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가장 가까운 배신
가장 가까운 배신
작가: 밥벌이요정

제1화

작가: 밥벌이요정
결혼한 지 6년이 지나서야 송서윤은 남편의 깊은 사랑이 모두 거짓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감쪽같은 연기로 사람 하나 바보로 만들었던 거잖아. 입만 열면 사랑한다고, 아주 많이 사랑한다고 했었는데... 다 거짓말이었던 거야?’

모든 게 허상이었음을 알게 된 순간, 송서윤은 미련 없이 돌아설 결심을 했다.

“국장님, 저... 최대한 빨리 데미스로 복귀할 수 있도록 조치 부탁드립니다.”

“서윤아, 네가 갑자기 사라지면 고영훈 그 자식은 아마 미쳐버릴지도 몰라.”

데미스 국장 모건은 여느 때처럼 덤덤한 척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이번만큼은 놀라움이 배어 있었다.

그는 두 사람이 6년 동안 부부로 지내며 아이까지 둔 사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겉보기엔 두 사람은 부족한 것 없는 행복하고 이상적인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고영훈이 아내를 목숨보다 더 아끼고 사랑한다는 건, 이미 모두가 인정하는 공공연한 사실이 된 지 오래였다.

“이제 그 사람은 제 인생에 아무 의미 없어요.”

송서윤은 핸드폰을 힘껏 쥐었다.

“알겠어. 사실 널 잃은 건, 우리 조직이 지금까지 겪은 가장 큰 손실이었지. 한 달이면 충분할 거야. 그때가 되면, 송서윤은 완전히 사라지고...‘케이시’가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올 테니까.”

“고맙습니다, 국장님.”

전화를 끊고 핸드폰을 내려놓은 송서윤은 컴퓨터 모니터 속, 한 쌍의 남녀가 별장 구석구석을 오가며 뜨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장면은 그녀에게 잊기 힘든 충격을 안겼다.

십 년을 함께한 사람, 교복 입던 시절부터, 웨딩드레스를 입기까지... 그 긴 시간을 함께 걸어온 남자가 이런 식으로 자신을 배신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더 치욕스러운 건, 상대가 바로 아들의 과외 선생님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책상 아래에는 각양각색 포장지의 콘돔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고 그중 몇 개는 보험금 서류와 나란히 놓인 혼인신고서 위에 나뒹굴고 있었다.

아들을 낳은 뒤 몸이 많이 상해 더는 둘째를 기대할 수 없게 된 그녀에게, 지금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콘돔은 이미 몇 년째 쓸모없는 물건일 뿐이었다.

하지만 고영훈은 지금, 실시간 화면 속에서 하나씩 포장을 뜯으며 욕망을 채우고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그때 컴퓨터 화면에 알림창이 떴다.

고영훈은 본인의 카톡이 PC와 모바일에서 동시에 확인된다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듯했다.

[하준이가 앞으로 서윤 언니를 엄마라고 부르고 나를 ‘마미’라고 부르겠대. 어떻게 생각해, 여보?]

그리고 바로 고영훈의 답장이 이어졌다.

[나야 아무 의견 없지, 여보.]

‘여보’라는 두 글자가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송서윤의 믿음과 희망을 산산조각 냈다. 그녀는 힘없이 의자에 주저앉아 가슴을 움켜쥐었다.

손은 이미 피가 날 만큼 주먹을 꽉 쥐고 있었지만, 그 고통도 마음의 상처에 비할 바 아니었다.

송서윤은 애써 침착한 모습을 되찾고 두 사람의 뻔뻔한 메시지 내역을 끝까지 확인했다.

고하준이 태어난 뒤부터였으니, 무려 5년이 흘렀지만 고영훈은 한 번도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도저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대화 때문에 두 사람의 웨딩사진이 바닥에 널브러진 콘돔 포장지보다 더 더럽게 느껴졌다.

그제야 아들 고하준이 떠올랐다. 오늘은 유치원에서 부모 참여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지금쯤 하준이는 허연수 곁에서 ‘마미’라고 부르며 웃고 있겠지...’

생각만 해도 심장이 쥐어뜯기는 것처럼 아파졌다.

‘하준이는 내 아들이야!’

송서윤은 차 키를 챙겨 집을 나서려다, 1층에서 도우미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세상에, 이게 뭐야? 이런 게 사모님 옷장에서 나와도 되는 거야?”

