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몸부림친 탓에 이미 기력이 바닥난 상태였다.아무리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도 더 이상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결국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조태훈에게 질질 끌려 남설아는 차 안으로 던져졌다.온몸이 축 늘어졌지만 그녀의 손에는 여전히 구겨진 사진 한 장이 꼭 쥐어져 있었다.‘나은아, 우리 불쌍한 아가...’이 세상에 머물렀던 짧은 시간 동안 아이는 아빠인 배서준에게 단 한 번의 사랑도 받지 못했다.단 한 번 안겨 본 적조차 없었다.‘이제는 죽어서조차 저 사람들에게 조롱당해야 한다니... 대체 누가 부모가 될 자격이 없는 거지?’병원.“서준아, 난 정말 괜찮아. 그냥 살짝 긁힌 거야. 그러니까 얼른 집에 가. 설아 씨 상태가 좀 불안정한 것 같아서... 나은이가 걱정돼.”“어른이 잘못했다고 아이까지 벌 받아야 해? 나은이 네 아이잖아.”서유라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인 뒤 어딘가 억울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속으로는 배서준이 다른 여자와 아이까지 뒀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싫었다.‘남설아 따위가 대체 무슨 자격으로?’그러나 그런 감정을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고 배서준 앞에서는 그저 속상한 척, 착한 척해야 했다.“아이를 되찾아 올 거야.”배서준은 무표정하게, 그러나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그 속은 결코 담담하지 않았다.뭔가가 가슴 한쪽에서 둔탁하게 내려앉는 기분이었다.특히 떠나기 직전 남설아의 충혈된 눈동자가 자꾸만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그 감정이 그를 더욱 짜증스럽게 만들었다.배서준이 가장 싫어하는 유형의 여자가 바로 그런 여자들이었다.교활하고 약한 척하며 동정심을 유발하는 여자들 말이다.남설아가 다친 것도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 생각했다.“서준아?”배서준이 생각에 잠긴 걸 알아챈 서유라는 일부러 목소리를 키웠다.‘예전엔 안 이랬는데... 대체 뭐가 달라진 거지?’“난 괜찮아. 아직도 아파?”배서준이 시선을 돌려 서유라를 바라봤다.“네 손은 늘 부드러웠잖아. 게다가 너는 원래
변해버린 남설아의 모습을 보며 배서준의 가슴은 답답하게 조여왔다.“설아 씨, 그렇게 말하지 마. 나랑 서준이는 설아 씨가 생각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야.”서유라가 눈가를 붉히며 본능적으로 배서준의 등 뒤로 숨었다.“우린... 우린 더럽지 않아.”“나와 유라는 원래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어. 네가 억지로 아이를 낳아 나를 붙잡아 두려 한 거지. 그런데 지금은 뭐야? 배씨 가문 사모님으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심지어 엄마로서의 역할도 망각했어.”“나은이가 어디 있는지 당장 말해. 내 화 돋우지 말고.”배서준은 차갑게 말했다.그의 몸이 서유라 앞을 완전히 가려주고 있었다.마치 그녀가 다치기라도 할까 봐 온몸으로 보호하는 듯한 자세였는데 그건 절대 거짓으로 나올 수 없는 반응이었다.남설아는 그 사실을 깨달았다.배서준이 정말로 서유라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그리고 자신은 단 한 번도 그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것도.그렇기 때문에 배나은도 아무 죄 없이 희생당한 것이었다.“그 애는 죽었어요.”남설아는 담담하게 말했다.한 번 더, 똑같은 현실을 다시 입 밖에 냈다.배나은은 죽었고 더 이상 돌아올 수 없었다.“서준 씨, 나은이는 죽었어요. 그리고 우리도 이혼했어요. 이제부터 우리는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뒤이어 그녀는 소파에서 천천히 일어섰다.무릎의 상처가 날카롭게 쑤셨다.하지만 그 고통조차 가슴속 쓰라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배나은은 떠났다.그리고 오랫동안 사랑했던 이 남자도 이제는 필요 없었다.이제 남설아가 바라는 건 단 하나, 배나은을 데리고 이 불행한 곳을 떠나 조용히 사는 것이었다.“너 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야?”결국 폭발한 배서준은 단숨에 다가와 남설아의 턱을 거칠게 움켜쥐었다.금방이라도 으스러질 듯한 강한 힘이었고 그의 눈동자에는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남설아,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 나은이 내놔.”“죽었다고요.”남설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반복했다. 심지어 눈빛엔 비웃음과 경멸이 가득했다.
