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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화: 펜트하우스의 벼락 1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3 17:58:40

고도 400미터.

바람을 가르는 매서운 파열음이 레비아탄의 시커먼 외부 장갑을 사정없이 때리고 있었다.

​서울 여의도의 상공.

발밑으로는 수백만 개의 네온사인이 혈관처럼 얽힌 화려한 도심의 야경이 매끄럽게 펼쳐져 있었다.

​조종간을 가볍게 당겼다.

기체 등 뒤의 스러스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퍼런 극소용돌이 불꽃이 허공의 대기를 찢어발겼다. 음속을 돌파한 직후의 날 선 관성을 물리적인 출력으로 억누르며, 나는 공중에 기체를 우뚝 정지시켰다.

​파노라마 모니터의 광학 센서를 최대로 당겼다.

망막 위로 타겟의 좌표가 붉은색 십자선과 함께 선명하게 떠올랐다.

​여의도 한복판에 우뚝 솟은 H호텔.

그 꼭대기, 100층에 위치한 최고급 펜트하우스.

​두꺼운 통유리창 너머로 눈이 시릴 만큼 화려한 샹들리에 불빛이 번쩍거리고 있었다.

광학 렌즈의 배율을 100배로 증폭시키자, 유리창 안쪽의 풍경이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모니터에 영사되었다.

​번지르르한 맞춤 턱시도를 쫙 빼입은 사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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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아! 오빠 짱! 이거 패밀리 사이즈 우리 둘이 다 먹어도 괘안나?!"히나와 같이 나온 영혼의 단짝, 희선이가 양손으로 들기도 버거운 거대한 아이스크림 통을 끌어안고 두 눈을 반짝였다.나는 카드를 긁으며 픽 웃었다."어, 다 먹어. 배탈 나서 혼나는 건 너희니까.""아싸! 우린 저쪽에 같이 먹을 테니까 둘이 오붓하게 놀아!"눈치 빠른 녀석들이 헤헤 웃으며 일부러 멀찍이 떨어진 창가 자리로 쪼르르 도망쳤다.가게 안쪽의 조용한 테이블.하루는 내 앞에 앉은 채 손가락만 꼼지락거리며 숟가락을 들지 못하고 있었다.아까 제단에서 흘렸던 눈물 탓에 눈가가 약간 부어 있었지만 그녀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해 보였다."안 먹냐. 다 녹는다."내가 숟가락으로 민트초코 아이스크림을 퍼먹으며 무심하게 툭 던지자 하루가 고개를 들었다."오빠... 오늘 아줌마랑 다들 와주셔서 정말 든든했어요. 오빠가 부르신 거죠?""내가 안 불렀어. 최 여사님이 눈치채고 알아서 끌고 간 거지."나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하루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했다."하루야."내 진지한 부름에 하루의 어깨가 작게 흠칫거렸다."가라앉은 옛날 땅 같은 거 이젠 신경 쓰지 마라."내 투박한 목소리에 하루의 붉어진 입술이 미세하게 달싹였다."누가 뭐라 떠들든, 옛날 국적이 어땠든 그런 건 다 쓸데없는 소리야. 너네 자매는 10년 동안 우리랑 한솥밥 먹고 뒹굴었어. 최 여사님 등짝 스매싱 맞아가면서 같이 컸으면 그냥 우리 집 식구지 무슨 피난민 타령이야."나는 냅킨을 뽑아 하루의 눈가에 아직 맺혀 있는 물기를 슥슥 닦아주었다.조금은 거칠지만 진심이 담긴 따뜻한 손길."아침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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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8월 15일. 오전. 대한민국 부산 남포동, 하숙집]달력의 붉은 숫자가 유독 무겁게 다가오는 날이 있다.매미 울음소리가 요란하게 거리를 채우는 8월 15일.거리 곳곳에는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었고 텔레비전에서는 아침부터 광복절 경축 행사와 함께 10년 전 오늘을 즈음하여 시작되었던 대해식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 방송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국가를 되찾은 환희와 바다에 휩쓸려간 수많은 목숨을 기리는 비통함이 공존하는 기묘하고도 엄숙한 국가적 명절.하지만 오늘 아침 우리 하숙집의 밥상머리 풍경은 평소와 달리 어딘가 휑하게 비어 있었다."이모님. 하루랑 히나 세트는 어디 갔습니까? 늦잠 잘 애들이 아닌데."내가 숟가락을 들다 말고 묻자 찌개를 푸고 계시던 최 여사님이 쯧 하고 혀를 차셨다."아침 일찍 흰 국화꽃 두 송이 들고 바닷가 쪽으로 나갔다. 오늘 같은 날 우리 식구들 기분 망친다꼬 새벽부터 눈치 슬슬 보더마는 동생 손잡고 도망치듯 나가삐더라. 안그래도 된다케도, 에휴."최 여사님의 대답에 내 숟가락질이 딱 멈췄다.타치바나 하루와 타치바나 히나.10년 전 대해식 초기, 가장 먼저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지도에서 지워져 버린 일본 열도에서 간신히 목숨만 건져 한국으로 넘어온 피난민 자매.평소에는 하숙집의 야무진 살림꾼인 하루와 까불거리는 비글 여중생인 히나로 완벽하게 우리 식구로 동화되어 살아가고 있었지만 오늘 같은 날만큼은 예외였다.반외세 정서와 광복의 의미, 그리고 대해식의 트라우마가 온통 뒤섞여 끓어오르는 8월 15일.가라앉은 옛 적국의 핏줄이라는 꼬리표는 이 여린 자매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무겁고 가혹한 주홍글씨였을 터다."밥 묵그라. 즈그들도 죽은 부모 형제 제사는 지내야 안 카겠나."최 여사님이 내 밥그릇 위에 갓 구운 생선 살을 발라 올려주셨지만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매일 아침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내 밥상을 차려주고 다정하게 웃어주던 하루의 가냘픈 뒷모습이 눈앞에

