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는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앨리스가 자꾸만 반항하며 밥 먹는 것조차 협조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간호사는 억지로라도 앨리스에게 음식을 먹이기 위해 숟가락을 입에 쑤셔 넣었다. 잇몸이 찢어지며 피가 살짝 배어 나왔다. “떠먹여주기까지 하는데, 이래도 안 먹어? 자꾸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나도 험하게 나가는 수가 있어.”하지만 간호사는 앨리스의 입가에 묻은 피를 보고도 전혀 개의치 않고 더 숟가락을 들이밀었다. 이건 거의 고문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런 간호사의 모습에도 그 주변 누구도 말리려고 끼어들지 않았다. 그럴수록 그녀의 행동은 더 과격해졌다.간호사가 손에 들고 있던 음식을 거의 앨리스에게 들이붓듯 기울려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무언가가 자신의 몸을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 염구준이 전신의 힘을 개방한 것이었다. 일반인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간호사는 돌이 된 듯 몸이 뻣뻣이 굳었다.염구준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지나쳐! 당신 같은 사람이 간호사라니, 자격이 없어. 당장 여기서 사직하고 떠나.”“그쪽은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간호사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지만, 입만은 살아있었다. “꺼져!”염구준은 더 이상 들을 것도 없다는 듯 그녀의 뒷덜미를 잡아 옆으로 내던졌다. 그 때문에 손에 들고 있던 뜨거운 음식이 앨리스가 아니라 간호사 쪽으로 쏟아졌다. “악!”돼지 멱따는 듯한 듣기 싫은 비명이 울려 퍼졌다. 간호사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뜨겁게 달궈진 얼굴을 부여잡았다. “작업자득이야!”염구준은 이런 몰상식한 사람들과 말싸움 자체를 하기 싫어했다. 이런 사람한테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드디어 오셨네요.”앨리스가 고개를 들며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은 탓에 그녀의 얼굴은 전보다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이틀이나 지났으니, 충분히 정리되셨을 거라 생각해요. 이제 저랑 같이 갑시다. 당신에게 모두가 부러워하는 엘 가문을 안겨 줄게요
“그럼 나도 농담 좀 칠게.”염구준의 몸에서 무형의 힘이 두개 피어올랐다. 그러자 뚜둑하고 뼈가 부러지는 듯한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대머리 남자의 팔이 부러졌다.“더, 더 이상 붙잡지 않을 테니, 꺼져.”대머리 남자가 극심한 고통에 이를 악문 채 말했다.“아니, 꺼져야 하는 건 너다. 여긴 너 같은 쓰레기 필요 없어.”염구준이 단호히 말했다. “뭐해! 얼른 원장님한테 전화해!”대머리 남자가 얼굴에 물집이 잡힌 간호사에게 소리쳤다. “그래, 어디 한번 연락해봐.”염구준이 주변을 훑어보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주변 사람들 모두 대머리 남자가 당한 것에 통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보나마나 남자는 여기서 꽤 많이 미움 받는 존재인 것 같았다.잠시 후, 무거운 발걸음 소리와 함께 원장이 도착했다.“원장님, 도와주세요. 이 자가….”“염 선생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원장이 대머리 남자의 말을 자르고 염구준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염 선생님? 설마 손씨 그룹의 그 염구준을 말하는 것일까?’대머리 남자는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청해시에서 제일가는 재벌이라 알려진, 글로벌 그룹이자, 이 요양원의 투자자.“원장님, 저희 그룹은 봉사하는 마음으로 이 요양원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활보하도록 그냥 두다니, 솔직히 많이 실망했습니다.”염구준이 책임을 묻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제가 관리에 소홀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원장이 책임을 지고 벌을 내리겠다고 약속했다. “당신들, 당장 짐 싸고 여기 나가!”원장의 태도가 나쁘지 않았기에, 염구준은 그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기로 했다. 한편, 염구준이 넘겨준 반디엘의 영상을 모두 시청한 앨리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엘 가문을 망하게 내버려두면 안 된다는 마지막 당부, 그녀는 속으로 강한 결심을 했다. “당신과 함께 갈게요.”그런 다음, 앨리스는 자신을 괴롭힌 간호사에게 다가가 강하게 뺨을 두어 차례 때렸다. “이건 나한테 진 빚.
