تسجيل الدخول도진은 보안이 철저히 걸린 개인 회신 채널을 열었다. 암전된 화면 너머, 짙은 어둠 속에 잠긴 Z의 실루엣이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화면에서 나오는 미약한 빛만이 그녀의 가녀린 어깨선을 희미하게 비출 뿐이었다. 도진은 테이블 위에 투명한 푸른빛의 안젤라이트 원석을 내려놓으며 입을 뗐다.
“보내드린 기획안은 확인하셨겠지요. 브랜드 이름은 ‘새로운 태양’. 주재료는 안젤라이트입니다. 디자인 1팀은 이미 Z 씨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흐른 뒤, 변조된 Z의 차가운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기계적인 금속음이 섞인 목소리는 감정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었다.
“안젤라이트라… 치유와 평화라는 뻔한 수식어로 점철된 원석을 ‘태양’으로 만들겠다는 발상은 흥미롭군요. 좋습니다. 이 프로젝트, 받아들이죠.”
도진
최종 입점 브랜드 표결 당일 아침. 신한성 면세점 대회의실 전면 전광판에는 심사위원 10인의 이름 대신 숫자만이 차갑게 떠올라 있었다.심사위원석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일촉즉발이었다. CB가 제안한 'CB 르 카페' 중심의 확실한 여성 VVIP 동선과, 제이아우라가 던진 '옴므 융합 & 글로벌 옴니채널'이라는 파격적인 블루오션. 양측의 명분이 너무나 팽팽했기에, 무기명 투표를 앞둔 심사위원들의 속내도 갈수록 복잡해졌다.도진은 정장 매무새를 정돈하며 단상 아래의 지수를 훑어보았다. 그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아무리 파격적인 기획이라도 면세점의 보수적인 내부 위원들은 안전빵을 택하게 되어 있어. 1층의 디저트 라운지와 여성 주얼리 파이는 당장 내일부터 눈에 보이는 현금 창구니까.’도진의 계산대로, 신한성 면세점 내부 임원진으로 구성된 보수파 위원 4명은 이미 CB 쪽으로 마음을 완전히 기울인 상태였다.바로 그때, 심사위원석 한가운데 자리한 유럽계 수석 바이어 엘레나가 손을 들었다.“표결에 들어가기 전, 제이아우라 측에 마지막 확인을 하나 하고 싶군요.”엘레나의 시선이 지수에게 향했다.“제이아우라의 남성 파인 주얼리 라인이 가진 아우라는 훌륭합니다. 하지만 남성 주얼리가 여성 주얼리만큼이나 현장에서 VVIP들의 실질적인 구매욕을 자극할 수 있는지, 그 실물 감각을 심사위원단에 증명할 수 있습니까?”CB 측 임원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남성 주얼리 시장의 구매력과 실물 착용감에 의문을 던지는 결정적인 질문이었다.하지만 지수의 눈빛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지수가 고개를 차분히 숙이며 손짓하자, 민철이 정성스럽게 포장된 옻칠 케이스를 들고 엘레나 앞으로 다가갔다.“증명해 드리죠. 말보다는 눈으로 직접 확인하시는 게 빠를 테니까요.”지수의 말에 엘레나는 케이스 안에 담긴 제이아우라
두 사람 사이에 일촉즉발의 스파크가 튀는 가운데, 신한성 면세점의 최상위 입점 심사위원들과 유럽계 수석 바이어 엘레나를 비롯한 글로벌 바이어들이 들어서며 마침내 입점 브리핑이 시작되었다.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것은 도진이었다. 도진은 괜히 CB의 수장이 아니었다. 그는 면세점의 생리와 여심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시작부터 대형 스크린에 화려한 3D 매장 조감도를 띄우며 좌중을 압도했다.