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4화.74화.2차 기형아 검사를 위해 마지막으로 채혈을 하고 대기실에 있는 현준에게 다가갔다.현주를 보고 자리에서 급하게 일어나던 현준이, 그녀가 앉을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준다.“누나, 선물이는 잘 크고 있대?”“어. 초음파상으로는 별 이상 없다고 하네.”“다행이다. 누나, 나 선물이 좀 봐도 돼?”“그럼. 자, 봐봐.”현주가 진료실에서 받아 온 초음파 사진을 현준에게 건넸다.“이게 눈이고, 이게 코, 이게 입이야. 신기하지? 후훗.”현주가 손으로 가리키는 초음파 사진을 현준이 뚫어지게 관찰했다.하지만 도통 선물이의 눈, 코, 입을 구별하기가 힘들었다.아무리 봐도 모르겠는데, 초음파 사진을 보며 행복해하는 현주를 보니, 현준 또한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현준은 자신이 이런저런 재미난 행동을 해도 현주가 예전처럼 웃질 않아 내심 걱정했었다.그런데 흑백의 알 수 없는 형태의 선물이를 보고 웃는 현주의 모습은 그저 아름다워 보였다.현준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 현주의 눈을 가리고 있는 앞머리를 쓸어 넘겨 주었다.갑작스러운 손길에도 현주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선물이의 초음파 사진에 정신이 팔린 듯했다.오히려 현준이 제 행동에 당황해하며 딴소리를 한다.“누나… 머리 많이 길었네. 미용실에 가봐야 할 것 같아.”“응? 그렇지? 그렇지 않아도 일할 때 불편하더라구.”“병원 나가면 미용실 갈까? 시간은 될 것 같은데….”그제야 현주가 초음파 사진에서 눈을 떼고 현준을 쳐다보더니,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그녀가 항상 웃길 바랐는데….이 순간, 저 미소에 왜이리 마음이 아플까. 현준은 그렇게 생각했다.잠시 후, 데스크에서 수납하는 현주에게 간호사의 설명이 이어졌다.“이현주 산모님, 최종 기형아 검사 결과는 일주일 정도 걸릴 거에요. 특이 사항 없으면 문자로 알려 드리니 다음 정기 검진 때 오시면 되고요. 혹시 결과에 이상 있으면, 담당 선생님이 직접 전화로 연락드릴 거에요.”간호사의 말을 잔뜩 긴장하며 듣고 있던 현
Last Updated: 2026-11-06
Chapter: 73화.73화.포근한 침대 위, 현주가 오랜만에 단잠을 자고 있었다.머리카락을 쓸어 넘겨 주는 봄 햇살 같은 부드러운 손길에 살며시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바로 눈앞에 준호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현주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그를 보고 커지는 현주의 눈동자에 놀라움과 반가움이 가득했다.“오, 오빠… 여길 어떻게 알고 왔어요?”“….”현주를 향해 빙긋이 웃기만 할 뿐 아무 말이 없는 준호다.“오빠…?”“….”“오빠, 무슨 말 좀 해봐요. 네?”“….”이어진 현주의 질문에도 준호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현주가 준호를 향해 다시 무어라 말하려는 순간.그녀를 향해 웃고 있던 준호의 얼굴이 갑자기 슬퍼지더니, 그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오빠…!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오빠! 말을 해봐요…! 무슨 일이에요? 왜 그래요…! 왜!”준호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이 답답한 현주가 소리쳤다. 그러곤 손을 뻗어 울고 있는 그의 얼굴을 만지려 하는 그 순간!준호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오빠!”현주가 비명과 같은 소리로 준호를 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식은땀이 그녀의 등줄기를 덮었다.펄떡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방 안을 둘러보니, 오래된 요 위에 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꿈이었다.똑! 똑! 똑!“누나! 무슨 일이야? 나 들어가도 돼?”방문 앞에서 자신을 부르는 다급한 현준의 목소리에 그제야 현실로 돌아온 현주다.“누나! 누나!”놀란 마음을 간신히 가라앉히며, 문밖에서 연신 저를 부르는 현준을 향해 입을 열었다.“…어. 들어와….”벌컥 소리와 함께 급하게 문이 열리더니, 현준이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방으로 성큼 들어섰다.“누나… 괜찮아?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아서….”“어? 어… 괜찮아. 꿈을 꿨나 봐… 놀라게 해서 미안해, 쭌.”어느새 현준이 현주에게 다가와 마주 앉더니,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핏기없이 하얗게 질린 현주의 얼굴을 근심스럽게 바라보았다.하, 무슨 꿈을 꾸었길래 비명 같은
Last Updated: 2026-11-06
