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황이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마가의 셋째 대장로 마운명은 서늘한 눈빛을 다른 두 개의 청동 관에 고정했다.이 두 개의 관에는 마가의 첫째 대장로와 둘째 대장로가 봉인된 상태였다.“큰형이랑 둘째 형은 아직도 안 깨어났나?”마황은 즉시 대답했다.“예, 대장로님!”“좋다. 석촌의 일이 마무리된 후, 형님들을 깨우겠다. 형님들이 깨어나면 틀림없이 놀라게 될 것이다!”셋째 대장로는 기괴한 웃음을 터뜨리며 하늘을 바라보더니 이내 몸을 날려 검은 안개처럼 절벽 위로 솟구쳐 올랐다.셋째 대장로가 위로 날아오르자 마황도 급히 그 뒤를 따랐다.그날, 마궁에서는 셋째 대장로의 출관을 축하하는 성대한 연회가 열렸다....이틀 후, 기산에서 백여 킬로미터 떨어진 한 작은 마을의 거리에서 두 사람이 나타났다.그들의 등장에 주변 사람들이 멈춰 서서 웅성거렸다.그럴 수밖에 없었다.두 사람 중 하나는 비할 데 없이 준수한 용모를 지닌 청년이었고 다른 하나는 머리가 반짝이는 꼬마 스님이었으니 말이다.작은 시골 마을 사람들에게는 보기 드문 이들의 모습이 이목을 끌었다.“형님, 여기서부터 백여 킬로미터 남았습니다. 오늘 밤은 여기서 쉬고 가시죠.”대머리의 꼬마 스님이 입을 열었다.가만히 보니 이 둘은 바로 윤구주와 공수이였다. 윤구주는 앞에 있는 마을을 훑어보며 말했다.“좋다.”두 사람은 마을 안에서 하룻밤 묵을 곳을 찾았다.그렇게 마을 중심의 한 호텔에 자리를 잡고 간단히 음식을 먹은 후 그들은 방으로 돌아왔다. 공수이는 소파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형님, 내일이면 기산에 도착합니다. 마가 놈들이 틀림없이 미리 대비하고 있겠죠?”윤구주는 무심하게 대답했다.“그럼 뭐?”그 말을 들은 공수이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러네?’윤구주에게 이런 말을 해봐야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전에 그 곤륜 구역의 노마들도 형님을 당해내지 못했는데... 고작 마가 따위가 상대가 되겠어?’“근데 형님은 마가의 세 명의 선조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공수
“어? 장례식인가?”공수이는 앞에서 울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의아해했다. 윤구주도 한 번 스치듯이 그곳을 훑어보았다.그런데 그 순간, 눈에 보이지 않는 검은 사악한 기운이 울고 있는 사람들 몸에서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그 사악한 기운은 사람마다 농도가 달랐다.어떤 사람은 진했고 어떤 사람은 희미했지만 모두가 그 검은 기운에 휩싸여 있었다.이 장면을 본 윤구주의 눈빛이 서늘해졌다.불필요한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았지만 이들이 모두 평범한 마을 사람들처럼 보이면서도 각자의 몸에 기묘하고도 검은 사악한 기운을 지니고 있는 모습이 그의 의구심을 자아냈다.“이 사람들 뭔가 이상한데.”윤구주는 울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네? 형님, 무슨 말씀이세요?”하지만 공수이는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윤구주는 눈에 황금빛 파문을 띄우며 신념술을 사용해 그 사람들의 기운을 관찰하는 반면 또 관 속에 놓인 시신으로 시선을 옮겼다.관 속 죽은 자의 기운이 가장 농밀했다. 명백히 이 시신은 지나치게 많은 검고 사악한 기운에 감염되어 죽은 것이었다.이를 확인한 윤구주는 입을 열었다.“이 마을 사람들, 오래 살지 못할 거야.”‘엥?’공수이는 갑작스러운 윤구주의 말에 놀라며 물었다.“형님, 그게 무슨 뜻이죠?”“내 말뜻은 간단해. 저들의 몸이 사악한 기운에 침식당하고 있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전부 죽을 거라는 뜻이야.”“사악한 기운에 침식당했다고요?”“맞아.”공수이는 다시 한번 울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았다.비록 신념술은 사용할 줄 모르지만 그들 모두가 병에 걸린 것처럼 극도로 쇠약해 보인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었다.“형님, 이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된 거죠?”공수이가 의아해하며 묻자 윤구주는 대답하지 않고 신념술을 다시 확장했다.신념술을 사용하자 그의 신념은 마치 거대한 그물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순식간에 주변의 모든 기운이 그의 신해 속에 명확하게 나타났다.165m, 330m, 990m...