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결혼과 동시에 이혼을 약속했습니다.
결혼과 동시에 이혼을 약속했습니다.
Penulis: 노에빌

1화. 계약 위반

Penulis: 노에빌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10-14 18:11:58

“…당신 미쳤어요?”

한서윤이 물었다. 제 입술을 당장이라도 집어 삼킬 듯한 눈빛으로 저를 내려다보는 남자를 향해서였다. 강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허리를 감싼 손에 힘을 주었다. 물러날 생각 따위는 조금도 없다는 듯이.

“강도윤.”

“이름 부르지 마.”

“뭐?”

“지금 그 목소리로 내 이름 부르지 말라고.”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서윤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올 뻔했다. 이 남자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당신, 오늘 여자 만난다고 하지 않았어요?”

“만났어.”

“나도 남자 만났고요.”

“알아.”

“그럼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야?”

그제야 도윤이 웃었다. 아주 짧고,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웃음이었다.

“그러게.”

그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런데 네가 다른 남자한테 웃어 주는 걸 보고 있으니까, 내가 생각보다 인내심이 없는 새끼더라고.”

“…….”

“이런 건 계약서에 없었잖아, 한서윤.”

그 말에 서윤의 표정이 굳었다.

계약서. 그래. 그들은 계약으로 맺어진 부부였다.

서로의 사업이 목표치에 도달할 때까지 결혼 생활을 유지한다.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는다. 서로의 연애 상대에 관여하지 않는다. 목표를 달성하면 합의하에 이혼한다.

간단하고 명료했다. 사랑은 없고, 손익만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남자가.

“이거 놔요.”

서윤이 말했다. 도윤은 곧장 손을 놓았다.

순순히 물러나는 모습에 오히려 서윤의 속이 뒤틀렸다. 그는 언제나 그랬다. 제멋대로 선을 넘을 것처럼 굴다가도, 막상 그녀가 거부하면 한 치의 미련도 없이 물러났다. 마치 정말로 아무 감정도 없는 사람처럼.

“후회할 텐데.”

“뭘요?”

“오늘 나 밀어낸 거.”

서윤은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당신이야말로 후회하지 마요.”

“내가 왜?”

“나한테 마음이라도 생긴 것처럼 굴었잖아.”

잠깐, 정적이 내려앉았다. 도윤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착각하지 마.”

예상했던 대답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기분이 나빴다.

“나도 당신한테 관심 없어요.”

“다행이네.”

“너 정말 재수 없어.”

“너도.”

서로를 향한 감정이라고는 고작 이 정도였다. 적어도, 그들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끝내 서로에게서 물러나지 못했다.

“이러지 마요.”

서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나 정작 그녀는 도윤의 가슴을 밀어내지 못했다. 손바닥 아래로 뜨겁고 단단한 체온이 느껴졌다. 가까이서 마주한 그의 얼굴에는 평소의 여유로운 무표정 대신 낯선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강도윤이 저런 표정을 짓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언제나 한발 먼저 계산하고,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은 만들지 않으며, 어떤 순간에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남자였다. 그런 그가 지금은 마치 무언가를 참느라 이를 악물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왜.”

도윤이 물었다.

“네가 싫다고 하면 그만둘게.”

서윤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는 정말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한마디만 하면 물러날 사람처럼.

그 사실이 이상하게 더 화가 났다.

“그딴 식으로 말하지 마요.”

“어떤 식으로?”

“내가 선택하는 것처럼 굴지 말라고요.”

도윤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네 선택 아니야?”

“…….”

“한서윤. 네가 싫으면 여기서 끝내.”

그녀는 그를 노려보았다.

이 남자는 끝까지 이런 식이었다. 자신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처럼 굴면서, 모든 결정의 책임을 그녀에게 넘겼다. 마치 자신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는 듯이.

서윤은 그의 셔츠 깃을 움켜쥐었다.

“당신은 정말 재수 없어.”

“알아.”

“잘난 척은 혼자 다 하고.”

“그것도 알아.”

“……진짜 최악이야.”