“다 해진 천 조각도 옷이라고...”

“쉿, 사모님 게 아니라, 그분 거잖아.”

“대충 저 방에 던져놔.”

“천한 년, 임자 있는 남자나 꼬시고... 천벌을 받아 마땅한 년!”

그때, 도우미들이 1층 작은방, 허연수의 방문을 열고 노출이 적나라한 란제리를 휙 던져넣었다. 그러고는 키득거리며 장난을 쳤다.

“사, 사모님!”

뒤늦게 송서윤이 거실에 서 있는 걸 보고 도우미들은 태연한 척 허둥지둥 자리를 떴다.

이 집에 사는 바퀴벌레도 알았을 거야, 나만 바보처럼 속고 있었구나.’

송서윤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유치원에 도착했다.

운동장 한쪽에서는 허연수와 고하준이 장난치며 웃고 있었다.

“엄마, 망고 에그타르트는요?”

두 손 빈 송서윤을 보자 고하준이 토라진 얼굴로 물었다.

“엄마가 깜빡했네, 하준아.”

“괜찮아요. 지금이라도 다녀오면 되죠!”

고하준이 짜증을 냈다.

“연수 이모가 며칠째 먹고 싶다고 했잖아요.”

허연수는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하준아. 이모는 먹고 싶으면 직접 사 먹을게.”

송서윤은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뼈저리게 깨달으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예전에는 허연수가 하준이를 잘 챙겨준다는 이유로 일부러 선물까지 사다 주곤 했으니까 말이다.

그때 고하준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모가 그 가게는 엄청 인기 있어서 줄 서서 세 시간이나 기다려야 살 수 있다고 했어요. 이모는 나랑 같이 있어 줘야 하니까, 엄마가 사 오는 게 더 낫겠어요.”

“안돼, 하준아. 이모가 어떻게 하준이 엄마한테 그런 걸 시켜?”

허연수가 슬쩍 눈치를 보며 말했다.

“엄마는 우리를 챙겨주는 거 좋아하잖아요. 못 하게 하면 오히려 섭섭해할걸요?”

고하준의 말투에는 엄마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한 태도와 은근한 자랑이 묻어 있었다.

그 한마디에 송서윤의 가슴 한쪽이 서늘하게 얼어붙었다.

그때 유치원 선생님이 다가왔다.

“이제 이인삼각 달리기할 거예요! 친구랑, 또는 가족 중 한 분이랑 짝지어서 준비해 주세요.”

송서윤은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하준아, 엄마랑 같이할래?”

“됐어요.”

고하준은 무심하게 끈을 집어 들더니, 허연수와 다리를 맞대 묶으며 온 신경을 허연수에게 쏟았다.

한 번도 엄마 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연수 이모랑 해야만 1등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송서윤은 참았던 화가 북받쳐 올라 언성을 높였다.

“고하준, 네 엄마가 누군지 말해 봐!”

그녀가 손을 잡으려 하자, 고하준은 매몰차게 뿌리치며 소리를 질렀다.

“엄마, 정말 귀찮게 왜 이래요! 잠깐 ‘엄마 자리’ 좀 양보해 주면 안 돼요?”

그 말에 송서윤은 가슴 깊숙이 벼락처럼 무언가가 꽂히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죽을 고비까지 넘기며 아이를 낳았고 누구보다 곁에서 정성을 다해 키워왔건만, 허연수가 몇 달 돌봐줬다고 이렇게 마음을 내어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허연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송서윤을 바라봤다.

“언니, 하준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하시잖아요? 솔직히 누가 체조 선수 출신 엄마를 갖고 싶지 않겠어요? 제가 언니보다 더 젊고 건강하고... 예쁘기도 하잖아요?”

“연수 이모랑 하면 무조건 이길 것 같아요!”

고하준이 신이 나서 소리쳤다.

두 사람의 손바닥이 딱 소리를 내며 마주쳤고, 곧바로 한 팀이 된 그들은 같은 곳을 향해 시선을 맞췄다.

허연수의 눈빛은 도발에 가까웠다.

송서윤은 몸이 떨릴 정도로 분노가 치밀었다.

그때, 무겁고도 냉랭한 목소리가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네가 뭔데 내 아내한테 그런 말을 해?”

고영훈이 곧장 송서윤에게 다가와, 그녀의 허리를 자연스럽게 감싸안았다.

