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2화

Author: 밥벌이요정
유치원을 나서자, 집사 김태원이 다급히 다가왔다.

“사모님, 어디로 가시렵니까? 제가 모시겠습니다.”

‘그러게? 어디로 가야 할까...’

이젠 더는 기댈 사람도, 마음 붙일 곳도 남아 있지 않았다.

떠오르는 건 단 한 군데뿐이었다.

“괜찮아요. 혼자 갈게요.”

김태원은 뭔가 이상하다는 듯, 멀어지는 송서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때, 그의 핸드폰이 급하게 울렸다. 수화기 너머로 도우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큰일 났어요! 사모님께서 대표님 비밀을 알아버렸어요. 지금... 지금 난장판이에요, 그 여자 방이...”

도우미는 서재에 흩어진 물건들을 보고 놀라 전화를 건 것이었다.

김태원은 이 사실을 곧장 큰 사모님인 주희영에게 알렸다.

송서윤은 파나메라를 타고 고속도로를 내달렸다. 도심의 소음도, 지난날의 미련도 점점 멀어졌다.

온통 짙은 산길, 그녀는 천천히 자신을 어둠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 시각, 케이원 그룹 대표이사실 휴게 공간.

허연수가 고영훈의 위에 올라타고 애교를 부리던 중, 침대맡에 둔 그의 휴대폰에서 알람 소리가 울려댔다.

손을 뻗어 확인하자, 앱 화면에 빨간 점 하나가 지도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여보, 하준이 오늘 복싱 끝나면 뭐 먹고 싶어 할까요?”

허연수가 그의 팔을 감아 안으며 물었다.

그러자 고영훈은 그녀의 팔을 밀어내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방금까지 아무렇지 않게 들리던 ‘여보’라는 말이 지금은 귀에 거슬렸다.

“다시는 여보라고 부르지 마.”

‘서윤이 아니면 아무도 나를 여보라고 부를 자격 없어. 허연수는... 잠시 착각이었을 뿐이야.’

고영훈은 벌떡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입고 뒤돌아보지 않고 대표이사실 휴게실을 나섰다.

고영훈이 떠나자, 허연수의 환한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녀는 씩 웃으며 이를 악문 채, 침대 머리맡에 놓인 고영훈과 송서윤의 부부 사진을 집어 들고는 단번에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나는 송서윤보다 젊은 데다가 얼굴도, 몸매도 내가 훨씬 예뻐! 그리고... 침대 위에서도 내가 더 사랑받을 텐데... 이제는 하준이까지 내 편인데, 왜 아직도 영훈 오빠는 그 여자를 그렇게 신경 쓰는 걸까?’

그녀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아직 미련이 남아 있는 거라면 내가 직접 정리해 줄 수밖에.’

...

외곽에 있는 공동묘지에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송서윤은 오랜 시간 묘비 앞에 머물렀다.

‘엄마, 행복하게 살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미안해요.’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혼잣말했다.

“엄마, 죄송해요. 저... 하준이 아빠랑 이혼하려고 해요. 하준이 양육권은 넘길 거예요. 엄마도 이젠 저랑 함께 이곳을 떠나요.”

바로 그때, 머리 위로 우산이 드리워지며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모님을 어디로 모시려고?”

깜짝 놀라 고개를 든 송서윤의 눈에 고영훈의 얼굴이 들어왔다.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온 거야?”

송서윤은 순간 긴장했다.

그가 조금 전 자신의 말을 다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고영훈은 자연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아마도... 마음이 통해서겠지?”

그는 다짜고짜 송서윤을 품에 안았다.

“여보, 왜 갑자기 이렇게 멀리까지 왔어? 걱정했잖아. 장모님이 그리웠어?”

그의 뜨거운 체온으로는 이미 차갑게 식은 그녀의 마음을 데울 수 없었다.

그때, 그에게서 은은한 데이지 향기가 맡아졌다.

허연수가 늘 뿌리던 그 향수였다.

송서윤은 눈을 가늘게 뜨며 조용히 물었다.

