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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장 – 빨간 드레스

Author: L'encre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02 02:51:47
그녀는 거울 앞으로 다가가 가운의 깃을 활짝 열고 드레스를 몸에 밀착시켰다. 붉은색은 그녀의 창백한 피부와 작업실의 회색빛, 1월의 음울한 분위기 속에서 강렬하게 돋보였다. 그것은 축하와 승리, 그리고 삶의 색이었다. 그녀는 그날 이후로,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남자를 따라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 이후로 그 드레스를 입지 않았다. 드레스는 옷장 속에 잊혀진 보물처럼, 더 이상 그녀가 아닌 여인의 상징으로 남아 있었다.

그녀는 가운을 벗고 드레스로 갈아입었다. 드레스 자락이 어깨를 타고 흘러내려 엉덩이를 감싸더니 무릎까지 내려왔다. 지퍼를 올리고 손바닥으로 옷자락을 매만진 후, 그녀는 거울을 향해 돌아섰다. 거울 속의 여자는 5년 전 그 드레스를 입었던 그녀와는 달랐다.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고, 이목구비는 더욱 뚜렷해졌으며, 눈에는 눈물 자국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예전의 앤에게는 없었던 무언가가 있었다. 고통 속에서 단련된 강인함, 눈물로 다듬어진 결단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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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가 놓아준 여자   제625장 – 논쟁

    엘리스는 그를 차분히 바라보며 방 안에 정적이 흐르기를 기다렸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누구를 낙인찍으려는 게 아닙니다. 저는 증언하는 것뿐입니다. 제 전 남편은 5년 동안 제 동의 없이 피임약을 준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건 의견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그리고 제가 협회를 설립한 이후로 비슷한 상황을 겪은 여성들을 수백 명 만났습니다. 이것들은 일반화가 아니라 사실입니다. 만약 어떤 직업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것이 이런 사실들을 밝히는 것을 의미한다면, 네, 저는 그 직업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어쩌면 문제는 진실을 밝히는 사람이 아니라 진실을 듣기를 거부하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방 안에서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오니 거실에 줄리앙이 책을 손에 든 채 피곤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옆에 앉아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오늘은 힘들었어. 하지만 버텨냈어."그는 그녀의 이마에 입맞추며 말했다. "당신은 내가 아는 가장 강한 여자예요."그녀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고, 집 안의 고요함이 그녀를 감쌌다. 그날 저녁, 그녀는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제 책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의사들은 제가 일반화하고, 낙인을 찍고, 거짓말을 했다고 비난합니다. 그들의 기사는 모호한 억측과 악의로 가득 차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를 인용하고 댓글을 달고 확대 해석했습니다. 마치 과거의 일이 다시 저를 괴롭히는 듯, 이전과 똑같은 협박을 다시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이 그냥 넘어가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저는 논평 기고문을 작성했고, 차분하게 반박하며 사실과 정의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오늘 한 의대생이 토론 중에 저를 공격했지만, 저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맞섰습니다. 싸움은 계속되지만, 저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닙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제 책 덕분에 용기를 내어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고 편지를 보내주는 여성들이 있는 한, 저는 계

  • 그가 놓아준 여자   제624장 – 논쟁

    이번에는 소피가 폭발했다. 그녀는 엘리스에게 전화를 걸어 분노에 찬 목소리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나서야 해! 저들이 이렇게 그냥 넘어가게 둘 순 없어. 논평 기사를 써서 반박해 봐. 하나하나 논리를 반박해 봐. 내가 도와줄게."엘리제는 망설였다. 두려웠다. 상황을 더 악화시킬까 봐, 더 많은 증오를 불러일으킬까 봐, 무엇보다도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해 자신을 지지해 주는 사람들을 실망시킬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동시에 침묵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침묵하는 것은 거짓이 승리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고, 과거의 자신,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삼키며 미소 짓고,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약을 삼키던 그 여자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 여자는 이미 죽었다. 그녀는 그 여자를 되살릴 수 없었다.클레망 선생님은 자문을 구하자 귀중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반론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 권리를 활용하세요. 하지만 의미 없는 논쟁에 휘말리지 마십시오. 인신공격에 대응하지 마세요. 간결하고 침착하게 사실을 진술하십시오. 당신의 힘은 진실에 있습니다. 그리고 진실은 굳이 소리치지 않아도 들립니다."엘리스는 이 조언을 따랐다.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글이 술술 써졌다. 마치 며칠 동안 그녀가 글을 쓰기만을 기다려온 듯했다. 그녀는 간결하고 사실에 입각한 의견 기고문을 작성하여 논란이 된 기사를 게재했던 바로 그 신문사에 보냈다. 기고문에서 그녀는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 의료 검사 결과, 그리고 자신이 만났던 수십 명의 여성들의 증언을 되풀이했다. 특정 인물의 이름을 거론하지도 않았고, 비난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해당 단체에 소속된 의사들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과 투쟁, 그리고 자신처럼 자신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시스템의 희생양이 된 모든 여성들에 대해 이야기했다.그녀는 줄리앙에게, 소피에게, 그리고 클레망 상사에게 연설문을 다시 읽어주었다. 세 사람 모두 찬성했다. 줄리앙은

