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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4화

Author: 은지아
문밖에서 재촉하는 소리가 들리자 송남지는 깊게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 이야기는 이따가 다시 해요.”

박재용은 송남지가 병실을 나설 때까지 가만히 지켜보았다. 다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여유롭던 그의 표정은 그녀가 사라지자마자 순식간에 수척해졌다.

억지로 참아왔던 기침과 심장 두근거림이 그제야 여실히 드러났다.

그때 문밖에서 다시 인기척이 들렸다. 조금 전까지 옆으로 누워 있던 박재용은 송남지인 줄 알고 서둘러 몸을 일으켜 아까와 같은 멀쩡한 자세를 유지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송남지가 아닌 박명규였다.

칼같이 다려진 양복에 금테 안경을 쓴 박명규는 전형적인 엘리트 신사 차림이었다.

박재용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농담을 던졌다.

“삼촌, 우리 집에서 삼촌만 유일하게 은행 임원 포스네요.”

조카의 농담에 익숙한 박명규는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병실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며 답답한 듯 넥타이를 살짝 늦췄다.

서경에서의 일정을 막 마친 박명규는 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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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면을 쓴 남편   제853화

    송남지는 하정훈을 돌아보며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무슨 헛소리에요? 내 방 잡으려는 거예요. 이런 비즈니스호텔은 하정훈 씨가 지내기에는 불편할 거니까요.”병원과 가까운 곳을 찾다 보니 접근성만 따졌을 뿐 호텔 등급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그러니 이런 평범한 비즈니스호텔은 평소 하정훈의 눈에 찰 리가 없었다.하지만 송남지의 예상과 달리 하정훈은 짙은 눈썹을 까닥이며 말했다.“트윈룸으로 부탁합니다. 좁은 건 딱 질색이라서요.”송남지는 얼떨결에 카드키를 받아 들고 하정훈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송남지는 내내 미간을 찌푸린 채 걷다 객실 문 앞에 도착해서야 입을 열었다.“이 근처에 다른 고급 호텔도 있을 텐데, 굳이 나랑 같이 불편하게 여기 안 계셔도 돼요.”하정훈은 대답 대신 송남지의 손에서 카드키를 가져가 도어락에 갖다 대며 하품을 내뱉었다.“졸려 죽겠네, 빨리 자자.”문이 열리자 은은한 향기가 감도는 깔끔한 비즈니스호텔 트윈룸이 나타났다.하정훈은 피곤이 몰려오는지 화장실 쪽 침대에 몸을 던졌고 창가 쪽 침대를 송남지에게 양보했다.송남지는 침대 옆에 서서 이미 눈을 감아버린 하정훈을 흘겨보며 속으로 생각했다.‘어떻게 남녀가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한 방에 들 수 있지? 그것보다 이 사람은 어떻게 아무 생각도 없이 저렇게 바로 잠들 수가 있어?'송남지는 입술을 비죽이며 깊은숨을 내뱉고는 조심스럽게 욕실로 향했다.화동의 5월은 날씨가 제법 후덥지근했고 하루 종일 고생한 탓에 샤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곧 욕실 안에서 물줄기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려왔다.침대에 누워 잠든 척하던 하정훈은 천천히 눈을 떴고 그 깊은 눈망울에는 수만 가지 감정이 교차하고 있었다.뿌연 욕실 유리 너머로 송남지의 실루엣이 가물거리며 비쳤다.하정훈은 이 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릴까 두려운 듯, 감기 아까운 눈으로 그 유리창을 멍하니 응시했다.그러다 물소리가 잦아들자 황급히 눈을 감았다.송남지는 몸을 꼼꼼히 감싼 채 조심스럽게

