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제하라는 조보은의 말에 서정우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나도 전에 엄마가 경찰서에 잡혀갔을 때, 고은영이랑 사이가 틀어졌어.”이건 서정우가 낮은 소리로 공손히 말해도 돈을 뜯어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서정우가 겉으론 인정하지 않아도 마음속으론 고은영과 사이가 틀어진 걸 매우 후회하고 있었다.그녀야말로 부자다.큰누나보다 훨씬 돈이 많다.매번 큰 누나가 돈을 내놓지 못할 때, 고은영에겐 분명히 돈이 있었다.“전에 돈 달라고 했었어?”서정우의 말에 조보은은 충격받았다.그녀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만약 고은영에 관한 보도를 보지 못했으면, 그녀를 잊고 살 뻔했다.그리고 그동안 서정우에게 돈을 대준 사람도 고은지뿐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이럴 줄이야...!서정우는 머리를 만지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큰누나한테 그런 능력이 어디 있어, 전에 큰누나한테 돈이 없을 땐 다 고은영한테서 받았다!”“모두 얼마 받았어?”“아마 1000만 원 정도 될 거야!”서정우는 생각하며 말했다.조보은은 그 숫자를 듣자마자 속으로 욱했다.곧바로 베개를 움켜쥐고 서정우에게 던지며 말했다.“그런데, 왜 집에 와서도 돈을 그렇게 많이 가져가?”고은영이 돈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동영 그룹에 들어가기 전에도 그렇게 많은 돈이 있을 줄이야.순간, 조보은은 온갖 후회가 몰려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자기 곁에서 키울 걸...조보은의 화가 자신을 향하자, 서정우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그러자 조보은은 더욱 화가 나서 말했다.“너 때문에 용산 집도 다 팔았는데. 이제 돌아가면 어디 가서 살래? 다시 촌으로 돌아갈래?”이건 그녀가 계속 고은영에게 강성의 집을 달라고 한 이유이기도 하다.당시 촌에서 이사 나오면서, 앞으로 더 잘 살 거라고, 절대 고향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큰소리쳤다.하지만 이 신세가 될 줄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그때 큰소리쳤던 걸 생각하면 지금 더욱 마음이 졸여졌다.“지금 고은영 얘기하고 있잖아요? 왜 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가 쓸모없는 인간처럼 느껴졌다.그녀는 참지 못하고 서준호에게 소리 질렀다.“휴대폰 가져와!”“내 번호도 이미 차단 당했어!”“가져와!”조보은은 이미 완전히 인내심을 잃은 상태다.서정우와 서준호가 뭐라고 하든, 전화를 걸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서준호는 그녀의 막무가내에 못 이겨 핸드폰을 그녀에게 던져 주었다.조보은은 서준호의 핸드폰을 서정우에게 건네며 말했다.“계속 걸어!”“아빠 말이 맞아요. 이 번호도 차단 당했어요.”“빨리 걸라니까!”조보은은 화가 나 어쩔 줄 몰라 했다.다들 왜 이렇게 쓸데없는 소리만 많이 지껄이는 거야?시키는 대로 할 것이지!서정우는 조보은의 호통에 어쩔 수 없이 다시 고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결과는 예상한 대로였다.“진짜 차단 당했어요.”서정우는 조보은에게 전화를 건넸다.조보은은 정말 차단당한 걸 확인하니 더욱 분노가 치밀었다. 지금 세 사람 다고은영과 통화 불가한 상태다.“은지한테 전화해.”조보은은 한참 생각하다 고은지에게 전화하라고 했다. 그리고 서정우가 반응도 하기 전에 덧붙여 말했다.“은지더러 은영이한테 전화하라고 해.”서정우는 깜짝 놀랐다.“큰 누나더러 둘째 누나한테 전화하라고 하라고?”“그래, 아니면 은지가 우리한테 10억 가져다주겠어?”고은영이라는 돈줄이 생겼으니, 더 이상 고은지를 괴롭히지 않았다.