“걱정? 뭐가 그렇게 걱정돼? 설마 도둑이 제 발 저린 건가? 내가 멀리 떠날까 봐 두려운 거야?”

고영훈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그러더니 세 손가락을 펴 하늘을 가리키며 맹세했다.

“여보, 장모님 앞에서 맹세할게. 난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절대 기대에 어긋나게 행동하지 않을 거야. 만약 내가 그런 짓을 하면, 천벌을 받게 해달라고 빌게. 믿어줘!”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울렸다.

고영훈은 본능적으로 움찔했다.

‘하늘도 노하잖아, 이 개자식아!’

송서윤은 그가 지난 세월 자신을 속이며 두 얼굴로 살아온 걸 떠올리며,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천벌 같은 건 필요 없어.”

‘괜히 하느님의 손을 더럽히기 싫거든.’

“만약 정말 그런 짓을 했다면 내가 떠나면 그만이니까.”

“그럴 일 절대 없어.”

고영훈은 송서윤의 손을 잡고 입술을 가져다 댔다.

“우린 끝까지 함께할 거야. 죽어서도 당신 곁에 같이 묻히고 싶어. 죽어서까지도 널 떠나보내는 일은 없어.”

‘그래, 내가 고영훈의 달콤한 거짓말에 속아 산 세월이 얼마나 길었는데....’

송서윤은 마음속으로 쓴웃음을 지으며 겉으로는 힘없이 미소 지었다.

“난 당신 믿어.”

하지만 아무리 멀리 도망쳐도, 고영훈이 곧바로 찾아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 도시, 이 나라의 대부분 공항과 항만은 이미 그의 손아귀 안에 있었으니까...’

송서윤은 이대로는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실감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모건이 사람을 보내 줄 거야. 그때까지 조금만 더 버텨야 해...’

고영훈은 그녀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고마워, 여보. 그런데... 아까 장모님을 어디로 모시겠다고 한 거야?”

송서윤은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여긴 멀어서 벌초 한 번 하는 것도 쉽지 않아... 당분간 납골당에 모시려고.”

그는 안도하며 외투를 벗어 그녀 어깨에 걸쳐주고 우산을 건넸다.

그러고는 무릎을 꿇고 묘지 주변의 잡초를 뽑기 시작했다.

“정말 많이 자랐네. 관리소에 연락해서 장모님 유골 먼저 옮기라고 할게. 납골당도 좋지만, 사실은... 예전부터 당신 이름으로, 이 근처에 묘지 부지를 하나 마련해 뒀었어. 조만간 풍수지리 좋은 날을 받아서 어머님을 정식으로 모실 거야. 산이랑 바다가 한눈에 보이고, 어머님이 좋아하시던 튤립도 가득 심어 놨어. 청소, 제사, 경비까지 전부 관리되도록 해놨으니까, 분명 마음에 드실 거야. 원래는 어머니 기일에 당신한테 깜짝선물처럼 알려주려고 했는데...”

고영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송서윤의 손을 꼭 잡았다.

바로 그때, 천둥과 번개가 다시금 요란하게 몰아쳤다.

“여긴 위험해. 우리 이제 그만 내려가자.”

그는 우산을 펼치고 송서윤을 에스코트하며 내려갔다.

송서윤은 고영훈의 다정한 눈빛을 바라보며, 문득 10년 전, 엄마와 함께 겪었던 힘든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 힘이 되어 준 것도, 엄마가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까지 평온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고영훈 덕분이었다.

‘나를 위해 뭐든 해주려 했던 사람이, 왜 나를 배신했을까...’

송서윤은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맺힌 질문을 꺼내려 했다.

그 순간, 고영훈이 조수석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앉아 있던 허연수가 고개를 들었다.

흰색 슬립 원피스에 작은 숄을 걸친 허연수의 목덜미에 키스마크가 짙게 남아 있었다.

더 기가 막힌 건, 그녀가 하고 있던 목걸이에 송서윤이 얼마 전 잃어버린 결혼반지가 걸려 있었다.

