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banner
릴리박
릴리박
Author

Novels by 릴리박

가지 마, 내 허락 없이

가지 마, 내 허락 없이

서른 살 번역 기자 고은별. 남자에게 미련 따위 없다고 믿었던 그녀의 심장을, 어느 날 나타난 어리디 어린 남자가 속수무책으로 흔들어 놓는다. 매일 마시는 커피를 기억하고, 다친 손을 붙잡고, 아무렇지 않게 곁으로 파고드는 어린 남자 재훈. 능글맞은 눈빛과 위험할 만큼 직진하는 말에 은별은 번번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하지만 마음을 인정하는 순간, 그는 갑자기 카페를 그만둔다고 선언한다. “서운해요?” “설마요.” “완전 거짓말.” 그리고 이어진 치명적인 한마디. “나, 기자님 좋아해요. 나랑 사귈래요?” 도망치려던 순간, 더 뜨겁게 다가오는 남자. 은별의 평범했던 일상이, 이제 걷잡을 수 없이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Read
Chapter: 102화.
102화.너무 아파서 울 수도 없었다. 그가 느꼈을 상실감이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우주보다 컸다.밥을 먹는 것조차 죄스러웠다. 그에게 미안하다, 용서해달라 눈물 흘리며 무릎 꿇는 것마저 위선이었다.그래도 그녀가 재훈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용서를 구하는 것.그것이 위선이고, 식상할 만큼 흔한 말일이지 라도 그녀는 말해야 했다.‘용서해 줘. 미안해.’자신의 처한 상황에 매몰되어, 너무도 무책임하게 정재훈을 버렸다.그의 심장이 저로 인해 썩어 가는 줄도 모르고.사랑한다는 말로 그의 청춘을 붙잡고, 나락으로 무자비하게 떨어뜨렸다.저를 향한 재훈의 종잡을 수 없는 사랑은 어쩌면 모두, 그녀의 잘못된 선택의 결과물일지도.그 결과물이 암 덩어리처럼 불퉁불퉁 모난 모양일지라도, 이젠 더는 도망칠 수가 없었다.고은별은 정재훈을 사랑하니까.그것만은 명백한 진실이었다.그리고 이제는 그에게 진정한 사죄를 할 시간이었다. 2년 전, 제 입으로 말한 약속을 지킬 때였다.은별은 재훈이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침대를 덮고 있던 수많은 편지를 정리했다.편지를 원래 자리였던 재훈의 가방에 차곡차곡 집어넣었다.예전에 어린아이 같았던 정재훈의 사랑은, 저의 변절로 진화되어 어떤 형태인지 알 수 없는 모양으로 변해버렸다.그럼에도 그녀가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은, ‘정재훈은 고은별을 사랑한다.’이다.재훈아.나를 향한 너의 사랑이 온전하지 못한 사랑의 모양일지라도 난, 너를 떠나지 않을 거야.그것이 너를 향한 나의 속죄가 되길.***잠시 뒤.두 사람이 식탁에 마주 앉았다.재훈이 설렁탕에 밥을 말아 수저에 가득 뜨더니, 그 위에 깍두기를 얹었다. 그러곤 은별에게 건넨다.“크게 아, 해.”은별은 말없이 입을 크게 벌려 밥과 깍두기를 한가득 입에 넣었다.우두둑, 깍두기가 씹히며 그녀의 작은 입술로 국물이 조금 새어 나왔다.“칠칠하지 못하긴. 나 없으면 당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어찌 살까. 아주 눈에 선해.”입꼬리를 행복하게 빙긋 올리
Last Updated: 2026-09-20
Chapter: 101화.
