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바로 남설아가 원하던 결과였다. 서유라가 이제 와서 평온한 나날을 보내는 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남설아와 배나은을 끊임없이 괴롭히며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게 만들었으니 이제는 그 고통을 똑같이 돌려받을 차례였다. 이제는 서유라가 밤잠 한 번 제대로 못 이루는 게 어떤 기분인지 뼈저리게 깨닫게 될 것이다!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남설아는 여유롭고 품위 있는 태도로 대응했다. 그 덕분에 그녀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한층 더 올라갔다. 이 기회를 틈타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을 공식적으로 밝혔고 자신이 단순히 배서준의 와이프가 아니라 스스로 빛나는 사람이라는 강한 인상을 남겼다.남설아에게 이번 일은 절호의 기회였다. 그녀는 온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고 싶었다. 더 이상 배서준의 와이프 따위로 불리고 싶지 않았다!행사장은 그녀의 주도 아래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배서준은 그런 그녀를 곁에서 지켜보며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남설아가 그저 슈퍼에서 채소와 과일 가격이나 따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이토록 능숙하게 상황을 이끌어가는 모습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어쩐지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배서준은 지금의 남설아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예전의 그녀는 자아도 개성도 없었고 아이와 남편만을 위해 존재하는 그야말로 영혼 없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배나은이 떠난 후 그녀는 마치 껍질을 깨고 나온 듯 눈부시게 변해버렸는데 그 모습이 너무 낯설고 또 너무도 빛났다.배서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보호하며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 속에서 함께 차에 올랐다.차가 한참을 달린 후에야 남설아는 배서준이 여전히 자신의 손을 잡고 있다는 걸 깨닫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불쾌한 기색을 하며 즉시 손을 빼냈다.“대표님, 이 뉴스가 곧 인터넷을 도배하겠네요. 당신 애인이 보고 질투하는 거 아니에요?”“만약 그녀가 질투라도 해서 난리를 치면 난 두 번 다시 도와줄 생각 없어요.”그녀는 차 안에서 자세를 바꿔 의도적으로 그와 거리를 벌렸다.남
카메라 앞에서 남설아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대범한 태도를 보였다. 사적인 문제를 들킨 당혹스러움 따위는 전혀 없어 보였고 마치 지금 벌어지는 일들이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인 듯했다.원래 배서준은 이렇게 분별 있고 프로페셔널한 태도의 남설아를 원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생기 없는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부터 어딘가 불쾌한 감정이 피어올랐다.예전엔 그녀가 모든 관심을 자신에게 쏟는 게 가장 싫었는데 이제는 아예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는 상황이 되자 오히려 더 견디기 힘들어졌다.“사모님, 서유라 씨와 대표님의 관계가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요?”“서유라 씨는 서유라 씨일 뿐이지만 저는 사모님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서준 씨는 제 곁에 있죠. 이보다 더 명확한 답이 있을까요?”남설아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배서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기자들 앞에서 열 손가락을 깍지 끼고 커다란 제스처로 결혼반지를 과시했다.사실 그녀의 반지는 이미 오래전에 잃어버렸기에 지금 손에 낀 건 그냥 온라인 쇼핑몰에서 산 저가형 짝퉁일 뿐이었고 그야말로 한 푼의 가치도 없는 물건이었다.배서준은 두 사람이 맞잡은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는데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의 눈빛도 어느새 부드러워졌고 남설아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은근한 온기와 묘한 감탄이 서려 있었다.애초에 사람들은 이 해명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하지만 이 장면이 생방송으로 송출되자 배서준의 눈빛을 따로 편집한 짧은 영상들이 각종 SNS를 뒤덮었다. 수많은 크리에이터들이 이를 활용해 2차 콘텐츠를 만들어냈고 이윽고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그 결과 전 국민이 배서준의 가짜 정체성과 가식적인 다정함에 현혹되어 버렸다. 일부 사람들은 그를 이해하기 시작했고 어떤 이들은 심지어 부러워하며 감싸기까지 했다.온라인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홍보팀에서 올린 피드백을 확인한 천기준은 이번 이미지 세탁이 꽤 성공적으로 끝났음을 직감했다. 배건 그룹이 직면한 명예 실추 위기도 일단락된