염구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경비원들을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실력은 아직 부족했지만, 충성심만큼은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것 같았다. 거기에 질 것을 알면서도 맞서는 용기와 기백,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성공했다고 볼 수 있었다. 엘 가문 강자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염구준 쪽에서는 딱히 아무런 반응도 해오지 않았다. 이들은 염구준 쪽 사람들이 겁을 먹은 것이라 확신했다. “사람이 많다고 해서 뭐라도 될 것 같아?”염구준의 신형이 살짝 흔들렸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무색의 기운이 넘실넘실 뿜어져 나오더니, 순식간에 공격해오는 사람들을 향해 쏟아졌다. 전신의 영역! 그 순간 이들은 마치 얼어붙은 사람처럼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잠시 후, 모두 피를 토하며 허공을 나르더니 벽에 부딪혔다. 홀엔 온통 이들의 혈흔으로 비릿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강했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엘 가문의 강자 모드를 심각한 부상을 입게 되었다. 염구준의 눈엔 이들 정도 실력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승리를 확신했던 엘 가문 강자들은 모두 침묵에 휩싸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경호원이 가지고 온 의자에 앉은 채 턱을 치켜들고는 입을 열었다. “이제 모두 자신의 처지를 알았을 테니, 손씨 그룹이 입은 손해를 어떻게 배상할지 논의해볼까요?”그 말을 들은 엘 가문 가람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왜 이곳에 잡혀왔는지 깨닫게 되었다. 큰일이었다! 너무나도 압도적인 무력에 이들은 모두 전의를 잃은 상태였다. 하나 둘 배치된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전액 배상해드리겠습니다.”먼저 굴복하고 입을 연 것은 아까 제일 먼저 염구준이 올 때 소리쳤던 남자였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를 따라 수그리기 시작했다.“저희가 빼앗았던 거 다시 돌려줄게요.”하지만 염구준은 쉽사리 이 상황을 끝낼 마음이 없었다. 힘들게 전국에서 사람을 끌어 모은만큼 대가를 받고 싶었다. “염 선생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이때, 눈치 빠르게
그들은 정말 두려웠다. 여기서 복종하지 않으면 정말 목숨을 잃을 것 같았다. 그렇게 결국 앨리스는 엘 가문의 진정한 족장이 되었다.“엘 가문을 통합시킨다면, 저희는 더 강해질 겁니다.”앨리스가 말을 마치고 옆에 있는 염구준을 지긋이 바라봤다. 그녀를 포함한 모두가 여기에 실질적 결정권자가 염구준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다 봤으면, 이만 내려오지 그래?”염구준의 갑작스러운 발언에 모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큰일이다. 들켜버렸다!홀 천장에서 그림자 하나가 빠르게 입구 쪽으로 움직였다. 그의 몸은 마치 주변과 동화된 듯,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쉽사리 분별도 못했을 것이다.인술이었다!“날 발견하면 어쩔 건데, 잡지도 못할 거.”닌자는 자신만만했다. 그의 은신 기술은 조직내에서도 최고였기 때문이다. “웃기는군!”염구준이 손을 공중에 살짝 휘두르자 무형의 힘이 검은 그림자를 잡아당겼다.말도 안 돼!닌자는 믿을 수 없었다. 그는 제대로 된 반항 한 번 하지 못하고 잡혀 버렸다. 눈 앞에 있는 이 남자는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강했다. 그는 흑풍 존주가 자신을 속였음을 깨달았다.“흑풍 조직의 사람이지? 뭐, 남길 유언이라도 있나?”염구준이 남자의 가슴에 그려진 표식을 보며 말했다. “잠깐, 할 말이 있어. 엘 가문에 관한 거야.”남자는 흑풍 조직에 가입한지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에 조직에 대한 깊은 충성심이 없었다.“그럼 말해.”염구준이 차갑게 대답했다. 어쩌면 남자의 입에서 옥패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할 테니까, 일단 이거 좀 풀어줘.”남자는 협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고 생각했다. 퍽! 하지만 염구준은 말없이 바닥에 눌려 있는 남자의 팔을 부러뜨렸다. 도마 위에 생선, 남자는 그제야 자신의 처지를 깨달았다.“마, 말할게.”그는 염구준이 이렇게 곧바로 폭력을 행사할 거라 예상치 못했다.“엘로자는 진작에 흑풍 존주의 손에 죽었어. 손씨 그룹을 공격하게 한 것도 모두 존주의 짓이야.”
