않는 삐까뻔쩍한 인간들이 줄지어 마당으로 쏟아져 들어왔다."오 마이 갓. 맙소사. 전설의 흑기사가 이런 판자촌 같은 곳에 은거하고 있을 줄이야."떡 벌어진 어깨에 금발을 뒤로 넘긴 백인 사내. 미국 1위 헌터이자 탱커의 정점, 스티브 레오였다."실례가 많소이다. 범상치 않은 기운에 이끌려 허락도 없이 발을 들였구려."등 뒤에 거대한 청룡언월도를 멘 채, 짙은 무공의 기운을 갈무리하고 선 점잖은 사내. 중국 1위 헌터이자 무신(武神)으로 불리는 리 웨이가 두 손을 모아 정중하게 포권(抱拳)을 취했다.그 뒤로는 일본식 검도복을 입고 입술을 꾹 다문 채 서 있는 카미키 류지와, 하얀 수녀복 자락을 펄럭이며 두 손을 모아 쥔 바티칸의 성녀 소피아까지.숨만 쉬어도 세계 경제가 출렁인다는 글로벌 S급 랭커 네 명이, 흙바닥이 깔린 우리 하숙집 마당에 나란히 서서 진지한 표정으로 똥폼을 잡고 있었다."니들 뭐야."
극한의 공포.언제 저 거대한 쐐기가 유리창을 뚫고 들어와 자신들의 명줄을 끊어놓을지 모른다는 원초적인 절망감이 놈들의 얼굴을 하얗게 탈색시키고 있었다.나는 콕핏의 외부 스피커 전원을 올렸다.내 나른하고 건조한 음성이 100층 상공의 매서운 바람을 찢고 펜트하우스 내부로 직행했다.[파티 준비하느라 고생이 많네. 서울 양복쟁이들.]스피커의 미세한 하울링 탓에 내 목소리는 금속성으로 긁히며 더욱 서늘하게 울려 퍼졌다.[어제 니들이 보낸 똥개들한테 전해 들었는지 모르겠는데.]나는 조종간을 아주 미세하게 틀어, 파일벙커의 쐐기로 깨진 유리창을 한 번 더 꾹 짓눌렀다.빠지직!유리창이 한계점에 다다르며 비명을 질렀다.윤대호 회장이 머리를 감싸 쥐며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내 식구들 밥상머리 건드리는 알량한 정치질은 여기까지 해라.]내 목소리에서 웃음기가 완전히 증발했다.오직 살육을 앞둔 포식자의 차가운 본능만이 콕핏 안을 채웠다.[한 번만 더 내 심기 거슬리게 귀찮은 짓거리 하면.]나는 쐐기를 유리에 박아 넣은 채로 기체의 엔진 출력을 웅웅거리며 회전시켰다.금방이라도 건물 전체를 반으로 갈라버릴 듯한 압도적인 진동.[다음번엔 창문 두드리는 걸로 안 끝나. 이 파일벙커로 니들 안방까지 다이렉트로 뚫고 들어갈 거니까. 알아들어?]대답은 필요 없었다.바닥에 엎드려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떠는 놈들의 면상만으로도, 아주 훌륭한 금융 치료 겸 물리적 협박이 완료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까.나는 쐐기를 거두고 기체의 기수를 부드럽게 돌렸다.창문이 와장창 무너져 내리기 직전, 절묘한 타이밍의 후퇴.[파티 마저 즐겨라. 샴페인은 얼려 먹는 게 제맛이지.]외부 스피커를 툭 끄고, 나는 조종간을 남쪽으로 거칠게 밀어붙였다.콰앙-!소닉붐을 터뜨리며 레비아탄이 서울의 밤하늘을 찢고 부산을 향해 날아올랐다.뒤로 남겨진 펜트하우스의 양복쟁이들은, 아마 오늘 밤새 절대영도의 추위 속에서 덜덜 떨며 기저귀를 갈아야 할 것이다.
고도 400미터.바람을 가르는 매서운 파열음이 레비아탄의 시커먼 외부 장갑을 사정없이 때리고 있었다.서울 여의도의 상공.발밑으로는 수백만 개의 네온사인이 혈관처럼 얽힌 화려한 도심의 야경이 매끄럽게 펼쳐져 있었다.조종간을 가볍게 당겼다.기체 등 뒤의 스러스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퍼런 극소용돌이 불꽃이 허공의 대기를 찢어발겼다. 음속을 돌파한 직후의 날 선 관성을 물리적인 출력으로 억누르며, 나는 공중에 기체를 우뚝 정지시켰다.파노라마 모니터의 광학 센서를 최대로 당겼다.망막 위로 타겟의 좌표가 붉은색 십자선과 함께 선명하게 떠올랐다.여의도 한복판에 우뚝 솟은 H호텔.그 꼭대기, 100층에 위치한 최고급 펜트하우스.두꺼운 통유리창 너머로 눈이 시릴 만큼 화려한 샹들리에 불빛이 번쩍거리고 있었다.광학 렌즈의 배율을 100배로 증폭시키자, 유리창 안쪽의 풍경이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모니터에 영사되었다.번지르르한 맞춤 턱시도를 쫙 빼입은 사내들.크리스탈 샴페인 잔을 부딪치며 얼굴에 탐욕스러운 웃음을 매달고 있는 화이트 타이거의 최무진 이사. 그리고 그 옆에서 거드름을 피우며 고급 시가를 뻐끔거리는 해운대 길드의 윤대호 회장.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한다는 거대 길드 연합의 수뇌부들이, 룸살롱 마담들마냥 아주 화기애애하게 파티를 즐기고 있는 꼬라지였다.어제 아크 부대 지하 격납고에 똥개들을 풀어서 내 신경을 살살 긁어놓고.자기들은 저렇게 구름 위에 숨어서 최고급 샴페인이나 홀짝거리며 내 밥그릇을 털어먹을 궁리를 하고 있었겠지.나는 비딱하게 고개를 꺾으며 코웃음을 쳤다."초대장을 보냈으면, 손님이 도착할 때까지 문을 열어두고 기다려야지."단전의 빙정 코어를 미세하게 개방했다.척추를 타고 흐르는 플렉소 일렉트릭의 무한 동력이 레비아탄의 심장부로 맹렬하게 쏟아져 들어갔다.쿠웅-!엔진의 출력을 끌어올리는 순간, 기체 주변의 대기가 비명을 지르며 찌그러졌다.나는 조종간을 앞으로 거칠게 밀어붙였다.콰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