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도진과 전화를 마친 지수는 떨리는 숨을 몰아쉬며 휴대폰을 조작했다. 익숙한 번호가 아닌, 철저히 숨겨두었던 가른 번호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 김실장인 혹시 오늘 CB 그룹과 투자 회의가 잡혀 있나요? "라고 물었다.
" 네 사장님. 오늘 오후에 미팅이예정되어 있습니다. 혹시 변동사랑이 있으신가요?
지수의 입가에 서늘안 미소가 번졌다. 도진이 그토록 화를 내며 중요하도고 외쳤던 미팅은 역시나 지수의 RV인벤스먼트와의 미팅이었다.
" 네 변동 사항이 있습니다. 미팅은 그대로 진행해 주세요. 대신 계약서에 싸인은 하지말고 최대한시간을 끌어 주세요. 이후 상황은 제가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
"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
통화를 마친 지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언제부터 도진은 변한 것일까? 시작은 6개월전 지수가 계속되는 난임 시술 실패로 시들어가고 우울증의 늪에 빠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날 아침은 오랫동안 기운이 없던 지수가 모처럼 정성을 담아 닭죽을 끓인 날이었다. 도진이 가장 좋아하던 음식이었다.
"오늘은 기분이 좀 어때? 힘든 당신 옆에 있고 싶은데, 오늘은 오랫동안 못 본 동창회에 가야 해서 미안해."
도진은 아쉬움이 뚝뚝 묻어나는 눈빛으로 지수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그녀의 이마에 소중한 보물을 다루듯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가기 싫은데 가지 말까? 일찍 퇴근해서 자기랑 저녁 먹을까?"
도진은 알고 있다 이렇게 물으면 지수는 절대 그의 약속을 취소하라고 말하지 않은 다는 것을. 지수는 살며시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야 당신도 인맥이 중요한데 그런 자리에 빠지면 안 되지. 저녁은 다음네 먹으면 되니까 나 신경쓰지 말고 잘 다녀와."
하지만 그날 이후, 도진의 옷깃에선 낯선 여자의 향수 냄개가 나기 시작했다. 야근은 일상이 되었고 시술 때마다 손을 꼭 잡아주며 동행하던 병원은 어느새 지수 혼자 견뎌야 하는 고독의 장소가 되었다.
그리고 3개월 전부터 이상한 문자가 오기 시작했다. 그 문자는 어제도 어김없이 도착한 그 메세지
[도진이가 술이 많이 취해서 오늘은 H호텔에서 자고 갈 거에요. 내가 잘 챙겨 줄테니까 지수씨는 걱정하지 말아요.]
메시지와 함께 전송된 사진 속에는 옷을 벗은 채 침대에 누워있는 도진과, 그 옆으로 노골적으로 놓인 여자의 속옷이 담겨 있었다. 문자를 보낸 이는 도진의 전 여자친구이자, 6개월 전 동창회에서 재회했다는 '한수진'이었다.
지수도 알고 있었다. 이미 이 결혼은 산산조각이 났다는 것을 하지만 자신의 몸과 마음을 깍아 먹으며 지키고 싶었던 도진과의 아이, 그 마지막 미련 때문에 차마 이 끈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이번에도 실패하면 이젠 이 손 놓아 줄께.'
지수의 눈에 결국 눈물이 맺혔다. 사람했던 나의 남자, 강도진은 이제 그 어디에도 없었다.
