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5화.
은별은 남자로 인해 제 심장이 반응하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일부러 쌀쌀맞게 말했다.
“신경 쓰지 말고, 계산이나 해줘요.”
더 이상의 간섭은 너에게 권리가 없다는 듯 그녀가 pay 결제를 위해 핸드폰을 건넸다.
“손, 다쳤네요.”
남자의 시선이 은별의 손에 닿았다. 그의 미간이 잘게 구겨져 갔다.
어제, 그러니까 깨진 유리 파편에 다친 것이 아니었다.
선주와 맥주를 마시고 집으로 돌아와서 혼술을 한다고 고추참치 캔 뚜껑을 따다가 생긴 불상사였다.
정확히 말하면 오른손 검지의 윗부분에 밴드가 붙여져 있었다.
“어쩌다 그랬어요?”
은별이 눈을 들어 남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오늘 꽤 많은 간섭을 한다.
그의 눈에 걱정이 서렸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나간 거겠지?
“어쩌다 보니 그랬어요.”
은별의 말에 남자가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입술을 꾹 다문 채 핸드폰을 받아들었다.
그녀는 계산을 마치고 항상 앉던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가 카페라테가 든 트레이를 들고 테이블로 다가왔다.
항상 그렇듯 남자는 투명한 유리잔에 얼음을 가득 넣어 물을 준비해왔다. 초콜릿과 함께 말이다.
얼음물과 초콜릿.
카페 사장은 하지 않는 어린 남자만의 서비스였다.
은별은 얼음이 들어간 물을 잘 마시지 않는다.
한여름에도 따뜻한 음료만 마시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남자의 호의가 싫지 않았다.
은별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카페라테를 마시기 전, 찬 얼음물로 입을 축였다.
딸그락 소리를 내며 그녀의 입술에 닿는 얼음조각이 서늘하기보다 싱그러운 느낌이었다.
은별은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성 파일을 들으며 초고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카페 문이 열리며 사장이 들어왔다.
은별은 문 열리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저를 보고 환하게 미소 짓는 사장과 눈이 마주쳤다.
“앗, 아야!”
잠깐 한눈을 판 사이, 아픈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눌러버렸나 보다.
은별이 따끔거리는 통증에 이맛살을 살짝 찌푸렸다.
사장은 서 있던 자리에서 고개를 기울여 은별을 관찰하더니, 잠시 뒤 보폭을 빨리해 그녀 앞에 섰다.
“손가락 다치셨어요? 혹시, 어제 유리 조각에 다치신 거예요?”
“아, 아니에요. 유리 조각 만지지도 않았는걸요. 집에서 다쳤어요.”
어제의 고추참치 캔이 오늘 여러 가지로 사람을 곤란한 상황으로 몰고 갔다.
“어? 피가….”
“네? 어머!”
생각보다 키보드를 세게 내리쳤는지 검지에 붙여진 밴드 위로 새빨간 피가 세워 나왔다.
“잠시만요, 상비용 밴드가 있을 거예요.”
사장이 황급히 bar 안으로 들어갔다. 이내 서랍을 열어 주섬주섬 뭔가를 찾았다.
잠시 뒤, 손에 밴드를 들고 와서 은별에게 건넸다.
“이거 쓰세요.”
“아, 고마워요. 괜찮은데….”
은별은 당황한 낯빛을 보이면서도 사장이 건네는 밴드를 받았다.
사장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은별에게 물었다.
“저기, 괜찮으시면 제가 붙여드릴까요?”
“네?”
“아무래도 손가락을 다치셔서 혼자 붙이기 불편할 것 같아서요.”
“아, 아니. 아,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좀 멍청해 보이는 대답이 은별의 입에서 나왔다.
사장은 망설임 없이 밴드를 가져갔다. 밴드 껍질을 이제 막 벗겨낼 때였다.
“형.”
카페를 울리는 남자의 묵직한 음성에 사장이 일순 행동을 멈췄다.
사장이 고개만 돌려 남자를 바라봤다.