지금은 오로지 고은영에게서 돈을 뜯어낼 생각뿐이었다.서정우도 그녀의 뜻을 알아들었다.“네, 알겠어요.”그리고 서둘러 고은지에게 전화 걸었다.고은지는 지금 직장에 다니고 있다. 지금쯤 이미 퇴근했을 시간이다.고은지는 퇴근 후 금방 집에 돌아와, 음식을 해 먹으려는데 전화기가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발신 번호를 보니 서정우였다. 그녀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조영수와 이혼 후, 그녀도 많은 생각이 풀렸다. 전에 자신이 도와준다고 생각했던 일이 사실은 이 집을 점점 파괴하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그래서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라면을 냄비에 넣자마자 또다시 전화가 울렸다.이번엔 고은영의 전화였다.“응, 은영아.”“조보은이 언니한테 전화 갔어?”고은영이 직접적으로 물었다.“아니, 서정우가.”고은지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병원으로 오라고 했어?”“난 안 갈 거야!”고은지는 조금의 고민도 없이 말했다.두 사람의 대화는 척하면 척이었다. 고은지는 고은영의 말이 무슨 뜻인지 다 파악하고 있었다.고은지의 대답에 고은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너도 오래?”“별 큰일도 아닌 걸로 입원한 거니까, 신경 쓰지 마!”안지영이 그리 심하게 때리진 않았을 것이다. 지금 그쪽에서 이렇게 오버하는 건 그녀를 병원에 오게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중요한 건, 조보은이 지금 어떤 상태이든, 지금 절대 마음이 약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나도 알아!”고은지가 대답했다.잘 알기 때문에, 그쪽에서 아무리 전화를 해도 꿈쩍도 하지 않을 수 있었다.혹은, 이미 포기해 버렸을 수도.다 포기해버려서, 조보은이 아무리 뭐라 해도 꿈쩍하지 않는 것 일수도.“알겠어, 일단 끊어. 나 금방 퇴근해서 지금 좀 뭐 먹으려고.”“응!”고은지의 말에 고은영도 더 묻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고은지는 전화를 끊고 재빨리 라면을 냄비에서 건져 냈다.빨리 움직였는데도, 라면이 퍼지는 건 막을 수 없었다. 그래도 다시 끓이기 귀찮아 그냥 대충 먹었다.란완 리조트 시점.하루 종일 피곤했던 고은영은 고은지와 통화를 끝낸 후, 그대로 침대 머리에 기대어 잠들어 버렸다.배준우가 방으로 들어왔을 때, 그녀가 이불도 덮지 않고 침대 머리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았다.배준우는 고개를 돌려 문 앞에 서 있는 도우미를 쳐다보았다.도우미도 배준우가 문을 여는 순간, 고은영이 침대 머리에 기대어 자는 모습을 보자마자 깜짝 놀랐다.게다가 지금 배준우가 이런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자, 해고당할까 봐 두려웠다.그런데 다행히도 배준우가 아무 말도 없이 시선을 거뒀다.그는 고은영을 안고 침대에 제대로 눕
이 밤!조보은 일가는 불안 속에서 온밤을 지샜고, 고은영은 푹 잘 잤다.배준우는 생각할수록 밤새 자지 못했다.고은영이 일어났을 때, 배준우는 이미 창문 앞 의자에 앉아있었다.비록 멀리 떨어져 앉아있었지만, 고은영은 그의 감정을 바로 알아챘다.그녀가 몸을 일으키는 순간, 배준우도 그녀의 인기척에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깼어? 잘 잤어?”약간 의미심장한 태도로 말했다.고은영도 이미 완전히 잠에서 깬 상태라, 그의 말투에 숨은 뜻을 바로 알아챘다.다만, 그녀는 왜 아침부터 그가 화가 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네, 잘 잤어요. 대표님은요?” 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별로!”“...” 아니, 왜...!