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황제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눈빛을 가라앉혔다.그러다 이내 입을 열었다.“되었네. 딱히 더 할 말도 없군.”황제라는 자리에 있는 이상 평범한 사람처럼 마음속 감정을 남들 앞에 그대로 드러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금영은 황제의 품에 기대어 있다가 나직이 물었다.“태후마마 때문이옵니까?”황제는 대답하지 않았다.순간 소녕전 안의 공기가 조금 싸늘하게 가라앉았다.금영은 황제의 가슴을 살짝 밀며 그의 품에서 일어나려 했다.“신첩이 쓸데없는 말을 하였사옵니다. 부디 용서하여 주시옵소서.”하지만 황제는 팔에 힘을 주어 금영을 더욱 단단히 끌어안았다.그녀가 품에서 빠져나갈 틈조차 주지 않았다.잠시 뒤 황제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또 뭘 용서해 달라는 것인가?”“자네 마음속에서 짐이 그리도 속 좁은 사람인가? 고작 자네 말 한마디 때문에 죄를 물을 사람으로 보이는가?”금영은 입술을 살짝 다물었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어찌 되었든 신첩이 태후마마의 일에 함부로 말을 보태서는 안 되었사옵니다. 신첩이 분수를 지키지 못한 것은 사실이옵니다.”황제의 목소리가 순간 서늘해졌다.“짐이 보기엔 분수를 지키지 못한 사람은 어마마마이시네.”황제가 이런 말을 남들 앞에서 입에 올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하지만 오늘 금영이 먼저 그의 속내를 정확히 짚어 내자, 황제 역시 더는 굳이 감추려 하지 않았다.황제는 오늘 현청전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눈빛을 깊게 가라앉혔다.그 모습을 본 금영은 금세 알아차렸다.황제는 이미 태후에게 적지 않은 불만을 품고 있었다.금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랬다.“폐하, 신첩은 오늘 태후마마께서 황후마마를 감싸신 일 때문에 폐하의 마음이 편치 않으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하지만 태후마마께서는 폐하의 어머니이시지 않사옵니까. 세상의 어머니들은 대개 제 자식을 아끼는 법이옵니다.”금영은 잠시 말을 고른 뒤 다시 이었다.“태후마마께서 그리하신 데에도 분명 나름의 이유가 있으셨을 것이옵니다.”“그리고 신첩은 믿사옵니다
금영의 손끝이 살짝 멈칫했다.그녀는 황제를 바라보며 조용히 대답했다.“신첩 여기 있사옵니다.”금영은 내심 조금 불안했다.오늘 서봉전에서 그녀는 어떻게 해야 제 몸을 지킬 수 있을지 수도 없이 생각했다.하지만 끝내 여비가 홀로 서 황후를 상대하게 두고 볼 수 없어 몇 번이나 나서서 말을 보탰다.황제라면 이미 눈치챘을지도 몰랐다.오늘 벌어진 이 소동에 자신도 한몫했다는 것을.그런 생각이 들자 금영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신첩이 잘못했사옵니다.”말과 함께 무릎을 꿇으려 했다.하지만 끝내 무릎은 바닥에 닿지 못했다.황제가 여전히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황제는 손에 살짝 힘을 주어 금영을 단단히 붙잡아 세웠다.덕분에 금영은 더 이상 몸을 낮출 수 없었다.금영의 아름다운 눈망울에 옅은 물기가 어렸다.어딘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그때 황제가 먼저 입을 열었다.“되었네. 짐이 자네를 벌하겠다고 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황제의 표정은 차분하고 온화했다.그 얼굴 어디에서도 노여움이나 비꼬는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그제야 금영은 알았다.황제는 정말 자신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그렇다면 자신이 지나치게 걱정한 것일까?황제는 오늘 일에 자신의 손이 닿아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일까?아니면……모든 것을 알고도 자신에게 화낼 생각이 없는 것일까?두 경우는 전혀 달랐다.금영은 황제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폐하께서는…… 신첩이 괜한 일에 나섰다고 생각하지 않으시옵니까?”말은 일부러 에둘러 했다.어느 쪽으로 해석되어도 빠져나갈 여지가 있는 말이었다.괜한 일에 나섰다는 말은 처음부터 자신이 이 일에 끼어들었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었고, 오늘에서야 여비의 사정을 알고 마음이 쓰여 몇 마디 거들었다는 뜻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황제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짐이 자네를 무엇 때문에 탓하겠나?”“여비를 대신해 나선 것 때문인가? 아니면 예전에 황후에게 그토록 시달렸으니 이제는 되갚
