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요, 이제 악수도 하기 싫은 건가요? 아니면 진씨 가문의 사람이 되었다고 저희를 무시하는 겁니까?”여명희는 한 마디로 강하리의 말문을 막히게 했다.만약 지금 악수하면 손에 상처가 날 것이고 안 하면 그들을 무시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그리고 일부러 진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호칭했다.여기 있는 사람 중에 과연 외교부가 현재 진씨 가문의 사람을 가장 꺼린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그녀의 말에 강하리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다친 손을 번쩍 들었다.“눈이 있길래 그래도 알아챌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요? 다쳤어요, 이제 보이나요?”그리고 의미심장한 말도 같이 내뱉었다.“전 그나마 명희 씨를 생각해서 악수 안 한 건데요? 아니면 혹시나 제가 기분 나빠서 그쪽이 일부러 다친 손을 더 꽉 잡아 상처가 심해졌다고 말해버리면 안 되잖아요. 어떻게 보면 저도 번역팀에 특채로 입사한 사람인데 출근 첫날부터 그쪽한테 괴롭힘을 당했다고 소문이라도 나면 명희 씨 이미지에도 타격이 있을 거고요. 아닌가요?”강하리는 말을 마치자마자 여명희를 지나쳐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강하리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은 여명희는 자기도 모르게 두 주먹을 꼭 쥐었다.말로는 여명희를 위해서라고 했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방금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자신을 건드리지 않으면 가만히 있겠지만 혹시나 시비 걸어오면 반드시 모든 죄를 여명희한테 뒤집어씌우겠다는 경고의 메시지였다.여명희는 순간 울화가 치밀어 올라 손까지 부들부들 떨었다.그날 임명우가 강하리는 건드리지 않겠다는 소리를 들은 뒤로 그녀에 대한 질투가 극에 달했다.하여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강하리를 제대로 골탕 먹이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임명우가 보호해 준들 뭐가 달라질까?그때 가서 임명우가 진짜로 강하리 때문에 자신과 사이가 틀어지는지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그러나 위협은커녕 도리어 강하리에게 제대로 한 방 먹었다.여명희는 생각할수록 너무 분해 이를 아득바득 갈다가 다시 억지 미소를 지었다.
강하리는 상처를 다 치료한 뒤 외교부로 향했다.그러나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로 쏠렸는데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질투심에 비웃거나, 아니면 걱정하는 듯한 사람들도 종종 보였다.여러 가지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데도 강하리는 별로 신경 쓰고 있지 않다가 유독 애틋한 눈빛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사람을 마주하자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췄다.여기서 박근형을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 1년도 안 된 사이에 오히려 더 젊어진 것 같았다.“교수님.”강하리가 반갑게 인사하자 그도 싱긋 미소를 지으며 강하리를 맞이했다.“네가 돌아온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난 그러지 않기를 바랐어.”“교수님도 돌아오셨는데 제가 왜 못 오겠어요?”그러자 박근형이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난 네 아버지 덕을 크게 본 사람이라 지금 터진 일에 대해 모르는 척할 수 없었어.” 그의 말에 강하리는 한참 동안 머뭇거리다가 다시 답했다.“정말 고맙습니다, 교수님.”사실 알 사람은 다 알다시피 진태형 라인에 탄 사람들의 선택이 그다지 현명해 보이지 않았다.특히 박근형은 원래 은퇴해서 완전히 안락한 노후를 만끽할 수 있는 사람인데도 진태형의 일 때문에 이렇게 단번에 복직한 걸 보면 얼마나 의리 있는 사람인지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뭐가 고마워. 난 네가 태형이 딸일 줄은 꿈에도 몰랐어. 그 늙은 놈한테 이렇게 훌륭한 딸이 갑자기 생길 줄을 누가 알았겠어? 그러니 내가 화가 나, 안 나?”강하리와 박근형은 그렇게 얘기를 나누며 번역팀 사무실로 돌아갔다.그러나 두 사람이 들어가자마자 조금 전까지 북적거리던 사무실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그중에는 눈에 익은 사람들도 있었고 예전에 강하리가 교수직이었을 때 꽤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도 몇몇 있었다.그러나 이번에 돌아오니 너무 티가 나게 강하리의 눈을 피하는가 하면 아예 인사조차 건네지 않았고 전부 여명희 쪽에 붙어버렸다.강하리는 사람들을 한번 훑더니 어떤 상황인지 단번에 알