그 반지는 송서윤이 한창 힘들어하던 시절에 사라졌던 것이었다.

그 무렵 고영훈도 자신의 반지를 빼내며 ‘두 개를 합쳐 더 멋진 커플링을 만들자’는 약속을 남겼었다.

그 기억이 담긴, 바로 그 반지를 다시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끼고 있었다.

서늘하게 빛나는 반지가 송서윤의 가슴을 차갑게 파고들어, 온몸을 갈기갈기 찢는 듯한 통증만 남겼다.

‘엄마의 묘지에 허연수를 데려온 것도 모자라, 내 결혼반지까지 그 여자한테 가져다 바친 거야?’

조금 전, 그의 다정한 눈빛과 거짓 없는 맹세에 순간이나마 마음이 흔들렸던 자신이

이제는 한없이 우스꽝스럽고 비참하게 느껴졌다.

더 이상 미련도, 후회도 없었다.

송서윤이 당장 무너질 것 같은 마음을 부여잡고 그 자리에서 조용히 몸을 돌렸다.

그 순간, 뒤에서 고영훈의 분노 섞인 고함이 들려왔다.

“당장 내려! 누가 서윤이 자리에 앉으래!”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Comments (2)
goodnovel comment avatar
이호정
2025. 12. 20. AM. 12:29
goodnovel comment avatar
comfy K
눈치 더럽게 없었나 보네
VIEW ALL COMMENTS

Latest chapter

  • 가장 가까운 배신   제412화

    고영훈은 심건모의 멱살을 놓더니 허둥지둥 송서윤에게 다가가 해명하려 했다.하지만 그는 송서윤에게 접근할 수 없었다. 그저 그녀가 벽에 기대어 위태롭게 몸을 지탱하고 있는 모습과 그녀의 눈동자에 서린 실망과 분노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송서윤의 차가운 목소리는 마치 칼날처럼 고영훈의 심장을 파고들어 죽느니만 못한 고통을 안겨주었다.“내 몸이 안 좋으면.” 그녀가 심장을 움켜쥐었다. “나랑 이혼하면 그만이었어. 나를 속이고 내 뒤에서 바람을 피울 게 아니라.”“고영훈, 넌 나한테 상처를 줬고 우리 결혼 생활을 배신했어. 하준이를 온전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라게 만든 건 전부 네 잘못이야.”“내 몸이 안 좋다는 건 그저 너의 사욕을 위해 찾아낸 핑계일 뿐이야.”“아니야. 서윤아.” 고영훈은 특수경찰들에 의해 끌려 나갔다.심건모가 송서윤 앞으로 다가와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다.송서윤은 심건모의 손을 떼어냈고 감정을 억누른 채 그를 바라보았다. “휴대폰을 깜빡했어요.”“응.”심건모가 다른 쪽 손을 펴보였다. 송서윤의 휴대폰이 그의 손바닥 위에 놓여 있었다.송서윤은 심건모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다시는 심건모보다 더 다정하고 세심한 사람을 만나지 못할 것이다.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운이었다.송서윤이 휴대폰을 집으려던 찰나 심건모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조심해. 물 닿지 않게 하고.”심건모가 송서윤의 얼굴을 쳐다보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그를 보지 않고 그의 손바닥에서 손을 빼낸 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아섰다.송서윤은 녹음기를 켜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안에는 수영이 화장을 고치고 있었다.송서윤이 수영을 가로막았다. “증언 전날 밤에 왜 사라진 거죠? 지금은 왜 고영훈이랑 같이 있는 거고요? 고영훈이 협박했나요?”수영은 송서윤을 훑어보더니 담담하게 대꾸했다. “제가 잘못 본 거예요. 고 대표님은 킬러와 같이 있지 않았어요.”수영은 정말 송서윤이 싫었다. 왜 남의 마음은 아예 보지 않는 걸까.고영훈이든 심건