“응. 왜?”
“전화 와. 받아봐.”
남자의 손에는 사장의 핸드폰이 들려 있었다.
사장이 빛을 발하는 핸드폰을 바라보다 남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잠깐, 이거 붙이고.”
말을 마친 사장의 입꼬리가 한쪽으로 살짝 올라간 듯했다. 마치 남자의 의도를 알고 있다는 듯.
사장이 밴드를 들어 속껍질을 떼어내는 아주 짧은 시간, 순식간에 테이블로 다가온 남자가 밴드를 휙 하니 낚아채 갔다.
사장의 손, 그 빈자리에는 밴드 대신 핸드폰이 올려졌다.
“내가 할게. 혜리한테 온 전화야.”
혜리라는 말에 사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내 그는 핸드폰을 들고 무거워 보이는 발걸음으로 카페 밖으로 나갔다.
은별의 시선이 자연스레 사장의 뒷모습에 고정되었을 때다.
“손 줘봐요.”
조금은 화가 난 듯한 날 선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붙여 줄게요. 손, 이리 내요.”
남자는 앳되어 보이는 얼굴과는 달리 크고 굵직한 손을 그녀 앞에 불쑥 내밀었다.
은별은 홀리듯 그에게 다친 손을 건넸다.
치료라고 말하기 민망한 밴드 교체의 시간이 끝날 때까지, 은별은 숨을 꾹 참아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으니까.
164화.진료실을 나온 두 사람은 집으로 향했다.시간은 오후를 훌쩍 넘어있었다.집에 도착하자마자 은별은 곧장 2층 침실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많이 피곤해?”재훈이 누워있는 은별을 살피며 물었다.“조금….”피곤하다기보다 반짝이의 심장 소리를 듣지 못해선지 기운이 없었다.“잘래?”“응. 그런데 여보는 내일부터 회사 출근하는 거지?”은별이 졸린 표정으로 물었다.“당신이 원하면 당분간 회사 안 나가려고.”“그래도 돼?”“안 될 게 뭐 있나. 회사 망하면 또 차리면 되지.”“뭐야, 훗. 이상한 말 할 거면 나 잘래.”은별은 재훈의 장난말에 빙긋 웃고는 서서히 눈을 감았다.“그래, 자. 아무 걱정하지 말고. 2주 뒤에 반짝이가 쿵쾅쿵쾅하며 인사할 거야, 분명히.”재훈은 은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그녀가 깊은 잠이 들 때까지 그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늦은 저녁.은별이 눈을 떴을 때 재훈은 제 옆에서 몸을 엎드린 채로 자고 있었다.고개는 은별을 향해 있었는데, 그의 손에는 오늘 산부인과에서 받은 반짝이의 초음파 사진이 있었다.그 초음파 사진이 그의 얼굴 쪽에 놓인 것을 보니, 아마도 한참을 들여다보다 그도 모르게 잠이 든 것 같았다.은별은 몸을 일으켜 앉아 재훈의 얼굴에 있는 안경을 살며시 빼내었다. 그러곤 안경을 협탁 위에 올려놓았다.자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순둥이 강아지 같았다.26살에 아이 아빠가 된 정재훈을 은별이 찬찬히 훑었다.일주일 동안 그와 함께 지내면서 은별은 그 어느 때보다도 극진한 사랑을 받았다.씻고, 입고, 먹는 것- 며칠 못가 재훈은 아주머니 앞에서도 은별의 식사 시중을 들었다.- 심지어 그녀가 잠드는 순간까지 함께하면서 은별을 보살폈다.반짝이를 위해서라는 이유로 잘 때는 자장가를 불러줬는데, ‘반짝반짝 작은 별’만 끊임없이 불러대 종국엔 은별이 귀를 막는 사태까지 다다랐다.그제야 재훈은 자장가를 바꿨다.그 바뀐 자장가가 ‘Twinkle Twinkle Little Star’였다.