“그런데도 안 밀어내네.”

서윤의 눈빛이 흔들렸다. 도윤은 더는 웃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짧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창밖으로는 늦은 밤의 불빛이 번지고 있었다. 화려한 도심 한가운데, 서로의 이름으로 묶인 두 사람만이 자신들이 세운 규칙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서윤이 먼저 그의 셔츠 깃을 놓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도윤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후회하지 마요.”

도윤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후회는 내가 결정해.”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윤이 먼저 그에게 입을 맞췄다. 순간 도윤의 몸이 굳었다.

예상하지 못한 행동이었던 모양이었다. 언제나 자신을 한 발짝씩 밀어내던 여자가 먼저 거리를 좁혔다는 사실이 그를 잠시 멈춰 세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도윤은 그녀의 뺨을 감싸 쥐고 입맞춤에 응했다. 처음의 망설임은 오래가지 않았다. 서로를 떠보던 입맞춤은 이내 숨을 고를 틈조차 주지 않는 입맞춤으로 바뀌었다.

서윤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건 실수였다. 분명 실수였다.

저 남자는 그녀가 사랑할 사람도,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계약서에 이름을 나란히 적은 남자였다. 사업이 목표에 도달하면 헤어질 사람. 각자의 연애에 간섭하지 않기로 약속한 사람.

그런데 왜. 왜 다른 남자와 함께 있을 때보다 이 남자가 가까이 다가오는 순간이 더 신경 쓰이는 걸까. 왜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 하나에 이토록 예민해지는 걸까.

서윤은 생각을 멈췄다. 지금은 이유를 찾고 싶지 않았다.

도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서윤이 자신을 밀어내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그런 자신이 우스워 견딜 수 없었다. 오늘 저녁 그녀가 다른 남자와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부터 속이 불편했다.

그 남자가 누구인지 알고 싶었다. 얼마나 오래 만났는지, 서윤이 그 앞에서는 어떤 표정을 짓는지, 자신에게는 한 번도 보여 주지 않은 얼굴을 보여 주는지.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아내의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키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막상 서윤이 다른 남자에게 웃어 주는 모습을 보고 나니, 그토록 간단한 약속이 우스울 만큼 어려워졌다.

“한서윤.”

그가 낮게 불렀다.

“…왜요.”

“지금이라도 그만둘 수 있어.”

서윤은 잠시 그를 바라봤다.

“당신은요?”

“뭐가.”

“그만두고 싶어요?”

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대답보다 솔직했다. 서윤은 희미하게 웃었다.

“거짓말은 못 하네, 강도윤.”

“너한테까지 잘 보일 생각 없어.”

“다행이네요. 나도 당신한테 잘 보일 생각 없으니까.”

“그럼 됐네.”

“그러게요.”

두 사람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끝내 서로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시 서로를 끌어당겼다.

도윤의 입술이 서윤의 입술에 겹쳐졌다. 방금 전까지 날카롭게 말을 주고받던 두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집요한 입맞춤이었다. 서윤은 그의 어깨를 움켜쥐었고, 도윤은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감싸 안았다.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면 다시는 가까워질 수 없을 것처럼.

숨이 모자랄 만큼 입을 맞추고서야 두 사람은 잠시 떨어졌다. 그러나 서로의 시선이 마주친 순간, 그 짧은 틈마저 견디지 못했다.

“……정말 후회 안 해?”

서윤이 흐트러진 숨을 고르며 물었다.

도윤은 대답 대신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평소라면 누구에게도 빈틈을 보이지 않았을 여자였다. 자신 앞에서도 늘 여유롭게 웃고, 한 치도 물러서지 않던 여자.

그런 서윤이 지금은 그를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윤은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쓸었다.

“그 질문, 아까도 했어.”

“대답은 안 했잖아요.”

“네가 듣고 싶은 대답이 뭔데?”

“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

“네 마음을 모르겠으니까.”

서윤은 헛웃음을 지었다.

“당신이 그런 말도 다 하네요.”