흑풍 존주의 분노가 담긴 외침에 울려퍼졌다. 이제 점령한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도망치듯 철수해야 한다니, 분통이 터졌다. 그런데 이때, 특수 강철로 만든 대문이 쾅하고 날아가며 염구준이 여러 사람들과 함께 나타났다.“흑풍, 이제야 다시 만나네.”“이 무슨….”흑풍 존주는 얼어붙었다. 정성껏 구축한 방어선이 소리소문 없이 뚫려 버렸다. 아무리 반보천인이라 할지라도 이 정도로 강할 수는 없었다. “흑풍 사사, 염구준을 막아라!”흑풍 존주가 명령을 내렸지만, 한참이 지나도 아무런 반응도 나타나지 않았다.“찾지 마라. 남은 건 너희 둘 뿐이니까. 나머지는 내가 모두 처리했다.”염구준이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말하며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공중에 축 늘어진 시체가 하나 떠오르더니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그 시체의 주인은 다름 아닌 흑풍 사사였다. 반응할 틈도 없이 이토록 많은 조직원들을 처리하다니, 그는 실력은 흑풍 존주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흑풍 존주는 위기감을 느꼈다. 염구준의 실력이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많이 상향된 것이 실감났다.“죽어라!”염구준이 바닥을 박차며 흑풍 존주를 향해 돌진했다. 피부를 찌를 듯한 살기가 피어올랐다.“잠깐, 내 목숨 살려준다면 가지고 있는 옥패 모두 넘겨 줄게.”흑풍 존주가 품에서 리모컨을 꺼내며 말했다.“널 죽여도 가질 수 있어.”염구준은 전혀 공격을 멈출 생각이 없는 듯, 흑풍 존주의 가슴을 향해 손바닥을 뻗으며 답했다.“그렇다면 나도 어쩔 수 없다!”흑풍 존주가 큰 결심을 한 듯 굳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옆에 있던 부하를 끌어당겨 마치 고기 방패처럼 사용했다. 그에겐 사람이란 모두 도구에 불과했다. 부하는 속으로 흑풍 존주를 향해 욕설을 날렸다. 십여년, 긴 세월을 모셔온 대가가 이거라니,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부하는 살기 위해 온 몸에 힘을 끌어 모았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처참했다. 그는 몸은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 났다. 주인을 잘못 고
앨리스는 영리한 사람이었다. 지금 자신의 처지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그녀는 이제 염구준의 말이라면 공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을 것이다. 그만큼 그의 능력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다. 앨리스는 좀 전에 본부에 들어섰을 때, 통로 안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혼자서 이 철옹성을 함락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니, 정말 인간 핵폭탄이라고 봐도 무방했다.강해도 너무 강했다. 그리고 앨리스의 뒤를 따라 들어온 사람들도 모두 같은 심정을 느꼈다. 그들은 앞으로 절대로 염구준과 척을 지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염 선생님, 다 데리고 왔어요.”앨리스가 공손하게 말했다. “염 선생님이라면 이들을 쉽게 쓰러뜨릴 줄 알았습니다.”“염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족장의 복수도 해주고, 엘 가문도 되찾아 주다니.”“염 선생님, 정말 놀랍네요. 흑풍 조직조차 상대가 되지 않다니, 이 시대 최강자는 역시 다르네요.”아부의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왔다.“그만, 쓸데없는 아부는 여기까지.”염구준이 그들을 말을 자르며 차갑게 말했다. 의미 없는 아부를 반응해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사람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며 서로 눈치를 보며 한쪽으로 물러섰다. 염구준은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기에 곧바로 옆에 있는 앨리스를 바라보며 본론을 꺼냈다.“앨리스 씨, 할 말 있지 않아요?”“아, 잊을 뻔 했네요.”앨리스가 말하며 방계 족장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엘로자 족장님께서 돌아가신 건 저도 정말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머리가 없는 몸통이 될 수는 없는 법, 엘 가문엔 새로운 주인이 필요해요. 부담은 되지만, 제가 그 자리를 맡을까 합니다. 다들 의의 없으시죠?”그녀의 말엔 매우 강하고도 단호한 힘이 담겨 있었다. 이미 유람선에서 결정된 일이었지만, 엘 가문 보부에서 선포하는 건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이로서 엘 가문 족장 자리는 교체되었다. 사람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다가 염구준의 차가운 시선을 알아차리곤
