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이 입에서 나온 자신의 형님을 건드렸다는 소리를 들은 마황은 순식간에 얼굴이 굳어버렸다.“방금 뭐라고 한 것이냐, 우리 마가가 누구를 건드렸다고?”공수이는 윤구주를 가리키며 말했다.“당연히 우리 형님을 건드린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이런 괴상한 곳에 올 일이 뭐가 있겠어?”마황은 눈동자를 굴려 허공에 떠 있는 윤구주를 바라보았다.그는 윤구주의 잘생긴 얼굴과 패기 넘치는 모습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어대기 시작했다.“너... 너... 넌 구주왕? 그 윤 인왕?”제자백가 중 마가의 가주 마황은 당시 곤륜에서 왕을 봉할 때 마침 곤륜산에 있었다.그래서 마황은 윤구주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고 윤구주임을 확인한 뒤에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윤 인왕?”“세상에, 저 사람이 바로 화진 제일의 구주왕이야?”이때 마가의 모든 장로를 하나같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믿기 힘들다는 얼굴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비록 그들은 모두 구주왕의 명성을 잘 알고 있었지만 윤구주의 실물을 본 사람은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그리고 마황이 윤구주의 이름을 뱉은 지금,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은 놀라서 얼어붙어 버렸다.“윤구주!”“구주왕!”윤구주는 이름이 불리는 것을 듣고 나서야 천천히 몸을 돌렸다.“본왕을 알고 있다니!”그 순간 마황은 물고기 가시가 목에 걸린 사람처럼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는데 그 모습은 봐주기 힘들 정도로 엉망이었다.마황은 그 누구보다 윤구주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특히나 그해 곤륜산에서의 결전은 마황에 있어서 잊기 힘든 무서운 기억이었다.그리고 지금 이 순간, 이 신왕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이 늙은이... 감히 윤 왕을 만나 뵙게 되어...”마황은 그 순간 하는 수 없이 윤구주를 향해 굽실거리며 절을 했다.마황이 윤구주에게 절을 올리는 것을 본 마효순은 제일 처음으로 튀어나와 말했다.“아버지! 저 사람이 바로 우리 동한이를 죽인 사람인데 왜 원수에게 절을 하시는 겁니까?”“입 다물 거라!”아들이 그렇게 말하
공수이가 말을 마치자마자 등에 멘 가방에서 피범벅이 된 머리를 휙 던졌다.데굴데굴! 그 머리가 땅에 떨어지자 마가의 모든 사람이 멍해졌다.머리라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그 머리를 보고 순간 모두가 얼어붙었다가, 이내 자세히 살폈다. 마가의 주인 마황은 그만 혼이 쏙 빠져나갔다. “어르신님...”그의 입에서 처절한 울음이 터져 나왔다. “말도 안 돼!”“어르신님???” 마효순이가 황급히 달려가 보더니, 피투성이 머리가 마가의 3대 어르신님이란 걸 알아보고는 그만 “으악!” 하고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나머지 마가 장로들도 모두 할 말을 잃고 얼빠진 표정이었다. “설마 이게 3대 어르신의 머리라고요?” “저자가 저자가...감히 3대 어르신님을 죽이다니?” 장로들이 벌벌 떨며 소리쳤다! 공수이가 조롱하듯 말했다.“아이고 이제야 좀 알아보시네! 그래! 너희들이 떠받들던 그 늙은이를 우리 형님이 싹둑 잘라버렸어! 이제 보이냐?”이 말을 듣자마자 그 자리의 마가 제자들과 최고위 장로들 모두가 완전히 붕괴되고 말았다! 윤구주와 맞설 희망이었던 3대 선조님이...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3대 어르신님의 목이 이렇게 던져지다니?“네 네놈이... 감히 우리 마가의 3대 어르신님을...” 