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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9 10:27:05

공대현은 단단히 안은 아내의 등을 쓸어내렸다.

“가요. 우리 딸 보러 갑시다.”

한 시간 뒤.

서울의 대형 병원 VIP 병동 앞.

일반인의 출입이 완벽하게 통제된 복도는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공대현과 윤정희, 그리고 도윤이 내렸다.

경호원들이 서 있는 복도를 지나, 세 사람은 굳게 닫힌 병실 문 앞에 섰다.

공대현이 먼저 숨을 들이켰다.

윤 여사는 문고리를 바라보며 손끝을 떨었다.

그리고—

공대현이 도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윤이 문을 두드렸다.

똑, 똑.

그리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병실 안, 침대 위에는 서린이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피 묻은 셔츠를 입은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든 수혁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시선이, 문가에 선 세 사람에게 닿았다.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 부부.

하지만, 수혁의 눈에는 그저 한 여자의 부모로만 보였다.

살짝 놀란 듯 했으나, 곧 시선을 정리하고 고개를 숙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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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날, 나는 죽지 않았다.   172화.

    공대현은 단단히 안은 아내의 등을 쓸어내렸다.“가요. 우리 딸 보러 갑시다.”한 시간 뒤.서울의 대형 병원 VIP 병동 앞.일반인의 출입이 완벽하게 통제된 복도는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공대현과 윤정희, 그리고 도윤이 내렸다.경호원들이 서 있는 복도를 지나, 세 사람은 굳게 닫힌 병실 문 앞에 섰다.공대현이 먼저 숨을 들이켰다.윤 여사는 문고리를 바라보며 손끝을 떨었다.그리고—공대현이 도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도윤이 문을 두드렸다.똑, 똑.그리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병실 안, 침대 위에는 서린이 잠들어 있었다.그리고 그 옆에는 피 묻은 셔츠를 입은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든 수혁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그의 시선이, 문가에 선 세 사람에게 닿았다.대한민국 최고 권력자 부부.하지만, 수혁의 눈에는 그저 한 여자의 부모로만 보였다.살짝 놀란 듯 했으나, 곧 시선을 정리하고 고개를 숙였다.“오셨습니까.”자신이 지켜낸 여자의 가족을 맞이하는, 가장 단단하고 묵직한 인사였다.윤 여사는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침대로 다가갔다.붕대가 감긴 손목과 발을 보는 순간,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지안아…….”손을 뻗었다가 차마 닿지 못하고 허공에서 멈췄다.공대현도 말없이 그 뒤에 섰다.사진으로 보고, 도윤에게 괜찮다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어도 직접 보는 건 달랐다.살아 있었다.자신의 딸이, 정말 눈앞에 살아 있었다.그 시각.서울중앙지방검찰청 취조실.쾅—! 쾅!“야! 이리 내놔! 내 약혼녀 당장 데려오라고!!”강민재가 취조실 책상을 발로 차며 악을 썼다.수갑이 채워진 양손을 미친 듯이 휘두르며, 그는 맞은편에 앉은 검사들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너희들이 뭔데 우리 사이를 갈라놔! 우린 그냥 밀월여행을 갔을 뿐이야! 연인끼리 잠깐 오해가 있어서 다투기 좀 한 거 가지고, 무슨 납치니 감금이니 헛소리를 지껄여!”최기출 검사는 서류를 넘기며 강민재

  • 그날, 나는 죽지 않았다.   171화.