“넌 어디까지나 하준이의 튜터일뿐이야. 또다시 주제 파악 못 하고 함부로 굴면 우리 집에서 나가게 될 줄 알아! 당장 사모님께 사과해.”

허연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말을 아낀다.

“죄송해요, 서윤 언니. 다시는 안 그럴게요...”

두 사람이 한마음으로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사실에, 송서윤의 마음은 차갑게 식어갔다.

이젠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오직 아들만, 아들만 데리고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그런데 그 순간, 고하준이 갑자기 소리쳤다.

“아빠, 왜 연수 이모를 혼내? 연수 이모 말이 맞잖아! 우리 엄마는 그냥... 그냥 멍청한 아줌마야!”

고하준은 허연수를 감싸며 송서윤이 민망해질 정도로 몰아세웠다.

‘어쩌다 내 아들이 이렇게까지...’

송서윤은 온몸을 떨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연수 이모가 그렇게 좋아? 정말 연수 이모가 하준이 엄마였으면 좋겠어?”

고하준은 차갑게 눈을 치켜뜨며 ‘그래!’라고 딱 잘라 말했다.

송서윤의 마음은 또다시 산산조각 났다.

고하준은 그런 줄도 모르고 곧장 허연수의 손을 붙잡고 달려 나갔다.

경기장 저편, 두 사람은 서로 꼭 붙어 즐겁게 달리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에 송서윤의 가슴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때, 고영훈이 다가와 조용히 속삭였다.

“여보, 하준이는 아직 어려. 천천히 가르치면 돼. 괜히 건강 상하지 말고... 나중에 엄마한테 이야기해서 저 여자부터 내보내자.”

언제나처럼 다정한 눈빛, 습관처럼 흘러나오는 달콤한 말들이었지만, 이제는 온몸을 파고드는 독약처럼만 느껴졌다.

‘그래, 이 집에는 이제 내가 있을 자리가 없구나.’

송서윤은 더는 미련조차 남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의 손을 매몰차게 뿌리치고 조용히 유치원 문을 나섰다.

‘한 달. 단 한 달만 지나면... 이 세상에서 완벽히 사라질 거야. 그때까지만 버티면 모든 게 끝나는 거야.’
이 책을.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댓글 (1)
goodnovel comment avatar
이호정
2025. 12. 19. 16:07
댓글 모두 보기

최신 챕터

  • 가장 가까운 배신   제412화

    고영훈은 심건모의 멱살을 놓더니 허둥지둥 송서윤에게 다가가 해명하려 했다.하지만 그는 송서윤에게 접근할 수 없었다. 그저 그녀가 벽에 기대어 위태롭게 몸을 지탱하고 있는 모습과 그녀의 눈동자에 서린 실망과 분노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송서윤의 차가운 목소리는 마치 칼날처럼 고영훈의 심장을 파고들어 죽느니만 못한 고통을 안겨주었다.“내 몸이 안 좋으면.” 그녀가 심장을 움켜쥐었다. “나랑 이혼하면 그만이었어. 나를 속이고 내 뒤에서 바람을 피울 게 아니라.”“고영훈, 넌 나한테 상처를 줬고 우리 결혼 생활을 배신했어. 하준이를 온전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라게 만든 건 전부 네 잘못이야.”“내 몸이 안 좋다는 건 그저 너의 사욕을 위해 찾아낸 핑계일 뿐이야.”“아니야. 서윤아.” 고영훈은 특수경찰들에 의해 끌려 나갔다.심건모가 송서윤 앞으로 다가와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다.송서윤은 심건모의 손을 떼어냈고 감정을 억누른 채 그를 바라보았다. “휴대폰을 깜빡했어요.”“응.”심건모가 다른 쪽 손을 펴보였다. 송서윤의 휴대폰이 그의 손바닥 위에 놓여 있었다.송서윤은 심건모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다시는 심건모보다 더 다정하고 세심한 사람을 만나지 못할 것이다.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운이었다.송서윤이 휴대폰을 집으려던 찰나 심건모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조심해. 물 닿지 않게 하고.”심건모가 송서윤의 얼굴을 쳐다보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그를 보지 않고 그의 손바닥에서 손을 빼낸 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아섰다.송서윤은 녹음기를 켜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안에는 수영이 화장을 고치고 있었다.송서윤이 수영을 가로막았다. “증언 전날 밤에 왜 사라진 거죠? 지금은 왜 고영훈이랑 같이 있는 거고요? 고영훈이 협박했나요?”수영은 송서윤을 훑어보더니 담담하게 대꾸했다. “제가 잘못 본 거예요. 고 대표님은 킬러와 같이 있지 않았어요.”수영은 정말 송서윤이 싫었다. 왜 남의 마음은 아예 보지 않는 걸까.고영훈이든 심건