원래는 긴급한 일이었지만 배서준은 이상하게도 지금은 그다지 급해 보이지 않았다.그는 잠시 멈춰 서서 남설아를 힐끗 바라봤다. 그녀가 왜 갑자기 더 이상 자기에게 휘둘리지 않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 시선을 느낀 남설아도 똑같이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다가 결국 손을 휘휘 내저었다.“살펴 가세요. 배웅은 못하겠네요.”“올 때까지 기다려.”배서준은 단호하게 말을 던지고는 그대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그 뒷모습을 보며 남설아는 코웃음을 치며 옆에 서 있던 천기준에게 시선을 돌렸다.“뭘 멍하니 서 있어요? 당장 차 준비해요. 우리 늦으면 안 돼요.”“하지만 사모님, 대표님이 기다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천기준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되물었다.‘언제부터 사모님이 이렇게 자기주장이 강했지?’남설아는 그런 천기준의 반응이 우습다는 듯이 웃음을 흘렸다.“그쪽 대표님이 어떤 사람인지 몰라요? 돌아올 것 같아요?”이런 일이 처음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동안 약속의 대상이 배나은이었을 뿐.하지만 한 번도 지켜진 적이 없었다. 처음엔 나은이가 순진하게 기다리곤 했지만 몇 번을 겪고 나니 더 이상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그러나 어린이들은 감정을 잘 숨기지 못했기에 남설아는 나은이가 매번 기다림과 실망에 지쳐 나중에는 울지도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나연이 생각이 들자 남설아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그녀는 단숨에 치맛자락을 손으로 쥐고는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천기준은 방금 전까지 온화하던 사모님이 한순간에 날카로워진 이유를 몰랐지만 일단 급히 따라붙었다. 아무리 그래도 사모님이 택시를 타고 행사장에 가게 둘 순 없었다.그럼 사람들 웃음거리가 될 테니까.행사장 입구에 도착한 남설아는 핸드폰을 조용히 집어넣고 곧장 미소를 띠며 차에서 내렸다.차에서 내린 순간 천기준은 절망했다.‘대체 누가 기자들을 부른 거야?!’‘방금까지만 해도 대표님과 사모님이 금슬 좋은 부부처럼 보였는데, 지금은 한 사람만 덩그러니 등장하다니. 이건 대놓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서유라는 반쯤 배서준에게 몸을 기대며 마치 자신들의 관계가 얼마나 가까운지 세상에 알리고 싶은 듯한 태도를 보였다. 배서준은 그녀의 허리를 감싼 채 안으로 걸어가다가 마침 문 앞에서 막 들어가려던 남설아와 눈이 마주쳤다.남설아의 묘한 미소를 띤 눈빛이 그대로 박혀드는 순간 배서준의 가슴 한쪽이 찔린 듯 아릿해졌다. 손에 쥔 서유라의 손마저 까칠하게 느껴질 정도였다.“설아 씨, 제발 화내지 마. 내가 이런 파티에 처음 와보는 거라, 서준이한테 간절히 부탁해서 같이 온 거야.”“병원에만 있으니까 너무 답답해서 그냥 기분 전환 좀 하고 싶었어.”“난... 설아 씨가 여기 있는 줄 몰랐어.”서유라는 말하는 도중 눈가에 금세 눈물이 맺혔다.예전 같았으면 남설아가 당장 이 판을 엎어버렸을 것이지만 지금은 그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말했다.“서유라 씨, 병원에서 요양하느라 힘들었겠어. 왔으니 안에서 실컷 즐기다 가.”“서준 씨, 서유라 씨 잘 챙겨줘요. 혹시 마음에 드는 거라도 있으면 꼭 사서 선물해 주고요.”그 말을 남긴 채 남설아는 치맛자락을 가볍게 잡고 몸을 돌렸는데 발걸음은 거침없고 우아했다.배서준은 거의 본능적으로 그녀를 따라가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어둠 속에 숨어 있던 기자들이 뭔가 흥미진진한 냄새를 맡고 흥분해서는 카메라를 들고 우르르 몰려왔다.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지며 광란의 촬영이 시작됐다.이번엔 아무도 질문을 던지지 않았으나 기자들의 시선에는 뚜렷한 조롱과 탐욕적인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대체 이 기자들은 어디서 나타난 거지? 어떻게 알고 온 거야?’배서준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반사적으로 서유라의 손을 놓으려 했지만 이미 차에서 내릴 때부터 둘이 얼마나 다정하게 행동했는지 모두가 지켜본 상황이었기에 지금 와서 거리를 두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게다가 방금 서유라의 눈물의 연기를 안 들은 사람도 없었을 터였다.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요즘은 시대가 변해서 이제는 이런 여우짓
