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국제공항.여름 방학 기간이라 공항에 사람이 아주 많았다.대부분은 여행 가는 대학생들과 해외 여행하러 떠나는 사람들이었다.이때 부성국으로 향하는 국제 항공기를 타러 온 선남선녀가 공항에 나타났다.남자는 준수하면서 분위기가 남달랐고 여자는 몸매가 우월했다.하지만 여자는 무슨 근심이 있는 건지 줄곧 고개를 숙인 채로 묵묵히 잘생긴 남자의 뒤만 따랐다.두 사람은 바로 부성국으로 갈 준비를 하는 윤구주와 노아였다.노아는 윤구주가 그녀의 몸에서 악귀 분신을 꺼낸 뒤로 완전히 그에게 굴복했다.그리고 윤구주는 그녀의 몸에 생사인을 남겼다.그래서 미치지 않은 이상 도망칠 생각은 꿈도 꿀 수 없었다.더욱 중요한 건 노아가 이미 자신의 몸 상태를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번에 윤구주가 그녀의 체내에서 악귀 분신을 꺼내지 않았더라면, 1년 뒤 그녀의 몸은 악귀에게 점령당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노아는 머리털이 쭈뼛 섰다.“우리 비행기가 왔네. 이젠 비행기에 타야지.”윤구주는 항공편 정보를 보고 말했고 노아는 작게 대답한 뒤 윤구주를 따라갔다.윤구주는 비즈니스석을 구매했다. 비행기에 탄 뒤 윤구주는 그들의 자리를 찾았다.그런데 갑자기 등 뒤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안녕하세요, 좀 비켜주실래요?”고개를 돌려 보니 배낭을 메고 흰 두 다리가 훤히 드러나는 짧은 바지를 입은 여자가 뒤에 서 있었다.윤구주는 몸을 살짝 비켰다.여자는 윤구주의 잘생긴 얼굴을 보더니 속으로 그의 잘생김에 놀라워했다.여자가 완전히 홀린 듯한 눈빛으로 윤구주를 바라보고 있을 때 뒤에서 언짢은 듯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서윤아, 뭘 보고 있어? 얼른 자리에 앉아야지!”서윤이라고 불린 여자는 그제야 자신이 추태를 부렸다는 것을 인지하고 윤구주를 바라보며 얼굴을 붉혔다. 그녀는 서둘러 자기 자리에 앉았다.그녀의 뒤에 있던 남자는 서늘한 눈빛으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화가 난 듯 보였다.윤구주는 그들을 무시하고 자기 자리에 앉은 뒤 눈을 감고 휴식했다.과거
노아는 몸을 흠칫 떨면서 황급히 말했다.“제가 어떻게 감히 연락하겠어요...”“사실 그들에게 연락했어야 해.”윤구주가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노아는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윤구주를 바라보았다.“기타가와 신사에 연락하면 그 사람들이 찾아와서 날 죽일 거로 생각한 거지?”윤구주는 말을 이어갔고, 노아는 침묵했다.너무 당연한 소리였다.“지금이라도 연락해서 내가 가고 있다고 해.”윤구주가 말했다.노아는 그 말을 듣더니 깜짝 놀랐다.“당... 당신은 우리 기타가와 신사의 복수가 두렵지 않은 건가요?”‘두렵다고?’윤구주는 웃었다.“난 기타가와 신사가 아니라 부성국도 두렵지 않아.”노아는 눈앞의 카리스마 넘치는 남자의 태도에 큰 충격을 받았다.다른 사람이 그런 얘기를 했더라면 노아는 상대가 허풍을 떠는 거로 생각했을 것이다.그러나 윤구주가 그런 말을 하니 오히려 믿음이 갔다.“좋아요, 그렇게 할게요.”말을 마친 뒤 노아는 휴대전화를 꺼내 기타가와 신사 쪽에 문자를 보냈다.문자를 다 보낸 뒤 그녀는 묵묵히 앉아 있었는데, 이따금 고개를 들어 카리스마 넘치는 윤구주를 힐끔댔다. 노아는 왠지 모르게 이상한 감정이 느껴졌다.윤구주는 기타가와 신사의 사람들을 많이 죽였고 심지어 귀무인과 다카야까지 죽였다.노아는 윤구주를 미워해야 했고 그가 죽기를 바라야 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노아는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날 위해 내 체내의 악귀 분신을 꺼내줘서 그런 건가? 그게 고마워서?”노아는 고개를 저었다.그 이유 때문은 아닌 듯했다.그녀 체내의 악귀 분신에 관한 것은 반드시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에게 물어야 했다.노아는 아버지에게 왜 딸을 무시무시한 귀신에게 제물로 바치려고 한 건지 물을 생각이었다.시간을 1분 1초 흘렀고 윤구주는 그렇게 조용히 앉아 있었다.잠시 뒤, 듣기 좋은 목소리가 갑자기 윤구주의 귓가에서 울렸다.“안녕하세요, 전 반서윤이라고 해요. 그쪽도 부성국에 여행 가는 건가요?”말을 한 사람은 조금 전 포니테일을