마효순이가 치 떨리는 손가락으로 윤구주를 가리키며 울분을 터뜨렸다. “나쁜 짓이나 일삼던 늙은이 하나 처리했을 뿐인데, 뭐가 문제지?” 윤구주의 이 말에 마효순의 이성이 완전히 날아가 버렸다.“네 이 살인마! 내 자식 목숨 내놔라!” 그가 미친 듯이 윤구주에게 달려들려 했다! “효순아... 제발 안 돼!” 마황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 아들의 행동에 절규하며 말렸다.하지만 윤구주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윤구주의 손가락이 허공을 가르자, 평온하던 공기를 찢고 무형의 칼날이 마효순을 덮쳤다.슉! 하늘의 심판처럼 내려온 검기가 마효순을 관통했다! 그 순간! 마효순의 몸이 공중에서 두 동강이 났다! 핏물이 공중에 흩날리며, 시신이 두 조각으로
마가의 우두머리는 미쳐버린 듯 소름 끼치는 웃음을 터뜨렸다.그러다 갑자기 핏발 선 눈으로 야수처럼 윤구주를 노려보며 내뱉었다. “윤구주, 네가 아무리 천하를 쥐고 있다고 해도 네가 아무리 무적이라 해도 넌 결국 인간일 뿐이다. 잘 기억해 둬라. 오늘 네가 우리 마가에 저지른 짓 언젠가는 네 차례가 올 것이다. 오늘 우리 마가가 망한다 해도, 반드시 너를 지옥으로 끌고 가겠다.”처절한 외침을 마치고 마황이 광기어린 목소리로 외쳤다. “마가의 모든 제자들아, 윤구주를 죽여라! 오늘 우리가 전멸할지라도 그자를 반드시 함께 끌고 가리라.” 마지막 순간에, 마가의 우두머리는 결사 항전을 결심했다.그는 깨달았다, 윤구주가 결코 마가를 살려두지 않으리란 것을. 아마도. 죽음을 건 싸움만이 그들의 마지막 희망일 것이다.마황의 명령에 모든 마가 제자들이 일제히 무기를 뽑아 들었다. 마황 곁의 십여 명 최강 장로들도 전신의 기운을 모으며 결사항전을 준비했다. 대격돌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오늘의 싸움은 마가의 존망을 결정할 싸움.그들은 반드시 피를 흘려야만 했다. 그런데!그들은 마지막까지 윤구주의 힘을 너무나 모르고 있었다. 윤구주가 현장의 모든 마가인들을 차갑게 둘러보자, 그의 몸에서 무형의 살기가 뿜어져 나와 모든 마가 제자들을 뒤덮었다. “오늘 이후로 마가란 이름은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천하를 호령하는 듯한 말이 그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그가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 발걸음이 내려앉는 순간 온 천지가 울리며 흔들렸다.무서운 걸음의 위력이 떨어지자 하늘을 놀라게 할 위압의 힘이 순간적으로 밀려왔다.이 위압감은 산맥의 힘을 넘어섰다. 절정의 힘마저 넘어섰다.한 걸음으로 모든 게 끝났다.쾅! 윤구주의 발길 한 번에 마가의 건물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어마무시한 기운에 마가의 약한 제자들이 그 자리에서 즉사해버렸다. “죽여!”윤구주의 살기가 폭발하자, 마황이 제일 먼저 울부짖으며 달려들었다. 온몸의 힘을 끌어올리자, 그의 배후로
윤구주는 마가의 우두머리가 비참하게 외치는 소리를 전혀 개의치 않고 큰 손바닥으로 진역 결계를 눌렀다.“속박.” 쾅! 셀 수 없는 금색 빛줄기가 긴 뱀처럼 진역 결계 안에서 터져 나와 감금된 마가의 제자들과 장로들을 덮쳤다. 대학살의 현장. 지금 마가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서 그저 도살될 운명의 어린 양들이었다. 오늘 윤구주의 선언대로, 마가를 멸족시키겠다면 단 한 생명도 남기지 않을 것이다. 살육은 끝없이 이어졌다. 절망적인 비명이 마가 제자들의 입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왔다.마가는 문가와 손잡고 화진을 위험에 빠뜨렸으니 죽어도 아까울 것 없는 자들이었다. 그래서 윤구주는 어떤 자비도 베풀 생각이 없었다. 마황은 마가 제자들이 차례로 비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눈에서는 피눈물이 흘렀고 두 다리로 땅을 꿇은 채였다. 인제야 그는 윤구주를 적으로 만든 것을 처절히 후회했다.더욱 가슴이 찢어졌다. 자신이 부하들을 보내 윤구주를 암살하려 했던 것이. 그리고 지금 그 대가를 치를 시간이 왔다. 