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ager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Auteur: 서린화

제1화

Auteur: 서린화
한겨울이었다.

굵은 함박눈이 쏟아지며 작산행궁(鹊山行宫: 황제가 사냥에 나갔을 때 머무는 별궁) 전체를 집어삼키듯 덮고 있었다.

금영은 끝이 보이지 않는 절벽 앞에 서 있었다.

벼랑을 휘몰아치는 찬 바람과 몸속에서 끓어오르는 열기가 마치 몸을 갈기갈기 찢어놓을 듯 단번에 그녀를 덮쳐왔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열기는 점점 더 거세져, 이내 정신마저 삼켜버릴 정도였다.

그녀의 손에는 금비녀 하나가 꽉 쥐어져 있었는데, 이미 날카로운 날이 손바닥을 찔러 피가 흐르고 있었다.

다행인지 아닌지 그 통증 덕분에 그녀는 간신히 마지막 이성을 붙들고 있을 수 있었다.

바로 그때, 뒤쪽 눈 덮인 숲속에서 남자들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독한 약을 먹었으니 멀리 가지는 못했을 거야.”

“사람을 이렇게 번거롭게 만들다니. 찾아내면 아주 본때를 보여줘야겠군.”

자신이 다시 살아나다니, 그것도 순결을 지키기 위해 절벽에 몸을 던지기 직전으로 돌아오다니, 금영은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원래 그녀는 영안후부(永安侯府)의 유일한 적녀(嫡女: 정실 부인에게서 태어난 딸)였다.

흠천감(钦天监: 봉명과 길흉을 점치는 관청)은 오래전 예언한 바 있었다. 영안후부에서 태자비의 운명을 지닌 여아가 태어날 것이라고 말이다.

예언과 똑같이 마침 태자가 태어나던 해에 그녀도 태어났고, 자연스레 모두가 그녀를 미래의 태자비로 여겼다.

금영의 조부 역시 확신을 가지고 황제에게 혼인 교지를 받아두기까지 했다.

그러나 삼년 전, 조부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금영은 아버지를 대신해 직접 조부의 유해를 모시고 고향인 회양(淮阳)으로 내려가 삼년상을 치렀다.

상을 마치고 본가로 돌아오던 길, 그녀는 작산행궁을 지나게 되었다.

그리고 때 마침 황제도 신하들을 이끌고 이곳에서 사냥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부모와 오라비, 게다가 정혼자까지 모두 이곳에 있다는 말에 금영은 곧바로 도성으로 들어가지 않고 작산행궁으로 향했다.

그리고 오늘은 그녀가 정혼자이자 태자인 그의 초대를 받아, 함께 근처 설림에서 눈을 감상하기로 한 날이었다.

금영은 어릴 적부터 몸가짐을 조심해 사사로이 외간 남자를 만나는 일을 삼가왔다. 그러나 정혼자인 태자와의 약속이었고, 혼례도 머지않은 상황이었기에 기꺼이 응했다.

하지만 태자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약속 장소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웬 산적 두 명 뿐이었다.

게다가 이곳에 오기 전, 황후가 하사한 강주(姜酒: 생강 술) 한 잔을 마셨는데, 뒤늦게 그 안에 미약이 섞여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금영은 순결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저항하다가 결국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지고 말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즉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양다리에 큰 부상을 입은 채, 얼어 죽기 직전의 상태로 사람들에게 발견되었다.

목숨을 걸고 지킨 순결이었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그녀가 가장 믿었던 가족들조차 죽음으로 책임을 다하라고 등 떠밀었다.

“산적에게 붙잡힌지 하룻밤이나 지났는데, 누가 그 결백을 믿겠느냐.”

“금영아, 너만 생각하면 안 된다. 가문의 명예를 지켜야지.”

“널 아끼는 건 사실이나… 이 일은 황실의 체면이 걸린 일이다.”

그들의 목소리는 끊임없이 그녀의 귓가를 맴돌았다.

결국 그녀는 황후가 내린, 태자비의 상징이었던 봉황이 새겨진 비녀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렇게 비녀에 영혼이 묶인 채 삼년을 떠돌았다.

금영이 죽은 지 한 달 만에, 태자는 그녀의 여동생 배명월을 배필로 맞아들였다.

붉은 비단이 영안후부와 태자부(太子府)에 깔렸고, 배명월은 금영이 자결할 때 사용했던, 바로 그 봉황 비녀를 꽂고 태자비가 되었다.

