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부드러운 손길에는 안타까움이 묻어났다.“금방 차 대기할게. 최대한 빨리 출발하자.”유하늘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그녀는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송씨 부자에게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 마지못해 병원으로 찾아가 병실에 발을 들였다.눈을 감고 병상에 누워 있는 아이의 허약한 모습을 봐도 감정이나 생각의 변화가 전혀 없었다.남편도, 아들도 어차피 과거에 불과했다.이는 지난 7년 동안 그녀가 저질렀던 가장 큰 실수였다.그것만 해결하면 앞으로 살아가면서 더 이상의 고통은 없을 테니까.이제는 과거를 뒤로 하고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갈 때였다.남은 한정된 생은 가장 소중한 사람과 함께할 것이다.유하늘은 옷장을 열고 미리 정리해둔 짐을 꺼내는 유시훈을 보다가 몸을 일으켜 그를 따라나섰다.둘은 뒷문으로 나와 차에 올랐다.골목길을 도는 순간, 힘없이 병원 쪽으로 향하는 송여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차들이 옆에서 쌩쌩 달렸지만 마치 보이지 않는 듯 절망 속에 잠겨 있었다.멀리 떨어졌어도 송여준의 전신을 감싼 슬픔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유하늘은 차 안에서 조용히 지켜보았다.이내 시선을 거두고 정면만 응시한 채 송여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차가 유유히 떠나자마자 송여준이 픽 쓰러졌다.사람들이 오가는 길가에서 그는 가슴을 부여잡고 슬픔에 잠긴 채 텅 빈 동공으로 멍하니 있었다.정말로 유하늘을 완전히 잃어버린 걸까?‘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럴 수 있지?’송여준은 퀭한 눈으로 끊임없이 자신에게 되물으며 눈물을 쏟아냈다.지나가던 사람들이 의아한 얼굴로 펑펑 우는 남자를 힐끔거렸다.다들 무의식중으로 걸음을 재촉했고, 무슨 일 때문에 저토록 슬퍼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송여준은 바닥에 주저앉아 고개를 떨군 채 중얼거렸다.“세상 사람들이 다 날 떠나도 너만은 아니라고 했잖아. 항상 내 곁에 있어 준다고. 아무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다고. 그런데 대체 왜 이렇게 모질게 끝까지 나를 외면하고 마지막 인사조차 안 해주
유시훈이 벌떡 일어나 송여준을 노려보며 싸늘하게 받아쳤다.“네가 무슨 낯짝으로 수술 얘기를 꺼내? 계속 내 동생 자극하고 괴롭히는 주제에! 설령 수술할 조건이 돼도 하늘은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하늘에게 수술을 권할 자격이 제일 없는 사람이 너라는 거 몰라?”송여준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심장이 욱신거리며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유하늘이 얼마나 많은 걸 혼자 견뎌왔을지 떠올리자 절망감이 밀려왔다.어찌할 바를 모르던 찰나, 유시훈은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신청서에 사인한 이상 되돌릴 방법은 없어. 하늘은 이미 안락사 센터로 가는 길이야.”“아니에요. 그럴 리 없어요!”송여준은 끝까지 부인했고,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곧이어 이를 악물고 비틀거리며 일어나 유시훈의 옷자락을 붙잡았다.“전부 거짓말이죠? 하늘이 아무 일도 안 생겼잖아요. 안락사할 생각도 없고. 그냥 나한테서 벗어나고 싶었던 거죠? 더는 다가오지 못하게 하려고, 맞죠?”유시훈의 눈빛이 흔들렸다.하지만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송여준이 뭔가 떠올린 듯 말을 이었다.“동생이 안락사하러 간다는데 혼자 보낸다는 게 이상하잖아요. 오빠라는 사람이 이렇게 태연하게 집에 남아 있을 리 없죠.”“본인이 아무도 따라오지 말라고 했어. 가족한테 떠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고. 그 마음 정녕 모르겠어?”유시훈은 시종일관 무표정한 얼굴로 송여준을 싸늘하게 노려보았다.송여준이 입만 벙긋했다.“하늘이가 모든 걸 포기하고 너랑 결혼했을 때부터 이미 비참한 끝은 정해져 있었어. 내가 옆에서 마지막까지 지켜본들 뭐가 달라져? 다시 살아나는 것도 아니잖아.”유시훈은 눈을 질끈 감았다.“나라고 속이 편했겠니? 동생 죽으러 가는 순간을 직접 지켜보라고?”송여준은 말문이 막혔다. 눈에는 짙은 슬픔과 절망이 차올랐다.묵묵부답하는 그를 보자 유시훈이 냉소를 지으며 확 밀어냈다.“당장 네 아들 데리고 여기서 꺼져. 하늘이 고향에, 어렸을 때부터 살던 곳에 같이 있다는 자체가 역겨우니까!”송여준은 입술을 질