윤구주가 마가의 제자들을 차례로 처형하고 있을 때, 뒷산의 어느 절벽에서 쾅, 하는 진동이 불현듯 울려 퍼졌다. 그 소리가 하늘을 흔들었다.곧이어, 절벽 가운데에서 공중에 떠 있는 두 개의 오래된 관이 보였고 그중 하나에서 거친 포효가 울려 퍼졌다. “어떤 자가 감히 우리 마가의 영역에서 이런 대학살을 저지르느냐?” 이 말이 끝나는 순간, 쾅 하는 폭발음과 함께 한 관이 산산조각났다. 그리고 허연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온몸이 진한 마기로 둘러싸인 노마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다.이 노인의 사악한 기운이 하늘까지 치솟았다. 그가 나타나자마자, 하늘의 정기가 물줄기처럼 그의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의 눈동자에서는 섬뜩한 광채가 번쩍였고 , 특히 왼쪽 눈에는 신비로운 안개가 맴돌았다. 수천 년의 전통을 지닌 마가에는 세 명의 강력한 시조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등장한 이가 바로 마가의 제2대 시조였다.이 제2대 시조가 모습을 드러낼 때,‘아
백 년 넘게 종적을 감췄던 마구음이 나타나더니, 음산한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혼잣말했다. ‘백 년이 넘었나...시간 참 빠르구나!’그 말을 끝으로 눈을 살며시 감고 깊게 한숨을 들이켰다.천지의 신령스러운 기운이 큰 파도처럼 사방에서 그의 몸으로 쏟아져 들어왔다.옆에 있던 제2대 시조는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만 볼 뿐이었다.긴 시간이 흐르고, 마구음이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백여 년 만에 나왔더니, 이런 미친놈들이 감히 우리 마가 땅에서 살육을? 그것도 괜찮아! 어차피 나온 김에, 그때 그 빚도 깔끔하게 정리해야지!” 말을 끝내고 그의 눈에서 살기가 서려 나오며 북쪽을 응시했다.“곤륜 구역! 그때는 날 막아섰지! 어디 보자, 백 년이 지난 지금도 감히 날 막을 수 있을지?” 포효가 초대 시조의 입에서 울부짖듯 터져 나왔다.그가 번개처럼 고개를 휙 돌려 마궁을 노려봤다.어마어마한 정신력이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정신력이 마궁을 파고들자, 마가 초대 시조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이런 제길! 어째서 여기서 곤륜 구역 뇌왕인의 기운이 느껴지지? 이건 도이의 신통력이 아닌가?'’깜짝 놀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형님, 무슨 일이십니까?”제2대 시조는 마구음의 표정이 순식간에 험악해지자, 서둘러 다가와 물었다. 마구음은 말 한마디 없이, 점점 더 시커멓게 변한 얼굴로 마궁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분명 뇌왕인의 기운이다! 혹시, 곤륜 구역 놈들이 우리 영토에 발을 들였나?”옆에 있던 마가 제2대 시조는 마구음의 말을 듣자마자 표정이 험악하게 변했다. 그는 이 형님의 기질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게다가 그때 곤륜 구역이 형님을 거절했던 그 쓰라린 기억도! 백여 년 전, 곤륜 구역이 한 번 문을 열었을 때였다.그때 마구음은 마가 시조의 명성과 자신의 실력만 믿고, 무림의 성지 곤륜 구역에 당연히 들어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예상 밖으로 곤륜 구역은 그를 무참히 거절해 버렸다. 그 치욕적인 사건으로 마구음은 깊은