    청와대 본관, 대통령 집무실.무거운 정적이 감도는 방 안에는 긴장한 표정의 이영호 정무수석과 최현섭 비서실장, 그리고 미동조차 없는 경호실장이 공대현 대통령 앞에 서 있었다.공대현은 책상 위에 두 손을 깍지 낀 채, 붉게 충혈된 눈으로 세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그리고, 그의 입에서 숨겨진 이름이 흘러나왔다.“내 딸, 지안이가 살아 있소.”순간, 이영호 수석과 최 실장의 숨이 동시에 멎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 부딪혔다가, 다시 대통령에게 꽂혔다.“대, 대통령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5년 전, 온 국민이 애도했던 그 끔찍한 사고.시신조차 찾지 못한 채, 영원히 가슴에 묻었던 이름이었다.‘지안이 살아 있다니’정무수석 이영호는 그날의 일이 떠올라 떨리는 손을 주먹으로 쥐었다.“현재 한도전자 상무, 공서린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소.”공대현의 목소리는 차분했다.하지만 그 안에는 눌러 담은 분노와 회한이 고스란히 묻어났다.그 짧은 한 문장에 얼마나 많은 눈물과 아픔이 담겨 있는지, 이영호 수석은 알고 있었다.한 사람이 다른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건 그 한 사람을 죽여야 하는 일이었으니까.공대현의 시선이 흔들림 없이 두 사람을 향했다.그리고 그간의 일을 짧고 명료하게 전했다.국가 핵심 기술 유출.그것을 덮기 위한 살인 미수와 납치 행각.그리고 그 중심에 선 현역 국회의원 강민재.말이 끝나자—아무도 바로 입을 열지 못했다.이영호 수석은 눈을 감았다 떴다.손끝이 떨려서 주먹을 쥐었는데도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다시 폈다 쥐었다.최 실장이 깨문 입술은 바르르 떨렸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못했다.“경호실장.”“예, 대통령님.”놀라운 내색 하나 없이 서 있던 경호실장이 즉시 대답했다.“한 시간 뒤, 극비리에 서울 대형 병원 VIP 병동으로 이동할 거요. 준비하시오.”“알겠습니다. 동선 확보하겠습니다.”경호실장은 더 묻지 않았다.고개를 숙인 뒤, 곧바로 집무실을 나섰다.문이 닫히는 순간—방 안의 공

  • 그날, 나는 죽지 않았다.   170화.

    몇 시간 뒤, 서울의 한 대형 병원 VIP 병실.창문 너머로 붉은 노을이 지고 있었다.병실 안에는 심박 체크기의 규칙적인 기계음만이 조용히 울리고 있었다.서린은 하얀 환자복을 입고 링거를 맞으며 깊이 잠들어 있었다.얼굴은 창백했고, 맨발로 산속을 뛰며 찢어졌던 발과 피멍이 든 손목에는 하얀 붕대가 촘촘히 감겨 있었다.의사가 다녀가고, 간호사가 혈압을 재고 링거를 교체하는 동안에도 수혁은 침대 옆의 의자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야, 옷이라도 갈아입어.”“괜찮아.”“안 괜찮아. 지금 니 꼴이 말이 아니야.”“......”“좀 씻고 옷도 갈아입어. 공 상무 깨어나면 그 꼴을 보일 거야?”민우의 말은 그에게 닿지 않았다.서린 못지않게 흐트러진 모습이었지만,수혁은 자신의 몰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그의 시선은 붕대 감긴 서린의 손목에 박혀 있었다.맞잡은 두 손 위로 고개를 숙인 채, 처음 자리 잡은 자세 그대로였다.“……으음…… 안 돼…….”잠든 서린의 미간이 일그러졌다.고개가 좌우로 흔들리고, 링거가 꽂힌 손이 허공을 더듬었다.수혁이 곧바로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괜찮아. 나 여기 있어.”그의 손이 더 깊게 감싸 쥐었다.그 온기가 전해지자, 서린의 거칠던 호흡이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병실 한쪽 소파에는 민우가 테이블 위에 쌓인 서류를 보고 있었다.도윤은 핏발 선 눈으로 앉아 있었다.매형이 누나를 찾았다.그리고 지금 누나의 상태가 안정되고 있었다.“매형. 아니, 대표님.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 누나, 살려주셔서.”“네가 고마워할 게 뭐 있어. 당연히 내가 지켜야 할 사람인데.”수혁이 시선을 서린에게 둔 채 덤덤하게 대답했다.그때, 병실 문이 조용히 열리고 중후한 체격의 남자가 들어왔다.성도형 혁신위원장이었다.그는 침대에 누운 서린을 잠시 바라본 뒤, 수혁에게 다가와 짧게 목례했다.“차 대표. 고생 많았소.”“위원장님께서 여기까지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와야지.”그가 수혁에게 시선을 주며 말했다.

