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그렇다 해도 금영은 황제의 속뜻을 완전히 확신할 수는 없었다.감히 황제가 이 모든 일을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했다고 자만할 수도 없었다.황제는 그 말을 듣자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듣기 좋게 울렸다.“그래도 양심은 있구나. 짐의 마음을 알아주니 말이다.”금영은 눈앞의 황제를 바라보았다.밝게 빛나는 두 눈에는 감동한 기색이 가득했다.“폐하, 신첩에게 정말 잘해 주시옵니다!”황제가 자신에게 잘해 준다면 금영은 기꺼이 그 마음을 받아들일 생각이었다.굳이 이런 순간에 찬물을 끼얹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황제가 다시 말했다.“너도 너무 마음에 짐을 지지는 마라. 짐이 이 일을 한 데에는 너를 위한 뜻도 있지만, 두 세력의 균형을 맞추려는 뜻도 있었으니.”황제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서가는 요즘 들어 갈수록 제 분수를 잊고 있구나.”황제가 이토록 거리낌 없이 서가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 것을 보며 금영은 알 수 있었다.황제가 자신을 전보다 더 깊이 믿기 시작했다는 것을.금영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입을 열었다.“조부께서 살아 계실 때에도 이 일을 걱정하셨사옵니다.”“그때 조부께서 신첩과 태자 전하의 혼약을 정하신 까닭을 말씀해 주신 적이 있사온데, 첫째는 신첩에게 좋은 앞날을 마련해 주기 위해서였고, 둘째는……”황제는 금영이 먼저 태자와의 혼약을 입에 올릴 줄은 몰랐다.하지만 오늘 금영이 직접 태자부에 여인들을 보내자고 한 일은 황제의 마음을 제법 흡족하게 해 주었다.그래서인지 이번에는 불쾌해하지 않았다.오히려 웃으며 물었다.“둘째는 무엇이었느냐?”금영이 나직이 대답했다.“조부께서는 대량에 세 번째 서 황후가 나와서는 안 된다고 하셨사옵니다.”“황자의 비빈은 더더욱 세력이 큰 집안에서 들여서는 안 된다고 하셨사옵니다. 영안후부는 줄곧 황실에 충성을 다해 왔고, 조부께서 세상을 떠나신 뒤에는 병권마저 남지 않았으니 태자 전하에게도 손색이 없으면서 폐하의 근심까지 덜어 드릴 수 있다고 하셨사옵니다.”
현비도 운이 따른 셈이 아니겠는가.본래 황제는 서 황후에게 냉담했지만, 태자만큼은 무척 중히 여겼다.현비와 서 황후는 이 궁 안에서 여러 해 맞서 왔다.하지만 현비는 늘 서 황후에게 반걸음 밀린 채, 가까스로 균형을 유지해 왔다.그런데 금영이 입궁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이황자는 현비의 말을 듣고 잠시 멈칫했다.“모비마마, 그러니까 아바마마께서 원비마마를 위해 품계를 올리시면서 모비마마까지 함께 귀비로 승품시키신 것이옵니까?”말을 하는 이황자의 얼굴에는 어느새 언짢은 기색이 떠올라 있었다.현비는 그런 아들을 바라보며 타이르듯 말했다.“되었다. 그리 쉽게 감정을 드러내지 말거라.”“폐하께서 무슨 뜻으로 그러셨든, 이제 우리도 이미 얻을 것은 얻었다. 그러니 더는 쓸데없는 일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폐하께서는 원비를 각별히 여기신다. 그런데 황후가 자꾸 일을 일으킨다면, 폐하께서 어찌 마음 놓고 이 나라를 황후 모자에게 맡기시겠느냐?”말끝에는 짙은 웃음기가 배어 있었다.“이럴 때일수록 너는 원비를 더욱 공경해야 한다. 본궁 또한 더욱 대국을 살피며 처신해야 하고.”현비는 진지한 목소리로 거듭 당부했다.이황자가 물었다.“만약 황후마마께서 생각을 바꾸셔서 원비마마와 더는 맞서지 않으시고 아무 일도 벌이지 않으시면 어찌합니까?”현비가 가볍게 웃었다.“그럴 게다. 설령 정말 영리해져 더는 일을 벌이지 않는다 해도, 본궁이 가만히 있을 리는 없지.”현비는 거기까지만 말하고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둘 다 영리한 사람이었다.굳이 끝까지 말하지 않아도 그 뜻을 알아듣지 못할 리 없었다.*그 무렵 금영도 방매정에 도착했다.황제는 과연 그곳에서 한참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금영은 다가가며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인적도 드문 데다 사방이 휑하기까지 했다.황제가 굳이 자신을 이런 곳으로 부른 이유가 무엇일까.금영이 미처 묻기도 전에 황제가 먼저 그녀의 손을 잡았다.입가에는 웃음이 어려 있었다.“가자.”“어디로 가시옵니