“나도 내가 이럴 줄은 몰랐어.”

그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그러니까 더 묻지 마.”

그 말에 서윤은 입을 다물었다.

도윤의 이마가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닿았다.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의 숨결이 뒤섞였다. 평소라면 한마디쯤 비꼬았을 서윤도, 여유로운 표정으로 상황을 정리했을 도윤도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꺼내는 순간, 지금의 감정을 설명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그럴 생각은 없었다.

서윤이 먼저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도윤은 짧게 숨을 내쉬더니 그녀를 다시 품에 안았다. 이번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서로를 향한 감정을 인정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에, 두 사람은 입맞춤에 더 깊이 매달렸다.

마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계약도, 약속도, 각자의 연인도. 내일 아침이면 다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마주 앉을 두 사람의 관계도.

그 밤만큼은 전부 잊기로 한 것처럼. 창밖의 불빛이 하나둘 희미해졌다.

몇 번이나 서로를 밀어내려 했고, 몇 번이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잠시 떨어져 있으면 어느 한쪽이 먼저 상대를 바라봤고, 시선이 마주치면 결국 다시 거리가 좁혀졌다.

누구도 먼저 끝내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끝내자는 말을 꺼내는 순간, 정말로 멈춰야 할 것 같았으니까. 새벽이 깊어질수록 두 사람 사이에는 설명할 수 없는 침묵만 쌓여 갔다.

사랑한다는 말은 없었다.

좋아한다는 고백도 없었다.

그런데도 서로를 끌어안은 손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 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어떤 약속도 하지 않았다. 다만 계약서에 적힌 모든 조항이 무색해질 만큼 가까워졌을 뿐이었다.

그리고 날이 밝으면, 둘 중 누구도 먼저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터였다.

Lanjutkan membaca buku ini secara gratis
Pindai kode untuk mengunduh Aplikasi

Bab terbaru

  • 결혼과 동시에 이혼을 약속했습니다.    26화. 윤태하, 그 손 치워

    탑승 안내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윤은 비행기에 올랐다. 그의 좌석은 비즈니스석 앞쪽이었다. 그리고 그가 좌석에 도착했을 때. “…….” 두 좌석 앞에 한서윤과 윤태하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서윤이 창가 쪽, 태하가 그 옆이었다. 태하는 서윤의 가방을 선반에 올려 주고 있었고, 서윤은 무언가를 설명하며 웃고 있었다. 도윤은 자신의 좌석 번호를 확인했다. 다시 확인했다. 틀림없었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비서가 옆에서 조용히 물었다. “대표님, 괜찮으십니까?” “뭐가요?” “……아닙니다.” 도윤은 안전벨트를 매며 낮게 말했다. “저쪽은 신경 쓰지 마세요.” “네.” “내가 신경 쓰는 것처럼 보입니까?” 비서는 입을 다물었다. 도윤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전혀 아니잖아요.” “…네.” 그런데 이륙하기도 전에 태하가 서윤에게 담요를 건네는 모습이 보였다. “추우면 덮어.” “너는?” “나는 괜찮아.” “또 그러네. 너도 추우면서.” 서윤은 담요를 반으로 나누어 태하 쪽으로 밀었다. “그럼 같이 덮어.” 태하가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웃었다. “그래. 같이 덮자.” 도윤은 눈을 질끈 감았다. 정말 별것도 아닌 일이었다. 담요 하나를 같이 덮든, 두 개를 덮든. 자신이 관여할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저 남자는 매번 저렇게 자연스럽게 서윤의 옆자리를 차지하는 걸까. 왜 서윤은 저 남자 앞에서만 경계심을 풀고 웃는 걸까. 그리고 왜…… 자신과 있을 때보다 더 편안해 보이는 걸까. 도윤은 눈을 떴다. 그 순간, 앞좌석의 서윤이 몸을 돌렸다. 시선이 마주쳤다. “아.” 서윤이 작게 웃었다. “강도윤 씨도 이 비행기였죠.” 도윤은 어이가 없었다. 이제야 기억났다는 듯한 말투라니. “네. 아까 말씀드렸잖습니까.” “그러네요. 제가 깜빡했어요.” 서윤은 다시 앞을 향했다. 그리고 태하에게 물었다. “우리 도착하면 바로 호텔로 갈 거지?” “응. 체크인하고 저녁 먹으러 가자.” “뭐