“나는 나은이의 엄마예요!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나은이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예요! 그런데 내가 어떻게 내 딸을 저주해서 죽게 하겠어요!”“차라리 내가 죽었으면 좋겠어요!”분노 끝에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절망에 빠진 순간이란 아마도 지금 남설아의 모습과 같을 것이다.여자의 눈 속에 서린 절망과 광기가 너무나도 생생해서였을까, 배서준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어떻게 안 되겠어요? 당신이 도대체 뭘 알고 있는데요? 당신 나은이를 사랑해 본 적이라도 있어요? 단 하루라도 나은이를 마음에 둔 적 있냐고요! 나은이는 골육종에 걸렸어요! 골육종이라고요!”“그 아이의 유일한 바람이 뭔 줄 알아요? 마지막 순간에 아빠가 곁에 있어 주는 거였어요. 그런데 당신은요? 당신은 그때 뭘 하고 있었어요? 옆에 있는 여자랑 쾌락을 즐기고 있었잖아요!”눈앞의 남녀를 바라보는 남설아의 눈빛 속에서 격렬한 증오가 뿜어져 나왔다.자신의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 뺏기는 건 상관없었다.하지만 배나은의 마지막 순간에 아빠를 빼앗아 가야 했던 건 참을 수 없었다.‘왜 아이에게서 마지막 희망까지 앗아가야 했냐고!’나은이는 세상에서 가장 착하고 가장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길고 가느다란 주삿바늘이 수없이 몸을 찔러도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심지어 엄마가 걱정할까 봐 억지로 버티면서 쓸데없는 농담을 늘어놓곤 했다. 작은 몸이 고통에 떨면서도 말이다.그런데 그는 아무것도 몰랐다.아이의 아빠라는 사람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따지는 거예요?”“한 번이라도 아이 신경 써 본 적 없잖아요. 그런데 이제 와서 아이가 없어진 걸 가지고 나한테 소리치고 있어요? 당신이 사람이에요? 배서준 씨, 당신한테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이란 게 있기나 해요?”남설아는 이성을 잃은 듯 필사적으로 배서준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이를 악물고 그를 노려보는 눈빛 속에는 분노와 원망이 가득했다.너무도 무정한 그가 미웠다.그리고 스스로가 미웠다. 그토
고개를 젖힌 채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았다. 절대 떨어뜨리지 않겠다는 듯 마지막까지 이를 악물고 참아내다 끝내 남설아는 배서준을 바라보았다.“못 믿겠죠? 그럼 나 따라와요. 직접 보여줄 테니까. 당신 눈으로 보면 이제는 믿겠죠?”“남설아, 날 속이기라도 하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리고 남도일까지도.”남도일.이 세상에서 남설아에게 남은 마지막 혈육이자 유일한 약점이었다.배서준은 언제나 노련했다. 사람을 어떻게 몰아붙여야 하는지 어디를 건드려야 무너지게 할 수 있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정작 그는 아직도 남설아가 변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삼촌은 무슨, 그녀는 이미 오래전에 남도일 따위에는 관심을 끊었다.아니, 차라리 그 인간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까지 생각했다.한 번도 배서준을 돌아보지 않은 채 남설아는 그를 데리고 배나은의 학교로 갔다.그러고는 화실로 갔다.나은이가 가장 좋아하던 디저트 가게도 갔다.그리고 나은이가 좋아했던 놀이공원으로도 갔다.마지막으로 별장의 공원으로 돌아왔다.하지만 어디에도 배나은의 흔적은 없었다.이건 배서준이 처음으로 배나은의 삶에 가까워진 순간이었다.처음으로 아이가 살아온 세상을 직접 마주한 순간이었다.그러나 배나은이 가장 자주 머물렀던 이곳들에서 아무도 배서준을 알아보지 못했다.더욱이 그가 나은이의 아빠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조차 없었다.유치원 선생님은 몇 번이고 말했다.배나은이 학교에서 아빠가 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놀림받고 왕따를 당하기도 했다고.그리고 그 아빠라는 사람이 얼마나 무책임한지를 질책했다.이 모든 것들을 배서준은 몰랐다.아니, 애초에 알고자 한 적조차 없었다.그는 계략이 많은 여자가 싫었고 자신에게 들러붙는 남설아가 싫었다.그와 함께 그녀가 낳은 아이도 싫었다.그러나 오늘 처음으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죄책감이 피어올랐다.그토록 많은 것들을 놓쳐버린 자신이 처음으로 후회되었다.“남설아, 우리 얘기 좀 하자.”공원의 벤치에 앉은 배서준은 처음으
