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송준호는 잠시 멈칫하다 곧장 시키는 대로 했다.통화를 마친 송준호는 바닥에 쓰러진 사람들을 재빨리 묶었다.“버틸 수 있겠어요?”송준호가 다시 주단우를 바라봤다.주단우는 대답하지 않고 몇 걸음 옮겼다.“다영이는 크게 다친 건 아니겠죠?”송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타나자마자 확인했는데 현다영은 정신만 잃었을 뿐 맥박도 모두 정상이었다.“다영이랑 병원에 가요. 전 먼저 갈게요.”주단우는 힘겹게 말을 마치고, 먼저 택시를 잡아 근처 응급실에서 상처를 치료받으려 했다.송준호가 다가와 부축했다.“같이 가면 안 돼요?”“아파 죽겠는데 그럴 여유 없어요.”말은 그렇게 했지만 송준호는 주단우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마음이 여린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송준호는 길목까지 가서 직접 택시를 잡아 주었다.택시에 탄 주단우가 송준호를 다시 바라봤다.“제가 왔다는 얘긴 하지 말아요.”“하지만...”“제가 이러는 건 송준호 씨한테 생색내라고 그런 게 아니에요.”송준호의 말을 끊은 주단우가 낮게 덧붙였다.“현다영이 알아도 별일 없겠지만, 전 빚지는 것도 빚지게 하는 것도 싫어요.”말을 마치고 차 문을 힘주어 닫았다.택시는 밤길을 달려 사라지고 송준호의 크고 외로운 그림자만 어둠 속에 남았다.어제 새벽 송준호는 집을 나서자마자 건물 아래에서 주단우를 발견했다.주단우는 밤새 떠나지 않았다.송준호를 단둘이 만나기 위해 차 안에서 꼬박 밤을 새웠다.송준호는 주단우가 현다영에게서 떨어지라고 경고하려는 줄 알았다.그런데 뜻밖에도 주단우는 송준호에게 남아 달라고 했다.“현다영이 송준호 씨를 많이 좋아해요. 정말 모르겠어요?”주단우는 돌려 말하지 않으며 송준호가 피할 틈을 주지 않았다.송준호도 솔직히 답했다.“절 좋아해 줘서 고맙게 생각해요. 하지만 우리는 함께할 수 없어요. 걱정하지 말아요. 앞으로는 다영이를 만나지 않을 거니까.”“그저 고맙기만 해요? 현다영이라는 사람 자체는 조금도 좋아하지 않아요?”“그건 중요하지 않아요.”“저한텐 중요해요
게다가 어째서인지 갈수록 머리가 어지러웠다. 손에서 힘이 풀리더니 그대로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입을 막은 수건에... 약이 묻어 있었다!“그만 버둥거리고 얌전히 한숨 자.”아버지가 코웃음을 쳤다.현다영에게 바짝 다가온 현동건은 얼굴 바로 옆 벽에 담배꽁초를 느긋하게 비벼 껐다.현다영의 의식은 그 장면을 마지막으로 끊겼다.바로 그때 둔탁한 소리가 났다.현동건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뒤를 돌아보니 웬 남자가 벽돌을 주워 머리를 내리쳤다.머리를 만져 보자 손바닥에 피가 흥건했다!“너, 또 너야!”현동건은 곧바로 알아봤다. 예전에 자신을 감옥에 보냈던 그놈 아닌가!그런데 또 나타나다니!‘며칠 동안 사람까지 시켜 현다영이 매일 혼자 귀가하는 걸 확인했는데... 저놈은 왜 이렇게 끈질긴 거야!’현동건이 맞는 모습을 보자 남자 둘도 돌아섰다. 현다영은 이미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주단우는 다친 몸으로 현동건을 쓰러뜨리느라 힘이 많이 빠졌지만, 현다영이 쓰러진 걸 보자 생각할 틈도 없이 벽돌을 휘두르며 남자 둘에게 달려들었다.하지만 혼자서 둘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몇 대 얻어맞자 주단우는 바닥에 나뒹굴었다.남자들은 주단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다시 현다영을 둘러업으려 했다. 그때 주단우가 재빨리 일어나 남은 벽돌 조각으로 뒤에서 한 명을 내리쳤다.동료의 비명이 터지자 다른 남자가 격분해 주단우의 멱살을 잡고 사정없이 두들겨 팼다.맞고 쓰러졌던 남자도 화가 나 단검을 뽑아 주단우에게 휘둘렀다.그러나 칼끝이 닿기 직전 누군가 그 팔을 붙잡았다.“으악!”남자는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손목이 꺾였다.주단우는 여전히 온 힘을 다해 남자에게 맞서고 있었다. 남자가 동료의 비명에 한눈을 판 틈을 타 주단우는 그를 밀쳐 넘어뜨렸다.“송준호...”고개를 든 주단우의 눈앞에 송준호가 나타나 있었다.송준호의 움직임은 빠르고 거침없었다. 남자 둘은 반격할 틈도 없이 급소를 얻어맞고 바닥에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주단우는 송