  • 가면을 쓴 남편   제852화

    새벽 2시 반, 정적에 잠긴 병원의 밤을 뚫고 아기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복도 벤치에 앉아 있던 송남지와 하정훈은 조금 전의 초조함을 털어내고 서로를 마주 보았다. 두 사람의 눈시울에 형언할 수 없는 안도감과 기쁨이 빛무리처럼 번져 나갔다.오랫동안 억눌렸던 긴장이 풀린 순간, 두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서로를 껴안으며 중얼거렸다.“다행이다, 진짜 다행이야!”하지만 서로의 온기가 닿자마자 어색함을 느끼고는 황급히 몸을 떼었다.사선을 넘나들었던 소윤의 상태는 다행히 안정적이었고 고비를 넘긴 그녀는 지금의 평온함을 그 어느 때보다 소중히 느끼는 듯했다.소윤의 부모는 갓 태어난 아이를 슬쩍 쳐다보았지만, 그들의 마음은 고생한 딸에게 쏠려 있었다.두 사람은 산실 침대 양옆에 붙어 서서 소윤의 손을 꼭 맞잡았다. 참으려 해도 눈물이 자꾸만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소윤아, 어쩌자고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했어? 그런 쓰레기 같은 놈 때문에 인생을 버리려 하다니, 그럴 가치도 없는 놈이야. 너한테는 엄마랑 아빠가 있잖니.”소윤은 입술을 깨물며 울음을 터뜨렸다.“엄마, 아빠, 제가 정말 바보 같은 짓을 했다는 거 알아요. 그때는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하지만 이런 큰 고비를 겪고 나니 이제야 알 것 같아요. 모든 게 얼마나 소중한지... 비록 아이에게 아빠는 없겠지만, 그래도 행복한 집에서 자라게 할 거예요.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가 있고 또 누구보다 아껴주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니까요.”그 화목하고 따스한 풍경을 지켜보던 송남지의 눈에서 결국 눈물이 툭 떨어졌다.하정훈이 손수건을 내밀며 짧게 말했다.“닦아.”송남지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당신은 대체 손수건이 어디서 그렇게 계속 나와요?”하정훈이 나직하게 대꾸했다.“알 거 없어.”눈물을 닦아낸 송남지의 시선 끝에는 소윤이 머물렀다. 소윤의 눈동자에는 말로 다 못 할 고마움이 일렁이고 있었다. 굳이 긴 말을 내뱉지 않아도, 찰나의 침묵 속에서 두 사람의 마음은 깊게 맞닿았다.송

  • 가면을 쓴 남편   제851화

    하정훈이 깊은숨을 내뱉으며 물었다.“서윤아, 사랑은 모든 걸 같이 감당하는 거라고 생각해?”김서윤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사랑한다면 당연히 모든 걸 함께 짊어져야죠!”하정훈은 고개를 숙인 채 낮게 웃었다.“넌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렇게 쉽게 말하는 거야. 만약 너한테 정말 사랑하는 아내가 있는데 갑자기 죽음을 앞뒀다고 가정해 봐. 뭐가 제일 걱정될 것 같아?”김서윤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제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아내가 무너지지 않을까, 제가 떠난 뒤에 그녀를 돌봐줄 사람은 있을까 하는 게 가장 걱정될 것 같습니다.”“거봐, 내 말이 맞지? 내 죽음이 결국 남지를 무너뜨릴 거라면, 차라리 내 죽음을 모르게 하는 게 나아. 아니면 남지가 날 미워하게 됐을 때 알리는 게 낫지. 그때라면 내 죽음이 남지에겐 차라리 기쁜 소식일지도 모르니까.”이 질문에 정답을 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김서윤도 말을 아꼈다.“대표님, 시키신 일은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조금이라도 몸에 이상이 느껴지시면 지체 말고 연락 주십시오.”김서윤은 병원을 나와 차에 올라탔다. 그날 받았던 전화만 생각하면 여전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날 밤, 성은 그룹을 떠나 집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하정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수화기 너머 그의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위태로웠고 경황없이 나오느라 약을 챙기지 못했는데 비까지 맞았다고 했다.목소리만 듣고도 상황이 좋지 않음을 직감한 김서윤은 급히 사람을 보내 하정훈이 묵고 있는 호텔로 약을 보내게 했지만, 고비를 넘길 수 있을지는 하늘의 뜻에 달렸음을 두 사람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불행 중 다행으로 약이 도착하기 전 증세가 호전되었지만 불안함을 떨칠 수 없었던 김서윤은 결국 하정훈의 부모님께 사실을 알렸다.그리고 두 분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서경에서 이곳으로 단숨에 달려왔다.비록 운명처럼 정해진 병이라 해도 그날 밤 같은 상황만큼은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송남지는 차에 올라타