Chapter: 72화.72화.한 달 만에 본 현주는 더 핼쑥해져 있었다.윤기 하나 없이 푸석거리는 얼굴, 여전히 창백한 낯빛이 그녀가 아직도 평온하지 못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차마 회복하지 못한 현주에게, 자신에게 돌아와 달라고 말할 수 없는 준호였다.그렇다고 약물 치료를 다시 시작해야 하는 자신을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현주를 만난 자리에서 그가 선택한 것은 이별이었다.그래도 그녀가 단 한 번만이라도 자신을 붙잡아 준다면, 다시 회복할 자신이 있었는데….그의 기대는 현주의 묵묵부답으로 돌아왔다.“현주야, 건강해라.”준호는 그녀를 향해 마지막 말을 남기고 서둘러 카페를 빠져나왔다.자신의 마지막 말에 대답 없을 현주를 마주하기가 두려웠다.현주는 준호가 떠나간 자리를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해 버린 것이다.이내 정신을 차리고 준호를 뒤쫓아가 보았지만, 그는 어디에도 없었다.하… 이렇게 끝나는 건가….현주 자신이 원했던 것임에도 막상 준호의 입에서 헤어지자는 말을 듣고 나니, 아이 생각에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아직 태명조차 짓지 못했는데, 아빠를 보여줄 생각에 그래도 들떴었는데, 흘릴 눈물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현주였다.준호와 떨어져 있던 한 달 동안, 수많은 번민의 시간 가운데 눈물은 이미 바닥나 버렸다.현주는 두 손을 아랫배에 갖다 댔다.아직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여전히 끝나지 않은 입덧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려 오는 아이였다.그녀는 이내 생각을 갈무리했다.자신과 만나지 않은 한 달 동안, 이별을 생각한 준호라면, 임신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은 자신의 선택이 옳았던 거라고.현주는 몸 하나 간신히 뉠 수 있는 고시원에서 생활하며, 매일매일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었다.그럼에도 준호가 아이를 원하지 않을 수도 있을 거라는 부정의 생각들이 사라지지 않았다.그저 하루하루 앞으로 아이와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고민했었는데, 생각지 못한 준호의 이별 선언은 현주의 홀로서기를 알리는 출발 신호였던
Last Updated: 2026-11-06
Chapter: 71화.71화.두 달 후.“누나, 오늘 많이 힘들었지? 주말이라 사람이 많았어. 몸은 괜찮아?”“응, 괜찮아. 햄버거 만드는 쭌이 네가 힘들지. 나야 음료만 하잖아. 너도 피곤할 텐데, 어서 가서 쉬자.”두 사람이 장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푸드트럭을 모는 현준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현주를 바라보았다.조수석에 앉은 현주의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혹시나 현준에게 걱정을 끼칠까 싶어 그녀는 애써 웃어 보였다.잠시 뒤.푸드트럭이 이들이 지내는 민박집에 도착했다.밤이 다 된 늦은 시간, 주인 할머니는 이미 잠이 든 시간이었다. 조심스럽게 마루 새시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발을 디뎠다.문을 중심으로 오른쪽이 주인 할머니 방, 그 옆이 화장실, 그 옆이 현주의 방, 그 건너편이 현준의 방이었다.두 사람이 여수에 내려온 지도 어느새 한 달이 지나가고 있었다.저렴한 가정식 민박에 장기 투숙을 하고 있는 현주와 현준이었다.임신한 몸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던 현주였다.막막한 마음에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때, 현준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것이다.푸드트럭을 가지고 여수로 내려갈 계획인데 함께 가지 않겠냐고. 눈치 빠른 현준은 현주의 일자리를 만들어 주고 싶었던 것이다.사실 현주는, 동생 등록금을 위해 모아 두었던 적금으로 당분간 생활을 할 계획이었다.준호의 배려로 모을 수 있었던 돈.마치 준호 자신의 아이를 위해 사용되길 원했던 것처럼, 현주의 통장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그래도 출산 후 준비까지 하려면 부족한 금액이었다.일자리가 있고, 아는 사람이 있고, 현주가 가고 싶었던 바다가 있는 곳, 그리고 준호가 올 일 없는 바다이기에 선뜻 그러겠노라고 말했다.혹시나 하는 준호에 대한 일말의 기대마저 버리고 싶은 현주였다.여수로 내려오기 직전의 일이었다.자신이 지내던 고시원 근처의 작은 카페에서, 현주는 준호를 마주하고 있었다.오피스텔에서 그렇게 눈물로 헤어진 이후, 정확히 한 달 만에 만난 준호는 상상 이상으로 초
Last Updated: 2026-11-06