마침내 신념술이 3300m 정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이곳을 지나가다가 울음소리를 듣고 우연히 들르게 되었습니다.”공수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사람들은 그의 친절한 얼굴과 스님의 모습에 잠시 멍해졌다.“꼬마 스님, 저희는 지금 장례를 치르고 있는 중이에요. 혹시 시주를 구하러 온 거라면 다른 곳으로 가주셨으면 좋겠네요.”이때, 구릿빛 피부의 한 남자가 나서서 말했다.분명 이들은 공수이를 시주를 구하는 스님으로 오해한 듯했다.하지만 공수이는 화내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아닙니다, 여러분. 저는 시주를 구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그럼 뭐 하러 온 거죠?”그 남자가 물었다.“여러분을 구하러 왔습니다!”공수이가 답했다.‘우릴 구하러 왔다고?’공수이의 말에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눈길로 그를 쳐다보았다.“참 희한한 스님이네! 갑자기 우리 마을에 나타나서는 구하겠다고 말하다니... 우리를 구해줄 일이 뭐가 있다고?”이때 한 아주머니가 나섰다.그러자 공수이는 앞에 있는 관을 가리키며 말했다.“한 마디 여쭙겠습니다. 이 관 안에 누가 누워 있습니까?”“우리 마을 촌장님의 손자요!”아주머니가 대답했다.“그럼 그 아이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계십니까?”공수이가 계속 물었다.“물론 알지요. 아이는 흑사병에 걸려 죽었습니다!”이렇게 말하는 와중 아주머니의 눈가가 붉어졌다.“아닙니다. 아이는 병으로 죽은 것이 아닙니다.”그때 공수이가 단호하게 말했다.“병이 아니라고요?”“꼬마 스님,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제 손자가 병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 때문에 죽은 거냐고요.”이번에는 가장 슬프게 울던,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노인이 분노한 목소리로 외쳤다.뒤이어 공수이는 윤구주를 가리키며 말했다.“그건 제 형님께 물어보셔야 합니다.”그제야 사람들은 비로소 윤구주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의 준수한 외모가 눈에 띄었다.“어르신, 마음 추스르세요. 하지만 제 동생 말이 맞습니다. 어르신의 손주분은 병으로 죽은 것이 아닙니다.”윤구주가 갑자기 나서며 말했다.“
“그렇네!”노인의 말을 듣고 나서 윤구주는 확실히 깨달았다.‘이 마을에 어떤 고수가 무슨 술법을 걸었나 보군! 그래서 평범한 이곳 주민들이 하나둘씩 이상하게 죽어 나가는 거야!’하지만 이내 분노가 일었다.‘도대체 누가 이리도 잔인하게 이 작은 기산 아랫마을에 사는 순박한 주민들은 해치고 있는 거지?’그 순간, 윤구주의 눈빛에 서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젊은이, 뭐 하나 물어보지. 우리 손자가 죽기 전에 어땠는지 어떻게 아는 건가?”노인은 윤구주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르는 듯 물어봤다.“말했잖아요. 어르신의 손주분은 병으로 죽은 게 아니라고요. 손주분은 어떤 사람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겁니다!”“뭐라고? 어떤 사람 때문에?”이 말을 듣자 눈앞의 노인뿐만 아니라 뒤에 있던 마을 주민들 모두가 놀라움에 얼어붙었다.“맞습니다! 게다가 그 사람은 어르신 손주분뿐만 아니라 여러분 모두를 해치고 있어요. 지금 여러분 모두 그 무서운 살기로 인해 몸이 이미 오염된 상태입니다!”“지금 여러분 중에 이미 그걸 느끼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이 살기가 몸에 스며들면 점점 기력이 약해지고 밤에는 온몸이 칼에 찔리는 듯한 고통으로 괴로워지죠. 그리고 심해지면 코와 입에서 검은 피가 나올 겁니다!”윤구주는 다시 설명했다.이 말을 듣자마자 앞에 있던 열여섯 명의 마을 주민들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어... 어찌 그걸 알고 있는 거요?”첫 번째로 탄식을 터뜨린 건 구릿빛 피부의 남자였다.알고 보니 윤구주가 말한 증상을 지금 그가 겪고 있는 상태였다.“그러게 말입니다.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죠?”조금 전 나섰던 아주머니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왜냐하면 그녀도 같은 증상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단지 그녀뿐만이 아니라 가족들 모두가 그랬다.그들은 이러한 무서운 상태가 자신들만 알고 있는 것이라 여겼으나 이 순간 윤구주가 전부 말하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다시 말하지만 이건 병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을 해치고 있는 겁니다