“여비는 원래 그리 머리가 좋은 사람이 아니옵니다. 이런 수를 써서 신첩을 함정에 빠뜨릴 생각까지 해냈을 리 없사옵니다. 이 일은 분명 배금영이 뒤에서 꾸민 것이옵니다!”서 황후는 금영의 이름만 입에 올려도 속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당장이라도 금영의 살점 한 조각을 물어뜯고 싶을 만큼 분하고 원망스러웠다.“폐하께서 요즘 신첩을 멀리하시고 어마마마와도 마음이 멀어지신 데에는 배금영의 수작도 적지 않게 작용했을 것이옵니다!”서 황후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내 눈시울까지 붉히며 다시 입을 열었다.“어마마마께서는 예전에 신첩에게 그 아이에게 괜한 수를 쓸 생각은 하지 말라 이르셨지 않사옵니까. 그래서 신첩은 이제 그 아이를 어찌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사온데, 오히려 저쪽에서 신첩을 죽이려 들고 있사옵니다!”서 황후로서도 당장 금영을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그래서 이 틈에 금영과 태후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속셈이었다.태후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되었다. 이 일은 내가 알아서 하마.”태후는 곧 서 황후에게 경고하듯 말했다.“그보다 너야말로 오늘부터 언행을 각별히 조심하거라. 황제에게 꼬투리를 잡힐 일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매섭게 몰아붙이던 태후는 이내 한마디를 덧붙여 달랬다.“한동안 잠잠히 지내다 이 일이 잦아들면 자연히 괜찮아질 것이다.”서 황후는 태후를 바라보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어마마마, 오늘 대체 무슨 수를 쓰신 것이옵니까? 무슨 수를 쓰셨기에 여비가 갑자기 신첩을 물고 늘어지는 일을 그만둔 것이옵니까?”태후가 증거를 찾아내긴 했지만, 그 증거로 알 수 있는 건 두약해 역시 결백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정도뿐이었다.여비의 성정대로라면 그 정도로 물러설 리가 없었다.끝까지 서 황후를 물고 늘어졌어야 했다.그런데 마지막 순간 여비가 돌연 태도를 바꾸는 바람에 서 황후는 손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태후는 그 말을 듣고 서 황후를 바라보며 무겁게 말했다.“그 일은 네가 알 필요 없다.”“너는 한 가지만
서 황후는 원래부터 마음이 불안했다.태후의 말을 듣자 자신을 비꼬는 것이라 여긴 서 황후가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어마마마, 모두 신첩의 잘못이옵니다. 때리시든 벌하시든 신첩은 달게 받겠사옵니다. 다만 신첩 때문에 노여워하시다 옥체라도 상하실까 그것만이 걱정되옵니다.”그때 태후가 손을 뻗어 서 황후의 손을 잡았다.태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내가 언제 너를 벌하겠다고 했느냐?”서 황후의 불안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내가 이토록 큰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태후마마께서는 정말 나를 벌하지 않으시려는 건가?’태후는 다른 손을 들어 조금 전 자신이 때려 붉어진 서 황후의 뺨을 가볍게 어루만졌다.그 눈빛에는 자애와 안쓰러움이 가득했다.“아프냐?”서 황후는 줄곧 귀하게 대접받으며 살아왔다.누가 감히 그녀의 뺨을 이렇게 때린 적이 있었겠는가.당연히 아팠다.태후의 손끝이 닿자 서 황후는 자신도 모르게 살짝 움찔했다.하지만 이내 아픔을 참으며 고개를 저었다.태후가 한숨을 내쉬었다.“나를 원망하지는 마라. 내가 너를 때린 건 네가 그 천한 종자를 죽여서가 아니다.”“내가 화가 난 건 네가 어쩌다 그리 어리석게 궁 안에서 법단까지 차리고 의식을 벌였느냐는 것이다.”태후는 어이가 없다는 듯 차갑게 웃었다.“세상에 무슨 아기 원혼이 있다고 그러느냐? 정말 그런 것이 있다면……”거기까지 말한 태후의 눈빛이 문득 깊게 가라앉았다.하지만 곧 화제를 돌렸다.“나는 네가 어찌 이 일을 제대로 생각해 보지도 않았는지 그게 화가 난다. 누가 봐도 여비가 파 놓은 함정에 네가 제 발로 들어간 것이 아니냐.”이 지경이 된 마당에 서 황후라고 자신이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서봉전에서 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문부터 누군가 손을 쓴 것이 틀림없었다.목적도 뻔했다.자신을 겁에 질려 죽게 만들거나 스스로 평정심을 잃고 일을 그르치게 하려는 것이었다.일이 벌어진 뒤에야 서 황후도 그 속셈을 차근차근 짚어 볼 수 있었다.하지만 정작 일이
