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사실 일부러 그렇게 심한 말을 하려던 건 아니었다.다만 그날 최동윤이 강지현에게 했던 말이 떠오르기만 하면...자기는 서지아를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그게 가슴에 작은 가시처럼 박혀 있었다. 그래서 원래 갖고 있던 호감까지 전부 사라진 것 같고, 괜히 화까지 났다.애초에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 관계도 없었다.특별한 사이로 발전할 가능성도 없었다...서지아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다.‘왜 내가 비서 한 명이 자기를 좋아하느냐 마느냐에 이렇게 신경을 쓰는 걸까? 상대가 분수를 잘 안다는 사실조차 기분 나쁠 이유가 있단 말인가?’그 뒤로 두 사람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차가 도착했다.서지아의 친구는 쇼핑몰에서 쇼핑 중이었고, 두 사람은 쇼핑몰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다.그런데 서지아가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나 벌써 도착했어. 지금 바로 갈게...”“저 검은 부가티 맞아?”“응.”서지아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친구는 전화를 끊었다.곧 최동윤 쪽 차창을 누군가 두드렸다. 서지아의 친구가 쇼핑몰 직원 두 명을 데리고 차 앞에 나타났다.서지아는 놀라 급히 차에서 내렸다.“됐어요. 이제 가셔도 돼요.”서지아가 온 걸 본 친구는 웃으며 옆의 직원들에게 손을 흔들었다.그러자 직원들은 들고 있던 쇼핑백 수십 개를 바닥에 한꺼번에 내려놓았다.“이걸 다 네가 산 거야?”서지아가 눈을 크게 떴다.이 친구는 서경 상류층에서 귀하게 자란 집안의 외동딸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서로 다른 도시에 살게 된 뒤에도 서지아가 F 국으로 일하러 가기 전까지는 매달 번갈아 찾아가 며칠씩 함께 지냈다.마침 서지아가 서경시에 온 만큼 떠나기 전 한 번은 얼굴을 봐야 친구도 섭섭해하지 않을 터였다.친구가 자랑스럽게 웃었다.“응. 이 중에 네 선물도 엄청 많아!”“너 혹시 매장 한 층을 통째로 털었어? 빨리 사람 불러. 나 이거 들어 줄
그 이야기가 나오자 모두 눈빛이 반짝였다.이번 김태하와 강지현의 결혼식은 분명 화려하고 성대했지만, 너무 아슬아슬한 일까지 겹쳐 모두가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그래서 다들 주시언과 하원영만큼은 해원시에서 편안하고 따뜻한 분위기의 결혼식을 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이 사람 저 사람 의견을 내다보니 이야기는 한 시간 넘게 이어졌다.다만 김태하와 강지현의 결혼식을 막 치른 참이라 주시언과 하원영 모두 급할 것 없다며 조금 더 미루고 싶어 했다.적어도 강지현과 김태하의 몸이 조금 더 회복될 때까지는 기다릴 생각이었다.짧은 모임이 끝나자 현다영은 지순옥의 차를 타고 호텔로 돌아갔고, 주시언과 하원영도 함께 떠났다.서지아만 서경시에서 따로 만나기로 한 친구가 있어 직접 차를 불렀다.“최 비서님, 지아 좀 데려다줘요.”강지현은 곧바로 아직 떠나지 않은 최동윤을 불렀다.그녀는 최근 최동윤과 서지아 사이의 분위기가 묘하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여럿이 모일 때도 서지아가 있으면 최동윤은 일부러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반대로 최동윤이 있으면 서지아는 자리에 오래 앉아 있지 못하는 사람처럼 금방 떠나곤 했다.두 사람은 어느 순간 갑자기 남보다도 어색한 사이가 된 듯했다.강지현의 말을 들은 최동윤은 잠깐 망설였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서지아는 급히 손을 내저었다.“아니에요. 괜찮아요. 이미 차 불렀어요. 바로 앞에 와 있어서 편해요.”“그래도 누가 데려다주는 게 낫죠. 우리도 방금 큰일 겪었잖아요. 혹시 모르니까요. 아니면 진 대표님한테 전화해 볼까요? 요즘 서지아 씨랑 자주 만나는 것 같던데, 시간 되면 데리러 올 수도 있잖아요?”강지현의 두 마디에 서지아와 최동윤이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두 사람은 잠깐 시선이 마주치더니, 한쪽은 곧바로 고개를 돌리고 다른 한쪽은 시선을 내렸다.“그런 일로 진 대표님까지 귀찮게 할 필요 없어요. 그리고 저 그 사람이랑 그렇게 가까운 사이도 아니에요.”서지아는 조금 불편한 듯 말한 뒤 호출한 차를 취소하