  • 그가 놓아준 여자   제623장 – 논쟁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신문을 내려놓고 숨을 헐떡였다. 목구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가 너무 강렬해서 폭발할 것 같아 눈을 감아야 했다. 소피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숨 쉬어.""사람들은 날 거짓말쟁이라고 불러요, 소피. 일반화하는 사람이라고도 하고, 공공의 골칫거리라고도 하죠.""아니요. 그들은 당신의 책을 공격하는 겁니다. 그건 전혀 다른 문제예요.""똑같은 거예요. 그들은 제 책을 통해 저를 공격하고 있어요."전화 연락을 받은 줄리앙은 한 시간도 채 안 되어 도착했다. 그는 오는 길에 신문을 사서 차 안에서 기사를 읽었다. 그는 장황한 연설을 하지 않았다. 그런 스타일의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엘리제를 품에 안고 꼭 껴안으며 간단히 말했다. "우리가 답장을 보낼게요."이후 며칠 동안 소셜 미디어와 여러 언론 매체의 기사 재게재로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일부는 엘리제를 옹호하며 의료 검사 결과, 이혼 판결 사유, 증언 등을 근거로 사실을 재차 강조했다. 반면 다른 이들은 의사들이 집단 소송에 빌미를 제공한 것을 빌미로 엘리제를 더욱 몰아세웠다. 트위터에는 #피해자살멈춰 #내의사에게손대지마 #거짓말할자유 와 같은 해시태그가 등장했다. 익명의 댓글들은 엘리제를 히스테리적, 병적, 미쳤다고 비난했다. 이는 알렉상드르가 과거에 사용했던 바로 그 말들이었고, 이제 낯선 사람들이 쓴 이 말들을 읽으니 마치 뺨을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며칠 후 최악의 일이 벌어졌다. 또 다른 익명의 편지가 사무실 우편함에 밤새 몰래 들어왔다. 이전 편지들과 같은 종이에 같은 필체였다. 그녀 가 너무나 잘 아는, 분노에 차 있고 불규칙적인 필체였고, 알렉상드르나 그의 가족이 보냈던 편지들과 거의 구별할 수 없었다. "의사들을 비방하고, 존경받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거야? 이런 짓은 용납 못 해. 우리가 경고했잖아." 엘리제는 편지를 읽으며 얼굴이 창백해졌지만, 찢어버리지는 않았다. 다른 편지들과 함께 증거 폴더에 넣어두고 줄리앙이나 소피에게는 아무 말도

  • 그가 놓아준 여자   제622장 – 논쟁

    저는 강연자가 되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너무나 두려워하고, 숨어 지내고, 혼자 지내던 제가 이제는 무대에 서서 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상하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합니다. 매번 저는 제 삶, 제 고통, 제 역경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매번 많은 여성분들이 저를 찾아와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제가 계속 나아가는 이유는 바로 그분들을 위해서입니다. 그분들을 위해서, 그리고 아직 용기를 내지 못하는 모든 분들을 위해서입니다. 제 책은 하나의 문을 열었고, 강연은 또 다른 문을 열어줍니다. 제 이야기가 마침내 의미 있는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그 기사는 화요일 아침, 주요 전국 일간지의 '의견'란에 실렸다. 자신들을 "의료 윤리와 환자-의사 관계 보호에 관심을 가진 의료 종사자 단체"라고 소개한 의사들이 기고한 글이었다. 굵은 글씨로 페이지 전체를 차지하는 제목은 "자유인가, 아니면 혼동의 위험인가: 개인적 증언이 직업에 대한 비난이 될 때"였다.엘리스는 사무실에 도착해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피는 신문을 손에 든 채 창백한 얼굴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너를 노리고 있어. 읽어봐."그녀는 신문을 집어 들고 자리에 앉아 기사를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글자들이 그녀의 눈을 따갑게 했다. 저자들은 그녀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며 공격하지는 않았다. 그럴 만큼 얄팍한 수법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특정 언론 매체들이 안일하게 홍보한, 고통스럽지만 고립된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보편적 현실을 증언한다고 주장하는 최근의 책"을 맹렬히 비난했다. 그들은 저자가 "과도하게 일반화했다", "의료계 전체의 신뢰를 실추시켰다", "의료 전문가들에 대한 해로운 의심의 분위기를 조장했다"고 비난했다. 또한 "법적 남용", "사기성 소송", "치료 관계에 필수적인 신뢰 관계의 붕괴" 위험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그들은 증거, 전문가 의견, 유죄 판결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의료 폭력의 현

