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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Author: ddingjak30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6 15:23:18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점멸했다.

귓가를 간질이며 파고드는 남자의 뜨거운 숨결과 노골적인 희롱.

무릎을 꿇은 채 올려다본 남자의 눈빛은 기이한 호기심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수치심과 분노가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혜진은 남자의 단단한 어깨를 매몰차게 밀쳐냈다.

벌떡 일어서는 그녀의 손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경고합니다, 강태하 씨."

혜진은 차가운 목소리로 쏘아붙이며 손에 끼고 있던 라텍스 장갑을 벗어 가방에 찔러 넣었다.

"공무를 수행 중인 담당관에 대한 성희롱 및 위협 행위는 엄연한 보석 조건 위반입니다. 상부에 보고서가 올라가는 순간 통보 없이 즉시 구인될 수 있습니다."

태하는 밀려난 자세 그대로 소파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파묻으며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치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마와 같은 느낌이었다. 

반성은커녕 붉게 달아오른 혜진의 얼굴을 흥미롭다는 듯 응시할 뿐이었다.

"알겠어요, 조심하죠."

더 머물렀다가는 남자의 페이스에 완전히 말려들 것 같았다.

그때 주방 쪽에서 오 실장이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다가왔다.

"서 주무관님, 요청하신 비상용 마스터키입니다. 잘 보관하셨다가 보호관찰이 끝나면 돌려 주셔야 합니다."

혜진은 카드 키를 수령한 뒤 가방 속에 넣었다. 

"협조 감사합니다. 내일 아침 본부에서 확인 전화가 갈 테니 반드시 대상자가 직접 수신하도록 안내해 주십시오."

공적인 멘트를 남긴 혜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듯 펜트하우스를 빠져나왔다.

집으로 돌아와 몇 번이나 씻어내도 남자의 달콤한 민트향이 코끝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에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던 밤.

침대 머리맡에 둔 업무용 단말기가 요란한 경보음을 쏟아냈다.

[경고: 강태하 대상자 피부 감응 센서 이상 — 신체 분리 의심]

액정 화면에 붉은색 경고등이 미친 듯이 점멸했다.

기기가 발목에서 떨어졌거나 물리적으로 훼손되었을 때 관제센터로 전송되는 긴급 신호였다.

'설마…… 첫날부터 도주를?'

머릿속이 하얗게 식어 내렸다.

전 국민의 이목이 쏠린 대기업 후계자가 가석방 첫날 밤에 사라진다면, 마태석 계장은 기다렸다는 듯 모든 책임을 혜진에게 뒤집어씌울 것이다.

'사고 치는 순간 네 공무원 인생도 끝장이야.'

마 계장의 독사 같은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혜진은 사복 위에 가벼운 외투만 급히 입은 채 주차장으로 내달렸다.

차를 몰아 도착한 빌딩의 1층 로비는 심야에도 사설 보안 요원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다.

"법무부 보호관찰 긴급 점검입니다!"

혜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신분증을 들이밀었다.

단말기에 뜬 적색 경보 내역을 확인한 보안 직원이 급히 비상 승인을 내주었고, 혜진은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64층으로 올라갔다.

지상 64층 복도는 낮과 달리 기괴할 정도로 어둡고 고요했다.

초인종을 연달아 눌렀지만 안쪽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들려오지 않았다.

관제실에 정식 도주 보고가 접수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단 5분.

결국 혜진은 떨리는 손으로 낮에 받아 둔 비상용 마스터키를 도어록에 태그했다.

어두컴컴한 거실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거대한 통유리창 너머로 번쩍이는 서울 도심의 야경만 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강태하 씨?"

혜진이 떨리는 목소리로 어둠을 향해 불렀다.

정말 도망쳤다는 공포가 전신을 잠식하려던 바로 그 찰나였다.

정적을 깨고 욕실 문이 스르륵 열렸다.

자욱한 수증기와 함께 옅은 민트향, 그리고 달콤한 향기가 섞인 남자의 짙은 체향이 순식간에 거실의 공기를 밀어냈다.

그리고 안개 속에서 한 사내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혜진의 숨이 턱 막혔다.

남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

샤워를 갓 마친 남자의 단단한 어깨와 사납게 갈라진 가슴 근육, 복근을 타고 맑은 물방울들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남자의 오른쪽 발목에는 검은색 단말기가 정상적인 파란 불빛을 껌뻑이고 있었다.

단말기가 고장 난 것이 아니었다.

강태하가 스트랩을 억지로 잡아당겨 피부 감응 센서의 틈을 벌려 고의로 신호를 유도한 것이 분명했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 서혜진 주무관."

젖은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혜진을 내려다보는 태하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걸렸다.

혜진은 당혹감과 수치심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옷…… 옷부터 입으십시오!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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