염구준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앨리스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앞으로 아낌없이 앨리스 씨를 지원할게요. 엘 가문은 많이 번창하게 될 겁니다. 대신 옥패를 찾아주세요.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거요.”앨리스가 내밀어진 옥패를 보며 망설임없이 대답했다.“반드시 찾을게요!”한편, 나흐 가문에선 한참 회의 중이었다.“가주님, 엘 가문이 재편성되었다는 소식 들으셨을 겁니다. 지금 많이 약해져 있을 테니, 저희가 나서 도우면서 빚을 지어두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러려면 먼저 상대의 성의를 봐야겠지만요.”남자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자신이 준비한 계획안을 가주 앞으로 내놓았다. “엘 가문에서 다시 여러 가문들과 협력하려 사람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쪽과도 접촉한 이력이 있어요. 이 기회에 자연스레 그들의 제안을 수락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남자가 내민 계획안엔 엘 가문에서부터 보내온 초대장도 함께 있었다. 새 가주 취임식에 참석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맞는 말씀입니다. 마침 초대도 왔는데, 불참하는 것은 보기에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그리고 새로 재편성되었으니, 전통성이 있는 저희 같은 가문이 참석해 위험을 보여주기 좋은 자리인 것 같습니다. 그래야 그들도 저희 가문을 얕보지 않죠.”옆에 있던 사람들이 남자의 말에 하나 둘 거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가주는 쉽사리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가주가 무겁게 입을 뗐다.“엘 가문이 재편성되었다는 건 모두 들어서 알고 있었을 테지만, 그 과정이 어땠는지는 못 들었나 보네?”그 질문에 사람들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가주의 말 대로 이들은 엘 가문이 재편성되었다는 사실만 전달받았을 뿐, 그 과정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모르고 있는 것 같으니, 내가 알려주마. 엘 가문 뒤엔 염구준이라는 인물이 있다. 이 남자는 이미 천인의 경지에 도달한 인물로서, 만약 우리도 이 자와 협력할 기회를 얻는다면 가문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가주가 고민이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쩌면 이번에야 말로 이들이 큰 일을 치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럼 며칠 뒤에 있을 연회는 어떻게 할까요?”집사는 오랜 세월 가주의 옆을 지켜온 사람으로서,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일단 그냥 지켜보자.”가주는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려 서재 밖으로 향했다. 집사도 그의 뒤를 따라 나섰지만, 얼굴엔 의문이 가득해 보였다. 하지만 가주는 그런 그의 표정을 보고도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아참, 정한이 좀 불러오거라. 시킬 일이 좀 있어.”나정한은 나흐 가문의 장남으로서 모두가 능력을 인정한 다음 대 가주 후계자였다. “알겠습니다.”집사가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한 뒤 공손히 자리를 떠났다. 가주 다음으로 이 가문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가진 사람이 바로 나정한이었다.잠시 뒤, 장남 나정한이 서재의 문을 두드렸다.“들어와.”허락의 말이 들어오자 나정한은 곧바로 문을 열었다. 장성하게 큰 아들을 보며, 가주는 새삼 자신이 늙었다는 것이 실감났다. 그의 장남은 이제 정장을 입은 채 사업 전선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 어쩌면 은퇴할 때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무슨 일이에요?”나정한이 책상 앞으로 다가가더니 정중하게 물었다.“너에게 따로 시킬 일이 있다. 이 사람을 조사해. 일거수일투족, 인간관계, 가족, 약점까지 모두 알아내야 한다.”그가 내민 것은 염구준의 사진과 이름이 적힌 간단한 서류였다. “이 사람은 이미 조사해 두었어요.”나정한이 서류를 보며 가볍게 웃은 뒤, 들고 있던 가방에서 한 서류 봉투를 꺼냈다. 거기엔 염구준의 탄생부터 그 일대가 모두 적힌 종이들이 들어 있었다.“오늘 돌아온 것도 이것 때문이었어요. 염구준이라는 남자, 상당히 흥미롭더군요.”나정한의 눈엔 존경과 동경의 빛이 담겨 있었다.“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어디 한 번 이 남자에 대해 직접 얘기해 보거라.”가주는 아들의 뛰어난 대처능력에 만족스러운 표정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각 세력들은 세라와 관계가 좋았지만 지금은 그녀가 스텔라성과 엮여서 믿을 수가 없었다.