  • 그가 놓아준 여자   제621장 – 초대

    그 후 며칠 동안 더 많은 초청이 도착했고, 엘리제는 매번 불안감이 줄어들면서 초청을 수락했다. 그녀는 도서관, 서점, 병원, 대학교에서 강연을 했다. 라디오 토론에 참여하고 지역 신문과 인터뷰를 했다. 그녀는 목소리를 조절하고, 무대 공포증을 극복하고,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배웠다. 적대적인 질문과 은밀한 공격, 그리고 그녀를 "피해자 행세를 한다"거나 "고통을 이용한다"고 비난하는 회의론자들에게 대응하는 법 을 배웠다. 이는 과거 들로네 박사가 그녀에게 사용했던 것과 같은 논리였고, 이제 그녀는 같은 침착함과 확신으로 맞섰다. 또한 그녀는 자신을 보호하고, 모든 것을 드러내지 않고, 줄리앙과 딸들, 그리고 오직 그들만의 사적인 세계를 지키는 법을 배웠다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멀리 왔는지 되돌아보았고, 그 생각은 한때 느꼈던 오만함과는 전혀 다른, 조용한 자부심으로 그녀를 가득 채웠다. 이 여정에서 그녀가 보는 것은 더 이상 자신만이 아니었다. 그녀보다 앞서 걸어온 모든 여성들,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 준 사람들, 계속 나아갈 힘을 준 사람들. 약에 대한 진실을 감히 밝힌 작은 약사 람베르 부인. 결코 그녀를 버리지 않은 충실한 친구 소피. 그녀에게 전문직의 문을 다시 열어준 멘토 그랑데 씨. 그녀 곁에서 함께 싸워준 클레망 상사.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더 이상 알지 못했을 때 그녀를 사랑해 준 쥘리앙.어느 날 저녁, 특히 힘들었던 학회를 마치고 집 에 돌아온 그녀는 허리가 굽은 채 녹초가 되었고, 거실에서 줄리앙이 책을 손에 든 채 미소를 지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됐어?""좋습니다. 어렵지만 좋습니다."그녀는 그의 옆에 앉아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줄리앙, 있잖아, 가끔은 이 모든 게 정말 중요한 건지 궁금해. 내 말이 뭔가 바꿀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그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로라 기억나? 네 책을 읽고 아버지를 고소했던 그 젊은 여자 말이야."엘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당신의 이야기에 귀