  • 그날, 나는 죽지 않았다.   169화.

    끼이이이익—!!그녀의 시야가 뒤집혔다.타이어가 아스팔트를 찢어질 듯 긁으며 멈춰 섰다.그리고— 누군가가 거칠게 그녀를 끌어안았다.“서린아!”익숙한 체온, 숨이 닿는 거리.꽈악 끌어안은 팔에서 느껴지는 힘.아... 대표님이다.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긴장의 끈이, 툭— 끊어졌다.왔다.정말로...나를 찾아서,여기까지...포기하지 않고...살았다—다행이에요.당신이어서...서린은 그의 품 안으로 완전히 파묻혔다.다리에 힘이 풀렸다.그녀는 수혁의 품 안에서 무너져 내렸다.수혁은 반사적으로 서린의 몸을 받쳐 안았다.찾았다.제 품 안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미칠 것 같았다.얼마나 추웠던 건지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맨발은 피투성이였다.얼굴이며 팔이며 성한 곳이 없었다.수혁은 이를 악물었다.찾았다는 안도감보다, 이렇게 만든 놈을 죽이고 싶다는 분노가 더 빠르게 치밀어 올랐다.“비켜—!!”그때였다.뒤늦게 달려온 강민재가 광분한 채 소리치며 두 사람에게 덤벼들었다.“이리 내놔! 이 여자 내 약혼녀야! 놔!”강민재의 손이 수혁의 어깨를 거칠게 밀쳤다.“지안아!!”하지만—수혁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서린을 끌어안은 팔에 더 힘이 들어갔다.“그만해요—!!”뒤따라 달려온 민우가 강민재를 붙잡아 떼어냈다.그 순간—애앵—애애앵—!!사방에서 찢어질 듯한 사이렌이 터져 나왔다.붉고 푸른 경광등이 도로를 집어삼켰다.수십 대의 경찰차와 해경, 구급차가 순식간에 들이닥쳤다.“움직이지 마! 손들어!”차에서 뛰어내린 경찰들이 순식간에 강민재를 에워쌌다.“이거 놔! 놔, 이 새끼들아! 내가 누군지 알아? 나 국회의원이야! 강민재라고!”이제야 겨우,겨우 지안을 찾아서 돌아갈 수 있었는데.저 새끼 차수혁이 또 나타났다.내가 붙잡을 수 있었는데.바닥에 처박히듯 눌린 채, 강민재가 악을 썼다.하지만 경찰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양팔을 뒤로 꺾었다.그 소란 한가운데로—들것을 끌고 온 구급대원들

  • 그날, 나는 죽지 않았다.   168화.