부모는 물론 오라비까지 모두 배명월을 아끼며 살뜰히 챙겼다. 마치 금영이라는 사람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가끔 그녀를 떠올리는 사람은 있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그녀가 천벌을 받은 것이라며, 지난 열여덟 해 동안 배명월의 운명을 대신 살아온 죄값을 치른 것이라고 헛소리를 늘어놓을 뿐이었다.

하지만, 하늘은 다시 한 번 그녀에게 기회를 주었다.

그렇게 금영은 모든 비극의 시발점이었던 바로 이 날로 돌아왔다.

다만 이미 그녀의 운명을 뒤틀어버린 독주를 마신 뒤였다.

금영은 다시금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열기를 느꼈고, 강제로 회상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만 도망쳐!”

“쓸데없이 힘 빼지 말고 얌전히 우리한테 몸을 바쳐!”

“여긴 아무도 없는 설림이다! 널 구하러 올 사람은 없어!”

차가운 바람을 타고 산적들의 고함이 들려왔다.

‘아무도 없는 설림…?’

그 말이 번개처럼 금영의 머리를 때렸다.

‘아니야, 있어.’

회귀 전, 그녀가 절벽에서 떨어져 다리에 큰 부상을 입고 옴짝달싹 못하던 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근처를 순찰하던 호위들 덕분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급히 산꼭대기에 있는 폐궁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황실의 군사가 움직일 정도라면, 그 존재는 분명 몹시 귀한 인물일 터였다.

지금이라면 아직 기회가 있었다. 그에게 도움을 받을 수만 있다면, 과거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아도 되었다.

물론 지금 상태로 찾아간다면 순결을 지키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상관없었다. 과거, 목숨까지 바쳐 순결을 지킨들 가족들의 손에 떠밀려 죽음을 맞이하는 길뿐이었다.

차라리 이 몸을 담보로 더 큰 권력에 기대어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다시는 그런 터무니없는 명분으로 목숨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결심이 서자 금영은 비녀를 머리에 꽂고 방향을 틀었다. 그녀는 산 정상을 향해, 비틀거리면서도 멈추지 않고 달렸다.

작산행궁 직설전(织雪殿)은 눈 절경을 위해 지어진 전각이었으나,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폐궁이 된 곳이었다.

그녀가 직설전에 도착해 문을 여는 순간, 이미 그녀의 몸은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

금영은 거의 뛰어들다시피 누군가의 품에 부딪혔고, 곧 맑고도 서늘한 소나무 향이 그녀를 감쌌다.

안에 있던 사람은 당황한 듯 반사적으로 그녀를 밀쳐내려 했다. 그러나 이미 약에 취해 이성을 잃은 금영은,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상대에게 매달렸다.

“놔라.”

아무리 밀쳐내도 다시 들러붙는 금영의 끈기에, 상대는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러나 금영은 끝내 놓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그를 끌어안으며 흐트러진 몸을 밀착시킬 뿐이었다.

아름다운 얼굴, 그러나 이성을 잃은 눈빛, 위태로운 요염함이 흘러나왔다.

“부탁이에요… 제발… 살려주세요…”

속삭이듯 흘러나온 목소리와 따뜻한 숨결에, 남자의 몸이 굳었다.

잠깐 스친 욕망에, 그는 분노를 눌러 담았다.

“방자하구나.”

낮고 냉엄한 음성이 귀 옆에서 울렸다. 그러나 금영은 물러설 수 없었다.

몸속을 갉아먹는 열기가 그녀를 미치게 하고 있었고, 남자에게서 전해져 오는 차가운 기운만이 숨통을 틔워주고 있었다.

그녀는 더욱 세게 매달렸고, 급기야 그의 옷깃을 움켜잡아 끌어당겼다.

“내가 누군지 알고 이러는 것이냐?”

남자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으며 물었다. 억눌린 분노가 서린 목소리였다.

금영은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순간, 깊은 심연 같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산하를 담은 듯 고요하고, 위엄이 서린 눈.

서른을 갓 넘긴 듯한 나이, 검은 옷차림, 범상치 않은 기운…

그제야 금영은 깨달았다.

“폐하…?!”