“장윤형, 네가 뭔데 끼어들어? 넌 내 남자 친구도 아니고 가족도 아닌데 내가 누구한테 연락처를 알려주든 네가 무슨 상관이야?”반서윤은 곧바로 반박했다.남자는 머쓱한 얼굴로 말했다.“서윤아, 그래도 내가 너 짝사랑한 지 1년이 넘었잖아. 남자 친구는 아니더라도 널 걱정할 수는 있잖아?”“걱정은 무슨. 내가 왜 너한테 간섭받아야 하는데? 그리고 난 잘생긴 사람이랑 대화 좀 나눈 것뿐인데 말을 왜 그딴 식으로 해?”반서윤은 말을 마친 뒤 서둘러 윤구주에게 말했다.“신경 쓰지 마세요. 이 자식은 그냥 저랑 같은 반 친구일 뿐이에요.”윤구주는 당연히 신경 쓰지 않았다.그리고 그들이 친구 사이든, 연인 사이든 상관없었다.“어머, 이쪽은 여자 친구인가요? 정말 예쁘시네요. 연예인 같아요.”반서윤은 그제야 윤구주의 곁에 있는 노아를 발견했다.부성국 여자인 노아는 정말로 아름다웠다.외모도 몸매도 최상급이었다.게다가 그녀는 부성국 특유의 이국적인 느낌이 있었기에 그녀를 보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부러운 기분이 들었다.그런데 윤구주가 말했다.“여자 친구는 아닙니다.”“네? 그러면 무슨 사이죠?”반서윤은 의아했다.“제 노예예요.”윤구주는 덤덤히 말했다.“노예요?”노예라는 두 글자에 반서윤은 멈칫했다.그녀는 노예라는 말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반서윤의 곁에 앉아 있던 남자 장윤형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노예요? 참나, 허풍도 정도껏 해야지.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남을 노예라고 하는 거예요?”반서윤 또한 의아했다.아름다운 여자를 보고 자신의 노예라고 하다니, 지금은 현대 사회인데 말이다.그런데 이때 노아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그녀는 어눌한 화진 말로 말했다.”맞아요. 전 구주 씨의 노예예요.”‘뭐?’그 말을 들은 순간 조금 전까지 윤구주를 조롱하던 장윤형은 멋쩍어졌다.“혹시... 부성국 사람이에요? 화진 사람이 아닌 거예요?”반서윤은 노아의 말투에서 그녀가 부성국 사람임을 어렴풋이 눈치챘다. 그녀는 몸을 흠칫 떨면서 노아를
반서윤은 그 말을 듣고 그제야 깨달았다.예쁜 부성국 여자는 윤구주가 자신을 살려준 것에 고마워서 그러는 것이었다.그런데 옆에 있던 장윤형이 차갑게 웃으면서 말했다.“흥, 노예라니 정말 생각도 못 했네요. 진짜 그런 변태 같은 SM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니. 하하, 뭐 제복 같은 것도 좋아하겠네요? 노예라니, 정말 변태 같네.”장윤형이 말을 마치자마자 노아의 눈빛이 서늘하게 변했다.“계속 구주 씨 험담을 한다면 지금 당장 비행기에서 던져버릴 줄 알아.”노아의 싸늘한 눈비에서 살기가 느껴졌다.기타가와 신사의 아가씨인 노아는 비록 윤구주의 상대는 되지 않지만 일반인들을 상대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노아가 화를 내자 장윤형은 겁을 먹고 서둘러 입을 다물었다.반서윤이 말했다.“입조심 좀 해.”윤구주는 그들에게 대꾸해 주기 귀찮아서 줄곧 눈을 감고 있었다.비행은 계속됐다.얼마나 지냈을까, 반서윤이 갑자기 창밖을 가리키며 말했다.“어머, 저기 봐요. 저곳이 우리 화진의 국경이에요!”그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휴대전화를 꺼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그녀는 사진을 찍으면서 흥분해서 말했다.“그거 알아요? 당시 10개국 간의 전쟁에서 부성국은 화해를 위해 해역 3만 리를 양보했어요. 이곳이 바로 당시 부성국이 양보했었던 국제선이에요. 게다가 이 국제선에는 아주 거대한 조각상이 있어요. 그 조각상은 홀로 군사들을 거느리고 10개국을 무찔러 우리 화진의 위상을 떨친 첫 번째 왕 구주왕이래요! 우리 화진의 첫 번째 왕을 기념하기 위해 이곳에 그의 조각상을 세운 거죠!”반서윤이 말을 마치자마자 예상대로 아래 국경선에 아주 거대한 조각상이 나타났다.그 조각상은 우뚝 솟아서 아주 위엄이 넘쳤다.그것은 바로 화진의 첫 번째 왕 구주왕의 조각상이었다.그는 손에 검을 하나 들고 부성국을 가리키고 있었다.아래 있는 조각상을 본 관광객들은 휴대전화를 꺼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야나가와 노아마저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 아래에 있는 조각상을 바라보았다.