  • 가면을 쓴 남편   제850화

    김서윤은 당혹스러운 기색과 깊은 분노를 억누르며 하정훈 앞으로 서둘러 다가왔다.하정훈은 미간을 찌푸린 채 의아한 눈초리로 김서윤을 응시했다.“화동에는 언제 내려온 거야?”김서윤은 송남지를 힐끗 보더니 입을 다물었다.송남지는 즉시 눈치채고 아래층을 가리키며 자리를 피해주었다.“볼일이 좀 있어서요, 두 분 말씀 나누세요.”송남지가 멀어지자 김서윤은 참아왔던 서운함을 터뜨렸다.“대표님! 이런 일을 벌이시면 다들 얼마나 걱정하는지 아십니까!”하정훈이 인상을 쓰며 대꾸했다.“전화로 오지 말라고 분명히 경고했을 텐데?”“저라고 오고 싶어 왔겠습니까. 어르신들께서 도저히 마음을 놓지 못하셔서요.”하정훈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김서윤의 입장을 모르는 바가 아니기에 그는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일단 가 있어. 부모님께는 내가 직접 전화하마.”김서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못내 아쉬운 듯 머뭇거렸다.“대표님, 본인 몸 상태는 스스로가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런 무리는 견디지 못해요. 그나저나 성루이야에서 온 메일은 보셨나요?”하정훈은 창밖을 내다보며 송남지의 모습이 건물 아래에 나타난 것을 확인한 뒤에야 김서윤을 돌아보았다. “메일 확인했어.”김서윤의 걱정은 깊어만 갔다. “보셨으면 이제 준비를 하셔야죠. 진료와 검사를 회피하시는 건 감정적인 대응일 뿐입니다. 계속 이러시면 어르신들께 전부 보고드리는 수밖에 없어요.”하정훈이 눈을 가늘게 뜨며 서늘한 기운을 뿜어냈다.“김서윤, 네 월급 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잊은 모양이지?”김서윤은 당당하게 맞받아쳤다.“대표님이 제 월급을 주시니까 이러는 겁니다. 저, 월급 오래오래 받고 싶거든요.”김서윤의 말에 하정훈은 침묵에 잠겼다.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무겁게 입을 뗐다.“성루이야 쪽은 화동 업무가 끝나는 대로, 서경에 돌아가서 일정을 잡도록 하지.”그러자 김서윤이 투덜댔다.“대표님, 솔직히 화동에 하실 일 없잖아요.”하정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대꾸했다.“무슨 소리야, 쇼핑몰 커팅식이 엄연

  • 가면을 쓴 남편   제849화

    소윤의 부모님이 눈물짓는 모습을 보며 송남지는 마음이 아릿해졌다.“아저씨, 아주머니,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이건 전부 조윤혁 그 인간 잘못이에요.”세상은 늘 그랬다. 마음 약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탓하고 정작 양심 없는 인간들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들고 산다.소윤의 부모님은 걱정을 떨치지 못한 듯 물었다.“조윤혁이랑 그 여자가 와서 난동을 피웠다는데, 너희가 쫓아냈다며... 그놈이 너희한테 복수하겠다고 했다던데 어쩌니.”하정훈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안심시켰다.“괜찮아요. 저희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무서울 게 뭐 있겠어요. 걱정 마세요.”부모님을 겨우 달래고 나서야 송남지는 전시관에 전화를 걸 틈이 생겼다.여준휘에게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자, 그는 당장이라도 화동으로 달려올 기세로 걱정했다.“안심하세요. 제가 잘 챙기고 있어요.”여준휘는 어린 후배인 그녀가 겪었을 고생에 마음 쓰여 하며 말했다.“너도 여자애 혼자 몸인데 그 많은 일을 어떻게 다 감당해. 이번 일 마무리되면 장기 휴가 줄 테니까 푹 쉬어. 정말 고생이 많다.”송남지는 살며시 웃으며 답했다.“고생이라뇨, 우리 식구 일인데요.”전화를 끊고 고개를 돌리자 조금 피곤해 보이는 하정훈이 서 있었다.“이제 어느 정도 정리가 됐으니 여기는 내가 지키면 돼요.”완곡한 거절이었고 하정훈 정도의 눈치라면 충분히 알아들을 법한 말이었다.하지만 그는 마치 말귀를 못 알아먹는 사람처럼 굴었다.“그래, 정말 거의 다 해결됐네.”송남지는 헛기침을 하며 다시 한번 쐐기를 박았다.“그러니까 내 말은, 이제 그만 가서 쉬시라고요. 화동에 출장 오신 거잖아요. 다른 업무에 방해되면 안 되니까요.”하정훈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화동엔 행사 커팅하러 온 건데 이미 물 건너갔으니 딱히 바쁜 일도 없어.”송남지가 곧바로 말을 받았다.“그럼 서경으로 돌아가도 되겠네요.”“돌아갈 생각 없어.” 하정훈의 대답은 군더더기 없이 단호했다.송남지는 멍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무슨 말씀