“신한성 면세점 프라임 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체 면세점의 상징성과 여성 VVIP의 집객력입니다. CB는 듀플렉스 1층 전체를 A국 최고 명장 파티시에와 협업한 하이엔드 디저트 & 샴페인 라운지 ‘CB 르 카페’로 꾸밀 것입니다.”심사위원석에서 나지막한 탄성이 터졌다. 최근 해외 최상위 명품 하우스들이 도입해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킨 ‘플래그십 카페’ 콘셉트를 면세점 최초로 프라임 존에 이식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이었다.“1층에서 오감을 사로잡아 면세점을 찾은 모든 여성 고객을 흡수한 뒤, 전용 엘리베이터로 연결된 2층에서 CB만의 독보적인 여성 파인 주얼리와 하이엔드 워치를 선보일 것입니다. 휴식과 쇼핑이 완벽히 결합된 이 듀플렉스 라운지는 신한성 면세점 전체의 매출을 견인할 확실한 앵커 스폿이 될 것입니다.”도진은 정곡을 찌르는 완벽한 상업적 제안을 던졌다. 1층의 화려한 디저트와 2층의 눈부신 보석. 엘레나 수석 바이어를 비롯한 심사위원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도진의 입꼬리가 승리감으로 오만하게 올라갔다.그러나 이어 단상으로 걸어 나간 지수의 표정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지수는 준비해 온 프레젠테이션 스크린을 켰다. 스크린에 떠오른 타이틀을 확인한 순간, 도진과 심사위원들의 눈이 일제히 커졌다.[ J-AURA HOMME & BEAUTY : 글로벌 VVIP를 위한 맞춤
A국을 넘어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신한성 면세점’의 신규 도심 명품관 입점 공고가 뜨자, 재계 전체가 크게 요동쳤다. 명품관의 얼굴이자 브랜드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지하 1층과 지상 1층을 수직으로 연결하는 최상위 ‘듀플렉스 메인 프라임 존’ 입점권을 두고 벌이는 글로벌 럭셔리 하우스들의 총력전이었다. 면세점 전체의 동선과 시선을 한눈에 지배하는 단 하나의 거대한 랜드마크 스폿이었다.제이아우라 회장실. 신한성 면세점의 입찰 안내서를 가만히 훑어보던 이지수의 눈빛이 깊어졌다.“제이아우라도 이제 판을 키울 때가 되었네요.”맞은편에서 차를 마시던 박진우가 입꼬리를 부드럽게 올렸다.“CB가 ‘검은 태양’으로 주가를 올리더니 이번 입점전에 사활을 걸 거라는 정보가 들어왔어. 도진이는 이번 프라임 존을 발판 삼아 CB의 화려한 부활을 전 세계에 알리려고 할 거야.”“남들이 다 깔아놓은 판에서 덩치 싸움을 하겠단 거네요. 강도진 회장다운 선택이에요.”지수는 입찰 서류를 덮으며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CB 그룹과 제이아우라, 그리고 강도진과 이지수의 피할 수 없는 정면승부가 그려질 완벽한 무대였다.입찰 기한까지 남은 시간은 단 3주. CB 그룹 본사는 비상 체제에 돌입했다. ‘검은 태양’의 폭등세로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던 도진은 이번 면세점 입점이야말로 제이아우라를 완전히 눌러버리고 왕좌를 공고히 할 절호의 기회라 여겼다.“회장님, 이번 프라임 존 입점은 CB 그룹의 전통적 본체인 ‘여성 파인 주얼리’ 라인을 공고히 할 최선의 기회입니다. 유럽 보석상들과의 독점 공급망 정리도 완벽히 끝났습니다.”베테랑 기획 임원진의 보고에 도진은 만족스럽게 턱
