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또 무슨 말을 하려는 그때, 갑자기 고은영의 휴대폰이 울렸다.낯선 번호로 걸려 온 전화였지만 고은영에게는 일종의 구원이었기에 바로 휴대폰으로 화제를 돌렸다.“저, 전화 좀 받을게요.”배준우가 대답하기도 전에 고은영은 부리나케 휴대폰을 들고 사무실에서 나왔다.배준우는 고은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겁도 없네......’비록 나태웅에게 빠른 시일 내에 안지영을 조사하라고 시켰지만, 사실 배준우는 이미 대략 정황을 확신하고 있었다.고은영은 다급히 사무실 밖으로 나와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은영 씨.”전화기 저편에서 육명호의 촉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그 목소리에 고은영은 깜짝 놀랐다. 비록 뭐가 두려운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혹시 그날 밤 북성에서 육명호와 스킨십이 아닌 스킨십을 했을 때, 배준우가 화를 내서일까?하여 육명호만 떠올려도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거부감이 들었다.비록 두 회사의 협력은 실패했지만 한 때는 고객이었으니 고은영은 깍듯이 인사했다.“육 대표님, 안녕하세요.”“나 지금 동영그룹 입구야. 내려올래, 아니면 내가 올라갈까?”육시준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분명히 고은영의 의견을 묻는 것 같지만 보이지 않은 억압도 들어있었다.고은영이 말했다.“둘 다 싫은데요?”육명호 때문에 직원 수칙도 외웠는데 또 회사로 찾아왔다고?어떤 의미로 왔든 모두 그녀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낼 것이다. 그렇다고 직접 내려가 육명호를 만나는 것도 고은영은 두려웠다.배준우는 아주 무서운 상사다. 직원 수칙에는 분명 여직원은 사적으로 고객을 만날 수 없다고 규정되어 있다.게다가 그녀는 마케팅 부문이 아니라 육명호와 만날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또, 마케팅 부문의 직원이라도 반드시 회사의 허가를 받아야 고객과 만날 수 있다. 그 말인즉슨, 고은영이 육명호와 만나려면 반드시 배준우의 허가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배준우에게 육명호와의 만남을 허락받는다? 차라리 지옥으로 가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안 돼.
고은영은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싫어서 결국 배준우에게 찾아갔다.혹시라도 사적으로 육명호를 만났다가 들키는 날엔, 후과느 아주 엄중할 것이다.사무실에 들어선 고은영은 배준우의 그윽한 눈빛과 시선을 마주쳤다.배준우가 물었다.“누구 전화야?”고은영은 숨기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육 대표님요.”“육명호가 너한테?”배준우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둘이 사적으로도 연락을 주고받았어?’어두워진 배준우의 표정에 고은영은 바로 그의 기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지금 배준우 앞에서 육명호라는 세 세글자는 완전히 금기어가 된 듯싶다.이것은 육명호가 배준우를 보통의 남자처럼 생각하고 접대한 잘못이다. 그러게 비즈니스 자리에 왜 여자를 불러서는?그날 밤 그들의 비즈니스는 그 여자 때문에 끝났다.하지만 일하는 스타일을 보니 육명호도 그리 반듯한 인물은 아닌 것 같았다.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육명호 씨 맞아요.”고은영은 전혀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배준우는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너한텐 왜 전화했대?”“저를 만나겠대요.”‘사적으로 연락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사적으로 만나겠다고?’“만나기만 해 봐.”배준우의 쐐기에 고은영은 자기도 모르게 움찔했다.그러고는 심호흡하고 말했다.“나한테 두 가지 선택 기회를 주겠대요. 내가 내려가서 만나든, 본인이 나 찾으러 올라오든 선택하라네요. 완전 위협적이지 않아요?”고은영의 진지한 말에 배준우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널 위협했어?”“네, 위협처럼 들렸어요.”고은영은 더 진지하게 말했고 배준우의 눈가에는 한기가 스쳤다.‘육명호, 이 자식, 배짱 좋네? 감히 내 사람을 협박해?’배준우는 차가운 눈초리로 고은영을 쏘아보았고, 고은영은 순간 심장이 철렁하는 것 같은 기분에 우물쭈물하며 말했다.“나 협박하는 데 내가 뭐 별수가 있겠어요?”그녀는 혹시라도 불똥이 자기한테 튈까 봐 바로 육명호와의 관계에 선을 그어버렸다. 배준우는 잔뜩 겁에 질린 그녀의 모습에 차갑게 웃으