  • 가장 가까운 배신   제411화

    동봉우는 자리에 앉아 모든 상황을 예리하게 지켜보았고 정계 인사들은 앞다투어 심건모에게 말을 건넸다.그는 시종일관 무심하고 차가운 태도를 유지하며 가끔 응답했다. 대화는 늘 관심 밖의 주제에 머물 뿐 핵심에 닿는 법이 없었다.이때 종업원의 안내로 피부과 과장이 들어왔다.“번거롭게 해서 죄송합니다.” 심건모가 덤덤하게 말했다.피부과 과장은 황송해하며 송서윤의 곁에 앉아 그녀의 손을 소독하고 약을 바른 뒤 붕대를 감아주었다. “사모님, 조심하셔야 합니다. 상처가 자꾸 벌어지면 흉터가 남아서 보기 흉해질 수 있어요.”고영훈은 촉촉한 송서윤의 눈동자가 심건모와 마주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녀의 다친 손가락을 보니 오늘 아침 학교 정문에서 그녀의 손을 잡았을 때 불편한 듯 미간을 찌푸리던 모습이 떠올랐다.고영훈은 초조하게 다가가 물었다. “내가 아침에 다치게 한 거야?”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룸 안의 공기는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버렸다.송서윤은 고영훈을 상대하는 대신 심건모의 손을 꼭 잡았고 심건모는 그녀의 손을 자신의 손안에 가두어 감싸안았다.그때 고영훈은 초라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그는 결국 자리로 돌아갔다.음식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아진시 정통 요리들이었다.동봉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은 별미를 좀 맛보게나.”사람들이 젓가락을 들기 시작했다.송서윤이 좋아하는 요리들이 끊임없이 그녀의 눈앞에 놓였다.그녀는 무척 맛있게 식사를 이어갔다.심건모는 송서윤의 곁에 앉아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볼 뿐이었다.그녀가 젓가락을 내려놓을 때까지.심건모가 입을 열었다. “맛있어?”그는 반짝이는 그녀의 눈동자와 분홍빛 입술에 남은 마지막 디저트, 크림케이크의 흔적을 가만히 응시했다.“네. 맛있어요.” 송서윤이 나직하게 답했다.“나도 좀 맛볼까?” 심건모가 다시 물었다.“네?”송서윤이 심건모에게도 케이크 한 조각을 챙겨주려던 찰나였다.송서윤이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심건모는 그녀의 얼굴을 감싸 쥐고는 고개를 숙여

  • 가장 가까운 배신   제410화

    송서윤은 시선을 떨구며 고개를 끄덕였다.“손을 댈 가치조차 없어.” 심건모가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코끝이 닿을 듯 말 듯 얼굴을 가까이 가져간 채 무심한 듯 말을 이었다. “손만 아프잖아.”그의 숨결이 조금씩 그녀의 입술에 닿았고 그녀의 마음까지 닿으려 애쓰는 듯했다. 시선은 그녀의 눈동자에 머물렀고 목소리는 들릴 듯 말 듯 낮아졌다. 그녀가 들을까 봐 겁나면서도 한편으로는 들어주길 바라는 듯한 목소리였다.심건모가 말했다. “내 마음이 아파서 그래.”송서윤은 순간 두 눈을 크게 떴다. 툭 떨어진 눈물이 입을 맞추고 있던 그의 입술 위로 떨어졌다.키스는 부드럽고 애틋했으며 동시에 씁쓸했다.한바탕 정적이 흐른 뒤였다.“왜 울어?”“그만 울어.”심건모는 송서윤의 눈물을 닦아주며 달랬다. “밥은 먹었어?”송서윤은 고개를 저었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선배는요?”“선배한테 밥 사줘야 하는데.” 송서윤이 차 문을 열려 하자 심건모가 말렸다. 지금은 안 된다.심건모의 시선이 붉게 달아오른 송서윤의 얼굴에 머물렀다. 너무나 가냘프고 고왔다.“왜 소 교수에게 밥을 사려는 거야?”“아까...” 송서윤은 이정희와 그 한약 그릇을 떠올리더니 눈동자가 흔들렸다. “노트북이 합선돼서 타버렸는데 마침 선배가 와서 도와주셨거든요.”“당연히 사줘야죠.”심건모의 품에 안겨 있던 송서윤은 노트북을 꺼내 두 사람 사이에 펼쳐 보이며 웃었다. “다행히 제가 끌 때 인터페이스를 숨겨두는 습관이 있어서 아까 성범이랑 여수진한테 지뢰 찾기 시스템을 들킬 뻔했는데 빠져나갔어요.”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장난스럽게 덧붙였다.“물론 봤어도 알아내진 못했겠지만요.”심건모는 그녀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정리해 주었다. “소 교수가 널 찾아온 용건이 뭐야?”“밥 먹자고요.” 송서윤이 회상하며 답했다.“참 한가한 사람이군.”심건모는 나직이 한마디 하고는 송서윤을 안아 옆 좌석에 앉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녀의 치맛자락을 끌어 내려

