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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hor: 서린화
금영은 이미 각오를 끝낸 상태였다. 순결을 버리더라도 반드시 살아남겠다고 결심했다.

전각 안에 있는 이 사람이 누구든, 다리가 부러진 채 친족의 손에 몰려 죽는 것보다는 나을 터였다.

다만 한 가지, 상대가 이 대량(大梁: 나라명)의 주인인 황제 소혁일 줄은 조금도 예상치 못한 사실이었다.

금영이 잠시 얼어붙은 순간, 차갑고도 냉엄한 음성이 다시 울렸다.

“그렇다면, 당장 물러가거라.”

하지만 이제 와서 물러나갈 순 없었다.

금영은 마음이 복잡했지만, 다시 굳건히 마음을 먹었다.

한 번 당긴 활은 되돌릴 수 없는 법이었다. 게다가 상대가 황제라면 오히려 더 잘된 일일지도 몰랐다. 적어도 그녀의 순결을 가져간 이가 황제라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가족들도 함부로 손가락질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금영은 물러서는 대신 미약에 몸을 그대로 맡겼다. 점점 시야가 흐릿해지며 숨결도 가빠졌다.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 부디... 저를….”

그리고 동시에 점점 대담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론 그렇다고 황제의 몸에 손을 댈 수는 없는 법, 그녀는 자신의 옷자락을 펼치기 시작했다.

오늘은 태자를 만나는 날이었기에, 일부러 단정하면서도 화사한 차림을 골랐었다. 붉은 빛이 도는 치마는 예를 잃지 않으면서도, 싱그러운 그녀의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미약에 취한 몸은 명문가 규수로서의 기품을 모두 잃게 만든 것도 모자라, 제어되지 않는 요염함을 뿜어내게 만들었다.

풀어진 옷깃 사이로 드러난 매끄러운 피부가 그대로 황제의 시야에 들어왔다.

알 수 없는 열기가 속에서 치밀어 올랐다. 금욕적으로 산 것은 아니었지만, 평소답지 않은 일이었다.

황제가 가장 혐오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불순한 의도를 품고 그의 은혜를 입고자 접근하는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하룻밤의 대가로 그의 총애를 얻어 권력을 휘두르려 하는 자, 그것이 누구든 지금까지 무사한 이는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사냥을 나서기 전, 안빈전(安嫔殿: 안빈의 거처)에서 마신 녹혈주 탓인지, 속에서부터 가라앉지 않는 열기가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침 금영이 이렇게 몸을 던져 오자, 억눌려 있던 열기가 한순간에 터져 나온 것이었다.

금영이 부드럽게 그의 목에 팔을 두르자, 황제 또한 저절로 고개를 숙였다.

그것을 허락으로 알아들은 금영은 그대로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고, 이내 붉은 옷깃과 검은 옷깃이 뒤엉키며 바닥에 흩어졌다.

금영은 마치 목마른 물고기처럼, 필사적으로 숨을 찾아 그에게 매달렸다.

어느덧 입은 것보다 벗은 것이 더 많아진 상황에서, 금영은 피부 위로 내려앉은 한기에 자기도 모르게 살짝 몸을 떨었다.

아주 잠시 이성이 돌아온 듯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며 황제를 밀쳐내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이미 그 또한 욕망으로 가득 찬 상태였기 때문이다. 황제가 다시 그녀를 낚아채며 더욱 단단하게 허리를 밀착시켰다.

그런데 바로 그때,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뚫고 누군가가 전각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황제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호위하던 위명이었다. 그는 말을 잠시 돌보러 가던 도중, 산적 차림을 한 남자들이 주변을 배회하는 것을 보고 서둘러 물리친 뒤 황제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황급히 돌아온 것이었다.

“송구합니다. 소인이 늦었습니다.”

위명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뒤, 다시 고개를 들려던 순간, 황제가 곧바로 금영을 자신의 몸으로 가리며 엄하게 그를 꾸짖었다.

“당장 나가거라.”

그 덕에 금영이 위명에게 노출되는 것은 피했으나, 바닥에 흐트러진 옷자락을 보고, 그는 곧바로 상황을 알아차렸다.

황제가 폐궁전에 여인을 들이시다니, 위명은 살짝 놀랐다. 하지만 머뭇거릴 수는 없으니 황급히 자리를 물러났다.

그렇게 다시 문이 닫혔고, 전각 안에는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이때, 금영의 귓가에 낮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힘 좀 빼거라.”

그 뒤로 금영은 마치 강물 위를 떠도는 작은 배처럼 오르내리며 한참을 흔들렸다.

그렇게 문 앞을 지키던 위명의 어깨에 눈이 소복이 쌓일 때쯤, 드디어 약효가 가시며 금영은 정신을 차렸다.

어느덧 그녀는 침상 위에 누워 있었고, 옆에는 욕정이 가신 눈빛으로 황제가 차갑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름이 무엇이냐.”

황제의 목소리는 서늘하기 그지없었다.

그 질문을 듣는 순간, 금영은 깨달았다. 그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그녀가 상을 치르기 위해 도성을 떠난 지 삼 년, 그 전부터 거의 이 년 동안 조부를 따라 이곳저곳을 떠돌며 궁에 들어가 보지 못했었다.

5년이라는 간극 사이에, 그녀는 어린 소녀에서 어엿한 여인이 되었다.

지금 그녀의 모습은 부모조차 다시 봤을 때 놀라워할 정도인데, 하물며 아득한 과거에 한 번 스치듯 본 황제라면 더더욱 알아보기 힘들 터였다.

“물었지 않느냐.”

황제는 미간을 찌푸렸다. 조금 전의 온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오늘 사냥도, 이곳에 머문 것도 그의 즉흥적인 결정이 아니었다면, 금영 또한 권력을 노리고 덤벼들었다고 의심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상황이 우연인 것은 분명하나, 통제되지 않은 이 상황이 불쾌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었다.

금영은 입술을 달싹였다. 안 그래도 황제가 하사한 이름에다가 일단은 태자와 혼인할 사이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비록 상황이 이렇게 되었지만, 이 어색한 상황에서 이름을 밝히는 건 썩 내키지 않았다. 게다가 황제가 어떤 결단을 내릴지도 미지수였다.

승은을 입은 계기로 후궁으로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최악의 경우 황제가 모르쇠로 일관한다면 입막음을 당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어떤 결과여도 떳떳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명분이 주어지더라도, 그의 총애까지 보장될 거라 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영은 더 이상 과거의 나약한 자가 아니었다. 두려움보다는 계산이 앞섰다.

아무 일도 없던 듯 돌아간다면, 또다시 무슨 짓을 당할지 알 수 없었다.

그녀의 가문에서 태자비의 운명을 타고난 여인이 나올 거라는 예언이 존재하는 이상, 끊임없이 위협에 시달릴 터였다.

그러므로 살아남기 위한 선택지는 단 하나뿐이었다.

금영은 곁에 있는 황제를 바라보며 결심을 굳혔다.

이렇게 된 이상 궁에 들어가야만 했다. 그의 권력에 의지해 다시는 그 누구도 함부로 자신을 다루지 못하게 해야 했다.

그러니 황제가 자신에게 유리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확실한 패가 필요했다. 그저 하룻밤의 일탈에 운명을 기대는 건 그녀가 원하는 생존 방식이 아니었다.

황제가 말없는 금영을 보며 다시 물었다.

“말을 못 하는 것이냐?”

그러다 곧, 피식 웃음을 흘리며 덧붙였다.

“그럴 리가 없지.”

조금 전까지 귓가에서 애원하던 말들이 아직도 생생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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