  • 가면을 쓴 남편   제848화

    병원 건물 아래 늘어선 포장마차 앞에서 송남지는 홀린 듯 멈춰 섰다.하교 시간과 맞물려 노점 여기저기서 맛있는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그녀의 눈길은 지글지글 익어가는 꼬치구이 위에 고정되었다.“이거 먹고 싶어?”하정훈이 눈썹을 살짝 올리며 물었다.송남지는 조금 민망해졌다. 나이가 몇인데 초등학생들 틈에서 간식을 탐내는 모양새가 조금 그랬다.그녀가 대답 없이 머뭇거리자 하정훈이 노점으로 다가가더니 금세 김이 모락모락 나는 꼬치 몇 개를 사 들고 돌아왔다.“먹어. 이게 꼭 먹고 싶어서라기보다, 하루 종일 굶어서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인 거 다 알아. 일단 이걸로 배부터 좀 채워.”송남지는 하정훈이 내미는 꼬치를 자연스럽게 받아 들었고 모처럼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한참 먹던 중 하정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한 그의 미간이 깊게 패였다. 그는 송남지에게 정중히 양해를 구하고 옆으로 비켜났다.“잠깐 전화 좀 받고 올게.”꼬치를 든 채 십여 미터 떨어진 하정훈을 바라보던 송남지는 무슨 대화인지 들리지는 않았지만, 그의 표정이 몹시 심각하고 불쾌해 보인다는 것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하정훈이 돌아오자 송남지는 입술을 달싹이다 결국 조심스레 물었다.“무슨 일 있으세요?”하정훈은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저었다.“별일 아냐.”그가 말하지 않으니 송남지도 더는 묻지 않았다.간단히 요기를 마친 두 사람은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산부인과 전문의들은 회진 후 곧바로 수술에 들어갔고 뒤늦게 달려온 소윤의 부모님은 떨리는 손으로 수술 동의서에 서명했다.노부부의 가느다란 손 떨림을 지켜보는 송남지의 가슴 한구석이 이유 없이 아려왔다.소윤이도 부모님에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 딸일 텐데, 어떻게 조윤혁 같은 인간에겐 죽든 말든 상관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걸까?분명 결혼할 때는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하겠다고 맹세했을 텐데, 인간의 약속이란 게 이토록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는 건지 싶어 송남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하

  • 가면을 쓴 남편   제467화

    특히 송남지와의 일이라면 더더욱 철벽을 치던 사람이었다.사실 곽지민이 어릴 때 송남지에게 뽀뽀를 했던 일로 하정훈은 줄곧 그를 경계해 왔다.그런 하정훈이 이토록 속내를 털어놓자 곽지민은 내심 뭉클하기까지 했다.“아니면 내가 남지 설득해볼까?”예전 같았으면 하정훈은 곽지민이 송남지 근처에 얼씬도 못 하게 했겠지만, 지금의 그는 몹시 절박한 듯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파격적인 조건까지 내걸었다.“만약 남지 마음을 돌려놓을 수만 있다면, 내년 성은 그룹의 법무 자문은 너한테 맡길게.”성은 그룹은 업계 최고 수준의 자체 법무팀을

  • 가면을 쓴 남편   제460화

    위아래로 노골적으로 훑어보는 그 시선은 무례하기 짝이 없었다.박재용은 평생 이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아버지는 라인국 T&K 은행의 회장이었고 그 이름값은 라인국 내에서 절대적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주변에는 아부하는 이들뿐이었고 게다가 성격까지 불같았던 탓에 사람들은 행여나 불똥이 튈까 봐 그와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두려워했다.하정훈은 눈을 가늘게 뜨고 박재용을 응시했다. 젊고 잘생긴 외모, 몸에 밴 예술가 특유의 자유분방함이 느껴졌다.하정훈은 방금 병실에 들어섰을 때 보았던 광경을 떠올렸다.박재용이 몸을 숙여 송

  • 가면을 쓴 남편   제454화

    ‘또 시작인가?’송남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이번엔 또 어떤 캐릭터가 죽을 만큼 귀엽다는 건지 궁금해하며 허탈하게 뒤를 돌아보았다.그런데 그녀의 눈이 순식간에 커졌다.박재용이 거짓말처럼 바닥에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다.송남지는 처음엔 제 눈을 의심했다.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박재용은 여전히 바닥에 엎드러진 채였다.하지만 곧이어 그녀는 이것이 박재용의 짓궂은 장난일 거라 확신했다.그녀는 다급히 달려가는 대신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이번엔 또 무슨 연기를 하시는 거예요?”송남지는 자신이 다가가면 박재용이 눈을 번쩍 뜨

  • 가면을 쓴 남편   제444화

    오지훈이 뒷좌석으로 시선을 돌리자 역시나 꽃다발과 정교하게 포장된 과일 상자가 놓여 있었다.한눈에 봐도 정성이 가득 느껴지는 것이 하정훈은 처음부터 함께할 작정이었던 모양이었다.“송남지가 오지 말라면 안 가겠다더니, 이게 다 뭐야?”오지훈의 장난 섞인 물음에 하정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심드렁하게 대꾸했다.“그 여자가 보기 싫다면 안 보면 그만이야. 마침 한가해서 따라가 주려는 것뿐이니까.”참으로 대단한 ‘한가함’이었다.명색이 대기업 대표가 평일에 시간이 남는다는 소리를 누가 믿겠는가 싶었지만, 오지훈은 굳이 그의 속내를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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