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하정훈은 송남지를 가만히 응시했다. 송남지는 그의 시선을 알아차리고 부드럽게 눈썹을 치켜올리며 무슨 일이냐고 묻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남지랑 함께 갈 거예요.”하정훈은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송남지는 그제야 물었다.“어디에 간다는 거예요?”“남성에 있는 결혼식에 참석하러.”하씨 가문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는데 한 갈래는 서경시에, 다른 한 갈래는 남성에 있다.하씨 가문의 남성 쪽 친척들을 만나야 한다니, 송남지는 약간 긴장됐다.그녀는 불안한 듯 물었다.“그럼 난 뭘 준비해야 할까요?”하정훈은 손을 뻗어 송남지의 손등을 감쌌다.“아무것도 필요 없어. 내 옆에선 그냥 너답게 있으면 돼.”손바닥을 통해 따뜻한 기운이 전해지자 송남지의 긴장도 풀렸다.남성으로 출발하기 전날 밤, 하정훈은 그룹 회의 때문에 늦게까지 야근했다.이번에 얼마나 오래 머무를지 알 수 없었기에 하정훈은 며칠 동안 해야 할 일들을 모두 미리 처리해 뒀다.송남지는 일찍 샤워를 마치고 거울 앞에서 망설이며 최보라가 퀵으로 보내준 옷을 입었다 벗었다, 입었다 벗었다 하며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그녀가 막 옷을 입고 있을 때, 침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하정훈이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벗기에는 이미 늦었다...“남지야?”그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송남지는 반사적으로 욕실 문 뒤에 몸을 숨겼다.하정훈은 문 뒤로 그림자가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고, 송남지의 모습을 잘 알지 못했다면 집에 도둑이 든 줄 알았을 것이다.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낮고 웅얼거리는 말투로 의아함과 걱정을 담아 물었다.“남지야, 무슨 일 있어? 왜 숨어?”하정훈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질수록 송남지의 심장은 쿵쾅거렸다.그녀는 고개를 숙여 훤히 드러난 하얀 속살을 내려다봤다.현란한 디자인이 정말 민망했다.송남지는 최보라가 준비해 준 이 옷이 너무 과한 건 아닐까, 하정훈이 자신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면 어떡하나 걱정했다...그런 생각에 송남지는 저절
송남지는 시선을 식탁 위의 아침 식사에 둔 채 천천히 위로 올리며 하정훈의 진지하고 농담기 없는 얼굴을 멍하니 바라봤다.그녀는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의심했다.“뭐라고요?”그녀의 놀란 표정을 본 하정훈은 웃으며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송남지에게 건넸다.“임소훈 전화인데, 받을래?”송남지는 아직 머릿속이 하얘진 상태였지만, 손은 이미 휴대폰을 향해 뻗어 있었다.하정훈의 휴대폰을 받아 귓가에 가져다 대고 상대방의 인사말을 들었지만,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하정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이마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놀리듯 말했다.“임소훈이 무슨 괴물이라도 되냐? 왜 그렇게 쫄아서 말도 제대로 못 해.”송남지는 미간을 찌푸린 채 당혹감과 놀라움이 뒤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상대는 임소훈이었다.최근 몇 년간 업계에서 가장 핫한 인물 말이다.그런 사람이 그녀와 밥을 먹자고 하다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송남지 씨, 안녕하세요. 혹시 언제 시간이 괜찮으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제가 영광스럽게도 식사라도 한번 대접해 드리고 싶습니다.”임소훈의 말이 끝나고 한참 뒤에야 송남지는 겨우 입을 열었다. “임... 임소훈 씨, 안녕하세요. 저는 언제든 괜찮습니다.”임소훈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송남지 씨께서 언제든 괜찮으시다면 시간은 하 대표님께서 정하시는 걸로 하죠. 아, 그리고 반달 동물원에 그리신 벽화 정말 멋있습니다. 올해 제가 본 작품 중에서 단연 최고예요.”이렇게 유명한 사람에게 칭찬을 받으니 송남지는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과찬이십니다.”사실 임소훈은 자신의 은인인 하정훈의 아내가 자신과 같은 학교 동기인 송남지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다.그는 서경 미대에 다닐 때부터 송남지의 이름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 학교에서 몇 번 마주친 적도 있었다.옷차림은 마치 순수한 백합처럼 청초했고 항상 벤츠 승용차가 그녀를 데리러 왔다.미대 동기들은 처음에는 그녀에게 ‘스폰서'가 있다는 둥 험담을 늘어놓았지만 나중에 그녀의 남자
