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377화

Author: 목련청
배서준은 서재에 홀로 앉아 있었다. 넓은 책상 위에는 서류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지만 그 어느 것도 그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창밖은 이미 깊은 밤, 도시는 여전히 불빛으로 가득했고 차들이 쉴 새 없이 오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하지만 그 활기찬 소음은 오히려 서재 안의 적막을 더 극명하게 드러냈다.

배서준은 눈을 꼭 감은 채 오늘 입찰 현장에서 있었던 모든 순간을 머릿속에서 되새기고 있었다.

‘도대체 왜 진 걸까? 모든 게 내 계획대로 흘러가는 줄 알았는데 왜 결과는 내가 가장 원하지 않던 방향으로 향한 걸까?’

남설아.

예전엔 그저 쉽게 버릴 수 있었던 여자였다.

그런 여자가 지금은 그를 이겼다.

화승 그룹의 입찰을 따낸 것도 모자라 사람들의 찬사와 존경까지 한 몸에 받았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서준아, 괜찮아?”

서유라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문 너머로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마치 깃털처럼 가볍게 그의 마음을 스치며 거친 감정을 달래려 했다.

그녀는 뜨거운 우유 한 잔을 들고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얼굴에는 걱정 가득한 표정이 어려 있었다.

“서준아, 우유 좀 마셔. 속이라도 좀 따뜻하게 해야지.”

서유라는 잔을 책상 위에 살며시 내려놓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오늘 마음 많이 상한 거 알아.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잖아. 자책한다고 바뀌는 것도 없어. 다시 일어서면 돼. 기회는 또 올 거야.”

배서준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눈앞에 서 있는 서유라를 바라보았다.

순간 그의 눈에 비친 서유라가 오늘따라 남설아와 닮아 보였다.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 은은한 화장, 차분한 태도까지...

“유라야.”

배서준은 쉰 듯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고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서유라가 자신을 위해 이렇게 애쓰는 걸 알면서도 지금은 그녀의 따뜻함조차 버거웠다.

그저 혼자 있고 싶었다.

조용히, 차분히,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고 싶었다.

그 지친 얼굴을 바라보자 서유라는 가슴 한켠이 저려왔다.

그녀는 배서준의 곁으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Latest chapter

  • 굿바이 쓰레기   제380화

    서유라의 다정한 모습을 바라보며 배서준은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묵묵히 밥을 먹고 있었지만 입안에서는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그때였다.“누나! 나 왔어!”서도현의 목소리가 들리며 조용하던 식탁 분위기가 깨어졌다.“도현아? 어쩐 일이야?”서유라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동생을 맞았다.“누나랑 매형 보러 왔지.”서도현은 싱긋 웃으며 안으로 들어오더니 곧장 배서준에게 시선을 돌렸다.“매형, 요즘 괜찮으세요?”“응, 그럭저럭.”배서준은 무심하게 대답했다. 목소리엔 살짝 거리감이 느껴졌다.“매형, 이번 입찰회에서... 남설아한테 지셨다면서요?”서도현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도현아, 그만해.”서유라가 급히 말을 막았다.괜히 배서준의 상처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누나, 나야 그냥 매형 걱정돼서 그러지.”서도현은 웃으며 말했다.“매형,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전쟁에서도 승패는 늘 있는 거잖아요. 다음에 꼭 다시 이기시면 돼요.”“응, 고맙다.”배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도현아, 밥 먹었니? 배고프면 같이 먹자. 이거 다 네 누나가 만든 거야.”“좋죠, 그럼 한 숟가락 얹어볼게요.”서도현은 바로 자리에 앉아 젓가락을 들어 밥을 먹기 시작했다.그 모습은 그야말로 허겁지겁이었다.서유라는 그런 동생을 보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서도현이 일부러 이곳에 온 이유를 그녀는 알고 있었다.그는 배서준의 상태를 파악하고 싶어 했고 동시에 남설아에 대한 그의 감정도 캐내고 싶어 했다.“매형, 그런데 앞으로 어쩌실 거예요? 그냥 이렇게 넘어가실 거예요?”서도현이 밥을 먹으며 다시 물었다.“도현아, 그만하라니까.”서유라가 다시 제지했다.“누나, 왜 자꾸 막아? 나 진심으로 매형 걱정해서 이러는 거잖아.”서도현이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집 미래랑도 관련 있는 일인데 그냥 지나칠 수 없지.”“도현아, 네 걱정은 고맙지만...”배서준이 짜증을 억누른 채 말을 이었다.“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 굿바이 쓰레기   제379화