  • 가장 가까운 배신   제409화

    서지원은 어안이 벙벙해진 채 사진이 모두 삭제된 휴대폰을 돌려받았다. 특수경찰이 그녀의 귓가에 차갑게 경고했다.“허가 없이 타인의 사생활을 촬영한 사진은 모두 삭제되었습니다. 한 번만 더 이런 일이 발생하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습니다!”그들은 서지원을 지나쳐 곧장 차 주변을 에워쌌고 누구도 다가가지 못하게 차단했다.서지원은 방금 송서윤을 안았던 남자를 떠올렸다. 꼿꼿하고 건장한 체구, 송서윤을 감싸안은 팔목에서는 엄청난 힘이 느껴졌고 힘을 줄 때마다 손등에 핏줄이 드러나며 팽팽한 긴장감과 섹시함이 넘쳐흘렀다.무심하고 소외감이 느껴질 정도로 차가운 분위기의 잘생긴 얼굴이었지만 송서윤을 바라볼 때만큼은 눈빛에 생기가 돌았다. 온몸에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그가 송서윤의 새 남편인 모양이었다.서지원은 휴대폰을 꽉 쥐었다. 고영은에게 듣기로는 송서윤이 고영훈조차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대단한 권력자와 결혼했다고 했다.서지원은 대단한 인물이라고 하면 TV에서 보던 것처럼 기품은 있어도 늙고 못생긴 사람일 거라 생각했는데 고영훈보다 훨씬 더 압도적인 분위기를 가진 남자일 줄이야.그녀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고영훈이 송서윤이 재혼했는데도 그녀를 놓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서지원의 마음은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 찼다.송서윤이 대체 뭐라고 내로라하는 남자들이 하나같이 그녀를 사랑한단 말인가.서지원의 시선이 소주원의 뒷모습에 머물렀다. ‘또 한 명 더 있네!’소주원이 다가가려 했지만 특수경찰에게 제지당했다.차는 내부가 보이지 않는 안전유리가 설치되어 있었고 방음 처리까지 완벽했다. 차 밖의 사람들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알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그럼에도 소주원은 포기하지 못한 채 차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차 안.묘한 기류가 감돌며 실내 온도가 끊임없이 상승했다.심건모의 키스는 애틋하면서도 다정했고 동시에 절제되어 있었다.송서윤은 정신을 잃은 채 그의 부드러움에 빠져들었다.심건모는 입술을 떼고 그녀