송남지는 퀵 배달 전화를 받았다.그녀는 일부러 배달원에게 정원 밖에서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고 하정훈이 아침 일찍 샤워하러 들어간 틈을 타 몰래 밖으로 나갔다.하정훈은 샤워를 마치고 다림질이 잘 된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었다.오늘은 그룹에 중요한 회의가 여러 개 잡혀 있었다.이미란은 이미 아침 식사를 준비해 놓았다.하정훈은 식탁에 앉아 의아한 듯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사모님은요?”이미란은 속으로 웃었다. ‘도련님은 정말로 사모님을 끔찍이 아끼시는구나. 다른 사람들이야 사모님이라 부른다지만 도련님께서는 마치 온 세상이 그 사실을 알아주지 못해 안타깝다는 듯이 꼭 그렇게 부르시니.’“택배 받으러 나가셨어요. 곧 돌아오실 거예요.”하정훈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무슨 택배길래 직접 나가서 받아와야 한대요?”이미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저도 잘 모르겠어요. 사모님께서 급하게 나가시던데, 아마 중요한 물건인가 봐요.”하정훈은 식탁 옆 통유리창 너머로 송남지가 택배 상자를 들고 수상쩍은 표정으로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그가 막 인사를 하려던 찰나, 송남지는 고개를 숙인 채 회전 계단으로 향했다.하정훈은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었다.이미란은 송남지의 수상한 모습에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사모님께서 뭘 가져오신 걸까요?”하정훈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사모님 나름대로 사생활이란 게 있겠죠.”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휴대폰 화면이 켜지며 전화가 걸려왔다.발신자는 임소훈이었다.그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전화를 받았다.“소훈아, 오랜만이다. 통화하기가 쉽지 않네.”임소훈은 경쾌한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부탁한 일은 모두 처리했으니 걱정 마. 사모님의 정면 사진은 없어.”하정훈은 흡족하게 웃으며 말했다.“좋아, 아주 잘했어.”“후원자께서 맡기신 일인데 어떻게든 잘해야지!”임소훈은 서경 미대 졸업 후 밀라리아 유학 제안을 받았지만 학비를 감당할 수 없어 좌절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때 하정훈이 찾아와 성
송남지는 아직 잠에 덜 깬 몽롱한 상태라 무슨 상황인지 전혀 몰라 어리둥절하며 물었다.“나 방송 출연한 적도 없는데, 뭐가 떴다는 거야?”최보라는 ‘좋아요’ 수가 거의 백만 개에 육박하는 영상을 송남지에게 툭 던져주며 말했다.“네가 반달 동물원에 그린 벽화가 대박 났어! 온 세상이 너라는 천재 소녀를 찾고 난리야!”송남지는 눈을 가늘게 뜨고 휴대폰 잠금을 해제한 후, 최보라가 보내준 영상을 확인했다.영상 속 그녀는 땡볕 아래 벽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앵글 때문인지 아니면 옷차림 때문인지, 머리를 질끈 묶은 모습이 가냘프고 작아 보여서 사람들이 소녀로 착각한 듯했다.영상을 찍은 사람은 실력이 상당했다. 벽에 그려진 벽화를 매우 완벽하게 담아낸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송남지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이게 어떻게 이렇게 뜬 거지?”최보라는 한껏 고조된 목소리로 말했다.“듣자 하니 유명 인사인 임소훈이 이 벽화를 공유하면서 순식간에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대!”‘임소훈?’송남지와 같은 서경 미대 출신으로 미대 렘브란트라는 별칭으로 불리던 인물이었다.최근 몇 년간 임소훈은 업계에서 아주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고 연예계 진출까지 노리고 있는지 각종 영향력을 행사하며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었다.결국 최보라는 단정 지었다.“남지야, 너 이제 내가 일자리 소개할 필요도 없겠다. 곧 별의별 사람들이 다 너 찾아올걸.”송남지는 지금까지도 얼떨떨했다. 최보라가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고 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최보라는 의미심장한 어조로 속삭였다.“남지야, 내가 너를 위해 좋은 걸 많이 샀어. 그쪽 용품인데, 오늘 퀵으로 갈 거야. 눈치껏 잘 받아 놔!”송남지는 무심결에 휴대폰을 조금 멀리 들었다.최보라의 말투만 들어도 뭘 보냈을지 짐작이 갔기에 하정훈한테 들키면 너무 난감할 것 같았다.그녀가 슬쩍 몸을 움직이는 걸 눈치챈 하정훈은 팔을 뻗어 그녀를 다시 품에 안았다.그러고는 낮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콧방귀를 뀌었다.그