“남설아, 네가 감히 이따위 태도를 보여?”배서준이 눈살을 찌푸렸다. 조금 전까지 남아 있던 죄책감이 단숨에 사라졌다.이전에는 그저 교활한 여자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이성은 있는 사람이라고 믿었다.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미쳐버린 게 분명했다.“누가 누굴 보고 집착한다고 하는 거야? 우린 이미 이혼했어. 그런데도 아직도 이러고 있는 의도가 뭔데?”“설마 이제 와서야 날 잃고 나니 사랑했던 걸 깨달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나한테 매달리겠다고요?”“그럼 당신 옆에 있는 그 귀한 서유라 씨는 어쩌고요?”남설아가 갑자기 비웃음을 터뜨렸다.그 시선 속엔 혐오와 조소가 뒤섞여 있었고 그녀의 차가운 눈빛은 서유라의 가슴을 단숨에 도려냈다.“서준아, 만약 정말 설아 씨를 사랑한다면 난 물러나도 돼.”“난 그저 널 좋아했을 뿐이야. 다른 건 바라지 않아. 만약 날 원하지 않는다면 그냥 솔직하게 말해.”서유라는 말을 하면서 눈물을 떨궜다.그러나 황급히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배서준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했다.배서준은 그런 서유라의 모습을 보자 순간 가슴이 아려왔다.하여 곧바로 서유라의 허리를 감싸 안고 차가운 눈빛으로 남설아를 내려다봤다.“네 착각이야.”“나은이가 아니었다면 난 널 단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어.”그는 코웃음을 쳤다.“이 아이가 어떻게 태어났는지는 너도 알잖아. 그건 너 스스로 꾸민 일이었고 책임도 네가 져야 해.”“설아 씨, 난 설아 씨가 줄곧 서준이가 날 좋아하는 걸 질투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를 이용해서 협박하는 건 선을 넘은 거야.”서유라는 가식적인 한숨을 쉬며 마치 안타까운 사람을 바라보듯 남설아를 내려다보았다.그 태도는 마치 ‘승자의 여유’라도 된 듯했다.그녀가 지금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은 오로지 남설아를 도발하기 위한 것뿐이었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남설아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지금 이 순간 이 모든 게 한심하게 느껴졌다.‘이딴 여자 때문에 예전에 그렇게
서유라는 속이 뒤틀릴 듯한 기분이었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서준아, 미안해. 내가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서 그래. 결국 다 내 잘못이야. 내가 널 조금 덜 사랑했다면 설아 씨가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텐데...”“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눈빛이 한층 부드러워지더니 배서준은 품 안의 여자를 바라보며 애틋한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어딘가에서 피어오르는 미세한 불편함이 있었다.그가 감지한 것은 분명한 짜증이었지만 그것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그래서 당장은 억눌러야만 했다.곧바로 핸드폰 꺼내 그는 비서 안민재를 호출했다.“나은이가 어디 있는지 찾아봐.”“알겠습니다.”서유라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배나은은 이미 죽었으나 배서준은 아직도 그것을 믿지 않는 듯했다.이제 슬슬 그에게 확실한 현실을 깨닫게 해줄 때였다.그 애물단지가 완전히 사라지기만 하면 더 이상 남설아와 배서준을 엮어줄 연결고리는 없어진다.그때가 되면 서유라, 그녀 자신이 ‘배씨 가문 사모님’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그러나 그 전에 지금 남설아가 너무 기고만장해져 있으니 한 번 제대로 본때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남설아는 떠나려 했다.그러나 일정 변경을 피할 수 없었고 결국 기진맥진한 상태로 작은 집으로 돌아왔다.그런데 문을 열자 예상치 못한 불청객이 기다리고 있었다.“삼촌... 삼촌이 여긴 왜 있어요?”남설아는 손에 쥔 열쇠를 힘껏 움켜쥐었다.표정은 싸늘했고 눈빛은 더욱더 날카로웠다.남도일은 그녀의 반응에 순간 얼굴이 굳었다.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나는 네 외삼촌이야, 이 버릇없는 년아. 네 부모가 일찍 죽었어도 기본적인 예의는 가르쳐줬어야 하는 거 아니냐?”그러자 남설아가 단호하게 말했다.“우리 사이? 그런 거 이제 없어요.”“그리고 삼촌은 여기에 앉아 있을 자격조차 없어요.”오늘만큼은 참지 않기로 했다.남도일은 그동안 자기 말 한마디면 고분고분 따르던 조카가 이렇게까지 정면으로 맞서는 모습을 상상조
지금 그 사람도 곁에 없고 결혼도 끝나버린 마당에 이 쓸모없는 물건을 굳이 계속 가지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남설아는 단숨에 반지를 빼내어 던지듯 남도일에게 건넸다.“이게 집보다 훨씬 비싸요. 팔아서 삼촌 마음대로 써요. 하지만 앞으로 다시는 나한테 연락하지 마요.”“설아, 이럴 줄 알았다! 네가 이렇게 철이 들었을 줄이야. 네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나 아니겠어? 걱정 마,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삼촌이 꼭 지켜줄게.”“보아하니 요즘 살도 많이 빠졌더라. 삼촌이 맛있는 거 사줄까? 우리 오랜만에 같이 밥이나 먹자.”그가 갑자기 친절을 베풀자 남설아는 순간 주저했다.사실 어릴 적엔 정말 그와 가장 가까웠다.항상 삼촌을 따라다녔고 그때만큼은 누구보다 의지하던 존재였다.문득 시선이 벽에 걸린 오래된 가족사진으로 향했다.깊게 숨을 들이마신 그녀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한 끼 정도는 괜찮겠지.’그러자 남도일은 기다렸다는 듯 단숨에 남설아의 손목을 붙잡고 집을 나섰다.그의 시선은 오로지 저녁 식사에만 쏠려 있었고 남설아의 손에 남은 상처도, 무릎에 흐르는 피도, 그 무엇도 신경 쓰지 않았다.처음에는 단순히 가까운 곳에서 대충 한 끼 때우는 줄 알았다.그런데 막상 도착한 곳은 고급 레스토랑이었다.남설아는 순간적으로 손목을 뿌리치고 한 발짝 물러섰다.그리고 눈을 가늘게 뜨며 남도일을 노려보았다.“돈 없다면서요? 그런데 이런 데서 밥을 먹겠다고요?”남도일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고작 밥값 정도야 내가 감당할 수 있지. 너는 내 하나뿐인 외조카잖아? 삼촌이 제대로 대접해야지.”그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남설아를 안으로 끌어들였다.문 안으로 들어서자 그는 익숙하게 VIP 룸 번호를 불렀다.그 말을 들은 직원은 잠시 남설아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그런 다음 고개를 끄덕이며 방 안으로 안내했다.순간 남설아의 등에 오싹한 소름이 돋았다.직원의 눈빛이 어딘가 이상했고 이 분위기도 이상