현 귀비의 안색이 순간 변했다. 그녀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태후마마, 신첩은 억울하옵니다!”금영이 미처 입을 열기도 전이었다.여비가 코웃음을 치며 내뱉었다.“저 두 계집 따위가 감히 나를 부릴 수나 있겠습니까!”태후가 여비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그러냐? 그런데 내가 듣기로는 요즘 네가 원 귀비와 제법 가깝게 지냈다고 하던데.”그때 황제의 싸늘한 목소리가 떨어졌다.“그만하십시오!”모두의 시선이 황제에게로 향했다.황제가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어마마마! 짐이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이 일은 금영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그 말은 결론이었고, 동시에 황제의 분명한 태도였다.태후는 황제의 뜻이 이토록 확고한 것을 보고 더는 금영을 물고 늘어지지 않았다.“황제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원 귀비는 이 일과 무관한 것으로 하지요. 그렇다면 이제 이 일은 어떻게 처분하실 생각입니까?”어떻게 처분할 것인가.황제는 여비를 한번 바라본 뒤 냉랭하게 명했다.“오늘부로 여비와 황후를 각각 처소에 유폐하고 근신하게 하라!”양쪽 모두에게 책임을 묻는 처분이었다.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오히려 여비를 지켜 주는 결정에 가까웠다.여비 자신이 이미 성급하게 황후를 지목한 잘못을 인정한 뒤였기 때문이다.금영은 이 결과가 아무리 못마땅해도 지금으로서는 달리 손쓸 방법이 없었다.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여비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을 수도 없었다.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여비가 갑자기 서 황후를 놓아준 것인가?그때 서 황후는 온몸의 힘이 빠진 듯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태자가 황급히 달려가 그녀를 부축했다.“어마마마, 괜찮으시옵니까?”황제는 서 황후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대신 태후를 바라보며 말했다.“어마마마께서 몸이 편치 않으시다면 일찍 돌아가 쉬시옵소서. 괜히 밖에 오래 계시며 찬바람을 맞지 마십시오.”태후는 어느새 다시 온화한 표정을 되찾고 있었다.“황제, 염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황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금영의 손을 잡
태후가 문득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사실 여비의 아이가 잘못되었을 때 내가 어찌 마음 아프지 않았겠느냐? 그 아이가 무사히 태어났다면 내가 정성껏 가르치고 보살폈을 것이다.”“그저 안타까울 따름이지.”산기를 재촉하는 약을 사용한 기록이 드러나면서 사건은 다시 막다른 곳에 부딪힌 듯했다.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여비의 표정은 아까보다 더욱 넋이 나간 듯 흐릿해져 있었다.여비는 조금 전 태후의 손에서 흩어진 염주알 하나를 주워 들고 자세히 살펴보려는 듯했다.손 상궁이 다가와 여비에게 말했다.“여비마마, 이 염주는 태후마마께서 무척 아끼시는 물건이옵니다. 노비에게 주시옵소서. 혹여 염주알이라도 하나 잃어버려 염주가 온전치 못하게 되면 큰일이옵니다.”손 상궁은 두 손을 공손히 내밀었다.결국 여비가 들고 있던 염주알은 손 상궁의 손으로 넘어갔다.그런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당장이라도 서 황후를 물어뜯을 듯 분노하던 여비의 표정에서 어느새 그 단호함이 사라져 있었다.금영은 그 모든 모습을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여비에게 무언가 이상이 생겼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지만, 대체 무엇 때문에 갑자기 태도가 달라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설마 정말로 두약해가 자신을 해쳤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인가?그때 태후가 여비를 바라보며 물었다.“여비, 나는 네가 억울하며 누군가에게 부추김을 받았을 뿐이라 믿는다. 다시 잘 생각해 보거라. 두약해에게 수상한 점은 없었느냐?”태후가 말을 이었다.“그가 당시 너를 해칠 방법을 꾸밀 수 있었다면, 지금에 와서 마지막 서신 하나를 남겨 네가 황후를 해치도록 유도하는 것 역시 못 할 이유가 없지 않겠느냐?”여비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신첩이 생각해 보니 태후마마의 말씀에도 일리가 있사옵니다. 이번 일은 신첩이 잘못했사옵니다. 충분히 알아보지도 않고 성급하게 황후마마를 지목해서는 안 되었사옵니다.”그 말이 떨어지자 금영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여비를 바라보았다.금영뿐만이 아니었다.조금 전까지 한발 물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