베르가 말한 동맹도 결국은 이익을 기초로 하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었다.“염병할 놈!”베르는 염구준이 사라진 곳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에취!”한편, 바다의 동굴을 지나던 염구준이 재치기를 하더니 귓구멍을 파며 중얼거렸다.“또 어떤 놈이 뒤에서 나를 욕하는 거야?”그는 이미 수백 미터 안으로 들어가면서 동굴을 살펴보았다.오래전에 인공으로 만들어진 동굴로서 지하수도로 사용했거나 육지에서 지각이 변화하여 이곳에 가라앉을 가능성도 있었다.이제 동굴 내부에 완전히 적응되어서 속도를 낼 때가 되었다슝!위험도 없고 갈림길도 없으니 팔다리를 빨리 저으며 앞으로 전진했다.동굴 끝에 무엇이 있는지 참 기대가 되었다.그것이 고대 옥패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말이다.푸!가는 도중에 갑자기 장어 같은 바다 동물의 습격을 받았지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누가 있어.’얼마나 헤엄쳤는지 모르겠지만 눈앞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염구준은 그 사람의 생사를 알 수 없어 한 줄기 검기를 발사했다.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것을 보고 죽은 사람이라 생각했다.가까이 다가가 보니 잠수복을 입은 시체는 부패되지도 않고 마치 자는 것처럼 보였다.그 옆에 커다란 가방이 있었는데, 열어보니 황금, 비취. 진주 등 값나가는 보물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진짜 보물이 있었네. 고대 옥패도 있을까?”그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며 보물이 가득한 가방은 뒤로 한 채 계속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시체들이 점점 더 많이 나타났다.염구준은 궁금했다.왜 시체들이 하나 같이 상처도 입지 않고 평온한 표정으로 죽었는지 말이다.이상한 상황으로 하여금 점점 주변을 경계하게 만들었다.앞으로 더 나아갔을 때, 동굴은 사라지고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이곳이 바로 목적지인 것 같았다.그리고 내부를 살펴보려고 수십 발의 불꽃을 발사하던 염구준
찾겠다고 약속했던 보물이며 고대 옥패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그때 누군가 가슴이 벅차오르는 소식을 전했다.“절벽 위에 동굴이 있어요!”“여기에도 있어요. 불덩어리를 던졌는데 끝이 보이지 않아요!”“동굴에서 100그람되는 금덩어리를 발견했어요!”드디어 보물이 나타났다는 말에 다들 동료를 잃은 슬픔에서 금세 벗어났다.“일단 경거망동하지 말고 우리 대책부터 세웁시다.”중요한 순간에 베르가 나서서 대국을 주재하려 했다.염구준을 고립시키고는 각 세력들을 이용해 더 많은 것을 차지하려는 수작이었다.“부성주님,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합리적인 대안이라면 지시를 따를게요.”메노스가 환심을 사려고 스텔라성의 편에서 말했다.염구준의 실력이 너무 강해서 맞설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저들의 도움이 필요했다.나머지 가주들은 드디어 줄을 서야 하는 때가 온 것을 알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줄을 서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선택 문제였다.만약 잘못 선택하면 아무런 이득은 보지 않고 끝없는 재앙만 맞이할 것이다.…그 외에 무술인들은 가주들이 중요한 일을 논의하는 것을 알고 조용히 대기하고 있었다.몇몇 사람들이 토론한 결과로 대다수 사람들의 생사를 결정할 것이다.“염 선생은 대책이 있습니까?”노신기가 긴장이 흐르는 분위기를 깨고 떠보듯 물었다.지금 염구준은 혼자서도 스텔라성를 상대하기 충분했다.다들 대답을 기다리고 있을 때 염구준이 한 동굴 입구에 서서 말했다.“상의할 게 뭐가 있어요? 보물이 보이면 능력에 따라서 챙기면 되죠. 실력이 있으면 많이 챙기고 없으면 바닷물이나 마시다 가면 되죠.”그 말 뜻은 물질적이지만 현실적이기도 했다.지금 각 세력들이 꿍꿍이를 세우고 있으니 아무리 상의를 해도 진심이 아닐 것이다.어차피 나중에 사이가 틀어질 텐데, 지금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말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염구준의 말을 들은 베르는 각 세력들의 마음이 돌아설까 봐 바로 안색이 어두워졌다.“염구준, 지금 분열을 일으키는 거야? 절대 용납할 수 없어.