“네 삼촌이 나한테 4억을 빚졌어. 그래서 널 대신 넘기겠다고 하더군!”원길호의 눈빛엔 탐욕이 가득했고 거칠고 위압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 손을 뻗어 그는 남설아의 턱을 움켜쥐고 찬찬히 얼굴을 살폈다. 그러더니 고개를 저으며 비웃었다.“좀 마른 게 흠이긴 한데 그래도 얼굴은 괜찮네. 4억으론 좀 아까운걸?”“아, 아니에요! 제발 함부로 굴지 마요! 제가 줄게요. 4억, 제가 마련할 수 있어요!”“그러니까 제발 그러지 마요!”눈물이 한순간에 쏟아졌다. 목소리는 떨렸고 두려움에 몸까지 굳어버렸다. 반사적으로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어 마구잡이로 화면을 눌렀다.핸드폰이 바뀌었어도 시스템 설정은 동일했다. 배서준이 긴급 연락처로 등록되어 있었고 통화가 자동으로 연결됐다.하지만 여러 번 시도해도 돌아오는 건 ‘연결할 수 없습니다’라는 차가운 안내음뿐이었다.원길호는 남설아가 도움을 요청하려는 걸 눈치챘다. 하지만 전화기에서 반복해서 들려오는 기계음에 비웃음을 터뜨렸다.“애송아, 아무도 널 구하러 올 사람 없나 보네?”남설아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원길호는 짜증이 난 듯 거칠게 그녀의 옷깃을 잡아챘다. 그러더니 단숨에 테이블 위로 내동댕이쳤다.그 바람에 탁자 위에 있던 그릇과 젓가락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남설아는 바닥에 내리 찍힌 통증에 몸을 움츠렸지만 그보다 더 절박한 상황이 닥쳐오고 있었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그녀는 벽 쪽으로 움츠러들었다.“제발 이러지 마세요. 제발, 제가 돈 줄게요. 정말로 줄 수 있어요!”그녀는 단출한 셔츠 한 장만 걸친 상태였는데 원길호의 거친 손길에 단추가 튕겨 나갔다. 앞쪽이 벌어지면서 하얀 피부가 드러났고 그녀 특유의 은은한 향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여자의 향기 때문일까 원길호의 눈빛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다시 다가가더니 그는 망설임 없이 손을 뻗었다.“돈? 돈은 이미 많아. 난 지금 너를 원해.”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압적인 키스가 쏟아졌다.“안 돼요! 제발... 제발 부탁이에요. 날 놔줘요!”남설아는 숨이
“말했잖아요, 전 그런 일 한 적 없다고요!”강연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지금 이건 명백한 조작이에요!”“강연찬 씨, 진정하세요.”형사가 말했다.“저희는 절차에 따라 조사 중입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전 제 변호사를 부르겠습니다.”강연찬은 단호하게 말했다.“변호사 도착 전까진 어떤 질문에도 답하지 않겠습니다.”강연찬의 강경한 태도에 경찰은 더 이상 묻지 못하고 그를 임시 유치장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그 시각, 남설아는 경찰서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불안감은 점점 커져갔다.혹시나 강연찬이 억울한 대우를 받고 있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대표님, 너무 걱정 마세요.”곁에 있던 천기준이 위로하듯 말했다.“강연찬 씨는 운도 따르는 분이잖아요. 분명 괜찮으실 겁니다.”“그랬으면 좋겠어요.”남설아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제발 큰 고통은 안 받았으면 좋겠어요.”그때, 송우민이 급히 걸어왔다.“남설아!”그가 말했다.“강연찬 결백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 찾았어.”“정말?! 너무 잘됐네!”남설아는 눈을 반짝이며 외쳤다.“어디 있어? 얼른 보여줘!”송우민은 준비해온 서류를 그녀에게 건넸다.문서를 받은 남설아는 꼼꼼히 읽기 시작했다.“이건...!”남설아의 눈빛이 확 달라졌다.“이게 바로 선배의 결백을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야!”“맞아.”송우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 서류만 있으면 경찰에 정식으로 석방 요청할 수 있어.”“잘됐다!”남설아는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지금 바로 가자.”그렇게 두 사람은 그 증거를 들고 사건을 담당한 형사를 찾아갔다.“형사님, 이게 강연찬 씨의 결백을 증명하는 증거입니다.”남설아가 단호하게 말했다.“지금 당장 풀어주세요.”형사는 서류를 받아 꼼꼼히 읽어보았다.하지만 그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이게... 이게 어떻게...”형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이 자료 어디서 나신 겁니까?”
