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고하준은 경계하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아이로서 나와 대화하고 싶어, 아니면 한 명의 남자로서 대화하고 싶어?”심건모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고하준은 몹시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저도 이제 다 컸어요.” 고하준이 당당하게 대답했다.“좋아.” 심건모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네 엄마와 여동생을 지키는 건 이제 네 책임이기도 하니 내가 좀 편해지겠어.” 심건모는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평소 좀처럼 보여주지 않던 그의 편안한 모습에 긴장해 있던 고하준도 조금은 마음이 놓이는 듯했다.“지금부터 네가 성인이 되는 18살까지 너는 엄마와 함께 살게 될 거야.”“물론 네가 아빠 곁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엄마와 상의해서...”“가기 싫어요.” 고하준은 다급하게 말을 끊었다.심건모는 잠시 멈칫하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말할 때는 경청하고 내 말이 다 끝난 뒤에 네 의견을 말해. 내 규칙이야. 내 집에 있는 동안은 내 규칙을 따라야 해.”고하준은 진지한 표정으로 심건모를 바라보았다.고영은이 말했었다. 송서윤 곁에 남고 싶다면 심건모와 잘 지내야 한다고.하지만 그의 말을 듣고 싶지도, 그에게 잘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이리안은 심건모가 직접 키우다시피 했으니 태어날 때부터 그의 아이나 다름없었다.하지만 고하준은...한동안은 심건모를 골치 아프게 할 존재였다.“네가 말할 때도 나 역시 네 말을 끊지 않을게.” 심건모가 덧붙였다.고하준은 놀란 눈으로 심건모를 보았다.고하준과 고영훈의 관계는 단 한 번도 동등했던 적이 없었다.고하준은 고영훈의 아들이라기보다 그의 혹덩어리에 가까웠다.고하준은 늘 틀린 존재였고 오직 송서윤을 기쁘게 했을 때만 고영훈의 칭찬을 들을 수 있었다.어린 시절 고하준은 송서윤이 정말 싫었다.송서윤만 없어진다면 고영훈이 그에게 좀 더 잘해주지 않을까 늘 생각하곤 했다.하지만 성숙해지고 학교에 다니면서 알게 되었다.문제는 고영훈에게 있었지 송서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는 것을.이때 제훈이 밖에서
심건모는 송서윤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내가 해결했어.”송서윤은 심건모를 밀어냈다. “수영 씨랑 밥 먹어서 해결했다고요?”심건모가 웃으며 가볍게 입을 맞추고는 나직이 답했다. “응.”송서윤은 화가 잔뜩 난 채로 그를 힘껏 밀쳐냈다.심건모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 품 안에 가두며 말했다.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야.”송서윤은 심건모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내가 잘못했어요.”심건모는 송서윤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눈빛에는 애정과 대견함이 교차했다. “발전했네.”드디어 그녀가 심건모를 향해 한 걸음 다가온 것이다.심건모는 송서윤이 고영훈과 함께 있을 때 어떤 모습이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송서윤은 고영훈에게 의지했고 온 마음을 다해 신뢰했다.하지만 심건모와 있을 때는 달랐다.늘 앞뒤를 재고 망설이며 머뭇거렸다.심건모는 송서윤에게 입을 맞추며 커다란 손을 그녀의 가슴 위에 살며시 얹었다.송서윤의 마음을 얻는 일은 정말이지 쉽지 않았다.심건모는 그녀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우리 혼인 신고는 국내에서 한 게 아니야.”조수석에 앉아 뒷좌석의 동태를 살피던 하은은 손바닥에 피가 맺힐 정도로 주먹을 꽉쥐고 있었다. 질투의 불길이 당장이라도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하은은 이런 심건모를 본 적이 없었다. 그들 앞에서 심건모는 언제나 높고 고귀하며 차가운 사람이었다. 다정한 말 한마디 듣는 것조차 하늘의 별 따기였다.그런데 송서윤 앞에서는 너무 부드러웠다.심건모의 아내 자리는 본래 하은의 것이어야 했다.두 사람이 갑작스럽게 결혼을 결정하기 전까지만 해도 제훈과 조민은 하은을 아내로 맞이하라고 심건모에게 건의할 생각이었다.본래 심건모의 달램을 받아야 할 사람이 자신이었다는 생각에 하은은 숨이 막힐 듯 가슴이 아팠다.송서윤은 늘 심건모에게 골칫거리만 안겨주었다.송서윤은 심건모를 사랑하지도 않고 배려하지도 않는다.그저 심건모의 보호를 받고 싶을 뿐이다.그래서 그 이혼 합의서가 존재했던 것이다.하은은 이미 그것을 찾아냈다.선거