제이아우라와 계약을 맺은 외주 패턴실 내부에는 팽팽한 적막이 감돌고 있었다.원단과 패턴지가 수북하게 쌓인 테이블 중앙, 늙은 패턴실장의 얼굴에는 곤혹스러운 기색을 넘어 원초적인 의구심이 가득 서려 있었다. 이곳은 수십 년간 CB의 엄격하고 정형화된 라인업만을 전문적으로 샘플링해 온 전통의 베테랑 공방이었다."대표님, 솔직히 말씀드려서 원고(도면)를 펼쳐보고 조금 의아했습니다. 절제되고 딱 떨어지는 정형화된 재킷이 있는가 하면, 그 옆에는 틀을 완전히 깨버린 비정형 드레이핑 드레스와 셔링 아우터가 한데 섞여 있어요. 한 브랜드 컬렉션에 이렇게 극과 극의 디자인들이 산재해 있어도 되는 겁니다. CB와 일할 땐 브랜드의 통일성을 위해 라인업의 규칙을 철저히 맞췄습니다."패턴실장은 고개를 내저으며 테이블 위 샘플 하나를 가리켰다. 익숙한 정형적 구조의 아우터는 완벽하게 뽑혀 나온 반면, 비정형 드레스 샘플은 라인이 비틀어지고 원단이 볼품없이 집혀 입체감이 싹 죽어 있었다."게다가 저희는 늘 해오던 정석대로 봉제선을 잡고 완벽하게 작업했습니다. 그런데도 이 비정형 피스들은 옷이 살기는커녕 원단이 울어버려요. 이대로 샘플을 내봤자 옷 모양이 전혀 안 잡힙니다."패턴실장의 뼈있는 지적에 지수가 나란히 서서 샘플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그럼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해보시죠."지수의 담담한 제안에 패턴실장의 눈썹이 씰룩였다."다른 방식이요? 저희는 수십 년간 항상 이렇게만 일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내노라하는 브랜드들도 다 이 봉제 방식으로 패턴을 뽑아왔고요."자신들의 숙련된 방식을 부정당했다고 느낀 패턴실장의 목소리에 살짝 날이 섰다. 하지만 대표인 지수는 당황하지 않고 특유의 단단하고 우아한 태도로 중심을 지켰다. 오랫동안 한 브랜드의 통일된 규격과 관성에만 익숙해진 장인들에게, 제이아우라의 다채롭고 과감한 스펙트럼은 낯설 수밖에 없었다.
CB 메인 총괄실.깊은 정적 속에서 도진은 서류 봉투에 담겨 온 2차 수정 샘플의 최종 공임 견적서와 스케줄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수정 작업(Re-work)이 반복되며 눈덩이처럼 불어난 제작 단가, 그리고 야간 특근으로 치솟은 공임비. 하지만 도진을 진짜 옥죄어 오르는 것은 숫자가 아니었다. 머릿속 도면과 실물 사이에서 생겨나는 미세한 균열, 그리고 자신의 디렉팅을 현장으로 정확히 번역해 줄 파트너가 없다는 처절한 고립감이었다."대표님, 찰스 디렉터님 오셨습니다."정지상 실장의 안내로 들어온 찰스 킴은 여전히 도진의 눈치를 살짝 보면서도, 2차 샘플 사진을 슬그머니 탁자 위에 내밀었다."대표님, 2차 샘플 최종 피팅 사진입니다. 메탈 큐브 디테일을 약간 다듬었더니 라인이 훨씬 정갈해졌습니다. 이 정도면 스케줄대로 진행해도…….""이렇게 교묘하게 숨기면 내가 모를 줄 알았습니까?"도진의 서늘한 목소리가 찰스의 말을 단칼에 베어냈다.도진의 시선이 사진 속 수트의 비대칭 라펠과 안쪽 절개선에 날카롭게 꽂혀 있었다. 찰스는 움칫하며 시선을 피했다. 지난번 1차 검수 때 자신의 고집을 드러냈다가 전량 폐기 당했던 터라, 이번에는 도진이 한눈에 알아보지 못하도록 미세한 스펙 조절인 척 디자인을 살짝 틀어놓았던 것이다."……대표님, 그건 수정한 게 아니라 실물 구현을 위한 미세 조정이었습니다.""미세 조정이 아니라 내 승인 없이 디테일을 슬쩍 뭉개놓은 겁니다."도진이 탁자 위에 사진을 차갑게 내던졌다."큐브 단추의 무게감을 줄이겠다고 안쪽 보강재를 임의로 빼버린 탓에 어깨선 착장감이 다 무너졌습니다. 카라 각도도 내가 분명히 5도 낮추라고 지시했던 스펙에서 슬그머니 올려놨더군요. 찰스 디렉터, 당신 눈에는 이게 눈가리고 아웅으로 넘어가질 것 같았습니