  • 가장 가까운 배신   제408화

    그림자 하나가 순식간에 날아들더니 짝 하고 뺨 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서지원은 자신이 때린 소주원의 얼굴을 보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선배, 괜찮아?” 송서윤이 걱정스레 소주원을 살폈다.소주원은 뺨을 문질렀다. 사실 별로 아프지는 않았지만 송서윤이 걱정해 주자 내심 기분이 좋아 조금 더 문질러 보였다.“너 미쳤어?”“아직도 네가 고고한 사장 부인이라도 되는 줄 아니? 너만 사람을 때릴 수 있고 너는 맞으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어?”“예전에 네 비위를 맞춰준 건 다 영훈이의 체면을 봐서였어.”서지원은 송서윤을 향해 악에 받쳐 말을 쏟아냈다. “예전에 나랑 영훈이 사이를 망쳐놓더니 이제는 나랑 민호 씨 사이까지 망치려 들어?”“경고하는데 민호 씨 근처엔 얼씬도 마. 안 그러면 나도 더 이상은 안 봐줘!”서원 그룹은 무너지기 직전이고 고영훈이 서지원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상황에서 이민호는 그녀가 반드시 붙잡아야 할 남자였다.송서윤은 대꾸 대신 곧바로 서지원의 뺨을 갈겼다. 서지원이 멍해진 틈을 타 다시 한번 뺨을 내리쳤고 서지원은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송서윤은 바닥에 쓰러진 서지원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서지원은 양 볼을 감싸 쥔 채 아픔에 눈물을 흘리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송서윤을 쳐다봤다.그랬다. 예전의 송서윤은 손찌검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더군다나 이렇게 연달아 손을 올리는 일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부드럽기만 했던 그녀였다.그래서 그들 모두가 마음 놓고 송서윤을 속여왔던 것이다.“나를 협박해?” 송서윤이 싸늘하게 말했다. “내 말 못 알아들었니?”“매달리는 건 이민호 쪽이야!”“능력이 있으면 이민호가 내 근처에 못 오게 잘 간수해 봐. 내 눈앞에서 알짱거리지 않게.”소주원은 송서윤이 자신 때문에 서지원을 응징하는 모습에 크게 감동했다. 그는 송서윤의 손을 덥석 잡았다. “서윤아, 네 손에서 피가 나.”그제야 송서윤은 레이저 흉터 제거 수술을 받았던 손가락을 떠올렸다. 레이저 치

  • 가장 가까운 배신   제407화

    “서윤이의 실력으로는 로봇 시스템은커녕 어떤 시스템도 해킹할 수 없어요.”“하지만 여수진 씨를 이겼잖아요.” 성범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여수진은 성범이 개발한 로봇 시스템을 단 몇 초 만에 뚫을 능력이 전혀 없었다. 성범은 송서윤이 여수진을 두 번이나 아슬아슬하게 이겼던 일을 떠올렸다. 어쩌면 요행이나 우연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럴 리가요. 분명 부정행위였을 거예요.” 서지원은 무의식적으로 말이 튀어나왔다.그 순간, 송서윤이 다가와 서지원의 뺨을 세차게 내리쳤다.짝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행사장 안의 모든 사람이 일순간 조용해졌다.서지원은 한쪽 뺨을 감싸 쥔 채 송서윤을 노려보았다. “네가 뭔데 나를 때려?”송서윤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눈빛에는 서늘한 기색이 역력했다. “내 명예를 더럽힌 대가치고는 가벼운 줄 알아.”“명예를 더럽혀?” 서지원이 비웃었다. “너랑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랐는데 네 실력을 내가 모를 줄 아니? 예전에 영훈이가 오냐오냐해주고 다들 네 비위를 맞춰주니까 정말 네가 실력이 있다고 생각했어?” 서지원이 비웃으며 조롱 섞인 투로 말을 이었다. “소문 들었어. 이제는 권력자가 뒤를 봐주는 사모님이 됐다며? 그래서 예전처럼 사람들이 다 네 비위를 맞춰줄 줄 알았니?”“꿈 깨!”“경원시에서는 아무리 대단해도 네 멋대로 할 수 없어.”서지원의 말을 들은 성범과 여수진은 서로 눈을 맞추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송서윤이 그렇게 대단할 리가 없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서지원은 송서윤을 아예 진흙탕 속으로 처박으려는 듯 점점 더 심한 말을 내뱉었다.송서윤은 서지원이 이토록 추악하게 변했을 줄은 몰랐다. 과거의 실낱같은 정마저도 완전히 타버려 재가 되었다.“누가 감히 내 동생을 괴롭히나?”그때, 귓가에 서늘한 음성이 들려왔다.이민호가 지팡이를 짚으며 사람들 앞으로 걸어 나왔다. 오늘은 이산 그룹의 로봇 시범 운영일이었기에 주인인 그가 현장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의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