163화.“방금 너도, 아니 여보도 쓰레기통에 치약 던졌잖아. 그거 다 내 눈을 통해서 반짝이가 보는 거야.”“아… 미안, 앞으론 나도 안 그럴게.”쪽, 재훈의 입술이 은별의 볼에 닿았다 떨어졌다.재훈이 은별을 돌려세워 저를 보게 했다.그가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아 안았다. 두 사람의 몸이 맞닿았다.재훈이 그윽한 눈으로 은별을 내려다보았다. 은별 또한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은별아.”“응.”“좋은 남편 되도록 노력할게. 간혹 실수할 때가 있겠지만, 내 진심은 아니야. 내가 당신 너무 사랑해서 그러는 거야. 알지?”“응, 나도 이제 여보한테 거짓말 안 할 거야.”“진짜?”재훈은 못 믿겠다는 얼굴로 일부러 과장되게 눈을 키우며 물었다.“진짜야. 좋은 아내, 좋은 엄마 되도록 노력할게. 약속해.”“와, 밥 안 먹도 배부르다.”“사랑해, 여보.”은별이 재훈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사랑을 고백했다.“갑자기 훅 들어오지.”재훈이 은별의 허리를 감쌌던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담았다.이번엔 그녀의 입술에 제 입술을 포갰다. 두 입술이 부드럽게 뭉개지며 하나가 되었다.재훈의 혀가 은별의 입술 사이를 파고들었다.한데 은별은 좀처럼 입술을 다문 채 열어주지는 않았다.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재훈이 은별에게서 입술을 뗐다.“왜 안 열어줘?”“키스하다가 구역질하면 어떡해.”걱정과 부끄러움이 섞인 얼굴로 은별이 말했다.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재훈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더니, 다시 제 손안에 은별의 얼굴을 가뒀다.“깊게 안 들어가. 살짝만 넣을 거야.”그 말과 동시에 다시금 재훈이 은별의 입안으로 진입을 시도했다.다행히도 이번엔 은별이 문을 열어주었다.재훈은 정말 달아오르는 혀를 살짝만 넣었다 빼고는 은별의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골고루 혀로 핥더니, 아쉬운 듯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살짝 집어넣었다. 쪽, 하는 소리와 함께 간질 맛 나는 모닝 키스를 마무리했다.짧은 키스만으로도 은별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재훈
162화.다음날, 아침.어제 은별이 쏟아냈던 눈물의 양이 작은 샘물을 이룰 정도로 많았다.퉁퉁 부운 눈으로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은별은 혼자가 아니었다.재훈이 그녀를 고요하면서도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깼어?”은별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넘기며 재훈이 말했다.그는 씻었는지 말끔한 모습이었다. 말끔한 얼굴과 다르게 옷은 평상복을 입고 있었다.“어. 출근, 안 했어?”의아한 눈빛으로 은별이 물었다.“응, 당분간 안 하려고. 반짝이랑 당신 안정될 때까지.”“그래도 괜찮아? 요즘 계속 바빴잖아.”“내가 대표인데, 이 정도 시간 못 뺄까. 걱정 마.”재훈은 은별의 둥근 이마에 키스하며 그녀를 안심시켰다.그때.똑. 똑.“식사하세요.”김 여사가 두 사람에게 아침을 먹으라고 말했다.재훈은 곧 내려가겠다고 대답한 후 은별을 데리고 욕실로 향했다.“내가 당신 씻겨줄게.”