도진은 메인 집무실 탁자 위에 놓인 첫 번째 샘플들을 내려다보며 깊은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머릿속 3D 도면과 붉은 펜으로 그어낸 스펙상으로는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했다. 하지만 실물로 구현되어 돌아온 착장들은 어딘가 묘하게 둔탁했고, 도진이 추구하는 절제된 선이 살지 못한 채 어정쩡하게 겉돌고 있었다."……대표님, 아무래도 실물 샘플링 과정에서 디테일 조정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제가 찰스 디렉터와 함께 협력업체를 직접 방문해서 하나하나 확인하고 수정해 오겠습니다."정지상 실장이 난처한 기색을 내비치며 수습에 나섰다. 도진은 차갑게 고개를 끄덕이며 전권을 맡겼다.그러나 그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샘플업체를 찾아간 찰스 킴은 정지상 실장과 업체 관계자들 앞에서 도진이 눈치채기 힘든 미세한 디테일들을 슬그머니 자신의 취향대로 수정하기 시작했다. 도진이 지정해 둔 절제된 카라 각도를 미세하게 틀고, 큐브 단추의 위치와 부속 구조를 자신의 파격적인 감각에 맞추어 변형시킨 것이었다.며칠 뒤, 그렇게 수정되어 들어온 완성본을 최종 검수하던 도진의 얼굴이 차갑게 일그러졌다."……이게 뭡니까?"도진의 서늘한 분노가 회의실을 감쌌다."내가 승인했던 디테일과 확연히 다릅니다. 카라 각도부터 부자재 위치까지 전부 변형되어 있잖습니까!"그러자 현장에 있던 샘플업체 관계자가 당황하며 정지상 실장과 찰스를 번갈아 보았다."저, 대표님…… 저희는 총괄 디렉터이신 찰스 킴 님이 현장에서 지시하신 대로 진행했을 뿐입니다.""생각만 했던 디자인을 실물로 바꿀 때 생기는 당연한 차이입니다, 대표님."찰스가 아무렇지도 않게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받았다."도면 위의 수치만 고집하면 옷이 딱딱해집니다. 실
제이아우라 메인 회의실.탁자 위에는 실물 원단 스와치와 수십 장의 디자인 스케치, 그리고 유진이 작업한 주얼리 라인의 샘플들이 빼곡하게 늘어서 있었다. 회의실 안에는 CB 출신의 엘리트 디자이너들부터 중소 브랜드에서 실전을 구르다 온 디자이너, 테일러, 유진, 그리고 총괄 지나까지 제이아우라의 전 구성원이 모여앉아 첫 메인 컬렉션 픽 회의를 진행 중이었다.상석에 앉은 한 사람이 붉은 펜을 들고 독단적으로 픽과 드롭을 가려내던 CB의 회의 방식과는 시작부터 달랐다. 이곳에서는 스케치 한 장이 올려질 때마다 자유로운 질문과 토론이 쏟아져 나왔다.첫 타자는 CB 출신의 디자이너가 제출한 아우터 라인이었다. 군더더기 없는 실루엣과 고급스러운 마감이 눈길을 끌었지만, 테이블 여기저기서 조심스러운 의견이 터져 나왔다."라인은 깔끔한데……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드네요.""맞아요. 선도 매끄럽고 원단 선택도 나쁘지 않지만, CB 특유의 정형화된 틀이 여전히 남아있어요."지수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회의실의 흐름에 동조했다."매끈하지만 제이아우라만의 색깔보다는 기존 기성 브랜드의 잔재가 더 크게 느껴져요. 우리 브랜드의 첫 얼굴로 내세우기엔 아쉬움이 남네요."결국 디자이너 본인조차 수긍하며 스케치는 드롭되었다. 겉만 번지르르하고 영혼이 빠진 디자인들이 팀원들의 공통된 안목 아래 자연스럽게 가려져 갔다.그때, 중소 브랜드 출신의 젊은 디자이너가 낸 스케치 한 장이 올려졌다. 실전 현장에서 구르며 깎아낸 감각적인 네크라인과 소매 디테일이 돋보였지만, 의상 단독으로는 살짝 빈틈이 보여 다들 고개를 갸웃거리던 참이었다.그때 유진이 눈을 반짝이며 테이블 한쪽에 놓인 주얼리 샘플을 집어 들었다. 바로 자신이 제이아우라의 대중성을 위해 기획한 주얼리 라인, '호프(HOPE)'의 시안이었다."어? 잠시만