“개인적인 사정이라 저희는 잘 모릅니다. 노코멘트 할게요. 물론 알아도 어떠한 정보도 공개하지 않을 겁니다.”송여준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극심한 고통이 쓰나미처럼 그를 덮쳤다.더는 견딜 수 없어 경호원을 밀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머리가 새하얘진 송여준은 곧장 유하늘 별장으로 향했다.도착해서 활짝 열린 대문을 보자 마치 자신이 오기만을 기다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송여준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핏기가 사라진 얼굴은 창백했고, 혀를 깨물자 비릿한 맛이 퍼졌다.그제야 피로와 부상, 그리고 감당하기 힘든 충격 속에서 겨우 정신을 붙잡았다.이내 비장한 표정으로 발을 내디뎠다.거실에서 나온 서영준이 그를 보고도 막지 않았고, 비아냥거리는 눈빛으로 쳐다보기만 했다.송여준이 안으로 들어가자 소파에 앉아 안락사 신청서를 멍하니 바라보는 유시훈을 발견했다.인기척을 들었지만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신청서만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내 동생이 너랑 7년이나 같이 살았다니, 뭘 바라고 그랬을까? 난 정말 모르겠다. 자기 목숨까지 갈아 넣으면서... 대체 왜?”목소리에는 증오도 분노도 없었다. 마치 삶의 의지가 모두 꺼져버린 듯 무미건조했다.송여준은 침을 꿀꺽 삼키고 떨리는 손으로 신청서를 앞에 내려놓았다.“똑바로 얘기해줘요! 하늘이 어디 있어요? 안락사 신청서가 웬 말이죠?”유시훈은 고개를 들어 비아냥거리는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믿기 싫은 거야? 아니면 모른 척하는 거야? 내 동생 이미 갔어. 안락사 센터로.”“그럴 리 없어요!”송여준은 현실을 부정하듯 황급히 뒤로 물러서다 자칫 넘어질 뻔했다.이내 멍하니 유시훈을 바라보며 절망에 빠진 채 연신 고개만 저었다.“아니야! 말도 안 돼!”그리고 성큼성큼 걸어가 유시훈의 팔을 붙잡더니 이를 악물고 말했다.“지금 거짓말하는 거죠? 아직 한 달이나 남았다며! 갑자기 식물인간이라니?”“그건 내가 너한테 물어보고 싶은 말이야.”유시훈이 싸늘한 눈빛으로 송여준의 멱살을 붙잡고 바짝 끌어당겼다.말투는
“하늘아... 나 지금 꿈꾸고 있는 거 아니지? 정말 너야?”송여준은 문을 열고 어쩔 줄 몰라 그 자리에서 굳은 채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잘못 본 건 아닌지, 너무 지쳐서 환각이라도 생긴 건 아닌지 두려웠다.유하늘이 정말 이곳에 나타나다니.송우주와 자신이 죽어간다 해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하지만 지금은 아직 만회할 여지가 있다는 희망이 생겨났다.마치 짙은 어둠 속에서 한 줄기 희미한 빛을 본 듯했다.유하늘은 시종일관 싸늘한 표정으로 그를 힐끔 바라보며 물었다.“송우주는 어때?”“안 좋아. 의식도 없고 열도 있어. 의사 말로는 오늘 밤까지 열이 내리지 않으면 산소마스크를 씌우고 스테로이드 주사 맞혀야 한대.”송여준은 설명하면서 저도 모르게 얼굴이 굳었다.곧이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이게 다 우주가 자초한 거 나도 알아. 너로선 우리 둘을 죽도록 미워해도 이상할 게 없지. 다만 이렇게 와줬다는 건... 아직 조금은 마음이 남아 있다는 거잖아, 안 그래?”송여준은 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혹시 나한테도...”“착각하지 마.”유하늘은 단번에 그의 말을 끊었다.그리고 손수건을 꺼내 송우주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었다.“죽음이 가까워지면 모든 걸 해탈한다는 말 몰라?”송여준은 어리둥절했다.유하늘이 무덤덤하게 입을 열었다.“아무리 너희랑 엮이기 싫어도 이 지경까지 왔으면 용서 못 할 일도 없지. 어차피 마지막이니까 그래도 인사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아서 왔어.”그 말을 들은 송여준은 더 혼란스러워졌다.“하늘아, 뭔가 오해한 거 같은데... 우주가 많이 아픈 건 맞지만 생명까지 위험한 정도는 아니야.”“송우주가 아니라 나 말이야.”유하늘은 서류봉투를 송여준에게 건넸다.“내가 가고 나서 확인해 봐. 최대한 빨리 송우주 데리고 돌아가서 치료해. 여기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이내 그윽한 눈빛으로 송우주를 깊이 바라보다가 송여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우리 다시는 보지 말자.”송여준은 흠칫