“저한테 주세요. 제가 다녀올게요.”주단우는 늘 현다영에게 일을 시켰기에 익숙해져 있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조금 의아했다.그래도 고개를 끄덕이고 서류를 건넸다.얼마 지나지 않아 비서가 서류를 돌려주었다. 주단우의 서명은 군더더기 없이 시원했고 글씨도 꽤 멋졌다.“참, 주 대표님은 몸 좀 어떠세요? 별일 없으시죠?”현다영의 질문에 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안색은 괜찮아 보이세요. 계속 회의 중이시고요.”일도 평소처럼 하고 있으니 큰 문제는 없는 모양이었다.현다영은 마음을 놓고 더 묻지 않았다.오후에 프로젝트 회의를 마치고 회의실을 나서다가 주단우와 정면으로 마주쳤다.주단우는 깔끔한 정장에 넥타이도 반듯하게 맸지만 안색이 좋지 않았다. 얼굴에 핏기가 없고 다크서클도 짙었다.“주 대표님.”현다영이 먼저 인사했지만 주단우는 고개만 한번 끄덕일 뿐,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현다영은 주단우가 거리를 두는 게 느껴져 조금 민망했다.아직 자신에게 감정이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하지만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시간이 흘러 주단우의 마음이 완전히 식으면 두 사람도 예전처럼 편하게 지낼 수 있을 테니까.그날은 일이 많아 현다영도 밤늦게까지 야근했다.퇴근길에 주단우의 사무실을 지나쳤는데 여전히 자리에 있었다. 당장 퇴근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그래도 환자인데, 그만 쉬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잠깐 망설이다가 결국 방해하지 않기로 했다.현다영은 집 근처에서 평소처럼 먹을 것을 사 들고 골목으로 들어섰다.밤이 깊어지자 뒤에서 또 발소리가 들렸다.이번에는 그다지 긴장하지 않았다. 다만 집에 빨리 가고 싶어 걸음을 재촉했다.그런데 앞쪽 모퉁이에서도 사람 그림자가 나타났다.덩치 큰 남자가 길을 가로막았다. 앞뒤에 선 사람들은 작정한 듯 동시에 현다영에게 달려들었다.이상하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도망칠 틈이 없었다.소리를 지르려는 순간 누군가 팔을 잡아끌어 벽 모퉁이에 밀어붙였다.이 동네는 오래돼 경비원도 없고, 주민도
사실 강지현은 현다영에게 할 말이 하나 더 있었다. 어제 주단우가 연락해 왔다.하지만 당시 강지현은 김태하와 병원에 가는 중이었고, 그 일이 어떻게 될지도 몰라 현다영에게 섣불리 기대를 주고 싶지 않았다.이제야 생각나서 물어보려는데 김태하가 말을 걸었다.“누구랑 얘기해?”“현다영. 너 사진 잘 찍는다고 칭찬하더라.”김태하가 살짝 웃으며 뒤에서 강지현을 끌어안고 뺨에 입을 맞췄다.강지현은 김태하의 품에 등을 기대고 휴대전화를 거실 탁자에 내려놓았다.“다영이가 다른 얘기도 했어.”강지현이 고개를 돌렸다.“전에 너 치료하던 의료진 중에 성하윤이라는 여자 의사가 있대. 오늘 회사에 찾아와서 너한테 새로운 치료법을 시도해 보게 하고 싶다고 했대.”김태하는 움직임을 멈추더니 미간이 알아채기 어려울 만큼 살짝 찌푸려졌다.“성하윤?”김태하가 이름을 되뇌었다. 담담한 목소리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읽히지 않았다.“기억나?”“기억 안 나.”김태하는 강지현을 안고 있던 팔을 풀더니 별 관심이 없다는 듯 탁자에 놓인 물컵을 집어 한 모금 마셨다.강지현은 김태하를 한번 보고는 더 묻지 않았다.김태하는 자기와 상관없는 사람과 쓸데없이 말을 섞는 성격이 아니니 기억하지 못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그래도 그 의사 선생님 마음이 참 좋더라. 아직 네 병을 걱정해 주잖아. 검증된 방법은 아니라지만 한번 시도해 봐도 괜찮지 않을까?”강지현은 김태하의 병이 완전히 낫기를 간절히 바랐다.어제 오후 노르국에 도착하자마자 일행에게 짐 정리를 맡기고 김태하와 전문 병원부터 찾았다.이곳의 종양 연구는 세계 최고 수준이었지만, 김태하의 상태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의료진도 약으로 진행을 늦추는 방안밖에 제시하지 못했다.종양이 변성될 위험을 예상보다 조금 더 줄일 수 있다는 정도였다.결국 국내에서 받는 치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강지현이 기대했던 것과는 차이가 컸다.김태하는 알았다고 대답할 뿐, 여전히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강지현은 그 반응이 치료법 자체를