은별의 목에 수건을 걸어주며 재훈은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괘, 괜찮아. 내가 할게.”은별은 순간 네 살짜리 어린아이 대하듯 저를 대하는 재훈을 보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허락해 줘. 어차피 다음 주부터는 나도 출근해야 해. 그러면 이런 시간 갖기 힘들잖아.”옆으로 길게 뻗은 눈가를 접으며, 정재훈이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었다.“훗, 알겠어. 그 대신 세수까지만.”재훈의 즐거운 표정을 보니, 이러다간 그녀의 이까지 닦아줄 기세였다.“아쉽지만, 오케이.”곧이어 재훈은 부드러운 손길로 은별의 세안을 시작했다.은별이 자연스레 두 눈을 감았다.갓 태어난 아기를 다루듯 커다란 손이 조심스럽게 그녀의 얼굴을 오른쪽으로 한번, 왼쪽으로 한번 훑고 지나갔다.그 순서를 두어 번 반복하더니, 수건이 묶여 있는 목 부분을 마지막으로 닦아내었다. 이윽고 재훈은 은별을 저를 보게 돌려세웠다.수건을 풀어 물기가 묻은 그녀의 얼굴을 톡톡 하며 가볍게 닦아냈다.그의 손길은 상당히 능숙하고 정성스러웠다.“다 됐다. 뽀송뽀송해졌어.”“고마워.”“어디 보자.”“눈
161화.재훈이 은별을 부축하듯 껴안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현관에 들어서는 두 사람을 김 여사가 반갑게 맞았다.병원을 나서면서 재훈은 김 여사에게 자신과 은별이 같이 들어가니 식사를 차려달라 미리 말한 터였다.“오셨어요? 제가 저녁밥 따뜻하게 지워놨어요.”“네, 잘 먹겠습니다. 아주머니, 오늘은 이만 퇴근하셔도 돼요.”재훈이 김 여사에게 말했다.“벌써요?”김 여사가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퇴근 시간까지는 아직 한 시간 정도가 남아있었다.“오늘 이래저래 수고가 많으셨잖아요. 뒷정리는 제가 할게요.”“아, 네, 사장님. 근데 사모님, 괜찮으세요? 안색이….”김 여사가 힘없이 재훈에게 기대어 있는 은별을 보며 물었다.분명 오후에 외출할 때까지만 해도 안색이 밝았던 은별이었다.한데 저녁이 다 된 시간에 들어온 은별은 멍한 시선으로 기운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이 사람이 좀 피곤해서 그래요.”재훈이 대신 대답했다.김 여사는 안쓰러운 얼굴로 은별을 보며 편히 쉬라는 말을 하고는 곧장 퇴근을 했다.재훈이 은별의 어깨를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물었다.“음식 따뜻할 때 뭐 좀 먹을래?”“…응.”은별은 딱히 음식 생각이 없었으나, 뱃속의 아이를 생각해서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잠시 뒤.두 사람이 식탁에 나란히 앉았다.재훈은 항상 하던 대로 은별의 밥 위에 반찬들을 올려주었다.그렇다고 예전처럼, 강요하지는 않았다.은별에게 먹고 싶은 반찬을 물어보고 괜찮다고 하면 밥 위에 올렸다.은별은 속이 좋지 않았으나, 그것 또한 아이가 제 안에 존재한다는 의미였기에 고마운 마음으로 밥을 먹었다.그 모습을 재훈이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그 또한 초음파에서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실망이 큰 게 사실이었다.한데 의사에게 ‘유산’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그동안 자신이 은별의 몸을 함부로한 것에 대한 심한 죄책감이 몰려왔다.불과 어제만 해도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양껏 은별을 가졌었다.아이가 놀란 것은 아닐까. 그래서 모습을 보여주지 않나.