그녀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Continuez à lire ce livre gratuitement
Scanner le code pour télécharger l'application

Dernier chapitre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822화

    황제는 그날 금영과 합방했을 때, 그녀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오늘 현청전에서도 일을 치른 뒤 금영의 표정이 어딘가 불편해 보이지 않았던가.황제는 이런 일로 금영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그렇게 그는 밤새 속으로 끙끙 앓으며 견뎠고, 정신없이 하룻밤이 지나갔다.손복안은 황제가 보양탕까지 들었으니 밤중에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싶어, 일찌감치 사람을 시켜 뜨거운 물을 준비해 두게 했다.그런데 웬걸.손복안이 근무를 마치고 쉬러 갈 때까지도 황제는 끝내 물을 들이라 하지 않았다.이튿날 새벽.손복안은 소녕전 앞에서 위명과 마주쳤다.손복안은 자신의 뒤를 이어 밤새 당직을 선 소동자에게 물었다.“후반야에 폐하께서 물을 들이라 하셨느냐?”소동자는 고개를 저었다.그 모습을 본 손복안의 눈빛에 생각이 깊어졌다.아무래도 보양이라는 게 한 번으로 끝날 일은 아닌 모양이었다.몇 번은 더 제대로 챙겨 드려야 할 듯했다.손복안이 황제를 걱정하느라 속을 태우고 있는 줄도 모르고, 위명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물었다.“복안, 소동자와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소곤소곤 나누셨습니까?”손복안이 소동자에게 손을 휘휘 내저었다.그러자 소동자는 기다렸다는 듯 쏜살같이 사라졌다.손복안은 위명을 바라보다가 문득 어제 이 사내가 현청전 문을 걷어차고 들어가려 했던 일이 떠올랐다.그는 말없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위명이 미간을 찌푸렸다.“복안,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손복안이 싱긋 웃었다.“저희 어머니께서 제가 어릴 적부터 바보와는 멀리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위명은 할 말을 잃었다.‘두고 보십시오. 언젠가는 반드시 폐하께 이 간신배의 진면목을 알려 드리고 말 테니!’그 뒤 며칠 동안에도 보양탕은 날마다 재료와 조리법을 달리해 황제의 탁자 위에 올랐다.그러나 정작 물을 들이라 한 일은 두 번도 되지 않았다.이유는 별것 없었다.막상 불이 붙은 뒤 억지로 참아야 하는 그 괴로움이 황제로서는 도무지 견디기 힘들었던 것이다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821화

    애초에는 그저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싶었다.송정희가 직접 나서서 이 후환을 없애 주기만을 바랐다.하지만 누가 알았겠는가.송정희는 정말이지 쓸모없는 인간이었다.배금영을 없애기는커녕, 오히려 모든 이가 보는 앞에서 배금영이 황제의 여인이 되도록 길까지 터 주었으니!하지만 이제 와 서 황후가 아무리 후회한들 이미 늦은 일이었다.예전 금영이 궁 밖에 있을 때만 해도, 그녀는 영안후부에서 버림받은 여인에 불과했다.그때의 서 황후라면 개미 한 마리를 짓이기듯 손쉽게 금영을 죽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이제 금영을 죽이는 일은 예전처럼 쉽지 않았다.아무래도 좀 더 머리를 써야 할 듯했다……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때였다.밖에서 이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마마, 소인에게 긴히 아뢸 일이 있사옵니다.”서 황후가 말했다.“들어오너라.”이전은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곧바로 아뢰었다.“마마, 내정사 쪽에서 소식이 왔사옵니다.”조씨가 다급히 물었다.“어찌 되었사옵니까? 안 첩여가 마마께 불리한 말이라도 했사옵니까?”서 황후가 낮고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본궁이 사람을 해치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그 계집이 무슨 수로 본궁을 물고 늘어지겠느냐?”틀린 말은 아니었다.서 황후는 늘 다른 사람에게 넌지시 뜻만 내비칠 뿐, 직접 분부를 내려 꼬투리를 잡히는 법이 없었다.무엇보다 이번 일만큼은 정말 서 황후가 손을 댄 일이 아니었다.“안 첩여의 오라버니가 지금도 국구 대감 밑에서 일하고 있사오니, 함부로 입을 놀릴 리는 없사옵니다. 다만 소인이 식사를 들여보낼 때 사람을 시켜 몰래 안 첩여에게 물어보게 했사옵니다.”이전이 말을 이었다.“안 첩여의 말로는, 본래 두창 딱지(天花痘痂: 두창 환자의 피부 발진이 마르면서 생기는 딱지)를 곱게 갈아 만든 가루를 아기 황자의 몸에 뿌리려 했다고 하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손에 생칠이 묻었다고 하옵니다.”그 말을 들은 서 황후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한참이 지나서야 차갑게 코웃음을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820화