고은영에게서 전화만 걸려 오면 안지영은 불안한 마음부터 생겼다.왜냐하면 고은영이 전화를 걸어왔을 때는 분명 무슨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고은영이 말했다.“지영아, 나 오후에 건강검진 있어!”“뭐라고?”“아까 대표님이 직접 말하셨어. 오늘 오후에 전 직원이 건강검진을 받아야 한다고.”“왜 갑자기 이 시점에서 건강검진이야?”오늘 오후면 건강검진을 한다는 말에 안지영은 깜짝 놀랐다.건강검진은 고은영에게 최악의 상황이 될 수도 있다.당연히 고은영도 건강검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다.그녀는 머릿속이 복잡해지며 조바심이 났다.“내가 어떻게 알아.”두 사람은 배준우가 왜 이 시점에서 건강검진을 배치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시간을 계산해 보면 건강검진은 마땅히 다음 달에 진행되어야 하는데,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이다.안지영이 말했다.“건강검진 절대 하면 안 돼!”동영그룹의 건강검진은 항상 전면적이라 만약 고은영이 건강검진을 받게 된다면 임신 사실은 절대 숨길 수가 없게 된다.“나도 알아. 근데 대표님이 나한테 직접 말했어.. 나 도망 못 갈 것 같아.”“안 돼도 되게 하라고!”안지영이 쐐기를 박았다.고은영은 당장이라도 울고 싶었다.왜 생각한 대로 상황이 굴러가지 않는지......안지영은 비록 그녀에게 쉽게 도망가라고 말했지만 배준우가 특별히 그녀에게 이 일을 전해주었으니 안 가면 안 될 것 같았다.“너 건강검진 받게 되면 어떤 결과인지 잘 알고 있지?”고은영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안지영은 조바심이 났다.안지영은 이미 병원 측에 연락했고 만약 내일 진찰이 순조롭다면 바로 수술을 진행할 수도 있었다.그런데 갑자기 건강검진이라니? 이걸 어떻게 피한단 말인가?고은영 본인은 더더욱 조바심이 났다.“그럼, 알지.”“너 그러면 점심에 배씨 저택 가지 마. 점심에 당장 수술대에 오르는 거야.”곰곰이 생각하던 안지영은 결심한 듯 이를 악물고 말했다.두 사람은 이미 배준우에 의해 궁지에 몰렸다.“오늘 점심?”“아니면 어떡
정유비는 바로 몸을 돌려 배준우의 사무실로 들어갔고 마침 고개를 든 이미월이 고은영과 눈이 마주쳤다.순간 이미월의 눈동자에는 음침하고 의미심장한 웃음이 스쳐 지나갔다.고은영은 이미월이 왜 이렇게 웃는지 알 수 없었다.고은영이 생각하기도 전에 정유비는 배준우의 사무실에서 나왔다. 하지만 그녀의 안색은 확연히 굳어졌다.“왜 그래, 유비야?”이유비의 안색이 좋지 않으니 이미월은 다급히 물었다.정유비는 이미월을 힐끗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정말 너한테 화 단단히 났나 봐.”이미월은 당연히 배준우가 화난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큰 대가를 치르게 될 줄은 몰랐다.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잃은 대로 잃었고, 심지어 외삼촌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지금 그녀는 호텔 비용도 부담하기 힘들어 여인숙에서 지내고 있었다.정유비는 한숨을 내쉬었다.“너 먼저 돌아갈래?”“나 만나기 싫대?”고은영이 두 여자를 스쳐 지나가는 그때, 정유비는 삽시에 눈빛이 차가워지며 이미월을 향해 말했다.“너도 알다시피 대표님 옆에서 누군가 입을 함부로 놀리고 있잖아. 그러니 어떻게 쉽게 화가 풀리겠어?”‘누군가’라는 세 글자, 모두 정유비가 누구를 말하는지 다 알고 있었다.고은영은 정유비가 김연화보다 성숙하고 진중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니 전혀 그렇지 않다.하지만 배준우는 이미월에 대한 태도가 확고했고, 고은영은 배준우가 화나면 어떤 후과를 초래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그녀가 치러야 할 대가는 이미월보다 더 끔찍할 것이다.정유비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아무 대답도 없는 이미월에게 말했다.“일단 돌아가, 응?”이미월이 단호하게 말했다.“중요한 말이 있다고 전해줘.”그녀는 이대로 떠나기 싫었다.고은영은 내일 병원에 갈 것이며, 이미월은 오늘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하지만 대표님이......”“내가 직접 들어가서 말할게.”“안돼!”정유비는 단호하게 말했다.정유비는 이미 배준우에게 이미월이 찾아왔다고 전했지만 배준우는 생