어떤 무술인들은 적대 관계이고 위에서 아무런 태도도 드러내지 않았지만 감사의 눈길을 보냈다.베르 일행은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은 것처럼 침묵하고 있으니 염구준을 칭찬하는 것은 더 불가능했다.“이곳은 위험해서 항상 조심하세요. 그렇다고 매번 도와줄 수 없어요.”염구준은 무덤덤하게 말했다.어차피 이번만 도와줄 거라 뻔뻔하게 구는 사람이 있어도 마음에 두지 않았다.그때 통신기에서 당황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저기 모래벌레 무리가 오고 있어요!”그 말에 다들 다시 안절부절했다.염구준이 재빨리 통신기에 대고 모두를 진정시켰다.“당황하지 마세요. 대부분 바닥으로 들어가고 몇 마리만 뒤를 따라왔을 겁니다.”땅으로 돌아가지 않은 모래벌레들은 전부 그의 검에 잘렸기 때문이었다.다들 안심하고 싸울 준비를 할 때, 꽃무늬 셔츠를 입은 젊은이가 공을 들고 앞에 나섰다.이곳까지 오면서 나약한 실력 때문에 항상 타인의 보호를 받았는데, 왜 이제야 나서는지 다들 알지 못했다.“썩을 놈의 벌레야! 첨단 과학기술의 위력을 보여 줄게!”젊은이가 건방지게 말하며 손에 든 공을 힘껏 던져버렸다.“안 돼!”메노스가 나서서 말렸지만 공을 이미 던져서 늦어버렸다.갑작스러운 행동에 다들 무슨 영문인지 몰랐다.“방어!”염구준이 고함을 지르며 기운으로 호체 기운을 끌어냈다.반보천인인 염구준마저 긴장하게 만들다니, 모두 젊은이가 던진 공은 틀림없이 대단한 물건이라고 생각했다.펑!공이 수십 미터 떨어진 곳으로 흘러서 올라간 순간,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면서 마침 달려오는 모래벌레들을 순식간에 폭발시켰다.물속에서도 이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다니, 보기만 해도 감탄이 흘렀다.“악!”그런데 에너지가 빠른 속도로 물속에서 퍼지더니 사람들의 몸에 부딪치며 오장육부에 침투되었다.순식간에 거대한 생물체를 몇 마리나 제거했으니 사람에 미치는 영향도 치명적이었다.실력이 약한 무술인들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바로 죽었다.퍽!가장 먼저 공격받은 젊은이는 충격에 한참이나
“알겠습니다.”“네.”두 사람은 대답하자마자 각자 맡은 20명이 넘는 부하들을 이끌고 심해 모래벌레가 드문 변두리 지역으로 향했다.실력이 뛰어난 무술인 두 명이 앞장서서 길을 터주고 있으니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가장 중요한 것은 이로서 부하들의 사기가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다.그 장면을 본 남은 세력들도 벗어날 방법을 생각했는지 부하들에게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살고 싶으면 빨리 천기문의 뒤를 따라가!”지금 염구준이 뒤를 맡고 있었기에 그들도 벗어나기 훨씬 수월했다.베르가 떠날 때는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염구준의 뒤를 노려보면서 저렇게 싸우다 콱 죽으라고 저주까지 했다.결국은 살려고 바삐 피신하느라 누구도 염구준을 도와주지 않았다.혼자 남은 그는 결국 심해의 모래벌레에게 포위되었다.“에휴, 저럴 줄 알았어. 그동안 도와준 걸 봐서라도 우리도 도와줍시다.”염구준은 자신이 한 결정에 후회하지 않고 계속 검을 휘둘러 벌레를 살해했다.각 세력의 무술인들이 이미 멀리 떨어졌으니 지금은 이 무리를 뚫고 나가야 했다.촤아악!순식간에 수많은 검기가 주변에 발사하며 바다 밑을 들쑤시는 바람에 모래와 진흙이 시야를 가렸다.어렴풋이 보이는 것은 덩치가 큰 물체들이 하나둘씩 쓰러지는 것이었다.아무리 바다가 모래벌레의 구역이라 해도 염구준의 검을 막지 못했다.검망이 닿는 곳은 그들 시체로 널렸다.염구준이 뛰쳐나오려고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을 때 도망친 각 세력들은 균열 변두리에서 편하게 쉬고 있었다.“염 선생이 우리를 위해 혼자 희생하는데 우리도 소수 정예병을 조직해서 도와줍시다!”그레이가 통신기에 대호 한마디 제안했다.흔쾌히 나설 사람은 없겠지만 일단 말은 해봐야 알 수 있으니까.“하, 대단한 것처럼 건방지게 굴더니, 저런 놈은 죽어도 싸.”“그러게요. 저 악마의 생사는 우리랑 상관없어요.”베르와 세라가 시큰둥하게 자신들의 태도를 표명했다.“당신들…”그레이가 나서서 비판하려고 할 때 그들과 싸워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더는 말을 잇지 않
염구준이 수압의 영향을 받지 않고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베르는 당황했다.이제 손에 무기도 없어서 어떻게 막아야 할지 막막했다.“멈춰!”“당장 공격을 멈춰!”“부성주님, 조심하세요!”그 장면을 보던 반보천인 세 명은 막을 겨를도 없이 소리를 질렀다.바로 그때,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염구준은 공격을 멈추고 지하를 내려다보았다.푸!두 사람 사이에 있는 두터운 진흙 속에서 갑자기 무엇인가 모래를 사방에 뿌리면서 올라오는 것이었다.염구준이 재빨리 진흙의 가운데를 잘라버리자 생물체가 죽었는지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마침 검기도 기운을 소진하여 공격을 멈추고 돌아서서 살펴보았다.“젠장, 그냥 지하에 처박혀 있을 것이지, 뭐 하러 죽으러 나왔어?”염구준이 불청객에게 짜증을 부렸다.만약 생물체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이 검에 죽을 사람은 베르였다.진흙과 모래가 가라앉자 다들 생물의 정체를 주시했다.굵기가 2미터나 되고 꼭대기에 날카로운 이빨이 수두룩하게 생긴 심해의 모래벌레였다.이 벌레는 성체가 되면 길이가 30미터에 달하고 풍부한 광물을 함유한 화산암을 먹고 살기에 이 구역에서 텃세가 특히 강했다.그리고 공격성은 형태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방어해! 