101화.꽃이 피려나.동해라지만 북쪽에 위치한 바닷가다 보니 도시보다 꽃이 늦게 폈다. 그래도 봄밤을 배회하는 바람은 따뜻하게 느껴졌다.재훈은 바람에 날려 제 이마를 덮은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점심시간에 느닷없이 단체 손님이 몰리는 바람에 은별의 점심을 챙겨주지 못했다.배달 앱으로 음식을 주문해서 보냈지만, 고은별이 잘 챙겨 먹었을지 모를 일이다.“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재훈은 숙소 문 앞에 봉지째 그대로 놓인 배달 음식을 바라보며 짧게 한숨을 쉬었다.그가 허리를 숙여 봉지를 들었다.어젯밤, 하도 기진맥진하길래 따뜻한 설렁탕을 배달시켰었다. 한데 이미 차갑게 식어 버린 음식을 보니 하루 종일 굶었을 그녀가 걱정되었다.“애가 따로 없어. 숟가락을 들고 먹여줘야 먹지.”도통 말을 들어 먹지 않는 은별을 생각하며 재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윽고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은별아.”“….”고은별은 침대에 목석처럼 앉아 있었다.재훈이 들어왔는데도 고개 한번 들지 않았고, 숨은 쉬나 싶을 정도로 고요했다.재훈이 들어왔는데도 고개 한번 들지 않았고, 숨은 쉬나 싶을 정도로 고요했다.“뭐야, 계속 그 상태로 있었던 거야?”재훈은 테이블 위에 식어 빠진 설렁탕을 올려놓고는 겉옷을 벗어 의자에 걸며 말했다.마지막으로 그는 안경까지 벗었다.지금 은별의 반응은, 재훈의 예상을 살짝 빗나간 상황이었다.고은별이 제가 쓴 편지를 읽고 감동해 문을 열자마자 저를 껴안고 미안하다, 잘못했다, 용서해달라 울며불며 매달릴 줄 알았는데….생각보다 싱거웠다.“눈 뜨고 자는 거야? 서방님 왔는데 좀 반겨.”“….”돌덩이가 따로 없지. 애교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여자다.고은별이 반응하길 기다리다가는 제가 돌덩이가 될 것 같아 재훈은 은별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침대가 그의 무게에 푹 꺼지며 움직였다.그 반동에 침대 위를 가득 덮고 있던 재훈의 편지가 후드득,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래봤자, 새 발의 피만큼이지
Last Updated: 2026-09-20
Chapter: 100화.
100화.은별의 허벅지를 붙잡고 있던 재훈의 손이 더 강하게 그녀를 붙잡았다. 쭉, 쭈욱. 빨아대며 내벽을 휘젓는 통에 은별은 본능적으로 엉덩이를 위아래로 들썩거렸다.한참을 빨아대며 속을 채운 재훈이 애액으로 번들거리는 얼굴을 하고 몸을 일으켰다. 은별은 더는 서 있을 힘이 없어 그의 품에 푹, 쓰러졌다.재훈이 그런 은별을 번쩍 들어 안아 제 허리에 다리를 단단히 두르게 한 뒤 다시 벽으로 밀어붙였다. 페니스를 은별의 질구에 맞추고 그대로 푹, 박아넣었다. 자지러진 여자의 교성이 욕실을 울렸다.“하읏, 으으응! 아앙.”아래를 뚫고 들어오는 무서운 기세에 은별은 재훈의 어깨에 얼굴을 묻으며 그를 온 힘을 다해 끌어안았다. 그러지 않으면 몸이 위로 튕겨 나갈 것만 같았다.그녀의 몸을 관통하며 지배하는 남자로 인해 은별은 재훈의 어깨 위로 더운 숨을 내뱉기가 바빴다.“씨발, 이렇게 좋아할 거면서 잘도 도망을 치지!”“아, 아아앙…!”“크흑.”수증기인지 입김인지 모를 것들이 서로의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한참을 그렇게 박아대던 재훈은 순식간에 자세를 바꿔 은별의 뒤를 공략했다. 푹! 푹! 푹! 페니스가 박히는 속도에 맞춰 은별의 가슴이 바닥을 향해 출렁거리며 흔들렸다.“재, 재훈아…! 그, 그만.”“아, 욕실에서 그만 하자고? 침대로 가자고?”“아, 아니! 흐읏…!”뒤에서 무자비하게 뚫고 들어오는 페니스에 제대로 버틸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보지에선 흥분감에 애액을 왈칵 흘려보냈다.“뭘 했다고 벌써 갈려고 해. 난 아직 멀었는데.”퍽, 퍽, 퍽!“하아앗, 흐으으응…!”욕실에서 시작된 재훈의 짐승 같은 시간은… 물기가 젖은 그대로 침대에서 이어졌다.두 사람의 열기가 시트를 적시고, 은별은 제 몸을 사정없이 가르고 들어오는 버거움에 셀 수 없이 무너져 내렸다.뱃속을 뚫고 들어오는 성난 기둥에 애액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하윽!”환희의 끝은 무소음, 그리고 이어진 불꽃과 하이라이트.은별은 오늘에서야 알았다. 번쩍이는 섬광은 눈에만
Last Updated: 2026-09-19
Chapter: 99화.
