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장이야!”여자는 천주검이 지닌 영혼을 갉아먹는 힘을 느꼈다.그 정도 힘이라면 그녀는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었다.“내가 이런 곳에서 죽을 줄은 몰랐는데.”요염한 여자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절망에 빠진 얼굴로 눈을 감았다.거대한 천주검이 하늘에서 내려왔다.그것은 엄청난 기세로 요염한 여자를 베려고 했다.요염한 여자가 천주검에 목숨을 잃을 뻔한 순간, 쿵쿵 소리와 함께 땅이 뒤흔들리면서 날뛰는 검기가 요염한 여자의 몸을 지나쳐 바닥에 꽂혔다.차가운 바닥에는 윤구주의 천주검에 의해 수십 미터에 달하는 깊은 골짜기가 생겼다.지면이 잘린 것만 같았다.“어... 절 죽이지 않는 건가요?”틀림없이 죽을 거로 생각했던 요염한 여자는 땅의 흔들림과 사방으로 넘쳐흐르는 검기를 느낀 순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들어 윤구주를 바라보았다.눈보라 속 윤구주는 여전히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말해. 누가 날 잡으라고 지시한 거야? 그리고 넌 칠수방 삼절칠금채 중 몇 번째야?”요염한 여자는 윤구주가 자신을 죽이지 않자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미안하지만 제가 얘기해 줄 수 있는 건 많지 않아요. 전 삼절칠금채 중 셋째인 차비연이라고 해요. 하지만 누가 당신을 잡아 오라고 지시한 건지는 알려줄 수 없어요.”“얘기하지 않겠다는 거야?”윤구주는 싸늘하게 말하더니 허공에 대고 손을 움켜쥐었다. 그 순간 거대한 손이 나타나서 차비연이라고 스스로를 밝힌 요염한 여자를 허공에서 움켜쥐었다.“날 죽인다고 해도 그건 알려줄 수 없어요.”허공에 들린 차비연이 말했다.“그래. 그러면 죽여주지.”말을 마친 뒤 윤구주는 정말로 차비연을 죽이려고 했다.거대한 손은 조금씩 차비연의 몸을 움켜쥐기 시작했고 차비연은 온몸의 뼈가 바스러지는 듯한 엄청난 통증을 느꼈다.윤구주가 정말로 자신을 죽일 것 같자 허공에 들린 차비연은 진심으로 두려워졌다.“잘못했어요. 죽이지 말아줘요... 제발 살려줘요...”차비연이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윤구주는 그제야 힘을 뺐다.“
종문은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아주 드물었는데 그것은 화진에서 관행 같은 것이었다.칠수방이 나섰다면 아마 다른 종문에서도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다.윤구주의 질문에 차비연이 대답했다.“칠수방에서는 총 6명이 나섰어요. 저희 사숙조께서 사람들을 이끌고 있죠. 다른 종문이라면... 아는 게 많지 않아요. 현문의 사람이 서울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밖에 몰라요.”현문?그 두 글자에 윤구주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화진의 6대종문은 서요산 검종, 현문, 만불종, 칠수방, 천도궁, 자운각으로 이루어졌다.6대종문 중 하나인 현문은 당시 윤구주가 곤륜에서 왕이 되었을 때 사력을 다해 막으려고 했다.그러나 당시 국주령이 있었고 윤구주가 홀로 10국을 물리친 위대한 업적을 세워서 결국 윤구주는 곤륜에서 왕이 되었다.그러고 보면 현문과 윤구주는 그야말로 숙적이었다.그래서 현문의 사람이 서울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차비연의 말에 윤구주의 안색이 어두워진 것이다.“얘기해. 현문을 제외하고 모습을 드러낸 다른 종문은 없어?”윤구주가 다시 물었다.차비연은 고개를 저었다.“그건 몰라요. 사숙조의 말을 들어 보니 당신이 예전에 노룡산에서 많은 세가의 강자들을 죽였고 종문에서는 그 일로 당신에게 복수하려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해요.”“복수?”윤구주는 큰 목소리로 웃었다.“종문이 드디어 나섰네. 좋아, 아주 좋아!”윤구주가 광기 어린 표정으로 웃자 차비연은 아름다운 눈을 깜빡이면서 윤구주에게 말했다.“전 해야 할 말은 다 했어요. 흑흑, 이래도 절 죽여야겠다면 그냥 죽여요!”말을 마친 뒤 그녀는 정말로 눈을 감고 가슴을 내밀었다. 마치 죽이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는 듯 말이다.윤구주는 그녀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오른손을 움직여서 거대한 손을 사라지게 했다.쿵!차비연은 허공에서 뚝 떨어져서 엉덩방아를 찧게 되었다.윤구주는 더는 그녀를 신경 쓰지 않았어.“어라? 절 죽이지 않는 건가요?”차비연은 자신을 속박하던 힘이 사라지자 엉덩이를 주무르면서