이것들이 떼로 공격할 거야!”염구준은 통신기에 주의를 주고 잠시 베르를 살해하는 것을 뒤로 미루기로 했다.위험한 상황에 닥쳤으니 자기들끼리 싸운다면 사기를 떨어트리기 때문이었다.푸푸!말이 채 끝나기 전에 수많은 모래벌레들이 땅속에서 나와 무차별한 공격을 퍼부었다.일반 무술인이 한 입에 먹힌다면 바로 두 동강이 났다.반보천인 무술인들은 잠수 장비가 망가지면 심해의 수압을 견뎌야 하기에 역시 방심할 수 없었다.그러니 아무도 죽음을 무릅쓰고 공격하지 않았다.심해 모래벌레들이 신출귀몰하며 공격하자, 다들 혼란에 빠져 허둥지둥했다.그들에 비해 염구준은 다가오는 놈들을 가볍게 잘라냈다.이 벌레들은 사납지 않은데 갑자기 땅속에서 튀어나올 때 당황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염구준은 감지
싸움은 잠시 한 단락 끝났다.베르가 씩씩거리며 통신기에 대고 고막이 터질 듯 소리를 질렀다. “염구준, 왜 우릴 도와주지 않아?!”“당신들도 날 도와주지 않았잖아요.”염구준은 어처구니없는 가스라이팅을 무시하고 반문했다.베르는 이런 말로서 염구준을 각 세력의 반대편에 세워 고립시키려는 수작이었다.이제 막 대군을 지휘할 수 있는 임시 사령관을 담당하게 되었으니 위세를 떨칠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웃기지 마. 우리는 반보천인 무술인이라 다른 무술인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어. 그런데 넌 한심하게 지켜만 보고 있었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아?”베르는 정의로운 척 그의 영혼까지 고문하며 계속 나무랐다.눈치가 없는 무술인들은 정말 베르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하하하. 방금 수십 명이 넘게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렀는데도 당신은 구하러 가지 않고 도망가느라 바쁘던데요? 그 말을 하고도 양심에 찔리지 않습니까?”염구준은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이기적인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는지,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또 염구준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이렇게 분석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말에 휘둘리기 십상이었다.“흥, 따박따박 말대꾸는. 누가 너 같은 놈을 낳았는지 그 어미가 궁금하다.”베르는 솔선수범하지 않으면서 말로도 밀리게 되자 인신공격을 하기 시작했다.“죽고 싶어?”그러자 염구준이 버럭 화를 내며 베르에게 검을 겨주었다.상대방이 시비를 건다면 원하는 대로 한바탕 싸워줄 기세였다.“내가 무서워할 줄 알아?”베르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커다란 방패를 들고 맞섰다.이번 행차에 스텔라성에서 실력이 있는 반보천인 네 명을 파견했기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었다.쿵!염구준의 검이 방패에 닿은 순간 둔탁한 소리가 나며 베르가 뒤로 몇 발치 물러갔다.“물에서 방패를 쓰다니, 죽으려고 작정했군.”물속에서 방패의 부력이 커서 오히려 싸움에 방해가 되었다.그는 계속 검으로 공격하며 가볍게 제압했고, 뒤로
그 생물의 정체는 대왕 오징어였다.이 생물은 빛을 두려워해서 항상 심연에 숨어 있기에 과학자들은 파도에 밀려온 시체들만 주워서 연구했었다.대왕 오징어는 가장 긴 것은 40미터 이상에 달했다.염구준은 지금 상황을 보고 속으로 탄성이 흘러나왔다.“젠장, 오징어 소굴을 건드렸나?”심지어 그중에서 덩치가 큰 오징어는 전신 경지에 도달했다.마침 수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와서 다행이지, 염구준이 혼자 싸운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염 선생님, 이제 어떡해요?”통신기에서 초조한 노신기의 목소리가 들렸다.그 말 뜻은 그가 나서서 천기문의 부하들을 지켜달라는 의미였다.솔직히 그들 실력으로 이렇게 많은 대왕 오징어를 상대하기 버거웠다.“살아남아서 바다 밑 끝까지 오세요.”염구준은 한마디만 남기고 검을 휘두르며 계속 아래로 내려갔다.지금은 사방이 어두워서 대체 누가 누구인지 구분하는 것조차 어려웠고, 모두 자원해서 온 거라 그들을 책임질 의무가 없었다.“다들 최선을 다해 바다 밑으로 내려가자!”노신기는 목숨을 걸 각오로 모두에게 용기를 북돋아주었다.순식간에 각 세력은 대왕 오징어와 무차별적인 싸움을 벌였다.하지만 캄캄한 물속은 대왕 오징어들에게 유리한 곳이라 인간들은 1대1 싸움에서 얼마 버티지 못하고 참담한 희생을 치러야 했다.위기가 닥치자 베르가 긴급 공공 통신 채널을 열고 이런 제안을 했다.“이러다 다 죽습니다. 우리 모두 협력하여 살길을 열어야 합니다. 바다 밑에 도착하면 지금처럼 힘들지 않을 겁니다.”솔직히 베르도 염구준처럼 대놓고 아래로 내려가고 싶었지만 그런 실력이 되지 못했다.“찬성합니다.”“협공합시다!”각자 싸우다가 자칫하면 전멸할 수 있으니 다른 세력들도 이 제안에 동의했다.“반보천인이 앞장서고 전신 경지, 전신지상 무술인이 그 다음, 나머지는 뒤를 따라갑니다!”베르는 정예병을 살리고 나머지는 죽든 살든 상관하지 않을 생각으로 배치하기 시작했다.