160화.“당신이 무슨 말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 당신도 아이도 절대 포기 안 해.”“재훈아, 그런 거 아니야.”“아니야? 진짜야?”은별의 말에 재훈은 놀란 얼굴을 하면서도 화색이 돌았다.그는 은별이 아이를 포기한다고 말할까 봐, 더는 말을 하지 못하게 끊어냈었다.그 말을 듣게 되면, 지금 이 상황에서 자신도 무슨 짓을 할지 몰랐으니까.재훈은 스스로가 두려웠다.“정말 그런 거 아니야. 나, 아이 포기하지 않아. 그런 걱정, 하지 마.”은별의 확답을 듣자, 재훈은 솟구치는 안도감에 와락, 은별을 껴안았다.“하아, 다행이다. 다행이야, 하아….”은별은 재훈의 어깨 위로 턱이 들린 채 그가 연신 쏟아내는 안도의 숨을 느꼈다.사실 그녀는 재훈에게 어제 자신의 행동에 대해 고백하려 했었다.어제부터 임신을 알고 있었다고.좋은 엄마가 될 자신이 없어서 너에게 잠시 숨긴 것뿐이라고.아이를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재훈아.”“어….”그가 여전히 그녀를 안은 채로 대답했다.“파리에서 일, 숨기고 사라져 버렸던 거 미안해.”“….”“너랑 결혼한 사실, 주변 사람들한테 말하지 않아서 미안해.”“….”“네가 아이 빨리 갖길 원했었는데, 같은 마음이 아니었어서 미안해.”“….”“여보, 아무래도 나, 아이 가진 것 같아.”“…!”은별을 품에 안고 있던 재훈은 그녀의 마지막 고백에 놀란 눈으로 그녀와 마주 보았다.안경 너머 수려하게 뻗은 아름다운 재훈의 눈이 은별의 눈에 가득 들어왔다가, 이내 흐릿해졌다.멈출 줄 모르는 눈물이 흘러내려 그녀의 얼굴을 순식간에 적셨다.이 고백이 이리도 어려웠을까.은별은 더는 제 남편, 정재훈에게 거짓을 말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아이를 위해서라도.좋은 엄마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제 뱃속의 아이에게 문제 앞에 회피하고 거짓을 말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그리고 아이의 아빠인, 자신이 사랑하는 남편, 정재훈을 위해서라도.재훈아, 우리가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사실
159화.재훈은 은별을 찾기 위해, 일부러 편의점에 차를 주차해 놓고 집으로 가는 인도를 빠르게 올라갔다.고급 빌라의 주택 단지라도 중간중간 골목들이 있었다. 그 골목 곳곳을 매의 눈으로 살피며 올라갈 때였다.그의 눈에 어깨를 들썩거리며 울고 있는 여자가 보였다.인도에 쭈그리고 앉아 얼굴을 묻고 우는 여자는 자세히 보지 않아도 자신의 아내, 고은별이었다.왜 저렇게 세상이 다 무너진 것처럼 울고 있는 것일까.그녀는 알고 있을까. 그녀가 임신한 상태일 수도 있다는 것을.그래서 저렇게 울고 있는 것일까.원하지 않은 아이가 생겨서….엄마도 저를 가졌을 때 저렇게 울었을까.원하지 않은 아이, 정재훈을 가져서.우느라 자신이 가까이 다가가도 모르는 아내, 고은별을 보며 재훈은 자신의 엄마를 덧씌웠다.아버지랑 살면서 평생 행복하지 못했던 엄마.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엄마가 원하는 사랑의 모양이 아니라서였다.결국에 엄마는 자신이 원하는 사랑의 모양을 찾아 떠났고, 사랑을 잃은 아버지는 화병으로 죽었다.그리고 자신은 미운 오리 새끼가 되었다.미운 오리 새끼는 나 하나로 충분해.내 아이에겐 절대 그런 전철을 밟지 않게 할 거야.그렇다면 지금 그가 해야 할 것은, 아버지와 정반대의 길을 가는 것이다.아내의 의사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휘둘렀던 남편이 아닌, 아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억압하지 않는 남편.내가 그런 남편이 된다면, 은별은 엄마와 다르게 내 옆에서 행복한 삶을 살지 않을까.우리의 아이를 낳아 사랑으로 키우면서, 평생 헤어지지 않고 사랑하며 살지 않을까.지금처럼 전혀 괜찮지 않은데도, 괜찮다고 거짓말하는 행동은 이제 안 하지 않을까.“당신은 이런 상황에서도 거짓말이지.”재훈은 쭈그려 앉아 있는 은별을 일으켜 세웠다.은별은 재훈에게 어깨가 붙들린 채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꽤 오랫동안 앉아 있었기에 심한 어지럼증을 느끼며 휘청거렸다.“윽.”“하아, 안 되겠다. 이러다가 기절하지.”순식간에 재훈은 은별을 들어 옆으로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