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마침내 약속된 주말 저녁, 강태풍과 서나래, 그리고 차도훈과 민수아 네 사람이서울 마포구의 한 유쾌하고 시끌벅적한 삼겹살집에 모두 모였다.남해 바다에서 늘 거친 파도를 함께 넘던 강태풍과 서나래,그리고 서울과 남해를 오가며 뜨겁게 연애 중인 도훈과 수아가 한자리에 모인 것은,이번이 처음이었다.두툼한 삼겹살이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동안,테이블 위에는 벌써 초록색 소주병들이 줄을 지어 서기 시작했다."아이고, 강 팀장님! 서울까지 올라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늘 이 차도훈이 풀코스로 대접하겠습니다!"라며차도훈이 우렁차게 소주잔을 채웠고,"차 반장, 자네가 서울 소방서의 간판이라더니 제법 대접이 후하군"이라며강태풍은 호탕하게 웃었다.처음에는 약간의 어색함이 감돌던 서나래와 수아 역시,'지방 격오지 근무의 애환'이라는 공통분모를 발견하자마자 급속도로 친해졌다."수아 씨, 연실군 해경 근무 진짜 힘들죠? 거긴 밤마다 취객들이 바다에 뛰어들어서 난리잖아요"라며서나래가 한숨을 쉬자, 수아는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말도 마세요, 과장님! 지난주에도 술 취해서 낚시하겠다고 갯바위 들어간 아저씨 업고 나오느라 허리가 부러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우리 도훈 씨가 서울에서 매일 영상통화로 응원해 줘서 버팁니다."두 여성이 안주도 없이 소주를 연거푸 들이켜며 화끈하게 잔을 부딪치는 동안,강태풍과 차도훈 두 '대형견' 댕댕이 남자들은 부지런히 고기를 구워 대령하기 바빴다."강 선생, 천천히 마시십시오. 내일 당직 아닙니까"라며강태풍은 서나래의 잔을 슬쩍 뺏으려 했지만,이미 발동이 걸린 강서나래는"강 팀장님, 지금 의사인 나를 과보호하시는 거예요? 오늘 서울 공기가 좋아서 술이 아주 달아요!" 라며 태풍의 손을 찰싹 때렸다.네 사람의 유쾌한 티키타카와 거침없는 대화 속에 삼겹살집의 밤은 깊어갔고,서울과 남해의 경계는 완전히 허물어진 채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서울 강남소방서 특수구조대 소속 차도훈 반장의 근무일.소방서 대기실은 비번을 앞두고 느긋하게 잡담을 나누는 대원들의 열기로 가득했다."차 반장, 요즘 연실군에 있는 해경 여경이랑 장거리 연애한다더니 얼굴이 아주 반쪽이 됐네? 거리가 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인데, 조만간 팽당하는 거 아냐?"선배 대원의 짓궂은 농담에 도훈은"우리 민 순경은 그런 사람 아닙니다! 저만 바라보는 순정파란 말입니다!"라며 씩씩거렸지만,내심 장거리 연애의 불안감을 완전히 떨치지는 못한 표정이었다.바로 그 순간, 소방서 행정실 문이 열리며작고 아담한 키지만 황금비율덕에 작아보이지 않는,단정하고도 묵직한 아우라를 풍기는 한 여성이 걸어 들어왔다.연실군 해안경찰서 지구대 소속, 민수아 순경이었다.비번을 맞아 예고도 없이 서울로 올라와 도훈의 직장으로 직접 찾아온 것이었다.가죽 재킷에 검은 슬랙스를 매치해 모델 같은 비율을 자랑하는 민수아의 등장에,조금 전까지 농담을 던지던 소방대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고정되며대기실 안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차도훈은 깜짝 놀라 입을 떡 벌린 채"수, 수아씨? 아니 민 순경이 여기에... 어떻게 된 일이야?"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수아는 특유의 당당하고 여유로운 걸크러시 미소를 지으며도훈의 곁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그리고는 대기실에 모여 있는 소방대원들을 향해 군기 잡힌 목소리로 시원하게 인사를 건넸다."반갑습니다! 남해 연실군 해경 지구대 민수아 순경입니다. 우리 도훈 씨가 평소에 서과장님과 팀장님들 자랑을 어찌나 많이 하던지 꼭 한 번 인사드리고 싶었습니다."수아는 미리 준비해 온 고급 피자 세트와 음료수 상자들을대기실 테이블 위에 터프하게 내려놓았다.대원들이 "와, 차 반장 여친 진짜 멋있다!"라며 환호성을 지르자,수아는 자연스럽게 도훈의 단단한 팔짱바퀴를 꽉 끼며대원들을 향해 쐐기를 박듯 싱긋 웃어 보였다."우리 도훈 씨가 덩치만 컸지 은근히 허당이라 손이 많이 가거든요. 그래도 제 남자인 만큼