반서윤은 아름다운 눈을 깜빡이면서 윤구주를 바라보며 말했다.윤구주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그럼요.”‘바보! 내가 바로 구주왕인데 내가 왜 그를 숭배하겠어?’그러나 윤구주는 당연히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다.비행기는 국경선을 지나 정식으로 부성국의 상공에 진입했다.같은 시각, 부성국의 큰 국제공항. 십여 대의 차가 공항 입구에 멈춰 섰고, 공항 직원들은 그들에게 다가가서 물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차 문이 열리면서 카타나를 들고 신사 옷을 입은 사람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차에서 줄줄이 내렸다.그들은 기타가와 신사의 사람들이었다.“호쿠사이 사형, 저희 도착했습니다.”건장한 체격의 사무라이가 얼굴에 흉터가 있는 남자를 향해 말했다.그 남자의 이름은 호쿠사이였다.그는 귀무인과 다카야처럼 류이치의 제자였다.호쿠사이는 그 말을 듣더니 차갑게 물었다.“노아 씨가 보낸 문자라고 확신하는 거야?”“네, 확실합니다. 노아 씨는 지금 비행기를 타고 화진에서 날아오고 있습니다. 이제 곧 착륙할 겁니다.”건장한 남자가 말했다.“좋아! 내 명령을 전해. 공항을 정리하고 지금부터 관련 없는 자는 아무도 들여보내지 마. 제멋대로 들어오는 사람은 전부 죽인다!”호쿠사이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고 건장한 부하는 곧바로 대답했다.“네!”그는 곧 부하 수십 명을 데리고 공항을 정리하기 시작했다호쿠사이는 싸늘한 눈동자로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노아 씨, 죄송합니다.”시간은 1분 1초 흘렀고, 그렇게 30분 뒤 비행기가 부성국 공항에 착륙했다.“드디어 도착했네!”여행 온 반서윤은 기지개를 켜면서 말했다.“이제 우리 비행기에서 내릴 건데 이름이 뭐예요?”반서윤은 비행이 너무 짧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윤구주와 조금 더 대화를 나누고 싶었는데 말이다.윤구주가 말했다.“윤구주라고 해요.”“아아, 윤구주 씨였군요. 강성으로 돌아가면 밥 사드릴게요!”반서윤은 웃으며 말했다.잠시 뒤 비행기가 무사히 착륙했고 사람들은 비행기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윤구주는 반서윤에게 자신의 번호를 알려주었다.반서윤은 무척 기뻤다.그녀는 윤구주를 향해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잊지 말아요. 강성으로 돌아가면 제가 밥 사드릴게요!”반서윤과 장윤형이 앞으로 걸어갈 때, 갑자기 카타나를 든 검은색 옷의 사무라이들이 로비로 우르르 나왔다.그들은 표정이 아주 험악했고 손에는 날카로운 카타나를 들고 있었다.그들이 나타나자 반서윤과 그녀의 곁에 있던 장윤형은 안색이 돌변했다.주위에 있던 많은 여행객도 전부 당황했다.오직 윤구주만이 평온한 얼굴로 미소를 띤 채 그곳에 서 있을 뿐이었다.“세상에, 저 사람들 뭐지? 왜 칼을 들고 있지?”반서윤이 두려워하면서 말했다.그녀는 부성국의 깡패들이 아주 난폭하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믿지는 않았었다.그런데 갑자기 카타나를 든 검은 옷의 사무라이들이 공항 로비에 몰려들자 곧바로 덜컥 겁이 났다.그런데 검은 옷의 사무라이들은 모습을 드러낸 뒤 일제히 노아를 향해 말했다.“귀국을 축하드립니다, 노아 아가씨!”그 말에 바서윤과 장윤형은 넋이 나갔다.그들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 노아를 바라보며 생각했다.‘저... 저 여자 부성국의 아가씨였어? 윤구주 씨의 노예가 아니라?’그들이 그렇게 외치자 노아는 앞으로 나서며 싸늘한 시선으로 그들을 둘러보았다.“누가 날 데리러 오라고 한 거야? 내가 알아서 돌아갈 거라고 했을 텐데.”호쿠사이가 앞으로 나섰다.“야나가와 노아 씨, 스승님께서 보내셨습니다. 노아 씨, 저희와 함께 바로 집으로 돌아가시죠!”“아버지가요?”노아는 그 말을 듣더니 표정이 어두워졌다.“아버지에게 알려주세요. 아직은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요.”노아는 우선 자신의 체내에 있는 악귀 분신에 관한 일부터 조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직은 아버지를 보고 싶지 않았다.어쩌면 그녀의 체내에 있던 악귀 분신을 넣은 사람이 아버지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그런데 호쿠사이가 말했다.“노아 씨, 가주님께서 오늘 반드시 돌아가셔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희를 난처하게 하