    “네, 대표님. 알겠습니다.”천기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참, 대표님. 여기 신문 한 부 있는데 한번 보시겠습니까?”“신문이요?”남설아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오늘자 경제 일보입니다. 1면에 대표님 인터뷰가 실렸어요.”천기준은 신문을 조심스럽게 건넸다.남설아는 그 신문을 받아들고 펼쳐보았다.1면 중앙, 큼지막한 사진 속 주인공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고 제목은 이렇게 적혀 있었다.“이게...”남설아는 예상치 못한 일에 놀란 듯 신문을 바라봤다. 자신이 1면을 장식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던 것이다.“대표님, 이제 완전히 유명인이세요. 요즘 재계에서 다들 대표님 이야기만 해요.”천기준이 웃으며 말했다.남설아는 살짝 웃고는 신문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됐어요, 이런 얘긴 그만하고 가서 일 보세요.”“네, 대표님.”천기준은 고개를 숙인 뒤 조용히 사무실을 나섰다.그 시각, 배서준의 별장.서유라는 저녁 식사 준비에 정성을 다하고 있었다.그녀는 남설아가 좋아하던 메뉴를 떠올려 일부러 그에 맞춰 요리를 했다.식탁도 평소보다 정성껏 세팅해 두고 배서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고 싶었다.“서준아, 밥 먹어.”서유라는 서재 앞에 조심스레 다가가 문을 두드리며 부드럽게 불렀다.잠시 뒤, 배서준이 나왔다.그는 식탁 위에 정갈히 차려진 음식을 보고 순간 멈칫했다.“유라야, 이건...”“서준이 너 이런 음식 좋아하잖아. 그래서 요리 연습 좀 했어.”서유라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한번 먹어 봐. 맛이 어떤지.”배서준은 그녀의 기대 어린 눈빛을 바라보며 천천히 식탁에 앉았다.젓가락을 들어 한 입 먹어본 뒤에는 고개를 끄덕였다.“어때? 맛있어?”서유라가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응, 맛있네.”배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고마워, 유라야. 이렇게까지 신경 써줘서.”“맛있으면 됐어.”서유라는 웃으며 생선 한 점을 집어 그의 접시에 올렸다.“서준아, 많이 먹어.”하지만 배서준은 식