“공격합시다!”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다른 사람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모두가 슬픔과 공포에 빠져 있을 때 염구준이 두터운 잠수복을 입고 바닷속으로 들어갔다.간밤에 가볍게 생물을 절단하면서 그의 단전은 이미 기운으로 꽉 찼다.“염 선생이 바다에 들어갔어요.”모든 사람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으니 작은 동작이라도 이내 알아챘다.그가 갑작스럽게 뛰어드는 바람에 노신기 일행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대체 왜 저러는 거야?”“내가 앞장 설게요. 촉각이 있는 생물일 뿐, 두렵지 않습니다.”일부 반보천인은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서둘러 잠수복을 입고 바다에 뛰어들었다.염구준의 손에 완벽한 해도가 있으니 그가 정보를 어느 정도 장악하고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그래서 먼저 보물을 찾아낼까 봐 조바심이 났던 것이다.어떤 사람들은 말로는 보물을 찾으러 왔다고 하지만 솔직히 고대 옥패를 노리고 왔다.일단 옥패에 있는 무공을 연마하면 자신의 실력을 제고할 수 있으니 나중에 재물을 손에 넣어도 늦지 않거니와 그때는 더 쉬울 거라 생각했다.염구준은 바다 밑에 있는 균열을 향해 가다가 가끔씩 방향을 조절했다.아직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 가장 힘이 덜 드는 방법을 사용했다.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물고기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점점 어두워져 앞이 보이지 않았다.염구준은 길이가 석 자가 되는 청봉을 잡고는 언제든 적을 무찌를 준비를 했다.방금 잘린 촉각의 길이를 볼 때, 본체에 비해 너무 짧아서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다.만약 덩치가 어마어마한 팔조괴물이라면 아직도 어두운 곳에 숨어 있는 게 틀림없다.촤아아! 촤아아!그때 물살이 바뀌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더니 수백 개의 검은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었다.각 세력의 정예병이 움직인 것이다.어떤 무술인은 일정한 거리에 도착한 후 빠르지도 늦지도 않는 속도로 염구준의 뒤를 따랐다.그가 앞장서서 길을 터달라는 뜻이었다.염구준은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아래 균열이 빨아들이는 대로 끌려갔다.‘얼마든지 따라와 봐.’지금 상황으로 말하자면 누가 누구의 총받이가 될지
선박 위의 사람들이 절박하게 울부짖었지만 아무도 응답하지 않자 각 세력들이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분위기를 보아 곧 위험이 닥칠 것 같았다.촤아아악!“엄청난 것이 몰려오고 있어! 빨리 위로 올라가!”나중에 물에 들어간 무술인들이 제일 먼저 해수면으로 올라와 보고했다.이어서 대다수 무술인들은 통신기에 비명소리만 남기고 사라졌다.각 세력이 어쩔 바를 몰라 혼란에 빠졌을 때, 노신기는 염구준의 옆얼굴을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그의 말이 옳았다.“다들 맞서서 싸웁시다!”염구준은 어마어마한 기운이 몰려오는 것을 감지하고 우렁차게 소리쳤다.그게 무엇이든 이미 상대방을 건드린 이상 맞서서 싸워야 했다.정신을 차린 각 세력들은 갑자기 조상들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떠올라,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무기를 집어 들었다.촤아아!다시 몇몇 사람이 수면위로 올라오더니 놀라운 속도로 선박을 행해 헤엄쳤다.“저게 다 뭐야?”누군가 겁에 질려 비명소리를 질렀다.“나도 몰… 악!”같이 헤엄치던 일행이 말하다 바다 밑에 있는 물건에 잡혀 끌려가고 말았다.그리고 밧줄처럼 생긴 것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 선박에 있는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악!”“살려줘!”순식간에 비명소리와 경악 소리가 섞여서 현장이 아수라장이 되었다.정체를 알 수 없는 생물체에 다들 지레 겁을 먹었다.윙!그때 누군가 열 줄기 검기를 발사해 밧줄처럼 생긴 생물을 잘라버렸다.“저건 또 뭐야? 엄청 단단하네.”제일 처음으로 공격한 사람은 역시 염구준이었다.“끼익!”바다 밑에서 공격을 당한 생물은 날카로운 이명소리를 내며 위로 올라왔다.생각보다 쉽게 잘리자 각 세력들은 용기를 내서 공격을 퍼부었다.“별거 아니네. 단번에 잘려지잖아.”자신감이 생긴 그들은 필사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본래 각 세력의 실력으로 쉽게 생물을 잘라낼 수 있는데, 이 생물이 모두가 혼란에 빠진 틈을 이용해 습격할까 봐 진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물론 염구준도 모든 사람을 책임질 의무가 없으니 주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