윤구주가 기타가와 신사의 제자를 단숨에 두 명이나 죽이자 호쿠사이의 싸늘한 시선이 윤구주에게로 향했다.“젠장, 너 화진 사람이야?”윤구주는 차갑게 웃으면서 말했다.“그래도 보는 눈은 있네.”“빌어먹을 화진 놈, 감히 우리 부성국에 와서 난동을 부려? 죽으려고!”기타가와 신사의 3대 제자 중 한 명인 호쿠사이는 비록 귀무인이나 다카야만큼 실력이 강하지는 않지만 종합적인 실력이 대가 수준이었다.이때 그는 분노에 찬 고함을 지르면서 카타나를 들고 윤구주를 공격했다.윤구주는 그가 카타나를 휘두르는 걸 보지도 않고 오른손을 움직였다. 그 순간 강기가 호쿠사이의 공격에 닿았다.쿵 소리와 함께 호쿠사이는 입에서 피를 흘리면서 충격 때문에 연신 뒷걸음질 쳤다.그는 공격 한 방에 상처를 입었다.이러한 광경에 가타가와 신사의 제자들은 전부 넋이 나갔다. 아무도 윤구주가 이렇게 강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호쿠사이는 입가에 피를 흘리면서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대검사인 호쿠사이는 부성국의 일류 고수였다.그러나 화진의 윤구주 앞에서는 쪽도 쓰지 못했다.“아니, 말도 안 돼!”분노에 찬 고함과 함께 호쿠사이는 펄쩍 뛰어올랐다.“낙영참!”그가 들고 있던 카타나가 움직였다. 그가 뛰어오르는 순간, 그의 몸은 두 개의 허상을 이루었다.두 허상은 아주 빠르게 움직였다. 그것들은 나타나자마자 아주 까다로운 각도에서 윤구주를 공격했다.“흥! 당신 따위가 감히 나랑 싸우려고 해?”윤구주는 다시금 팔을 움직였고, 어마어마한 강기가 모여서 주먹이 되었다. 그 주먹은 나타나자마자 호쿠사이의 두 허상을 공격했다.펑!폭발음과 비슷한 소리가 들려왔고, 기타가와 신사의 세 번째 제자인 호쿠사이는 윤구주에게 맞아서 날아갔다.그는 코와 입에서 피를 줄줄 흘리면서 수십 미터 밖으로 날아간 뒤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넌 누구야... 감히 우리 기타가와 신사를 적으로 돌려?”호쿠사이는 입에 피를 가득 머금은 채로 눈을 부릅뜨고 겁에 질린 표정으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호쿠사이가 분노에 찬 고함을 지르자 수십 명의 검은 옷을 입은 사무라이들이 일제히 카타나를 들고 윤구주를 향해 달려들었다.“죽고 싶어? 그렇다면 내가 그 꿈을 이뤄주지!”윤구주는 부성국 사람의 목숨 따위 개의치 않았다.10개국 간의 전쟁에서 윤구주는 부성국의 60만 명에 달하는 병사들을 도륙했었다. 그야말로 시체가 산처럼 쌓이고 피가 강을 이룰 정도였다.그러니 지금은 말할 것도 없었다.손가락을 움직이자 금빛 현기가 긴 칼이 되었고, 긴 칼이 지나가는 곳마다 비명이 터졌다.눈 깜짝할 사이에 십여 명의 검은 옷을 입은 사무라이들이 달려들어서 윤구주의 몸을 반으로 갈랐다.잘게 다져진 살과 피가 공항 로비를 순식간에 빨갛게 물들였다.몇 초 사이, 수십 명 되는 기타가와 신사의 제자들이 전부 살해당해서 피바다 위에 쓰러졌다.그 광경에 부성국에 여행을 온 반서윤과 장윤형 두 사람은 겁을 먹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특히 장윤형은 큰 충격을 받았다.그는 윤구주가 잘난 얼굴을 믿고 그가 1년 넘게 짝사랑해 온 반서윤을 꼬시려 한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윤구주에게 모욕을 주기까지 했다. 그런데 지금 떠올려 보니 등골이 오싹해서 오줌까지 지렸다.윤구주는 기타가와 신사의 사무라이들을 눈 깜짝할 사이에 죽이더니, 피범벅이 된 얼굴로 반쯤 넋이 나간 호쿠사이를 덤덤하게 바라보았다.“아직도 날 죽이고 싶어?”호쿠사이는 목에 뭔가 걸린 것처럼 입을 뻐끔거리면서 말했다.“난... 난...”그러나 그가 말을 더 뱉기도 전에 윤구주는 오른손을 움직였다. 그렇게 기타가와 신사의 마지막 제자는 머리가 터져 그 자리에서 죽었다.사람들을 전부 죽인 뒤 윤구주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노아를 바라보았다.“가자고. 이젠 당신 아버지를 찾아가야지.”노아는 씁쓸한 기분으로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윤구주를 바라보며 말했다.“지금 바로 우리 기타가와 신사로 가려고요?”“그렇지 않으면?”윤구주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하지만 우리 기타가와 신사는 제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
