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하은은 휴대폰을 집어넣으며 다가오는 송서윤을 정면으로 응시했다.“하은 씨, 몸은 좀 괜찮아요?”하은은 자신이 내세웠던 휴가 핑계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모님.”‘사모님?'송서윤은 의아했다. 왜 갑자기 다들 사모님이라 부르는 걸까? 제훈도 그랬다. 심건모와 혼인 신고를 한 뒤에도 쭉 송서윤 씨라고 불렀는데 이제 와서 사모님이라니.“하은 씨, 별일 없다니 다행이에요. 그런데 어젯밤에 나 보자고 한 건 무슨 할 말이 있어서였어요?”송서윤이 물었다.하은은 송서윤의 순수한 눈동자를 바라보며 자신의 발치에 쓰러졌던 동건우를 떠올렸다. 왜 모두가 송서윤에게만 잘해주는 걸까? 동건우는 심지어 송서윤을 위해 목숨까지 버렸다. 그런데 송서윤은 아무것도 모른다. 하은은 그 일 때문에 밤새 악몽에 시달리며 잠 한숨 못 잤는데.송서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이렇게 평온하게 심건모의 보호와 사랑을 받아서는 안 된다. 송서윤이 지옥으로 떨어져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하은은 송서윤에게 다가가 그녀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며 입을 열었다.“심 국장님께 아주 가까운 여사친이 한 분 계세요.”“여사친이요?”송서윤의 평온하던 눈동자가 미세하게 아래로 떨어졌다. 두 손을 초조하게 맞잡아 비틀고는 아주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알고 지낸 지 오래된 분인가요?”“네. 한 5, 6년 됐을 거예요. 국장님이 매년 보러 가시거든요.”하은은 송서윤의 얼굴에 슬픔이 서리는 것을 보고는 휴대폰 잠금을 해제해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사진 속 사람이에요.”송서윤의 시선이 사진 속 심건모 곁에 서 있는 여인에게 닿았다. 화사하고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에 큰 키를 가진 그녀는 애정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심건모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진 속 심건모 역시 그녀와 시선을 맞추며 미소를 머금고 있었고 그의 손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팔 위에 놓여 있었다.“그저 과거에 불과한 일이에요. 어쨌든 국장님이 마지막으로 선택해 결혼한 사람은 사모님이니까요.” 하은이 담담하게
심건모는 송서윤을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세면대 위에 꽃을 내려놓은 그는 한쪽 팔로 송서윤의 허리를 감싸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머리를 감싸며 그녀의 얼굴을 자신의 가슴팍에 묻었다. 심건모는 이 순간을 수만 번도 더 상상해 왔다는 듯 송서윤의 귓가에 끊임없이 속삭였다.심건모는 아이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정말로 좋아하는 건 오직 송서윤뿐이었다.심건모는 고개를 숙여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어젯밤에 어디 다치지는 않았고?”송서윤은 심건모의 다정함을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마음이 무너져 내릴 것 같으면서도 차마 그러지 못했다. 그녀는 작은 손으로 그의 셔츠 깃을 움켜쥐었다. 심건모가 그녀의 얼굴을 받쳐 들자 송서윤은 긴장한 그의 눈동자와 마주했다.심건모는 적절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송서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했다. 바로 지금처럼.“어디 다쳤어?”심건모가 초조한 얼굴로 묻자 송서윤은 그저 고개를 가로저었다. 심건모는 송서윤이 자신에게 이토록 한없이 약해진다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했다.“너무 많이 울면 몸 상해.”심건모는 송서윤의 눈가에 입을 맞추며 맺힌 눈물방울을 닦아내었다.그때 송서윤이 갑자기 까치발을 들고 심건모의 입술에 먼저 입을 맞췄다. 심건모는 표정이 굳어지며 담담했던 눈동자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지만 그저 그녀에게 짧은 입맞춤만 전했다.심건모는 속으로 못된 장난을 꾸미듯 중얼거렸다.‘여보... 이번에는 또 어디로 도망치려나.'...하은은 밤새 공포에 떨며 시간을 보냈다. 동건우가 총구를 겨누었던 기억이 생생했고 경찰이 자신을 추적할까 봐 전전긍긍했다. 밖이 잠잠해진 것을 확인하고서야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그리고 돌아오자마자 이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복도 끝에 서 있던 하은은 욕실 문 앞에서 송서윤에게 입을 맞추고 있는 심건모를 보았다. 심건모는 인기척을 느끼자마자 송서윤을 품에 안고 몸을 틀어 그녀를 가린 채 열린 문쪽을 보았다. 하은과 시선이 마주치자
