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유진설은 계속해서 말했다.“부친과 모친께서 제 혼담을 논하려 하신답니다. 그래서 저를 집에 가둬 두고 예법을 배우게 하셨사옵니다! 오늘 황실 연회가 아니었다면 저는 밖에도 나오지 못했을 것이옵니다!”이 이야기가 나오자 유진설은 평소의 생기 넘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풀이 죽은 얼굴이 되었다.금영은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전생에서 자신이 죽은 뒤, 유진설은 태자와 배명월의 혼례를 크게 어지럽혔다.그리고 장평군주에 의해 변방으로 보내졌다.금영이 귀신으로 떠돌던 삼 년 동안, 유진설은 물론이고 그 누구의 소식도 듣지 못했다.유진설은 마치 세상에서 사라진 사람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하지만 훗날 금영은 진서 장군 휘하에 목진이라는 젊은 장수가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그것도 진서 장군이 목진을 위해 책봉을 청하는 서신을 올렸을 때에야 알게 된 일이었다.그때 금영은 어렴풋이 느꼈다.그 목진이라는 사람이 유진설과 분명 무언가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하지만 금영이 그 일을 알아내기도 전에.그녀는 긴 꿈을 꾼 듯 다시 눈을 떴고, 곧 회귀한 삶이 시작되었다.이번 생에서는 자신이 죽지 않았고, 유진설 역시 자신 때문에 태자와 서 황후에게 미움을 살 일도 없었다.그러니 지금은 장평군주에게 보내질 일도 없이, 오히려 혼담을 논하게 된 것이었다.금영은 유진설을 바라보며 물었다.“마음에 둔 사람이 있느냐? 만약 있다면 본궁에게 말하거라. 본궁이 폐하께 아뢰어 너를 위해 하사 혼인을 청해 주겠다.”유진설은 그 말을 듣자마자 말했다.“마마, 아직도 저를 벗으로 여기신다면 부디 그 말씀만은 하지 마시옵소서!”장평군주는 유진설이 금영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 천천히 다가왔다.그녀는 먼저 금영에게 예를 올렸다.그리고 곧 유진설을 꾸짖었다.“진설아, 어찌 마마께 무례하게 굴 수 있느냐! 집에서 어떻게 가르쳤는지 잊었느냐? 입궁한 뒤에는 자신을 신녀라 해야 한다!”“그리고 마마께서 네 혼사를 걱정해 주시는 것은 너에게 복된 일이거늘!”금영이
하지만 하필이면 금영은 배명월이 체면을 구기는 모습을 똑똑히 보고 말았다.그녀 역시 마음이 좋지 않은 참이었다.“명월.”배경천이 배명월을 불렀다.배경천은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배명월에게 건넸다.“명월, 네가 또 한 살을 더 먹었구나. 이것은 내가 너를 위해 준비한 새해 선물이다.”배경천의 손에 들린 물건은 비단 보자기에 싸여 있었다.그는 말을 하며 손에 든 보자기를 펼쳤다.그 안에는 정교하게 만든 봉황이 새겨진 비녀 하나가 들어 있었다.배경천은 손을 들어 배명월 앞에 조금 내밀었다.하지만 배명월은 배경천의 손을 단번에 뿌리쳤다.그녀는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누가 오라버니의 것을 원한다고 했습니까?”봉황이 새겨진 비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배명월은 앞으로 걸어가며 그 비녀를 보지도 않은 채 그대로 밟고 지나갔다.배명월이 떠난 뒤에도 배경천은 한동안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다 천천히 손을 뻗어 망가진 비녀를 주워 들었다.그 순간 배경천의 얼굴은 더없이 어두워졌다.*그사이 금영은 이미 심연희와 함께 전각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가는 길에 심연희가 조용히 불평했다.“마마께서는 모르시겠지만, 요즘 태자비마마께서는 며칠에 한 번씩 영안후부에 오시옵니다. 이것저것 보내시기도 하고, 또 다른 물건을 보내시기도 하옵니다.”“마치 저희와 아주 가까운 사이인 것처럼 말이옵니다.”심연희의 목소리에는 난처함이 가득했다.그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금영이 오해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영안후부의 두 아씨 사이에 있었던 일은 심연희가 시집오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금영은 조용히 심연희의 손을 두드리며 웃었다.“셋째 오라버니와 셋째 새언니도 참 곤란하겠구나.”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정면에서 서왕 세자 소성원과 마주쳤다.마주친 순간, 그는 똑바로 금영을 바라보았다.금영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이 망할 놈이!어찌하여 황실 연회에 온 것이란 말인가?소성원이 태자에게 다리가 부러진 뒤로 금영은 오랫동안 그를 본