백호는 아직도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어느덧 이백오십 계단까지 올라왔다. 이 단계부터는 실체화된 술법이 몸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계단 하나를 오를 때마다 바람, 불 번개와 같은 속성의 영기가 점점 강해졌다. 여기서부터는 육신 횡련의 수련자는 강력한 체질로 버티고 술도 재능이 뛰어난 수련자는 천지 영기를 다루는 능력으로 버텨야 했다. 한마디로 각자의 능력에 따라 갈리는 구간이었다. 어느 한 분야라도 특출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백호는 술도에는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강인한 육체 하나로 견디고 있었다.웅!성수의 피가 진동하며 백호의 몸을 지탱했다. 각종 속성의 영기가 몰아쳤지만 백호는 성수혈의 힘을 빌려 억지로 앞으로 나아갔다.수련자에게 있어서 성수의 혈맥이나 법보 등은 모두 신체 외적인 재능으로 간주하지만 그렇다고 이것들이 꼼수나 편법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천 가지 변화와 만 가지 신통력이 있어도 결국 만법은 한 가지로 귀결된다. 법기든 혈맥이든 이를 감당하는 것은 결국 본인의 몫이다. 천지 영기를 이용한 술법도 결국은 그 힘을 감당할 수 있어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며 감당하지 못하면 반드시 반작용을 맞게 된다. 따라서 수련의 길에는 애초에 편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성수 혈맥 같은 천지의 보물은 보통 사람이 함부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윤구주의 도움을 받았다 하더라도 결국 이를 감당하는 건 백호 자신이었다. 성수 혈맥의 힘을 온전히 감당하며 백호는 결국 삼백 계단까지 올라섰다.계단의 꼭대기 근처에는 이미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이 여럿 서 있었다. 서요산 검종은 근대에 들어 삼백 계단을 넘는 인재가 드물었다. 최근 백 년 동안 삼백 계단을 넘은 사람이 고작 열 명 남짓이었고 그중 대부분이 삼백여 계단에서 멈췄다. 그런데 지금 백호는 삼백이십 계단까지 올라선 것이다. 이 정도면 서요산 검종 전체가 떠들썩해질 만한 성과였다.이런 제자가 나타난다면 종문 전체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래서 서요산의 진인들까
“한 사람의 품성을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마구잡이로 그렇게 많은 수련자를 키워낸다면 결국 천하의 마인을 직접 만들어 내는 꼴이 아니겠어?”청현이 바로 그 실패한 예다. 서요산 검종 종주가 청현의 천재성을 아까워한 나머지 그의 인성을 무시하고 양성한 끝에 결국 역도를 만들어 낸 것이다.“그럼 저하 서요산에 입문한 무술 무인들은 평균적으로 몇 계단까지 오르는지 아십니까?” 백호가 호기심에 물었다. 윤구주는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무술 무인의 정확한 데이터는 모르지만 검종 종주와 잡담할 때 들어보니 검종 제자들의 수준이 갈수록 떨어져서 천 년 전만 해도 평균 삼백 계단 정도였는데 요즘엔 백 계단도 못 오른다고 하더구나. 가끔 삼백 계단을 오르는 자라도 나오면 검종 전체가 몇 년은 떠들썩할 정도라고 했어.”“구백구십구 계단까지 있는 시험인데 천 년 전 전성기에도 겨우 삼백 계단이요?” 백호는 입술을 삐죽이며 서요산 검종의 수준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때 한 번 도전해 볼 생각이야?” 윤구주는 흥미롭게 백호를 바라보았다. 백호는 당장이라도 도전하고 싶은 마음에 윤구주의 허락을 구한 뒤 바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 계단 두 계단... 오십 계단까지는 아무 어려움도 없었다. 백호는 오십 계단에 서서 사람들을 향해 서요산 검종이 별것 아니라며 놀려댔다. 하지만 육십 계단쯤 올랐을 때 처음으로 압력을 느꼈다. 마치 몸 위에 작은 차 한 대가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백호에게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백 계단에 도달하자 압력이 갑자기 커졌다. 등에 작은 승용차 대신 소형 트럭이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지만 아직 백호의 한계에도 가지 못했다.“근래 사람들의 평균이 백 계단도 못 넘는 이유가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예전의 무인 횡련은 황제도 오를 수 있었지만 요즘 무인 횡련은 죽어라 노력해도 소형 트럭 하나 못 버티는 수준이니 말입니다.”백호는 농담을 던지며 계속해서 계단을 올라
