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서준은 자신이 남설아에게 결정타를 날렸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위협은 남설아 눈에는 그저 웃기는 소리일 뿐이었다.심지어 남설아는 가끔 배서준의 사고방식은 도대체 어떻게 생긴 건지 궁금했다.예전에는 자신이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면 진짜 연애에 눈먼 건 배서준 쪽 같았다.인제 와서 이 모든 일이 그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라고 생각한다니, 정말 뻔뻔함도 이런 뻔뻔함이 없다.남설아는 고개를 저으며 피식 웃고 바로 자리에 누워 병실에서 평온한 요양 생활을 즐기기 시작했다.한편 차 안에서는 서유라가 조심스럽게 배서준을 바라보며 작게 물었다.“서준아, 우리 이제 어떻게 해?”“그깟 돈 좀 주면 어때.”배서준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배건 그룹은 어쨌든 수천억을 움직이는 대기업이고 고작 260억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아직 부부 사이였기에 돈이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넘어가는 것과 다름없었다.오히려 본가가 진짜로 정리돼 버린다면 그 피해는 자신들이 입게 되고 그 순간 상류사회 전체의 웃음거리가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서유라는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이었다.‘어떻게 배서준이 남설아에게 260억이나 그냥 줄 수가 있지? 대체 뭔 자격으로 그런 걸 받아?’그녀는 그동안 배서준 옆에 있으면서 얼마나 많은 뒷말과 차별을 감내했는데 그렇게 받은 돈을 다 합쳐도 260억의 10분의 1도 안 됐다.그녀는 처음으로 느꼈다. 배서준의 사랑이라는 건 결국 허상일 뿐이었다.배서준은 그런 서유라의 눈빛 속 못마땅한 감정을 알아채고는 안쓰럽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기분 풀어. 너 바닷가 별장 좋아했잖아. 월요일에 명의 이전할 때 그 별장 네 이름으로 해줄게, 어때?”예전 같았으면 별장을 받는다는 건 큰 선물이었을 것이다.하지만 이미 260억이라는 금액을 본 이상, 별장은 그냥 구걸하는 사람에게 던져주는 적선 같았다.그래도 서유라는 놀란 척을 하며 환하게 웃고 배서준의 어깨에 기대며 말했다.“역시 서준이 너뿐
서유라는 화가 나서 컵을 몇 개나 집어 던졌다. 그런 누나의 모습에 서도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별것도 아닌 천한 년이잖아. 매형 돈은 곧 누나 돈인데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걔한테 넘겨주다니? 누나, 내가 나서서 그 여자 제대로 혼쭐내줄까?”서유라는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서도현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이번에는 제발 신중하게 해. 괜히 설쳐서 또 손해 보는 일 없게. 알겠지?”“걱정하지 마. 그냥 여자 하나 처리하는 건 일도 아니지.”서도현은 주먹을 꽉 쥐었다. 지난번 교도소에 갔다 온 것도 결국 그 여자 때문이라는 생각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이번엔 진짜 예전 일까지 싸잡아서 복수해주겠다고 이를 갈았다.그렇게 일주일이 훌쩍 지났다.그동안 남설아는 병원에서 아주 얌전히 요양 생활했다. 몸도 많이 회복돼서 살도 약간 올랐다.강연찬은 일부러 시간을 내서 꽃다발을 들고 남설아가 퇴원할 때 병원에 찾아왔다. 병실에 들어섰을 때는 마침 남설아가 옷을 갈아입고 있었을 때였다. 하얀 등을 드러내고 있었고 그 위에는 선명하고 끔찍한 상처 자국이 있었다. 피부 대부분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나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강연찬은 거의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고 얼굴 끝까지 빨갛게 달아올랐다.하지만 남설아는 등을 돌린 상태였고 보여준 건 단지 뒷모습뿐이라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휘저으며 담담히 말했다.“다 입었어요. 돌아보세요.”비록 등 한쪽을 본 것뿐인데도 강연찬은 자꾸 괜한 상상을 하게 됐다.하얀 등이 눈앞에 아른거리다 남설아의 얼굴과 겹치니 마음속의 작은 불씨가 더 활활 타올랐다.강연찬은 어색하게 꽃다발을 내밀며 말했다.“퇴원 축하해.”“고마워요, 오빠. 근데 오늘 월요일이라 바쁠 텐데 어떻게 시간 냈어요?”남설아는 꽃을 받아들며 고개를 살짝 기울여 강연찬을 궁금하다는 듯 바라봤다.강연찬은 앞으로 성큼 다가와 USB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이건 연훈 그룹에서 우리한테 요구한 기술자료야. 우