  • 결혼과 동시에 이혼을 약속했습니다.    25화. 우연히. 정말 우연히

    다음 날 아침. 서윤은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식탁 위에는 도윤이 좋아하는 커피가 놓여 있었다. 그 옆에는 짧은 메모가 있었다. [오늘 아침 회의 있다고 했죠? 커피 내려놨어요.] 그 아래에는 작은 글씨가 덧붙어 있었다. [계약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입니다. 오해 금지.] 도윤은 메모를 읽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끝까지 사람을 열받게 하네.” 그는 커피를 들었다. 따뜻했다. 분명 조금 전에 내린 것이었다. 도윤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메모를 버리려다 멈췄다. 한참을 들고 있던 그는 결국 메모를 반듯하게 접어 서랍 안에 넣었다. 버릴 필요는 없었다. 그냥 종이니까. 별다른 의미도 없었다. 그런데 그날 오전 열한 시. 도윤은 서윤의 회사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대표님, 한서윤 대표님께서 방금 외부 미팅을 나가셨습니다.” “그래서요?” “미팅 상대가 윤태하 씨라고 합니다. 그리고….” 비서가 잠시 말을 멈췄다. “이번 주말에 두 분이 함께 해외 출장을 갈 예정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도윤의 손이 멈췄다. “해외 출장?” “네. 공동 프로젝트 관련해서요. 일정은 금요일 출국, 일요일 귀국으로 확인 중입니다.” 도윤은 천천히 의자에 등을 기댔다.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사흘. 한서윤과 윤태하가 함께 해외에 나간다. 업무 때문이라면 문제 될 건 없었다. 그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입에서 먼저 나온 말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 일정, 누가 승인했습니까?” “네?” 도윤은 자신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차갑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아니, 됐습니다. 업무 일정이면 알아서 하겠죠.” “네. 알겠습니다.” 전화가 끊겼다. 도윤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계약서를 꺼냈다. 익숙한 조항이 눈에 들어왔다. 제7조. 양 당사자는 계약 기간 중 상대방의 사생활 및 대외적 관계에 관여하지 않는다. 도윤은 그 문장을 읽었다. 한 번. 두 번.

  • 결혼과 동시에 이혼을 약속했습니다.    24화. 강도윤 씨는 자꾸 선을 넘어요

    오후 네 시. 서윤은 전시회장 출구에서 태하와 나란히 걸어 나왔다. “오늘 재밌었어.” “다행이네.” “책갈피도 고마워. 잘 쓸게.” “그럼 다음엔 책도 사 줄까?” “됐거든. 그건 내가 살 수 있어.” “알았어. 그럼 책을 고르는 데만 동행할게.” “그게 그거잖아.” 태하가 웃었다. “다음 주에도 시간 비워 둘까?” 서윤은 잠시 고민했다. 예전 같았으면 선뜻 그러자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달랐다. 자신의 마음을 정리해야 했다. 누구를 좋아하는지, 누구와 함께 있고 싶은지. 그리고 무엇보다, 누군가의 애매한 태도에 흔들리느라 자신의 마음을 함부로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다음 주는 아직 모르겠어. 일정 확인해 보고 연락할게.” 태하는 아쉬운 기색을 감추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기다릴게.” “너는 맨날 기다린대.” “그럼 이번엔 기다리는 대신 먼저 연락할게.” “그건 또 뭐야.” “내가 적극적으로 구애하겠다는 뜻.” 서윤은 결국 웃었다. “진짜 대단하다, 윤태하.” “칭찬으로 들을게.” 태하는 그녀의 머리 위로 손을 올리려다 잠깐 멈췄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머리 만져도 돼?” 서윤의 눈이 조금 커졌다. 예전에는 묻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해 주던 행동이었다. 그런데 지금 태하는 허락을 구하고 있었다. 자신의 마음이 아무리 크더라도, 서윤의 마음을 마음대로 다루지는 않겠다는 듯이. 서윤은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태하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정리해 주었다. 그 장면을. 주차장 입구에 세워진 검은색 세단 안에서 강도윤이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볼 생각이 없었다. 정말이었다. 그는 거래처 미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운전기사가 잠시 차를 세웠고, 그때 우연히 두 사람을 발견했을 뿐이다. 그런데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태하가 서윤의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는 모습. 서윤이 그 손길을 피하지 않는 모습. 그리고 태하를 향해 웃는 얼굴. 도윤은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 결혼과 동시에 이혼을 약속했습니다.    23화. 제대로 된 데이트