남해 해안가 인근 공사 현장에서 축대가 무너져 내리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병원 응급실로 중상자들이 대거 이송되어 오기 시작했다."강 과장님! 복부 내장 출혈 환자입니다! 혈압과 맥박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습니다!"응급실은 순식간에 긴박한 아수라장으로 변했다.하지만 서나래는 놀라울 정도로 침착했다. 그녀의 손길은 정교했고, 지시는 단호했다."지혈대 준비하고 바로 1차 응급 처치 들어갑니다! 2번 수술방 즉시 비워두세요!"현장 지원을 위해 응급실로 달려온 강태풍은 땀을 비 오듯 흘리며환자들의 생명을 살려내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서나래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서울 대형병원의 화려한 자리를 마다하고,이 시골 응급실에서 주민들의 목숨을 지켜내는 그녀의 모습은그 어떤 영웅보다 빛나고 고귀했다.긴급 처치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환자가 무사히 수술실로 이송되자서나래는 긴장이 풀린 듯 후들거리는 다리로 주저앉을 뻔했다.강태풍이 재빨리 달려와 그녀를 단단하게 받아 안았다."고생 많았습니다, 강 선생.""강 팀장님…… 환자 다 살렸어요."서나래가 지친 미소를 지어 보이자,강태풍은 그녀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다정하게 닦아주며 속삭였다."알고 있습니다. 역시 내 여자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멋진 의사입니다."두 영웅은 서로의 존재를 통해 자신의 자리가 어디인지를다시 한번 깊이 확인하고 있었다.남해의 바다와 응급실을 지키는 두 사람의 사랑은 더욱 단단하게 뿌리를 내려가고 있었다.
며칠 뒤...남해 종합병원에 젊고 훈훈한 외모의 신임 방사선과 의사 '윤창원'이 새로 들어왔다.닥터 윤 선생은 서울 대형병원 출신인 서나래 과장에게 깊은 호감을 보이며 동질감을 구실로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했다."강 과장님, 오늘 점심 같이 하실래요? 서울 출신끼리 남해 맛집이나 탐방해 보죠.""아, 윤 선생님. 저는 오늘 선약이 있어서……."마침 서나래에게 얼큰한 국밥을 사주려고 응급실을 찾았던 강태풍이 이 광경을 목격했다.강태풍의 미간이 팍 구겨지며 태풍 전야 같은 흉흉하고 서늘한 기운이 풍겨 나왔다.강태풍은 뚜벅뚜벅 다가가 닥터 윤 선생과 서나래 사이에190cm의 거대한 몸집으로 단단한 벽을 쳤다."누구신데 우리 강서나래 과장님한테 함부로 식사 신청을 하시는 겁니까?"윤 선생은 강태풍의 위압적인 덩치와 해경 제복에 주춤하면서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아, 저는 방사선과 윤창원입니다. 강 과장님 동료인데요. 그쪽은 누구신지……?""남해 해양경찰 구조대 팀장이자, 강서나래 과장의 및 강태풍입니다!"강태풍이 서나래의 어깨를 덥석 감싸 쥐며 윤 선생을 강렬하게 노려보았다."아, 윤 선생님, 제 남자친구에요. 하하하."서나래가 얼른 강타풍의 팔을 찰싹 떼리며 웃으며 말했지만,닥터 윤 선생은 강태풍의 무시무시한 포스에 눌려"아, 예…… 수고하십시오!"하고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서나래가 강태풍의 허구리를 콕 찌르며 눈을 흘겼다."강 팀장님, 또 쓸데없는 질투 부리시는 거예요? 새로 오신 동료 의사한테 너무하시는 거 아니에요?""질투라니요! 바다에서도 위협 요소는 미리미리 제거하는 게 해경의 철칙입니다!"강태풍의 뻔뻔하면서도 귀여운 질투에서나래는 결국 푸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하지만 감동적인 축하의 순간도 잠시,응급실 비상 벨이 크게 울리며 첫 번째 응급 환자가 이송되어 들어왔다."