Chapter: 70화.70화.“아니에요, 오빠! 그런 거 아니에요. 오빠 무섭지 않아요… 정말이에요.”하, 다행이었다.준호가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드는 의문.현주는 왜 나를 떠나려고 하는 걸까?“그럼…! 왜, 왜 말을 안 하는 거야. 대체 어디가 아픈 거냐고! 왜… 떠나려고 한 거야… 왜….”마지막 질문을 하는 준호의 목소리가 앙상한 나뭇가지에 남아 있는 마지막 잎새처럼 떨고 있었다.“….”“하아… 참… 어렵다. 어려워….”“….”현주의 입에서 속 시원하게 말이 튀어나올 기미가 없어 보였다.준호 또한 이 상태로 그녀를 더는 다그치고 싶지는 않았다.“이현주, 나 거실에 있을 거야. 말할 수 있을 때, 나와.”준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쾅 소리가 나게 방문을 닫으며 나가 버렸다.커다란 우리 안에 현주를 가두듯 자신의 방에 그녀를 홀로 놓아둔 채 거실로 나와 버린 것이다.째깍.째깍.째깍.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어느새, 어둑어둑한 저녁이었다.기다란 스탠드 등 하나만 켜져 있는 거실에 시계의 초침 소리만 가득 메우고 있던 그때,딸깍.드디어 준호의 방문이 열렸다.소파에 앉아 현주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준호가, 고개를 들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그녀를 쳐다보았다.준호 앞에 선 현주. 스탠드 불빛이 그녀의 얼굴을 온전히 비췄다.마치 하얀 달처럼, 그녀의 얼굴이 창백했다.현주를 올려다보는 준호의 눈빛에 걱정과 안도감이 교차했다.현주가 스스로 저 방을 나와 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여겼다.조금만 더 늦게 나왔다면, 아마도 답답함에 저 문을 박차고 들어가지 않았을까. 준호는 그렇게 생각했다.준호 앞에 서 있던 현주가 갑자기 무릎을 꿇고 앉았다.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사선으로 비킨 채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꽉 다물어 있던 그녀의 입술이 드디어 열리기 시작했다.“…오빠, 병원에서, 병원에서… 별말 하지 않았어요. 지난번처럼 스트레스인 거 같다고. 그래서 오빠한테 부담 주고 싶지 않았어요.”사라지려고 했던 이유라고 하기엔 너무
Last Updated: 2026-11-05
Chapter: 69화.69화.화를 참느라 시뻘건 눈을 하고 현주를 쏘아보는 준호였다.“윤아야… 카페 문 닫아.”준호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시선은 현주에게 고정한 채였다.“오, 오빠, 왜 그래. 쭈… 많이 아파.”“잔말 말고! 카페 문 닫아!”굉음 같은 준호의 목소리가 카페 안을 흔들 정도로 울려댔다.그런 준호의 모습에 세 사람이 모두 겁에 질린 듯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자, 준호가 현주에게 무섭게 다가가 그녀의 손목을 거세게 움켜쥐었다.“읏! 오빠….”“끌려가고 싶지 않으면 입 닥쳐.”그러곤 현주를 거의 끌다시피 하며 카페를 빠져나가려 하는데, 그 앞을 현준이 막아섰다.“형! 현주 누나 지금 몸조심해야 해요! 함부로 그러지 마세요!”현주를 걱정하며 자신을 막아선 현준을 비웃듯 준호가 입가를 올리며 조소를 날렸다.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이내 그를 향해 눈을 부릅뜨고 턱을 치켜들며 소리쳤다.“야 이 새끼야, 오지랖도 정도껏 해! 내가 지금 누구 때문에 이러는 것 같니? 어? 너만 아니어도 내가 현주한테 이럴 일 없어! 비켜 새끼야!”준호가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현준을 있는 힘껏 옆으로 밀어 버리자 현준의 몸이 테이블 위로 나둥그러졌다.“오빠! 미쳤어? 진짜 왜 이래! 정신 차려!”이렇게 난폭한 준호의 모습은 처음이라 윤아가 놀란 눈을 하고 소리치고는 현준에게 다가가 그를 부축했다.“김윤아! 카페 문 닫고! 오늘 집에 들어오지 마! 그리고 현준이 넌! 다신 보지 말자!”준호가 반쯤 쓰러져 있는 현준을 매섭게 쏘아보고는 휘청거리는 현주를 데리고 카페를 빠져나갔다.비상등을 켠 채 기다리고 있던 택시에 현주를 우격다짐하듯 집어넣고는, 준호가 행선지를 자신의 오피스텔로 바꿔 버렸다.***거실에 현주의 캐리어만 덩그러니 놓인 채 적막감이 감도는 오피스텔.꽉 닫힌 준호의 방 안에서 거친 숨을 내쉬는 소리만 들리고 있었다.화를 삭이느라 흠뻑 젖은 옷을 벗지도 않고 있던 준호였다.발밑으로 고이는 물기를 느끼다, 현주가 사라지기라도 할까 봐…
Last Updated: 2026-11-05
Chapter: 192화.192화하, 정말. 못 말리는 남자, 차준석.입으로는 투덜거렸지만 여진의 입꼬리는 이미 주체할 수 없이 올라가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사슬에 묶인 기분이었다.“한 번만이에요. 흡!”여진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준석은 기다렸다는 듯 도톰하고 윤기가 흐르는 아내의 입술을 단숨에 집어삼켰다. 연노랑 봄빛이 커다란 창문을 넘어 두 사람의 모습을 오롯이 비췄다.점심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정도로 두 사람의 키스는 강렬했고, 꽤 길었다. 서로의 숨결이 얽히고설키며 공간의 온도를 순식간에 높여놓았다.쪽-.여운이 짙게 남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입술이 한참 만에 떨어졌다. 준석은 커다란 제 손안에 발갛게 상기된 여진의 얼굴을 포근히 감쌌다.“봐도 봐도 예뻐. 결혼한 지가 언젠데, 어쩜 이럴 수 있지?”홀린 듯 아내를 바라보는 남자의 눈빛에는 꿀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고요한 정원까지 울려 퍼질 것만 같았다.“준석 씨.”“그래, 말해.”남자의 커다란 손에 갇힌 채, 여진이 한껏 풀어진 촉촉한 눈동자로 그를 지그시 올려다보았다.“라면 먹고 갈래요?”장난기가 살짝 어린, 그러나 심장을 간지럽히는 유혹적인 목소리였다.“…뭐?”