그 후, 윤구주는 석촌으로 향할 준비를 했다.그는 대체 누가 이렇게 잔혹하게 평범한 석촌 주민들을 해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윤구주가 석촌 주민들과 함께 마을로 걸어가는 사이, 주민들은 석촌에 대한 상황을 그에게 설명했다.그들은 흑사병이 최근 1년 사이에 발생했다고 했으며 지금까지 약 50여 명의 주민이 사망했다고 전했다.사망자들 중에는 남녀노소가 섞여 있었고 심지어 갓 태어난 아기들도 두세 명이나 죽었다고 했다.죽음 전 그들의 상태는 모두 윤구주가 말한 대로 몸의 일곱 구멍에서 피를 흘렸으며 그 피는 지독한 악취가 나는 검은 색이었다고 한다.“빌어먹을, 정말 너무하는군!”“대체 어느 놈이 이렇게 잔인한 짓을 해서 순진한 주민들을 해치고 있는 거야?”공수이는 아기들마저 피해를 입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분노에 차서 입을 열었다.“형님! 진짜 범인이 밝혀지면 꼭 제가 직접 그놈을 처치하게 해주세요!”공수이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석촌이 점점 가까워지자 윤구주는 차가운 눈빛으로 마을을 바라봤다.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 석촌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마을은 두 산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약 3, 4천 가구가 모여 있었다.“여기가 우리 마을이요.”주름이 가득한 얼굴을 한 촌장이 오래된 담뱃대를 들고 손가락으로 석촌을 가리키며 말했다.윤구주는 마을을 한번 바라보고 걸음을 멈췄다.이내 그의 두 눈에서 날카로운 빛이 번쩍이더니 순간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금빛 파동이 그의 동공에서 뿜어져 나왔다.금빛 파동이 퍼져나가자 석촌 위로, 일반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검은 살기가 하늘 높이 치솟아 마을을 감싸고 있는 게 보였다.그 살기는 팔각형 모양으로 사방에서 석촌을 완전히 둘러싸고 있었다.만약 윤구주가 신념술을 쓰지 않았다면 이 끔찍한 광경을 절대 알아차릴 수 없었을 것이다.“봉인 법진?”윤구주는 석촌 위로 솟아오른 검은 살기를 보며 차가운 얼굴로 중얼거렸다.“누군가가 이 마을에 봉살진을 설치했군. 그러니 이 마을 주민들이 살기에
마가의 이름을 듣자마자 윤구주의 얼굴은 순식간에 어둡고 차가워졌다.그는 이 무고한 마을 주민들을 해친 자가 또다시 제자백가의 마가라는 사실에 경악했다.게다가 그들은 몇십 년 전부터 이미 이곳에 봉살진을 설치하여 마을 전체를 봉인해 왔던 것이다.석촌은 그저 평범한 마을로 주민들 모두가 순박한 사람들이었지만 마가는 이런 악독한 수를 써왔다.“또다시 그 마가 놈들이군요!”“정말 지독한 놈들이네요!”공수이는 그 말을 듣고 욕설을 퍼부었다.하지만 애석하게도 마을 주민들은 이것이 무슨 상황인지 몰랐다.공수이가 갑자기 마가를 욕하자 주름이 가득한 촌장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왜 마가를 욕하는 겁니까?”“여러분들을 해친 것은 바로 이 돌비석들, 그리고 마가 때문입니다!”윤구주는 높이 세워진 돌비석들을 가리키며 말했다.“뭐라고요?”주변의 마을 주민들은 깜짝 놀랐다.“마가가 우리를 해쳤다니? 그럴 리가 없네! 우리 아버지도 말씀하시길 마가는 항상 우리 석촌을 보호해 왔다고 하셨는데...”촌장은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듯 말했다.“맞아! 기산에서 마가 사람들은 모두가 아는 선한 사람들이네. 게다가 마가의 제자들은 가끔씩 우리에게 돈이나 식량을 기부해주기도 했어. 우리 기산 사람들에게 마가는 큰 은인이었고!”다른 마을 주민도 거들었다.“그래, 맞아!”주민들이 하나같이 이렇게 말하자 윤구주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곧바로 손으로 법인을 맺어 하늘을 가리켰다.“나타나라!”쾅!법인이 하늘로 솟구치자 석촌 전체가 갑자기 천둥소리와 함께 흔들리기 시작했다.이어서 대낮이었던 석촌이 갑자기 어둑해지더니 눈에 보이지 않던 거대한 검은 법진이 주민들 눈앞에 드러났다.그 법진은 마치 감옥처럼 석촌 위에 덮여 있었다. 그리고 사방의 돌비석에서는 검고 사악한 기운이 사슬처럼 뻗어 나와 그 법진에 모이고 있었다.“하늘에 저건 뭐야?”하늘 위의 거대한 검은 법진을 보며 촌장은 깜짝 놀라 외쳤다.나머지 주민들 역시 눈이 휘둥그레져 믿을 수 없다는 듯 하늘