배준우는 홀로 사무실에 있었다.막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인 그는 갑자기 들어온 사람이 이미월이라는 사실에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그녀를 내쫓기 위해 차가운 표정으로 인터폰을 누르려는 그때, 이미월이 다급히 다가와 그의 손을 막았다.“내가 일방적으로 들어왔어. 다른 사람과는 상관없는 일이야.”이미월은 부드럽지만 서러운 표정으로 말했다.배준우는 그녀를 차갑게 노려보았다.“이거 놔.”배준우의 더없이 차가운 말투에 그녀는 심장이 떨려왔지만 숨을 크게 들이쉬며 말했다.“내 얼굴 보는 게 그렇게 싫어?”이미월은 울먹이더니 눈시울을 붉혔다.배준우에 대한 지난 몇 년간의 그리움을 떠올리니...... 그녀는 그가 서럽기도 하면서 원망스럽기도 했다.배준우는 아무 말 없이 손을 뺐다.인터폰에서 손을 떼는 순간까지도 그의 눈빛에는 혐오로 가득했다.하지만 배준우도 더는 그녀를 쫓아내지 않았고 이미월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동영그룹의 모든 사람이 다 지켜보고 있는데 그중에는 량천옥의 사람도 적지 않았다.만약 이대로 쫓아낸다면 량천옥이 또 쉴 새 없이 입을 나불거릴 것이다.“나 원망하는 거 알아. 하지만...... 나 너 많이 보고 싶었어.”이미월은 숨을 깊이 들이쉬며 애처로운 마음을 표현했다.하지만 애절한 그녀의 고백에도 배준우의 차가운 얼굴은 전혀 녹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더 날카롭게 이미월을 노려보았다.그 눈빛에는 경고가 들어있었다.이미월은 저도 몰래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준우야.”“그 말 하려고 들어왔어? 그런 거라면 당장 나가!”배준우가 차갑게 경고했다.지금 배준우는 이미월의 감정이 전혀 궁금하지 않았고 관심조차 없었다.무뚝뚝한 배준우의 태도에 이미월은 숨이 막히고 가슴이 아팠다.그녀는 배준우가 이렇게까지 매정해질 줄은 생각도 못 했다.그는 다 잊은 걸까?지나간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린 걸까?이미월은 뭔가 더 말하고 싶었지만 배준우의 쌀쌀맞은 태도에 더는 말을 이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그녀는 애써 하고 싶은
같은 시각 비서실.이미월이 들어간지 5분쯤이 지난 뒤, 정유비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배준우가 그녀를 쫓아내지 않았다는 것만 해도 아주 나쁜 상황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이미월에게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면 그녀에게도 불똥이 튈 일은 없다.배준우와 이미월의 재결합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 정유비는 고은영에게 득의양양한 눈빛을 보냈다.하지만 고은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곧 퇴근 시간이 다가오고 고은영은 배씨 저택으로 가야 한다. 그녀는 어떤 핑계를 대고 병원으로 빠져나갈지 이미 다 생각한 상태이다.사무실에서.분위기는 정유비가 생각한 것처럼 좋지가 않았다.배준우가 아무 말도 없자 이미월은 그가 단단히 화가 났다고 생각해 이때다 싶어 불난 집에 부채질하기 시작했다.“보기에는 엉성해 보이지만 알고 보니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고 너와 결혼했던 거야.”다른 남자......이미월은 이 네 글자를 강조하여 말했고 그 말은 배준우의 정곡을 찔러댔다.배준우는 여전히 차가운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고은영에게 그런 배짱이 있다고 생각해?”“진짜 임신했다니까. 안지영과 대화하는 거 다 들었어. 내일 낙태 수술 받기로 예약까지 해놓은 상태라고. 그러고 몸조리 하기 위해서 너와 한바탕 다툴 기회를 찾겠다고 했어.”......“준우야. 다른 말은 다 안 믿어도 돼. 하지만 이거 진짜 사실이야!”이미월은 당장 하늘에 맹세할 기세였다.그녀는 배준우가 자기의 말을 믿어주길 간절히 기도했다.배준우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뭐라고?”“진짜 임신했다고!”“안지영과 뭘 얘기했다고?”“낙태 수술 상의했다고. 그러고 널 계속 속이려고 했다니까. 너 지금 그 여자한테 완전 속고 있는 거야.”이미월이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그녀는 배준우가 당장이라도 고은영을 데리고 병원에 가서 확인하길 바랐다. 그렇게 되면 고은영은 완전히 아웃이다.그녀는 각종 수단으로 두 사람을 떼어놓으려고 노력해왔지만 여태 계획은 늘 물거품으로 돌아갔다.그