99화.“어?”“여기서, 그 꼴로 설명하려고? 음…, 상상하니까 무진장 땡기는 말이긴 하네.”그의 말인즉, ‘고은별한테 미쳐있는 정재훈에게 감히 욕실에서 다 벗은 채로 변명이라는 걸 하려는 거냐, 아주 잡아 먹히고 싶어서 안달이 났지.’ 이 말이었다.재훈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은별은 새까맣게 잊고 있었던 제 상태를 인지했다. 몸통만 간신히 가린 제 상태를.“아! 옷, 옷 입을게.”은별은 타월을 본능적으로 더 단단히 여미며, 욕실 선반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선반 위에는 그녀가 갈아입을 옷이 놓여있었다. 우선 속옷을 집어 들었다. 이걸 입어야 하는데.정재훈의 사나운 눈빛이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를 눈에 담고 있었다.은별은 입술을 달싹거리며 망설이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옷 좀 입게 고개 좀….”“새삼스럽게. 그냥 입어. 시간 없으니까.”“그래도….”“은별아, 그 새끼 지금 씻고 있더라. 곧 나올 텐데 당신이랑 나랑 욕실에서 이러고 있는 거 보여주고 싶은 거야? 당신이 굳이 원한다면, 보여주고. 나야 좋지.”“…!”“당신 찾는다고 비 맞아서 홀딱 다 젖었는데, 욕실 들어온 김에 씻을까?”“아, 아니야!”“그러니까, 그냥 입어. 남들이 보면 내가 강간범인 줄 알겠다. 당신이랑 내가 그런 사이는 아니잖아.”마치 굉장히 서운하다는 듯 눈꼬리를 일그러트리던 재훈이 매끈하게 드러난 은별의 둥근 어깨를 커다란 손으로 턱, 잡았다.“…!”은별은 얼음처럼 차가운 손이 어깨에 닿자 순간 몸을 움츠렸다.“긴장하긴. 설마 내가 여기서 당신을 잡아먹을까.”싱긋 웃으며 뱉어내는 말이 꼭 장난말 같았으나, 재훈의 눈빛은 결코 장난이 아님을 말하고 있었다.그의 서늘하고 날카로운, 지독히도 선득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간단하게만 입어. 몇 분 있다 벗을 옷, 여러 겹 입을 필요 없잖아.”“…어?”“어차피 집에 가는 길에, 비에 다 젖을 거 아니야. 집에 가서 내가 다시 깨끗하게 씻겨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적당히 입으라고.”“…!”바짝 긴
Last Updated: 2026-09-19
Chapter: 98화.