남설아는 꿈에도 몰랐다.배서준이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비열해질 줄은.무고한 강연찬을 덫에 빠뜨리다니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이걸 어쩌면 좋지...”남설아는 마치 불에 달궈진 솥 위의 개미처럼 초조하게 사무실 안을 서성였다.그녀는 누구보다도 강연찬의 성격을 잘 알았다.그런 사람이 기업 기밀을 유출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였고 분명 배서준이 꾸민 계략이다.“대표님, 우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천기준이 그녀를 달래며 말했다.“분명 방법이 있을 겁니다. 강연찬 씨를 반드시 구해낼 수 있어요.”“대표님, 지금은 침착하셔야 해요.”천기준이 진정시키려 애썼다.“우선은 증거를 찾아야 합니다. 그분의 결백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요.”남설아가 마음을 졸이고 있을 때, 송우민이 급히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남설아! 강연찬 잡혀갔다고 들었어. 무슨 일이야?!”들어서자마자 다급하게 물었다.“다 배서준 그 비열한 놈이 한 짓이야!”남설아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날 무너뜨리겠다고 선배까지 끌어들였어. 기업 기밀 유출 혐의로 덮어씌운 거야. 진짜 너무 뻔뻔하지 않아?!”“그 자식, 도대체 어디까지 가려는 거야?!”송우민도 참지 못하고 분노했다.“가자. 당장 경찰서로 가서 따져보자. 배서준 그 자식, 자기가 진짜 법 위에라도 있는 줄 아나 본데?”송우민은 말하자마자 남설아의 손을 잡고 나가려 했다.하지만 남설아는 걸음을 멈췄다.“잠깐만.”그녀가 조용히 말했다.“지금 당장 달려가는 건 좋지 않아. 그럼 배서준만 신나게 해주는 꼴이야.”“그럼 어쩌자는 거야?”송우민이 물었다.“강연찬이 억울하게 잡혀 있는데 그냥 보고만 있어?”“그럴 순 없지.”남설아는 단호하게 말했다.“하지만 우리 쪽에서 먼저 증거를 찾아야 해. 선배가 억울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를.”“증거라니... 어디서 그런 걸 찾는다는 건데?”송우민은 고개를 저었다.“배서준 그 여우가 얼마나 치밀한데. 흔적 하나 남기지 않았을 거야.
“안 돼요!”남설아는 단호했다.“확실한 증거 없이는 누구도 선배 데려갈 수 없어요!”“설아 씨, 이거 지금 공무집행 방해하시는 겁니다!”간호사가 다급해졌다.“상관없어요!”남설아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증거 가져오기 전엔 누구든 손도 못 댈 거예요!”“설아야, 이러지 마.”강연찬이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아당기며 말했다.“잠깐 가서 설명하면 돼. 금방 끝날 거야.”하지만 남설아는 선뜻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그녀의 눈빛엔 여전히 깊은 불신과 걱정이 가득했다.“정말 괜찮아.”강연찬이 조용히 위로하듯 말했다.“여기서 기다려줘. 금방 돌아올게.”“선배”남설아가 뭔가 더 말하고 싶어 했지만 강연찬이 먼저 말을 이었다.“말 들어.”그의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단호했다.“나 믿어줘.”남설아는 잠시 그의 눈을 바라보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응, 기다릴게. 꼭 돌아와.”그렇게 강연찬은 경찰과 함께 병실을 나섰고 남설아의 가슴엔 불안이 가득 밀려들었다.“배서준, 당신의 진짜 비열하고 더러운 짓을 끝까지 봐줄 줄 알았어?”남설아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곧장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천기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천 비서님, 누가 선배 뒤통수쳤는지 당장 찾아봐요.”남설아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세세한 내막까지 다 밝혀야 해요.”“네, 대표님. 지금 바로 조사해보겠습니다.”천기준은 긴장한 목소리로 답했다.전화를 끊은 남설아의 눈빛은 분노로 불타올랐다.한편, 강연찬이 경찰에게 끌려간 이후 배씨 가문 쪽도 평온하지 않았다.서유라의 ‘병세’가 갑자기 악화된 것이다.그녀는 병상에 누운 채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고 고통스러운 듯 신음을 흘렸다.“서준아... 나 너무 힘들어...”서유라는 배서준의 손을 꼭 쥐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나... 나 정말 죽는 거 아니야?”“무슨 소리야!”배서준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넌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절대 그렇게 안 놔둘 거니까.”“근데...