그러나 남설아는 이전까지 이런 자리에 한 번도 참석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고 모두 이 이방인이 누구인지 궁금해했다.남설아는 그런 시선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적은 뒤, 익숙한 얼굴들을 향해 먼저 인사를 건넸다.“사모님들, 저 남설아예요.”남설아는 환하게 미소 지으며 진 대표 사모님에게 다가가 살갑게 말했다.“지난번 생신 때 디저트도 제가 직접 만들어 드렸었는데. 어머, 설마 기억 안 나시는 거예요?”그녀는 물론 기억하고 있었다. 다만 지금 눈앞에 서 있는 이 화려한 여성이 정말 남설아라는 사실을 미처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었다.석 달 전, 진 대표 사모님의 생일 파티에서 남설아는 들뜬 마음으로 참석했지만 결국 종일 주방에 갇혀 디저트만 만들었고 심지어 식사 자리에도 앉지 못했다. 반면 서유라는 꽃을 찾아드는 나비처럼 배서준의 곁을 맴돌며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파티가 끝난 후에야 진 대표 사모님은 주방에 있던 사람이 사실 배서준의 아내였고 그의 곁에서 환하게 웃고 있던 사람은 내연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이 일로 인해 그녀는 줄곧 남설아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마땅한 보상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이야말로 그 기회였다.그녀는 즉시 남설아의 손목을 붙잡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배 대표 사모님이시잖아요. 제가 어떻게 몰라보겠어요!”그녀는 주위 사람들을 향해 손짓하며 활기차게 말했다.“여러분, 소개할게요. 여기 계신 분은 배건 그룹의 사모님, 남설아 씨예요!”“앞으로 잘 부탁드려요.”사모님은 남설아의 손을 꼭 붙잡고 마치 피붙이처럼 다정하게 행동했다.남설아는 이미 이 파티의 주최자가 진 대표 사모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와 친분을 쌓으면 오늘 이 자리에서 곤란한 상황에 빠질 일은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그런데 배 대표님은 어디 계세요?”그녀는 이렇게 물으며 남설아의 뒤쪽을 살피다가 얼굴이 굳었다.배서준이 상황 파악도 없이 이런 자리에 대놓
이 일은 여기서 마무리될 수 있었다. 남설아는 약간 억울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망신을 당한 건 아니었으니까 지나갈 수 있었다.그런데 문제는 서유라가 어디서든 드라마를 찍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는 거였다. 그녀는 남설아를 막아서더니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설아 씨, 미안해. 나 일부러 따라온 게 아니야. 내가 우울증이 재발해서 기분이 안 좋아서 그래. 서준이도 나를 불쌍하게 여겨서 데려온 거야. 그러니까 제발 서준이 탓하지 말아줘. 그리고 어차피 두 사람 지금 이혼하려고 하고 있잖아. 나.. 나랑 서준이, 우리는...”남설아는 마침 적당한 핑곗거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 여자가 이렇게 멍청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서유라의 의미심장한 발언을 듣고는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유라 씨, 혹시 뉴스 안 봐?”‘무슨 뉴스?’서유라는 그동안 거의 침대에 묶여 지내다시피 했기 때문에 외부 소식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남설아는 친절하게도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아침에 있었던 기자회견과 영상 크리에이터들의 편집 영상을 찾아 보여주었다.그녀는 서유라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지는 모습을 여유롭게 감상했다.서유라는 휴대폰을 부여잡은 채 치를 떨며 눈을 부릅떴다. 그녀도 바보는 아니어서 오늘 이 상황이 철저히 계산된 덫이라는 걸 깨닫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서준아, 미안해. 나... 정말 몰랐어. 나는...”“천 비서, 유라 씨를 집에 데려다줘.”배서준은 손을 빼내며 서유라를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그는 항상 냉철한 사람이었고 지금, 이 순간 어떤 선택이 가장 현명한지 잘 알고 있었다.서유라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배서준이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을 내치는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무작정 소란을 피운다면 더 큰 망신을 당할 거라는 것을 말이다.결국 이를 악물고 눈물을 삼키며 돌아섰지만 몇 걸음 가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천 비서는 일이 커지기 전에 신속하게
비록 오늘 일어난 모든 일이 자신의 선택 때문이었지만 배서준은 자신이 이렇게까지 망신을 당한 것이 옆에 있는 이 여자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그러나 문제는 아무리 증거를 찾아도 잡히는 것이 없었다. 심지어 남설아의 눈을 마주칠 때조차 그 속에서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배서준은 결국 어금니를 꽉 깨물며 이 수치스러움을 혼자 삼켜야 했다.그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진 대표의 사모님에게 말했다.“별거 아닌 해프닝이었습니다. 집안 동생이 철이 없어서 괜한 소란을 피웠데요. 죄송합니다.”“집안에서 철이 없는 건 그렇다 쳐도 밖에까지 데리고 나와서 그러면 안 되지 않나요? 여기 모인 사람이 다들 대단한 분들인데 말이에요.”그녀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뒤, 더 이상 관여하지 않겠다는 듯 자리를 떠났다.결국 남의 집안일이었기에 아무리 속으로 생각이 많아도 깊이 개입할 수는 없었다. 괜히 부부 관계에 영향을 주는 건 바람직하지 않았다.