순간, 준석이 잠깐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인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그 유명한 대사를 제 아내가 직접 치고 나올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다.이내 아내의 장난스러운 의도를 완벽히 파악했다는 듯, 준석의 입가에 짙고 섹시한 미소가 걸렸다. 그가 제 이마를 그녀의 이마에 툭 부딪치고는 낮은 저음으로 속삭였다.“그 라면, 다 먹으면 리필도 되나?”“후훗, 그건 준석 씨 하기 나름이죠.”그 당돌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말에 준석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더 이상 참는 것은 이 남자의 사전에 존재하지 않았다.그가 여진을 옆으로 안아 단숨에 번쩍 들어 올렸다.“꺅! 뭐예요, 진짜…!”갑작스럽게 바뀐 자세에 여진이 짧은 비명을 지르며 그의 목을 본능적으로 와락 끌어안았다.성큼성큼.급하지 않은, 그러나
Last Updated: 2026-10-02
Chapter: 191화.191화.다음 달이면 별아가 이 세상에 태어난 지 1년이 되었다.이젠 걷는 것도 스스로 걷고, 단단한 음식도 곧잘 먹는 별아를 보며 준석이 넌지시 여진에게 복귀 의사를 물었었다.개인전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여진은 별아를 남의 손에 맡기고 싶지 않았으나, 그녀가 봐도 제법 성장한 별아를 보니 작업 욕심이 나기도 했었다.그래서 그녀가 작업하는 날만 베이비시터를 고용했다.다행히 별아도 엄마와 떨어져 있는 시간을 힘들어하지 않았다.영상 통화를 끝낸 여진이 작업실과 침실을 연결한 중정을 지났다. 그곳에 작은 주방이 있었다.그녀가 포트에 물을 끓였다. 오늘의 점심 메뉴는 컵라면이다.팔팔 끊은 물을 컵라면에 붓고 뚜껑을 닫았다. 그 위에 젓가락을 얹어 입구를 단단히 막았다.앞으로 3분.여진은 그 짧은 시간 바람을 쐬고자 눈앞에 정원으로 나갔다.그녀가 상큼한 공기를 두 팔 벌려 크게 들이마셨다.그 순간, 그녀의 폐부로 잔잔한 풀 냄새와 흙 향이 물밀듯이 들이찼다.하아, 너무 좋다.그녀가 눈을 감은 채 절로 미소 지으며 행복한 웃음을 터트렸다.“그런 표정으로 서 있으면, 질투 나는데.”“…!”갑자기 들리는 목소리에 여진이 화들짝 놀라며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정원 입구에 준석이 서 있었다.그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여진에게 폭 넓은 걸음으로 다가왔다.“준석 씨, 어떻게 이 시간에 연락도 없이….”여진은 준석이 반가우면서도 회사에 있어야 할 사람이 이곳에 있자, 의아해했다.“근처 자회사에 들렀다가, 내 아내가 너무 보고 싶어서.”준석은 미소를 머금은 채 여진의 허리를 자연스럽게 감싸 저를 보게 했다.아내를 내려다보는 눈빛이 막 솟아난 봄 햇살보다도 따사로웠다.“점심은요?”여진도 해사하게 웃으며 남편의 두꺼운 허리를 제 팔로 감았다.“아직. 당신하고 같이 먹으려고 안 먹었어.”“그러고 보니, 정 실장님은요?”여진이 언제나 준석의 옆을 지키는 성훈을 두리번거리며 찾았다.준석이 그윽한 눈길로 아내를 바라보다 검지로 아내의 콧
Last Updated: 2026-10-02
Chapter: 190화.190화.성훈이 시간을 흘깃 확인했다. 어떻게 하나 잠시 망설이던 찰라, 윤설의 음성이 들렸다.- 성훈아, 오늘 뭐 해?“나?”- 응, 너.그럼 누구겠냐는 듯, 살짝 웃음이 밴 목소리였다.“아…, 나 지금.”잠깐 고민하며 뜸을 들이던 성훈은 에라 모르겠다, 싶은 심정으로 무작정 뱉어냈다.“나 지금 너한테 가고 있어. 그래서 전화했지.”- 뭐…? 나한테 오는 중이라고?스피커 너머로 들리 목소리에서 예상치 못한 놀람이 고스란히 묻어났다.윤설의 반응에 갑자기 신이 난 성훈은 입가를 한껏 올렸다.“어. 우리 만날 수 있지?”- 어? 응….“한 시간 정도 걸릴 것 같아. 추우니까 나와 있지 마. 도착하면 내가 전화할게.”- 알았어. 조심히 와. 성훈아.“그래, 조금만 기다려. 빨리 갈게.”윤설과 통화를 끝내자마자 성훈은 곧장 차의 방향을 파주 쪽으로 틀었다.그런 뒤, 남이준에게 곧장 전화를 걸어 사정을 말했다.“윤설이 만나서 같이 시간 보낸 뒤에 이천으로 함께 넘어가려고 합니다.”- 누나랑 같이요? 그러면 너무 좋죠. 호영이가 너무 좋아할 것 같아요!이준은 놀라면서도 성훈의 계획을 무척 반겼다.“그러겠죠? 사실 우리 세 식구가 같이 만나는 건 처음이라, 호영이가 어떻게 반응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요.”아직 초등학생인 호영이가 변화된 상황을 잘 적응하길 바라는 마음에, 지금까지 함께 만나지 않았었다.그래서일까.갑작스레 진행되는 만남에 혹여 호영이가 당황스러워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머리를 들었다.윤설을 만나러 가는 들뜬 감정과 전혀 다른, 부모로서 마음이었다.그 마음을 여태껏 호영을 홀로 키워온 남이준이 모를 리가 없었다.- 호영이도 지금 상황을 생각보다 잘 받아들이고 있어요. 누나를 만나는 날도 손꼽아 기다리고, 정 실장님 만나는 날도 마찬가지예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오히려 좋아할 거예요. 그건 분명합니다.“아, 그러면 너무 다행이고요.”- 아무래도 오늘이 날인 건 맞나봐요. 사실 조금 전에
Last Updated: 2026-10-02