CB 대회의실의 차가운 정적 속, 테이블 위에는 찰스 킴과 외부 디자이너 팀이 밤을 새워 수정해 온 메인 컬렉션 스케치 패널들이 빽빽하게 깔려 있었다."다시 제출한 스케치들입니다, 대표님."상석에 앉은 도진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테이블 위를 천천히 쓸어내리는 그의 손가락 끝에 디자이너들의 침이 바짝 말라갔다.도진이 마침내 첫 번째 스케치 패널을 집어 들었다. 찰스 킴이 제안한 메인 아우터 라인이었다. 지난 회의 때의 과격한 비대칭 절개선은 대폭 수정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카라와 어깨선 라인에 찰스 특유의 뾰족하고 날카로운 디테일이 남아있었다."찰스.""예, 대표님.""어제보다 훨씬 낫군."도진의 입에서 의외의 긍정이 나오자 찰스 킴의 어깨가 슬며시 올라갔다. 하지만 이어진 도진의 말은 어김없이 칼날 같았다."하지만 이 트위드 소재 매치는 빼. CB의 클래식 라펠에 거친 트위드를 얹으면 오버핏이 아니라 그냥 옷이 무거워 보여. 원단은 우리가 기존에 쓰던 160수 울 숄더로 가고, 대신 당신이 쓴 이 비대칭 카라 각도를 5도만 낮춰서 봉제선 안으로 숨겨. 그러면 걸을 때만 당신의 개성이 살짝 비칠 테니까."도진은 망설임 없이 붉은색 펜으로 스케치 위에 수정선을 쓱 그었다. 도진의 손끝이 지나갈 때마다, 겉돌던 찰스의 개성이 CB라는 단단한 틀 안으로 절묘하게 이식되어 갔다."이 메인 아우터 피스는 승인(Pick)이다. 방금 고친 스펙대로 패턴실에 넘겨.""……알겠습니다."자존심 센 찰스조차 군말을 할 수 없었다. 도진의 피드백은 감정적인 꼬투리가 아니라, 옷의 구조와 상업성, 그리고 브랜드의 정체성을 정확히 꿰뚫어 보는 압도적인 안목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었다.이어서 신입 및 경력 디자이너들이 가져온 스케치들의 검수가 숨 가쁘게 이어
같은 시각, 제이아우라 대회의실의 공기는 CB와는 또 다른 의미로 뜨겁게 과열되어 있었다.제이아우라가 브랜드의 명운을 걸고 처음으로 내놓는 ‘여성복 메인 라인’의 첫 기획 회의. 총괄 책임자인 지나 수석과 CB 등 대형 브랜드 출신의 이직 디자이너들, 그리고 중소 패션 업체 출신의 현장파 디자이너들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신입 디자이너들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눈치만 살피는 중이었다."지나 수석님, 오트쿠튀르 감성은 명품관 팝업 행사에서나 먹히는 겁니다! 저희가 현장에서 굴러라며 체득한 건 시장에서 당장 매출을 찍어내는 '입을 수 있는 옷(Wearable Look)'이에요. 첫 컬렉션부터 이렇게 웅장한 드레스 라인과 하이엔드 테일러링만 고집하시면 대중성은 어디서 찾습니까?"중소 브랜드 팀장 출신의 이직 디자이너가 시안을 탁자에 툭 던지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프랑스 유명 패션하우스 출신이자 엘리제의 수제자인 지나가 차가운 눈빛으로 응수했다."대중성이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스파(SPA) 브랜드 스타일을 베껴 오자는 말씀인가요? 유진 씨의 '호프' 라인이 이미 주얼리에서 대중적 매출을 든든하게 견인하고 있고, 남성복 역시 정갈한 클래식 수트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여성복 메인 라인은 제이아우라라는 브랜드의 수준과 우아함을 증명하는 격조 높은 기둥이 되어줘야 해요. 