“하지만 꼭 알아내야 할 게 있습니다. 왜 마가의 강자가 이런 법진을 만들어 여러분의 마을을 억누르고 있는지 말이죠!”윤구주는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그러나 이 말을 들은 마을 주민들은 그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단지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진법이나 살기 같은 무도 용어를 알 리가 없었다.“어르신, 마을 안을 좀 둘러봐도 될까요?”윤구주가 갑자기 묻자 노인 촌장은 얼른 대답했다.“물론이지. 당연히 되네! 자네는 우리 은인이 아닌가. 이쪽으로 오게!”말을 마치자마자 촌장은 서둘러 앞장섰다.그렇게 윤구주는 공수이와 함께 석촌 안으로 들어섰다.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윤구주는 석촌 내부에서 미묘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이 기운은 아주 은밀히 숨겨져 있었으며 오악 절정 이상의 내공이 아니면 절대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형님, 이 마을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듭니다!”공수이 역시 석촌에 숨겨진 기운을 감지하고는 윤구주에게 말했다.“맞아. 마가가 이토록 강력한 법진을 써서 이 마을을 억누르고 있다면 이곳엔 분명히 뭔가 숨겨진 게 있을 거야.”윤구주는 이렇게 말하고 신념술을 펼쳐 마을 전체를 탐지하기 시작했다.그의 강력한 신념이 마치 여과망처럼 석촌 구석구석을 스며들며 모든 것을 포착했다.신념술을 통해 그는 병상에 누워 있는 노인, 개울가에서 노는 아이들, 집에서 요리 중인 주부들 등 마을 주민들의 일상을 하나하나 확인했다.그리고 신념술이 석촌 전체를 감쌀 때, 갑자기 윤구주의 신해에 기이한 기운이 포착되었다.이 기운은 매우 은밀하게 숨어 있어 윤구주의 강력한 신념술이 아니었다면 절대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찾았다!”윤구주의 눈에 희미한 빛이 번뜩였다.신념술을 통해 한 우물의 모습이 그의 신해에 나타났다. 이 우물은 마을 한가운데에 있었다.모든 기운이 이 우물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감지하자 윤구주는 몸을 솟구쳐 그 우물로 향했다.“저, 저런!”“날았다고?”“성인이야!”“정말 성인과
윤구주는 촌장의 말을 듣고 입을 열었다.“어르신, 마가가 왜 봉살진을 세워 이 마을을 억누르고 있는지 아십니까?”촌장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모르겠소.”“바로 이 우물 때문입니다!”윤구주는 손가락으로 고대 우물을 가리켰다.“우물?”윤구주의 말에 촌장은 물론 주변의 마을 주민들도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맞습니다! 믿기 어렵다면 지금 보여드리죠!”말을 끝내자마자 윤구주는 오른손을 들어 허공에서 우물 위의 시멘트 뚜껑을 향해 내리쳤다.곧 퍽 소리와 함께 시멘트 뚜껑이 산산조각나며 폭발하듯이 깨져버렸다.뚜껑이 깨지자 고대 우물의 모습이 모두의 눈에 드러났다.우물은 오래된 모습 그대로였으며 우물 구멍에서는 검은 살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모두가 놀라워하는 사이, 윤구주는 다시 한번 손을 들어 인결을 맺고 우물을 가리켰다.“나타나라!”우르릉!우물 안쪽의 돌벽에서 잔뜩 뒤틀린 붉은색의 기묘한 부적 문양이 드러났다.이 문양들은 혈색의 광채를 내며 얽히고설켜 마치 전기망처럼 우물의 입구를 봉인하고 있었다.“이건... 뭐지?”촌장은 충격에 휩싸여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다른 마을 주민들도 눈을 크게 뜨고 그 섬뜩한 붉은 부적 문양을 바라보고 있었다.“이곳이 바로 봉살진의 봉인 장소입니다.”윤구주가 천천히 말했다.“봉인 장소?”촌장은 이해하지 못한 듯 물었다.“그렇습니다! 이 우물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마가가 이 봉살진을 설치해 이곳을 억누르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 우물 때문이라는 겁니다.”“그리고 여러분들이 겪고 있는 흑사병과 지금까지 죽어 나간 마을 사람들도 모두 이 우물에 있는 것 때문입니다.”윤구주는 우물을 가리키며 설명했다.그의 말을 듣고 촌장은 충격에 휩싸여 제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자네는 우리 은인이네! 우리를 구해줘! 우리를 구해준다면 무엇이든 다 하겠네! 우리 석촌 사람들은 그저 평범한 백성일 뿐인데 마가가 왜 우리를 이렇게까지 해치려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촌장은 지난 수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
