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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화 심해의 거상

Penulis: 릴리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5-15 17:00:11

진우의 사무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정적이 감돌았다. 그러나 그 정적은 평화가 아닌, 거대한 폭풍을 앞둔 바다의 침묵이었다. 밤새 도진의 복잡하게 얽힌 어둠의 자금을 추적하던 사라는 이른 새벽에야 푄 현상처럼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했고, '블루 오션'의 덫을 더욱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박성재와 김철수는 이미 외근을 나간 뒤였다.

진우는 홀로 남은 사무실에서 모니터 속 명멸하는 숫자들을 응시했다. 지수가 남겨준 RV의 시드머니 300억. 이 자금은 단순한 숫자의 나열이 아니었다. 도진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지수가 걸어온 처절한 인내와, 진우가 아이들을 되찾기 위해 지불해야 할 복수의 판돈이었다.

"보스, 요즘 월가와 H국의 자금 흐름이 심상치 않아."

에너지 드링크를 생수 마시듯 들이켜던 이현이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진우를 불렀다. 이현의 자금 흐름 파악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특출했다. 시장의 미세한 떨림만으로도 거대한 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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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장 잔인한 축복   71화 장인의 궤(櫃)

    익선동의 낡은 기와지붕들이 서로 어깨를 맞댄 좁은 골목 끝. 지수는 빛바랜 나무 대문 앞에 멈춰 섰다. 대문을 밀고 들어서자 쾨쾨한 금속 냄새와 은은한 차 향이 뒤섞인 박종식 장인의 공방이 나타났다.“이제 의뢰는 받지 않습니다. 뉘신지 몰라도 돌아가시오.”화덕 앞에서 미세한 정으로 은선을 두드리던 박 장인이 고개를 들지도 않은 채 툭 내뱉었다. 지수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그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나가지도, 그렇다고 입을 열지도 않는 지수의 묵직한 기척에 박 장인이 결국 신경질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어르신의 오랜 숙원을 풀 답을 가지고 왔습니다."지수의 당돌한 한마디에 박 장인의 미간이 일그러졌다."내 오랜 숙원? 어린 것이 뭘 안다고 감히 입을 놀리는 게야!"지수는 대답 대신 박 장인의 작업대 구석, 먼지가 쌓인 채 방치된 파편으로 시선을 옮겼다. 박 장인의 시선 또한 자연스레 자신이 수십 년째 풀지 못한 고대 비녀 조각에 머물렀다."어르신, 저건 붙이려 할수록 계속 부러질 겁니다. 금속의 피로도가 이미 한계를 넘어섰거든요. 현대 주얼리의 '레이저 정밀 용접'과 '냉간 압착' 기법을 섞어서 지지대를 안으로 숨기면, 겉으로는 은입사의 결을 유지하면서도 형태를 지탱할 수 있습니다."순간, 박 장인의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수많은 전수자가 다녀갔지만, 누구도 이 파편을 '예술적 혼'이 아닌 '금속의 성질'로 접근한 적은 없었다."애송이가 어디서 잔재주를 좀 배운 모양이구나. 지금 그것으로 나를 가르치려 드는 게냐!""맞습니다, 어르신. 제 미천한 실력으로는 이 유물의 깊이를 감히 헤아릴 수 없습니다. 다만, 현대 세공의 김인식 장인께서 제게 이런 조언을 해주셨습니다.""……김인식? 그 꼬장꼬장한 노인네가 너한테 가르침을 줬다고?""네. 선생님께서도 우리 전통의 결을 현대 기술로

  • 가장 잔인한 축복   70화 'Z'의 계약파기

    도진이 비명을 지르며 집을 뛰쳐나간 뒤, 거실에 남은 정적은 지수에게 완벽한 안식이었다. 지수는 바닥에 버려진 입양 동의서를 우아하게 주워 모았다. 도진의 서명이 채 완성되지 않은 서류 조각들을 보며 지수는 서늘하게 미소 지었다. 그는 지금쯤 존재하지도 않는 ‘Z’의 마음을 돌리려 필사적이겠지만, 이미 태양은 졌고 그의 제국은 내부에서부터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다.도진은 미친 듯이 차를 몰아 ‘Z’의 법인 대리인들이 묵고 있는 호텔로 향했다. 운전대를 잡은 손은 축축한 땀으로 젖어 있었고, 비서 태준에게 연신 전화를 걸어 "어떻게든 미팅을 잡아보라"며 고함을 질러댔다. 200억을 쏟아붓고 얻어낸 '새로운 태양'의 도안이 아직 품 안에 있었다. 이 계약이 파기되는 순간, 그 도안은 종잇조각이 되고 자신은 업계에서 영원히 매장될 터였다.“오해입니다! 그 사진은 악의적으로 연출된 거예요!”호텔 로비에서 만난 대리인들에게 도진은 비굴할 정도로 허리를 굽히며 매달렸다. 평소의 오만함은 온데간데없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서늘한 눈빛과 단호한 목소리였다.“Z는 예술적 가치만큼 파트너의 도덕성을 중시합니다. 미성년자 스폰서 추문은 협상의 대상이 아닙니다.”대리인은 도진이 내미는 서류조차 훑어보지 않은 채 계약 해지 통보서 확정본을 건넸다. '일방적이고 즉각적인 계약 파기'. 문구는 짧고 명확했다.“잠깐만요! 내가 계약금을 얼마나 냈는데, 이럴 순 없지!”도진의 절규에도 그들은 돌아보지 않았다. 화려했던 ‘Z’와의 파트너십은 고작 사진 몇 장에 흔적도 없이 타버렸다. 무너져 내리는 호텔 로비 한복판에서 도진은 깨달았다. 자신이 지켰다고 믿었던 모든 것이 모래성처럼 씻겨 내려가고 있다는 사실을.같은 시각, 지수는 우아하게 옷을 갈아입으며 자신의 진짜 수확을 위해 강 여사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여사님, 오랜만에 뵙습니다."지수는