배경원과 심연희는 모두 체면을 중히 여기는 사람들이었다.게다가 궁중 연회 자리에서 영안후부의 체면을 잃고 싶지도 않았다.만약 그 자리에서 보기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진다면, 사람들은 영안후부의 가풍이 바르지 않다고 여길 것이고, 그 일은 금영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터였다.그렇기에 배명월에게는 오히려 파고들 틈이 생겼다.한쪽 구석에 서 있던 배경천은 이 모습을 바라보다가 결국 앞으로 두 걸음 걸어 나갔다.“명월.”배경천이 그녀를 불렀다.배명월이 고개를 돌려 배경천을 바라보았다.그 틈을 타 배경원은 심연희를 데리고 조용히 먼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배명월은 담담하게 물었다.“둘째 오라버니,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방금 전까지 보였던 살갑고 애교 어린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그녀의 얼굴에는 차가운 거리감만이 가득했다.배경천은 그런 배명월을 바라보며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꼈다.잠시 침묵하던 그는 입을 열었다.“나는……”그때 배명월은 배경원이 떠난 것을 알아차렸다.그녀는 배경천을 신경 쓰지도 않은 채 곧장 걸음을 옮겼다.“셋째 오라버니! 셋째 새언니!”배명월이 뒤쫓아오자 배경천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그녀를 따라갔다.배경원과 심연희는 마침 금영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마마, 이것은 지아비가 특별히 마마를 위해 준비한 세찬이옵니다.”심연희는 궁비의 손에서 물건을 받아 금영에게 두 손으로 올렸다.금영은 손을 뻗어 심연희가 건넨 대나무 쟁반을 받아 들었다.그 위에는 정교하게 만든 두면(頭面: 머리에 쓰는 장신구와 장식을 통틀어 이르는 말) 하나와 아이가 착용할 목걸이 하나가 놓여 있었다.“마마께서는 궁 안에서 부족한 것이 없으시다는 것을 알기에, 혹여 마음에 들지 않으실까 염려되옵니다.”심연희가 웃으며 말했다.금영도 미소를 지었다.“어찌 싫어하겠느냐? 본궁은 아주 마음에 든다.”사실 예전에도 매년 새해가 되면 선물이 있었다.금영이 회양에 머물던 시절에도 배경천은 세뱃돈으로 쓸 물건을 따로 준비해 사람을 보내 전해 주곤
말을 하면 할수록 서 황후의 마음은 점점 더 불안해졌다.지난번에는 한 번의 계책으로 이황자와 배금영 뱃속의 그 천한 것까지 함께 없애 버릴 수 있었다.하지만 한 수가 모자랐다.결국 어느 하나도 죽이지 못했다.서 황후는 지금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자 가슴속이 몹시 답답해졌다.초조함도 갈수록 심해졌다.어떻게든 지금의 곤경에서 벗어날 방도를 찾아야 했다.설마 이대로 손을 놓고 당하기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총애를 잃은 데 이어 권세마저 잃는다면……*며칠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갔다.어느덧 설이 코앞이었다.해수가 진홍빛 고급 비단으로 지은 궁복을 받쳐 들고 와 물었다.“마마, 황실 연회에는 이 옷을 입으시는 것이 어떠시옵니까?”금영이 고개를 끄덕였다.옷을 갈아입은 뒤에는 해수가 얼굴에 진주로 화전을 장식해 주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단장이 모두 끝나자 해수는 눈앞의 금영을 바라보며 감탄했다.“노비가 보기에는 마마께서 예전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지신 듯하옵니다!”금영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물었다.“그런가?”거울 속 금영에게서는 예전의 앳되고 풋풋한 기색이 한결 옅어져 있었다.눈길이 움직일 때마다 은은한 빛이 감돌았고, 눈매에는 어느새 여인의 은근한 정취마저 어려 있었다.몸은 여전히 가녀렸지만, 예전보다 선이 한층 곱고 아름답게 살아났다.진홍빛 궁복은 금영의 빼어난 미모를 더욱 돋보이게 하면서도 고귀한 기품을 잃지 않게 했다.금영이 입을 열었다.“손탁, 복령. 두 사람은 남아서 아기 황자를 지키게.”이어 단단히 당부했다.“잘 기억해 두게. 본궁과 폐하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아기 황자에게 가까이하게 해서는 안 되네.”금영은 이미 아기 황자가 너무 어려 찬바람이라도 맞을까 염려된다며 황제에게 아뢰어, 이번 황실 연회에는 데려가지 않기로 허락을 받아 둔 상태였다.지난 만월연에서 있었던 일은 황제에게도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일이었다.그 때문에 황제는 소녕전의 경비를 한층 더 강화했다.특히 암위 네 명을 따로 붙여 두