배서준이 제일 싫어하는 건 남설아가 다른 남자에게 웃는 거였다. 그것도 하필이면 강연찬이라니 더 화가 났다.그는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가 강연찬 앞에서 남설아의 허리를 확 감싸 안으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 순간 방 안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하지만 강연찬의 눈에는 배서준의 행동이 유치하게만 보였다. 그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그럼 난 이만 가볼게. 방해하지 않을게.”“거기 서요. 앞으로 내 아내 앞에서 얼쩡대지 마요.”배서준은 남설아의 허리를 감싼 채 강연찬을 향해 경고했다.“아내? 배 대표님이 말 안 했으면 몰랐겠네요. 설아가 그쪽 아내였어요?”강연찬은 인내심을 가지고 멈춰 섰고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그대로 웃어버렸다. 그리고는 가볍게 말했다.“설아가 병원에 입원한 일주일 동안 난 매일 찾아왔고 직접 요리도 해줬어요. 배 대표님은요? 얼굴 한 번 안 비췄잖아요. 그런데 감히 설아가 그쪽 아내라고요?”“당신!”배서준은 말문이 막혔다. 그는 본능적으로 남설아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이런 상황에서도 배서준은 꿋꿋하게 말했다.“그건 우리 부부 사이 문제에요. 그쪽이 참견할 일 아니죠.”“두 사람 부부 문제는 나랑 상관없죠. 하지만 내 후배 문제는 내가 그냥 넘길 수 없어요. 배 대표님, 착각하지 마요. 내가 신경 쓰는 건 그쪽이 아니에요. 정말 우습네요.”그 말을 남기고 강연찬은 돌아섰다. 그 뒷모습은 마치 전투에서 이긴 장군처럼 당당했다.남설아는 그런 강연찬의 유치한 승리감에 실소를 터뜨렸다.‘아니, 이 사람 대학교 때보다 더 애 같아졌네?’“남설아, 넌 정말 아내로서 해야 할 도리를 모르는구나. 넌 내 배서준의 아내고 배건 그룹 사모님이라고. 다른 남자랑 이렇게 당당하게 다니다니, 배씨 가문 체면은 생각 안 해?”그는 남설아를 거칠게 밀어내고 따지듯 말했다. 하지만 남설아는 그런 질문이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서준 씨는 서유라 허리 휘감고 세상 다 돌아다
서유라는 원래 눈빛으로 기선 제압하려던 중이었지만 남설아가 이렇게 단순하고 거칠게 자기를 대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그녀는 얼굴빛이 확 변했고 배서준이 나오는 걸 곁눈질로 보자마자 바로 태도를 바꿔 불쌍한 척하며 말했다.“설아 씨, 내가 좀 멀미가 심해서 앞자리에 앉은 건데 너무 화내지 마.”“운전하면 되잖아? 그것도 앞자리니까.”남설아는 팔짱을 낀 채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서유라를 바라봤다.“그건...”서유라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남설아를 바라봤다. 이 여자의 논리가 이렇게 치밀하고 말 한마디로 사람을 말문이 막히게 만들 줄은 정말 몰랐다.“서준 씨는 오늘 아주 바쁘잖아. 유라 씨는 원래 눈치 빠르지 않았어? 여기서 시간 낭비하고 있을 틈이 있나? 멀미 심하면 유라 씨가 운전해. 난 내가 앉아야 할 자리에 앉아야겠어.”남설아는 더 이상 서유라의 연기에 관심 없다는 듯 소독 물티슈를 꺼내 조수석 시트를 꼼꼼하게 닦고는 툭 하고 자리에 앉았다.그 행동을 본 서유라는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배서준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서준아, 나 그냥 택시 타고 갈게.”“타, 같이 가.”배서준은 뒷좌석 문을 열며 서유라를 향해 한마디만 했다.그제야 서유라는 오늘 조수석은 포기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불만은 가득했지만, 이 자리에서 억지 부리면 더 손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이를 악물고 조용히 뒷자리에 올라탔다.배서준도 뒷자리에 타면서 조용히 서유라의 손을 잡아주었고 그때 천기준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그는 아무 말 없이 순순히 운전석 문을 열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차를 몰고 부동산 계약 장소로 향했다.서유라는 처음엔 자신이 완전히 밀렸다고 생각했지만, 배서준이 자기 손을 꼭 잡은 걸 보고 곧 깨달았다. 이 사람은 이미 계획을 해두었다.그러자 그녀는 곧 연약한 척 배서준 어깨에 기대며 부드럽게 말했다.“서준아, 나 좀 어지러워.”역겹기 짝이 없었다.남설아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어떻게 저렇게 가증스러운 여자가 뭐가 좋은지 이해가