순간 이미월은 넋이 나간 듯 배준우를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그게 무슨 말이야?”‘다른 남자의 아이가 아니라고? 만약 다른 남자의 아이가 아니라면 왜 낙태하려고 했던 거지? 말도 안 되잖아. 다른 남자의 아이니까 몰래 낙태하려던 거 아니었나?’하지만 배준우의 표정을 보아하니..이미월은 숨이 막혀왔다.“너 원래 이렇게 증거도 없이 사람 함부로 모함하는 여자였어?”배준우는 혐오스러운 말투로 말했고, 이미월은 당황해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그러니까 그 아이가 설마......”이미월은 말을 이어갈 수 없었고 그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배준우를 쳐다보았다.그녀는 고은영의 배 속의 아이가 배준우의 아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그... 그럴 리가! 만약 준우의 아이라면 왜 기뻐하지 못할 망정 낙태하려고 했던 거지? 준우의 아이를 가졌다면 신분을 상승할 수 있는 기회인데? 고은영이 바보라고 그걸 모르겠어?’이미월은 고은영이 배준우를 속였다고 확신했다.“정말 네 아이야?”하지만 배준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 모습에 이미월은 심장이 떨려오더니 안색이 점차 창백해졌다.그녀는 이 사실을 믿기 싫었다.‘만약 정말 준우 아이라면 난 어떡해? 나 이젠 준우와 완전히 끝인 거야? 안돼, 그럴 수 없어!’배준우는 차갑게 웃어 보였다.“내 아이가 아니라면 고은영이 나와 왜 결혼했겠어?”“그렇다면 왜 낙태를 하려고 하는 건데?”이미월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배준우를 바라봤다. 그녀는 고은영이 배준우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믿기 싫었다.이미월이 여전히 믿지 않으려고 하자 배준우는 점점 더 표정이 굳어졌다.“내 아내가 누구 아이를 가졌는지도 모를 만큼 내가 그 정도로 판단력이 없는 줄 알아?”“임신한거 알고 있었다고?”안지영과 고은영의 대화를 돌이켜보면 배준우는 분명 이 일을 모르는 상태이다.그런데 이게 웬일일까?“그걸 너한테 설명해야 해?”이미월은 할 말을 잃었다.하긴, 배준우는 그녀에게 설명할 이유가 없다
눈물범벅인 이미월이 사무실에서 나오자 아까만 해도 득의양양했던 정유비의 안색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이미월은 고은영을 매섭게 노려보며 콧방귀를 뀌더니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그리고 그 뒤로 정유비가 다급히 따라갔다.고은영은 그녀의 눈빛에 어리둥절해졌다. 하긴 고은영은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물건을 정리하며 배준우에게 어떻게 전화를 걸까 고민 중이던 그때, 고은영의 인터폰이 울렸다.“네, 대표님.”업무를 보고 있던 한희와 진청아는 배준우가 직접 고은영에게 연락하는 모습에 정유비는 확실히 대리 근무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들어와!”배준우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네, 바로 들어갈게요.”고은영은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내려놓고 바로 배준우의 사무실로 향했다.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고은영은 왠지 모를 한기가 느껴졌다.이번 겨울은 점점 더 추워지고 있다.배준우는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누르며 말했다.“창문 좀 열어.”고은영은 의아했다.배준우는 늘 사무실에서 담배를 피웠는데, 왜 하필 오늘 담배 냄새에 민감한 걸까?왠지 모를 위협감을 느낀 고은영은 감히 아무 말도 못 하고 다급히 창문을 열었다.창문이 완전히 열리자 사무실의 담배 냄새는 서서히 사라졌다.고은영은 조마조마하게 배준우에게 다가갔다.“대표님, 이제 퇴근 시간이에요.”배준우가 물었다.“이미월은 왜 함부로 들어왔지?”......‘이건 또 무슨 말이래?’배준우의 말대로 고은영은 이미월에게 경고의 전화를 걸었었다. 하지만 이미월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게 찾아왔다.역시 옛사랑은 제멋대로 굴 자본이 있나 보다.“그건...... 이미월 씨는 대표님 세상에 함부로 드나들어도 괜찮은거 아니었나요?”고은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지만 배준우는 똑똑히 들었다.“뭐라고?”“내가 틀린 말 했어요?”배준우는 차갑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넌 막을 줄도 몰라?”“업무를 정유비 씨에게 나눠줬으니 그건 정유비 씨 일 아닌가요?”