98화.“네? 오빠, 방금 뭐라고.”재훈은 가희의 물음에 대답도 없이 몸을 휙 돌려 기태의 집을 향해 전력 질주했다.골목길을 내달리니 손에 든 우산이 거슬렸다.재훈은 우산을 아무렇게 던져버리고 쏟아지는 빗줄기 사이를 쏜살같이 지나갔다.오늘 재훈은 은별이와 함께 시내에 나가서 저녁을 먹을 계획이었다. 아무리 채소를 챙겨 먹인다 해도 배달 음식은 배달 음식이었다.불판에 막 구운 소고기를 조그마한 은별의 입에 넣어줄 생각에 오후 내내 신나있었다.그랬는데….잡았다 싶으면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고은별 당신을 난, 어떻게 해야 할까.김기태가 당신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면, 난 대체 당신에게 무엇일까.채무자 고은별, 설마… 몇 번의 섹스로 우리의 관계를 정리하려 했었나.은별아, 당신은 예나 지금이나 나를 너무 우습게 보지.내가 당신이랑 섹스나 하려고 민박에 가둬놨을까.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면 자물쇠를 달아 진짜로 가둬 놓을 것을.내가 고은별한테 미친 바보 등신이라, 실수를 했네. 실수를 했어.당신의 인격을 존중해 문을 활짝 열어놨더니, 그 세를 못 참고 도망을 치지.띡. 띡. 띡. 띡.재훈이 반짝이며 빛을 발하는 키패드에 비밀번호를 하나하나 꾹꾹 눌렀다.띠리릭. 잠금장치가 열렸다.재훈이 천천히 현관문을 잡아당겼다. 눈앞에 보이는 거실엔 아무도 없었다.탁.재훈의 등 뒤로 문이 닫혔다.그는 비에 젖은 신발을 신을 채로 저벅저벅 걸음을 옮겨 곧장 기태의 방으로 향했다.문을 열었을 때 남녀가 엉켜있는 더러운 상상은 하지 않았다.고은별이 저를 우습게 본다고는 할지라도 김기태와 몸을 섞으리라 생각하지는 않았다.그저 김기태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자신이 진짜 미친놈이라는 사실을 말이다.벌컥! 방 문을 세게 열었다.허탈하게도 김기태는 침대 있지 않았다.어디 있나, 아저씨.재훈이 방 한쪽에 있는 욕실로 향했다.굳이 욕실 문을 열지는 않았다. 남자의 벗은 몸을 일부러 보는 악취미는 없었으니까.인기척만 확인하려 문에 귀를 갖다 댔다.쏴
Last Updated: 2026-09-19
Chapter: 97화.
97화.재훈은 카페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갈림길에서 순이 할머니의 손녀, 가희를 만났다.며칠 전 이미 만났던 사이였고, 재훈이 도움을 줬던 터라 가희가 먼저 인사를 했다.“안녕하세요. 재훈 오빠.”“어? 어. 안녕. 이름이 가희였나?”“며칠 됐다고 그 세 내 이름을 잊었어요?”가희는 얼굴에 서운한 빛을 띠며 말했다.오늘 만나는 남자마다 저를 서운하게 했다. 그나마 눌러놨던 짜증이 다시 올라왔다.재훈은 저를 향해 괜한 날을 세우는 가희를 뭐야, 하는 표정으로 바라봤다.두 사람은 며칠 전 재훈의 차 안에서 통성명했었다. 이런저런 얘기도 나눴던 것 같은데 굳이 기억할 필요가 있나.예쁘장한 얼굴에 글래머러스한 몸매, 금발의 머리와 초록빛과 오렌지빛이 도는 고양이 같은 렌즈를 끼고 있는 설가희.재훈에겐 그저 순이 할머니의 손녀일 뿐이었다.무엇보다 은별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재훈은 가희와 대화가 길어지는 것을 원치 않아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미안, 가희야. 다음엔 꼭 기억할게.”그러곤 민박 쪽으로 몸을 돌리는데, 가희가 재훈이 입고 있는 점퍼를 붙잡았다.“저, 오빠….”“왜 이래?”제 갈 길을 막는 가희를 바라보며 재훈은 조금 전과 다르게 살짝 미간을 구겼다.은별이 저녁을 먹여야 하는데 일 분, 일 초가 아까웠다.“우리, 술 한잔할래요?”“뭐?”“오빠 민박에 혼자 산다면서요. 요 앞 마트에서 술 사서 같이 한잔해요. 날씨도 꿀꿀한대.”“너, 지금 나 꼬시냐?”“네? 그건 아니에요. 오빠 내 스타일 아니거든요.”“뭐래냐. 너도 내 스타일은 아냐.”“잘됐네요. 서로 사심 없이 한잔 콜?”“한잔은 무슨. 됐고. 할머니 걱정하시겠다. 어서 들어가. 비까지 와서 깜깜한데.”재훈은 제 점퍼를 붙잡고 있는 가희의 손을 떨쳐내며 말했다.그때, 마치 길 잃은 고양이처럼 가희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그 모습에 재훈은 놀라며 물었다.“야, 야! 너 왜 울어? 내가 뭐 했다고 울어? 당황스럽게.”“그런
Last Updated: 2026-09-19
내 아래 너를 두고

내 아래 너를 두고

결혼 3년 차. 남편 준석의 오해로 외도 누명을 쓰고 이혼 위기에 몰린 여진. 결백을 증명하려 애쓰지만, 이 모든 것은 그녀를 되찾으려는 전 약혼자의 치밀한 덫이었다. 평온했던 부부 관계는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데....