서 황후는 억울한 눈빛으로 태후를 바라보았다.“어마마마……”그 말을 꺼낼 때부터 서 황후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맺혀 있었다.“오늘 폐하께서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현비와 원비의 품계를 올려 주셨사옵니다. 이는 대놓고 신첩의 체면을 깎으신 것이나 다름없지 않사옵니까.”“뒤에서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신첩을 비웃고 있겠사옵니까.”서 황후의 목소리에는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서러움이 묻어 있었다.마치 눈앞에 있는 사람이 태후도, 자신의 고모도 아닌, 그저 마음 놓고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혈육이라도 되는 듯했다.태후도 결국 조금 전의 냉랭하고 엄한 기색을 거두었다.태후가 한숨을 내쉬었다.“너도 참. 태자도 이미 혼인해 자식까지 두었는데, 어찌 아직도 어린아이처럼 제멋대로 굴며 질투를 한단 말이냐?”“황제가 네 체면을 깎으려 한 것이 아니다. 서가를 견제하려는 것이지.”태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예로부터 황제가 조정을 안정시킨 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안의 화근을 걷어 내는 것이었다.”“서가는 요즘 세력이 지나치게 강성해졌구나.”“지금 네가 경계해야 할 사람은 현비다. 원비야 아무리 그래 봐야 큰일을 벌일 수는 없어. 오히려 현비가 귀비가 되고 나면 더욱 가만있지 않을 게다.”태후가 낮은 목소리로 일깨워 주었다.서 황후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말했다.“어마마마께서 하시는 말씀은 신첩도 다 알고 있사옵니다. 하지만 폐하께서는 원비를 너무 총애하시지 않사옵니까!”“그 아이는 한때 태자와 혼약까지 맺었던 몸이옵니다. 신첩은 아무리 해도 이 울분을 삼킬 수가 없사옵니다.”태후의 목소리가 다시 차갑게 가라앉았다.“삼킬 수 없더라도 지금은 삼켜야 한다!”“태자가 황위에 오른 뒤에도 원비를 처분할 기회가 없을까 두려운 것이냐?”그러면서 태후는 서 황후의 손을 잡아 가볍게 두드렸다.“되었다. 수강궁에 다 왔구나. 돌아가거든 오늘 내가 한 말을 잘 생각해 보거라.”태후는 서 황후의 입장에 서서 정세를
해수는 그제야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위명이옵니다. 조금 전 찾아와 노비더러 마마께 전하라 하셨사옵니다. 연회가 끝나면 방매정으로 폐하를 찾아오시라 하셨사옵니다. 폐하께서 그곳에서 마마를 기다리고 계시옵니다.”금영은 고개를 끄덕인 뒤 해수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금영이 몸을 일으키자 연회석에 있던 적지 않은 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로 향했다.금영은 태후가 있는 쪽을 향해 예를 올렸다.“태후마마, 황후마마. 신첩이 몸이 조금 불편하여 먼저 물러가겠사옵니다.”태후는 여전히 자애로운 얼굴로 말했다.“그래, 가거라.”반면 서 황후의 안색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평소의 현숙하고 온화한 모습을 유지하기조차 버거워 보였다.서 황후는 오랫동안 후궁에서 어질고 덕망 높은 황후로 살아왔다.그러나 금영이 입궁한 뒤부터는 번번이 평정심을 잃었고, 애써 지켜 온 체면마저 무너지는 일이 잦았다.보다 못한 태후가 서 황후를 바라보며 낮게 불렀다.“황후.”그제야 서 황후는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금영아, 몸이 불편하다니 먼저 돌아가거라.”금영은 연회석을 떠나 황제를 찾아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황실 연회도 완전히 파했다.서 황후는 태후를 모시고 수강궁으로 향했다.마침 현비도 가는 길이 같았다.몇 걸음 가지 않아 서 황후는 태후를 부축하던 손을 놓았다.태후도 그 뜻을 알아차렸는지 손 상궁의 부축을 받으며 그대로 앞서 걸어갔다.서 황후는 일부러 두어 걸음 뒤처진 뒤 현비를 흘끗 바라보았다.그러자 현비가 먼저 입을 열었다.“그러고 보니 신첩이 아직 황후마마의 금족이 풀린 것을 축하드리지 못했사옵니다.”축하라는 말이 유난히도 귀에 거슬렸다.서 황후는 얼굴을 굳힌 채 현비를 차갑게 바라보았다.“오히려 본궁이 현비를 축하해야겠군. 폐하의 책봉 교지만 정식으로 내려오면 자네도 곧 귀비가 되지 않겠나.”서 황후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하지만 자네도 영리한 사람이니, 이번에 귀비 자리에 어떻게 오른 것인지는 모르지 않을 테지?”