그 미남계에 안지영은 결국 어느샌가 넘어가고 말았다.장선명은 안열한테 안지영이 좋아하는 디저트를 가져오라고 했다. 안열은 그제야 두 사람이 사무실에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장선명은 다른 일로 바빠서 먼저 자리를 떠났다.안열은 디저트를 들고 오면서 안지영의 눈치를 보았다.“왜요?”“선명 도련님이 무슨 짓을 한 건 아니죠?”“잘못을 저질러놓고 나한테 무슨 짓을 한다면 그건 짐승이죠!”안지영이 씩씩대면서 얘기했다.그 말을 들은 안열은 입가를 씰룩이면서 얘기했다.“하지만 선명 도련님은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이 아닌데요.”장선명과 오랜 시간 함께 일하면서 장선명이 잘못을 사과하는 건 본 적이 없다.장선명이 잘못을 했다고 해도 그건 없었던 일로 될 테니까 말이다.“...”안지영은 안열의 말을 듣고 눈썹을 꿈틀거렸다.‘그럼 아까 한 말도 거짓말이었나?’안열이 안지영 앞으로 와서 안지영 목에 난 키스 마크를 발견했다.안지영이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나며 물었다.“왜 갑자기...”“도련님이 이런 방식으로 사과한 겁니까?”“네?”“격렬하네요. 이렇게 안 대표님을 입막음하다니...”“...”안지영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무거워졌다.아무리 둔감하다고 해도 안열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있었다.안지영은 얼른 핸드폰 카메라를 켜서 본인의 모습을 확인했다.목에 난 키스 마크들을 본 안지영은 그대로 숨을 들이켰다.“이...”하마터면 욕설을 뱉을 뻔할 정도였다.이 상태로 밖으로 나간다면 창피해서 얼굴을 못 들고 다닐 정도다.‘왜 하필 이런 집착남을 만나게 된 거지...’“좀... 과하긴 하죠?”안열은 안지영이 장선명 때문에 화가 나서 안열에게 화풀이할까 봐 약간 걱정이 되었다.오후 세 시가 되었는데 이제야 나오다니.두 사람이 얼마나 오랜 시간 붙어있었는지, 얼마나 격렬한 사랑을 나누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안지영은 단단히 화가 나서 케이크를 크게 한입 떠먹었다.안열은 장선명이 제대로 해명하지 않아 안지영의 화가 덜 풀린 것인
“나태웅이 두려워하는 게 뭐 있어요!”안지영이 화를 내면서 얘기했다.나태웅은 장선명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안지영에게 있어서 나태웅도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게다가 나태웅이 좋아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이게 사람 맞나 싶을 정도였다.“나태웅은 극단적인 거지 멍청한 건 아니야.”나태웅은 본인에게 유리하고 불리한 것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 안지영 앞에 나타난 걸 떠올리면... 장선명은 그런 나태웅을 가만히 둘 수 없었다.“그래도 이 사진들은 다 사실이죠.”“네가 이 사진 때문에 화를 내는 건 기쁜 일이지만 너한테 제대로 얘기해야 할 게 있어.”거기까지 얘기한 장선명이 말을 끊었다.안지영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뭐요?”장선명과 결혼 준비를 하면서 안지영은 이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소문 속의 장선명은 냉철하고 칼같은 사람이라고 했지만 안지영 앞의 장선명은 항상 웃는 얼굴로 자상하게 안지영을 대해주었다.그래서 안지영은 장선명이 도대체 왜 본인과 결혼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분명 비즈니스 때문에 시작한 부부 연기인데 말이다!사실 처음부터 안지영은 장선명이 왜 본인을 도와주는 건지 알 수 없었다.나태웅이 가져온 사진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목을 부드럽게 감싸고 코끝으로 안지영의 코끝을 가볍게 눌렀다.“그 사람이 살아있다고 해도 내가 사랑하는 건 너야.”“...”그 말을 들은 안지영은 심장이 순간 멎는 것 같았다.“정, 정말이에요?”‘잘못 들은 건가? 그 사람이 선명 씨한테 엄청 중요한 사람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과거는 과거일 뿐이야. 현재의 나는 네가 없으면 안 돼. 그 사람을 이미 다 잊었으니까 너랑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야.”장선명은 진지한 말투로 얘기했다. 안지영은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장선명을 쳐다보더니 심호흡을 한 후 얘기했다.“그렇게 많은 여자들이랑...”“나랑 그 사람들은 아무 사이도 아니야. 안열이 전에 얘기해줬을 텐데.”“그래도 남자들
“얘기해 봐. 어떻게 해야 화를 풀 거야.”“하, 다른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걸 정도였다면서요! 내가 화를 안 내고 배겨요?”안지영이 차갑게 얘기했다.“...”장선명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면서 물었다.“내가 누구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거야? 나는 왜 모르겠지.”“이...”안지영은 인정하지 않는 장선명의 모습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정말 화가 난 거야?”“당연하죠. 난 대용품이 되고 싶지 않다고요!”장선명은 화가 난 안지영을 보면서 본인이 왜 안지영에게 빠진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안지영은 느낀 것을 그대로 얘기하는 솔직한 사람이었다. 가식적으로 돌려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그래서 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이 좋았다.“누가 그래, 네가 대용품이라고. 나태웅이 그래?”장선명이 안지영의 두 볼을 가볍게 꼬집으면서 얘기했다.그 말투는 마치 딸을 대하는 아버지처럼 부드러웠다.안지영은 장선명을 힐긋 보더니 얘기했다.“수많은 사진이 증명하고 있잖아요.”