    토요일 오전 열 시. 강도윤은 휴대전화 화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업무 메일을 확인하고 있었다. 적어도 본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화면에는 한 시간 전 비서가 전달한 보고서가 떠 있었다. 해외 사업 확장 건에 대한 검토 자료였다. 중요한 내용이었다. 이번 분기 실적을 좌우할 수도 있는. 그런데도 도윤의 시선은 자꾸만 화면 위쪽으로 올라갔다. 한서윤. 마지막 메시지는 어젯밤이었다. [오늘 늦을 것 같으니, 먼저 자세요.] 그게 전부였다. 예전 같았으면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 물었을 것이다. 늦는 이유가 뭔지, 언제쯤 들어올 건지, 저녁은 먹었는지. 물론 그런 질문을 했던 건 단순히 같은 집에 사는 사람으로서 필요한 확인이었을 뿐이다. 이제는 그럴 필요도 없었다. 서윤이 먼저 선을 그었으니까. 서로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자고. 사생활에 간섭하지 말자고. 도윤은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았다. “……잘됐네.” 누구 들으라고 하는 말인지도 모를 혼잣말이었다. 그때였다. 띠링. 휴대전화가 울렸다. 도윤은 거의 반사적으로 화면을 확인했다. 한서윤이 아니었다. 비서였다. [대표님, 다음 주 월요일 오전 회의 자료 전달드립니다.] 도윤은 화면을 한참 바라보다가 휴대전화를 소파 위에 던졌다. “미쳤나, 진짜.”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대체 뭘 기대한 건지. *** 같은 시각. 서윤은 햇살이 쏟아지는 야외 테라스에서 웃고 있었다. “이거 기억해?” 윤태하가 테이블 위에 작은 상자를 내려놓았다. 서윤은 상자를 열어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거!” “맞아. 네가 예전에 갖고 싶다고 했던 거.” 안에는 작고 정교한 은색 책갈피가 들어 있었다. 책갈피 끝에는 조그만 별 장식이 달려 있었다. 몇 년 전, 서윤이 서점에서 발견하고 예쁘다고 말했던 물건이었다. 그때는 가격이 조금 부담스러워 그냥 내려놓았었다. 그걸 태하는 기억하고 있었다. “너 이걸 아직도 기억해?” “내가 네가 한 말을 얼마나 잘 기억하는데.” 태하가 웃

  • 결혼과 동시에 이혼을 약속했습니다.    22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사이