차비연이 떠난 뒤 박천후와 염수천이 빠르게 달려왔다.“저하, 화진 무도의 최강이라 불리는 종문에서 모습을 드러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설마 종문에서 저하를 상대하려고 하는 걸까요?”염수천은 윤구주에게 다가가서 물었다.“멍청하긴! 당연한 거 아니겠어? 당시 곤륜에서 왕이 되었을 때 많은 종문들이 우리 저하가 왕이 되는 걸 반대했어. 그런데 지금 종문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고 하니 당연히 우리 저하를 노린 거 아니겠어? 저하, 명령을 내려주신다면 지금 당장 북방군을 이끌고 가서 그놈들을 토벌하겠습니다!”박천후가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박천후처럼 용맹한 사람은 무서운 게 없었다.그에게 있어 윤구주를 공격하려는 사람은 모두 죽어 마땅한 사람이었다.그러니 대군을 이끌고 종문을 휩쓰는 일도 기꺼이 할 수 있었다.그러나 윤구주는 뜻밖의 얘기를 했다.“무도의 일은 당연히 무도로 해결해야지. 박천후, 이 일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하지만...”박천후는 뭔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다.그러나 윤구주가 그를 제지했다.“6년 전 난 이미 종문을 혼쭐내주고 싶었어. 그런데 그들이 지금 다시 자발적으로 모습을 드러냈으니 오히려 좋아.”윤구주는 서늘한 눈빛으로 말했다.6년 전 곤륜에서 왕이 되었을 때, 당시 화진이 금방 평화를 되찾고 10개국과의 전쟁 때문에 휴식해야 하지 않았다면 윤구주는 그 당시 종문과 싸웠을 것이다.그러니 오히려 이것이 그에게는 좋은 기회였다.“저하, 조금 전 칠수방의 그 여자가 종문의 사람이 서울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했는데, 그러면 지금 바로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염수천이 물었다.윤구주는 고개를 들어 몰아치는 눈보라를 바라보았다.“아니. 서울에는 공수이와 민규현 등이 있으니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거야.”“네? 공수이요? 저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인데요?”염수천이 궁금한 듯 물었다.염수천은 당시 구주군 소속이었던 사람들을 전부 기억했다.그러나 조금 전 윤구주가 말한 공수이라는 이름
대도시든 작은 도시든 거리에는 축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그 광경은 설날보다도 더 떠들썩했다.그 순간, 흑여산맥에서 100여 킬로미터 떨어진 한 작은 마을에서도 축하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정말 좋아. 그 위풍당당하던 설국이 우리 화진의 속국이 되었다니. 하하, 얼마 전에 내 아내가 설국으로 여행 가고 싶다고 나한테 여권을 만들라고 했거든? 이젠 여권을 발급받을 필요도 없이 바로 가면 되겠어!”“그러게 말이야.”“내 동료들도 스키 타러 설국에 갈 거래.”“설국 국주가 갑자기 돌아가셨고 설국이 갑자기 우리 속국이 되다니,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변경 지역의 취사병인 우리 친척 형이 그러던데 설국이 우리 속국이 된 건 한 사람 때문이래.”“한 사람?”“그래. 우리 오빠의 말에 의하면 그 사람은 우리 화진의 왕이었대. 이름이 무엇인지는 얘기하지 않았지만 그 사람이 혼자 설국으로 가서 많은 설국 병사들을 죽이고 심지어 설국의 국주까지 단칼에 죽였대.”“그... 그게 가능해? 혼자서 한 나라를 굴복시킨다고? 오버가 너무 심한 거 아냐?”“오버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어. 어쨌든 설국은 이제 우리 속국이 되었잖아. 그렇지?”“응, 얘기를 들어 보니 그렇긴 해.”“그만해. 우리 같은 백성들은 나라의 큰일에는 신경 쓰지 말자고. 우리는 우리나라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것만 알면 돼.”“하하, 맞는 말이야. 자, 건배하자고!”음식점 안에서 사람들은 대화를 나누면서 술을 마셨다.그들이 기쁘게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그 옆에 사람 두 명이 앉아 있었다.그 두 사람의 앞에는 풍성한 음식이 놓여 있었다.온갖 산해진미가 다 있었다.가장 중요한 건 그 두 사람 중 한 명은 아주 뚱뚱하고, 다른 한 명은 대머리 스님이었다.자세히 보니 그 두 사람은 흑여산맥 접경지대로 향하던 정태웅과 공수이였다.“수이 동생, 들었지? 저 사람들 우리 저하 얘기를 하고 있어!”정태웅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 옆 테이블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게
