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현수, 저기 봐!”말하는 사이 그는 다시 날아올랐다.눈 깜짝할 사이, 공처럼 뚱뚱한 몸을 가진 그는 이미 소씨 저택 거실의 지붕 위에 서 있었다.천현수가 곧 그를 뒤따랐다.소씨 저택 거실 안.이제 막 해외에서 돌아온 소지영은 온몸에 명품을 걸치고 거만한 태도로 거실 중앙의 의자에 앉아있었다.짙은 화장을 한 얼굴은 이기적이고 막무가내인 듯한 느낌을 줬다. 마치 해외에서 돌아와서 몸에 금이라도 한층 두른 것 같았다.소천홍 부자는 그녀의 양쪽에 나뉘어져 앉아있었다.안으로 들어온 소청하 가족은 아래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지붕 위에서 거실 안을 가득 채운 사람들을 바라보던 정태웅이 중얼거렸다.“저하의 약혼녀는 어디 있지?”“바보야? 저기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보이지 않아?”천현수는 그렇게 말하면서 소채은을 가리켰다.정태웅은 아름다운 소채은을 본 순간 눈을 반짝였다.“세상에, 저분이 바로 저하의 약혼녀야? 너무 아름다운데?”천현수는 웃으며 말했다.“당연한 소리! 우리 저하는 세상에 둘도 없는 대단한 분이야. 심지어 잘생기셨지. 그러니 약혼녀도 당연히 훌륭하지 않겠어?”“그렇지, 그렇지. 아름다워! 정말 너무 아름다워! 난 마음이 고운 사람들은 얼굴은 예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 정말 놀라워! 우리 저하의 약혼녀는 정말 엄청난 미인이야. 문아름 그 지독한 여자보다 만 배는 더 아름다워!”정태웅이 흥분해서 말했다.그의 말대로 소채은은 확실히 아주 아름다웠다.비록 평범하디 평범한 원피스를 입고 있었지만 아름다운 얼굴은 감출 수가 없었다.백옥 같은 피부에 오뚝한 코, 여신처럼 아름다웠다.소채은을 바라보던 정태웅은 넋을 반쯤 놓고 있었다.그는 한참을 바라보다가 말했다.“우리 저하 약혼녀 집에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 거지?”“손님 아닐까?”천현수가 말했다.“아아!”두 사람은 계속 지붕 위에서 그들의 마음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채은을 훔쳐보았다.거실 안.소지영은 명품 가방 안에서 길고 가느다란 숙녀용 담배를
해외에서 돌아온 소지영은 그 말을 듣고 말했다.“둘째야, 확실히 네가 좀 선을 넘었다. 어찌 됐든 천홍이는 네 형이야. 너랑 같은 소씨 일가 피가 몸에 흐르고 있어. 그런데 어떻게 네 형을 집안에서 내쫓을 수 있어?”소청하는 차갑게 웃었다.“누나, 형의 편을 들어주려고 할 필요 없어요. 형은 예전에 우리 가족을 구렁텅이로 밀어 넣으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이제 와서 다시 따지고 들려 한다니, 절대 용납할 수 없어요!”그 말에 소지영은 차갑게 코웃음쳤다.“설마 내가 한 말도 소용없다 이거야?”“맞아요!”소청하가 강하게 말했다.“이 자식!”소지영은 탁자를 내리쳤다.그녀가 보기에 소청하는 유약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왜 이렇게 성질을 내는 걸까?심지어 그녀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둘째야, 네 딸이 지금 소씨 일가 가업을 장악하고 있다고 해서 네가 대단하다고 착각하지 마! 흥, 겨우 소씨 일가가 1년에 돈을 얼마나 번다고 그래? 너희 소씨 일가의 모든 재산을 다 더해도 해외에서의 내 연봉보다 낮아.”소지영은 담배를 피우면서 거드름을 피웠다.옆에 있던 소천홍이 이때 말을 보탰다.“그러니까. 감히 누나랑 비교하려 들다니, 그건 닭과 봉황을 비교하는 것과 다름없지. 그리고 네 딸이 이번에 결혼하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서 그래? 그 남자 정말 별 볼 일 없던데. 직장도 없고 돈도 없고 심지어 예전에 무슨 일을 했었는지도 모를, 기억을 잃은 쓸모없는 사람이랑 딸을 결혼시키려 하다니. 하하, 우리 소씨 일가 선조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마 너 때문에 화가 단단히 나실 거야.”소천홍의 말에 소청하는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입 다물어요! 감히 한 번 더 내 사위를 모욕한다면 그 입 찢어버릴 거니까요!”소천홍이 같잖다는 듯이 말했다.“난 사실만 말했을 뿐이야.”소천홍과 소청하가 거실에서 크게 싸우고 있을 때, 지붕 위에 있던 정태웅이 미간을 잔뜩 구겼다.“천현수! 저 빌어먹을 자식이 우리 저하를 욕한 거지?”