  • 가장 가까운 배신   제411화

    동봉우는 자리에 앉아 모든 상황을 예리하게 지켜보았고 정계 인사들은 앞다투어 심건모에게 말을 건넸다.그는 시종일관 무심하고 차가운 태도를 유지하며 가끔 응답했다. 대화는 늘 관심 밖의 주제에 머물 뿐 핵심에 닿는 법이 없었다.이때 종업원의 안내로 피부과 과장이 들어왔다.“번거롭게 해서 죄송합니다.” 심건모가 덤덤하게 말했다.피부과 과장은 황송해하며 송서윤의 곁에 앉아 그녀의 손을 소독하고 약을 바른 뒤 붕대를 감아주었다. “사모님, 조심하셔야 합니다. 상처가 자꾸 벌어지면 흉터가 남아서 보기 흉해질 수 있어요.”고영훈은 촉촉한 송서윤의 눈동자가 심건모와 마주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녀의 다친 손가락을 보니 오늘 아침 학교 정문에서 그녀의 손을 잡았을 때 불편한 듯 미간을 찌푸리던 모습이 떠올랐다.고영훈은 초조하게 다가가 물었다. “내가 아침에 다치게 한 거야?”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룸 안의 공기는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버렸다.송서윤은 고영훈을 상대하는 대신 심건모의 손을 꼭 잡았고 심건모는 그녀의 손을 자신의 손안에 가두어 감싸안았다.그때 고영훈은 초라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그는 결국 자리로 돌아갔다.음식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아진시 정통 요리들이었다.동봉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은 별미를 좀 맛보게나.”사람들이 젓가락을 들기 시작했다.송서윤이 좋아하는 요리들이 끊임없이 그녀의 눈앞에 놓였다.그녀는 무척 맛있게 식사를 이어갔다.심건모는 송서윤의 곁에 앉아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볼 뿐이었다.그녀가 젓가락을 내려놓을 때까지.심건모가 입을 열었다. “맛있어?”그는 반짝이는 그녀의 눈동자와 분홍빛 입술에 남은 마지막 디저트, 크림케이크의 흔적을 가만히 응시했다.“네. 맛있어요.” 송서윤이 나직하게 답했다.“나도 좀 맛볼까?” 심건모가 다시 물었다.“네?”송서윤이 심건모에게도 케이크 한 조각을 챙겨주려던 찰나였다.송서윤이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심건모는 그녀의 얼굴을 감싸 쥐고는 고개를 숙여

  • 가장 가까운 배신   제410화

    송서윤은 시선을 떨구며 고개를 끄덕였다.“손을 댈 가치조차 없어.” 심건모가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코끝이 닿을 듯 말 듯 얼굴을 가까이 가져간 채 무심한 듯 말을 이었다. “손만 아프잖아.”그의 숨결이 조금씩 그녀의 입술에 닿았고 그녀의 마음까지 닿으려 애쓰는 듯했다. 시선은 그녀의 눈동자에 머물렀고 목소리는 들릴 듯 말 듯 낮아졌다. 그녀가 들을까 봐 겁나면서도 한편으로는 들어주길 바라는 듯한 목소리였다.심건모가 말했다. “내 마음이 아파서 그래.”송서윤은 순간 두 눈을 크게 떴다. 툭 떨어진 눈물이 입을 맞추고 있던 그의 입술 위로 떨어졌다.키스는 부드럽고 애틋했으며 동시에 씁쓸했다.한바탕 정적이 흐른 뒤였다.“왜 울어?”“그만 울어.”심건모는 송서윤의 눈물을 닦아주며 달랬다. “밥은 먹었어?”송서윤은 고개를 저었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선배는요?”“선배한테 밥 사줘야 하는데.” 송서윤이 차 문을 열려 하자 심건모가 말렸다. 지금은 안 된다.심건모의 시선이 붉게 달아오른 송서윤의 얼굴에 머물렀다. 너무나 가냘프고 고왔다.“왜 소 교수에게 밥을 사려는 거야?”“아까...” 송서윤은 이정희와 그 한약 그릇을 떠올리더니 눈동자가 흔들렸다. “노트북이 합선돼서 타버렸는데 마침 선배가 와서 도와주셨거든요.”“당연히 사줘야죠.”심건모의 품에 안겨 있던 송서윤은 노트북을 꺼내 두 사람 사이에 펼쳐 보이며 웃었다. “다행히 제가 끌 때 인터페이스를 숨겨두는 습관이 있어서 아까 성범이랑 여수진한테 지뢰 찾기 시스템을 들킬 뻔했는데 빠져나갔어요.”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장난스럽게 덧붙였다.“물론 봤어도 알아내진 못했겠지만요.”심건모는 그녀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정리해 주었다. “소 교수가 널 찾아온 용건이 뭐야?”“밥 먹자고요.” 송서윤이 회상하며 답했다.“참 한가한 사람이군.”심건모는 나직이 한마디 하고는 송서윤을 안아 옆 좌석에 앉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녀의 치맛자락을 끌어 내려