Read
Chapter: 154화.
154화.“이거 놔요, 아파요.”준석은 아프다는 말에 짧게 한숨을 내쉬며 여진의 손목을 놓았다.“이 삼 일 내로 장모님 면회 날짜 잡을 거야.”“엄마… 면회를요?”엄마 이야기에 언제 날을 세웠냐는 듯 여진이 준석에게 바짝 다가섰다.그런 여자를 바라보며 준석이 입을 열었다.“그래. 그러니까 그때까진 소혜 씨 지금 이 스케줄대로 별아 돌보게 해. 장모님 면회 끝나면 다시 낮에만 근무하도록 조정하지. 소혜 씨도 나름 별아 케어한다고 수고가 많잖아. 당신 건강 생각해서 일부러 집에 상주하기로 한 거니까, 소혜 씨한테 싫은 티 내지 말고.”“…!”이건 또 무슨 소리지?싫은 티를 내지 말라니. 하!대체 베이비시터한테 무슨 얘기를 어떻게 들었길래 저런 말을 하는 거지?여진은 기가 막혔다.조금 전 1층에서 마치 단란한 가족처럼 화기애애한 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여진의 속이 뒤틀렸었다.그리고 소혜가 준석을 향해 알게 모르게 풍기는 유혹의 향기를 여진은 여실히 느꼈다.한데 아무것도 모르는 차준석은 오히려 소혜를 두둔하고 나섰다.“지금 누가 누구한테 싫은 티를 냈다는 거죠?”여진은 억울함을 넘어 분노가 차올랐다.“당신이 소혜 씨 불편하게 생각하고 신경 쓰는 거 잘 알아. 그래서 나도 당신이 말한 조건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고.”노력이라니.당연히 지켜야 할 행동들을 준석은 노력이라고 말했다.“지난번에 소혜 씨한테 동영상 받아보는 거, 당신이 싫어해서 이젠 동영상도 받아보지 않고 있어. 귀가 시간이 늦고, 출근 시간이 빠른 내가 별아를 제대로 볼 시간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해.”“그러니까 이제 내가 별아 돌본다고 했잖아요. 난 소혜 씨가 그만두길 바라요. 이제 정말 몸도 좋아졌어요. 그리고 그동안에 별아 키우면서 베이비시터 없이도 잘 키웠어요.”“그땐 내가 별아 존재를 몰랐을 때잖아. 지금은 달라. 어린아이처럼 왜 이러는지 모르겠군.”“준석 씨!”“당신이 자랄 때도 별아 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성장하지 않았나? 입주 도우미에 때때마다 가정교
Last Updated: 2026-09-20
Chapter: 153화.