그 사진만으로도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었다.“그 사진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절대 나태웅을 믿지 마. 응?”“흥.”“아직도 화가 난 거야? 제발 내 말 좀 들어줘.”“안 들을래요!”안지영은 아예 고개를 홱 돌렸다.안지영은 너무나도 솔직하고 가감 없는, 상대방에게 본인이 왜 화가 났는지 잘 알려주는 사람이었다.장선명은 화가 나 등을 돌린 안지영을 보면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원래는 좀 더 놀려주고 싶었지만 반응을 보니 그만해야 할 것 같았다.“알았어. 설명할게.”한숨 자고 일어났지만 여전히 이 일로 화를 내는 걸 보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니요. 됐어요. 설명하지 마요. 듣고 싶지 않으니까요.”진실이 두려워서 듣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장선명은 웃으면서 얘기했다.“왜? 내가 널 잡아먹을까 봐 무서워?”그 말에 안지영은 또 참지 못하고 장선명을 가볍게 때렸다.오전에 있었던 일을 생각
안지영은 오후 두 시에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하지만 안열은 사무실에서 안지영을 발견하지 못했다.‘설마 내가 한눈판 사이에 두 분이 나간 건가?’1시 30분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안열은 급한 마음에 얼른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를 받은 건 장선명이었다.“무슨 일이야.”그 말에서 안열은 이미 장선명의 짜증을 읽어냈다.안열은 약간 놀랐다.“선, 선명 도련님? 30분 뒤 안 대표님이 참석하셔야 하는 중요한 회의가 있습니다. 지금 안 대표님은 어디에...”휴게실에 있는 장선명은 고개를 숙이고 품에서 자고 있는 안지영을 쳐다보았다.오전에 너무 과했던 탓일까, 안지영은 계속 쭉 자고 있었다.“그냥 회의를 취소해.”“네? 그건...”“무슨 문제라도 있어?”“아, 아니요. 오늘 회의는 부승호도 참석하는 회의라... 알잖습니까.”부승호는 바로 하늘 그룹을 배신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번 회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장선명은 바로 알 수 있었다.장선명이 차가운 눈빛으로 얘기했다.“부승호한테 얘기해. 오늘 저녁 날 만나러 오라고.”“직접 나서서 안 대표님을 대신하실 생각입니까?”안열이 놀라서 물었다.예전에는 안지영이 성장할 수 있게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던가.그래서 안열과 장선명 다 안지영의 뒤에서 묵묵히 안지영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동안 안지영은 많은 일을 혼자서 해결했다.부승호와 마주하는 것도 안지영에게 있어서는 그동안의 실력을 검증할 가장 좋은 기회다.“무슨 문제라도 있어?”그 말에 안열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아닙니다!”안열은 여전히 장선명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장선명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안열은 얼른 눈치껏 전화를 끊었다. 장선명은 전화가 끊긴 것을 확인하고 바로 폰을 꺼버렸다.안지영은 이미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지금 몇 시예요?”“피곤하면 그냥 자.”장선명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안지영은 눈
테이블에는 다른 사진이 더욱 많았다.나태웅은 정말 이를 갈고 해외로 간 것이 틀림없었다.이것까지 다 알아내다니...이건 장선명의 가장 어두운 과거이자 다시는 들추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하지만 그 일들이 지금은 나태웅 때문에 다시 밝혀지게 되었다.그동안 장선명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마주할 수 없었던 과거들이었지만, 안지영이 건네준 사진을 보면서 장선명은 어느새 그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내려놓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지금 와서 과거의 일을 돌이켜보니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그 여자가 누구인지 얘기하라고요!”안지영이 화가 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러면서 장선명의 품에서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장선명은 여전히 안지영을 꾹 잡고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안지영의 앞에서 사진을 바로 불태워버렸다.“뭐, 뭐 하는 거예요!”안지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장선명은 불에 탄 사진을 그대로 재떨이 속으로 던져버렸다.담배를 피우는 장선명을 위해 안열이 준비해 둔 재떨이였다.안지영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그동안은 쓸모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주 유용했다.테이블 위의 사진은 다 재떨이 안으로 들어가 활활 타올랐다.안지영은 멍해서 물었다.“그렇게 변명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변명? 이건 다 지나간 일일 뿐이야.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다 잊었고. 뭐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생각도 안 나네.”“...잊었다고요?”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안열이 그러지 않았던가.장선명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고.사진 속의 여자들이 모두 비슷하게 생긴 걸 보면 장선명은 정말 그 여자를 아주 사랑한 것 같았다.그런데 그걸 잊다니.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그런 안지영의 모습을 본 장선명은 환하게 웃으면서 안지영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또 입술을 맞췄다.“읍... 아니, 읍...”‘미남계를 쓰겠다는 거야?’안지영은 약간 화가 났다. 원래 이런 건 그냥 두면 찝찝한 편이다. 사실을 알지 못하면 마음에 걸리니까 말이다.