배서준은 마치 벼락을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며 모든 책임을 단번에 남설아에게 떠넘겼다.“그 여자한텐 이익밖에 없어. 진심 같은 건 애초에 없었어.”배서준의 목소리는 경멸로 가득 차 있었다.“지금은 모든 사람이 등을 돌렸고 강연찬 혼자만 멍청하게 그 여자 편에 서 있지. 당연히 제거하고 싶겠지!”“서준아, 혹시... 설아 씨를 오해한 건 아닐까?”서유라가 조심스레 물었다.“강연찬 씨가 다친 것도 정말 단순한 사고였을 수도 있잖아.”“사고? 세상에 그렇게 많은 사고가 어딨어!”배서준의 감정은 갈수록 격해졌다.“넌 몰라, 그 여자가 얼마나 무서운 여잔지! 예전에도 나한테 보복하겠다고 우리 딸한테까지 손을 댈 뻔했어! 그런 여자라면 뭐든 할 수 있어!”“서준아, 진정해. 너무 흥분하면 몸 상해.”서유라가 다급히 그를 달래려 애썼다.“내 말은... 그래도 한때 부부였잖아. 뭔가 오해가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오해? 나랑 그 여자 사이엔 오해 같은 거 없어. 오직 증오뿐이야!”배서준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그 여자가 내 인생을 망쳤어. 난 절대 용서 못 해!”서유라는 그런 배서준을 보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역시나, 남설아 이야기를 꺼내기만 하면 배서준은 이성을 잃었다.“서준아, 그럼 어떻게 할 거야?”서유라가 물었다.“이대로 설아 씨가 날뛰는 걸 두고만 볼 순 없잖아?”“내가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배서준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강연찬이 중요하지? 그럼 두 눈 뜨고 그 인간이 무너지는 걸 보게 해주지.”“서준아, 하지만 너무 성급하게 움직이면 안 돼.”서유라는 일부러 걱정스러운 척 말을 보탰다.“강씨 가문도 만만한 가문은 아니잖아. 괜히 건드렸다가...”“걱정 마. 난 계산 다 하고 있어.”하지만 배서준은 그녀의 말을 끊었다.“이번엔 반드시 남설아한테 값을 치르게 만들 거야.”서유라는 그의 단호한 눈빛을 보며 입가에 얄미운 웃음을 지었다.‘남설아, 이제 네 차례야. 각오하라고.’한편, 병원 정원에서는
“지금도 강연찬 씨는 병원에 누워 계세요, 대표님은...”천기준이 망설이다 말끝을 흐렸다.“알고 있어요.”남설아가 그의 말을 끊었다.“선배는 내가 잘 돌볼게요. 걱정하지 마요.”“대표님, 대표님도 몸 좀 챙기셔야 합니다.”천기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이렇게 계속 버티시면 몸이 먼저 무너집니다.”“알겠어요. 천 비서님은 먼저 들어가요.”남설아가 말했다.“회사 일은 천 비서님이 맡아줘요.”“네, 대표님. 소식 있으면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그렇게 천기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남설아가 병실로 돌아왔을 때 강연찬은 잠든 상태였다.그의 고요한 얼굴을 바라보며 남설아는 조용히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선배... 고마워.’속으로 말을 걸었다.‘항상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워.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줘서 정말 고마워.’남설아는 수건을 들어 따뜻한 물에 적신 뒤, 강연찬의 이마와 뺨을 조심스레 닦아주었다.혹시라도 잠을 깰까 봐 손길 하나하나가 무척이나 부드러웠다.“선배, 꼭 빨리 나아야 해.”그녀는 속삭이듯 말했다.“하고 싶은 말도, 같이 해야 할 일도 아직 정말 많으니까.”그렇게 밤이 새도록 남설아는 강연찬 곁을 지켰다.다음 날 아침, 강연찬의 상태는 많이 좋아졌다.이제는 침대에서 일어나 움직일 수 있을 정도였다.남설아는 그와 함께 병원 정원을 천천히 산책했다.두 사람은 맑은 공기를 마시며 따스한 햇살을 느꼈다.“설아야, 며칠 동안 정말 고마웠어.”강연찬이 말했다.“너 아니었으면 난 지금쯤...”“선배, 그런 말 마.”남설아가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나 때문에 다친 거잖아.”날카롭던 평소의 분위기를 거두고 남설아는 조용히 웃었다.“내가 돌보는 건 당연한 일이야. 지금은 아무 걱정 말고 푹 쉬어. 다른 건 나중에 생각하자고.”이 말에 강연찬은 마음속에 있던 말들을 더는 하지 않았다.그저 눈을 감고 이 평온한 순간을 누렸다.그 시각, 배건 그룹.“남설아, 그 여자 진짜 사람 우습게 보네!”배서준이 책상을 쾅