공수이는 정태웅이 설국으로 가서 예쁜 여동생을 찾는 걸 원하지 않는 것 같자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렇다면 태웅 형님 말씀은 구주 형님부터 찾아가자는 건가요?”“그래.”“휴, 그건 너무 재미가 없잖아요. 저도 어쩌다가 이곳까지 나온 건데요.”공수이는 한숨을 쉬면서 마음대로 하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하하 수이 동생, 실망하지 마. 내가 아까 비행기 안에서 공략을 찾아봤다고. 이곳은 그냥 작은 마을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곳 여자들이 그렇게 예쁘대. 게다가 여기 클럽도 많대. 그 클럽에 가면 여자들이 아주 개방적이라고 해. 심지어 옷을 안 입는 여자들도 있다고 하던데!”정태웅이 음흉한 표정으로 말했다.‘뭐?’“그런 곳이 있다고요? 태웅 형님, 그게 정말인가요?”공수이는 그 말을 듣자 눈을 빛내면서 소리를 질렀다.“내가 거짓말이라도 할 것 같아?”정태웅은 입을 비죽이며 말했다.“역시 형님이 최고예요! 형님은 제 친형님이에요. 친형님이 절 속일 리가 없죠!”공수이가 뻔뻔하게 말했다.“그러면 됐어. 오늘 밤에는 그냥 날 따라와. 오늘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해줄게!”정태웅이 말했다.공수이는 무척 기뻤다.그는 정태웅의 팔을 잡아당기면서 말했다.“형님, 형님. 자, 제가 한 잔 따를게요!”그렇게 두 사람은 그곳에서 술을 거하게 마셨다....같은 시각, 서울 국방부.웅장한 기세의 저택이 눈에 들어왔다.저택 앞에는 거대한 기둥들이 우뚝 솟아있었고 현판에는 이황왕이라고 적혀 있었다.옛 왕은 이미 떠났고 새로운 왕이 나타났다.현재 화진의 새로운 왕은 이황왕 문아름이었다.문아름은 국방부를 관리하기 시작한 후로 윤구주의 구주군을 해산시켰다.그뿐만 아니라 윤구주가 아끼던 장수들을 전부 고향으로 돌려보내거나 아주 먼 접경지대로 보냈다.심지어 적지 않은 장수들이 감옥에서 죽임을 당했다.이 순간, 널찍한 이황왕 저택 안은 경비가 삼엄했고 도처에 경비대가 있었다.안쪽에 있는 음산한 암실 안에는 장포를 입은 아름다운 미녀 문아름이
특히 그중에서도 선두에 선 노인은 등에 청동검을 지고 있었는데 장포를 입은 그에게서는 선인 같은 느낌이 물씬 났다.그의 미간에서 이따금 보이는 서늘한 기운은 사람을 섬뜩하게 했다.노인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아볼 수 없었다.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주름진 그의 얼굴만 보였다.노인의 곁에는 훤칠한 젊은 남성이 앉아 있었다.남자도 그들처럼 장포를 입고 있었고 분위기가 남달랐다.가장 중요한 건 그의 실력이 다른 절정 강자들보다 약하지 않다는 점이었다.그는 눈빛이 반짝였고 자태도 도도했다.기괴한 모습을 한 그들이 앉아 있을 때 쿠구궁 소리와 함께 지하 궁전의 석문이 열리며 검은색 장포를 입은 사람이 그들의 시야에 들어왔다.그는 문창정이었다.그리고 문창정의 뒤에는 검은 옷을 입은 두 노인이 있었다.문창정은 모습을 드러낸 순간 우렁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구진철 씨, 우리 문씨 일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청동검을 등에 지고 있던 노인은 그 말을 듣고 미소 띤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오랜만입니다, 문창정 씨. 십 년 만에 보는 것 같은데 문창정 씨는 여전히 풍채가 좋으시군요!”“아닙니다. 문씨 일가가 아무리 좋아도 현문에는 비할 바가 못 되죠.”청동검을 등에 지고 있던 노인은 화진의 6대종문 중 하나인 현문 출신이었다.“구진철 씨, 저희 십여 년 만에 만나는 거죠?”문창정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렇죠. 우리 현문은 오래전 모습을 감추었고 제자들 또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경우가 매우 드물죠.”구진철이 대답했다.“그러네요. 현문은 우리 화진의 6대종문 중 하나로 오랜 역사가 있고 제자들도 아주 많죠. 반대로 우리 같은 속인들은 그저 속세에서 이렇게 평범하게 살고 있죠.”문창정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말을 마친 뒤 그는 고개를 들어 구진철을 바라보았다.“구진철 씨, 현문에서는 제가 보낸 초대장을 받으셨겠죠?”“네, 받았습니다.”구진철이 대답했다.“받았다면 알고 계시겠지만 우리 화진의 구주왕이 살아있다는 것도 알