“창피하다면서 왜 돌아왔는데요? 외국물 좀 먹었다고 정말 외국인이라도 된 것 같아요? 참! 배꼽 빠지는 소리를 하고 있네요.”소청하는 버럭 화를 내면서 말했다. 그는 지금 안중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누가 감히 윤구주에게 무례하게 굴면 그는 끝까지 달려들 것이다.그러자 소지영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소청하! 뭐라고? 감히 어디서 그런 말을.”그런데 소청하는 더 당당하게 말했다.“한 번 더 말해줄까요? 명품 입고 담배를 한 대 물었다고 정말 자기가 외국인 된 줄 아나 봐요. 퉤! 제기랄! 우리 소씨 가문은 당신들 같은 쓰레기는 환영하지 않아요!”소청하는 마구 욕을 퍼부으면서 소지영을 내쫓았다.“너, 감히 나를 내쫓아?”소지영은 팔짝 뛰면서 말했다.“내쫓지 못할 건 없잖아요! 지금 소씨 사람들은 우리 딸 말을 들어야 해요!”소청하는 다시 큰 소리로 말했다.“여봐라, 이 쓰레기들을 집에서 쫓아내!”그의 명령에 하인 몇 명이 빠르게 뛰어 들어왔다. 그러자 소지영과 소천홍 부자는 겁을 먹었다.“좋아! 소청하, 딱 기다려! 나중에 가만두지 않을 거야. 천홍아, 가자!”화가 나서 얼굴이 일그러진 소지영은 결국 소천홍을 데리고 소청하의 집에서 쫓겨났다. 멀어져 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더니 소채은은 소청하 곁으로 빠르게 달려와 그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아빠, 잘했어요!”그러자 소청하도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그럼! 쓰레기들 주제에 감히 우리 사위를 뭐라 해? 그들의 입을 찢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생각해야지.”“역시, 우리 아빠!”소지영과 소천홍 부자가 떠난 후 옥상에 서 있던 정태웅과 천현수는 화가 나서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정태웅은 엄하게 말했다.“X발! 저 쓰레기들이 감히 우리 저하를 욕해? 정말 참을 수가 없네! 현수야, 너는?”그러자 얌전하기만 하던 천현수의 눈에서는 살의가 맴돌았다.“참을 수 없으면 우리가 손 좀 써야지. 안 그래?”“하하! 같은 생각이군! 가자! 이 자질구레한 새끼들에게 본때를 보여주자!