CB 그룹 본사 최상층 회장실.연일 신기록을 경신하며 미친 듯이 치솟는 CB 그룹의 주가 차트를 바라보며, 강도진은 최고급 싱글몰트 위스키 잔을 높이 들었다. 얼음이 가볍게 부딪치며 맑은 소리를 냈다.이지수가 세공해 낸 ‘검은 태양’의 첫 번째 피스는 공개되자마자 VVIP 시장을 단숨에 매료시켰고, 이사회와 대주주들의 찬사가 도진의 발밑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언론은 그를 ‘위기를 기회로 바꾼 천재 경영인’이라 칭송했다.“봤냐, 이지수? 박진우? 아무리 날 흔들어봐야 CB는 내 거다. 내가 이 거대한 제국의 절대적인 주인이야!”도진은 붉어진 얼굴로 허공에 잔을 찌르듯 들어 올렸다. 완벽하게 재기에 성공했다는 오만한 착각, 그 달콤하고 치명적인 승리의 도취감이 그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다.같은 시각, 제이아우라 최고층 진우의 사무실.은은하게 흐르는 클래식 선율 사이로, 진우는 대형 모니터 세 대를 채운 금융 시장 거래창을 차분하게 훑어보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붉은빛을 뿜으며 폭등하는 CB 그룹의 주가 창. 그 곁으로 다가온 지수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잔을 건네며 물었다.“화면에서 눈을 못 떼시네요. 그렇게 재미있어요?”“응. 세상에서 가장 쉬운 돈벌기를 실시간으로 구경하는 중이라.”진우가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픽 웃더니, 지수의 손목을 부드럽게 끌어당겨 옆자리에 앉혔다. 모니터에는 CB 그룹의 주가가 요동치던 지난 몇 달간의 일봉 차트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지수 씨, 그거 알아? 진짜 투자가는 악재에서도 돈을 벌고, 호재에서도 돈을 버는 법이야.”진우가 마우스를 딸깍거리며 지나온 차트의 마디마디를 하나씩 짚어 내려갔다.“첫 번째. 도진이가
제이아우라 본사이자 최고급 럭셔리 플래티넘 쇼핑몰인 ‘더 문(The Moon)’. 그 4층에 위치한 대회의실에는 과거 CB 뷰티 시절부터 일해온 주요 임직원들과 핵심 연구진, 마케팅 팀원 수십 명이 경직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회사가 제이아우라로 전격 인수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부터 회의실 내부에는 음습한 패배의식과 불안감이 짙게 깔려 있었다. ‘어차피 버려진 패잔병들이다’, ‘조만간 볼모나 다름없는 우리를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길거리에 나앉게 만들 것이다’라는 흉흉한 소문이 그들의 목을 죄어오고 있었다.탁, 탁.묵직하고 명확한 구두 굽 소리가 정적을 깨뜨리며 대회의실 문이 열렸다. 지수가 진우를 동반한 채 유유히 모습을 드러냈다.지수는 그 누구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차갑고 단정한 아우라를 풍기며 단상의 상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녀의 날카롭고 서늘한 눈동자가 회의실에 모인 직원들의 찌든 얼굴들을 천천히, 그리고 정확하게 훑어내렸다.“다들 표정이 참 어둡네요. 당장이라도 길거리로 쫓겨날까 봐 겁이라도 먹은 얼굴들입니다.”지수의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첫마디에 직원들이 흠칫하며 숨을 죽였다. 지수는 무심한 손길로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기존 CB 뷰티의 신제품 기획서와 마케팅안 서류 뭉치를 집어 들었다.“화학 성분 범벅에 오직 원가 절감만 노린 저급한 스킨케어, 겉포장만 번지르르하게 꾸며서 억지 마케팅으로 밀어붙이던 기획안들…… 강도진 씨 밑에서 여러분이 밤을 새워가며 만들던 게 겨우 이런 거였습니까?”지수는 서류들을 주저 없이 반으로 쫙 찢어 쓰레기통에 내던졌다. 찢겨나간 종이 조각들이 공중에 흩날리자 임원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CB 뷰티라는 썩은 껍데기는 오늘부로 완벽히 끝입니다.