남설아의 깔끔하고 단호한 행동을 본 천기준은 거의 감탄을 금치 못했다.지금 남설아가 이렇게까지 성장했다는 사실이 정말 믿기지 않았다.그는 남설아가 그냥 순순히 현실을 받아들일 줄로 알았지만, 그녀는 되려 정면으로 반격하는 행동을 보였다.놀란 눈으로 자기를 바라보는 천기준과 눈이 마주치자 남설아는 살짝 웃으며 담담하게 말했다.“제 정당한 권리는 지켜도 되는 거죠?”“그럼요, 당연하죠. 당연히 지켜야죠.”천기준은 바로 자신의 태도를 분명히 밝혔다. 그제야 남설아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먼저 가요. 회사에 일도 있고 저 사람들 기다릴 필요 없어요.”“그런데 우리 차는 한 대뿐이잖아요?”“저 사람들은 택시 타고 오겠죠.”남설아는 운전석 문을 열고 앉으면서 천기준을 힐끔 바라봤다.“천 비서님도 택시 타실래요? 택시비는 회사에서 안 나올 텐데요?”천기준은 바보가 아니었다. 굳이 눈앞에 있는 차를 두고 택시를 탈 이유도 없고 더군다나 운전석도 자신이 아닌 남설아가 차지하고 있는데 굳이 말썽 피울 이유도 없었다.그는 바로 조수석 문을 열고 조심스레 탔다.“팀장님, 운전은 하실 줄 아시죠?”천기준은 조심스럽게 물었다.“운전면허 따고 나서 두세 번 정도 해봤어요.”남설아는 웃으며 대답했고 곧바로 시동을 걸고 차를 도로 위로 내달렸다.배서준과 서유라는 막 서류를 마치고 나와서 딱 차가 떠나는 순간을 보게 되었다. 눈앞 주차장이 텅 비어 있는 걸 확인한 두 사람의 얼굴은 동시에 어두워졌다. 서유라는 배서준의 소매를 잡고 조심스럽게 말했다.“서준아, 설아 씨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니야?”“내가 전화해서 차 부를게.”배서준은 냉랭한 얼굴로 회사 다른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고 두 사람은 차가 도착할 때까지 무려 30분 넘게 바람맞으며 서 있어야 했다.배서준은 어릴 적부터 이런 굴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그런데 오늘 자신을 이렇게까지 창피하게 만든 사람이 다름 아닌 남설아였다. 예전엔 언제나 자신 눈치만 보던 그 여자가 이제는 완전히 달
“고마워요, 그런데 제가 여러분한테 맡긴 업무는 어떻게 됐나요?”남설아는 한원준이 건넨 꽃다발을 안고는 자신이 지시했던 업무들을 점검하기 시작했다.그 모습을 본 직원들은 하나같이 웃음을 터뜨렸다.남설아가 이제 막 퇴원한 상황인데도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업무라니, 정말 예상 밖이었다.사람들은 마치 보물 자랑하듯 자신이 맡은 작업 결과물을 하나씩 꺼내서 남설아에게 보여주기 시작했다.모두 기술 쪽에 능한 사람들이라 약간의 실수는 있었지만, 전반적인 방향은 잘 잡혀 있었다. 남설아는 모두의 자료를 꼼꼼히 확인한 후 자리에 앉아 직접 계산과 검토에 들어갔다.한편, 배서준은 온몸에 먼지를 묻힌 채 분노에 찬 얼굴로 기술팀에 들어섰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본 광경은 전 직원이 조용히 집중해서 일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남설아도 예외는 아니었다.자신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는 상태인데 모두가 일에 몰두하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 자신만 부적절하게 튀는 것 같아 순간적으로 민망해졌다.배서준의 얼굴이 굳은 걸 본 한원준과 몇몇 남직원들은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남설아가 막 퇴원한 만큼 또다시 일이 생길까 봐 무의식적으로 보호하려는 반응이었다.자신이 월급을 주는 사람들이 전부 남설아 편에 선 걸 실감한 배서준은 속이 뒤집힐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폭발할 수도 없었다.결국 그는 코웃음을 치며 남설아를 매섭게 노려본 뒤, 말없이 돌아서서 나갔다.그 과정 내내 남설아는 한 번도 고개를 들어 그를 보지 않았다. 화가 나서 들어오는 것도 차가운 반응도 전부 무시했다. 왜냐하면 남설아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서준이 아무리 사적인 감정으로 날뛰더라도 적어도 회사 업무에는 선을 넘지 않을 거라는 걸 말이다.배서준이 떠난 뒤, 옆에서 지켜보던 동료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며 조심스럽게 남설아에게 다가와 속삭였다.“팀장님, 진짜 대단하신 것 같아요. 대표님처럼 기세 강한 사람 앞에서 표정 하나 안 바뀌다니요.”“익숙해지면 괜찮아. 근데
남설아는 눈을 반짝이는 오민지의 모습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같은 여자끼리 그렇게 나를 쳐다보는 건 좀 과장 아니야?”“팀장님, 팀장님을 만나기 전에 저 진짜 그만둘까 고민했었어요.”오민지는 한숨을 쉬며 남설아를 조심스럽게 힐끗 쳐다봤다. 남설아의 표정에 변화가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말을 이었다.“이 업계는 원래 여자한테 불리하잖아요. 맨날 따돌리고 무시하고 괴롭혀요.”그녀의 말에 남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충분히 공감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실제로 많은 남성은 기술직은 남자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여성들은 그 안에서 항상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하지만 그런데도 그녀들은 실력으로 이 자리에 올라온 것이다. 남설아는 자신이 그들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남설아는 오민지의 손을 잡으며 웃었다.“민지 씨는 속도가 조금 느릴 수 있지만 정확도는 제일 높잖아. 우리 여자들만의 장점이 있는 거야. 지금은 조금 미숙해 보여도 계속 경험 쌓으면 충분히 성장할 수 있어. 