소천홍이 차를 몰고 달리고 있을 때, 검은 그림자 두 개가 마치 귀신처럼 갑자기 차 앞에 나타났다.“아버지, 조심하세요!”조수석에 앉아 있던 소진은 그림자가 나타나자 소리를 질렀다. 소천홍도 그림자를 본 뒤 오른발로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핸들을 꺾었지만 차의 속도가 너무 빨라 옆 가드레일에 쾅 하고 부딪혔다. 그러자 찌그러진 차 앞부분은 흰 연기를 내뿜었다. 하지만 차 안에 있던 소천홍 부자와 소지영은 다치지 않았다.소천홍의 차량이 가드레일을 들이박은 후,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현수야, 바로 이 세 쓰레기야. 아까 우리 저하를 욕하던 사람들.”방금 말을 한 사람 화진 암부 3대 지휘사중 한 명인 백곰 정태웅이었다.천현수는 고개를 끄덕이었다.“그럼 내가 먼저 가서 사람 됨됨이를 가르쳐줄게. 너는 여기서 잠시 기다려.”정태웅은 말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태웅아, 대충 해. 그래도 채은 형수님 친척인데.”천현수는 정태웅이 일을 크게 만들까 봐 귀띔해 주었다. 그러자 정태웅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깐 너는 지켜보기만 해!”그리고 그는 공처럼 불룩한 배를 비틀며 그쪽으로 걸어갔다.가드레일에 부딪힌 소천홍 부자는 소지영을 차에서 부축하여 내렸다.소진은 길을 막은 정태웅과 천현수를 보자 욕설을 퍼부었다.“X발! 어디서 튀어나온 뚱보야? 눈 감고 다녀? 차에 치여 죽고 싶어?”욕을 먹는 정태웅은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눈을 가늘게 뜨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어이. 전에 당신들이 우리 저하를 욕했어?”응?“이 뚱보가 뭐라는 거야?”소진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소천홍과 소지영도 어리둥절해했다.“대답 안 해? 그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물을게. 너희가 우리 저하를 욕했어?”정태웅의 말을 듣자 소진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야, 뚱보! X발,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무슨 개뿔 저하야...”소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번쩍이는 빛과 함께 정태웅은 그의 목을 빠르게 찔렀다. 선현은 마치 분수처럼 소진의 목
말을 마친 정태웅은 손에 들고 있던 삼각칼을 집어 들고 소천홍을 가리켰다.“빨리 말해. 이 쓰레기야. 왜 우리 저하를 욕했어?”소천홍은 놀라서 오줌을 쌀 뻔했다. 그리고 눈이 휘둥그레졌다.“저하? 무슨... 저하?”“방금 소씨 저택에서 우리 윤 저하를 욕하지 않았어?”정태웅이 다시 한번 말했다. 윤씨 라는 성을 듣자 소천홍은 정신이 번쩍 들면서 윤구주를 떠올렸다.“네가 말한 저하는... 윤씨야? 윤구주???”소천홍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어머, 이 쓰레기가 우리 저하의 이름까지 알고 있으니 이젠 죽을 때가 됐네!”말이 끝나자 정태웅은 삼각 칼로 소천홍의 심장을 빠르게 찔렀다. 그가 칼을 빼 드는 것을 지켜보던 천현수는 그를 말리려 했지만 아쉽게도 이미 늦었다. 정태웅의 칼은 너무 빨랐다. 번개보다 더 빨랐다!푸!삼각칼은 소천홍의 심장을 제대로 꿰뚫었다. 지지리 복도 없는 소천홍은 자기가 눈 깜짝할 사이에 죽을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눈알은 튀어나와 있었고 몇 번 경련을 일으킨 후 피를 콸콸 흘리며 쓰러져 죽었다.“이 뚱보가!”천현수는 정태웅이 눈 깜짝할 사이에 또 한 사람을 죽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는 정태웅의 손에 든 칼을 낚아채며 말했다.“미쳤어? 왜 또 사람을 죽여?”칼을 뺏긴 정태웅은 히쭉거리며 말했다.“쓰레기 두 명을 죽인 것 가지고! 뭐 그렇게 화를 내? 알았어. 마지막 남은 저 늙은 여인은 너한테 맡길게. 네가 직접 죽여. 그러면 됐지?”정태웅은 말하면서 뒤로 물러섰다. 소지영은 소천홍 부자가 모두 피바다에 쓰러져있는 것을 본 순간 이미 겁에 질려 서 있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살려주세요... 제발... 부탁드립니다!”정태웅은 소지영은 차갑게 노려보더니 천현수를 향해 말했다.“현수야, 이 늙은 여자까지 처리하자! 이 꼴을 봐봐. 쯧쯧.”그러자 천현수는 그를 째려보며 말했다.“그저 사람 죽일 줄밖에 몰라. 이걸 죽이고 저걸 죽이고. 누가 보면 살인마인 줄 알겠어.”정태웅