“휴가요? 몸이 안 좋으신가요?”현다영이 무심코 묻자 비서는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주단우가 없으니 결재도 일단 멈출 수밖에 없었다.자리로 돌아온 현다영은 몸 상태가 어떤지 주단우에게 메시지를 보내려 했다.막 취임한 주단우는 일이 많았다. 몸이 정말 안 좋은 게 아니면 휴가를 내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메시지를 다 써 놓고도 결국 지웠다.지금 두 사람은 무엇보다 상사와 부하 직원 사이였고, 그다음이 친구였다.현다영은 주단우에게 이미 분명히 선을 그었다. 하지만 어제 보니 주단우는 아직 마음을 접지 못한 것 같았다.지금은 거리를 두는 수밖에 없었다.좋아하지도 않으면서 희망을 줘서는 안 됐다.퇴근길에 현다영은 혼자 먹을 음식과 맥주를 조금 샀다.기분이 안 좋을 때는 먹고 마셔야 잠이라도 잘 왔다.집이 있는 동네는 그다지 외진 곳이 아니었지만 한적한 골목길이 조금 있었다.편의점에서 나왔을 때 골목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비틀거리며 따라오는 듯했다.현다영은 이유 없이 긴장했다. 뒤돌아볼 엄두도 못 낸 채 걸음을 재촉했다.그 순간 뒤따라오던 사람이 뛰기 시작했다.현다영은 있는 힘껏 달렸다.다행히 집이 멀지 않았다.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가 곧바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집 앞에 도착해서야 숨을 헐떡이며 뒤돌아보고 계단 창문으로 아래를 내려다봤다.골목에 술 취한 남자 몇 명이 비틀거리며 지나가고 있었다.식은땀을 한바탕 흘린 뒤에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괜히 놀랐던 모양이었다.현다영은 집에 들어가 불을 켰다. 그러자 다시 허전한 기분이 밀려왔다.‘어제 이 시간에는 송준호와 부엌에서 나란히 다정하게 음식을 만들고 있었는데...’손에 든 음식은 더는 맛있어 보이지 않았다.‘혼자 먹는 밥이 둘이 먹는 밥만 하겠어? 아니지. 혼자 먹는 밥이 좋아하는 사람과 먹는 밥만 하겠냐고.’현다영은 사 온 음식을 대충 내려놓고 소파에 털썩 몸을 던졌다.심심해서 휴대전화를 뒤적였다.마침 오늘 새벽 강지현이 붉게 물
현다영은 밤새 뒤척이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났다.예상대로 방에서 나왔을 때 송준호는 이미 떠난 뒤였다.소파는 말끔하게 정리돼 있었다.송준호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탁자 위에 있던 케이크 상자까지 쓰레기와 함께 치워 갔다.바람처럼 왔다가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현다영은 어제 송준호가 누웠던 자리에 앉았다. 가슴이 답답해 견딜 수 없었다.‘사랑이란 대체 뭘까? 서로 같은 마음이 되기는 왜 이렇게 어려울까... 왜 하필 좋아하는 사람은 붙잡으려 할수록 멀어지는 걸까...’녹초가 된 현다영은 출근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늦게 회사에 도착했다.안내 데스크를 지나던 중 누군가 강지현을 최대한 빨리 만나게 해 달라고 요청하는 모습을 봤다.“강 대표님은 요즘 자리에 안 계시는데, 무슨 일로 찾아오셨나요?”안내 데스크에서 강지현을 만나겠다고 하는 사람은 드물어서 현다영도 궁금해졌다.지난번 이렇게 강지현을 찾아온 사람은 송준호였다.직원이 곧바로 방문객의 명함을 현다영에게 건넸다.“안녕하세요. 예전에 김 대표님 의료진으로 일했던 의사예요.”현다영이 명함을 보니 이름은 성하윤, 직함은 새봄 대학병원 초빙 외과의였다.“안녕하세요. 무슨 일로 오셨어요?”성하윤이 곧바로 답했다.“사실 김 대표님을 뵈러 왔어요. 그런데 친분이 없어서 연락처도 모르고, 미래 그룹에 문의했더니 안 계시더라고요. 병세는 좀 나아지셨나요?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는 치료법이 있어서 한번 시도해 보셨으면 해요.”M 국에서 돌아온 뒤 성하윤은 인터넷에서 김태하에 관한 소식을 여러 번 접했고, 한동안 걱정으로 마음을 졸였는데, 두 사람의 결혼식 소식을 보고서야 겨우 마음을 놓았다.그동안 성하윤은 아버지와 함께 종양 치료에 도움이 될 만한 정통의학 치료법을 연구해 왔다.그 과정에서 예전에 품었던 편견도 많이 사라졌다.일반적인 서양의학 치료만으로는 김태하의 종양 진행을 일시적으로 억제할 수 있을 뿐, 완치는 어려웠다. 악화하거나 변성될 위험도 여전히 컸다.하지만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