그럼 아무도 민지 씨를 무시하지 못할 거야.”“예전엔 안 믿었는데 지금은 팀장님을 보니까 믿어져요.”오민지는 남설아가 자신의 우상이라도 되는 듯 바라보며 눈빛이 반짝였다.“일해.”남설아는 조용히 웃으며 다시 고개를 숙이고 업무에 집중했다. 말을 아무리 멋있게 해도 결국 중요한 건 업무에서 보여주는 결과였다.오민지는 다시 활력을 얻은 듯 책상으로 돌아가 바로 일에 몰입했다.한편, 투명 유리창 너머로 배서준은 그 따뜻한 눈빛과 미소를 가진 여자를 뚜렷이 바라보았다. 그건 그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남설아의 모습이었다.예전의 그녀는 늘 딱딱하고 계산적이며 여기저기 눈치 보는 이미지였다. 하지만 지금 이 모습은 너무 낯설고 다르게 느껴졌다.배서준은 처음으로 자신이 뭔가 잘못 봤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 여자를 자신이 정말 한 번도 제대로 알지 못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지금처럼 두 사람의 관계가 악화한 상태라면 회사, 특히 배건 그룹에는 치명적인 손해
남설아는 머리를 살짝 흔들며 정신을 가다듬고 탕비실로 들어가 시원한 물을 두 컵이나 들이켰다. 그러고 나서야 겨우 마음이 진정되었다.그 남자가 도대체 왜 저러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남설아는 퇴근 후 결국 문자에 적힌 주소로 향했다. 바로 예전에 한 번 배서준과 함께 다녀온 적이 있는 개인 요리 전문점이었다.그때 남설아는 이곳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꼭 다시 오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집은 규칙이 까다로워서 멤버십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자신은 배서준의 아내임에도 불구하고 회원 카드조차 없었고 배서준은 그 멤버십을 공유할 생각도 없었다.다시 이곳에 오자 남설아는 마음이 조금 씁쓸해졌다. 그때 이 음식을 먹고 너무 맛있다고 생각해 집에 돌아가 나은에게도 말했다. 나중에 꼭 아빠와 함께 가서 먹자고 했다.그 후로 나은은 매일같이 기대에 부풀어 엄마 아빠랑 함께 이 식당에 올 날만 기다렸다. 하지만 결국 그날은 오지 않았고 아이는 세상을 떠났다.그 생각이 떠오르자 남설아의 가슴은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아팠고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졌다.직원에게 안내받아 예약된 방으로 들어섰을 때 문을 여는 순간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그 방 안에 앉아 있는 사람은 배서준이 아니라... 서도현이었다.“남설아, 오랜만이네.”서도현은 소파에 앉아 느긋하게 웃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그 웃음엔 뚜렷한 적의가 서려 있었고 마치 악마 같았다.“네가 왜 여기 있어?”남설아는 본능적으로 가방 안에 넣어둔 호신용 스프레이를 움켜쥐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서도현은 다가오지 않았고 여전히 자리에 앉은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남설아, 요즘 아주 잘나가더라? 내가 여기 있는 건 이상하지 않은데 네가 여기에 있다는 게 놀랍네. 누가 오라고 한 거야? 응?”그는 한마디도 배서준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말 하나하나가 그를 겨냥하고 있었다.남설아는 마치 벼락에 맞은 듯 충격을 받았고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내가 너무 순진했어. 또다시 배서준을
서유라는 싸움에서 진 사람처럼 기가 죽고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배서준의 이미지도 사람들 눈에 한순간에 추락했고 그는 무척이나 난처하고 부끄러웠다.그는 점점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기 시작했다.만약 그때 남설아와 이혼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초라해지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연회가 끝난 뒤 배서준과 서유라는 함께 차에 올랐다.“서준아, 미안해.”서유라는 고개를 숙인 채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오늘 내가 괜히 설아 씨한테 차를 우리라고 제안했어. 설아 씨가 그렇게까지 잘할 줄은 몰랐어...”“너 잘못 아니야.”배서준은 그녀의 말을 끊으며 피곤한 어조로 말했다.“남설아가 괜히 잘난 척을 한 거지.”그는 서유라가 마음 아파하는 게 안쓰러워 모든 잘못을 남설아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그래도 난 아직도 미안해.”서유라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내가 너를 많은 사람 앞에서 망신당하게 했잖아.”“바보야, 네 탓이라고 한 적 없어.”배서준은 그녀의 등을 다정하게 토닥였다.“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응.”