전에 임정설은 구오 지존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나라를 위해 힘쓰며 수모를 견뎌내고 살아남으려 했다.하지만 이제 황제가 된 그는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그 탓에 이번 관문 앞에서 그는 망설였다.살아 있는 자만이 통과할 수 있는 관문이었다.죽음을 마음에 품은 자는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관문이었다.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 청해만이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생각했다.‘황제가 되면 곤륜 구역에서 최고 경지에 도달하는 건데. 기뻐해도 모자랄 판에 왜 죽음을 택하려는 거지?’“저하, 국주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듯합니다. 저하도 사랑하던 이에게 배신당했어도 결국 극복해 나갔잖습니까.”백호도 이해하지 못했다.그는 여전히 국주보다는 왕이 더 낫다고 여겼다.“네가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함부로 내뱉느냐.” 윤구주가 단호하게 말했다.백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그는 어리숙하고 말솜씨도 없기에 생각나는 대로 말했을 뿐이다.“내가 문아름에게 배신당한 건 억울한 일이지만 나는 그녀에게 잘못한 게 없다. 오히려 그녀가 날 배신한 거다. 하지만 국주는 그 반대였지. 그가 그녀를 저버린 거야. 정이 깊으면 오래가지 못하고 지혜가 지나치면 오히려 상처를 입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쓰라린 후회는 가진 뒤 잃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생사를 달리하게 되는 것이다.” 윤구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만약 소채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도 제정신이 아닐 거라고 느꼈다.“그럼 복수하면 되지 않나요?” 백호가 어리둥절하게 물었다.이때 청해가 눈치를 채고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상대가 너무 강해서 못 이기는 거지. 황제에 오르기 전까진 제대로 맞붙을 힘도 안 돼. 오르고 나서도 이길 수 있을지 장담 못 하고.”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 그 말이 맞았다.“그럼 우리가 국주님 대신 복수해 드리면 되잖아요? 국주님은 제 왕이기도 하지만 제 윗사람이기도 하잖아요.”백호가 고개를 갸웃했다.“하하! 만약 세상 사람들이 다 너처럼 솔직하다면 이런
인간이 나쁜 짓을 거듭해 양심을 잃으면 부끄러움도 사라진다.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윤구주를 따라 명예심이 생기면서 죄책감도 느끼게 된 청해에게 이 원한의 전법은 고통스럽기만 했다. 물론 곤륜역 한 신전의 부전주로서 정신이 붕괴할 정도는 아니었다.네 사람은 이 원한의 전법도 가볍게 넘어섰다.이때 전법에 관심을 가졌던 임정설이 무언가를 눈치챘다.“구주야, 서요산의 전법은 우연히 들어온 자를 쫓아내는 동시에 수련자의 의지를 시험하는 것이었어. 서요산은 의지력이 확고한 자들만 끌어들인다는 것을 미리 들어 알고 있다. 이게 바로 서요산이 제자를 선발하는 방식인가 보구나.”“그렇습니다. 매년 화진 무도계 사람들이 서요산에 찾아오지만 성공한 자는 극히 드뭅니다. 실패자들 중 십중팔구는 산기슭에서 죽음을 맞이하죠. 어떤 문턱은 넘지 않는 것이 복이 될 때가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죠. 현실을 알고도 바꾸지 못하는 것이 가장 괴로운 법이니까요. 이 관문을 넘는다고 해도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입니다.”윤구주의 말이 끝나자 세 번째 전법이 나타났다.첫 번째와 두 번째 전법은 이곳에 들어온 이들을 돌려보내려고 만든 것이지만 세 번째 전법은 달랐다. 이 전법은 살기로 가득 찬 죽음의 전법이었다.평범한 사람들은 여기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이곳까지 온 자들도 앞길의 위험을 보고 함부로 들어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눈 앞에 펼쳐진 죽음의 길을 보고도 들어가는 자는 스스로 죽음을 원하는 자라서 그런 자들에게 죽음을 내리는 것은 오히려 덕을 쌓는 일이었다.하지만 무도로 도를 깨우치려는 수련자라면 이 관문을 넘기 위해 반드시 목숨을 걸어야 한다. 버텨내야만 수도의 길에 들 수 있고 실패하면 그 후과를 받아들여야 한다.전법 안은 살기로 가득했다. 생기와 영기가 세상을 이롭게 하지 못할지라도 살기와 죽음의 기운은 목숨을 앗아갈 것이 분명했다.진법 내부에는 수많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무도계에 이름을 날렸던 강자들의 유해