Chapter: 189화.189화.며칠 뒤, 주말.적색의 스포츠카가 깃털처럼 가볍게 이천을 향해 내달렸다.고속도로 위를 달릴수록 금속의 겨울 냄새가 잔뜩 묻어났다.성훈이 차장을 조금 내려 스치는 풍경에 잠시 눈을 뒀다.이제는 꽤 익숙해진 경관에 그가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차가운 공기가 그의 폐부를 건드리며 온기를 머금고 다시금 뱉어졌다.성훈이 힐끗 보조석을 바라봤다.그곳엔 유명 축구 선수의 사인이 새겨진 축구공이 놓여 있었다.“호영이가 좋아하려나.”무심코 중얼거리던 그가 축구공을 선물 받고 뛸 듯이 기뻐할 호영이를 상상했다.이내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누가 봐도 한눈에 알아볼 아빠 미소였다.한 달 전, 윤설과 재회한 성훈은 윤설이 그와의 연애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그뿐만 아니라, 윤설은 호영을 출산했던 때도 기억했다.그녀가 기억을 온전히 되찮은 시점은 불과 올봄이라고.성훈은 윤설이 기억을 찾게 된 순간을 그녀의 차분한 목소리로 전해 들었었다.‘감기를 심하게 앓았었어. 40도가 넘는 열로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고. 온 세상이 빙빙 도는 거야. 그땐 정말 이렇게 죽는가 보다 했지.’‘….’성훈이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의 말에 집중했다.‘수액을 한참 맞고서야 그제야 정신이 들었어. 근데 그때, 아주 희미하게 떠오르는 장면이 있더라고.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리면서 떠오르는 기억이었어.’씁쓸하면서도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성훈을 향했다.‘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바로 너였어. 정성훈, 너. 그리고… 우리 아이가… 떠올랐어.’‘…!’‘사실 기억이 돌아오고 난 뒤에 아이를… 호영이를, 볼 자신이 없었어. 기억이 돌아왔다고 11살이나 된 호영이한테, 갑자기 내가 네 엄마야. 할 수는 없었거든.’‘하…, 미안하다, 윤설아. 정말 미안해.’성훈은 이 말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설령 자신이 모를 수밖에 없었던 시간일지라도, 그녀의 지나온 삶이 얼마나 혼란스러웠을지를 생각하니 그의 마음 한편이 묵직하게 아려왔다.윤설은 기억을 찾은 후
Last Updated: 2026-10-02
Chapter: 188화.188화.은근한 숨결이 그녀를 간지럽혔다.준석이 양팔로 그녀의 몸을 더 바짝 감쌌다. 이내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내렸다.쪽, 하는 달콤한 울림이 여진의 귓가에 습하게 스며들었다.여진이 그 감촉을 느끼며 꽃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꽃보다 꽃을 들고 온, 남자를 좋아하죠.”“그런 말은 날 보면서 해야지.”준석이 여진을 단숨에 저를 보게 돌려 안았다. 그가 그녀의 허리를 더 강하게 끌어당겼다.열기를 품은 남자의 손길이 여진의 등을 위아래로 진득하게 쓸었다.그 손길에 여진은 움찔하면서도 제 시야에 들어온 남편의 탄탄한 가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고개를 살짝 들기만 해도 지나치게 잘생긴 남편의 얼굴이 저를 향하고 있을 텐데.샤워 후 물기가 맺혀 있는 남자의 몸은 그녀의 눈동자를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다.여진은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그녀의 얼굴이 복숭앗빛으로 후끈 달아올랐다.오랜만에 야릇한 분위기가 침실을 가득 메웠다.“오늘은… 어떻게 이렇게 일찍 들어왔어요? 엄청 바쁘잖아요.”HK 그룹 부회장이라는 직함을 달고부터 남편은 일분일초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지나왔다.그런 그에게 회장이라는 직함은 그 무게를 더하게 했다.늦은 귀가 후, 이제는 아기방에서 분리 수면을 하는 별아를 한번 보고, 잠에 취한 여진을 품에 안고 자는 것도 그에겐 사치였다.“이러다가 내 아내 얼굴 잊어버릴 것 같아서.”“설마요.”그가 여진의 턱끝에 손을 뻗으며 낮게 웃었다.“설마 맞아. 그러니까 그렇게 감추고 있지만 말고, 얼굴 좀 드시죠. 윤여진 씨.”준석이 아내의 얼굴을 저를 보도록 들어 올렸다.남편과 눈이 마주친 여진은 심장이 막 물가에 나온 물고기처럼 크게 뛰었다.그럴 수밖에.여진을 향한 준석은 눈동자는 검붉은 정염에 가득 차올라 있었다.아주 오래 참아온 남자의 갈증이 적나라하게 배어 있었다.“언제 이렇게 얼굴이 빨개졌지? 무슨 생각을 했길래.”준석이 입가를 한껏 올리며 부러 여진을 놀렸다.그 놀림에 여진이
Last Updated: 2026-10-01
Chapter: 187화.187화.한 달 뒤.[HK 그룹 차준석 부회장, 회장 취임]대한민국 경제지의 모든 일면이 차준석의 경영 승계로 도배가 되었다.[차준석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미래 중심의 글로벌 기업을 향한 HK 그룹의 청사진을 제시했습니다. 자회사로 가지고 있던 ‘오토매틱 로봇’을 필두로 내세워 대대적인 연구 개발 투자를 결정했습니다. 회장 취임과 동시에 혁신적인 인사 개편으로 기존에 있었던 경영환경 불확실성을 완전히 잠재웠습니다]성훈이 건네준 보도 자료를 확인하던 준석은 만족스럽게 입가를 올렸다.하나 그것도 잠시. 그가 다시 눈빛을 곤두세운 채 신규 투자 보고서를 세세히 살폈다.준석은 정식으로 회장에 취임한 뒤로는 기존보다 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똑똑.노크 소리와 함께 성훈이 들어왔다.“회장님, 점심 식사하시죠.”정적을 가르듯 성훈의 목소리가 울렸다.그제야 준석이 결제 서류에서 시선을 떼었다. 