  • 굿바이 쓰레기   제378화

    “남설아, 축하해! 이번 입찰전 완전 압승이던데?!”송우민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손엔 샴페인 한 병과 와인잔 두 개를 들고 있었고 얼굴엔 특유의 장난기 어린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우민이? 여긴 웬일이야?”남설아는 놀란 듯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방문이었다.“당연히 축하하러 왔지!”송우민은 당당하게 샴페인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는 능숙하게 병을 따 올렸다. ‘펑’ 소리와 함께 샴페인이 터져 나왔고 은은한 향이 공기 중에 퍼졌다.“자, 남설아! 건배하자!”그는 잔을 두 개 채우고 그중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남설아 너의 성공을 위해, 그리고... 우리 미래를 위해서!”남설아는 잔을 받아들며 살짝 웃었다.“고마워, 민아. 이번 성공은 네 도움 없이는 어려웠을 거야.”“아유, 그런 말 마.”송우민은 샴페인을 한 모금 마시며 웃었다.“우린 파트너잖아. 서로 도와주는 게 당연한 거지. 사실 넌 혼자서도 충분히 해낼 사람이라는 거 다들 알아.”“칭찬은 이제 그만해.”남설아도 웃으며 잔을 살짝 흔들었다.“근데 내가 여기 있는 거 어떻게 알았어?”“그걸 몰라서 물어?”송우민은 윙크를 하며 장난스럽게 말했다.“누가 알려줬을까? 한번 맞혀봐.”남설아는 그의 눈빛에서 뭔가를 느낀 듯 조심스럽게 물었다.“설마... 연찬 선배?”“헉, 진짜 무섭게 똑똑하네, 이 여자!”송우민은 과장되게 놀라는 척하며 말했다.“맞아, 바로 그 양반이야.”그 말을 들은 남설아의 마음 한편이 따스한 기운에 물들었다.“건배!”송우민이 다시 잔을 들어 올렸고 두 사람은 가볍게 부딪힌 뒤 한 모금에 잔을 비웠다.도시의 어느 고급 주택가, 한 채의 대형 별장 안.강연찬은 통유리창 앞에 서서 멀리 야경을 바라보고 있었다.그의 손엔 핸드폰이 들려 있었고 화면에는 남설아가 사무실에서 송우민과 축하의 잔을 부딪히는 사진이 떠 있었다.“설아야, 정말 멋지다.”강연찬은 미소를 머금은 채 중얼거렸다.“지금보다 더 멀리 더 높이 갈 수 있을 거야.

  • 굿바이 쓰레기   제377화

    배서준은 서재에 홀로 앉아 있었다. 넓은 책상 위에는 서류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지만 그 어느 것도 그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창밖은 이미 깊은 밤, 도시는 여전히 불빛으로 가득했고 차들이 쉴 새 없이 오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하지만 그 활기찬 소음은 오히려 서재 안의 적막을 더 극명하게 드러냈다.배서준은 눈을 꼭 감은 채 오늘 입찰 현장에서 있었던 모든 순간을 머릿속에서 되새기고 있었다.‘도대체 왜 진 걸까? 모든 게 내 계획대로 흘러가는 줄 알았는데 왜 결과는 내가 가장 원하지 않던 방향으로 향한 걸까?’남설아.예전엔 그저 쉽게 버릴 수 있었던 여자였다.그런 여자가 지금은 그를 이겼다.화승 그룹의 입찰을 따낸 것도 모자라 사람들의 찬사와 존경까지 한 몸에 받았다.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조용히 울렸다.“서준아, 괜찮아?”서유라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문 너머로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마치 깃털처럼 가볍게 그의 마음을 스치며 거친 감정을 달래려 했다.그녀는 뜨거운 우유 한 잔을 들고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얼굴에는 걱정 가득한 표정이 어려 있었다.“서준아, 우유 좀 마셔. 속이라도 좀 따뜻하게 해야지.”서유라는 잔을 책상 위에 살며시 내려놓으며 다정하게 말했다.“오늘 마음 많이 상한 거 알아.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잖아. 자책한다고 바뀌는 것도 없어. 다시 일어서면 돼. 기회는 또 올 거야.”배서준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눈앞에 서 있는 서유라를 바라보았다.순간 그의 눈에 비친 서유라가 오늘따라 남설아와 닮아 보였다.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 은은한 화장, 차분한 태도까지...“유라야.”배서준은 쉰 듯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고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서유라가 자신을 위해 이렇게 애쓰는 걸 알면서도 지금은 그녀의 따뜻함조차 버거웠다.그저 혼자 있고 싶었다.조용히, 차분히,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고 싶었다.그 지친 얼굴을 바라보자 서유라는 가슴 한켠이 저려왔다.그녀는 배서준의 곁으