병원 안에는 소독약 냄새가 가득 퍼져 있었고 그 기운은 사람을 숨 막히게 만들 만큼 무겁고 침울했다.남설아는 병상 옆에 앉아 창백한 얼굴로 누워 있는 강연찬을 바라보며 죄책감과 자책으로 가득 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그녀는 꼬박 사흘 밤낮을 병실 곁에서 떠나지 않았고 그 탓에 눈엔 실핏줄이 가득하고 얼굴도 많이 수척해졌다.그 사흘 동안, 그녀는 자신과 강연찬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순간을 떠올렸고 마음속엔 후회와 미안함이 끝없이 밀려들었다.만약 강연찬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평생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것이었다.그리고 4일째 되는 아침, 강연찬이 마침내 눈을 떴다.남설아의 수척한 얼굴을 보자 그는 가슴이 아려왔다.“설아야, 너 지금 뭐야, 왜 이렇게까지 됐어...”강연찬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나 이제 괜찮잖아.”“선배, 드디어 깨어났네!”기쁨에 북받쳐 남설아는 눈물을 쏟았다.“정말...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죽는 줄 알았어.”“바보야, 나 이렇게 멀쩡하잖아.”강연찬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지만 온몸에 힘이 빠져 꿈쩍도 하지 않았다.“울지 마. 또 울면 예쁜 얼굴 망가져.”남설아는 눈물 섞인 웃음을 지으며 그의 손을 꼭 잡았다.“선배, 미안해. 다 내 잘못이야. 선배를 이런 일에 끌어들이면 안 됐는데...”“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강연찬은 나직이 말했다.“우린 친구잖아. 도와주는 게 당연하지. 그리고 말이야, 나도 사실 너 때문만은 아니야. 배서준이라는 인간, 나도 예전부터 보기 싫었거든.”그 말을 들은 남설아는 가슴이 찌릿해졌다.강연찬은 그녀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애써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있었다.“선배, 말하지 말고 푹 쉬어.”남설아가 조용히 말했다.“의사 선생님이 그러셨거든. 과다출혈로 회복까지 시간이 좀 걸릴 거라고.”“응.”강연찬이 고개를 끄덕였다.“근데 너는? 너 요 며칠 거의 못 잤지? 어서 가서 좀 자.”“안 피곤해.”남설아는 고개를 저
그 말을 들은 서도현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알았어, 누나. 이 일은 나한테 맡겨.”그는 가슴을 두드리며 장담했다.“누나가 만족할 만큼 깔끔하게 처리할게.”서유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럽게 말했다.“도현이 너라면 믿을 수 있어. 하지만 절대 흔적을 남기면 안 돼.”“걱정 마, 누나.”서도현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내가 아는 사람들은 다 전문가들이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어.”그렇게 서도현은 조용히 킬러 몇 명을 접선해 남설아를 제거하라고 지시했다.“성공만 하면 돈은 얼마든지 줄 수 있어.”그 말에 킬러들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돈 냄새에 눈이 먼 그들은 바로 행동에 나섰다.그들은 남설아를 몰래 따라다니며 기회를 엿보기 시작했다.한편, 강연찬은 최근 배서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챘다.배서준이라면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인물이었다.남설아의 안전이 걱정된 강연찬은 그녀 주변의 보안을 은밀히 강화했다.신뢰할 수 있는 경호원들을 붙여 24시간 감시하게 하고 그녀의 집 주변에는 감시 카메라도 설치했다.그리고 결국 암살 시도가 벌어진 날, 킬러들이 남설아의 집 안으로 침입했다.완벽하게 은밀하게 움직였다고 생각한 그들은 자신들의 모든 행동이 이미 감시망에 포착된 줄은 꿈에도 몰랐다.남설아에게 칼끝이 겨누어지려는 순간, 강연찬이 경호원들과 함께 들이닥쳤다.치열한 몸싸움이 벌어졌다.강연찬은 혼자서도 여러 명을 상대할 만큼의 실력을 지녔기에 전혀 물러섬 없이 킬러들과 싸웠다.경호원들까지 가세하자 상황은 격렬해졌고 결국 킬러들은 모두 제압되었다.남설아는 다치지 않았지만 강연찬은 심하게 부상을 입었다.칼에 복부를 찔렸고 피가 쉼 없이 쏟아져 나왔다.경호원들이 급히 강연찬을 병원으로 이송했고 긴급 수술이 시작됐다.소식을 들은 남설아는 모든 걸 제쳐두고 병원으로 달려갔다.수술실 앞, 그녀는 눈물과 함께 기다림을 견뎠다.가슴은 쿵쾅거리며 터질 듯 뛰었다.‘제발... 아무 일 없어야 해.’그녀는