어젯밤엔 어색해서 잘 못 자겠다더니, 푹 자고 일어난 고은영의 모습에 배준우는 어이가 없었다.그렇게 푹 자 놓고, 나중에 코까지 골아 놓고!백 어르신도 전에 말한 적이 있었다. 코를 고는 것도 임신 중의 여자들이 겪게 되는 변화 중 하나이다.그녀가 하도 코를 고니 배준우는 다른 방에서 자고 싶었지만, 그녀가 자기를 꼭 안고 자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그대로 있어야 했다.고은영은 침대에서 일어나, 눈을 비비며 배준우에게 다가갔다.“무슨 고민거리 있어요?”“아니!”“네? 그럼, 왜 못 주무셨어요?”고은영은 배준우가 무슨 고민거리가 있어서 못 잤다고 생각했다.고민거리가 없으면, 왜 못 잔 거지?“네가 너무 시끄러워서!”“제가 시끄럽다고요? 저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고은영은 억울했다.그리고 바로 겁에 질린 얼굴로 배준우를 쳐다봤다. “설마 제가 또 몽유병이...?”고은영은 전에 인터넷으로 몽유병에 대해 찾아본 적이 있었다.그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몽유병 때문에, 잠결에 밤에 나가서 돌아다니거나 하는 일들이 많았다.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침대에 눕는다!모든 과정이 무의식중에 벌어져,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면 너무 피곤하게 느껴진다.하지만 오늘 그녀는 별로 피곤하게 느
고은영은 컵을 받아 들고, 물 절반을 마신 뒤에야 마음속의 공포가 조금 가라앉았다.“또 감기 걸렸어?”“그런 것 같아요!”고은영은 서둘러 대답했다.그녀는 지금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기도하고 있다. 배준우가 아무 말도 하지 않기를. 그가 말만 하면...!그의 대화 리듬에 따라가기 어려워진다.고은영은 이 마지막 순간에 그동안 공들였던 탑이 무너질까 너무 두려웠다.배준우는 그녀의 이마에 손을 갖다 대며 말했다.“음, 열은 없는데.”“가끔 열이 안 날 때도 있어요.”배준우는 그렇게 그녀가 거짓말하는 모습을 아무렇지 않게 지켜보고 있었다. 고은영은 지금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우스운지 전혀 알지 못하고 계속해서 거짓말하려고 애쓰고 있다. 배준우와의 관계가 끝날 때, 이 거짓말도 끝낼 생각이었다.아침 식사 때.나태웅이 왔다.그러자 배준우가 고은영을 쳐다보며 말했다.“오늘 넌 출근하지 말고 여기 있어!”“네.”그녀는 평소 같으면 여기 있지 않겠다고 했을 텐데, 오늘 아침 배준우의 그 말들 때문에 지금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지금 그녀는 그저 서둘러 배준우와 떨어져 있고 싶었다.만약 오늘 아침 같은 그런 대화가 더 오고 간다면, 고은영은 더욱 어찌할 바를 몰랐을 것이다.그녀가 쉽게 알겠다고 하자, 배준우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무슨 일 있으면 나 집사 찾아.”“네, 알겠어요!”나 집사는 어제 한 무리의 도우미를 데리고 밖에서 그들을 맞이했던 집사다.얼추 50대쯤 되어 보이는데, 정신력은 아주 대단했다.배준우를 마주할 땐 세상 공손하고, 도우미들을 마주할 땐 얼굴에 위엄이 넘친다.고은영은 배준우를 쳐다보며 물었다.“저, 량천옥, 그리고 그 집 사람들 란완 리조트가 대표님 것이라는 거 알고 있어요?”“아니, 몰라.”“네!” 어쩐지!만약 량천옥이 란완 리조트가 배준우의 것이라는 걸 알았다면, 감히 배준우와 싸울 엄두도 못 냈겠지!란완 리조트는 10년 전에 완공됐다. 모두가 란완 리조트 주인의 권세에 대해 의논하고 있