네 사람은 비석을 지나자마자 환각의 전법에 부딪혔다. 이 전법은 우연히 들어오거나 경고를 무시한 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결국 서요산 밖으로 나가게 만드는 것이었다.의지력으로 환각의 전법을 통과하면 다음 전법이 기다리고 있었다.당연히 네 사람에게 환각의 전법은 통하지 않았다. 윤구주와 임정설은 물론, 백호와 청해도 곤륜에서 강자로 존경받는 존재들이었다.다음은 섭혼 전법이었다.전법에 들어가기 전부터 하늘을 찌를듯한 원한의 기운이 밀려왔다.그 기운을 느낀 임정설이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수년간 왕궁에서 비술을 연구해서 알아본 건데. 이곳은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진 거야. 반경 수천 리 이내의 원한의 기운이 모두 이곳에 모여있어. 내 치하에서도 억울하게 죽은 자들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그걸 내가 몰랐다니.”그는 깊은 자책에 빠졌다.“국주님, 인간이 있는 곳에는 분쟁은 끝나지 않습니다. 근대에 들어 큰 전쟁은 사라졌지만 소규모 충돌은 끊이지 않았죠.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게다가 이곳에 모여진 원한의 기운은 억울한 죽음뿐만 아니라 극형을 받은 흉악범들의 원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은 죽어도 사라지지 않죠. 사랑 때문에 미워하고, 미움 때문에 미쳐버리는 것이 바로 인간입니다.”윤구주의 말을 듣고 임정설이 한마디 물었다.“구주야, 너는 문아름을 미워하지 않느냐?”문아름의 이름을 들은 윤구주의 눈에서 짙은 살기가 번뜩였다.“당연히 미워하죠. 저 윤구주는 순수하게 사랑하고 미워하는 인간입니다. 사랑은 사랑, 증오는 증오에요. 그녀를 위해 변명 같은 건 하지 않겠습니다. 문아름이 저를 배신했으니 저에게 당연히 미워할 권리가 있죠. 하지만 문아름을 사랑한 걸 후회하지는 않아요. 문아름이 제게 사랑이 무엇인지, 인심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었으니깐요. 가려는 길이 다르면 미래를 함께할 수 없죠. 저희는 처음부터 다른 길을 걸었어요. 저희의 만남 자체가 잘못이었지만 문아름이 저를 구주왕으로 만든 것도 사실이죠. 그리고 제가 문아름을
“저하와 생사를 함께할 수 있다니. 그건 제 영광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만약 전하와 제가 정말로 서요산에서 죽게 되면 청룡이 돌아온다 해도 성수가 한자리 비게 되는 건데 그분을 어떻게 소환하시렵니까?”백호가 의혹이 담긴 표정으로 물었다.윤구주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그걸 설명하려면 너를 실험체로 삶고 실험을 진행할 때부터 얘기해야 해. 정확히 말하면 청룡, 현모, 주작의 몸속에는 네 피가 흐르고 있어. 네가 성수의 피를 융합한 첫 번째 수련자야. 예로부터 지금까지 오직 너만이 진정한 융합에 성공했지. 네 피를 빌려 그들에게 성수의 정수를 주입했던 거야.”“백호, 내가 너를 이렇게 만든 거다. 네가 이런 괴물 같은 모습이 된 건 전부 내 탓이야. 그러니 나를 원망해도 좋아.”백호는 웃으며 대답했다.“제가 어떻게 저하를 원망하겠습니까? 게다가 당시 저하께서는 제 목숨을 구하려고 그러신 거였잖아요. 제가 고마워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첫 번째로 융합에 성공한 수련자는 제가 아닐건데요? 저하께서도 성수의 피를 다루시지 않았습니까?”그 말을 들은 윤구주가 고개를 저었다.“아니. 달라. 그건 그냥 성수의 피를 통제하는 것 뿐이야. 진짜 융합했으면 나도 네 꼴이 됐을 거야.”백호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됐다. 옛날얘기는 그만하고 얼른 서요산으로 떠날 준비나 해.”며칠 후, 윤구주는 임정설 국주, 청해, 백호와 함께 서요산으로 향했다.비 오는 밤, 연기를 뿜는 수송기가 짙은 구름을 뚫고 산을 향해 돌진했다.비행기가 산에 충돌하기 직전, 수많은 바람의 부적이 나타나 비행기를 강제로 선회시켜 간신히 산기슭에 착륙했다.비행기가 막 착륙하자 비행기 문이 누군가의 주먹 한 방에 박살 났다. 멀미로 비틀거리던 청해가 나오더니 몸을 움츠린 채 구토를 멈추지 못했다. 뒤이어 내린 임정설도 배를 움켜쥐며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억지로 참는 모습이었다.그들과 달리 윤구주는 멀쩡한 상태로 내려와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백호의 질문에 윤구주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네가 진짜라 믿는다면 그것은 진짜야. 초심을 잃지 않아야 길이 열리는 법이지.”이 말은 백호에게만이 아닌 자신에게도 하는 것이었다.서울의 위기는 해결되었지만 윤구주는 이 모든 것이 문씨 가문의 그 여자의 계획 중 하나임을 알고 있었다.