상류층 가정에서는 애초에 감정보다 이익이 우선이었다.그들은 남설아를 안타깝게 여기고 동정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포기할 만큼 깊이 개입하지는 않았다.한편, 강연찬은 이미 연훈 그룹의 대표 도연훈을 만나고 있었다. 두 사람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었고 강연찬은 뛰어난 기술력과 화려한 경력을 내세워 미디어 개발 부문의 계약을 성공적으로 따냈다. 이것만으로도 그는 업계에서 손꼽는 인물이 되기에 충분했다.휴게실에서 나온 강연찬은 사람들이 모여 배서준을 험담하는 소리를 들었다. 듣기 거북한 말들이 그의 귓가에 스치자 그는 남설아 쪽에서 모든 것이 계획대로 잘 풀리고 있음을 확신했다.와인잔을 손에 든 그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마침내 구석진 곳에 앉아 있는 남설아를 발견했다.남설아는 외모가 워낙 출중했기에 그렇게 외진 곳에 앉아 있어도 존재감이 감춰지지 않았다.이미 여러 번 중년 남성들이 다가와 말을 걸고 있었다.조금 전 배서준의 태도를 모두가 지켜봤다. 그는 명백히 아내에게 무관심한 모습을
“이건 제 명함이에요. 나중에 정말로 갈 곳이 없다면 제가 받아줄 수도 있겠네요.”남자는 뻔뻔스럽게도 자신의 명함을 남설아의 손에 쥐여주었다.그의 이런 행동은 무례함을 넘어선 명백한 모욕이었다.일반적으로 봤을 때 그 정도의 신분과 교양을 가진 사람이 이런 짓을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남설아는 이 자리에 개인의 이름으로 참석한 것이 아니라 배서준의 아내, 즉 배건 그룹 사모님의 신분으로 참석해 있다.즉, 이 남자의 행동은 단순히 남설아를 모욕하는 것이 아니라 배서준과 배건 그룹 전체의 얼굴에 먹칠하는 짓이었다.만약 남설아가 이 모욕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긴다면 배건 그룹의 체면이 땅에 떨어지는 건 시간문제였다.주위에는 눈치 빠른 사람들이 가득했다. 이 자리에는 남설아를 탐내는 이들이 적지 않았는데 지금 이 남자는 그저 앞장서서 떠보는 역할을 하는 일종의 총알받이에 불과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과연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할지 남설아의 반응을 지켜보고 있었다.하지만 남설아는 별다른 감정 변화도 없이 얼굴에는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 명함을 받았다. 그리고는 그것을 유심히 바라보며 말했다.“홍성 원자재 무역회사? 좋아요. 앞으로 우리 배건 그룹은 홍성과 더 이상 협력할 일이 없겠네요. 이번 분기 계약이 끝나는 즉시, 다음 계약은 없습니다. 과연 제 말이 힘이 있는지 없는지 조 대표님 한번 지켜보시죠.”그렇게 말한 뒤, 남설아는 명함을 잘 챙겨 넣었다.조현무는 남설아가 자신의 체면을 봐주지 않을 줄은 어느 정도 예상하였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단칼에 거절당할 줄은 몰랐다.게다가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협력 중단을 공개적으로 말하니 그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고 분노를 감추지 못하며 비웃었다.“그쪽이 뭐라고 감히 그런 말을 합니까? 배건 그룹이 진짜 당신 것이라도 되는 줄 아나 보네요?”“배건 그룹이 제 것이 아니라면, 혹시 조 대표님 것인가요? 제가 결정할 권한이 없다면 조 대표님한테 그런 권한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조 대표
차 안으로 돌아온 서유라는 여전히 드레스를 고른 기쁨에 들떠 있었다.“서준아, 우리 이번 파티에서 가장 눈에 띄는 커플이 되지 않을까?”그녀는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그럴 거야.”배서준이 대답했지만, 말투에는 영혼이 없었다.“다행이네.”서유라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서준아, 네가 이렇게 같이 와줘서 정말 좋아.”그녀는 배서준의 어깨에 기대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배서준은 말없이 그녀의 등을 가볍게 토닥였다.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계속 남설아의 모습이 떠올랐고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파티 당일,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행사장은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고 분위기 또한 고급스럽고 활기찼다.남설아와 강연찬이 모습을 드러내자 주변에서 작은 술렁임이 일었다.남설아는 연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단정하면서도 기품 있는 자태를 뽐냈고 강연찬은 깔끔한 검은색 정장을 입고 여유롭고 세련된 분위기를 풍겼다.두 사람은 함께 서 있는 것만으로도 시선을 끌었고 자연스럽게 주목받는 존재가 되었다.“남 대표님, 강 대표님, 파티에 오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서 회장 부부가 반갑게 맞이했다.“서 회장님, 사모님, 축하드립니다.”남설아가 미소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남 대표님께서 참석해 주시다니 저희가 정말 영광이에요.”서 회장의 부인인 차혜미가 남설아의 손을 잡으며 따뜻하게 말했다.“별말씀을요, 사모님.”남설아가 정중하게 답했다.“이분이 바로 강 대표님이시죠?”서기찬이 강연찬을 바라보며 물었다.“네, 서 회장님.”남설아가 소개했다.“저의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좋은 친구인 강연찬 대표님이에요.”“강 대표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서기찬이 손을 내밀었다.“반갑습니다, 서 회장님.”강연찬은 예의를 갖춰 악수했다.“두 분 안으로 들어가시죠. 자리를 미리 준비해두었어요.”서기찬이 손짓했다.“감사합니다.”남설아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세 사람은 함께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조금 떨어진 곳에 배서준과 서유라도 행사장