TV 화면 속에는 CB 그룹의 '검은 태양' 런칭 성공 기사와 함께, 한껏 당당해진 표정으로 인터뷰를 하고 있는 강도진의 모습이 흘러나오고 있었다.“……강도진, 이 나쁜 개자식.”어둡고 축축한 지하 셋방. 수진은 헝클어진 머리와 핏발 선 눈으로 화면을 노려보며 이빨을 갈았다. 자신은 아이마저 빼앗기고 단 한 푼의 위자료도 없이 길거리로 쫓겨나 거지 꼴이 되었는데, 도진은 여전히 화려한 조명 아래서 거대 제국의 기사회생한 대표님으로 추앙받고 있었다. 억울함과 미친 듯한 복수심에 수진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그녀는 마지막 자존심을 버리고, 예전에 자신에게 은근한 관심을 보여주었던 도진의 친구 민수를 찾아가기로 했다. 차가운 길거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구걸하듯 그에게 몸을 내던져서라도 도움을 요청하려 했던 것이다.수진이 찾아간 지철의 가게 안, 룸에서는 민수가 오랜만에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요즘 민수네 회사가 잘나간다며?”“그래도 도진이만은 못하지. 참 대단해. 무너질 듯 무너지지가 않아.”민수는 온더락 잔의 얼음을 덜그럭 돌리며 주위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그럼 뭐 해. 이번에도 이지수가 살려준 거잖아. 바보 같은 놈. 그런 여자를 버리다니.”“그러니까. 도진이가 무시하던 그 여자가 오닉스의 딸이자 ‘Z’일 줄 누가 알았겠냐?”“그뿐이야? 사업에도 엄청난 재능이 있잖아. 이 단기간에 제이아우라를 저렇게 키운 거 봐.”“에이, 그건 오닉스가 뒤에서 도와줬겠지. 여자가 혼자 일으킬 수 있는 수준이 아니잖아.”민수는 친구들의 말에 항상 주눅 들어 보이던 지수를 떠올렸다. 처음 도진이 지수를 소개해 주
지수는 도전에게 연락하기를 포기하고 스스로 119를 불렀다. 하지만 출산이 임막한 임산부처럼 부푼 배때문에 혼자서 움직이는 것조차 무리였다. 지수는 필사적으로 옆방에 잠든 가정부를 불렀다."아줌마 아줌마...! 하아, 남 좀... 도와주세요." 하지만 돌아온 것은 문트에 타고 넘고오는 가정부의 코고는 소리뿐이었다. 이것이 이 집에서 지수의 위치였다. 남편의 무관심 속에 고용인에게조차 무시당하는 철저한 그림자 같은 아내.지수는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하지만 누구에게 연락을 해야 할지 알수 없었다. K국에 있는 부모님이나 오빠에
그토록 기다렸던 임신 소식이었지만, 지수와 도진에게 허락된 기쁨은 야속할 정도록 짧았다. 다음날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는 확신을 유보한 채 일주일 후에 다시 검사하자는 말만을 나겼다. 그 일주닝은 도진과 지수에게 평생보다 긴 지옥이었다. 손끝하나 대면 깨질 것 같은 불안 속에서 부부는 서로를 위로하며 버텼으나, 운명은 그들에게 자비롭지 않았다.일주일 후 다시 마주한 초음파 화면에는 생명의 고동 대신 기괴한 그림자만이 가득했다. " 포상기태 입니다." 의사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 임신유지 호르몬의 과다 분비로 태아를 제
"기쁘지... 않아?" 수진의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에 도진은 굳어있던 안면 근육을 억지로 끌어올렸다. 껍데기뿐인 미소가 그의 얼굴에 기괴하게 자리 잡았다. "당연히 기쁘지. 내일 병원 갔다가 아기용품부터 보러 가자. 전에 네가 갖고 싶다던 한정판 가방도 사줄게." 그의 다정한 음성에 수진은 안심한 듯 도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도진은 그녀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며 입안의 쓴 침을 삼켰다. 수진과 밀회를 즐기면서도 잠자리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때마다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피임을 챙겼던 자신이었다. '임
평번한 여대생이었던 '이지수'의 세상은 '강도진'은 만나고 완전히 변했다.언제나 부모님과 오빠의 과잉보호 속에 기사님이 태워 주시는 차와 가정부의 가사 관리 속에만있던 지수에서 생애 처음으로 모든일은 스스로 하는 생활은 힘들고 신기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큰차가 아닌 작은차에 적응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새로운 친구도 만날겸 지수가 타고다니는 경차 동호회에 가입하였다. 그곳에서 지수는 스물둘의 강도진을 만났다. 도진은 185의 훤칠한 키에 다부진 어깨, 오똑한 콧날에 강아지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