잘 다듬어진 눈매가 성훈을 포착하며 미세하게 누그러진다.“오늘 점심은 뭐지?”“성북동입니다.”“왜 멋대로야.”“갈비탕 좋아하시잖아요. 시비는 사절입니다.”성훈의 응수에 준석이 코웃음을 흘렸다. 그의 마음이 반쯤 기운 표정이 역력했다.성훈이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요즘 일정도 많으셨잖아요. 집무실에서만 식사하신 지 일주일째입니다. 오늘 정도는 바깥 공기 좀 쐬셔야죠. 회장님 기분 전환도 필요하고요.”준석이 비스듬히 성훈을 흘겨봤다.“누가 너더러 내 기분까지 챙기래.”“저 아니고, 형수님이요.”“…뭐라고?”성훈의 말에 준석이 눈을 크게 떴다.그 모습에 성훈은 은근히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형수님 걱정이 보통이 아닙니다. 이러다간 회장님 도시락까지 싸 들고 회사로 오시겠어요.”“여진이가 도시락을?”여진의 손끝에서 정성스레 만들어진 도시락을 떠올리는 순간, 준석의 눈빛이 곤란함에 흔들렸다.기대감보다 난감함이 먼저 스며든 이유는 분명했다.여진은 지금도 그가 생선을 좋아한다고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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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64화.164화.진료실을 나온 두 사람은 집으로 향했다.시간은 오후를 훌쩍 넘어있었다.집에 도착하자마자 은별은 곧장 2층 침실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많이 피곤해?”재훈이 누워있는 은별을 살피며 물었다.“조금….”피곤하다기보다 반짝이의 심장 소리를 듣지 못해선지 기운이 없었다.“잘래?”“응. 그런데 여보는 내일부터 회사 출근하는 거지?”은별이 졸린 표정으로 물었다.“당신이 원하면 당분간 회사 안 나가려고.”“그래도 돼?”“안 될 게 뭐 있나. 회사 망하면 또 차리면 되지.”“뭐야, 훗. 이상한 말 할 거면 나 잘래.”은별은 재훈의 장난말에 빙긋 웃고는 서서히 눈을 감았다.“그래, 자. 아무 걱정하지 말고. 2주 뒤에 반짝이가 쿵쾅쿵쾅하며 인사할 거야, 분명히.”재훈은 은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그녀가 깊은 잠이 들 때까지 그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늦은 저녁.은별이 눈을 떴을 때 재훈은 제 옆에서 몸을 엎드린 채로 자고 있었다.고개는 은별을 향해 있었는데, 그의 손에는 오늘 산부인과에서 받은 반짝이의 초음파 사진이 있었다.그 초음파 사진이 그의 얼굴 쪽에 놓인 것을 보니, 아마도 한참을 들여다보다 그도 모르게 잠이 든 것 같았다.은별은 몸을 일으켜 앉아 재훈의 얼굴에 있는 안경을 살며시 빼내었다. 그러곤 안경을 협탁 위에 올려놓았다.자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순둥이 강아지 같았다.26살에 아이 아빠가 된 정재훈을 은별이 찬찬히 훑었다.일주일 동안 그와 함께 지내면서 은별은 그 어느 때보다도 극진한 사랑을 받았다.씻고, 입고, 먹는 것- 며칠 못가 재훈은 아주머니 앞에서도 은별의 식사 시중을 들었다.- 심지어 그녀가 잠드는 순간까지 함께하면서 은별을 보살폈다.반짝이를 위해서라는 이유로 잘 때는 자장가를 불러줬는데, ‘반짝반짝 작은 별’만 끊임없이 불러대 종국엔 은별이 귀를 막는 사태까지 다다랐다.그제야 재훈은 자장가를 바꿨다.그 바뀐 자장가가 ‘Twinkle Twinkle Little Star’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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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63화.163화.“방금 너도, 아니 여보도 쓰레기통에 치약 던졌잖아. 그거 다 내 눈을 통해서 반짝이가 보는 거야.”“아… 미안, 앞으론 나도 안 그럴게.”쪽, 재훈의 입술이 은별의 볼에 닿았다 떨어졌다.재훈이 은별을 돌려세워 저를 보게 했다.그가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아 안았다. 두 사람의 몸이 맞닿았다.재훈이 그윽한 눈으로 은별을 내려다보았다. 은별 또한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은별아.”“응.”“좋은 남편 되도록 노력할게. 간혹 실수할 때가 있겠지만, 내 진심은 아니야. 내가 당신 너무 사랑해서 그러는 거야. 알지?”“응, 나도 이제 여보한테 거짓말 안 할 거야.”“진짜?”재훈은 못 믿겠다는 얼굴로 일부러 과장되게 눈을 키우며 물었다.“진짜야. 좋은 아내, 좋은 엄마 되도록 노력할게. 약속해.”“와, 밥 안 먹도 배부르다.”“사랑해, 여보.”은별이 재훈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사랑을 고백했다.“갑자기 훅 들어오지.”재훈이 은별의 허리를 감쌌던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담았다.이번엔 그녀의 입술에 제 입술을 포갰다. 두 입술이 부드럽게 뭉개지며 하나가 되었다.재훈의 혀가 은별의 입술 사이를 파고들었다.한데 은별은 좀처럼 입술을 다문 채 열어주지는 않았다.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재훈이 은별에게서 입술을 뗐다.“왜 안 열어줘?”“키스하다가 구역질하면 어떡해.”걱정과 부끄러움이 섞인 얼굴로 은별이 말했다.