배서준은 서유라가 들뜬 모습으로 웃고 있는 걸 보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괜히 불편하고 답답했다.그는 말없이 남성복 코너로 가서 대충 눈에 들어오는 정장을 집어 들었다.“손님, 정말 안목이 좋으시네요. 이건 저희 매장에서 가장 최근에 들어온 신상이에요. 이탈리아산 원단으로 수제 재단된 제품이라 고객님 체형에 정말 잘 어울리실 거예요.”점원이 열정적으로 설명했다.배서준은 아무 말 없이 검은색 정장을 들고 탈의실로 들어갔다.정장을 갈아입고 거울을 바라본 그는 문득 거울 속 자기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저 사람이 정말 내가 맞아?’한때 야망으로 가득하고 세상을 거머쥘 듯 당당했던 배서준은 이제는 서유라의 기대와 기준에 맞춰 움직이는 꼭두각시처럼 보였다.“서준아, 다 입었어?”서유라가 탈의실 밖에서 재촉했다.“응.”배서준은 문을 열고 나왔다.“와, 서준아, 너 이 정장 입으니까 진짜 멋있다.”서유라는 마치 영화 속 배우를 보는 듯 눈에 감탄이 가득했다.“진짜 영화배우 같아.”배서준은 가볍게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서유라가 이런 말들을 듣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할 기분이 아니었다.“이걸로 할게.”배서준은 피곤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때, 매장 입구 쪽에서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남설아와 강연찬이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눈이 마주친 순간, 공기가 얼어붙는 듯했다.배서준의 시선은 남설아에게 고정되었고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남설아는 연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단정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풍겼다.드레스는 그녀의 몸매를 자연스럽게 살려주었고 살짝 올려 묶은 머리 사이로 드러난 목선과 쇄골은 고급스러움을 더했다.그녀는 마치 한 송이 활짝 핀 제비꽃 같았다. 요란하지 않지만, 눈에 띄는 아름다움이었다.배서준의 가슴이 순간 쿵 하고 내려앉았다.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는 예전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그녀의 당당함과 여유는 서유라가 따라올 수 없는 것이었다.“강 대표님과 설아 씨도 드레스 고르러
“그날 같이 가자.”“응.”강연찬은 고개를 끄덕였다.한편, 배서준 역시 서 회장 부부가 주최하는 파티의 초대장을 받았다.그는 원래 서유라와 함께 참석해 둘의 관계와 입지를 보여줄 생각이었다.“유라야, 서 회장 부부가 비즈니스 파티를 연대. 우리 둘 다 초대했어.”배서준은 초대장을 들고 서유라에게 말했다.“같이 갈래?”“당연히 가야지.”서유라는 웃으며 말했다.“이런 기회에 좋은 인맥도 많이 만들 수 있잖아.”“그래.”배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같이 가자.”“응.”서유라가 고개를 끄덕였다.“서준아. 넌 정말 다정해.”서유라는 배서준의 품에 기대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배서준은 남설아도 그 파티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속에 복잡한 감정이 피어올랐다.“뭐? 남설아도 간다고?”배서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네, 대표님.”천기준이 답했다.“서 회장 부부가 남 대표님도 초대했답니다.”배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표정이 어두워졌다.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남설아가 강연찬과 함께 파티에 나타나는 모습을 상상하자 괜히 기분이 불편해졌다.“서준아, 무슨 일 있어?”서유라는 그의 이상한 기색을 눈치채고 물었다.“아니야.”배서준은 고개를 저었다.“그냥, 남설아가 올 줄은 몰랐어.”“오면 어때.”서유라가 말했다.“우리가 남설아를 무서워할 이유는 없잖아.”“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야.”배서준이 대답했다.“그냥...”그는 어떻게 얘기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그저 가슴이 무척 답답했다.“됐어, 너무 신경 쓰지 마.”서유라가 달래듯 말했다.“우리 둘이 함께 가서 보여주자. 우리가 얼마나 잘 지내고 있는지.”“그래, 그게 좋겠다.”배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유라야, 네가 있어서 정말 든든해.”서유라는 배서준과 함께 파티에 참석하겠다고 먼저 제안했다.“서준아, 이런 자리에는 내가 같이 가야지.”그녀는 부드럽게 말하며 따뜻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네 연인이니까 함께 이겨내야 할 책임이 있어.