  • 가장 잔인한 축복   69화 새로운 스캔들

    도진은 ‘Z’의 새로운 디자인 초안이 담긴 메일을 확인하고 기분 좋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귀가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지옥 끝에 서 있었으나, 200억이라는 거금을 치르고 나니 세상은 다시 그의 발밑에 놓인 듯했다. 비록 성수동 부지와 스타게이트를 잃었지만, 스캔들은 잠잠해졌고 새로운 라인업인 ‘새로운 태양’의 도안은 그 어느 때보다 완벽했다. 사라 킴에게 스타게이트를 인계하며 보여준 자신의 건재함과 여유까지 생각하면, 오늘은 완벽한 승리의 하루여야 했다.“지수 씨, 나 왔어. 오늘 ‘Z’한테 연락이 왔는데 말이야…… 디자인이 예술이야. 이걸로 우린 다시 비상하는 거지.”자랑스럽게 입을 열며 거실로 들어선 도진의 말이 뚝 끊겼다. 거실에는 불도 켜지지 않은 채 지수가 소파에 정좌하고 앉아 있었다. 커튼 사이로 스며든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 지수의 그림자가 유난히 길고 차갑게 늘어져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느껴지는 지수의 서늘한 기운에 도진은 침을 꿀꺽 삼켰다. 테이블 위에는 낯익은 사진 몇 장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이게 뭐야? 왜 불도 안 켜고 이러고 있어?”도진이 의아해하며 테이블 위의 사진을 집어 들었다. 어제 스타게이트 연습실에서 무명 모델 미나의 어깨를 감싸 쥐고 머리를 쓰다듬던 자신의 모습이었다. 도진은 피식 웃으며 사진을 다시 던져 놓았다.“겨우 이런 거 때문에 그래? 이건 어제 사라 씨한테 인수 인계해주다가 애들 격려 좀 해준 거야. 사진 참 묘하게 찍혔네.”“격려요?”지수의 목소리는 낮고 가라앉아 있었다. 평소의 다정함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깊은 멸시와 지독한 피로감만이 서려 있었다.“내 명예와 우리 가정을 지키겠다며 200억이라는 피 같은 돈을 쏟아부은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 돈이 아깝지도 않게 또 이런 빌미를 제공해요? 당신은 지금 우리를 시궁창으로 밀어 넣은 거예요.”

  • 가장 잔인한 축복   68화. 아빠라는 이름의 방패

    진우는 수진과 이혼한 뒤 약 두 달 만에야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아이들을 다시 품에 안을 수 있었다. 유치원 복도 저 끝에서 아빠를 발견하고 달려와 안긴 아이들의 무게는 예전보다 가벼워진 듯해 진우의 가슴 한구석이 날카로운 것에 베인 듯 저릿했다. 품에 들어온 아이들의 작은 몸에서 느껴지는 온기만이 그간의 그리움을 겨우 달래주었다.현수와 현지는 진우와 함께 지낼 때보다 훨씬 철저하게 관리받는 모습이었다. 칼같이 다림질되어 주름 하나 없는 원생복, 은행원이었던 진우가 선뜻 사주기 힘들 정도로 비싼 해외 명품 브랜드의 가방과 구두들. 수진이 아이들을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증명하는 장식품으로 활용하고 있음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하지만 겉모습은 화려했으나 아이들 특유의 천진난만한 생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항상 사랑받는 아이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던 당당함 대신,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작은 소리에도 움찔거리는 아이들이 그곳에 남아 있었다. 진우는 자신이 자리를 비운 60일의 시간 동안 아이들이 어떤 공기를 견뎌왔는지, 수진의 히스테리와 강박 속에서 얼마나 숨을 죽였을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진우는 차가운 유치원 복도 바닥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현수와 눈을 맞췄다. 아이는 친구를 밀쳤다는 공포와 ‘내연녀의 자식’이라며 쏟아진 비난에 상처 입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온몸을 떨고 있었다. 진우는 떨리는 아이의 손을 단단히 맞잡고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현수야, 아빠가 늦어서 미안해. 하지만 현수야, 아무리 화가 나도 친구를 밀친 건 잘못이야. 아빠는 우리 현수가 용기 있게 자기 잘못을 사과할 줄 아는 멋진 형아라고 믿어. 아빠랑 같이 사과하러 갈까?”진우는 다친 아이와 그 부모 앞에 정중히 고개를 숙여 진심 어린 사과를 전했다.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대신, 이성적이고 품위 있게 상황을 정리하는 진우의 태도는 유치원 부모들 사이에서 금세 화제가 되었다. ‘아빠 없는 아이’라며 은근히 현수를