백호는 아직도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어느덧 이백오십 계단까지 올라왔다. 이 단계부터는 실체화된 술법이 몸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계단 하나를 오를 때마다 바람, 불 번개와 같은 속성의 영기가 점점 강해졌다. 여기서부터는 육신 횡련의 수련자는 강력한 체질로 버티고 술도 재능이 뛰어난 수련자는 천지 영기를 다루는 능력으로 버텨야 했다. 한마디로 각자의 능력에 따라 갈리는 구간이었다. 어느 한 분야라도 특출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백호는 술도에는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강인한 육체 하나로 견디고 있었다.웅!성수의 피가 진동하며 백호의 몸을 지탱했다. 각종 속성의 영기가 몰아쳤지만 백호는 성수혈의 힘을 빌려 억지로 앞으로 나아갔다.수련자에게 있어서 성수의 혈맥이나 법보 등은 모두 신체 외적인 재능으로 간주하지만 그렇다고 이것들이 꼼수나 편법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천 가지 변화와 만 가지 신통력이 있어도 결국 만법은 한 가지로 귀결된다. 법기든 혈맥이든 이를 감당하는 것은 결국 본인의 몫이다. 천지 영기를 이용한 술법도 결국은 그 힘을 감당할 수 있어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며 감당하지 못하면 반드시 반작용을 맞게 된다. 따라서 수련의 길에는 애초에 편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성수 혈맥 같은 천지의 보물은 보통 사람이 함부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윤구주의 도움을 받았다 하더라도 결국 이를 감당하는 건 백호 자신이었다. 성수 혈맥의 힘을 온전히 감당하며 백호는 결국 삼백 계단까지 올라섰다.계단의 꼭대기 근처에는 이미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이 여럿 서 있었다. 서요산 검종은 근대에 들어 삼백 계단을 넘는 인재가 드물었다. 최근 백 년 동안 삼백 계단을 넘은 사람이 고작 열 명 남짓이었고 그중 대부분이 삼백여 계단에서 멈췄다. 그런데 지금 백호는 삼백이십 계단까지 올라선 것이다. 이 정도면 서요산 검종 전체가 떠들썩해질 만한 성과였다.이런 제자가 나타난다면 종문 전체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래서 서요산의 진인들까
“한 사람의 품성을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마구잡이로 그렇게 많은 수련자를 키워낸다면 결국 천하의 마인을 직접 만들어 내는 꼴이 아니겠어?”청현이 바로 그 실패한 예다. 서요산 검종 종주가 청현의 천재성을 아까워한 나머지 그의 인성을 무시하고 양성한 끝에 결국 역도를 만들어 낸 것이다.“그럼 저하 서요산에 입문한 무술 무인들은 평균적으로 몇 계단까지 오르는지 아십니까?” 백호가 호기심에 물었다. 윤구주는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무술 무인의 정확한 데이터는 모르지만 검종 종주와 잡담할 때 들어보니 검종 제자들의 수준이 갈수록 떨어져서 천 년 전만 해도 평균 삼백 계단 정도였는데 요즘엔 백 계단도 못 오른다고 하더구나. 가끔 삼백 계단을 오르는 자라도 나오면 검종 전체가 몇 년은 떠들썩할 정도라고 했어.”“구백구십구 계단까지 있는 시험인데 천 년 전 전성기에도 겨우 삼백 계단이요?” 백호는 입술을 삐죽이며 서요산 검종의 수준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때 한 번 도전해 볼 생각이야?” 윤구주는 흥미롭게 백호를 바라보았다. 백호는 당장이라도 도전하고 싶은 마음에 윤구주의 허락을 구한 뒤 바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 계단 두 계단... 오십 계단까지는 아무 어려움도 없었다. 백호는 오십 계단에 서서 사람들을 향해 서요산 검종이 별것 아니라며 놀려댔다. 하지만 육십 계단쯤 올랐을 때 처음으로 압력을 느꼈다. 마치 몸 위에 작은 차 한 대가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백호에게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백 계단에 도달하자 압력이 갑자기 커졌다. 등에 작은 승용차 대신 소형 트럭이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지만 아직 백호의 한계에도 가지 못했다.“근래 사람들의 평균이 백 계단도 못 넘는 이유가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예전의 무인 횡련은 황제도 오를 수 있었지만 요즘 무인 횡련은 죽어라 노력해도 소형 트럭 하나 못 버티는 수준이니 말입니다.”백호는 농담을 던지며 계속해서 계단을 올라