시작부터 타협하면 브랜드 가치는 그대로 하향 평준화됩니다.""타협이 아니라 생존입니다! 고고한 프리미엄만 찾다가 재고 싸이고 브랜드 휘청이는 거 한순간이에요!""시장의 눈높이에 맞춘다는 핑계로 평범한 기성복을 내놓을 거라면, 바이어들이 왜 굳이 제이아우라의 여성복을 찾겠습니까?"실크와 트위드, 스트리트 감성과 드레스 라인이 한데 엉킨 무드보드 위로 날 선 언성들이 오갔다. 서로 다른 패션 현장에서 뼈가
도진은 아침 6시가 넘어서야 옷을 갈아입기 우해 집에 들어왔다.주방에서는 가정부가 무미건조한 소리를 내면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지수가 현관까지 뛰어나와 "여보 왔어?"라며 겉옷을 받아 들었을 시간이었다. 밤새 고생했다며 미리 따뜻한 물을 받아둔 욕조로 그를 안내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아침은 달랐다. 거실은 적막했고 욕조는 차갑게 비어 있었다." 이 사람, 어디 갔어요?" 도진의 물음에 가정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사장님 오셨어요? 사모님은 주무시는지 방에서 안 나오시네요."그말을
지수는 도전에게 연락하기를 포기하고 스스로 119를 불렀다. 하지만 출산이 임막한 임산부처럼 부푼 배때문에 혼자서 움직이는 것조차 무리였다. 지수는 필사적으로 옆방에 잠든 가정부를 불렀다."아줌마 아줌마...! 하아, 남 좀... 도와주세요." 하지만 돌아온 것은 문트에 타고 넘고오는 가정부의 코고는 소리뿐이었다. 이것이 이 집에서 지수의 위치였다. 남편의 무관심 속에 고용인에게조차 무시당하는 철저한 그림자 같은 아내.지수는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하지만 누구에게 연락을 해야 할지 알수 없었다. K국에 있는 부모님이나 오빠에
평번한 여대생이었던 '이지수'의 세상은 '강도진'은 만나고 완전히 변했다.언제나 부모님과 오빠의 과잉보호 속에 기사님이 태워 주시는 차와 가정부의 가사 관리 속에만있던 지수에서 생애 처음으로 모든일은 스스로 하는 생활은 힘들고 신기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큰차가 아닌 작은차에 적응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새로운 친구도 만날겸 지수가 타고다니는 경차 동호회에 가입하였다. 그곳에서 지수는 스물둘의 강도진을 만났다. 도진은 185의 훤칠한 키에 다부진 어깨, 오똑한 콧날에 강아지처
"기쁘지... 않아?" 수진의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에 도진은 굳어있던 안면 근육을 억지로 끌어올렸다. 껍데기뿐인 미소가 그의 얼굴에 기괴하게 자리 잡았다. "당연히 기쁘지. 내일 병원 갔다가 아기용품부터 보러 가자. 전에 네가 갖고 싶다던 한정판 가방도 사줄게." 그의 다정한 음성에 수진은 안심한 듯 도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도진은 그녀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며 입안의 쓴 침을 삼켰다. 수진과 밀회를 즐기면서도 잠자리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때마다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피임을 챙겼던 자신이었다. '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