‘마침내 나타났군?’ 윤구주의 입꼬리가 비웃듯 올라갔다. 저 두 줄기의 강력한 기운의 주인공을, 윤구주는 벌써 예상하고 있었다. “어느 놈이 감히 우리 마가에 침입하여 이런 학살을 저지르느냐.” 바로 그때, 포효하는 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왔다.천둥 같은 소리와 함께 마궁 뒤쪽 하늘이 순식간에 칠흑으로 변했고, 곧이어 두 그림자가 마궁 위에 나타났다. 윤구주의 진역 결계에 갇혀 있던 마황과 겨우 살아남은 십여 명의 최고위 장로들은 그 모습을 보자마자 희망에 들떴다. “두 시조님이 나오셨다, 이제 우리 마가는 구원받을 수 있다.”마황이 감격에 찬 말을 마치고 가장 먼저 땅에 엎드렸다. “마가의 마황, 두 시조님의 귀환을 삼가 맞이하옵니다.” “시조님들의 귀환을 맞이합니다.” 남은 마가의 최고위 장로들도 일제히 두 그림자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마가의 두 시조는 나타나자마자 싸늘한 눈으로 전장을 살폈다.수많은 마가 제자들이 처참하게 죽어 나가고 마가 건물들까지 대부분 박살 난 것을 보자, 마가의 제2대 시조가 폭발하듯 고함을 질렀다. “누가 감히 우리 마가에서 이런 학살을? 당장 앞에 나와봐라.”누가 봐도 느낄 수 있었다. 제2대 시조는 언제든 폭발할 것 같은 화약고였다.“시조님, 저놈들입니다.”이 윤씨란 자가 우리 제자들을 살해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마가를 화진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시조님, 꼭 우리의 원한을 풀어주십시오.” 마황은 격분된 목소리로 윤구주와 공수이를 가리켰다. 마황의 말에 제2대 시조는 순간 살벌한 눈빛으로 윤구주와 공수이를 응시했다. “건방진 놈들, 우리 마가가 어떤 문파인지나 알고 있느냐? 너희 같은 풋내기들이 감히 우리 마가에서 날뛰어?”공수이는 비웃음을 지으며 마가의 제2대 시조는 완전히 무시한 채, 윤구주에게 말을 건넸다. “형님, 저 두 늙은이가 마가의 시조들인가 봐요.”그러고는. 공수이는 도도하게 고개를 들어 마가 제2대 시조를 향해 조롱했다. “이봐요, 늙은 거
“둘째야, 잠깐만.” 마운해가 달려들려는 찰나, 큰형 마구음이 그를 막아서며 말했다. 저지당한 마운해의 눈이 피처럼 붉어지며, 억울함에 차서 마구음에게 외쳤다. “형님. 이 악당들이 셋째를 죽였다고요.” “알고 있다.” 마구음이 싸늘하게 대답했다. 마운해는 이 순간 극도의 분노와 슬픔에 휩싸였지만...하지만 마구음의 한마디에, 그는 결국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그의 눈빛은 사람을 잡아먹을 듯한 살기로 가득 차서, 차갑게 공수이와 윤구주를 응시했다. “이 죽일 놈들 잘 들어라! 맹세하건대 오늘 너희를 산송장으로 만들어서, 내 형제의 원한을 풀어주마.” 공수이는“흥흥” 하며 코웃음을 쳤다.“이 도련님이 기다리고 있겠소.” 마운해가 저지당한 후 마구음이 드디어 전면에 나섰다.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절정의 기혈은 이미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경지에 달했다! 이 늙은 마물은 먼저 공수이를 쓱 둘러보더니 공수이의 수련 정도가 고작 육도 초급인 것을 보고는 그의 눈빛에 조롱이 번졌다.그러다 시선을 돌려, 마침내 윤구주에게 초점을 맞췄다. 윤구주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그의 눈이 순식간에 수축했다. 공포스럽고 절대적인 기운이 갑자기 윤구주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이런 압도적인 기운은 이삼백 년을 산 그러한 노 괴물마저도 두려움에 전율하게 만들었다.‘이런 망할 놈을. 이 녀석은 도대체 어떤 괴물인가? 어떻게 이렇게 무시무시한 압도적인 기운을 가지고 있지?' 마구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삼백 년 수련의 힘이 한 몸에 모여 이미 천하무적이라 자부했었는데.하지만 이상하게도, 윤구주를 대면하자 이 노 괴물의 심장이 두려움과 공포로 쿵쾅거렸다. 환각인가? 아니면 현실인가? 마구음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깊은숨을 들이마시자, 그의 눈에서 갑자기 소름 끼치는 빛이 번뜩였고, 그 빛줄기들이 독침처럼 그의 눈동자에서 튀어나와 윤구주를 향해 날아갔다. 이는 마구음이 수련한 신혼비술, 경신자였다