배서준이 회사로 돌아왔을 때, 그를 반긴 것은 직원들의 열렬한 환영이 아니라 책상 위에 산처럼 쌓인 서류들과 불안으로 가득 찬 얼굴들이었다.그는 자신이 자리를 비운 동안 회사의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내가 없는 동안 내가 지시한 대로 진행됐어?”배서준이 천기준에게 물었다.“네, 대표님.”천기준은 서둘러 대답했다.“지시에 따라 주가 일부는 안정시켰고 마케팅도 강화했습니다. 하지만...”“하지만 뭐?”배서준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하지만 남 대표님 쪽의 공세가 너무 강해서... 우리가 제대로 대응을 못 하고 있습니다.”천기준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배서준은 말없이 책상 앞으로가 높게 쌓인 서류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지금 뭔가를 하지 않으면 배건 그룹은 정말로 무너질 수도 있다는 불안이 그를 짓눌렀다.“각 부서의 팀장들에게 10분 후에 회의실로 모이라고 전해.”배서준이 말했다.“네, 대표님.”천기준은 얼른 대답하고는 회의 소집을 위해 나갔다.배서준은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지금은 감정이 아니라 이성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어떻게든 회사를 다시 일으켜야 했다.10분 후, 회의실은 이미 각 부서의 팀장들로 가득 차 있었다.배서준은 회의실 중앙에 앉아 익숙한 얼굴들을 바라보며 복잡한 심경을 숨겼다.그 순간, 서유라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스쳤다.“서준아, 나는 널 믿어. 넌 반드시 배건 그룹을 다시 일으킬 수 있을 거야.”“고마워, 유라야.”배서준은 서유라와의 대화를 떠올리고 있었다.“네가 곁에 있어 줘서 난 두렵지 않아.”한편, 남설아의 회사는 강연찬과 송우민의 지원을 받으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그녀의 기업은 빠르게 시장 점유율을 넓혀가고 있었고 그에 따라 많은 비즈니스 파트너들에게 인정받으며 여러 초청도 받게 되었다.이날, 남설아는 서 회장 부부가 주최하는 상류층 비즈니스 파티 초대장을 받았다.서 회장 부부는 재계의 거물로, 남설아의 회사와도 협력 관계에
“그럼 됐어.”서도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누나, 나한테 시킬 일 있으면 뭐든 말해.”“응.”서유라가 말했다.“당분간은 여기 남아서 나 잘 챙기고 배서준도 잘 감시해. 남설아랑 접촉 못 하게 해야 해.”“알겠어. 걱정하지 마.”서도현은 단호하게 말했다.한편, 배서준은 회사로 복귀하자마자 긴급회의를 소집했다.“여러분, 최근 우리 회사의 상황은 매우 심각합니다.”회의실 중간 자리에 앉은 배서준은 굳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우리는 지금 즉시 대응책을 세워서 상황을 돌려놔야 합니다.”“배 대표님, 계획이 있으신가요?”한 주주가 물었다.“이미 여러 가지 대응 방안을 준비해 두었습니다.”배서준이 말했다.“첫째, 주가를 안정시켜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합니다. 둘째, 마케팅을 강화해서 잃어버린 시장 점유율을 되찾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내부 정비를 통해 운영 효율을 높이겠습니다.”“말씀은 좋은데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실행하실 건가요?”또 다른 주주가 질문했다.“제가 직접 나서서 추진하겠습니다.”배서준이 단호하게 말했다.“최대한 빨리 세부 계획을 수립해서 여러분께 공유하고 논의하겠습니다.”“저희는 배 대표님을 믿을 것입니다.”한 주주가 말했다.“하지만 이전 행동들로 인해 실망한 것도 사실입니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랍니다.”“맞습니다, 배 대표님.”또 다른 주주도 덧붙였다.“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회사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합니다.”“여러분, 제가 실망하게 한 점은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배서준은 진지하게 말했다.“하지만 저를 다시 한번 믿어 주십시오. 반드시 배건 그룹을 이 위기에서 구해내겠습니다.”“기대합니다.”한 주주가 말했다.“대표님, 잘 지켜보겠습니다.”회의가 끝난 후, 배서준은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왔다.그는 통유리창 앞에 서서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며 복잡한 감정에 잠겼다.잠시 후, 그는 휴대폰을 꺼내 서유라에게 전화를 걸었다.“유라야, 괜찮아? 나 회사 도착했