153화.준석은 밤 9시가 되어 퇴근했다.현관을 들어서는 준석을 소혜가 별아를 앉은 채로 반갑게 맞이했다.“오셨어요, 대표님.”“여진이는요?”준석이 별아를 향해 빙긋 웃고는 곧장 소혜에게 물었다.“저녁 식사 이후 1층엔 내려오지 않으셨어요.”“그래요?”준석의 얼굴에 금세 근심이 서렸다.“식사는 하셨나요?”소혜가 생글거리며 물었다.“먹었습니다. 소혜 씨는 식사했어요?”“네. 그런데 조금밖에 못 먹었어요.”조금밖에 못 먹다니.그럼 별아를 돌보는 데 지장이 있지 않나?준석은 평소 이런 대화를 소혜와 나눈 적은 없었다.식사를 했냐는 물음에 예의상 물어본 말이었다.한데 별아를 밤낮으로 돌보아야 하는 베이비시터가 식사를 잘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신경이 쓰였다.“어디 불편한 대라도 있나요?”“그건 아닌데…, 아무래도 사모님이 저를 싫어하시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아서요.”“여진이가 소혜 씨를 싫어한다고요?”“네. 오늘 오후에 별아가 제 품에서 자는데 굉장히 날카롭게 반응하시더라고요. 저는 제 일을 잘하려고 했던 것뿐인데 말이죠.”소혜의 얼굴에 억울한 기색이 역력했다.평소 소혜의 실력을 모르지 않은 준석은 여진의 반응에 잘 뻗은 눈썹을 좁혔다.“수고 많았어요, 소혜 씨. 밤에도 수고해 주고요.”“수고는요. 제 일인 걸요. 전 하루빨리 사모님이 건강을 되찾으시길 바랄 뿐이에요.”준석은 소혜의 말에 짧게 입가를 올리고는 마지막으로 별아의 뺨에 쪽, 뽀뽀했다.“잘자, 우리 딸.”“아빠!”“하하, 그래. 아빠야.”준석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거실을 울렸다.그때였다.“준석 씨.”언제부터 서 있었는지 2층 계단 앞에서 여진이 준석을 불렀다.준석이 고개를 들어 여진을 바라봤다.“담소가 기네요.”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않은 여자의 얼굴이 준석의 눈동자에 한가득 들어왔다.“지금 올라가려던 참이야.”준석은 여진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곧장 계단으로 향했다.여진은 별아를 안은 채로 저를 빤히 응시하는 소혜를 서늘
Last Updated: 2026-09-20
Chapter: 152화.
152화.연희동.가을 오후의 따가운 햇살이 거실 통창에 강렬하게 부딪혔다.점심을 먹고 낮잠에서 깨어난 여진은 1층과 연결된 정원으로 나갔다.그곳엔 이미 베이비시터와 별아가 있었다.별아는 피크닉 담요 위에 앉아, 앞에 놓인 원목 도구들을 만지작거렸다.소혜는 별아의 움직임에 맞게 추임새를 넣어주며 아이가 심심하지 않도록 놀아주었다.한데 그 모든 놀이 과정을 한국어, 영어, 중국어를 번갈아 가며 사용했다.그 모습에 여진은 괜한 조바심이 일었다. 그녀가 서둘러 별아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파삭, 거리는 잔디 밟는 소리에 소혜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나오셨어요.”상당히 사무적인 인사가 여진에게 향했다.“수고가 많아요. 소혜 씨.”여진은 일부러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지 않았다.요 며칠 소혜를 지켜본 결과, 소혜는 정말 자신에게만 ‘선생님’ 소리를 듣고 있었다.서 씨 아주머니 말고도, 집 안 청소를 위해 정기적으로 오는 사용인이나 정원사도 ‘소혜 씨’라고 불렀다.무엇보다 여진이 소혜를 ‘선생님’이라고 부를 때 그녀의 얼굴에 만족감이 스치는 것을 여진은 분명히 보았다.여진은 저를 올려다보며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소혜를 지나쳐 별아 앞에 앉았다.“우리 별아, 재밌어?”그러곤 나무 원목을 쌓아 올렸다.“엄마!”“그래 우리 별아, 엄마랑 성 만들까?”꽤 오랜만에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었다.여진은 저를 의식하는 소혜의 시선을 무시한 채 별아와 함께하는 놀이에 집중했다.얼마나 지났을까.별아가 졸린지 칭얼대기 시작했다.“우리 아기 졸려? 자, 엄마한테 와 봐.”여진이 별아에게 팔을 뻗어 아이를 안으려 할 때였다.이를 지켜보고 있던 소혜가 재빠르게 움직여 별아를 단숨에 안았다.여진은 황당한 얼굴로 소혜를 바라봤다.소혜는 여진을 쳐다보지도 않고 별아를 안은 채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해를 등지고 일어섰기에 소혜의 표정이 정확히 보이진 않았다.하나 칭얼대던 별아가 소혜의 품에서 곧 안정을 찾는 것은 똑똑히 보였다.그 순간
Last Updated: 2026-09-20
Chapter: 151화.