사무실에 들어간 장선명은 안지영이 그를 등지고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이미 뒷모습에서부터 안지영의 화난 모습이 보였다.앞으로 다가가 의자를 돌린 장선명이 두 손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잡았다.그리고 웃는 눈으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안지영이 화가 나서 씩씩 대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더욱 환하게 웃었다.하지만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웃겨요?”“질투하는 거야?”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약간 놀랐다.“화 안 났어요. 난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에요.”“그래?”“...”질투냐고?안지영은 질투가 뭔지 몰랐다.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가 다른 여자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속이 좋지 않았다.생각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안지영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장선명이 안지영을 번쩍 안아 들고 의자에 앉은 것이었다.장선명은 웃음기 가득한 시선으로 안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안지영은 놀라서 허둥대면서 얘기했다.“이거 놔요!”하지만 장선명은 움직이는 안지영을 놔주지 않고 그대로 입술을 가져갔다.안지영이 버둥댈수록 장선명은 더욱 깊게 안지영의 입술을 머금었다.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결국 안지영이 숨을 쉬지 못하자 장선명이 안지영을 풀어주었다.안지영이 손을 들어 장선명의 뺨을 치려고 할 때, 장선명이 안지영의 손목을 잡고 웃으면서 물었다.“화났어?”“흥.”안지영은 화가 났다.그것도 단단히 화가 났다.안지영은 장선명이 점심 전에 도착한 것이 분명 그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안열이 알려줬을 테니까 말이다.그런데 와서 아무 해명도 하지 않고 입술부터 들이미니, 너무 미웠다.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을 보면서 짜증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오히려 속 편히 웃으면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마지막에는 한숨까지 푹 내쉬었다.“그렇게 화가 난 거야?”말을 마치고는 안지영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안지영은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오자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안지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안열을 바라봤다. 안열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어휴, 됐어요. 더 얘기해 봤자 짜증만 나요.”더 말했다간 정말 참지 못하고 화를 낼 것 같았다.나태웅에 대해 할 욕은 이틀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였다.“...”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안지영은 뾰로통해진 채로 안열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안열은 휙 돌아서 사무실을 나갔다.지금 안열의 머릿속에는 나태웅에 대한 욕뿐이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감히 또 안지영을 찾아오다니.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온 건지......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안지영은 아까 안열이 한 말을 떠올렸다.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평소에는 똑 부러지고 영리한 안지영이지만, 이번만큼은 안열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뻔뻔하다는 뜻이라면... 나태웅은 원래부터 그렇게 뻔뻔했다.하지만 이번은...안열은 복잡한 생각에 머리를 휙 털었다.그리고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원래는 장선면은 점심쯤에 안지영을 데리러 올 예정이었지만, 안지영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왔다.안지영의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장선명은 안열이 자리에 앉아 아이스팩을 발 위에 올려놓은 것을 발견했다.“다리는 왜 그래?”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안열은 깜짝 놀라 손에 쥔 아이스팩을 떨어뜨릴 뻔했다.장선명을 보자, 안열은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읏...!”하지만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묻는 장선명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안열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들었다.안열은 고개를 숙였다. 차마 나태웅 때문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해 그저 둘러댔다.“그냥... 실수로 넘어진 거예요.” “어떻게 넘어졌길래 거기만 그렇게 다치는 거야?” 장선명의 시선은 예리했다.보통 넘어진다면 무릎이 먼저 다치기 마련인데 안열은 무릎은 멀쩡하