  • 굿바이 쓰레기   제376화

    남설아는 비웃듯 웃으며 배서준을 노려봤다. 눈빛엔 뚜렷한 경멸이 서려 있었다.“배 대표님, 너무 나갔네요. 전 그저 실력으로 이번 입찰을 따낸 것뿐이에요. 대표님이 진 건 실력이 부족했을 뿐이죠.”잠시 말을 멈춘 남설아는 목소리를 더욱 차갑게 낮췄다.“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릴게요. 지금 체면을 구긴 건 제가 아니라 대표님이에요. 제 발밑에 깔린 건 대표님의 무능입니다.”그 말은 칼날처럼 날카롭게 배서준의 자존심을 베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로 배서준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남설아를 노려보았지만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기둥 뒤에 숨어 있던 서유라는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었다. 남설아가 이렇게 가차 없이 배서준을 깎아내리는 걸 보며 통쾌한 동시에 질투심이 솟구쳤다.남설아의 당당함과 강단 있는 태도가 부러웠고 배서준이 그런 남설아에게 끝없이 시선이 가는 게 질투 났고 결정적으로 그토록 냉정한 말 몇 마디로 배서준의 감정을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이 남설아에게 있다는 사실이 괴로웠다.자신은 그렇게까지 애쓰고 비위를 맞춰도 그의 마음속으로 한 발짝도 들어가지 못했는데 말이다.남설아는 말을 마치자마자 더는 미련 없이 등을 돌려 팀원들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결국 복도 한가운데 배서준은 홀로 남겨졌다. 표정은 어둡고 눈빛은 복잡했다. 마치 버려진 유령처럼 외롭고 비참한 기운이 그를 감싸고 있었다.멀어지는 남설아 일행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서유라는 고개를 돌려 배서준의 낙담한 모습을 다시 한번 바라봤다. 가슴 깊은 곳에서 분노와 증오가 꿈틀댔다.‘남설아... 두고 봐. 내가 너를 그냥 놔둘 것 같아?’배서준은 말을 잃은 서유라를 데리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자리를 떴다. 등을 보인 그의 모습엔 허탈함이 짙게 드리워 있었다.그 분함이 도무지 가라앉지 않았다.차 안은 숨이 막힐 듯한 침묵으로 가득 찼다. 공기조차 얼어붙은 듯 무겁고 답답했다.서유라는 몰래 배서준의 옆모습을 훔쳐보았다. 굳게 다문 입술과 날카롭게 굳은 턱선, 지금 그의 표정은 언제

  • 굿바이 쓰레기   제375화

    배서준의 가슴은 격하게 요동쳤고 숨이 가빠졌다. 분노와 좌절감이 그를 집어삼킬 듯했다.그는 갑자기 몸을 돌려 큰 걸음으로 현장을 빠져나갔다. 서유라는 홀로 남겨진 채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무대 위에서 남설아는 간단하게 수상 소감을 말하며 심사 위원들과 팀원들에게 감사를전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무대 위에서 내려왔다.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강연찬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는 금세 연결됐고 강연찬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설아야, 어때? 결과 나왔어?”남설아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 목소리로 말했다.“선배, 나 해냈어요! 우리가 선정됐어요! 넥스 테크 컴퍼니가 화승 그룹의 낙찰 받았어요!”핸드폰 너머로 강연찬의 기쁨과 감격이 가득한 목소리가 들렸다.“정말이야? 너무 잘됐다! 설아야, 네가 반드시 해낼 거라고 했잖아! 축하해. 네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보았어!”남설아는 입꼬리를 천천히 올리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선배, 고마워요. 이번에 잘 해낼 수 있었던 건 다 선배의 응원 덕분이에요.”강연찬의 따뜻한 말소리는 남설아에게 끝없는 자신감을 주었다.“오늘 밤 어떻게 축하할래? 내가 식당 예약해 놓을게. 오늘은 너의 날이니까.”남설아는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오늘은 제가 살게요. 선배 덕분이니까 내가 꼭 대접해야죠.”“좋아, 약속했어. 회사에서 기다릴게.”강연찬의 부드럽고 힘 있는 목소리는 남설아에게 끝없는 자신감을 주었다.전화를 끊고 나서 남설아의 기분은 더욱 유쾌해졌다.그녀는 천기준을 바라보았다. 멀찍이 서 있던 천기준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남설아는 미소를 지었고 천기준도 알아차린 듯 미소를 지었다. 속으로 당시 자신의 선택이 얼마나 현명했는지 새삼 느꼈다.‘역시 남 대표를 따르길 잘했어. 앞길이 창창하고 승승장구할 일만 남았어.’남설아는 팀원들과 함께 현장을 떠나려던 찰나 복도에서 어두운 얼굴로 서 있는 배서준과 마주쳤다.배서준은 홀로 복도 구석에 등을 돌린 채 외롭고 쓸쓸히 서 있