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재훈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더니, 다시 제 손안에 은별의 얼굴을 가뒀다.“깊게 안 들어가. 살짝만 넣을 거야.”그 말과 동시에 다시금 재훈이 은별의 입안으로 진입을 시도했다.다행히도 이번엔 은별이 문을 열어주었다.재훈은 정말 달아오르는 혀를 살짝만 넣었다 빼고는 은별의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골고루 혀로 핥더니, 아쉬운 듯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살짝 집어넣었다. 쪽, 하는 소리와 함께 간질 맛 나는 모닝 키스를 마무리했다.짧은 키스만으로도 은별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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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62화.162화.다음날, 아침.어제 은별이 쏟아냈던 눈물의 양이 작은 샘물을 이룰 정도로 많았다.퉁퉁 부운 눈으로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은별은 혼자가 아니었다.재훈이 그녀를 고요하면서도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깼어?”은별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넘기며 재훈이 말했다.그는 씻었는지 말끔한 모습이었다. 말끔한 얼굴과 다르게 옷은 평상복을 입고 있었다.“어. 출근, 안 했어?”의아한 눈빛으로 은별이 물었다.“응, 당분간 안 하려고. 반짝이랑 당신 안정될 때까지.”“그래도 괜찮아? 요즘 계속 바빴잖아.”“내가 대표인데, 이 정도 시간 못 뺄까. 걱정 마.”재훈은 은별의 둥근 이마에 키스하며 그녀를 안심시켰다.그때.똑. 똑.“식사하세요.”김 여사가 두 사람에게 아침을 먹으라고 말했다.재훈은 곧 내려가겠다고 대답한 후 은별을 데리고 욕실로 향했다.“내가 당신 씻겨줄게.”은별의 목에 수건을 걸어주며 재훈은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괘, 괜찮아. 내가 할게.”은별은 순간 네 살짜리 어린아이 대하듯 저를 대하는 재훈을 보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허락해 줘. 어차피 다음 주부터는 나도 출근해야 해. 그러면 이런 시간 갖기 힘들잖아.”옆으로 길게 뻗은 눈가를 접으며, 정재훈이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었다.“훗, 알겠어. 그 대신 세수까지만.”재훈의 즐거운 표정을 보니, 이러다간 그녀의 이까지 닦아줄 기세였다.“아쉽지만, 오케이.”곧이어 재훈은 부드러운 손길로 은별의 세안을 시작했다.은별이 자연스레 두 눈을 감았다.갓 태어난 아기를 다루듯 커다란 손이 조심스럽게 그녀의 얼굴을 오른쪽으로 한번, 왼쪽으로 한번 훑고 지나갔다.그 순서를 두어 번 반복하더니, 수건이 묶여 있는 목 부분을 마지막으로 닦아내었다. 이윽고 재훈은 은별을 저를 보게 돌려세웠다.수건을 풀어 물기가 묻은 그녀의 얼굴을 톡톡 하며 가볍게 닦아냈다.그의 손길은 상당히 능숙하고 정성스러웠다.“다 됐다. 뽀송뽀송해졌어.”“고마워.”“어디 보자.”“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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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61화.161화.재훈이 은별을 부축하듯 껴안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현관에 들어서는 두 사람을 김 여사가 반갑게 맞았다.병원을 나서면서 재훈은 김 여사에게 자신과 은별이 같이 들어가니 식사를 차려달라 미리 말한 터였다.“오셨어요? 제가 저녁밥 따뜻하게 지워놨어요.”“네, 잘 먹겠습니다. 아주머니, 오늘은 이만 퇴근하셔도 돼요.”재훈이 김 여사에게 말했다.“벌써요?”김 여사가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퇴근 시간까지는 아직 한 시간 정도가 남아있었다.“오늘 이래저래 수고가 많으셨잖아요. 뒷정리는 제가 할게요.”“아, 네, 사장님. 근데 사모님, 괜찮으세요? 안색이….”김 여사가 힘없이 재훈에게 기대어 있는 은별을 보며 물었다.분명 오후에 외출할 때까지만 해도 안색이 밝았던 은별이었다.한데 저녁이 다 된 시간에 들어온 은별은 멍한 시선으로 기운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이 사람이 좀 피곤해서 그래요.”재훈이 대신 대답했다.김 여사는 안쓰러운 얼굴로 은별을 보며 편히 쉬라는 말을 하고는 곧장 퇴근을 했다.재훈이 은별의 어깨를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물었다.“음식 따뜻할 때 뭐 좀 먹을래?”“…응.”은별은 딱히 음식 생각이 없었으나, 뱃속의 아이를 생각해서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잠시 뒤.두 사람이 식탁에 나란히 앉았다.재훈은 항상 하던 대로 은별의 밥 위에 반찬들을 올려주었다.그렇다고 예전처럼, 강요하지는 않았다.은별에게 먹고 싶은 반찬을 물어보고 괜찮다고 하면 밥 위에 올렸다.은별은 속이 좋지 않았으나, 그것 또한 아이가 제 안에 존재한다는 의미였기에 고마운 마음으로 밥을 먹었다.그 모습을 재훈이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그 또한 초음파에서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실망이 큰 게 사실이었다.