전에 임정설은 구오 지존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나라를 위해 힘쓰며 수모를 견뎌내고 살아남으려 했다.하지만 이제 황제가 된 그는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그 탓에 이번 관문 앞에서 그는 망설였다.살아 있는 자만이 통과할 수 있는 관문이었다.죽음을 마음에 품은 자는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관문이었다.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 청해만이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생각했다.‘황제가 되면 곤륜 구역에서 최고 경지에 도달하는 건데. 기뻐해도 모자랄 판에 왜 죽음을 택하려는 거지?’“저하, 국주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듯합니다. 저하도 사랑하던 이에게 배신당했어도 결국 극복해 나갔잖습니까.”백호도 이해하지 못했다.그는 여전히 국주보다는 왕이 더 낫다고 여겼다.“네가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함부로 내뱉느냐.” 윤구주가 단호하게 말했다.백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그는 어리숙하고 말솜씨도 없기에 생각나는 대로 말했을 뿐이다.“내가 문아름에게 배신당한 건 억울한 일이지만 나는 그녀에게 잘못한 게 없다. 오히려 그녀가 날 배신한 거다. 하지만 국주는 그 반대였지. 그가 그녀를 저버린 거야. 정이 깊으면 오래가지 못하고 지혜가 지나치면 오히려 상처를 입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쓰라린 후회는 가진 뒤 잃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생사를 달리하게 되는 것이다.” 윤구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만약 소채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도 제정신이 아닐 거라고 느꼈다.“그럼 복수하면 되지 않나요?” 백호가 어리둥절하게 물었다.이때 청해가 눈치를 채고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상대가 너무 강해서 못 이기는 거지. 황제에 오르기 전까진 제대로 맞붙을 힘도 안 돼. 오르고 나서도 이길 수 있을지 장담 못 하고.”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 그 말이 맞았다.“그럼 우리가 국주님 대신 복수해 드리면 되잖아요? 국주님은 제 왕이기도 하지만 제 윗사람이기도 하잖아요.”백호가 고개를 갸웃했다.“하하! 만약 세상 사람들이 다 너처럼 솔직하다면 이런
인간이 나쁜 짓을 거듭해 양심을 잃으면 부끄러움도 사라진다.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윤구주를 따라 명예심이 생기면서 죄책감도 느끼게 된 청해에게 이 원한의 전법은 고통스럽기만 했다. 물론 곤륜역 한 신전의 부전주로서 정신이 붕괴할 정도는 아니었다.네 사람은 이 원한의 전법도 가볍게 넘어섰다.이때 전법에 관심을 가졌던 임정설이 무언가를 눈치챘다.“구주야, 서요산의 전법은 우연히 들어온 자를 쫓아내는 동시에 수련자의 의지를 시험하는 것이었어. 서요산은 의지력이 확고한 자들만 끌어들인다는 것을 미리 들어 알고 있다. 이게 바로 서요산이 제자를 선발하는 방식인가 보구나.”“그렇습니다. 매년 화진 무도계 사람들이 서요산에 찾아오지만 성공한 자는 극히 드뭅니다. 실패자들 중 십중팔구는 산기슭에서 죽음을 맞이하죠. 어떤 문턱은 넘지 않는 것이 복이 될 때가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죠. 현실을 알고도 바꾸지 못하는 것이 가장 괴로운 법이니까요. 이 관문을 넘는다고 해도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입니다.”윤구주의 말이 끝나자 세 번째 전법이 나타났다.첫 번째와 두 번째 전법은 이곳에 들어온 이들을 돌려보내려고 만든 것이지만 세 번째 전법은 달랐다. 이 전법은 살기로 가득 찬 죽음의 전법이었다.평범한 사람들은 여기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이곳까지 온 자들도 앞길의 위험을 보고 함부로 들어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눈 앞에 펼쳐진 죽음의 길을 보고도 들어가는 자는 스스로 죽음을 원하는 자라서 그런 자들에게 죽음을 내리는 것은 오히려 덕을 쌓는 일이었다.하지만 무도로 도를 깨우치려는 수련자라면 이 관문을 넘기 위해 반드시 목숨을 걸어야 한다. 버텨내야만 수도의 길에 들 수 있고 실패하면 그 후과를 받아들여야 한다.전법 안은 살기로 가득했다. 생기와 영기가 세상을 이롭게 하지 못할지라도 살기와 죽음의 기운은 목숨을 앗아갈 것이 분명했다.진법 내부에는 수많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무도계에 이름을 날렸던 강자들의 유해