그중에 만물을 불태워 없애고 천하를 화염으로 덮는다던 늙은 괴물이 바로 이 연꽃 도화를 썼던 것이다. 바로 그가 화공 두타였다. “당신 같은 속인의 눈으로 내 비법을 파악하려 하다니?” 윤구주가 싸늘하게 냉소했다. 이 말 한마디에, 마구음의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윤구주는 한 치의 거짓도 없는 말을 했다. 그의 화련금안은 화공 노마의 연꽃 도화와는 근본부터 완전히 달랐으니까! 하지만 눈앞의 마구음이 어떻게 이런 충격적인 사실을 믿을 수 있겠는가?“당, 당신은 정말로 곤륜 구역에서 오신 겁니까? 감히 존함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마구음이 두려움에 떨며 윤구주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 순간, 그의 어투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주변의 마가 최고위 장로들과 마황은, 그들의 제일 시조가 윤구주를 이렇게 공경스럽게 대하는 것을 보고 모두 어안이 벙벙했다. “시조님! 저 도적은 윤 씨라는 자입니다! 그자가 우리 마가 제자들을 학살하고, 게다가 우리를 멸문시키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시조님, 제발 우리의 원한을 풀어주시고, 저 악당을 처단해 주십시오!”이때 마가의 한 검은 얼굴의 최고위 장로가 서둘러 마구음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마구음이 번개같이 오른손을 휘둘렀다. 슉! 무시무시한 검은 기운이 말하던 장로의 몸을 순식간에 갈랐다.순식간에 그 장로의 목이 날아가 버렸고, 그 자리에서 즉사해 버렸다. 이 충격적인 광경을 본 현장의 살아남은 모든 마가의 사람들은 완전히 얼이 빠져버렸다.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초대 시조가 자기 문파의 사람을 죽이리라고는?정신이 나간 것인가? 모든 마가 제자들이 충격으로 굳어있을 때, 마구음은 극도로 공손하게 한 걸음 나아가, 두 손을 모아 윤구주에게 깊이 절했다. “어르신, 너무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방금 우리 마가의 무례한 행동에 대해, 제가 이미 마가를 대표하여 응징했습니다!”마구음의 이 말에, 그 자리의 모든 사람은 더욱 혼란에 빠졌다. 심지어 마운해조차도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
백호는 아직도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어느덧 이백오십 계단까지 올라왔다. 이 단계부터는 실체화된 술법이 몸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계단 하나를 오를 때마다 바람, 불 번개와 같은 속성의 영기가 점점 강해졌다. 여기서부터는 육신 횡련의 수련자는 강력한 체질로 버티고 술도 재능이 뛰어난 수련자는 천지 영기를 다루는 능력으로 버텨야 했다. 한마디로 각자의 능력에 따라 갈리는 구간이었다. 어느 한 분야라도 특출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백호는 술도에는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강인한 육체 하나로 견디고 있었다.웅!성수의 피가 진동하며 백호의 몸을 지탱했다. 각종 속성의 영기가 몰아쳤지만 백호는 성수혈의 힘을 빌려 억지로 앞으로 나아갔다.수련자에게 있어서 성수의 혈맥이나 법보 등은 모두 신체 외적인 재능으로 간주하지만 그렇다고 이것들이 꼼수나 편법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천 가지 변화와 만 가지 신통력이 있어도 결국 만법은 한 가지로 귀결된다. 법기든 혈맥이든 이를 감당하는 것은 결국 본인의 몫이다. 천지 영기를 이용한 술법도 결국은 그 힘을 감당할 수 있어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며 감당하지 못하면 반드시 반작용을 맞게 된다. 따라서 수련의 길에는 애초에 편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성수 혈맥 같은 천지의 보물은 보통 사람이 함부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윤구주의 도움을 받았다 하더라도 결국 이를 감당하는 건 백호 자신이었다. 