그렇다고 감정적인 면에서 다른 사람의 결정에 간섭하기도 싫었다.두 사람의 얘기가 거의 끝나갈 때쯤, 구승훈 쪽도 거의 마무리가 되었다.조시욱은 얼굴에 먹구름이 잔뜩 낀 채 구승훈에게 걸어왔다.그가 오늘 여기에 온 목적도 구승훈의 보증인 자격으로 대변하기 위해서였다.현장에서 누군가가 총을 쏜 일은 이제 숨길 수 없게 되었다. 비록 구승훈이 들고 있던 총은 누군가가 승인을 받아 합법적으로 소지가 가능한 총이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반드시 보증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하여 제일 마땅한 사람이라고는 조시욱 밖에 생각나지 않아 그를 부르게 된 것이다.조시욱은 눈에 불을 켜고 살벌한 얼굴로 구승훈에게 다가와 말했다.“이제부터 이런 일로 절 부르지 말아요!”그러자 구승훈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아, 혹시 임명우 씨의 자백도 필요 없다는 뜻일까요?”순간 조시욱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씨X, 오늘 보증인으로 사인까지 해줬으면 됐잖아요!”“그러니까 앞으로 그런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라는 겁니다. 어차피 말싸움으로는 저를 못 이기니까.”“당신!”조시욱은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 같았다.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다고 저런 빌어먹을 놈한테 걸린 걸까?이때, 금방에라도 눈앞에서 두 사람이 싸울 것 같아 강하리가 재빨리 구승훈을 불렀다.“승훈 씨!”그러자 구승훈은 활짝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왔다.“자기야, 나 불렀어?”그러나 강하리는 그를 보는 체도 하지 않고 뒤에 서 있는 조시욱을 바라보며 말했다.“잘 부탁해요.”조시욱은 지금 화가 잔뜩 나 있는 상태지만 그렇다고 그 화살을 강하리한테까지 쏠 필요는 없었다.하여 싱긋 미소를 지으며 답하려다가 문득 거즈를 감은 그녀의 손에서 피가 많이 묻어있는 모습을 보고 다시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다친 건 좀 어때?”그날 밤 원래 강하리를 보고 가려 했지만 결국에는 또다시 구승훈의 계략에 속아 넘어가게 되면서 나중에는 그녀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까지 싹 사라지게 했다.“많이 나았어요.”조시
임명우의 일을 모두 처리하고 나니 벌써 오후가 되었다.강하리와 구승훈이 경찰서에 도착해보니 심준호와 조시욱도 이미 와 있었다.조시욱은 강하리와 가볍게 인사한 뒤 서둘러 취조실로 들어갔다.그러나 심준호는 강하리에게 다가와 한껏 차갑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간도 커.”그리고 어두운 얼굴로 거즈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회복되는 데 지장이 없도록 이따 병원에 다시 가봐.”강하리는 눈치껏 고분고분 답했다.“네, 삼촌.”역시나 심준호는 그녀의 생각을 이미 알아챘는지 강하리의 이마를 톡 건드렸다.“괜히 말 잘 듣는 척하지 마. 네 성격을 내가 모를까 봐?”그러자 강하리는 재빨리 심준호의 팔짱을 끼며 애교를 부렸다.“저 원래 착하잖아요.”심준호가 어이없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었다.“착해서 총을 막 쏘고 다니고 병원에서 구승훈이랑 그런 짓까지 했던 거야?”그의 말에 강하리는 순간 온몸이 굳어버렸다.총을 쏜 일에 대해 말하는 건 사실 괜찮았다.어쨌든 긴급한 상황이었고 만약 제때 총을 쏘지 않았다면 구승훈이 죽었을지도 모른다.그러나 병원에서 그 짓을 한 건 도무지 뭐라고 변명해야 할지 막막했고 심준호가 이렇게 대놓고 물어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러다가 문득 그가 지금 삼촌으로서 조카한테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하려는 의도를 알아채게 되었다.사실 심씨 가문에서는 여전히 구승훈을 마음에 들지 않아 한다는 사실을 강하리도 잘 알고 있었다.아무리 구승훈이 심미현의 납치 사건에 대해 많은 도움을 줬더라도 그에 대한 보상도 칼같이 계산해 주면서 단 한 번도 그를 살갑게 가족처럼 대해주지 않았다.그리고 이 모든 행동으로 그들의 태도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강하리는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라 그저 입만 달싹거리다가 빠르게 대화의 주제를 돌렸다.“삼촌은 오늘 임명우 씨 때문에 여기에 온 거에요?”그러자 심준호가 그녀를 힐끔 째려보며 되물었다.“민망하긴 한가 봐?”그리고 한숨을 내쉬며 다시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을 이었