“국주님, 이제 서요산으로 갈 때입니다.”그가 임정설을 바라보며 말했다.“서요산을 지키려는 거니? 마인이 나타날 거란 말이야?”임정설이 눈살을 찌푸렸다. 진요탑 아래에는 천년 동안 갇힌 수많은 마인들이 있었다.“맞아요. 서요산의 지맥 영기가 거의 고갈되었습니다. 만약 진요탑이 무너지면 큰 재앙이 찾아올 것입니다.”윤구주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진요탑이 붕괴하여 마인들이 쏟아져 나오면 윤구주라도 그들을 처리하기 힘들 것이다.“좋아. 내가 같이 가주마. 이 늦은 재앙은 언젠가 닥칠 운명이니 우리가 짊어져야 해. 지금의 희생은 후손들을 위한 것이야.”임정설의 눈빛이 강철처럼 단단해졌다. 화진을 위해, 백성들을 위해 그는 언제든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었다.윤구주는 현모에게 연락을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뭐라고요? 저하께서 서요산으로 가신다고요? 그렇다면 저희도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요?”현모와 주작의 목소리에서 초조함이 느껴졌다. 특히 주작은 서요산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천년 동안 축적된 재앙을 겨우 수십 년 수련한 윤구주 혼자서 떠맡기엔 버거웠다.“괜찮아. 너희에게는 따로 시킬 일이 있어. 내가 서요산에 있는 동안 너희는 국경을 지켜줘. 청룡의 행방은 잠시 접어두고 내가 시킨 일에 몰두해. 난 문아름을 그 여자를 잘 알고 있어. 문아름은 일이 내 뜻대로 되게 놔두지 않을 거야.”“추가로 부탁이 있는데 만약 내가 전사한다면 그때쯤 청룡이 모습을 드러낼 거야. 청룡을 불러내는 게 복인지 화인지는 나도 알 수 없지만. 그 상황이 오면 너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거야. 문아름이 결정을 내리겠지. 그러니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둬.”유언을 남기는 듯한
‘헐, 대박.’진동왕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윤구주를 신처럼 떠받들었다.‘이게 진짜 신이지. 곤륜에 있는 그 자식들은 모두 가짜 신들이었어. 허위적이기 그지없지.’오늘 밤 그는 여러 강자의 싸움을 직접 목격하고 강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문경우도 아주 강했지만 윤구주가 나타나자 문경우는 도망조차 제대로 치지 못하고 영혼마저 산산조각이 났다. 윤구주의 술법에 의해 영혼도 남기지 못하고 진정한 죽음을 맞이했다.승리는 결국 화진에게 돌아갔다. 화진을 무너뜨리려는 역적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윤구주는 자신의 힘으로 화진의 막강한 실력을 전 세계에 알렸다.문경우를 처단한 윤구주는 즉시 임정설의 치료에 돌입했다.“짐은 별일 없으니 먼저 왕숙과 네 친구를 치료해줘라.”임정설이 임성진과 청해를 가리키며 말했다.청해는 이미 정신을 차렸다. 비록 상처가 심해 반쯤 죽은 상태였지만 화진 국주에게 인정받은 첫 순간이었다. 묘한 영예감이 그의 마음을 꽉 채우며 날아갈 듯 기뻤다.“이 두 사람 모두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은 아닙니다. 오히려 국주님이 더 위험하십니다. 경지를 무리하게 넘어서셨고 섭혼번 아래서 정기를 너무 많이 잃으셨습니다. 지금 국주님의 기운이 안정하지 않으니 제 도움이 없다면 폭주 할수도 있어요. 그때가 되면 저도 방법이 없습니다.”윤구주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임정설은 결국 윤구주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도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었다. 윤구주의 치료를 거부한 이유는 목숨을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황자급 경지에 오르긴 했지만 예전보다 죽음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 있었다. 윤구주는 임정설에게 풀지 못한 원한이 있음을 눈치채고 치료를 해주며 화진으로 압박했다.“국주님께서 직접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는 걸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화진에게는 국주님이 필요합니다. 국주님은 30년 동안 화진을 지켜오셨잖아요. 지금 승부가 달린 이 중요한 시점에서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시면 안 됩니다.”임정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