    태자는 여전히 현청전 문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어깨 위에는 어느새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그곳에 무릎을 꿇은 지도 벌써 두 시진 가까이 되어 가던 참이었다.전각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태자가 고개를 들었다.마침 흰 여우털 외투를 걸친 금영이 안에서 걸어 나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금영의 발걸음이 아주 잠깐 멈췄다.그러나 이내 눈을 밟으며 태자의 앞을 그대로 지나갔다.처음부터 끝까지 태자에게 단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태자는 금영이 지나간 자리에 선명하게 남은 발자국을 바라보았다.눈빛에는 감출 수 없는 쓰라림이 어렸다.그때 전각 안에서 황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들어오너라.”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있었던 탓에 태자는 다리에 힘이 풀려 좀처럼 일어서지 못했다.신귀안이 황급히 다가와 부축하려 했다.하지만 태자는 신귀안의 손을 뿌리쳤다.그리고 눈이 가득 쌓인 바닥을 손으로 짚은 채 힘겹게 제힘으로 일어섰다.태자가 전각 안으로 들어갔을 때 황제는 이미 책상 뒤에 단정히 앉아 있었다.책상 위에는 납매 한 아름이 한창 곱게 피어 있었다.은은한 향기가 현청전 안을 가득 맴돌았다.“아바마마.”태자가 입을 열었을 때 목소리는 잔뜩 메말라 있었다.황제가 태자를 바라보며 싸늘하게 물었다.“짐이 어찌하여 너를 벌했는지 아느냐?”그 말을 들은 태자가 황급히 해명했다.“아바마마, 모두 소자의 잘못이옵니다. 소자가 원비마마께 말을 걸지 말았어야 했사옵니다. 이 일은…… 원비마마와 아무 상관이 없사옵니다.”조금 전 금영은 전각 안에서 나왔고, 이제 자신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설마 아바마마께 이미 벌을 받은 것인가?황제가 눈을 들어 태자를 바라보았다.젊은 태자의 눈매와 이목구비는 자신을 쏙 빼닮아 있었다.황후와 평범한 부부처럼 남녀 간의 정을 나눈 적은 없다 해도, 황제는 여전히 태자를 아꼈다.태자는 그의 첫 아이였다.황제가 오랜 세월 정성을 들여 가르치고 길러, 훗날 나라를 맡길 생각으로 세운 태자였다.금영과 얽힌 일에서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819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황제는 금영을 가로로 안아 들고 내전으로 향했다.태자에게 금영이 이미 자신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똑똑히 깨닫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금영을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현청전 문밖에서는 더 이상 안쪽의 기척이 들리지 않았다.하지만 그곳에 무릎 꿇고 있는 태자의 마음은 여전히 칼로 베이는 듯 아팠다.하늘에서는 눈송이가 소리 없이 흩날렸다.태자의 어깨 위에 내려앉은 눈송이 하나하나가 천근처럼 무겁게 느껴졌다.차디찬 눈발이 날리는 전각 밖과 달리, 현청전 내전의 침상 주위에는 어느새 따스한 봄기운이 무르익고 있었다.마지막에 이르러 금영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만 남았다.분명 황제와 자신은 화가 나 있지 않았던가?서로 언짢아했고, 다투기까지 하지 않았던가?그런데 어쩌다……그 화풀이가 황제의 침상 위까지 이어진 것이란 말인가?나중에도 금영은 그 까닭을 제대로 알아내지 못했다.그저 자신이 바다 위의 작은 배가 된 것만 같았다.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정처 없이 떠다니다가, 밀려오는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오르내릴 수밖에 없는 작은 배.나직하고 부드러운 숨소리 사이로 어느새 봄날 같은 한때도 서서히 막을 내렸다.금영은 황제의 품에 기대 누운 채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아무래도 소문이 완전히 헛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황제는 예전에 전장을 누비며 싸우다가 역시 몸을 상한 듯했다.그러니 후궁을 좀처럼 찾지 않았던 것도 이해가 갔다.예전에 자신과 함께했던 두 번은……아마 처음이라 새로웠던 탓에 평소보다 욕심을 조금 더 부렸던 것이겠지.지금의 모습이 오히려 평소의 상태일지도 몰랐다.하지만 황제의 체면이 있으니 금영은 당연히 이 일에 대해 입 밖에 낼 생각이 없었다.금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황제는 그녀가 계속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황제가 품 안의 금영을 내려다보며 나직이 물었다.“왜 자꾸 짐을 보는 것이냐?”그러다 잠시 말을 멈추고 다시 물었다.“아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818화