강하리는 순간 멍해졌다가 그대로 그의 입술을 베어 물고 깊게 입맞춤했다.그녀의 반응에 구승훈은 점점 숨이 막혀 질식할 것 같았지만 더욱 세게 그녀의 뒤통수를 움켜쥐더니 단번에 차 벽에 밀어붙였다.그리고 그의 힘이 버거웠던 강하리가 뒤로 밀려 나가자 구승훈은 불만스러운 듯 얼굴을 찡그리기까지 했다.이때, 옆에서 가벼운 기침 소리가 들려서야 두 사람은 하던 행동을 멈췄다.그제야 두 사람의 행동이 지금 상황과 부적절하다고 느낀 강하리는 구승훈을 있는 힘껏 밀쳐내고는 빠르게 자기 차 안으로 숨었다.황급히 뛰어가는 모습이 그저 사랑스럽기만 한 구승훈은 싱긋 미소를 짓다가 다시 발아래의 임명우를 내려다보았다.“임 대표님, 이 각도에서 저를 올려다보니 기분이 어떠세요?”그러자 임명우도 입꼬리를 씩 올리며 답했다.“구승훈 씨, 이번에는 제가 방심했는데 게임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니까 어디 한번 두고 봅시다.”경찰이 빠르게 도착한 뒤 바닥에 눌려있는 임명우를 데려갔다.구승훈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옆에 있던 사람이 그에게 담배 한 대를 건넸다.그러자 그는 담배를 빤히 바라보다가 다시 차 안쪽을 보며 말했다.“서장님, 이러면 제가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거라서요.”오경준은 비록 50대 초반이었지만 눈치가 빨라서 그런지 구승훈의 말을 단번에 알아듣고 껄껄거리며 웃었다.“그래. 이제 널 감시하는 아내도 생기고, 대단한걸?”구승훈도 같이 미소를 짓다가 다시 차분하게 물었다.“임명우 씨를 심문할 때... 저한테도 한 번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오경준이 곧바로 OK 사인을 하더니 다시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일단 가서 상처나 치료해.”그러자 구승훈은 두 눈을 반짝거리며 답했다.“네, 걱정하지 마세요.”말을 마치자마자 차에 올라타 보니 강하리가 한창 미간을 찌푸린 채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는데 인기척이 들려도 구승훈 쪽으로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그 모습을 본 구승훈이 입으로 약간 신음을 내자 강하리는 곧바로 얼굴을 찡그리며 다가와 그의 상처를
칼을 한 번씩 휘저을 때마다 임명우는 점점 흥분되었다.특히 구승훈의 말을 듣자마자 얼굴에 번진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그 주제에 지금 하리 씨를 위해 복수하겠다는 거예요?”그러면서 구승훈의 손을 막다 보니 칼이 눈앞까지 왔다가 멈췄는데 구승훈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시 손목을 돌려 칼끝으로 또 한 번 그의 얼굴을 향해 찌르려 했다.임명우는 구승훈에게 눌려 있다가 그 칼이 금방에라도 자기 얼굴에 떨어질 것 같아 빠르게 몸을 굴려 피하면서 두 사람은 또다시 차 안에서 몸싸움하기 시작했다.두 차는 여전히 부딪히면서 심하게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바로 이때, 강하리가 총을 내려놓고 앞에 앉은 준봉에게 말했다.“속도 좀 높여서 저 차를 추월해요.”그러나 준봉은 눈살을 잔뜩 구기며 약간 망설이는 눈치였다.“왜요, 자신 없어요?”강하리는 창백한 얼굴로 살기가 가득 돋친 말을 내뱉었다.마치 준봉이 못 할 것 같으면 자신이 하겠다는 듯이 말이다.이런 것쯤이야 준봉한테는 식은 죽 먹기였으나 만약 진짜로 추월하면 두 차가 충돌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그는 어차피 몸도 튼튼하고 차가 부딪치는 타이밍에 문을 열고 뛰어내리면 그만인데 하필이면 지금 뒷좌석에 강하리가 앉아 있어서 그럴 엄두가 전혀 나지 않았다.“사모님, 너무 위험합니다.”그러자 강하리가 이를 악물고 되물었다.“내 말은 안 듣겠다는 건가요?”그녀의 말에 준봉은 어쩔 수 없이 핸들을 꽉 잡고 속도를 맥스로 올렸다.그러나 옆에 차도 마치 준봉의 의도를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갑자기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그렇게 두 차는 또다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차 안에서의 육탄전도 더욱 치열해졌다.그러나 강하리는 마치 이런 상황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차분했다.원래는 저쪽 운전 기사한테 총을 쏘려 했는데 그렇게 되면 차가 완전히 방향을 잃을 것 같았다.그렇게 계속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어느 한 다리에 들어섰고 강하리는 한참 동안 고민 끝에 준봉에게 다시 말했다.“아예 다리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