윤해진은 카톡을 추가하고 돈을 보내며 잘난 척 2백만을 송금했다.큰 금액이라 상대방의 성을 입력해야 했다.“성이 뭔데?”“하.”윤해진은 ‘하’자를 입력하다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하정훈? 쯧, 이름은 그럴싸하게 지었네. 서경시 하씨 가문의 도련님 흉내라도 내는 건가.’돈을 보내자마자 상대방이 쏜살같이 받아 가자 윤해진은 득의양양하게 웃었다.‘송남지가 다시 찾은 남편이라는 놈이 고작 저 정도 수준밖에 안 되다니. 내 발톱 때만큼도 못하고 200만 원 때문에 자존심까지 팔아넘기는 놈이잖아.’윤해진은 하정훈의 모멘트를 훔쳐봤다.게시물은 딱 하나였다.송남지가 자신에게 돈을 보낸 화면을 캡처한 사진과 함께 적혀진 글이었다.[이제부터 우리 마누라가 나 먹여 살린다.]그런 모멘트를 보고 윤해진은 비웃었다.‘얼마나 못났으면 여자한테 빌붙어 살까? 게다가 송남지가 버는 돈이 고작 50만 정도인데 누구 코에 붙이겠어?’윤해진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송남지 인생에 내가 최고의 남자였지.”막 샤워를 마친 송남지는 재채기를 크게 했다.‘왜 자꾸 누가 내 험담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하정훈은 윤해진에게 받은 200만을 고스란히 비서에게 보냈다. 비서는 어리둥절해 하며 말했다.“하 대표님, 저 월급도 받는데요.”“그럼 산간 지역 아이들에게 기부해.”비서는 더욱 어리둥절해 했다. 겨우 2백만 원은 하 대표님의 스케일에 맞지 않았고 게다가 성은 그룹 산하에는 자선 재단도 따로 운영하고 있었다.하지만 비서는 비서의 본분을 잊지 않았다. 하 대표님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될 뿐이었다.송남지는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털며 욕실에서 나와 물었다.“방금 누구 전화예요?”하정훈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웃었다.“아무것도 아니야, 스팸 전화.”송남지는 미간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이렇게 늦은 시간에 스팸 전화 돌리는 사람은 퇴근도 안 하나? 정말 요즘은 뭐든 경쟁이 치열하다니까.”혼잣말을 하는 그녀의 사랑스러운 모습에 하정훈의 마음은 녹아내
뜬금없는 그의 질문에 남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뭐라고요?”은은한 주황빛 조명 아래, 하정훈의 머리카락은 은근한 밤색을 머금고 있었고 그의 짙은 속눈썹이 시선을 사로잡았다.하정훈의 시선은 오롯이 그녀의 무릎에 머물러 있었다.“무릎 괜찮냐고? 그 짐승 같은 놈 무릎으로 찼잖아.”그의 말에 송남지는 미래 타워에서의 일이 떠올랐다.“그건 어떻게 아셨어요?”하정훈은 송남지의 무릎을 바라보며 CCTV에서 봤던 장면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개자식이 어떻게 감히? 그토록 얌전한 내 아내를 무릎까지 쓰게 만들다니...’“내가 몰랐으면 말 안 하려고 했어?”욕실에 물안개가 자욱한 탓인지 송남지는 착각이라고 생각했지만 하정훈의 말투에서 왠지 모를 서운함이 느껴졌다.‘분명 착각일 거야. 수증기가 귓가에 스며들어 그렇게 들린 거겠지.’송남지는 멋쩍게 해명했다.“좋은 일도 아니고 굳이 말할 필요 없을 것 같아서요.”윤해진의 등장으로 자신의 기분이 망가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굳이 그로 인해 하정훈의 마음까지 어지럽힐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하정훈은 눈을 들어 촉촉한 눈으로 송남지를 바라보며 속삭였다.“부부의 의미가 뭔지 알아?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함께 나누는 거야.”송남지는 그의 말뜻을 반쯤 헤아린 듯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하정훈의 깊은 속내를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의 뜻에 따르는 것이 옳다고 여겼다.송남지가 고개를 끄덕이자 하정훈의 시선은 다시 그녀의 무릎으로 향했다.송남지도 자신의 무릎을 흘끗 바라봤다. 하얗고 깨끗했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안 아파요. 아까는 너무 세게 쳐서 그랬는지 좀 아팠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요.”털털한 그녀의 모습에 하정훈은 웃고 싶었지만 마음속에는 억누를 수 없는 분노가 차올라 웃을 수 없었다.그는 바디워시를 짜내며 말했다.“안 아프면 내가 깨끗하게 씻겨줄게.”하정훈은 송남지의 무릎을 부드럽게 문질렀다.송남지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마음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