  • EX급 빙신(氷神), 출근합니다   248화: 소고기 미역국과 오리할콘 지팡이 3

    내가 고개를 돌려 씩 웃으며 툭 내뱉자, 할머니가 주름진 눈매를 휘어 접으며 내 넓은 등짝 위로 가볍게 몸을 기댔다."그려. 우리 똥강아지 등짝이 제일로 넓고 따숩제."목숨을 걸고 심연의 군단과 맞서 싸우는 Z급 파일럿의 등.하지만 지금 내 등 뒤에 업힌 할머니의 무게는 너무나도 가벼워서 오히려 내 가슴 한구석을 묵직하게 짓누르는 듯했다.나는 할머니를 업은 채 건물을 빠져나왔다.내 뒤를 따르는 식구들의 얼굴에는 걱정과 눈물 자국이 말끔하게 씻겨 내려간 채, 다시금 화기애애하고 따뜻한 미소가 번져나가고 있었다.[같은 날 저녁. 대한민국 부산 남포동, 하숙집 거실]"빰빠바밤-! 생신 축하합니다-!"거실 한가운데 펼쳐진 커다란 교자상 위로 오색찬란한 고깔모자를 쓴 희선이와 히나가 요란하게 폭죽을 터뜨렸다.오후의 그 눈물바람이 무색할 정도로 하숙집 거실은 잔칫집 특유의 시끌벅적한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랩실에서 막 퇴근한 윤철수와 신수지, 그리고 별다방 문을 닫고 달려온 주미혜까지 합류하여 거실은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교자상 위에는 최 여사님이 영혼을 갈아 넣어 만든 음식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오후 내내 고아낸 참기름 냄새 진동하는 소고기 미역국을 필두로,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갈비찜과 오색 잡채, 갓 부쳐낸 동태전까지.그야말로 임금님 수라상이 부럽지 않은 완벽한 밥상이었다."자자, 음악 큐! 어르신 생신에는 역시 뽕짝이 최고지!"세탁소 사장 성배 아저씨가 번쩍거리는 노래방 마이크를 쥐고 거실 한복판으로 나섰다.그 옆에는 양복 마이를 대충 벗어던진 윤철수가 선글라스를 낀 채 탬버린을 미친 듯이 흔들어대며 흥을 돋우고 있었다."내가 필요할때- 나를 불러죠오- 은제든지 달려갈께-!"성배 아저씨의 끔찍하게 엇박자를 타는 트로트 열창과, 윤철수의 국적 불명 탬버린 댄스가 어우러지자 거실은 그야말로 대환장의 코믹 쇼로 변해버렸다."아빠! 박자 다 틀렸잖아! 뒤로 빠져봐! 지금부터 우리가 찢어줄 테니까!"희선이가 성배 아저씨를 밀어내

  • EX급 빙신(氷神), 출근합니다   247화: 소고기 미역국과 오리할콘 지팡이 2

    10년 전 태평양 심해에서 무수한 괴수들이 쏟아져 나와 한반도를 덮쳤던 인류 최대의 재앙, 대해식.그 참혹했던 재난 속에서 목숨을 잃은 수십만 명의 국민들을 기리기 위해 국가에서 영도 바닷가 언덕에 거대하게 지어놓은 위령 시설이 바로 국가재난납골당이었다.그리고 할머니의 친아들이자 최 여사님의 남편 역시 그때 배타고 나가 계셨다가 목숨을 잃고 그곳에 안치되어 있었다.며느리가 끓여내는 고소한 미역국 냄새.죽은 아들이 생전에 그토록 좋아했던 그 냄새를 맡고 불현듯 치매의 안개를 뚫고 올라온 조각난 기억이 오늘을 아들의 기일로 착각하게 만든 것이 분명했다.​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골목 어귀에 주차되어 있던 SUV의 운전석 문을 열어젖혔다.그리고 파출소에 다녀오시는 성배 아저씨를 향해 빠르게 부탁드렸다.​"아저씨. 혹시 모르니까 아저씨는 딴 데 가지 마시고 무조건 대문 열어놓고 집을 봐주세요.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오실 수도 있으니까요."​"어, 어어! 알았다, 태수야. 내는 눈에 불을 켜고 집 지키고 있을 테니까 퍼뜩 댕겨와라!"​성배 아저씨의 든든한 대답을 뒤로한 채 식구들이 급히 차에 타는 걸 확인 후, 나는 액셀러레이터를 거칠게 밟았다.끼기기기긱-!!!!내 차가 요란한 타이어 마찰음을 내며 영도 바닷가 언덕에 위치한 거대한 회색빛 돔 형태의 건축물 주차장에 미끄러지듯 멈춰 섰다.차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최 여사님과 식구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와 납골당의 정문을 향해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했다.국가재난납골당의 내부는 바깥의 끓어오르는 폭염과는 대조적으로 뼛속까지 시릴 만큼 정적인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수만 개의 투명한 유리 단지로 이루어진 끝없는 안치단들이 거대한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엄숙한 공간.그 웅장하고도 슬픈 침묵 속에서 우리는 발소리를 죽인 채 조심스럽게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저기..."하루가 떨리는 손가락으로 안치실의 가장 구석진 코너를 가리켰다.희미한 조명이 내려앉은 그곳.대해식 유공자 안치 구역의 자그마한 유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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