성수 혈맥의 힘을 온전히 감당하며 백호는 결국 삼백 계단까지 올라섰다.계단의 꼭대기 근처에는 이미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이 여럿 서 있었다. 서요산 검종은 근대에 들어 삼백 계단을 넘는 인재가 드물었다. 최근 백 년 동안 삼백 계단을 넘은 사람이 고작 열 명 남짓이었고 그중 대부분이 삼백여 계단에서 멈췄다. 그런데 지금 백호는 삼백이십 계단까지 올라선 것이다. 이 정도면 서요산 검종 전체가 떠들썩해질 만한 성과였다.이런 제자가 나타난다면 종문 전체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래서 서요산의 진인들까
“한 사람의 품성을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마구잡이로 그렇게 많은 수련자를 키워낸다면 결국 천하의 마인을 직접 만들어 내는 꼴이 아니겠어?”청현이 바로 그 실패한 예다. 서요산 검종 종주가 청현의 천재성을 아까워한 나머지 그의 인성을 무시하고 양성한 끝에 결국 역도를 만들어 낸 것이다.“그럼 저하 서요산에 입문한 무술 무인들은 평균적으로 몇 계단까지 오르는지 아십니까?” 백호가 호기심에 물었다. 윤구주는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무술 무인의 정확한 데이터는 모르지만 검종 종주와 잡담할 때 들어보니 검종 제자들의 수준이 갈수록 떨어져서 천 년 전만 해도 평균 삼백 계단 정도였는데 요즘엔 백 계단도 못 오른다고 하더구나. 가끔 삼백 계단을 오르는 자라도 나오면 검종 전체가 몇 년은 떠들썩할 정도라고 했어.”“구백구십구 계단까지 있는 시험인데 천 년 전 전성기에도 겨우 삼백 계단이요?” 백호는 입술을 삐죽이며 서요산 검종의 수준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때 한 번 도전해 볼 생각이야?” 윤구주는 흥미롭게 백호를 바라보았다. 백호는 당장이라도 도전하고 싶은 마음에 윤구주의 허락을 구한 뒤 바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 계단 두 계단... 오십 계단까지는 아무 어려움도 없었다. 백호는 오십 계단에 서서 사람들을 향해 서요산 검종이 별것 아니라며 놀려댔다. 하지만 육십 계단쯤 올랐을 때 처음으로 압력을 느꼈다. 마치 몸 위에 작은 차 한 대가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백호에게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백 계단에 도달하자 압력이 갑자기 커졌다. 등에 작은 승용차 대신 소형 트럭이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지만 아직 백호의 한계에도 가지 못했다.“근래 사람들의 평균이 백 계단도 못 넘는 이유가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예전의 무인 횡련은 황제도 오를 수 있었지만 요즘 무인 횡련은 죽어라 노력해도 소형 트럭 하나 못 버티는 수준이니 말입니다.”백호는 농담을 던지며 계속해서 계단을 올라
전에 임정설은 구오 지존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나라를 위해 힘쓰며 수모를 견뎌내고 살아남으려 했다.하지만 이제 황제가 된 그는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그 탓에 이번 관문 앞에서 그는 망설였다.살아 있는 자만이 통과할 수 있는 관문이었다.죽음을 마음에 품은 자는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관문이었다.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 청해만이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생각했다.‘황제가 되면 곤륜 구역에서 최고 경지에 도달하는 건데. 기뻐해도 모자랄 판에 왜 죽음을 택하려는 거지?’“저하, 국주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듯합니다. 저하도 사랑하던 이에게 배신당했어도 결국 극복해 나갔잖습니까.”