네 사람은 비석을 지나자마자 환각의 전법에 부딪혔다. 이 전법은 우연히 들어오거나 경고를 무시한 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결국 서요산 밖으로 나가게 만드는 것이었다.의지력으로 환각의 전법을 통과하면 다음 전법이 기다리고 있었다.당연히 네 사람에게 환각의 전법은 통하지 않았다. 윤구주와 임정설은 물론, 백호와 청해도 곤륜에서 강자로 존경받는 존재들이었다.다음은 섭혼 전법이었다.전법에 들어가기 전부터 하늘을 찌를듯한 원한의 기운이 밀려왔다.그 기운을 느낀 임정설이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수년간 왕궁에서 비술을 연구해서 알아본 건데. 이곳은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진 거야. 반경 수천 리 이내의 원한의 기운이 모두 이곳에 모여있어. 내 치하에서도 억울하게 죽은 자들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그걸 내가 몰랐다니.”그는 깊은 자책에 빠졌다.“국주님, 인간이 있는 곳에는 분쟁은 끝나지 않습니다. 근대에 들어 큰 전쟁은 사라졌지만 소규모 충돌은 끊이지 않았죠.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게다가 이곳에 모여진 원한의 기운은 억울한 죽음뿐만 아니라 극형을 받은 흉악범들의 원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은 죽어도 사라지지 않죠. 사랑 때문에 미워하고, 미움 때문에 미쳐버리는 것이 바로 인간입니다.”윤구주의 말을 듣고 임정설이 한마디 물었다.“구주야, 너는 문아름을 미워하지 않느냐?”문아름의 이름을 들은 윤구주의 눈에서 짙은 살기가 번뜩였다.“당연히 미워하죠. 저 윤구주는 순수하게 사랑하고 미워하는 인간입니다. 사랑은 사랑, 증오는 증오에요. 그녀를 위해 변명 같은 건 하지 않겠습니다. 문아름이 저를 배신했으니 저에게 당연히 미워할 권리가 있죠. 하지만 문아름을 사랑한 걸 후회하지는 않아요. 문아름이 제게 사랑이 무엇인지, 인심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었으니깐요. 가려는 길이 다르면 미래를 함께할 수 없죠. 저희는 처음부터 다른 길을 걸었어요. 저희의 만남 자체가 잘못이었지만 문아름이 저를 구주왕으로 만든 것도 사실이죠. 그리고 제가 문아름을
“저하와 생사를 함께할 수 있다니. 그건 제 영광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만약 전하와 제가 정말로 서요산에서 죽게 되면 청룡이 돌아온다 해도 성수가 한자리 비게 되는 건데 그분을 어떻게 소환하시렵니까?”백호가 의혹이 담긴 표정으로 물었다.윤구주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그걸 설명하려면 너를 실험체로 삶고 실험을 진행할 때부터 얘기해야 해. 정확히 말하면 청룡, 현모, 주작의 몸속에는 네 피가 흐르고 있어. 네가 성수의 피를 융합한 첫 번째 수련자야. 예로부터 지금까지 오직 너만이 진정한 융합에 성공했지. 네 피를 빌려 그들에게 성수의 정수를 주입했던 거야.”“백호, 내가 너를 이렇게 만든 거다. 네가 이런 괴물 같은 모습이 된 건 전부 내 탓이야. 그러니 나를 원망해도 좋아.”백호는 웃으며 대답했다.“제가 어떻게 저하를 원망하겠습니까? 게다가 당시 저하께서는 제 목숨을 구하려고 그러신 거였잖아요. 제가 고마워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첫 번째로 융합에 성공한 수련자는 제가 아닐건데요? 저하께서도 성수의 피를 다루시지 않았습니까?”그 말을 들은 윤구주가 고개를 저었다.“아니. 달라. 그건 그냥 성수의 피를 통제하는 것 뿐이야. 진짜 융합했으면 나도 네 꼴이 됐을 거야.”백호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됐다. 옛날얘기는 그만하고 얼른 서요산으로 떠날 준비나 해.”며칠 후, 윤구주는 임정설 국주, 청해, 백호와 함께 서요산으로 향했다.비 오는 밤, 연기를 뿜는 수송기가 짙은 구름을 뚫고 산을 향해 돌진했다.비행기가 산에 충돌하기 직전, 수많은 바람의 부적이 나타나 비행기를 강제로 선회시켜 간신히 산기슭에 착륙했다.비행기가 막 착륙하자 비행기 문이 누군가의 주먹 한 방에 박살 났다. 멀미로 비틀거리던 청해가 나오더니 몸을 움츠린 채 구토를 멈추지 못했다. 뒤이어 내린 임정설도 배를 움켜쥐며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억지로 참는 모습이었다.그들과 달리 윤구주는 멀쩡한 상태로 내려와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백호의 질문에 윤구주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네가 진짜라 믿는다면 그것은 진짜야. 초심을 잃지 않아야 길이 열리는 법이지.”이 말은 백호에게만이 아닌 자신에게도 하는 것이었다.서울의 위기는 해결되었지만 윤구주는 이 모든 것이 문씨 가문의 그 여자의 계획 중 하나임을 알고 있었다.