151화.며칠 뒤.M 호텔, 스위트 룸.툭!소파에 길게 누워있는 문율의 맨몸 위로 흰 봉투가 무겁게 떨어졌다.“웬 떡이야?”문율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봉투를 보고 몸을 빨딱 일으켜 앉으며 신난 얼굴을 했다.“웬 떡은. 용돈이야.”차애란이 벌어진 블라우스 단추를 채우며 말했다.“용돈? 나 또 뭐해야 해?”“네가 제일 잘하는 게 얼굴 아니겠어?”“내 얼굴 또 어디다 써먹게?”“베이비시터 하나 꼬셔 봐.”“뭐야, 이번엔 베이비시터야? 누나, 아무리 내가 아직 근신 기간이라지만 내가 베이비시터 꼬실 급은 아니잖아. 서운하게.”차애란은 입가를 비릿하게 올리더니 문율의 다리를 의자 삼아 마주 보고 앉았다.그러곤 문율의 뺨을 가볍게 툭, 툭. 쳤다.문율의 인상이 잘게 구겨졌다.“지금 찬물 더운물 가릴 때니?”“누나, 존심 상하게 뺨은 건들지 말자.”“정신 차려, 문율.”“뭔 소리야. 나 정신 말짱한데?”다시 뺨을 툭, 툭.“계열사는 날로 먹니? 놀고 있는 몸뚱이 좀 놀려.”“아이, 씨. 하지 말라니까. 그래서 어떻게 놀리면 돼?”문율을 자꾸 제 뺨을 치는 차애란이 못마땅했으나 계열사 얘기에 금세 얼굴색을 바꿨다.“봉투 두께 봐서 알겠지만, 꽤 넣었으니까 네 몸 아끼지 말고 써 봐.”“누나, 진짜 몸도 써?”문율의 눈동자가 의구심과 함께 해방감에 번득거렸다.그동안 차애란 밑에서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얼마나 힘들었었나.그래도 연예계에 있을 때는 중간중간 딴짓이라도 했지.이래저래 숨통이 꽉 막힌 상태에서 몸도 쓰라는 차애란의 말은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웠다.“뭐니, 너. 너무 티 나게 좋아한다?”“아이, 왜 또 그래 누나. 일이잖아. 일! 그것도 누나가 시키는 일! 베이비시터랑 끝까지 가더라도 다 연기라고, 연기!”문율이 차애란을 꼭 끌어안으며 주인한테 아양 떠는 개처럼 얼굴을 비벼댔다.“야, 얼굴 저리 치워. 이거 한정판 블라우스야.”“그래서 이렇게 부드럽구나. 누나 살결 같다.”기가 찬 표정을 짓던 차애
Last Updated: 2026-09-20
Chapter: 150화.