백호도 이해하지 못했다.그는 여전히 국주보다는 왕이 더 낫다고 여겼다.“네가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함부로 내뱉느냐.” 윤구주가 단호하게 말했다.백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그는 어리숙하고 말솜씨도 없기에 생각나는 대로 말했을 뿐이다.“내가 문아름에게 배신당한 건 억울한 일이지만 나는 그녀에게 잘못한 게 없다. 오히려 그녀가 날 배신한 거다. 하지만 국주는 그 반대였지. 그가 그녀를 저버린 거야. 정이 깊으면 오래가지 못하고 지혜가 지나치면 오히려 상처를 입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쓰라린 후회는 가진 뒤 잃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생사를 달리하게 되는 것이다.” 윤구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만약 소채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도 제정신이 아닐 거라고 느꼈다.“그럼 복수하면 되지 않나요?” 백호가 어리둥절하게 물었다.이때 청해가 눈치를 채고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상대가 너무 강해서 못 이기는 거지. 황제에 오르기 전까진 제대로 맞붙을 힘도 안 돼. 오르고 나서도 이길 수 있을지 장담 못 하고.”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 그 말이 맞았다.“그럼 우리가 국주님 대신 복수해 드리면 되잖아요? 국주님은 제 왕이기도 하지만 제 윗사람이기도 하잖아요.”백호가 고개를 갸웃했다.“하하! 만약 세상 사람들이 다 너처럼 솔직하다면 이런
인간이 나쁜 짓을 거듭해 양심을 잃으면 부끄러움도 사라진다.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윤구주를 따라 명예심이 생기면서 죄책감도 느끼게 된 청해에게 이 원한의 전법은 고통스럽기만 했다. 물론 곤륜역 한 신전의 부전주로서 정신이 붕괴할 정도는 아니었다.네 사람은 이 원한의 전법도 가볍게 넘어섰다.이때 전법에 관심을 가졌던 임정설이 무언가를 눈치챘다.“구주야, 서요산의 전법은 우연히 들어온 자를 쫓아내는 동시에 수련자의 의지를 시험하는 것이었어. 서요산은 의지력이 확고한 자들만 끌어들인다는 것을 미리 들어 알고 있다. 이게 바로 서요산이 제자를 선발하는 방식인가 보구나.”“그렇습니다. 매년 화진 무도계 사람들이 서요산에 찾아오지만 성공한 자는 극히 드뭅니다. 실패자들 중 십중팔구는 산기슭에서 죽음을 맞이하죠. 어떤 문턱은 넘지 않는 것이 복이 될 때가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죠. 현실을 알고도 바꾸지 못하는 것이 가장 괴로운 법이니까요. 이 관문을 넘는다고 해도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입니다.”윤구주의 말이 끝나자 세 번째 전법이 나타났다.첫 번째와 두 번째 전법은 이곳에 들어온 이들을 돌려보내려고 만든 것이지만 세 번째 전법은 달랐다. 이 전법은 살기로 가득 찬 죽음의 전법이었다.평범한 사람들은 여기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이곳까지 온 자들도 앞길의 위험을 보고 함부로 들어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눈 앞에 펼쳐진 죽음의 길을 보고도 들어가는 자는 스스로 죽음을 원하는 자라서 그런 자들에게 죽음을 내리는 것은 오히려 덕을 쌓는 일이었다.하지만 무도로 도를 깨우치려는 수련자라면 이 관문을 넘기 위해 반드시 목숨을 걸어야 한다. 버텨내야만 수도의 길에 들 수 있고 실패하면 그 후과를 받아들여야 한다.전법 안은 살기로 가득했다. 생기와 영기가 세상을 이롭게 하지 못할지라도 살기와 죽음의 기운은 목숨을 앗아갈 것이 분명했다.진법 내부에는 수많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무도계에 이름을 날렸던 강자들의 유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