“국주님, 이제 서요산으로 갈 때입니다.”그가 임정설을 바라보며 말했다.“서요산을 지키려는 거니? 마인이 나타날 거란 말이야?”임정설이 눈살을 찌푸렸다. 진요탑 아래에는 천년 동안 갇힌 수많은 마인들이 있었다.“맞아요. 서요산의 지맥 영기가 거의 고갈되었습니다. 만약 진요탑이 무너지면 큰 재앙이 찾아올 것입니다.”윤구주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진요탑이 붕괴하여 마인들이 쏟아져 나오면 윤구주라도 그들을 처리하기 힘들 것이다.“좋아. 내가 같이 가주마. 이 늦은 재앙은 언젠가 닥칠 운명이니 우리가 짊어져야 해. 지금의 희생은 후손들을 위한 것이야.”임정설의 눈빛이 강철처럼 단단해졌다. 화진을 위해, 백성들을 위해 그는 언제든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었다.윤구주는 현모에게 연락을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뭐라고요? 저하께서 서요산으로 가신다고요? 그렇다면 저희도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요?”현모와 주작의 목소리에서 초조함이 느껴졌다. 특히 주작은 서요산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천년 동안 축적된 재앙을 겨우 수십 년 수련한 윤구주 혼자서 떠맡기엔 버거웠다.“괜찮아. 너희에게는 따로 시킬 일이 있어. 내가 서요산에 있는 동안 너희는 국경을 지켜줘. 청룡의 행방은 잠시 접어두고 내가 시킨 일에 몰두해. 난 문아름을 그 여자를 잘 알고 있어. 문아름은 일이 내 뜻대로 되게 놔두지 않을 거야.”“추가로 부탁이 있는데 만약 내가 전사한다면 그때쯤 청룡이 모습을 드러낼 거야. 청룡을 불러내는 게 복인지 화인지는 나도 알 수 없지만. 그 상황이 오면 너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거야. 문아름이 결정을 내리겠지. 그러니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둬.”유언을 남기는 듯한
‘헐, 대박.’진동왕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윤구주를 신처럼 떠받들었다.‘이게 진짜 신이지. 곤륜에 있는 그 자식들은 모두 가짜 신들이었어. 허위적이기 그지없지.’오늘 밤 그는 여러 강자의 싸움을 직접 목격하고 강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문경우도 아주 강했지만 윤구주가 나타나자 문경우는 도망조차 제대로 치지 못하고 영혼마저 산산조각이 났다. 윤구주의 술법에 의해 영혼도 남기지 못하고 진정한 죽음을 맞이했다.승리는 결국 화진에게 돌아갔다. 화진을 무너뜨리려는 역적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윤구주는 자신의 힘으로 화진의 막강한 실력을 전 세계에 알렸다.문경우를 처단한 윤구주는 즉시 임정설의 치료에 돌입했다.“짐은 별일 없으니 먼저 왕숙과 네 친구를 치료해줘라.”임정설이 임성진과 청해를 가리키며 말했다.청해는 이미 정신을 차렸다. 비록 상처가 심해 반쯤 죽은 상태였지만 화진 국주에게 인정받은 첫 순간이었다. 묘한 영예감이 그의 마음을 꽉 채우며 날아갈 듯 기뻤다.“이 두 사람 모두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은 아닙니다. 오히려 국주님이 더 위험하십니다. 경지를 무리하게 넘어서셨고 섭혼번 아래서 정기를 너무 많이 잃으셨습니다. 지금 국주님의 기운이 안정하지 않으니 제 도움이 없다면 폭주 할수도 있어요. 그때가 되면 저도 방법이 없습니다.”윤구주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임정설은 결국 윤구주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도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었다. 윤구주의 치료를 거부한 이유는 목숨을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황자급 경지에 오르긴 했지만 예전보다 죽음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 있었다. 윤구주는 임정설에게 풀지 못한 원한이 있음을 눈치채고 치료를 해주며 화진으로 압박했다.“국주님께서 직접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는 걸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화진에게는 국주님이 필요합니다. 국주님은 30년 동안 화진을 지켜오셨잖아요. 지금 승부가 달린 이 중요한 시점에서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시면 안 됩니다.”임정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