    오후 여섯 시.서윤은 회사 로비에서 태하와 헤어지고 있었다.“오늘 고마웠어.”“내가 뭘 했다고.”“그냥… 들어 줘서.”태하는 그녀를 바라봤다.“다음에는 네가 내 얘기 들어 줘.”서윤이 웃었다.“무슨 얘기?”“내가 얼마나 오래 널 좋아했는지.”“야.”“농담 아니야.”태하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다음에는 정말 제대로 이야기할게.”서윤은 대답하지 못했다. 태하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 주려다가 손을 멈췄다. 그리고 대신 그녀의 어깨에 걸친 가방끈을 바로잡아 주었다.“들어가. 늦겠다.”“응. 너도 조심히 가.”서윤이 돌아서려는 순간, 태하가 그녀를 불렀다.“서윤아.”“응?”“나,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서윤은 그를 바라봤다. 태하는 씁쓸하게 웃었다.“그런데 그 행복에 내가 있었으면 좋겠어.”그 말은 고백보다 조용했고, 그래서 더 깊이 남았다.서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태하는 더 기다리지 않았다.“가. 다음에 보자.”그가 먼저 돌아섰다.서윤은 한동안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러다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정말 나쁜 사람.”태하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복잡한 걸까.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건물 밖으로 걸어 나갔다.그리고 그 순간.“한서윤.”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서윤이 고개를 들었다. 강도윤이 서 있었다.“…여기서 뭐 하세요?”“미팅이 근처에서 끝났어.”“아, 그러세요.”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먼저 가세요. 저도 가야 해서.”그녀가 지나치려는 순간, 도윤이 물었다.“윤태하 만났어?”서윤은 걸음을 멈췄다.“네.”“무슨 이야기 했는데?”서윤의 표정이 굳었다.“그걸 왜 물어보세요?”도윤은 잠시 침묵했다.“그냥.”“그냥이요?”서윤은 짧게 웃었다.“강도윤 씨, 저한테 관심 없다고 하셨잖아요.”“…….”“제가 누구를 만나든 상관없다고도 하셨고요.”도윤의 눈빛이 차가워졌다.“그래서?”“그런데 왜 자꾸 물어보세요?”서윤은 그를

  • 결혼과 동시에 이혼을 약속했습니다.    21화. 네가 누구를 좋아하든

    월요일 아침.강도윤은 식탁에 앉아 있었다. 맞은편 자리는 비어 있었다.“한서윤 씨는 아직 안 내려오셨습니까?”그가 묻자 집사가 대답했다.“오늘은 일찍 출근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아침도 회사에서 드신다고요.”“…그래요?”도윤은 커피잔을 내려놓았다.평소 같았으면 그러려니 했을 일이었다. 서윤은 원래 자기 일정에 간섭받는 걸 싫어했다. 아침을 먹든 말든, 일찍 출근하든 늦게 출근하든, 그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그런데 오늘따라 식탁이 지나치게 넓어 보였다.도윤은 시계를 확인했다.오전 7시 42분. 서윤이 평소 집에서 나가는 시간보다 삼십 분은 빨랐다.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그는 다시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정확히 십 초 뒤,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메시지를 보낼 생각은 없었다. 그저 오늘 일정이나 확인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화면을 켜자마자 서윤과의 대화창이 눈에 들어왔다. 마지막 대화는 사흘 전이었다.[오늘 양가 식사 일정 잊지 마세요.]그가 보낸 메시지.[네, 확인했습니다.]서윤의 답장. 딱 그게 전부였다.도윤은 한참 동안 화면을 바라보다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잘됐네.”대화할 일이 없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괜히 쓸데없는 말로 시간을 낭비할 필요도 없고, 서로의 사생활에 간섭할 일도 없을 테니까. 그는 만족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리고 출근하는 내내 서윤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물론 연락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정말로.***한편, 한서윤은 회사 근처 카페에서 윤태하를 만나고 있었다.“너 요즘 바쁘지?”태하가 물었다.“응. 신사업 때문에 정신없어.”“잠은 잘 자고?”“당연하지.”“거짓말.”서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가?”“너 피곤하면 오른쪽 눈부터 비비잖아.”태하가 손을 뻗어 그녀의 눈가를 가리켰다.“지금도 그러고 있네.”서윤은 무의식적으로 눈가에 올렸던 손을 내렸다.태하는 늘 그랬다. 서윤이 좋아하는 커피가 무엇인지,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떤 음식을 찾는지,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괜찮지

Bab Lainnya
Jelajahi dan baca novel bagus secara gratis
Akses gratis ke berbagai novel bagus di aplikasi GoodNovel. Unduh buku yang kamu suka dan baca di mana saja & kapan saja.
Baca buku gratis di Aplikasi
Pindai kode untuk membaca di Aplikasi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