150화.새벽이 되도록 잠을 자지 못했던 그였다.장모님 소식에 눈물짓던 여진의 얼굴이 자꾸 아른거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침대에 누워 억지로라도 눈을 감았다.그럼에도 잠이 오지 않아 몸을 뒤척일 때였다.‘꺄악!’침실에서 들려오는 겁에 질린 날카로운 여진의 비명!준석은 그 순간 제 심장이 멎는 것만 같았다.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침실로 부리나케 향했다.그러곤 울고 있는 여진을 제 품에 와락 안았다.“무슨 일이야?”식은땀에 젖은 여진의 등이 그의 손바닥에 차갑게 닿았다.제기랄, 악몽을 꿨나?“흐으윽…. 어, 엄마….”여진은 준석의 품에 안겨서도 진정하지 못하고 한참을 흐느껴 울었다.“괜찮아, 여진아…. 괜찮아….”준석은 식은땀과 눈물로 젖은 여자를 안심시키려 애썼다.하아, 눈물짓던 너를 그렇게 혼자 두는 게 아니었는데….여진을 연신 다독이며 준석은 뒤늦은 후회를 했다.준석이 여진을 더 깊숙이 끌어안으며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대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물었다.“악몽을 꾼 거야?”여진은 대답 없이 그의 품에서 훌쩍이며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여전히 악몽의 그늘에 있던 그녀는 쉽사리 흐느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진정해. 꿈일 뿐이야, 꿈.”준석이 여진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그녀를 안심시켰다.따스한 손길에 악몽이 점점 희미해지며 그녀의 흐느낌도 잦아들었다.그녀가 울음을 완전히 멈추자, 준석이 품에서 여진을 놓아주었다.이내 고개를 기울여 여진의 얼굴을 손에 넣고 하얗고 작은 얼굴을 세세히 들여다봤다.새빨갛게 짓무른 여자의 눈동자와 눈두덩이가 그의 시선을 붙잡았다.이런 여자를 두고 홀로 서재로 돌아갈 수가 있을까.안될 일이다.“여기서 같이 잘까?”불안이 가득했던 여진의 얼굴에 그제야 안도감이 스며들었다.별아와 단둘이 살 땐 이런 꿈을 꾸어도 덮쳐 오는 두려움을 혼자 끌어안고 울 수밖에 없었다.혹여 별아에게 좋지 않을까 싶어 울음소리를 내지 않으려 여린 입안을 꾹 깨물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한데 지금은
Last Updated: 2026-09-19
Chapter: 149화.
149화.“그, 그건….”“예민하게 굴지 마. 정신없이 바쁜 하루, 별아 동영상 하나가 나한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당신, 알기나 해?”“…!”“모르겠지. 그러니까 동영상 하나 때문에, 이 늦은 밤에 피곤한 사람 붙잡고 잔소리하는 걸 테고.”“준석 씨, 지금 내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내 말은.”“당신이 무슨 의미로 말하는지, 따지고 들지 않아도 알아들었으니까, 동영상 얘기는 여기까지만 해.”“하아!”“그건 그렇고, 오늘 장모님을 뵙고 왔어.”“…네?”여진은 갑자기 튀어나오는 엄마 이야기에 순간 모든 사고가 멈췄다.“장모님이 당신과 면회를 원해.”“방금…, 뭐, 뭐라고 했어요?”“장모님이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한다고.”“…!”“당신 몸 좋아지는 대로 면회 일정 잡을 테니, 몸 회복에 집중해.”여진은 삽시간에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올라 입술만 달싹일 뿐 어떤 대답도 하지 못했다.엄마가… 나,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니…!생각지도 못한 기쁜 소식에 울컥하고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피곤해 보이는데, 어서 자.”준석은 곧 울 것 같은 여자를 안아 주고 싶었으나, 제 감정을 애써 감추며 곧장 침실을 빠져나갔다.침실에 더 머물렀다간, 여진의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걸로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거기에서 멈출 자신이 없었다.***넘실대는 호수의 수면 위로 윤슬이 반짝거렸다.작은 배 위, 여진의 건너편에는 젊은 시절 엄마와 초등학생인 오빠가 한가로운 얼굴로 앉아있었다.지나치게 화려한 윤슬에 여진이 눈가를 찡그리며 손으로 차양을 만들었다.그녀의 시야에 오빠를 꽉 끌어안고는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을 한 엄마가 보였다.오빠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왕자님처럼 엄마 품에서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씨익 웃고 있었다.아직 유치원생인 여진은 그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물끄러미 바라봤다.나도 엄마 품에 안기고 싶어.여진이 엄마에게 다가가려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고사리 같은 작고 연약한 그녀의 양손
Last Updated: 2026-09-19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