  • 가장 가까운 배신   제409화

    서지원은 어안이 벙벙해진 채 사진이 모두 삭제된 휴대폰을 돌려받았다. 특수경찰이 그녀의 귓가에 차갑게 경고했다.“허가 없이 타인의 사생활을 촬영한 사진은 모두 삭제되었습니다. 한 번만 더 이런 일이 발생하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습니다!”그들은 서지원을 지나쳐 곧장 차 주변을 에워쌌고 누구도 다가가지 못하게 차단했다.서지원은 방금 송서윤을 안았던 남자를 떠올렸다. 꼿꼿하고 건장한 체구, 송서윤을 감싸안은 팔목에서는 엄청난 힘이 느껴졌고 힘을 줄 때마다 손등에 핏줄이 드러나며 팽팽한 긴장감과 섹시함이 넘쳐흘렀다.무심하고 소외감이 느껴질 정도로 차가운 분위기의 잘생긴 얼굴이었지만 송서윤을 바라볼 때만큼은 눈빛에 생기가 돌았다. 온몸에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그가 송서윤의 새 남편인 모양이었다.서지원은 휴대폰을 꽉 쥐었다. 고영은에게 듣기로는 송서윤이 고영훈조차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대단한 권력자와 결혼했다고 했다.서지원은 대단한 인물이라고 하면 TV에서 보던 것처럼 기품은 있어도 늙고 못생긴 사람일 거라 생각했는데 고영훈보다 훨씬 더 압도적인 분위기를 가진 남자일 줄이야.그녀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고영훈이 송서윤이 재혼했는데도 그녀를 놓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서지원의 마음은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 찼다.송서윤이 대체 뭐라고 내로라하는 남자들이 하나같이 그녀를 사랑한단 말인가.서지원의 시선이 소주원의 뒷모습에 머물렀다. ‘또 한 명 더 있네!’소주원이 다가가려 했지만 특수경찰에게 제지당했다.차는 내부가 보이지 않는 안전유리가 설치되어 있었고 방음 처리까지 완벽했다. 차 밖의 사람들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알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그럼에도 소주원은 포기하지 못한 채 차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차 안.묘한 기류가 감돌며 실내 온도가 끊임없이 상승했다.심건모의 키스는 애틋하면서도 다정했고 동시에 절제되어 있었다.송서윤은 정신을 잃은 채 그의 부드러움에 빠져들었다.심건모는 입술을 떼고 그녀