말이 끝나자 유하늘은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설마, 오늘내일하는 사람이 남 걱정할 틈이 어디 있겠어?”“그게 무슨 소리야! 오늘내일하는 사람이라니? 아직 수술할지 말지 결정도 안 했잖아. 수술하면 살 가능성이 크고, 정상인처럼 지낼 수 있어. 수명에도 지장 없을 거야.”불길한 소리에 유시훈은 펄쩍 뛰면서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다시 한번 잘 생각해봐. 하늘아, 내 곁에 조금이라도 더 있어 주면 안 될까? 남은 한 달 동안 시들어가는 꽃처럼 지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아.”유하늘의 눈빛이 흔들리더니 시선을 돌렸다.“좀... 더 고민해볼게. 참, 우리 밥 먹으러 가기로 했잖아. 얼른 가자.”유시훈은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위해 차 문을 열어주었다.가는 길, 유하늘은 창밖을 바라보며 계속 생각에 잠겼다.밥을 먹는 동안에도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휴대폰만 만지작거렸다.그러다 한 통의 문자를 받고서야 굳었던 표정이 조금 풀렸다.“홍이수 거짓말했어.”“뭐라고?”유시훈이 그녀에게 음식을 집어주며 물었다.유하늘은 휴대폰을 건네주었다.“홍서운한테 물어봤는데 송우주는 지금 심장과 신장 쪽 합병증만 있는 상태래.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입원해서 치료받아야 한대.”유시훈은 깜짝 놀라 눈썹을 치켜올렸다.“홍서운이랑 언제 그렇게 친해진 거야? 그 자식만 아니었으면 송여준도 여기까지 올 일이 없었을 텐데. 나 마침 결판내려던 참이었어.”“그냥 송우주 상황 알아봐 줄 수 있냐고 부탁했을 뿐, 친한 건 아니야. 그러니까 이제 그만 괴롭혀.”유하늘은 휴대폰을 꼭 쥐고 잠시 생각이 잠겼다.곧이어 단호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오빠, 내가 죽으면 이제 자유로워지는 거겠지? 송여준이랑 송우주한테 더는 시달릴 일도 없고.”유시훈이 흠칫 놀라더니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그는 떨리는 손으로 유하늘을 꼭 붙잡았다.“그런 말 하지 마... 오빠가 그놈들 쫓아낼게.”“아니야.”유하늘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역시 죽어야 해방이지.”말을 마치고는 가방을
“하늘 씨!”등 뒤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차에 타려던 유하늘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다가오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는 순간 안색이 싸늘하게 변했다.유시훈도 눈살을 찌푸리며 경계하는 눈빛으로 홍이수를 훑어보더니 나지막이 물었다.“누구야?”“홍이수.”유하늘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순간, 유시훈의 안색이 어두워졌다.국내에서 유하늘을 괴롭혔던 무리 중에 홍이수도 포함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유시훈의 주먹에서 우두둑하는 소리가 났다.이내 성큼성큼 다가가 둘 사이를 가로막더니 홍이수를 내려다보며 싸늘하게 경고했다.“당신 그 잘난 친구 말이야, 내가 멀쩡한 얼굴 망가질 뻔하게 해줬거든? 당신도 한번 맛 좀 볼래?”홍이수는 이를 악물었다. 숨 막힐 듯한 압박감에 온몸이 굳었다.나름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재벌가 도련님으로 매일 송여준 같은 상류층 인사들과 어울려서 다녔다.그 덕분에 카리스마 있는 총수들도 꽤 많이 접했다.하지만 유하늘의 오빠는 달랐다.국내에서 봤던 사람들과 전혀 다른 기운이 느껴졌다.결단력 있고 차가운 분위기 속에 마치 누구도 그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자신까지도 포함된 그런 압도적인 기세였다.홍이수는 숨을 고르고 말했다.“하늘 씨 방해하려고 찾아온 건 아니에요. 중요한 얘기가 있어요.”유하늘은 무심하게 받아쳤다.“그쪽이랑 할 말 없어요. 누구신데 그러죠?”홍이수의 얼굴이 살짝 굳어지더니 허탈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저한테 어떻게 대하든 괜찮아요. 송우주가 거의 죽게 생겼는데, 진짜 보러 안 갈 거예요?”유하늘의 손가락이 움찔하더니 잠시 멈칫했다.어쨌거나 자기 몸에서 나온 아이였다. 열 달 동안 배 속에 품고, 6년 넘게 키워온 아들이다.자식이 아프다는 말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은 엄마는 없다.“지금 여준이가 혼자서 애 돌보느라 진짜 힘들어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이에요. 하늘 씨도 옆에서 같이 도와달라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위독한 아들의 얼굴 한 번이라도 보고 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