서유라는 분노에 차 손에 들고 있던 태블릿을 바닥에 내던졌다. 태블릿의 화면이 산산조각이 났다.정교하게 화장한 얼굴이 일그러졌고 눈빛에는 분노와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그녀는 서도현에게 먼저 나가보라고 한 뒤, 혼자 남아 배서준을 상대하기로 했다.혼자 방에 남은 서유라는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했다.그녀는 창가로 다가가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남설아, 너무 자만하지 마. 내가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며칠 뒤, 서유라는 대의를 위해 배서준에게 회사를 돌아가라고 설득했다.“서준아, 이제 돌아가.”서유라는 침대에 누운 채 창백한 얼굴로 힘없이 말했다.“회사가 더 중요해. 언제까지 내 곁에만 있을 수는 없잖아.”“하지만 네 몸 상태가...”배서준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난 괜찮아.”서유라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정말이야. 나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어.”“아니야, 네 곁에 있어야 마음이 놓여.”배서준이 고집을 부렸다.“서준아, 내 말 좀 들어봐.”서유라는 그의 손을 꼭 잡았다.“네가 날 걱정해주는 마음은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지금 회사 상황이 너무 안 좋아. 당신이 여기에 계속 있는 건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야.”“그래도...”“돌아가.”서유라는 그의 말을 끊었다.“지금은 너만이 배건 그룹을 지킬 수 있어.”“유라야...”배서준은 감동한 듯 서유라를 바라보았다.“넌 정말 사려 깊은 사람이야.”“나는 네 여자니까 당연히 너를 위해 생각해야지.”서유라는 다정하게 말했다.“어서 돌아가. 내가 걱정하지 않게 해줘.”“그래.”배서준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회사 일은 내가 책임질게. 넌 꼭 건강 잘 챙겨야 해.”“응, 걱정하지 마.”서유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너도 무리하지 말고 몸조심해.”“그래.”배서준은 그녀의 이마에 다정하게 입을 맞췄다.“회사 일이 마무리되면 다시 올게.”“응, 기다릴게.”서유라는 잠시 오묘한 웃음을 지었다.배서준은 서유라를 데리고 함께 회사로
그는 줄곧 자신과 남설아는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 생각해왔지만 지금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강연찬이 회복되자 모두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특히 남설아는 그동안 불안했던 마음을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었다.한편, 멀리 리조트에 머무르고 있던 서유라는 무척 불안하고 초조했다.서도현은 자신이 보낸 사람들이 전부 체포되어 한 명도 빠짐없이 구속되었다는 정보를 이미 입수했다. 남설아가 다치지 않은 것도 모자라 다친 사람마저 회복되었으니 그동안 벌인 모든 일이 헛수고가 되고 만 것이다.“뭐라고? 강연찬이 회복했다고?”서유라의 목소리는 고막을 찢을 듯 날카로웠다.“그 사람들이 엄청 대단하다고 하지 않았어? 어떻게 여자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남설아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여자잖아. 그런데도 그 여자 하나 못 건드려서 이 지경이 된 거야? 돈을 그렇게 많이 받고는 뭐 하겠다는 거야? 적은 돈이 아니었잖아.”서도현은 배서준의 감시를 피해 몰래 리조트 안으로 숨어들어와 서유라와 만났다.그의 얼굴엔 짜증이 가득했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누나, 나도 최선을 다했어. 그놈들이 이런 일 하나도 제대로 못 할 만큼 이렇게 쓸모없을 줄은 누가 알았겠어. 그래도 다행인 건 그놈들이 입이 무지하게 무겁다는 거야. 지금껏 한마디도 안 했어. 나도 계속 지켜볼 거니까 우리한테 불똥이 튀게 두진 않을 거야.”“쓸모없는 놈들! 전부 다 쓸모없어!”서유라는 온몸을 떨며 분노했다. 그녀는 탁자 위에 놓인 찻잔을 집어 들어 바닥에 힘껏 내던졌다.“이제 어떡해? 강연찬이 회복됐다고? 혹시 이 일을 남설아한테 말하면 어쩌려고? 남설아가 알게 되면, 나는...”“누나, 진정해봐.”서도현은 급히 달래며 말했다.“강연찬이 회복됐다고 해도 우리가 한 짓이라는 증거는 없어. 게다가 그 킬러들은 내가 따로 구한 사람들이라서 우리랑 직접적인 연결 고리는 없어.”“그래도...”서유라는 여전히 불안했다.“남설아 그 여자는 워낙 교묘해서 무슨 단서라도 찾아내게 되면 우리는 순식간에