의사 선생님! 갯바위에서 낚시하다가 미끄러져서 다리가 완전히 부러졌습니다!"통증에 소리를 지르며 들어온 환자는 동네 단골 낚시꾼 아저씨였다.서나래는 즉시 진지하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변해 환자의 상태를 신속하게 살폈다."X-ray 촬영 바로 준비하시고, 통증 완화제 투여하세요. 부러진 골절 부위 응급 고정 들어가겠습니다."서나래의 신속하고 단호하며 정확한 처치에 응급실 스태프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그런데 옆에서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강태풍이갑자기 환자에게 다가가 엄숙하고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어르신, 풍랑 주의보 발령된 날 통제 구역인 갯바위에 진입하신건 명백한 해양 안전법 위반입니다. 치료 끝나시는 대로 지구대 가서 경위서 작성하셔야 합니다."환자는 다리가 아파 죽겠는데 해경이 경위서를 운운하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서나래가 참다못해 강태풍의 제복 덜미를 낚아챘다."강태풍 팀장님! 여기는 병원이지 해경 경비정이 아니에요! 환자분 불안하게 왜 이러세요, 당장 안 나가지 못해요?!""아니, 강 선생, 안전불감증은 초기에 엄격하게 뿌리를 뽑아야…….""안 나갈래요, 아니면 제가 제일 큰 주사기로 엉덩이 찌를까요?"서나래가 진짜 커다란 주사기를 들고 눈을 노려보자,남해 바다의 거구 강태풍이 꼬리를 슬그머니 내리고 큼큼거리며 응급실 밖으로 쫓겨났다.응급실 안은 의사와 해경의 유쾌한 소동으로 웃음꽃이 피어났다."어휴, 덩치만 컸지, 완전 눈치없는 강아지 같다니깐..!!"
마침내 남해로 완전히 복귀한 서나래.오늘은 남해 종합병원 외과 과장이자 응급실 총괄 의사로서의 첫 공식 출근 날이었다.병원 정문 입구에는 '환영, 서울 00대학병원 외과 강서나래 과장 취임'이라는거창한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서나래가 하얀 의사 가운을 가볍게 걸치고 분주한 응급실로 들어서자마자,입구 쪽에서 쿵쿵거리는 당당하고 묵직한 발소리가 들려왔다."강 대원, 부르셨습니까!"해양경찰 제복을 정갈하게 갖춰 입은 강태풍이늠름하고 각 잡힌 자태로 응급실 한복판에 서서 완벽한 거수경례를 올려붙이고 있었다.그의 품에는 응급실 전체를 덮을 만큼 거대한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응급실 간호사들과 대기 중이던 환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두 사람에게 쏠렸다.서나래는 극심한 민망함에 얼굴이 순식간에 화끈거리며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강 팀장님! 여기서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제발 창피하게 이러지 마세요!""창피하다니요! 남해 종합병원 응급실의 새로운 수장이자, 제 인생의 전담 주치의이신 강서나래 과장님의 첫 출근을 축하하러 온 겁니다!"강태풍은 굴하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와 서나래에게 꽃다발을 건넸다."남해 바다의 안전은 해경 강태풍이 지키고, 남해 주민들의 생명은 의사 강서나래가 지킨다! 이보다 완벽한 공조 체계가 어디 있겠습니까?"응급실 안에서 환자들과 간호사들의 열렬한 박수갈채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진짜 두 분 너무 잘 어울리세요!""정말 아름다은 커플이네요"여기저기서 두 사람을 축복하는 인사를 건넸다."그래도... 여기는 엄연히 제 직장이라구요! 그리고... 병원 응급실에 꽃다발을 들고 오면 어떻게 해요? 진짜..!!" 서나래는 어이없이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가슴 한구석이 꽉 차오르는 든든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