심건모는 송서윤의 귓가에 대고 낮게 속삭였다.“말 잘 들어야 해.”“비 맞지 말고.”“나한테 숨기는 일도 없어야 하고.”송서윤은 작은 손으로 심건모의 셔츠 깃을 꽉 움켜쥐었다. 송서윤은 눈물을 머금은 채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심건모의 무심했던 눈동자에 묘한 감정의 파동이 일렁였다.‘거짓말쟁이.'‘온갖 공을 다 들여야 하는군.'갑자기 송서윤이 먼저 입을 맞춰오자 심건모는 더 이상 자신을 억제할 수 없었다....얼마나 지났을까.심건모는 송서윤을 다시 씻긴 뒤 품에 안았다. 커다란 손이 그녀의 허리 뒤쪽부터 아랫배, 그리고 허벅지까지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송서윤은 심건모의 품 안에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는 그녀를 꼭 껴안은 채 머리카락 위로 입을 맞추며 귓가에 나직이 읊조렸다.“여보, 이제 다시는 도망치지 마.”“또 도망치면 내 마음이 정말 무너질 것 같아.”심건모는 송서윤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앵두 같은 입술에 뽀뽀를 한 뒤 나직이 탄식했다.“네가 연약한 건 알았지만 어쩜 이렇게까지 연약할까.”심건모의 열정은 이제 막 시작되려는데 송서윤은 벌써 끝내고 싶어 했다. 심건모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음에도 송서윤은 지쳐서 잠이 들어버렸다. 그때, 심건모의 귀에 별장 밖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아쉽지만 이제는 놓아주어야 할 시간이었다. 심건모는 송서윤을 잘 눕혀준 뒤 방을 나섰다.별장 입구로 나간 심건모는 송서윤의 아이들이자 자신의 아이들을 맞이했다.“재미있었어?”심건모는 이리안을 번쩍 안아 올리고 고하준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아이들은 방금 보고 온 영화 이야기를 생생하게 늘어놓았다....송서윤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이미 다음 날이었다. 그녀는 침대에서 내려왔지만 예상했던 근육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욕실로 걸어 들어갔을 때 쓰레기통 안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젯밤 몸소 느꼈던 그의 뜨거움이 아니었다면 모든 것이 꿈이었다고 의심했을 정도로
송서윤은 심건모의 품에 안긴 채 그의 뜨거운 열기를 느꼈다.송서윤이 거부하며 뒤로 물러나자 심건모도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녀가 당황하여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심건모는 이미 소파까지 물러나 자리에 앉아 있었다.‘왜?’‘분명히...’송서윤은 시선이 심건모의 바지에 머물렀다가 수치심에 얼굴을 붉히며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실크 롱 드레스를 입고 서 있는 그녀의 하얀 쇄골과 어깨, 종아리와 가느다란 팔 위로 분홍빛 홍조가 번졌다. 작은 얼굴의 양 볼은 노을처럼 붉게 물들었다.송서윤이 얼굴이 붉어져 그의 시선을 피하자 심건모가 입을 열었다.“이쪽으로 와.”심건모의 목소리는 아주 낮고 부드러웠다. 마치 겁먹은 새가 날아가 버릴까 봐 조심스러워하는 듯했다. 송서윤은 고개를 들어 심건모를 바라보았다. 심건모는 아이를 멀리 보내고 별장을 비웠다. 송서윤을 원하는 의도가 명확했다. 하지만 그는 기다리고 있었다. 송서윤이 마음을 정하기를, 송서윤 역시 그를 원하기를.송서윤은 심건모의 무심한 눈동자를 바라보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찬물을 끼얹은 듯 심장이 시려왔고 사방에서 바람이 새어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심건모는 송서윤이 아무리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는 바람 그 자체였다.송서윤이 뒷걸음질 치는 것을 보자 심건모의 눈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평소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던 그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어두운 슬픔이 서려 있었다. 그 상처 입은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송서윤은 마음이 무거워졌다.심건모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일찍 쉬어.”심건모는 문밖을 향해 걸어가 문고리를 잡았다. 송서윤은 그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졌고 이내 눈물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결국 그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송서윤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심건모는 몸을 돌려 그녀에게 다가왔다. 심건모는 허리를 숙여 그녀를 번쩍 들어 올리더니 침대 위에 눕혔다. 그리고 눈가에 맺힌 눈물을 입술로 닦아내며 낮은 목소리로 달랬