  • 굿바이 쓰레기   제374화

    남설아의 겸손함과 자신감은 다시 한번 모두의 호감을 얻었다.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은 이 젊고 유능한 여성 대표에 대해 존경과 기대를 품게 되었다.배서준은 사람들과 떨어진 곳에 서서, 남설아가 사람들의 환호를 받는 모습을 냉정하게 지켜보았다. 그의 마음속은 마치 오만가지 맛이 뒤섞인 듯 쓰고 시고 맵고 짠온갖 감정이 휘몰아쳤다. 그는 이번에는 정말로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게다가 그 패배의 상대는그가 깔보고 무시하던 여자라는 것이 더욱 그를 치욕스럽게 만들었다.이런 현실은 배서준에게 전례 없는 좌절감과 굴욕감을 안겨 주었다.서유라 역시 현장의 분위기 변화를 예리하게 감지했다.사람들이 남설아에게 보이는 태도와 그녀를 향한 찬사의 말들은 서유라의 마음을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그녀는 배서준의 팔을 꽉 붙잡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서준아, 어쩌지? 남설아가 정말 이길 것 같아...”배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살벌하고 어두운 표정만 지었다.서유라의 말은 사실이었다. 남설아의 이번 활약은 그의 모든 예상을 뛰어넘었고 심지어 배서준 자신도 상황을 뒤집을 방법이 없을 것 같다는 무력감을 느끼고 있었다.2라운드 답변이 종료되자 입찰 회의 승패는 이미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났다.최종 결과는 곧 있을 비공개 회의에서 결정될 예정이었다.현장 분위기는 한층 더 긴장되고 무거웠고 모두가 숨을 죽인 채 결과를 기다렸다.결과 발표 순간, 마치 공기마저 얼어붙은 듯한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무대 위로 집중됐고 최후의 결과를 기다렸다심사 위원석에서는 몇몇 위원들이 조용히 의견을 교환하며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었다. 짧은 침묵이었지만 유난히 길게 느껴졌고 그 무게가 모두의 가슴을 무겁게 했다.끝내, 사회자가 다시 무대에 올라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여러분, 심사 위원단의 신중한 평가와 종합 심사를 거쳐 이번 화승 그룹 입찰 회의 최종 낙찰자는...”사회자는 일부러 말을 멈