차 안.송서윤은 창가에 기대앉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심건모를 바라보았다. “우리 결혼 안 했다고요?”그녀가 다시 중얼거렸다. “아니. 그럴 리 없어요. 분명히 혼인 신고 했는데.”심건모가 송서윤에게 다가앉으며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네 이야기부터 해봐. 고영훈이 뭐로 협박했어?”송서윤은 심건모의 손을 붙잡으며 시선을 피했다. “별거 아니에요. 그냥 하루만 같이 있어 달라고...”송서윤은 손목시계를 확인하더니 지기 싫은 듯 덧붙였다. “곧 12시예요. 12시가 지나면 이혼 합의서에 사인해서 주기로 했단 말이에요.”“국장님이 오지 않았어도 나 혼자 해결할 수 있었어요. 내 이야기는 끝났으니까 이제 혼인 신고 이야기나 해봐요.”심건모는 찔리는 구석이 있으면서도 고집을 부리는 송서윤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심건모가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수영도 나더러 같이 있어 달라고 하더군.”송서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눈빛에는 슬픔이 묻어 있었다.‘그래서 저녁에 수영과 밥을 먹은 것인가.’송서윤은 고개를 숙였다. 심건모의 커다란 손 위에 얹혀있던 그녀의 손이 힘없이 미끄러져 내려갔다.그녀는 창밖의 밤 풍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수영 씨도 국장님을 협박했어요?”“응.”심건모는 송서윤의 두 어깨를 잡아 자신을 향하게 돌려세우고 얼굴을 들어올렸다.그녀의 눈에 가득 고여있던 눈물이 그의 손바닥 위로 뚝뚝 떨어졌다.“왜 울어?”심건모 역시 손목시계를 쳐다보았다. “집에 데려다주면 하준이 재우고 나서 일찍 쉬어. 난...”심건모는 일부러 말을 멈췄다. 송서윤의 눈가가 새빨갛게 부어올라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리는 것을 지켜보았다.“내일 아침 6시에 돌아올게.”심건모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내뱉었다.송서윤의 시야가 눈물로 뿌옇게 흐려졌다.심건모의 따뜻한 손길이 거두어지고 몸도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이정희와 약속했던 일, 그리고 하은이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송서윤은 눈을 내리깔고 애써 참아보려 했다
심건모의 시선이 송서윤의 얼굴에 머물렀다. 그녀는 당황하여 안절부절못하면서도 끝내 사실대로 말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때리지 마요!” 송서윤은 심건모의 셔츠 깃을 붙잡으며 거의 애걸하듯 말했다. “제발 그만해요! 소문이라도 나면...”“소문이 나면 어떻게 되는데?”“국장님 명예에 흠이 가잖아요. 국장님은 명예가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인데.”심건모가 송서윤의 손을 붙잡았다. “걱정돼?”그녀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바닥에 쓰러져 있던 고영훈이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그의 말투에는 서늘한 독기가 서려 있었다. “집 곳곳에 CCTV가 있어요. 무력을 행사해 사람을 다치게 했으니 이제 끝입니다. 심 국장님.”심건모는 오직 송서윤만을 바라보며 차분한 태도로 대꾸했다. “그래요. 난 끝났네요.”송서윤의 눈물이 심건모의 손바닥 위로 툭 떨어졌다. 그녀는 화가 나 그를 밀쳐냈다. “왜 이러는 거예요! 도대체 왜?”송서윤은 심건모를 지키기 위해 그토록 애를 썼는데 정작 그는 너무나 손쉽게 모든 것을 망가뜨리고 있었다.송서윤이 밀어내며 뒷걸음질 치자 심건모는 그녀의 손을 낚아채며 바짝 다가섰다.“뭐가 왜라는 거지?”심건모는 정말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송서윤이 발악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녀를 구석으로 몰아붙였다. “왜 국장님 명예를 스스로 깎아 먹냐고요. 왜... 난...” 송서윤은 무너져 내리며 통곡했다. 그녀는 주먹으로 심건모의 가슴을 세차게 밀어냈다.심건모는 송서윤을 품에 안았다. 그는 얼굴을 그녀의 뺨에 갖다 대며 나직하게 물었다.“너는 뭐?”고영훈이 손에 든 휴대폰을 치켜들었다. “곧 경찰이 올 겁니다. 이제 끝이에요.”고영훈의 말은 송서윤을 더욱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다. 그녀는 심건모의 옷깃을 꽉 움켜쥐며 외쳤다. “노트북 줘요.”“뭘 하려고?”“CCTV 영상 다 지워버려야 해요. 빨리 줘요. 어서!”하지만 심건모는 그녀를 보내주지 않았다.“국장님!” 송서윤은 미친듯이 그를 밀어냈다. “나한테 왜 이래요? 난