한데 의사에게 ‘유산’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그동안 자신이 은별의 몸을 함부로한 것에 대한 심한 죄책감이 몰려왔다.불과 어제만 해도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양껏 은별을 가졌었다.아이가 놀란 것은 아닐까. 그래서 모습을 보여주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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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60화.160화.“당신이 무슨 말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 당신도 아이도 절대 포기 안 해.”“재훈아, 그런 거 아니야.”“아니야? 진짜야?”은별의 말에 재훈은 놀란 얼굴을 하면서도 화색이 돌았다.그는 은별이 아이를 포기한다고 말할까 봐, 더는 말을 하지 못하게 끊어냈었다.그 말을 듣게 되면, 지금 이 상황에서 자신도 무슨 짓을 할지 몰랐으니까.재훈은 스스로가 두려웠다.“정말 그런 거 아니야. 나, 아이 포기하지 않아. 그런 걱정, 하지 마.”은별의 확답을 듣자, 재훈은 솟구치는 안도감에 와락, 은별을 껴안았다.“하아, 다행이다. 다행이야, 하아….”은별은 재훈의 어깨 위로 턱이 들린 채 그가 연신 쏟아내는 안도의 숨을 느꼈다.사실 그녀는 재훈에게 어제 자신의 행동에 대해 고백하려 했었다.어제부터 임신을 알고 있었다고.좋은 엄마가 될 자신이 없어서 너에게 잠시 숨긴 것뿐이라고.아이를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재훈아.”“어….”그가 여전히 그녀를 안은 채로 대답했다.“파리에서 일, 숨기고 사라져 버렸던 거 미안해.”“….”“너랑 결혼한 사실, 주변 사람들한테 말하지 않아서 미안해.”“….”“네가 아이 빨리 갖길 원했었는데, 같은 마음이 아니었어서 미안해.”“….”“여보, 아무래도 나, 아이 가진 것 같아.”“…!”은별을 품에 안고 있던 재훈은 그녀의 마지막 고백에 놀란 눈으로 그녀와 마주 보았다.안경 너머 수려하게 뻗은 아름다운 재훈의 눈이 은별의 눈에 가득 들어왔다가, 이내 흐릿해졌다.멈출 줄 모르는 눈물이 흘러내려 그녀의 얼굴을 순식간에 적셨다.이 고백이 이리도 어려웠을까.은별은 더는 제 남편, 정재훈에게 거짓을 말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아이를 위해서라도.좋은 엄마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제 뱃속의 아이에게 문제 앞에 회피하고 거짓을 말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그리고 아이의 아빠인, 자신이 사랑하는 남편, 정재훈을 위해서라도.재훈아, 우리가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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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59화.159화.재훈은 은별을 찾기 위해, 일부러 편의점에 차를 주차해 놓고 집으로 가는 인도를 빠르게 올라갔다.고급 빌라의 주택 단지라도 중간중간 골목들이 있었다. 그 골목 곳곳을 매의 눈으로 살피며 올라갈 때였다.그의 눈에 어깨를 들썩거리며 울고 있는 여자가 보였다.인도에 쭈그리고 앉아 얼굴을 묻고 우는 여자는 자세히 보지 않아도 자신의 아내, 고은별이었다.왜 저렇게 세상이 다 무너진 것처럼 울고 있는 것일까.그녀는 알고 있을까. 그녀가 임신한 상태일 수도 있다는 것을.그래서 저렇게 울고 있는 것일까.원하지 않은 아이가 생겨서….엄마도 저를 가졌을 때 저렇게 울었을까.원하지 않은 아이, 정재훈을 가져서.우느라 자신이 가까이 다가가도 모르는 아내, 고은별을 보며 재훈은 자신의 엄마를 덧씌웠다.아버지랑 살면서 평생 행복하지 못했던 엄마.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엄마가 원하는 사랑의 모양이 아니라서였다.결국에 엄마는 자신이 원하는 사랑의 모양을 찾아 떠났고, 사랑을 잃은 아버지는 화병으로 죽었다.그리고 자신은 미운 오리 새끼가 되었다.미운 오리 새끼는 나 하나로 충분해.내 아이에겐 절대 그런 전철을 밟지 않게 할 거야.그렇다면 지금 그가 해야 할 것은, 아버지와 정반대의 길을 가는 것이다.아내의 의사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휘둘렀던 남편이 아닌, 아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억압하지 않는 남편.내가 그런 남편이 된다면, 은별은 엄마와 다르게 내 옆에서 행복한 삶을 살지 않을까.우리의 아이를 낳아 사랑으로 키우면서, 평생 헤어지지 않고 사랑하며 살지 않을까.지금처럼 전혀 괜찮지 않은데도, 괜찮다고 거짓말하는 행동은 이제 안 하지 않을까.“당신은 이런 상황에서도 거짓말이지.”재훈은 쭈그려 앉아 있는 은별을 일으켜 세웠다.은별은 재훈에게 어깨가 붙들린 채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꽤 오랫동안 앉아 있었기에 심한 어지럼증을 느끼며 휘청거렸다.“윽.”“하아, 안 되겠다. 이러다가 기절하지.”순식간에 재훈은 은별을 들어 옆으로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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