황제가 기뻐하는 만큼 태자의 속은 쓰렸다.태자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금영을 바라보았다.‘금영이 정말 저 무희들을 태자부로 보내려 한단 말인가?’‘명월이 한 말 때문에 마음이 상해서, 지금 나에게 화가 나 일부러 이러는 것인가?’금영이 태자의 속내를 어찌 알겠는가.금영이 아는 것은 단 하나였다.태후가 저 무희를 궁에 들이려는 데에는 분명 좋은 뜻이 없었다.제 곁에 다른 여인이 들어앉는 것을 어찌 마음 놓고 보고만 있겠는가.저 무희를 궁에 들였다가는 훗날 어떤 화근이 될지 알 수 없었다.금영은 황제가 평생 자신만 바라보며 다른 여인을 가까이하지 않을 거라고는 믿지 않았다.애초에 황제에게 평생 단 한 사람만을 바라보는 사랑을 바란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다.지금 금영은 아직 기반이 단단하지 않았다.그러니 절대로 황제의 총애를 잃어서는 안 되었다.어쨌든 저 무희들을 태자부로 보내는 것은 한 번에 여러 가지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태후와 서 황후의 계책을 망칠 수 있을 뿐 아니라, 태자에게도 정신을 차리게 할 수 있었다.더는 자신이 아직도 옛정을 잊지 못했다고 착각하지 못하게 말이다.덤으로 배명월의 속까지 뒤집어 놓을 수 있었다.무엇보다 황제의 기분까지 좋게 해 줄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었다.그렇게 생각한 금영은 고개를 들어 황제와 눈을 맞췄다.늘 냉엄하던 황제의 눈에는 어느새 숨길 생각조차 없는 웃음이 가득했다.금영의 처사가 몹시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태자가 착잡한 목소리로 거절했다.“태자비가 이제 막 회임한 몸이오니, 태자부는 조용히 지내는 편이 좋을 듯하옵니다. 저 무희들은 보내지 않으셔도 되옵니다.”금영은 그 말을 듣고 빙그레 웃었다.“바로 명월이 회임한 몸이기에 당분간 전하의 곁을 모실 사람이 없지 않사옵니까? 그래서 본궁이 이런 제안을 드린 것이옵니다.”“명월은 본궁의 동생이니, 본궁도 그 아이를 생각해서 그러는 것이옵니다.”금영은 그렇게 말하며 배명월을 한번 바라보았다.자신의 말이 꽤나 비
금영은 여비가 또 시작하는 것을 보고 말았다.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골치 아픈 기색을 보였지만, 굳이 상대하고 싶지는 않았다.여비와의 협력이 틀어지면 틀어지는 대로 둘 생각이었다.이러다가는 정말 여비 때문에 홧병이 날 것 같았다.황실 연회가 한창 무르익어 갈 무렵이었다.붉은 옷을 차려입은 무희 몇 사람이 풍악에 맞춰 경쾌하게 연회장으로 들어왔다.맨 앞에 선 여인은 붉은 비단으로 얼굴을 가린 채 비파를 품에 안고 있었다.이따금 손끝으로 현을 튕길 때마다 애절한 비파 소리가 노랫가락처럼 흘러나왔다.춤을 추는 몸짓은 더없이 요염하고 유연했다.그 여인이 모습을 드러내자 자리에 앉아 있던 소성원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그야말로 넋을 빼앗긴 얼굴이었다.금영은 눈을 들어 황제를 한번 바라보았다.그런데 공교롭게도 황제 역시 금영을 보고 있었다.금영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황제의 입가에 짓궂은 웃음이 어렸다.마치 무엇이 그리 걱정되느냐고 묻는 듯한 눈빛이었다.딱 걸린 금영은 순간 민망해져 얼른 고개를 숙였다.황제가 저 아름다운 무희는 쳐다보지도 않고 자신만 보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춤이 끝났다.태후가 미소를 띤 채 물었다.“춤이 참으로 훌륭하구나. 이름이 무엇이냐?”무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신첩 옥주이옵니다.”“이름도 좋구나. 그럼 궁에 남아 내 무료함이나 달래 주거라.”태후가 다시 말했다.그 말을 들은 금영은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태후가 이 나이에 무희를 곁에 두고 무료함을 달랜다고?아무리 생각해도 이 무희로 황제를 유혹하려는 속셈이 빤히 보였다.금영은 태후를 바라보며 갈수록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예전이라면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니었다.황제의 후궁이 너무 비어 있는 것을 걱정해 명문가의 규수를 골라 입궁시키거나, 적어도 지안처럼 명문가의 서녀를 들이려 했다면 그다지 이상할 것도 없었다.그런데 이제는 황제에게 무희까지 보내려 하고 있었다.대놓고 황제의 혼을 빼놓을 미인을 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