서유라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배서준의 품에 안겼다.하지만 배서준의 마음은 딴 데로 향하고 있었다.그는 과거의 남설아를 떠올리고 있었다.한때 그녀는 단지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매일 자신과 아이만 바라보며 살아가던 그녀가 도대체 언제 다도를 배운 건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그 다도 실력이 이 정도라니, 서 회장 부부가 칭찬을 아끼지 않을 정도였다.‘지금 저 여자가 내가 알던 남설아가 맞는 건가?’그는 마음속 깊이 혼란스러웠다.남설아는 분명 변해 있었다. 더 이상 자신이 쉽게 이해하거나 조종할 수 있는 여자가 아니었다.서유라는 배서준의 시선이 자꾸만 허공으로 향하는 걸 느끼고는 그가 또다시 남설아를 생각하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그녀의 마음속에 위험 신호가 울렸다. 그녀는 반드시 이 둘의 접촉을 막아야만 했다.‘남설아, 가만 안 둬. 네가 어떻게 되나 두고 보자.’서유라는 속으로 이를 악물며 다짐했다.그녀의
“서 회장님, 사모님, 과찬이세요.”남설아가 겸손하게 말했다.“그냥 가볍게 내린 것뿐이에요.”“남 대표 너무 겸손하시네.”서기찬이 말했다.“이건 아무렇게나 내려서 나올 맛이 아니야. 확실히 기본기와 실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지.”“그러게요, 설아 씨.”차혜미도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차 내리는 솜씨가 정말 대단해요. 제가 제자로 들어가고 싶어질 지경이에요.”“사모님, 또 농담하시네요.”남설아가 고개를 숙이며 미소 지었다.“이런 사소한 재주가 어찌 사모님의 눈에 찰 수 있겠어요?”“설아 씨가 너무 겸손하신 거예요.”차혜미는 찻잔을 바라보며 더욱 남설아에게 호감을 드러냈다.“차를 이렇게 잘 내리시는 걸 보니 정말 감탄밖에 안 나와요.”“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모님.”남설아는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유라는 마음속에 질투심이 더욱 불타올랐다.남설아가 이렇게까지 다도에 능할 줄은 몰랐다.게다가 자신이 의도한 모욕은커녕 오히려 남설아는 그 자리에서 주목을 한 몸에 받으며 칭찬을 독차지하고 있었다.서유라는 쉽게 물러설 수 없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설아 씨의 다도 실력 정말 대단하네. 그런데 듣기로 다도도 여러 유파가 있다고 하던데 설아 씨는 어느 쪽이야?”그녀는 남설아의 다도를 비하하려는 의도로 체계 없는 아마추어 수준이라고 암시하고자 했다.“특정 유파를 따로 배우진 않았어.”남설아는 침착하게 말했다.“그저 내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내 느낌에 따라 우려내는 것뿐이야.”“그래?”서유라는 다시 비웃듯 말했다.“그럼 설아 씨만의 파가 생긴 거네? 대단해.”그녀는 남설아만의 파라는 말을 의도적으로 강조하며 남설아의 다도가 비전문적이라는 뉘앙스를 풍겼다.“유라 씨, 또 농담하네.”남설아는 작게 웃으며 조롱이 섞인 말투로 답했다.“나는 그냥 취미로 하는 아마추어일 뿐이야. 감히 한 유파라니.”“남 대표님 너무 겸손하세요.”차혜미가 곧장 나섰다. 그녀는 서유라의 말에 담긴 악의를 알아차리고
“고마워.”남설아가 말했다.“설아 씨, 예전에 서준이 곁에 있을 때도 이렇게 늘 꾸미고 다녔어?”서유라가 불쑥 물었다. 말투에는 살짝 떠보는 뉘앙스가 묻어 있었다.그녀는 일부러 남설아가 한때 배서준의 곁에 있었던 시절을 언급하며 남설아의 과거를 상기하려 했다.남설아는 서유라의 의도를 바로 알아차렸다. 그녀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유라 씨, 농담이 지나치네. 그때의 나는 그저 서준 씨의 아내로서 마땅히 해야 할 역할을 했을 뿐이야.”“그래?”서유라는 다소 우쭐한 말투로 말했다.“나는 설아 씨가 차를 따라주고 시중드는 데 능한 줄 알았어. 내조를 하는 데는 정성이 필요하잖아?”그녀는 차를 따라주고 시중든다는 것을 일부러 강조해서 말하며 남설아를 모욕하려 했다.“유라 씨 말이 맞아. 내조를 하는 데는 정말 정성이 필요해.”남설아는 차분하게 말했다.“하지만 나는 그런 것보다는 사업을 하는 데 더 능한 편이야.”“그래?”서유라는 비꼬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그럼 오늘 설아 씨가 잘해야겠네. 여기 모인 분들 다 업계 내로라하는 분들이니까 실수라도 하면 큰일이겠어.”“걱정해줘서 고마워, 유라 씨.”남설아는 작게 미소 지으며 빈정거림이 담긴 말투로 답했다.“하지만 나는 유라 씨를 실망하게 할 일은 없을 거야.”“그래야지.”서유라는 속으로 비웃으며 남설아가 뭘 할 수 있을지 지켜보겠다는 듯 말했다.“설아 씨, 차 따르는 데 능하다니까 오늘 여기서 차 한 번 내려보지?”서유라가 제안했다. 말투에는 노골적인 도발이 묻어 있었다.“여기 좋은 차도 있고 멋진 다기 세트도 있어. 설아 씨의 손재주로는 딱 어울릴 것 같네.”그녀는 손재주라는 말을 다시금 강조하여 말하며 남설아를 하찮은 시중 드는 사람으로 몰아가려 했다.하지만 남설아는 그런 의도를 바로 눈치챘음에도 전혀 화내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도전을 받아들였다.“좋아, 유라 씨가 이렇게 운치 있는 제안을 하니 한 번 해볼게.”남설아는 여유 있는 말투로 대답했다.“다만 한 가