배건 그룹의 주가는 끝없이 추락했고 시가총액은 절반 이상이 날아갔다. 주주들의 불만도 극에 달했다.배서준은 깊은 고민 끝에 결국 남설아를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이건 그의 마지막 기회였다. 만약 남설아가 용서해주지 않는다면 그는 진짜 끝장날 것이었다.그는 남설아의 사무실을 찾았다. 한때 이곳은 배서준도 함께 쓰던 공간이었지만 지금의 그는 그저 외부인, 불쑥 찾아온 침입자일 뿐이었다.남설아는 책상 앞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서류를 보고 있었다. 모든 것을 손안에 쥐고 있는 사람처럼, 그녀는 놀라울 만큼 평온하고 침착해 보였다“남설아.”입을 열었지만 배서준의 목소리는 몹시 갈라져 있었다.남설아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눈빛은 차가웠고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왜 왔어요?”그녀는 담담하게 물었다. 말투에서도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나... 얘기 좀 하려고 왔어.”배서준은 애써 침착한 척했다.“우리가 아직 무슨 얘기를 더 해야 하죠?”남설아는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 눈빛엔 조롱이 가득했다.“내가... 예전에 잘못했어.”배서준은 고개를 숙이며 후회의 기색을 보였다.“하지만 지금은 내 잘못을 인정하고 벌도 받았어. 그러니까 나 한 번만 봐주면 안 되겠어?”“봐달라고요?”끝내 남설아는 비웃음을 터뜨렸다.“배서준 씨, 미안하다 한마디로 나한테 준 고통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해요?”“난...”입을 뗐지만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남설아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자신이 그녀에게 저지른 일들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깊은 상처였다.“당신은 우리 딸을 죽였고 내 인생을 망가뜨렸어요. 나로 하여금 모든 걸 잃게 만들었죠!”남설아의 목소리는 높아졌고 눈빛엔 분노와 원망이 가득했다.“그런데 이제 와서 그냥 한 번만 봐달라고요? 당신이 뭔데요?”“보상할게.”배서준이 다급하게 말했다.“나를 용서만 해준다면 뭐든 다 줄게. 배건 그룹도 넘기겠어. 네가 원하면 다 줄 수 있어!”“보상?”남설아는 싸늘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당신이
두 사람이 달콤한 상상에 빠져 있을 때 배서준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여보세요, 무슨 일이야?”배서준은 전화를 받으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배 대표님, 큰일 났어요!”전화 너머에서 비서의 목소리가 급하게 들려왔다.“인터넷에 갑자기 대표님에 대한 부정적인 뉴스가 폭로됐어요, 지금 이미 난리가 났습니다!”“뭐?!”배서준은 깜짝 놀라며 서둘러 컴퓨터를 켰다.정말로, 인터넷에는 배서준에 대한 부정적인 뉴스가 도배처럼 퍼져 있었다. 사생활 문란, 직권 남용, 상업 사기 혐의 등, 하나하나가 그를 사회적으로 몰락시킬 만큼 심각했다.“이... 이게 무슨 일이야?”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진 배서준은 자신이 이렇게 강력한 공격을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서준아, 무슨 일이야?”서유라는 배서준의 얼굴이 안 좋아지자 급히 물었다.“문제가 생겼어.”배서준의 목소리가 떨렸다.“누군가 내 불법적인 정보들을 인터넷에 폭로했어.”“뭐?!”서유라도 크게 놀라며 물었다.“이게 어떻게 된 거야? 누가 그랬어?”“남설아 그 악질인 여자 말고 누가 있어?”배서준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이건 분명 나에게 복수하려는 거야!”“못된 사람, 진짜 끝까지 집착하네?!”서유라도 분노했다.“서준아, 그럼 우리 지금 뭐 해야 해?”“뭘 어떡하긴? 빨리 대처해야지!”배서준이 고함을 질렀다.“언론에 연락해서 이 부정적인 뉴스를 덮어야 해!”“하지만 대표님, 이번 일은 너무 커서 쉽게 덮기 어려울 것 같아요.”비서의 목소리에는 무기력함이 묻어났다.“상관없어! 돈이 얼마나 들든지, 이 부정적인 뉴스는 무조건 덮어야 해!”배서준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이것도 못 덮으면 너희들 다 잘려야지!”비서는 배서준의 분노에 놀라 몸을 떨며 급히 대답했다.“네, 대표님, 바로 처리하겠습니다.”비서가 사무실을 떠난 후, 그의 뒤로 욕설이 퍼져 나왔다.처음엔 부부였고 남설아는 목숨을 걸고 자신을 사랑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