나태웅은 믿을 구석 하나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태웅이 가져온 정보 때문에 안지영은 더욱 속이 복잡해졌다.안열은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약 좀 바르고 올게요.”그 말에 안지영은 생각이 끊겨버렸다.정신을 차린 안지영은 안열의 발등이 부어올랐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선명이 사랑하는 사람...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안열은 본 안지영은 결국 또 나태웅에게 화가 났다.“왜 이렇게 된 거예요. 정말 나태웅을 못 이기는 거예요?”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맞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밖에서 싸우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안열은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제가 만약 나태웅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면 진작 죽여버렸을 겁니다.”“...”진작 죽여버린다니.그 ‘진작’은 과연 언제일까?다시 생각해도 나태웅은 정말 독설만 퍼붓는 사람이었다. 안열을 볼 때마다 개라고 욕하니까 말이다.그래도 전에 동영 그룹에서 출근할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안지영은 우물쭈물하면서 안열에게 물었다.“두 사람, 전에도 안 좋은 사이였어요?”안열과 나태웅이 만날 때마다 안열은 대수롭지 않아 했고 나태웅은 화를 냈었다.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그렇게 물으면서 안지영이 구급상자를 가져와 상처를 처리해 주었다.안열이 거의 소리를 지르면서 얘기했다.“앗... 아파요... 아파...”“...”안열은 평소에 고통에도 끄떡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니 나태웅이 얼마나 아프게 때린 것인지 알 수 있었다.“제가 무슨 원한이 있겠어요! 한 것도 없는데...”“...”“굳이 꼽자면... 안 대표님 일로 원한이 있는 거죠.”“나요?”“네. 저는 안 대표님이 선명 도련님과 결혼하기를 바랐으니까요. 아마도 그것 때문에 저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요?”안열을 말을 들은 안지영은 약간 마음이 복잡했지만 또 본인의 선택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안열은 장선명의 부하로
“난 대체 누구의 대용품이었어요?”안지영이 바로 물었다.안열은 장선명과 오랜 시간 함께 했으니 사진 속의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알 것이다. 그러니 장선명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것이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그건...”“두 사람은 왜 헤어진 거예요?”안지영이 또 물었다.“...”안열을 그 어느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안열은 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안지영이 얼마나 칼 같은 사람인지, 안열은 잘 알았다.물론 안지영과 장성명의 사이가 안지영 때문에 시작한 것이라고 하지만 장선명에게 설레지 않았다면 안지영은 장선명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안열은 결국 또 속으로 나태웅을 욕했다.“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선명 도련님이 안 대표님과 결혼하려는 건 안 대표님을 사랑해서지, 다른 사람의 대용품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요.”“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직도 연락해요?”“절대 아닙니다. 제가 맹세할게요!”안열이 진지하게 얘기했다. 안지영이 괜히 장선명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열을 쳐다보았다. 안열은 그런 눈빛을 마주하고 약간 긴장했다.“진짜예요. 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선명 도련님이 얼마나 칼 같은 분인지 잘 알잖아요.”“하긴, 안열 씨는 선명 씨 사람이니까 그편을 들겠죠.”“아니요, 전 안 대표님 편입니다. 같은 여자로서요.”“나도 그 어떤 여자의 대용품이었겠죠.”“그건 다른 거죠! 그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까요. 나태웅이 왜 갑자기 이 일을 들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까지 들먹일 줄은 몰랐어요!”안열은 정말 나태웅을 죽여버리고 싶었다.요즘 나씨 가문에 생긴 일을 보면 나씨 가문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쓰레기였다.“죽었다고요?”안지영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안열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다들 모르는 일이잖아요!”안지영이 놀라서 얘기했다.장씨 가문 남자들은 하나같이 차갑고 냉정하다는 소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