두 사람은 서로를 안은 채 한동안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다가 다시 잠들었다.다시 일어났을 때는 해가 이미 중천에 떠 있었다.별장에는 일찍부터 여러 사람이 와 있었다.오늘은 가족과 친한 사람들끼리만 모여서 점심을 먹는 날이었다. 이 자리까지 마치면 내일은 대부분 해원시로 돌아갈 예정이었다.모두가 눈치가 좋았는지 김태하와 강지현이 늦잠 자는 걸 그대로 두었고, 결국 오후 3시가 돼서야 식사를 시작했다.김태하는 입맛이 없었다. 강지현은 주방에 따로 말해 담백한 죽과 반찬을 준비하게 했다.그런데도 식사하는 동안 김태하는 몇 숟갈만 먹고 더는 수저를 들지 않았다.“아직도 안 좋아?”계속 그를 살피던 강지현은 식사가 끝나자마자 약부터 가져왔다.김태하는 약을 먹고 낮게 말했다.“조금 불편한 정도야. 괜찮아.”강지현은 바로 병원에 데려가고 싶었지만 아직 손님들이 남아 있었고, 김태하도 그녀를 말렸다.얼굴빛이 실제로 많이 돌아온 걸 확인한 뒤에야 강지현도 더 고집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이야기하고 있을 때 주시언과 하원영이 함께 다가왔다. 옆에는 눈치 없이 끼어든 사람처럼 육운성도 붙어 있었다.현다영과 서지아는 지순옥 일행이 선물을 정리하는 걸 돕고 있었고, 주단우와 지현우는 오늘 오지 않았다.주단우는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고, 지현우는 회의가 있어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육운성은 신혼부부가 다정하게 붙어 있는 모습을 보자마자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어이구, 김 대표님은 왜 이래? 어젯밤에 너무 무리했나?”김태하는 그를 흘깃 봤다.“말이 많아.”강지현도 육운성에게 놀림당할까 봐 얼른 화제를 돌렸다.“원영 씨, 우리 내일 해원시로 돌아가는데 같이 갈래요?”“원영이는 조금 늦게 갈 거야.”주시언이 대신 대답했다.“나 여기서 일이 좀 남았거든. 그거 끝내고 해원시로 갈 건데 원영이가 같이 있어 주기로 했어. 휴가도 며칠 내고.”“아, 큰 고비 하나 넘겼다고 벌써 일 안 하려고요? 휴가도 미리 말 안 하고?”강지현이 일부러 놀리자
절망과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할 이유조차 거의 잃고 지냈다.그런데 강지현은 매일 김태하와 붙어 행복을 누리고 있었다.‘세기의 결혼식? 진짜 사랑?’이도운은 생중계에 올라오던 댓글만 떠올려도 이를 갈았다.‘아니, 그럴 리 없어. 두 사람 사이에 진짜 사랑이 있을 리 없어.’강지현이 자신을 떠난 이상 절대 행복하게 살게 둘 수 없었다....서경시, 이른 아침. 관성 별장.“김태하!”강지현이 갑자기 놀라 외치며 눈을 떴다. 바로 앞에는 미간을 찌푸린 김태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악몽 꿨어?”김태하는 그녀의 이마를 짚어 본 뒤 손바닥으로 머리카락 사이에 맺힌 땀을 닦아 줬다.어제 두 사람의 결혼식은 무사히 완벽하게 끝났다.하지만 결혼식이 끝난 뒤에도 두 사람은 쉴 틈 없이 바빴다.인터뷰와 각종 인사를 연달아 소화했고, 한참 늦어서야 별장으로 돌아와 가족과 친지들을 따로 불러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결혼식을 막 올린 신혼부부의 첫날밤이라는 걸 모두 알기에, 사람들도 눈치껏 오래 붙잡지 않고 금방 자리를 정리했다.그렇지만 김태하와 강지현은 이미 녹초가 돼 있었다. 강지현은 화장을 지우고 씻는 것까지 김태하가 직접 도와줘야 할 정도였다.침대에 눕자 둘은 제대로 사랑을 나눌 겨를도 없이 차례로 잠들었다.물론 가장 먼저 잠든 사람은 강지현이었다.종일 온몸이 녹초가 되도록 뛰어다녔으니 그럴 만했다.그런데도 두 팔만큼은 계속 김태하의 허리를 꼭 감고 있었다. 팔이 저릴 정도가 돼도 놓지 않았다.강지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조금 억울한 듯 김태하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몸을 움직여 고양이처럼 그의 품속으로 더 파고들어 더 세게 끌어안았다.“응. 진짜 무서운 악몽 꿨어.”“꿈은 반대라고 하잖아. 무서워하지 마. 그런데 무슨 꿈이었는데? 나한테 말해 봐.”김태하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는 언제나 강지현의 마음을 금세 안정시켜 줬다.강지현은 그의 품에 기대 중얼거렸다.“기억은 잘 안 나. 그런데 그냥 너무 무서웠