용인 빌리지.굳게 닫힌 방문 밖에는 군복 차림의 박창용과 천하회 원성일 그리고 강성 제일 갑부 주세호가 모두 긴장한 기색으로 서있었다.“박 사령관님, 태웅 지휘사님이 정말 또 사고를 쳤어요?”원성일이 물었다. 그러자 박창용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게 말이야. 이 뚱보가 말을 안 들어. 말썽 좀 그만 피우라고 했는데 한사코 듣지 않으니! 강성에 도착하자마자 채은 형수님 직계 친척 두 명을 죽였지 뭐야. 돌겠네, 정말!”순간 원성일은 할 말을 잃었다. 옆에 있던 주세호가 입을 열었다.“그럼 이제 어떡합니까? 우리가 태웅 지휘사님을 대신해서 사정해 볼까요?”박창용은 굳게 닫힌 방문을 바라보며 말했다.“조금만 기다려보자. 너희도 저하의 성격을 알고 있으니. 만약 저하가 화를 낸다면 우리 누구도 막을 수 없어!”“아이고, 그럼 일단 기다려봅시다.”이때 정태웅은 마치 잘못을 저지를 어린애처럼 고개를 숙이고 얌전하게 서있었다. 그의 옆에는 늑대 천현수가 서있었고 두 사람 앞에는 어두운 표정의 윤구주가 있었다.정태웅이 소천홍 부자를 죽인 후 천현수는 정말 이 소식을 윤구주에게 전했다. 그들이 정태웅 손에 죽었다는 말을 듣고 윤구주는 시종일관 어두운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참 후, 정태웅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저하! 화내지 마세요. 사람은 이미 죽었습니다. 저 개자식들이 감히 저하를 욕했어요. 이렇게 무례하게 굴었기에 죽여 마땅합니다. 저는 조금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만약 저하가 저에게 벌을 내리시겠다면 저는 아무 불평도 없이 달게 받겠습니다!”그는 말을 마치고 윤구주 앞에 털썩 무릎을 꿇고 벌을 내리기를 기다렸다. 옆에 있던 천현수는 이 모습을 보고 나서서 말했다.“저하! 사실 모두 태웅이의 탓만은 아닙니다. 태웅이가 사람을 죽인 건 맞지만 그 부자는 정말 괘씸하기 짝이 없었어요. 저하를 욕했을 뿐만 아니라 형수님 가족도 업신여겼습니다. 그러니 저하께서 부디 태웅이를 너그럽게 봐주세요.”천현수는 비록 정태웅이 사람을 죽인 행위에
서울.국방부, 이황전.음산한 이황전에 경국지색의 한 여인이 아름다운 한복을 입고 눈앞에 있는 달력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달력 위 수자 8위에는 빨간 X자 그려져 있었다. 이날은 바로 윤구주와 소채은의 결혼식 날이다.8일까지 3일밖에 남지 않은 것을 보고 그녀의 눈에는 악의와 살기가 가득했다.“3일! 윤구주, 고작 이렇게 평범한 여자와 결혼하려고...”그녀는 달갑지 않은 듯 혼자 중얼중얼 말했다.쿵!그러더니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순간 책상은 두 동강이 되었다.“독고명! 군형 삼마는 지금 어디까지 왔어요?”그녀는 화를 내며 물었다. 그러자 그녀 뒤에 서 있던 고목처럼 생기고 사악한 표정으로 칼을 손에 쥔 남자가 걸어 나왔다.“저하, 이미 강성에 들어섰습니다.”“좋아요!”군형 삼마가 강성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자 문아름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삼마에게 내 명을 전하세요. 그 여자를 죽이지는 말라고. 죽여달라고 빌게 만들면 됩니다. 윤구주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고통을 느끼게 해줄 테니.”