도장을 꾹꾹 찍어대는 소리가 서재에 울려 퍼졌다.“얌전하게 있어야지.”심건모는 이리안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이리안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도장은 더 크게 찍어댔다.그때 제훈이 밖에서 사람 한 명을 데리고 들어왔다.“형, 형수님이 말이야...”“어서 말해봐요.” 제훈이 재촉했다.“형수님이 아침에 나한테 전화해서 소송에 관해 물어보셨어.” 장호는 심건모의 차가운 눈빛과 마주하자 의뢰인의 비밀을 지키려던 결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형수님과 고영훈의 이혼 절차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어.”“2년 이상 별거했어도 상대방의 동의가 있어야 이혼이 성립되는데 상대방이 거부하면 법원에 소송 신청을 해야 해.” 심건모의 안색이 갈수록 차갑게 굳어졌다. 장호가 말을 이었다.“하지만 형수님은 사실이 알려질까 봐 소송을 포기하셨어. 아까는 나한테 전화해서 이혼 합의서를 다시 써달라고 하시더라고. 아들 양육권을 되찾고 싶다면서.”“아무래도 형수님이 고영훈과 합의를 본 모양이야.”당시 고영훈은 송서윤의 정체 뿐만아니라 자신과의 결혼 사실까지 빌미로 삼아 그녀를 협박했던 것이다. 그녀가 돌아온 뒤 그토록 평소와 달랐던 이유였다.“국장님, 송서윤 씨는 국장님이 드시는 한약에 불임약이 들어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고영훈이 자은 선생과 짜고 저지른 짓인 게 분명합니다.” 제훈이 덧붙였다. “하은 말로는 사실을 알고 송서윤 씨가 불같이 화를 내며 나갔다고 합니다.”화를 내며 나가서 고영훈과 밥을 먹으러 갔다니.심건모의 목소리가 한층 차가워졌다. “지금 어디 있어?”“롤스로이스 차량이 산 중턱의 한 별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제훈이 보고했다. “특수경찰들이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그때 제훈의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국장님, 특수경찰 보고입니다. 별장에 차 한 대가 더 들어왔는데 예전에 송서윤 씨 심리 치료를 담당했던 주미정이라고 합니다. 행동이 아주 수상하다고 합니다.”...고영훈은 깊은 잠에 빠진 송서윤을 안마
송서윤은 눈물을 쏟으며 흐느꼈다. “입 맞춘 적 없어요.”그녀의 떨리던 입술은 순식간에 심건모의 입에 의해 막혔다.심건모는 몹시 조급하고도 깊게 파고들었다.송서윤은 속절없이 그를 받아내야만 했다.그의 입맞춤이 그녀의 마음을 어지럽게 뒤흔들었다.심건모를 밀어내려던 송서윤의 손은 이내 그에게 붙잡혔다.송서윤의 입에서 감당하기 힘든 신음이 새어 나왔다.심건모는 입술을 떼고 송서윤의 이마에 머리를 맞댔다. 거친 숨소리와 뜨거운 열기가 그녀의 숨결을 집어삼켰고 그의 강력한 기운이 그녀를 온전히 감싸안았다.차 안에는 애틋함과 서늘함이 공존하는 기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다정한 듯하면서도 냉기가 흘렀다.송서윤은 심건모의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무심하던 눈동자엔 분노가 가득했다.심건모의 온몸은 데일 듯 뜨거웠다.송서윤이 겁에 질려 뒤로 물러나려 하자 그는 더 바짝 다가왔다.“똑바로 말해. 가서 뭘 하려는 거야?”심건모가 눈을 부라리며 다그치자 송서윤은 시선을 피했다.심건모가 다시 송서윤의 입술을 덮치자 그녀는 숨이 멈추는 것 같았다.그의 품속에서 송서윤은 더 이상 저항할 기운조차 없었다.송서윤은 심건모가 원하는 대로 자신을 내맡긴 채 넋이 나간 듯 그를 바라보았다.차가 멈춰 서자 심건모는 송서윤을 안아 내렸다.향가옥이었다.이리안은 육아 도우미와 놀고 있었고 유 집사는 요리에 한창이었다.송서윤의 손이 이리안의 머리에 닿자마자 심건모는 그녀의 손을 낚아챘다.심건모는 송서윤을 안고 3층으로 올라가 소파에 내려놓았다.심건모가 눈물을 닦아주려 했지만 송서윤은 고개를 돌려 피했다.“가게 해줘요.” 송서윤이 나직하게 말했다.심건모가 입을 맞추려 하자 송서윤은 그의 입술을 깨물어버렸다.순식간에 비릿한 피 냄새가 감돌았다.심건모는 송서윤의 입술을 놓아주더니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잘못을 저지른 아이를 훈육하듯 엄한 손길이었다.송서윤은 얼굴이 화끈거렸다.“고영훈이랑 살겠다는 거야?”심건모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