    어젯밤, 어둠 속에서 머릿속으로 그렸던 탈출 경로였다.마을로 이어지는 도로는 위험하다.무조건 산을 넘어서 반대편 도로로 나가야 살 수 있다.하지만, 겨울 산은 숨을 내쉴 때마다 폐를 찢어놓는 듯 했다.신발도 없이 맨발로 뛰어나온 발바닥은 얼어붙은 돌부리와 나뭇가지에 찢겨 이미 감각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피가 흐르는지도 몰랐다.얇은 원피스 한 장만 걸친 몸은 추위에 덜덜 떨렸고, 찢어진 원피스 자락과 얼굴에는 긁힌 흔적이 선명했다.서린은 한계에 다다른 다리를 이끌고 비탈길을 내려가고 있었다.그때였다.“아악!”발밑에 쌓인 젖은 낙엽을 헛디딘 서린의 몸이 아래로 쑤욱 꺼졌다.“아—”그대로 가파른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졌다.온몸이 나무 기둥과 바위에 부딪히며 끔찍한 고통이 전신을 강타했다.“으윽…….”비탈길 아래 평평한 곳에 처박힌 서린은 신음을 삼키며 몸을 웅크렸다.여기서 멈추면 끝이다.서린은 이를 악물고 두 팔로 바닥을 짚으며 기어갔다.몸을 숨길 커다란 바위 아래 틈새로 기어 들어가, 숨을 죽이고 파들파들 떨었다.하아...조금만, 조금만 쉬자.들키지 않게.서린은 더 깊숙이 몸을 웅크렸다.그 순간,바스락.바스락.산등성이 위쪽에서 낙엽 밟는 소리가 들렸다.“— 안아아.”멀리서 강민재의 목소리가 들렸다.“지안아아—.”서린의 심장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어디 숨었어, 우리 지안이.”강민재는 산 기슭에서 서린의 옷자락이 찢겨진 채로 매달린 것을 발견했다.‘이 쪽으로 갈 줄 알았어.’“오빠가 다 용서해 줄게.”낙엽 밟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아이스크림 사 왔잖아. 같이 먹어야지. 얼른 나와.”강민재의 얼굴은 기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몸을 낮추고 낙엽이 쌓인 산 기슭을 살폈다.“공— 지— 아아안—”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서린은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꽉 깨물었다.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지만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강민재와 함께 서울로 같이 갈까도 생각해 봤다.하지만 이내 그 생각을 접었다.

  • 그날, 나는 죽지 않았다.   167화.

    “음, 음음~.”적막한 해안가 도로 위, 검은 세단 안에서 기분 좋은 콧노래가 흘러나왔다.운전석에 앉은 강민재의 입가에는 여유로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조수석에는 배스킨라빈스 쇼핑백이 놓여 있었다.그 안에는 서린이 먹고 싶다고 했던 ‘슈팅스타’ 아이스크림이 드라이아이스와 함께 담겨 있었다.‘귀엽기는.’아이스크림이라니.5년 전, 대학생이던 지안이 입버릇처럼 찾던 간식이었다.자신에게 앙탈을 부리듯 아이스크림을 사다 달라고 조르던 그 목소리가, 오늘 아침에 똑같이 재현되었다.강민재는 핸들을 가볍게 두드리며 속도를 냈다.지안이 마음을 열었다.세상의 모든 근심이 사라진 기분이었다.이제 차수혁 그 새끼만 처리하면 된다.그러면 나는 다시, 내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지금 태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차가 숲길을 돌아 별장의 녹슨 철문 앞에 멈춰 섰다.강민재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조수석의 쇼핑백을 챙겨 들었다.가벼운 발걸음으로 마당을 지나 현관문으로 향했다.빠지직.발밑에서 불쾌한 소리가 났다.강민재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고개를 숙이자, 구두 밑창에 밟혀 산산조각 난 날카로운 유리 파편들이 보였다.“……?”싸늘한 예감이 등줄기를 타고 훑고 지나갔다.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굳게 닫혀 있어야 할 별장 거실의 통유리창이, 산산조각이 나 바닥에 흩뿌려져 있었다.쩍 벌어진 창틀 사이로 매서운 겨울 바닷바람이 흉흉하게 불어 들고 있었다.강민재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지안아?”손에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 봉지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그는 미친 듯이 박살 난 창문을 넘어 거실로 뛰어 들어갔다.“지안아!! 공지안!”침실 문을 열어젖혔다.침대 기둥에 묶여 있어야 할 여자는 온데간데없었다.대신, 날카로운 손톱깎이로 처참하게 끊어낸 실크 넥타이의 잔해만이 덩그러니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아아아아악!!”강민재가 짐승처럼 포효했다.그녀가 또 나를 속였다.자신을 비웃으며, 철저하게 연기하며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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