    태자의 목소리가 전각 안까지 또렷하게 들려왔다.금영은 맑은 두 눈에 엷은 물기를 머금은 채 눈앞의 황제를 바라보았다.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눈빛만으로도 황제의 가슴이 순간 조여 왔다.조금 전 자신이 금영을 놀라게 한 모양이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황제의 얼굴에 언짢은 기색이 스쳤다.금영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자기 자신에게 화가 났다.금영을 괜히 괴롭혔다는 생각이 들었다.평소 단정하고 온화하며 행동 하나에도 흐트러짐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 자신은 대체 금영에게 무슨 화를 내고 있었단 말인가.황제는 천천히 금영을 놓아주며 나직이 말했다.“짐이 잘못했다. 금영아, 네 마음대로 해도 좋으니 너무 속상해하지는 말거라.”그런 황제를 보자 금영은 화가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웃음이 날 것 같았다.“정말 신첩 마음대로 해도 되옵니까?”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금영의 화만 풀린다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이상하게도 늘 먼저 화를 내는 쪽은 황제였지만, 금영이 서럽고 속상한 얼굴을 하는 순간 아무리 큰 잘못이라도 전부 자신의 잘못이 되고 말았다.황제는 이미 금영을 놓아준 상태였다.그런데 이번에는 금영이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그리고 먼저 두 팔을 뻗어 황제의 목을 감쌌다.살짝 힘을 주어 그 고고한 머리를 아래로 끌어내리더니 그대로 황제의 어깨를 힘껏 깨물었다.전각 안은 숯불을 넉넉히 피워 따뜻했고 황제가 입은 옷도 그리 두껍지 않았다.갑작스레 제대로 한입 깨물린 황제가 통증에 낮은 신음을 흘렸다.말소리라면 일부러 낮출 수 있었겠지만, 미처 참지 못한 그 신음은 희미하게나마 문밖까지 새어 나갔다.밖에는 세 사람이 서 있었다.손복안에게는 이제 웬만한 일쯤은 놀랍지도 않았다.그래도 그는 저도 모르게 태자를 한번 바라보았다.태자전하는 설마 원비마마께서 지금 현청전에 계신다는 것을 모르는 것인가.태자는 고개를 숙인 채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바닥에는 노란 납매 꽃잎 몇 장이 흩어져 있었다.금영이 안에 있었다.태자의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817화

    금영이 막 책상 앞까지 걸어갔을 때였다.밖에서 손복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폐하, 태자전하께서 뵙기를 청하시옵니다!”금영의 발걸음이 그대로 멎었다.안색도 순식간에 어두워졌다.‘누…… 누가 왔다고?’‘태자 저 재앙 덩어리, 수강궁으로 간 것 아니었나? 그런데 어찌 벌써 현청전까지 온 거지?’금영은 고개를 돌려 황제를 한번 바라보았다.황제의 얼굴은 먹물이 뚝뚝 떨어질 듯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현청전 안의 공기마저 숨이 막힐 만큼 무겁게 내려앉았다.황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금영은 조금 전 그가 했던 말대로 먼저 물러날 생각이었다.금영이 전각 문 앞까지 걸어가 손을 뻗었다.막 문을 열려던 순간이었다.뒤에서 황제의 손이 뻗어 와 금영의 손을 그대로 문 위에 눌러 잡았다.금영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몸이 문 쪽으로 밀렸다.황제는 곧바로 몸을 숙여 금영에게 바짝 다가왔다.그리고 오직 두 사람만 들을 수 있을 만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 목소리에는 어쩐지 억울하고 서운한 기색까지 어려 있었다.“가지 마라.”금영은 기가 막혔다.억울한 사람은 자신이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황제가 먼저 눈앞에서 사라지라고 하지 않았던가.그런데 이제 와서는 마치 자신이 지아비와 아이를 버리고 달아나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굴었다.금영이 막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다.한마디도 채 꺼내기 전에 황제의 뜨거운 입술이 먼저 내려앉았다.손복안은 안으로 통보를 올린 뒤에도 한참 동안 아무런 대답이 들리지 않자 태자를 슬쩍 바라보았다.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태자를 돌려보낼 수 있을지 머리를 굴리던 참이었다.그런데 마침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위명이 손복안을 한번 흘끗 보더니 목소리를 높였다.“폐하! 태자전하께서 뵙기를 청하시옵니다!”‘저 간신배, 아까는 목소리를 어찌나 작게 냈는지 폐하께서 아예 못 들으신 모양이군!’위명은 외치고 난 뒤 제법 뿌듯한 얼굴로 손복안을 바라보았다.그 눈빛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잘 보고 배우십시오!’손복안은 어이가

Plus de chapitres
Découvrez et lisez de bons romans gratuitement
Accédez gratuitement à un grand nombre de bons romans sur GoodNovel. Téléchargez les livres que vous aimez et lisez où et quand vous voulez.
Lisez des livres gratuitement sur l'APP
Scanner le code pour lire sur l'application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