연회장에는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손님들은 잔을 부딪치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수정 샹들리에는 부드러운 빛을 뿜어내며 연회장을 황금빛으로 물들였다.남설아와 강연찬이 연회장 중앙에 모습을 드러냈고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은 뒤 춤을 추기 시작했다.강연찬은 부드럽게 남설아의 허리를 감싸 안고 그녀를 이끌며 연회장에서 빙그르르 돌았다.남설아의 스텝은 가볍고 우아했으며 마치 나비가 춤을 추고 있는 듯했다.그녀는 연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드레스 자락은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살랑거리며 활짝 핀 제비꽃처럼 보였다.두 사람의 호흡은 놀라울 만큼 잘 맞았고 모든 동작에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었다.그들의 춤은 모든 이들의 시선을 끌었고 단숨에 연회장의 중심이 되었다.조금 떨어진 곳에서 배서준은 남설아의 모습을 눈을 떼지 못한 채 바라보고 있었다.그는 강연찬의 품에서 행복한 미소를 띠며 춤을 추는 남설아를 바라보며 설명하기 힘든 질투와 상실감에 사로잡혔다.“서준아, 뭘 그렇게 보고 있어?”서유라의 목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오며 배서준은 생각에서 깨어났다.그녀는 배서준의 달라진 표정을 눈치채고 불쾌함을 느꼈다.“아무것도 아니야.”배서준은 정신을 차리고 감정을 감추려 애썼다.“서준아, 혹시 아직도 남설아 생각하고 있는 거야?”서유라는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말투에는 질투심이 스며 있었다.“아니야.”배서준은 날카롭게 부인했다.“서준아, 나한테 거짓말하지 마.”서유라는 약간 서운한 듯한 말투로 말했다.“네 마음속에 아직 그 여자가 있는 거 알아.”“유라야, 터무니없는 소리 하지 마.”배서준의 말투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터무니없는 소리 아니야.”서유라는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하며 말했다.“서준아, 혹시 후회하는 거야? 나랑 있는 거 후회해?”“유라야, 그런 거 아니야.”배서준의 말투가 조금 누그러들며 말했다.“후회하는 건 아니야. 그냥... 머릿속이 좀 복잡해.”그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무척 심란했다.“서준
“나는 그냥 여자는 가정에 더 집중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유라는 약간 우쭐한 듯한 말투로 말했다.“결국 남편 뒷바라지하고 아이 잘 키우는 게 여자의 본분이잖아.”“유라 씨 생각은 꽤 보수적이네.”남설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그래? 그럼 설아 씨는 여자가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보는 거야?”서유라는 다소 공격적인 어조로 물었다.“여자는 자립심을 가지고 자기 일과 꿈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해.”남설아는 단호하게 말했다.“남자에게 의지하거나 남자의 부속품이 되어서는 안 되지.”“설아 씨 생각 참 특이하네.”서유라는 차가운 비웃음을 지었다.“근데 나는 여자가 너무 강한 것도 별로라고 생각하거든.”“강한 게 나쁘고 약한 건 좋은 건가?”남설아가 되물었다.“유라 씨는 자신이 어떤 쪽이라고 생각해?”“나는...”서유라는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그만해, 유라야. 그만 말해.”배서준이 더는 보고 있을 수 없다는 듯 끼어들었다.“사람마다 각자의 선택이 있는 거고 우리는 그걸 존중해야 해.”“서준아, 나는 그냥...”서유라는 뭔가 더 말하려 했지만, 배서준이 말을 잘랐다.“됐어, 그만하자.”배서준은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우리 저쪽 가보자.”서유라는 배서준이 화가 난 걸 눈치채고 입을 닫았다.그녀는 남설아를 노려보듯 쏘아보더니 배서준을 따라 자리를 떴다.남설아는 그런 서유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비웃음이 섞인 미소를 지었다.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서 회장 부부와의 대화에 집중했다.“서 회장님, 사모님, 제가 하나 제안해 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혹시 들어보실 의향 있으신가요?”남설아가 말했다.“오? 무슨 제안인가요?”서기찬이 흥미롭게 물었다.“저는 두 분과 함께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습니다.”남설아는 차분하고 자신감 있게 말했다.“그 프로젝트는...”그녀는 자세하게 자신의 구상을 설명했고 서 회장 부부는 그 이야기에 큰 관심을 보였다.“남 대표님의 아이디