  • 가장 가까운 배신   제408화

    그림자 하나가 순식간에 날아들더니 짝 하고 뺨 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서지원은 자신이 때린 소주원의 얼굴을 보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선배, 괜찮아?” 송서윤이 걱정스레 소주원을 살폈다.소주원은 뺨을 문질렀다. 사실 별로 아프지는 않았지만 송서윤이 걱정해 주자 내심 기분이 좋아 조금 더 문질러 보였다.“너 미쳤어?”“아직도 네가 고고한 사장 부인이라도 되는 줄 아니? 너만 사람을 때릴 수 있고 너는 맞으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어?”“예전에 네 비위를 맞춰준 건 다 영훈이의 체면을 봐서였어.”서지원은 송서윤을 향해 악에 받쳐 말을 쏟아냈다. “예전에 나랑 영훈이 사이를 망쳐놓더니 이제는 나랑 민호 씨 사이까지 망치려 들어?”“경고하는데 민호 씨 근처엔 얼씬도 마. 안 그러면 나도 더 이상은 안 봐줘!”서원 그룹은 무너지기 직전이고 고영훈이 서지원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상황에서 이민호는 그녀가 반드시 붙잡아야 할 남자였다.송서윤은 대꾸 대신 곧바로 서지원의 뺨을 갈겼다. 서지원이 멍해진 틈을 타 다시 한번 뺨을 내리쳤고 서지원은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송서윤은 바닥에 쓰러진 서지원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서지원은 양 볼을 감싸 쥔 채 아픔에 눈물을 흘리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송서윤을 쳐다봤다.그랬다. 예전의 송서윤은 손찌검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더군다나 이렇게 연달아 손을 올리는 일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부드럽기만 했던 그녀였다.그래서 그들 모두가 마음 놓고 송서윤을 속여왔던 것이다.“나를 협박해?” 송서윤이 싸늘하게 말했다. “내 말 못 알아들었니?”“매달리는 건 이민호 쪽이야!”“능력이 있으면 이민호가 내 근처에 못 오게 잘 간수해 봐. 내 눈앞에서 알짱거리지 않게.”소주원은 송서윤이 자신 때문에 서지원을 응징하는 모습에 크게 감동했다. 그는 송서윤의 손을 덥석 잡았다. “서윤아, 네 손에서 피가 나.”그제야 송서윤은 레이저 흉터 제거 수술을 받았던 손가락을 떠올렸다. 레이저 치

  • 가장 가까운 배신   제407화

    “서윤이의 실력으로는 로봇 시스템은커녕 어떤 시스템도 해킹할 수 없어요.”“하지만 여수진 씨를 이겼잖아요.” 성범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여수진은 성범이 개발한 로봇 시스템을 단 몇 초 만에 뚫을 능력이 전혀 없었다. 성범은 송서윤이 여수진을 두 번이나 아슬아슬하게 이겼던 일을 떠올렸다. 어쩌면 요행이나 우연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럴 리가요. 분명 부정행위였을 거예요.” 서지원은 무의식적으로 말이 튀어나왔다.그 순간, 송서윤이 다가와 서지원의 뺨을 세차게 내리쳤다.짝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행사장 안의 모든 사람이 일순간 조용해졌다.서지원은 한쪽 뺨을 감싸 쥔 채 송서윤을 노려보았다. “네가 뭔데 나를 때려?”송서윤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눈빛에는 서늘한 기색이 역력했다. “내 명예를 더럽힌 대가치고는 가벼운 줄 알아.”“명예를 더럽혀?” 서지원이 비웃었다. “너랑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랐는데 네 실력을 내가 모를 줄 아니? 예전에 영훈이가 오냐오냐해주고 다들 네 비위를 맞춰주니까 정말 네가 실력이 있다고 생각했어?” 서지원이 비웃으며 조롱 섞인 투로 말을 이었다. “소문 들었어. 이제는 권력자가 뒤를 봐주는 사모님이 됐다며? 그래서 예전처럼 사람들이 다 네 비위를 맞춰줄 줄 알았니?”“꿈 깨!”“경원시에서는 아무리 대단해도 네 멋대로 할 수 없어.”서지원의 말을 들은 성범과 여수진은 서로 눈을 맞추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송서윤이 그렇게 대단할 리가 없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서지원은 송서윤을 아예 진흙탕 속으로 처박으려는 듯 점점 더 심한 말을 내뱉었다.송서윤은 서지원이 이토록 추악하게 변했을 줄은 몰랐다. 과거의 실낱같은 정마저도 완전히 타버려 재가 되었다.“누가 감히 내 동생을 괴롭히나?”그때, 귓가에 서늘한 음성이 들려왔다.이민호가 지팡이를 짚으며 사람들 앞으로 걸어 나왔다. 오늘은 이산 그룹의 로봇 시범 운영일이었기에 주인인 그가 현장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의

더보기
좋은 소설을 무료로 찾아 읽어보세요
GoodNovel 앱에서 수많은 인기 소설을 무료로 즐기세요! 마음에 드는 책을 다운로드하고,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앱에서 책을 무료로 읽어보세요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