  • 굿바이 쓰레기   제373화

    하지만 남설아와 비교했을 때 배서준의 제안서는 다소 평범하고 무난했으며, 눈에 띄는 장점이나 혁신성이 부족했다.심사 위원의 질문에 답할 때도 배서준은 기대에 못 미쳤고 몇 차례나 말문이 막혔으며심지어 명백한 허점을 드러냈다.심사 위원들은 그의 발표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일부 위원들은 발표 도중 다른 회사의 자료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심사 위원들은 실망한 듯한 반응을 보였다.배서준 역시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다.심사 위원들의 미묘한 태도 변화와 다른 회사 대표들의 눈빛 속에 비친 조롱과 통쾌함을 읽을 수 있었다.이 엄청난 괴리감은 배서준의 마음속에 좌절감과 분노를 가득 채웠다.이번 입찰 회에서도 예전처럼 손쉽게 우승하고 경쟁자들을 압도할 거라 자신했다.하지만 현실은 또 한 번 그에게 뼈아픈 한 방을 날렸다.남설아의 등장은 그의 모든 계획을 어지럽혔고 지금껏 느껴 보지 못한 위기의식을 안겨 주었다.무대 위에서 흔들리는 배서준의 모습을 본 서유라는 역시 마음이 급해졌다.배서준이 나서면 이번 입찰은 무난하게 끝날 거라 믿었지만 지금 상황은 전혀 예상과 달랐다.서유라는 안절부절못하며 배서준을 바라보며 위안의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의 얼굴은 이미 짙은 어둠으로 물들어 있었고 눈빛엔 분노와 억울함이 서려 있었다.지금 배서준은 폭발 직전이며 어떤 위로도 그를 달래지 못할 거란 것을 그녀는 직감했다. 2라운드 답변 단계는 무겁고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끝이 났다.승부의 저울추는 이미 한쪽으로 조금씩 기울기 시작했다.이번 입찰의 결과는 아마도 모두의 예상을 뒤엎을 것을 모두가 어렴풋이 느꼈다. 백스테이지의 모니터실에서 강연찬은 남설아의 발표를 꼼꼼히 지켜보며 채점하고 있었다.그는 그녀의 말 하나, 태도 하나까지도 세심하게 평가했고 채점표에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망설임 없이 기록했다.“설아야, 오늘 너의 모습은 완벽했어. 이번 입찰 회는 반드시 네가 승자가 될 거야.”강연찬은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답변이 끝난 후, 다른 회사의 대

  • 굿바이 쓰레기   제372화

    배서준의 기분은 점점 더 불편해졌다.한때 자신이 짓밟던 사람이 이제는 자신이 도달할 수 없는 높이에 올라서 있다는 사실은 그의 오만한 자존심에 큰 충격을 남겼다.배서준 옆에 앉아 있던 서유라는 그의 기색을 예민하게 알아차렸다.서유라는 남설아가 무대에 오른 순간부터 배서준의 시선이 계속 그녀를 쫓고 있다는 걸 눈치 챘다. 그의 눈빛은 복잡했고 표정은 어두웠다.서유라의 머리에 경고등이 켜졌다.배서준의 마음속에 다시 남설아가 자리 잡기 시작한 게 틀림없었다.“서준아, 오늘 남 대표의 표현은 정말 대단했어.”서유라는 아무렇지 않은 척 가볍게 말했지만, 말투는 은근히 탐색하고 있었다.서유라는 불안한 마음을 감추며 남설아를 칭찬하는 척하면서 배서준의 반응을 떠보려 했다.하지만 배서준은 서유라의 말을 듣자, 얼굴을 더욱 찡그렸다.그는 서유라를 차갑게 흘겨보며 불쾌한 어조로 말했다.“대단하면 뭐해? 결국 말재주로 사람들 눈을 속이는 거지.”서유라는 배서준의 격한 반응에 순간 멍해졌다. 입가의 억지로 띄운 미소도 굳어 버렸다.분위기를 풀어 보려던 시도가 오히려 기름을 부은 격이 되어, 배서준의 심기를 더 거스르고 만 것이다.“서준아, 나는 그런 뜻이 아니었어...”서유라는 서러웠지만 황급히 해명했다.그녀는 상황을 수습해 보려 했지만 오히려 하면 할수록 더 꼬이기만 했다.배서준은 그녀의 말을 귀찮다는 듯 끊어버렸다.“됐어. 그만 말하고 계속 봐.”그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갑고 거칠었으며 기분이 몹시 언짢고 신경질적인 기색이 역력했다.서유라는 그 말에 목이 콱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억울한 듯 입술을 꽉 깨물었고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왜 배서준이 남설아의 이야기에 이토록 민감하고 심지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설마, 그의 마음속에 남설아가 아직 깊게 남아 있는 걸까?’한편, 현장 한쪽 구석의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서 강연찬은 모니터를 통해 현장 상황을하나 하나 지켜보고 있었다.무대 위에서 당당하고 여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