남설아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녀의 시선이 배서준과 서유라를 한번 훑고 지나갔다.“정말 우연이네.”“배 대표님, 요즘 회사는 잘 돌아가시죠?”강연찬이 배서준을 바라보며 물었다.“그럭저럭요.”배서준은 차가운 말투로 대답했다.“다행이네요.”강연찬은 짧게 웃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주변 공기가 어색해졌다.“자, 다 같이 한잔하시죠.”서기찬이 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앞으로의 좋은 협력을 위해!”“건배!”사람들은 일제히 잔을 들어 마셨다.파티는 계속 이어졌고 남설아와 강연찬은 단연 눈에 띄는 존재였다.많은 이들이 다가와 인사를 나누고 함께 협력할 기회를 엿보려 했다.배서준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혔다.“서준아, 무슨 생각해?”서유라의 목소리가 그의 생각을 깨뜨렸다.“아무것도 아니야.”배서준은 정신을 차리고 어색하게 웃었다.“우리 저쪽도 좀 둘러보자.”“응.”서유라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배서준이 도망가기라도 하는 듯 배서준의 팔을 꼭 끼고 있었다.두 사람은 사람들 사이를 지나다녔지만 끝내 이 열기 속에 어울리지는 못했다.배서준은 이미 마음이 떠 있었고 시선은 자꾸만 남설아 쪽으로 향했다.반면 서유라는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주변의 시선과 부러움을 즐기며 자부심에 젖어 있었다.남설아는 능숙하게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뛰어난 사교 능력과 비즈니스 감각을 드러냈고 강연찬은 항상 그녀 곁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서유라는 그런 광경을 보며 더욱 만족스러워했다.배서준의 팔을 끼고 있는 자신이 마치 이 파티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하지만 차혜미가 자신에게는 형식적인 인사만 건네고 남설아에게는 유난히 친근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고 그녀는 불쾌한 기분이 들고 질투심이 일었다.“사모님, 남설아 씨랑 오래 알고 지내셨어요?”서유라는 조심스레 떠보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네, 설아 씨와는 좀 됐죠.”차혜미는 예의를 갖춰 대답했지만 더 이상 깊이 말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설
차 안으로 돌아온 서유라는 여전히 드레스를 고른 기쁨에 들떠 있었다.“서준아, 우리 이번 파티에서 가장 눈에 띄는 커플이 되지 않을까?”그녀는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그럴 거야.”배서준이 대답했지만, 말투에는 영혼이 없었다.“다행이네.”서유라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서준아, 네가 이렇게 같이 와줘서 정말 좋아.”그녀는 배서준의 어깨에 기대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배서준은 말없이 그녀의 등을 가볍게 토닥였다.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계속 남설아의 모습이 떠올랐고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파티 당일,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행사장은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고 분위기 또한 고급스럽고 활기찼다.남설아와 강연찬이 모습을 드러내자 주변에서 작은 술렁임이 일었다.남설아는 연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단정하면서도 기품 있는 자태를 뽐냈고 강연찬은 깔끔한 검은색 정장을 입고 여유롭고 세련된 분위기를 풍겼다.두 사람은 함께 서 있는 것만으로도 시선을 끌었고 자연스럽게 주목받는 존재가 되었다.“남 대표님, 강 대표님, 파티에 오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서 회장 부부가 반갑게 맞이했다.“서 회장님, 사모님, 축하드립니다.”남설아가 미소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남 대표님께서 참석해 주시다니 저희가 정말 영광이에요.”서 회장의 부인인 차혜미가 남설아의 손을 잡으며 따뜻하게 말했다.“별말씀을요, 사모님.”남설아가 정중하게 답했다.“이분이 바로 강 대표님이시죠?”서기찬이 강연찬을 바라보며 물었다.“네, 서 회장님.”남설아가 소개했다.“저의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좋은 친구인 강연찬 대표님이에요.”“강 대표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서기찬이 손을 내밀었다.“반갑습니다, 서 회장님.”강연찬은 예의를 갖춰 악수했다.“두 분 안으로 들어가시죠. 자리를 미리 준비해두었어요.”서기찬이 손짓했다.“감사합니다.”남설아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세 사람은 함께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조금 떨어진 곳에 배서준과 서유라도 행사장