“알겠어.” 송우민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너희가 그렇게 말한다면 따를게.”“우민아, 고마워.” 남설아가 말했다.“네가 얼마나 복수를 원하고 있는지 알아. 하지만 우리는 냉정해야 해. 감정에 휘둘리면 안 돼.”“응, 알아.” 송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너희 계획에 최선을 다해 도울게.”“좋아.”남설아가 미소 지었다.“우린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거야.”세 사람은 구체적인 세부 사항을 더 논의한 후, 각자 맡은 일을 하기 위해 흩어졌다.연회가 끝난 후, 남설아는 사무실로 돌아와 밀린 서류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그때 강연찬이 따뜻한 우유 한 잔을 들고 들어왔다.“설아야, 우유 좀 마시고 일찍 쉬어.”강연찬이 우유를 건네며 말했다.“요즘 너무 무리하고 있어. 몸을 챙겨야지.”“응, 고마워, 오빠.”남설아가 우유를 받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오빠도 일찍 쉬어.”“난 안 피곤해.” 강연찬이 말했다.“너 일 마칠 때까지 같이 있어 줄게.”“괜찮아, 오빠. 몸도 아직 완벽히 회복된 건 아니잖아. 푹 쉬는 게 좋아.”남설아가 말했다.“이 서류들은 나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어.”“그래도 옆에 있어 줄게.”강연찬이 말했다.“너도 너무 늦지 않게 마무리하고 쉬어.”“응, 알겠어.”강연찬이 나간 뒤에도 남설아는 계속해서 일을 처리했다.그녀는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었다. 더 강해져야만 배서준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나은이를 위해 복수할 수 있었다.깊은 밤이 되어서야 남설아는 마침내 모든 서류를 정리했다.그녀는 기지개를 켜면서 창가로 가서 불빛이 번쩍이는 도시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나은아, 보고 있어?”남설아는 혼잣말처럼 속삭였다.“엄마가 반드시 복수할 거야. 기다려줘.”다음 날, 남설아는 이른 아침부터 회사에 출근했다.그녀는 회사의 핵심 팀을 소집해 다음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여러분, 우리 그동안 좋은 성과를 거뒀지만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남설아가 말했다.“배건 그룹은 지금 위기에 처해 있지만
“선배...”남설아는 강연찬을 바라보며 가슴 깊이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꼈다.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송우민은 두 사람 사이의 다정한 분위기에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기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마음 한편이 허전했다.연회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던 중, 남설아가 잔을 들어 모두와 함께 축하의 건배를 하려는 찰나 강연찬이 재빨리 손을 내밀어 그녀를 막았다.“설아야, 요즘 너무 무리했잖아. 술은 좀 줄여.”강연찬의 목소리엔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 있었다.남설아는 그의 따뜻한 눈빛을 마주하며 마음이 포근해졌다.하여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고 대신 주스를 들었다.“알겠어. 선배 말 들을게.”남설아는 웃으며 말했다.그 광경을 본 송우민은 잔을 들고 조용히 다가왔다.“남설아, 내가 한 잔 올릴게.”송우민은 잔을 들며 말했다.“이번 성공, 정말 축하해.”남설아는 주스를 들고 잔을 맞댔다.“고마워, 우민아.”남설아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네 도움이 없었으면 이렇게 빠르게 결과를 얻진 못했을 거야.”“우린 친구잖아. 서로 도와야지.”송우민은 웃으며 말했다.“근데 정말 대단하다. 네가 이렇게 멋진 사람일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우민아, 너무 띄우지 마.”남설아는 조금 쑥스러워하며 웃었다.“운이 좋았을 뿐이야.”“그건 아니지.”송우민은 단호히 말했다.“너의 실력, 결단력, 배짱, 모두 내가 본 사람들 중 최고야.”“그 얘기는 그만하고...”남설아는 말을 돌리며 미소 지었다.“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해보자.”“좋아.”송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남설아, 내 생각엔 지금이 기회야. 우리가 배건 그룹을 한 방에 무너뜨리고 배서준한테 확실하게 복수해야 해!”그의 눈빛에는 분노와 집념이 가득했다.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배서준을 단죄하고 싶은 듯했다.그러나 강연찬은 조용히 눈살을 찌푸렸다.“난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왜?”송우민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지금 배건 그룹은 거의 끝장난 상태잖아.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