“구진철 씨 말씀이 맞습니다. 비록 구주왕은 어린 나이에 큰 업적을 세웠지만 그래도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걸 잊으면 안 되죠. 저희 화진의 무도는 천 년의 역사가 있고 3대 무도 서열은 우리 화진 무도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죠. 구주왕 홀로 3대 서열을 상대한다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죠. 구진철 씨, 부디 현문의 대표로서 반드시 우리 3대 서열을 위해 정의를 바로 세워주십시오.”문창정의 말에 구진철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문창정 씨,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쨌든 구주왕은 한때 우리 화진의 왕이었지 않습니까? 정말로 그를 상대하려면 다른 종문의 동의도 필요하지 않겠습니까?”구진철은 똑똑했다. 그는 문창정의 말 한마디에 넘어가서 윤구주를 상대하겠노라고 약속할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다.6년 전, 윤구주가 곤륜에서 왕이 되었을 때 현문은 윤구주가 왕이 되려는 걸 막으려고 한 적이 있었다.그러나 결국 윤구주가 무력으로 천하를 제압하였다.그런데 현문 홀로 윤구주를 상대하라니, 구진철은 동의할 수가 없었다.“구진철 씨, 걱정하지 마세요. 솔직히 얘기해서 전 이미 여러 종문에 연락을 넣었습니다. 예상대로라면 아마 이제 곧 다들 서울에 도착할 겁니다.”문창정이 말했다.문창정이 말을 마치자마자 차가운 코웃음 소리가 들려왔다.“구진철 씨, 겨우 구주왕일 뿐인데 저희 현문으로는 부족한 겁니까?”말을 한 사람은 인물이 훤칠한 남성이었다.그러나 그가 내뿜는 음산한 살기는 아주 섬뜩했다.그는 현문의 젊은 세대 중 가장 뛰어난 인재 손형재였다.문창정은 손형재가 구진철 같은 경력 많은 강자도 안중에 없다는 듯이 말하자 시선을 돌려 그를 보며 말했다.“이쪽은 누구죠?”구진철이 대답했다.“우리 현문의 도자 손형재입니다.”도자?그 말에 문창정의 두 눈이 반짝였다.구진철 같은 경력 많은 강자도 그를 정중하게 대한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현문의 도자였던 것이다.천 년 가까이 되는 역사를 가진 현문은 백 년마다 한 명의 귀재를
“세계 최강이라고요? 속세에서 살아가는 자가 어찌 감히 그런 칭호를 얻는단 말입니까?”구진철이 뭐라고 하려는데 갑자기 듣기 좋은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옳은 말씀입니다. 그가 어떻게 감히 세계 최강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그가 세계 최강이라면 천 년의 역사를 이어온 종문이 뭐가 됩니까?”그 목소리와 함께 화려한 장포 차림의 문아름이 지하 궁전에 모습을 드러냈다. 너무도 아름다워 쉽게 눈을 뗄 수가 없었다.문아름이 오다니!절세 미녀 문아름이 모습을 드러내자 현문의 도자 손형재의 눈빛이 살짝 빛났다.“누구시죠?”손형재가 물었다.“전 문아름이라고 합니다.”문아름은 싱긋 웃었다. 경국지색의 미모였다.눈앞의 여자가 문아름이라는 걸 안 순간 손형재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문아름 씨였군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별말씀을요.”문아름은 말을 마친 뒤 문창정에게로 시선을 돌렸다.“할아버지,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 왜 저한테 알리지 않은 거예요?”문창정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네가 바쁠까 봐 얘기하지 못한 거다.”“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현문의 도자라니, 이렇게 대단하신 분이 오셨는데 아무리 바빠도 제가 나서서 맞이해야죠!”문아름은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다시금 손형재를 바라보았다.현문 도자인 손형재는 그녀의 모습에 마음이 설렜다.문아름이 모습을 드러낸 지 얼마 되지 않아 큰 웃음소리가 갑자기 지하 궁전에 울려 퍼졌다.우레와도 같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지하 궁전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문창정 씨, 구진철 씨, 이렇게 일찍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우렁찬 목소리가 들리더니 곧 지하 궁전에서 갑자기 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곧이어 금빛 속에서 쿵 소리와 함께 금빛을 내뿜는 금색 선장이 지하 궁전에 갑자기 떨어졌다.그 선장은 무게가 몇백 킬로그램에 달했다.선장이 떨어지는 순간 차가운 지면에 금이 갔다.그리고 곧 가사를 입은 대머리 스님 십여 명이 지하 궁전에 모습을 드러냈다.선두에 선 사람은 체구가 아주 건장한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