고하준은 원래 참가할 계획이 없었다. 갑작스럽게 반 친구 하나가 다리가 부러지는 바람에 대신 나가게 된 것이었다. 송서윤은 고하준이 피아노 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고하준은 송서윤에게 자신이 무대 위에서 빛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심건모에게도 자신이 자랑스러운 아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아빠...고하준은 분노로 가득 찬 고영훈의 얼굴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기대 섞인 눈빛으로 제훈을 바라보았다. 제훈이 난처한 듯 미간을 찌푸리자 심건모가 먼저 입을 열었다.“엄마가 먼저 가서 내 자리 잡아줄 거야. 난 조금 늦게 갈게.”심건모는 덤덤하게 말하며 송서윤의 허리를 감싸고 있던 큰 손을 목덜미로 옮겨 부드러운 살결을 가볍게 매만졌다. 체온을 확인해보니 열은 없었다. 하지만 심건모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전류가 흐르는 듯했다. 송서윤은 입안에 머금고 있던 죽을 하마터면 뿜을 뻔했다. 그녀는 간신히 죽을 삼키고는 뒤를 돌아 심건모를 노려보았다.심건모는 손을 거두며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송서윤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는 묘한 빛이 감돌았다. 그는 정말로 그녀를 몰아붙일 작정이었다. ‘13일, 13일이라 했던가? '‘13일만 지나면 그의 손아귀에서 도망칠 수 있는 건가?'심건모는 고하준에게 말을 건네면서도 시선은 줄곧 송서윤에게 고정했다. “하준아, 엄마는 가기 싫은 모양인데?”송서윤이 깜짝 놀라 고하준을 바라보았다. 고하준의 얼굴에는 걱정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 찰나에 심건모는 송서윤의 손을 덥석 잡았다.‘정말 너무하잖아!’“여보, 아들 연주회에 가기 싫은 거야?”송서윤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긴 속눈썹이 주체할 수 없이 떨렸고 심장이 아리고 저릿했다. 심건모는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왜 갑자기 여보라고 부르고 고하준을 아들이라고 부르는 걸까?심건모는 송서윤의 손을 더 꽉 맞잡았다. 그는 고하준을 돌아보며 송서윤에게는 조각 같은 옆모습만 보여주었다. 살짝 엿보이는 그의 눈가에는 미소가 어려 있었고 눈동자는 반짝
“젖은 머리로 계시면 어떡해요. 제가 말려 드릴게요.”심건모는 몸을 돌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15분 후, 그는 서재에 단정한 차림으로 흐트러짐 없이 앉아 있었다.“심 국장님, 송서윤 씨가...”제훈은 심건모의 차가운 시선이 닿자 말을 잠시 멈췄다가 이내 다시 이었다. “사모님께서 오늘 정부 청사를 떠나 병원에 가셔서 고영훈 씨를 만나셨고 후에는 동건우 씨를 보러 가셨습니다.”“아까 서두르셨던 것도 동건우 씨를 보러 가기 위해서였습니다.”“하지만 동건우 씨는 갑작스럽게 임무를 맡게 되어 동봉우 씨의 지시로 출국한 상태입니다.”심건모는 미간을 찌푸리며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책상 위에 가만히 내려놓았다. 그 서류는 감시 대상자들의 오늘 행적 보고서였다. 특수경찰들이 번번이 동건우를 놓치고 있었다.제훈은 가슴을 졸이며 보고를 이어갔다. “동건우 씨는 저녁 무렵 병원을 떠난 이후로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실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심건모가 다른 보고서를 집어 들자 제훈은 안도하며 덧붙였다.“반경 2km 이내에서 권총은 발견되지 않았고 시신도 없습니다.”“실종 신고나 병원에 접수된 총상 환자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인근 CCTV는 사전에 차단되어 가용한 영상이 없으며 목격자도 없습니다.”“사모님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은 총소리만 들었을 뿐 아무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하지만 분명 사상자는 있었을 겁니다. 현장에 혈흔이 가득했습니다.”“계속 조사해.” 심건모가 서류를 내려놓았다. “경찰을 보내 서윤이를 보호하도록 해.”제훈은 즉각 알아차리고 대답했다. “이번 사건에서 사모님은 목격자이시니 24시간 보호가 필요하겠네요.”하지만 송서윤의 성격상 심건모가 사람을 붙여 감시한다는 걸 알게 되면 또 한바탕 소란이 일 것이다. 그때 문밖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심건모는 서류를 내려놓고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이씨 가문에 대한 조사는 다른 사람 손을 거치지 않게 해.”“네가 직접 맡아.”제훈은 책상 위의 서류를 정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