배서준은 서유라가 들뜬 모습으로 웃고 있는 걸 보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괜히 불편하고 답답했다.그는 말없이 남성복 코너로 가서 대충 눈에 들어오는 정장을 집어 들었다.“손님, 정말 안목이 좋으시네요. 이건 저희 매장에서 가장 최근에 들어온 신상이에요. 이탈리아산 원단으로 수제 재단된 제품이라 고객님 체형에 정말 잘 어울리실 거예요.”점원이 열정적으로 설명했다.배서준은 아무 말 없이 검은색 정장을 들고 탈의실로 들어갔다.정장을 갈아입고 거울을 바라본 그는 문득 거울 속 자기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저 사람이 정말 내가 맞아?’한때 야망으로 가득하고 세상을 거머쥘 듯 당당했던 배서준은 이제는 서유라의 기대와 기준에 맞춰 움직이는 꼭두각시처럼 보였다.“서준아, 다 입었어?”서유라가 탈의실 밖에서 재촉했다.“응.”배서준은 문을 열고 나왔다.“와, 서준아, 너 이 정장 입으니까 진짜 멋있다.”서유라는 마치 영화 속 배우를 보는 듯 눈에 감탄이 가득했다.“진짜 영화배우 같아.”배서준은 가볍게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서유라가 이런 말들을 듣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할 기분이 아니었다.“이걸로 할게.”배서준은 피곤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때, 매장 입구 쪽에서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남설아와 강연찬이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눈이 마주친 순간, 공기가 얼어붙는 듯했다.배서준의 시선은 남설아에게 고정되었고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남설아는 연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단정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풍겼다.드레스는 그녀의 몸매를 자연스럽게 살려주었고 살짝 올려 묶은 머리 사이로 드러난 목선과 쇄골은 고급스러움을 더했다.그녀는 마치 한 송이 활짝 핀 제비꽃 같았다. 요란하지 않지만, 눈에 띄는 아름다움이었다.배서준의 가슴이 순간 쿵 하고 내려앉았다.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는 예전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그녀의 당당함과 여유는 서유라가 따라올 수 없는 것이었다.“강 대표님과 설아 씨도 드레스 고르러
“그날 같이 가자.”“응.”강연찬은 고개를 끄덕였다.한편, 배서준 역시 서 회장 부부가 주최하는 파티의 초대장을 받았다.그는 원래 서유라와 함께 참석해 둘의 관계와 입지를 보여줄 생각이었다.“유라야, 서 회장 부부가 비즈니스 파티를 연대. 우리 둘 다 초대했어.”배서준은 초대장을 들고 서유라에게 말했다.“같이 갈래?”“당연히 가야지.”서유라는 웃으며 말했다.“이런 기회에 좋은 인맥도 많이 만들 수 있잖아.”“그래.”배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같이 가자.”“응.”서유라가 고개를 끄덕였다.“서준아. 넌 정말 다정해.”서유라는 배서준의 품에 기대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배서준은 남설아도 그 파티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속에 복잡한 감정이 피어올랐다.“뭐? 남설아도 간다고?”배서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네, 대표님.”천기준이 답했다.“서 회장 부부가 남 대표님도 초대했답니다.”배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표정이 어두워졌다.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남설아가 강연찬과 함께 파티에 나타나는 모습을 상상하자 괜히 기분이 불편해졌다.“서준아, 무슨 일 있어?”서유라는 그의 이상한 기색을 눈치채고 물었다.“아니야.”배서준은 고개를 저었다.“그냥, 남설아가 올 줄은 몰랐어.”“오면 어때.”서유라가 말했다.“우리가 남설아를 무서워할 이유는 없잖아.”“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야.”배서준이 대답했다.“그냥...”그는 어떻게 얘기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그저 가슴이 무척 답답했다.“됐어, 너무 신경 쓰지 마.”서유라가 달래듯 말했다.“우리 둘이 함께 가서 보여주자. 우리가 얼마나 잘 지내고 있는지.”“그래, 그게 좋겠다.”배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유라야, 네가 있어서 정말 든든해.”서유라는 배서준과 함께 파티에 참석하겠다고 먼저 제안했다.“서준아, 이런 자리에는 내가 같이 가야지.”그녀는 부드럽게 말하며 따뜻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네 연인이니까 함께 이겨내야 할 책임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