복령은 해수의 말을 듣자 얼굴에도 경계심이 떠올랐다.“마마, 설마 이 비단 안에 사람을 해칠 만한 것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니겠사옵니까?”금영이 말했다.“비단 한 필일 뿐이다. 설령 정말 좋지 않은 것이 있다 하더라도, 물에 씻어야 하지 않겠느냐.”“게다가 현비의 수단이라면, 정말 본궁에게 손을 쓰고 싶었다면 굳이 경춘궁에서 보낸 물건에 독을 넣을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서 황후가 보낸 물건에 독을 쓰는 편이 훨씬 낫지 않겠는가?“그렇다면 대체 무슨 뜻일까요? 노비가 보기에는 이게 바로 여우가 닭에게 새해 인사를 하러 온 것이나 다름없사옵니다. 좋은 뜻이 있을 리 없사옵니다.”해수는 협방전에서 여비가 자신의 마마를 오해했던 일을 떠올리며 참지 못하고 말했다.“마마, 부디 조심하시옵소서. 작은 은혜와 호의에 마음이 약해지셔서는 아니 되옵니다.”“노비가 보기에는 이 후궁 안에 쉬운 여인은 하나도 없사옵니다. 지금 당장은 마마께 해를 끼치지 않는다 해도, 훗날 무슨 일을 꾸밀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옵니다.”해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금영은 웃으며 말했다.“본궁이 이 물건에 해칠 뜻이 없다고 말한 것은, 현비의 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금영이 이어 말했다.“그녀가 이렇게 한 것은 본궁을 해치려는 것이 아니라, 본궁을 통해 폐하의 환심을 얻으려는 것이다.”보아라.황제께서는 얼마나 오랫동안 다른 궁에 하사품을 내리지 않으셨던가.그런데 지금 현비가 자신의 처소에 쇄성단을 보내자, 황제께서는 곧바로 경춘궁에 하사품을 내리려 하신다.다른 사람들은 황제께서 왜 현비에게 상을 내리시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더욱이 황제께서 그 안에 담긴 뜻이 서로 주고받는 것과 같은 것임도 알 수 없을 것이다.사람들이 알게 될 것은 단 하나였다.현비가 다시 황제의 총애를 얻은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비록 이 일이 겉으로 보기에는 물 위에 비친 달처럼 허상에 가까워 보일지라도.하지만……그것만으로도 현비가 이 기세를 빌려 다시 일어서는 데에는 충분했다.
현비는 춘로를 흘끗 바라보았지만 부정하지 않았다.오늘 있었던 일을 누군가 직접 보았다면, 그 이야기가 황제의 귀에 들어갔을 것이다.그리고 황제께서는 오히려 자신을 더욱 품행이 바르고 어진 사람이라 여기실 터였다.“하지만 마마, 정말 그 쇄성단을 소녕전에 보내실 생각이시옵니까? 그건 특별히 사람을 시켜 마마를 위해 짜낸 비단이옵니다. 마마께서 그 쇄성단으로 만든 옷을 입으신다면 황실 연회에서 누구보다 눈부시실 것이옵니다.”“그때가 되면 폐하께서 분명 마마를 찾으실 것이옵니다.”춘로가 아첨하듯 말했다.현비는 그 말을 듣자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부친께서는 그리도 본궁이 폐하의 총애를 받기를 바라시는 것이냐?”그 말을 한 현비는 차갑게 덧붙였다.“그 물건들은 모두 원비에게 보내거라.”*황제는 아직 소녕전에 있었다.이때 황제는 금영과 함께 아기 황자를 둘러싸고 웃음을 터뜨리게 하고 있었다.작디작은 아기는 이따금씩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고, 그 모습에 황제의 얼굴에는 줄곧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폐하! 마마! 경춘궁의 춘로가 뵙기를 청하옵니다.”손탁의 전갈이 들려왔다.금영이 말했다.“들여보내거라.”춘로가 들어오자 황제가 흘끗 바라보며 담담하게 물었다.“방금 돌아간 것이 아니더냐? 어찌 또 왔느냐?”“폐하께 아뢰옵니다. 저희 마마께서 노비에게 원비마마께 쇄성단을 전해 드리라 하셨사옵니다.”춘로는 그렇게 말하며 뒤에 있던 궁비에게서 쟁반을 받아 직접 금영 앞까지 가져갔다.“마마, 이 쇄성단은 운군에서 나는 것으로, 일 년 동안 만들어지는 양이 얼마 되지 않사옵니다. 하지만 마마께서는 몸매가 가녀리시니, 옷 한 벌을 짓기에는 충분할 것이옵니다.”춘로가 이어 말했다.금영이 바라보았다.그것은 마치 은하수처럼 빛나는 한 필의 비단이었다.전각 안에서 살짝 움직이기만 해도, 그 위에는 부서진 별빛처럼 반짝임이 일었다.과연 보기 드물 만큼 아름답고 귀한 물건이었다.황제가 웃으며 말했다.“그대의 마마께서 평소 그 쇄성단을 그리 아끼시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