  • 가장 잔인한 축복   67화 평온이라는 이름의 올가미

    200억이라는 거금을 쏟아붓고 나서야 세상은 다시 고요해졌다. 집무실을 가득 채웠던 비난의 화살들이 연기처럼 사라진 밤, 도진은 천근만근인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열면서도 도진의 머릿속은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지수에게 이 추잡한 스캔들을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평소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완벽을 추구하던 그녀의 차가운 시선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구두를 벗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릴 정도로 도진은 위축되어 있었다.하지만 어두운 거실에서 그를 맞이한 지수의 얼굴에는 예상했던 분노도, 멸시의 기색도 없었다. 오히려 그녀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차 한 잔을 내밀며 도진의 굳은 어깨를 가볍게 다독였다.“고생 많았어요. 당신의 선의를 사람들이 그렇게 비겁하게 이용하다니…… 속상해서 어떻게 해요.”도진은 제 귀를 의심했다. 지수는 수진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의심하기는커녕, 도진이 억울하게 모함을 당한 것이라며 그를 철저히 두둔하고 있었다.“난 당신 믿어요. 그저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려던 것뿐인데, 세상이 참 잔인하네요. 스캔들 처리하느라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내가 다 마음이 아파요.”지수의 나직하고 부드러운 위로에 도진은 무장해제되었다. 죄책감과 압박감으로 짓눌렸던 가슴이 뜨거운 안도감으로 차올랐다. 역시 지수뿐이다. 자신을 온전히 이해해 주는 사람은 세상에 그녀밖에 없다는 오만과 착각이 도진을 감쌌다. 하지만 그 달콤한 평온함은 찰나에 불과했다. 지수는 우아한 미소를 잃지 않은 채, 테이블 위에 서류 한 장을 부드럽게 밀어 놓았다. 그것은 지수가 직접 입양 기관에서 선택한 아이, 예인의 입양 동의서였다.“당신이 입양을 제안했을 때 깊이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번 스캔들로 확실하게 알았어요. 우리에게 아이가 있는 완벽한 가족이라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스캔들은

  • 가장 잔인한 축복   66화 수습

    도진은 하염없이 흐르는 시계만 바라봤다. 사실 '스타게이트'를 넘기겠다는 결정은 사라의 제안을 받자마자 끝난 상태였다. 다만 조급함을 숨기고 어떻게든 몸값을 높여 흥정을 주도하겠다는 얄팍한 계산만이 대가리를 굴리고 있을 뿐이었다.하지만 시간은 도진의 편이 아니었다. 자정을 향해 달려가는 초침이 그의 목을 옥죄었다. 마침내 자정을 단 5분 앞둔 시각, 도진은 짓눌린 한숨을 뱉으며 다시 전화를 들었다. 신호음이 가기도 전에 사라가 전화를 받았다."제가 스타게이트를 팔지 않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도진이 먼저 전화를 건 순간부터 이미 흥정의 우위는 사라에게 넘어간 상태였다. 수화기 너머로 아무런 대답 없이 서늘한 정적만이 흐르자, 초조해진 도진이 헛기침을 하며 구구절절 말을 덧붙였다.“그곳은 제 시간과 노력이 꽤 녹아 있는 곳이라…….”“50억.”도진의 옹졸한 핑계를 단숨에 자르고 들어온 것은 차가운 숫자였다.“그 정도면 껍데기뿐인 회사치고는 상당히 높은 가격이라고 생각하는데요?”사라의 제시액에 도진의 머릿속 계산기가 미친 듯이 돌아갔다. 한남동 독서당로의 작은 건물을 끼고 있는 스타게이트는 B, C급 모델들이 주류였지만 최근 몇몇이 해외에서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건물과 미래 가치를 생각해서 100억으로 하시죠.” “대표님 욕심이 과하시네요. 정말 그곳이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보세요?”사라의 일침에 도진은 자신이 철저히 ‘을’임을 상기했다. 그는 지수 때문에 끊었던 담배를 다시 입에 물었다.“실수했습니다. 80억. 제가 양보할 최대치입니다.” “70억. 더는 드릴 수 없습니다.”사라의 최후통첩에 도진은 빠르게 계산을 마쳤다. 가용 현금 50억에 매각 대금 70억이면 120억이 해결된다. 150억 위약금 중 8할을 해결하는 순간이었다. 도진은 무력하게 담배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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