  • 그가 놓아준 여자   제620장 – 초대

    엘리스는 첫 번째 초대를 수락했다. 그 장소는 지역의 작은 대학교였고, 법학과 사회과학 학생들이 가득 찬 강의실이었다. 그녀는 꼼꼼하게 준비하고, 책을 다시 읽고, 핵심 내용을 몇 가지 적어두고, 거울 앞에서 연습했다. 발표 당일 아침, 그녀는 심장이 쿵쾅거리고 손바닥에 땀이 나는 채로 잠에서 깨어났고, 거의 모든 것을 취소할 뻔했다. 하지만 줄리앙이 그녀가 왜 이 모든 것을 하고 있는지 상기시켜 주었고, 그녀는 과거의 성공에서 입었던, 그녀에게 용기를 주었던 빨간 드레스 를 입었다.원형극장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수백 명의 젊은이들이 관중석에 앉아 그녀의 등장을 지켜보았다. 교수, 기자, 그리고 몇몇 익숙한 얼굴들도 보였다 . 물론 소피는 맨 앞줄에 앉아 격려하는 미소를 짓고 있었고, 캐서린은 협회에서 온 몇몇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왔다. 엘리제는 무대로 걸어가 앞에 메모를 놓고 관중들을 올려다보았다. 무겁고 숨죽인 정적이 흘렀다.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목소리는 점차 단단해졌다. 알렉상드르의 첫 거짓말부터 협회 설립, 탈출, 이혼, 그리고 삶을 재건하기까지의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는 '비타민'에 대해, 두려움과 수치심에 대해 이야기했다. 결국 승리한 정의와 자신을 거의 무너뜨릴 뻔했던 위협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줄리앙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저 사랑에 대한 믿음을 되찾아준 남자라고만 했다. 그녀는 협회에 대해, 그곳에서 만난 모든 여성들에 대해, 그들의 산산조각 난 삶과 다시 태어난 희망에 대해 이야기했다.그녀가 침묵에 잠기자 긴 정적이 흘렀고, 곧이어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질문을 하려는 손들이 일제히 올라왔다. 어떤 질문은 이혼의 법적인 측면에 관한 것이었고, 어떤 질문은 그녀의 심리적 회복에 대한 개인적이고 거의 사적인 질문들이었다. 또 어떤 질문들은 감춰진 증언이었다 . 한 젊은 여성은 어머니의 이야기를, 또 다른 여성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엘리스는 회피하거나 공격적인 태도 없이 차분하게 대

  • 그가 놓아준 여자   제2장 –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침

    그녀는 일어나서 잠옷 가운을 입었다 . 팔꿈치까지 내려오는 낡은 면 소재의 가운이었는데, 취향보다는 습관 때문에 계속 입고 있던 것이었다. 그리고 욕실로 향했다. 그녀의 움직임은 느리고 기계적이었다. 마치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는 내면의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는 것 같았다. 불을 켜고, 수도꼭지를 틀고,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았다.거울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낯선 사람의 얼굴이었다. 눈 밑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폭풍우에 휩쓸린 듯한 주름이 깊게 패여 있었다. 창백하고 밀랍 같은 안색. 급하게 묶은 윤기 없는 머리카락은 어깨

  • 그가 놓아준 여자   제1장 –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침

    알람 시계가 울렸다. 날카로운 소리가 침실의 고요함을 깨뜨렸다. 앤은 어둠 속으로 손을 뻗어 침대 옆 탁자를 더듬어 엄지손가락으로 기계적으로 알람을 껐다. 곧바로 솜털처럼 포근한 정적이 찾아왔고, 거실 시계의 희미한 똑딱거리는 소리만이 그 정적을 깨뜨렸다.그녀는 눈을 뜨지 않았다. 얼굴을 베개에 파묻은 채, 팔다리는 마치 새 하루를 시작하기를 거부하는 듯 무겁게 늘어져 있었다. 옆 침대 시트는 차가웠다. 알렉상드르는 말 한마디, 몸짓 하나,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일어났다. 마치 낯선 사람이 호텔 방을 나서듯, 정중하지만 무심한

  • 그가 놓아준 여자   제8장 – 이름 모를 여인의 회상

    그녀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한때는 마치 친구를 재회하는 것처럼, 아는 듯한 호기심으로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곤 했다. 아침에 거울 앞에 한참을 서서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립스틱을 발라보고, 자신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곤 했다. 그건 예전 이야기였다. 알렉상드르를 만나기 전, 결혼식 전, 침묵과 하얀 알약들이 있기 전. 거울이 적이 되기 전의 이야기였다.그날 아침, 텅 빈 부엌에서 커피를 마신 후 그녀는 다시 위층으로 올라갔다. 집 안은 모든 색을 빨아들이는 듯한 차갑고 칙칙한 빛으로 가득

  • 그가 놓아준 여자   제7장 – 깨어나기 전의 부재

    노인이나 하는 짓이지." 그래서 그녀는 정원 가꾸기를 그만두었다. 그림을 그리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꿈꾸는 것도 그만둔 것처럼.그녀는 다시 한 모금 마시며 맞은편 빈 의자에 시선을 고정했다. 저 의자는 그의 것이었다. 매일 아침 그가 손에 휴대전화를 든 채 딴 곳을 바라보며 앉던 자리였다. 그녀는 그가 없을 때조차 그 자리에 앉은 적이 없었다. 그곳은 그의 자리였다. 그녀에게는 그녀의 자리가 있었다. 정해진 자리, 그녀가 선택한 것도 아니고, 움직일 수도 없는 자리.그녀는 모든 것을 잃었다. 친구들, 직업, 자유. 삶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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