문아름은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네!”독고명이 물러간 뒤 문아름은 그제야 지독한 눈동자를 치켜들고 먼 곳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윤구주, 반드시 그 여자와 결혼한 걸 후회하게 할 거야!”강성 교외에는 태평촌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고요한 마을에 아침부터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멀리서 바라보니 경찰차 7, 8대가 마을을 돌아다니며 순찰하는 것 같았다. 마치 큰일이 생긴 듯 말이다.주민이 만 명도 안 되는되는 작은 마을에 이렇게 많은 경찰이 있을 수는 없다. 그런데 오늘은 참 이상했다.알고 보니 태평촌은 요 며칠 동안 조금도 태형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7, 8명의 어린이가 이유 없이 실종됐기 때문이다. 이들 중 가장 큰 아이가 겨우 14살이고 막내는 4~5세이다. 그들의 갑작스러운 실종에 관해서 경찰 측은 어떤 단서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러자 마을 주민들은 불안하기 그지없었다.경찰 측도 사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인력
“정말 그 괴물이 아이들을 잡아갔다고요! 형사님, 제발 불쌍한 아이들을 어서 구해주세요.”마을 동쪽에 사는 장씨 노인이 취기가 오른 상태로 경찰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경찰들은 그를 취한 사람 취급하고 대꾸하지 않았다. 게다가 현대 사회에서 누가 뱀파이어 혹은 도깨비의 존재를 믿을 수 있겠는가? 이건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아닌가.경찰들이 자기 말을 믿지 않은 것을 보고 장씨는 욕을 퍼부으면서 직접 불쌍한 아이들을 찾아갈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술을 두 잔 더 마신 후 정말 도끼를 메고 아이들을 찾으러 갔다. 그는 길을 따라 마을 외곽을 향해 수색했다. 이곳은 철거 예정지여서 멀쩡한 집이 없었고 황페하기 그지없었다. 무성한 잡초 외에는 생기를 찾을 수 있는 거라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오직 성안사라는 사찰 한 채가 덩그러니 있었다. 성안사는 크지 않았지만 찾는 사람이 많았다. 명절 때가 되면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향을 피우고 부처님께 절을 했다. 하지만 실종 사건이 발생한 후로는 아무도 감히 오지 못했다.이때 휘청거리는 실루엣이 성안사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바로 술에 취한 장씨였다. 그는 걸으면서 중얼중얼 말했다.“왜 내 말을 믿지 않는 거야?”그는 곧 성안사 대문 앞에 도착했다. 이때의 성안사는 음산한 기운으로 맴돌았다. 만약 수법 달인이 이곳에 있었다면 사찰 주위에 살기가 가득 차 있는 것을 틀림없이 볼 수 있을 것이다.살기가 하도 짙어 하늘마저 핏빛으로 변한 것 같았다. 하지만 장씨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기에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그는 도착하자마자 문을 찍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서 중얼거렸다.“부처님, 간곡한 부탁이 있어서 왔습니다. 현명하신 부처님께서 제발 불쌍한 우리 아이들을 구해주세요!”그는 말하면서 대전으로 걸어들어갔다. 대전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비명을 지르고 눈이 휘둥그레져서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 성안사 안을 바라봤다.그 안에는 이미 말라버린 어린이 시신 7, 8명이 대전 중앙에 차례로 놓여 있었다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