가족 이야기가 나오자 이서는 곧바로 마음이 아파졌다.그녀는 이도운을 끌어안고 아이를 달래듯 부드럽게 말했다.“괜찮아요. 그렇게 못된 사람들은 절대 행복해질 수 없어요. 이제부터 제가 도운 씨를 지켜 줄게요.”“이서야... 고마워.”이도운은 이서에게 몇 번 입을 맞췄다. 그러면서도 표정에는 아직 뭔가 말하지 못한 뭔가 있는 듯했다.“도운 씨, 혹시 아직 그 여자를 못 잊은 거예요?”여자의 직감으로 이서는 결국 그렇게 물었다.이도운은 곧바로 부정했다.“아니야. 지금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너야. 내 마음에는 너밖에 없어. 그냥 내가 너무 무능했던 게 미워. 이제는 할머니 묘에 찾아가 뵙는 것도, 아버지 곁에서 효도하는 것도 사치가 돼 버렸으니까...”“...”이서의 눈빛이 흔들리는 걸 본 이도운은 얼른 그녀의 손을 잡아 자신의 가슴 위에 올렸다.“그래도 하늘이 날 버리진 않았나 봐. 너를 만나게 해 줬잖아.”이서는 그의 말에 감동해 가슴이 벅차올랐다. 눈앞의 남자를 지켜 주고 싶다는 마음이 한껏 커졌다.“걱정하지 말아요. 귀국하는 게 뭐가 어렵다고 그래요. 도운 씨의 회사도, 그 사람들이 빼앗아 간 것도 전부 제가 되찾아 줄게요.”지금 자신이 조금 충동적이라는 건 알았지만 이서는 그래도 이도운에게 약속했다.이도운의 눈이 순간 빛났다.“이서야, 정말이야?”“당연하죠. 전 누구도 도운 씨를 괴롭히게 두고 싶지 않아요.”이서는 옅게 웃으며 이도운의 얼굴을 쓰다듬었다.“하지만 지금 내가 돌아가도 주씨 집안과 김씨 집안을 상대할 방법이 없어...”이도운의 표정이 다시 깊이 가라앉았다.이서는 가볍게 웃었다.“그게 뭐가 어려워요? 정면으로 못 이기면 다른 힘을 빌리면 되죠. 그 사람들이 권력 믿고 도운 씨네 집안을 짓밟았던 것처럼 말이에요.”“우리 집안 배경이 어떤지 도운 씨도 알잖아요. 해원시 최고 부자 정도가 우리 집과 비교가 돼요?”그 말은 정확히 이도운이 바라던 것이었다.그런데도 그는 걱정하는 척 고개를 저었다.“너까지 끌어
발표 준비를 이유로 내부에서 ‘잠재 주요 고객’ 명단도 손에 넣었다.그 명단을 추려 본 결과 이서를 비롯한 몇몇 귀족 영애가 그의 목표에 가장 잘 맞았다.그날 만찬이 끝난 뒤 이도운은 자신에게 주문을 넣은 여러 영애와 연락처를 주고받았다.그중에서도 이서만큼 자신에게 깊이 빠진 사람은 없었다.하늘은 늘 그에게 가장 좋은 걸 내주곤 했다.알면 알수록 이도운은 이서의 집안 배경이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했다.그래서 오히려 더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거의 다 잡은 기회를 놓칠까 두려웠다.“매일 네가 눈앞에 있으니까 오히려 더 보고 싶어지는 거야.”이도운의 시선이 다시 이서의 눈에 머물렀다.여자의 풋풋함은 예전 강지현과 똑 닮아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강지현이 아니었다.마음 한구석의 그리움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늘 조금 부족했다.“말은 예쁘게 하는데, 제가 보기엔 요즘 저한테 점점 차가워지는 것 같아요...”이서는 서운한 듯 투덜거렸다. 무엇보다 오늘 이도운의 태도가 계속 차가웠던 게 마음에 걸렸다.이도운이 입맞춤으로 이서의 말을 막았다.“미안해. 오늘은 내가 좀 정신이 없었어. 그래도 네가 옆에 있으니까 괜찮아졌어.”“대체 무슨 일인데요?”그 말을 듣자 이서는 금세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저녁 식사 때 이민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혹시 그 원수들 때문이에요?”“응.”이도운의 눈빛이 어두워지며 낮게 대답했다.이서는 곧바로 이도운의 목을 끌어안고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저한테 말해 줘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저도 같이 나누고 싶어요.”“네가 알게 되면 나를 싫어하거나... 무시하게 되진 않을까?”이도운이 눈을 내리깔았다. 짙은 속눈썹이 눈가에 옅은 그림자를 드리웠다.“그럴 리가 없잖아요.”이서는 곧장 이도운을 더 꼭 끌어안았다.“제가 좋아하는 건 도운 씨라는 사람이에요. 예전에 무슨 일이 있었든 상관없어요.”이도운은 잠시 침묵하다가 이서의 눈가를 손끝으로 쓸었다. 큰 결심이라도 한 사람처럼 보였다.“알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