아침 식사 후, 배준우는 나태웅과 함께 떠났고, 나 집사는 고은영 전용 도우미들을 안배했다.어젯밤부터 지금까지, 모두 배준우가 고은영을 어떻게 대하는지 아주 잘 보았다. 그러니 감히 그녀 앞에서 조금의 공손하지 않는 태도도 드러내지 않았다.하지만 여전히 눈치 없이, 그녀 뒤에서 그녀를 욕하는 사람도 있긴 했다.“촌에서 올라온 아가씨라고 들었어. 그냥 도련님의 비서 일을 했었다고 하던데!”“그 기사 나도 봤어.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니까. 어떤 수단으로 그랬는지, 참!”“그니까, 미월 아가씨가 돌아왔는데도 자리를 내주지 않잖아, 뻔뻔하게!”“뻔뻔하다고 욕할 수도 없어. 촌에서 기어 나와서 이런 재벌이 걸려드니까, 기회라 생각하고 어떻게든 마음을 사로잡으려 하겠지!”“근데 잘난 구석은 있어? 아무것도 안 하고 있잖아, 전에 내가 미월 아가씨를 돌볼 땐, 미월 아가씨가 도련님을 위해 국도 끓여주고, 그랬는데.”고은영은 햇볕을 쬐러 나가려고 방에서 나왔는데, 복도 모퉁이에서 수군거리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그녀를 돌보는 도우미는 햇볕을 쬐러 나가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 서둘러 가서 그녀의 겉옷을 챙겼다.옷을 가지고 고은영 곁에 오니, 그들이 고은영 뒷담화 하는 소리를 들었다.도우미는 순식간에 굳어진 얼굴로 조심스럽게 고은영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제가 가볼게요!”말하고는 바로 그들에게 다가갔다.모퉁이에 있는 두 도우미가 아직도 막 신나게 말하고 있었다.그러다 고은영 전용 도우미가 눈앞에 나타나자, 두 사람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혜나야, 네가 어떻게...?”짝!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따귀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자리에 서있던 고은영도 깜짝 놀랐다.혜나의 갑작스러운 따귀에, 맞은 도우미도 뒤늦게 반응하며 충격 받은 얼굴로 혜나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날 때려? 나 집사님한테 말할 거야!’“그래, 가서 집사님한테 네가 사모님을 뒤에서 어떻게 씹었는지 샅샅이 다 얘기해!”“우, 우린...!”짝!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또 한 번 따
이미월을 돌봤던 도우미는 고은영이 이미월보다 착하지 않다고, 마음속으로 더더욱 욕하고 있었다.이렇게 심성이 착하지 못한 여주인을, 도련님이 틀림없이 곧 실증 나 할 거라고 생각했다.촌에서 온 사람은 절대 뼛속까지 도시 사람이 될 수 없다! 이렇게 작은 일도 다 따지는 그녀가 정말 혐오스럽다고 생각했다.혜나는 누군가 처리해줄 거라는 고은영의 말을 듣고 나서야, 화가 수그러들었다.혜나는 다시 그녀들을 날카롭게 노려보며 말했다.“얼른 가서 짐들 싸. 여기에 머물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말하고는 차갑게 코웃음 치며 고은영에게 다가갔다.“사모님, 제가 햇빛 방으로 모실게요.”“네.”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혜나는 고은영이 전혀 화를 내지 않을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도련님이 직접 고르신 사모님 답게, 자기감정 관리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다른 일을 하고 있던 도우미가 이 상황을 지켜보고는 즉시 나 집사에게 알렸다.나 집사는 얘기를 듣자마자 서둘러 위층으로 올라와, 두 도우미가 얼굴을 붉히고 있는 것을 보았다.얼굴에 손바닥 자국이 선명했다.집사는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어떻게 된 일이냐?”그러자 둘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서서 울며 말했다.“나 집사님, 저희 얘기 들어보세요. 혜나는 사모님을 모신 이후로 기세가 등등해져서, 저희를 사람 취급도 안 해요!”그녀의 말에 나 집사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고은영에 대한 인상이 조금 빗나갔다.그러자 나머지 한 명도 재빨리 맞장구를 쳤다.“저와 세나가 청소를 하고 있는데, 혜나가 올라와서 아무 말도 없이 저를 밀쳐냈어요. 세나는 제 편을 들어준 것뿐이고요.”“혜나가 왜 갑자기 너를 밀쳐?”“저도 몰라요. 아무 말도 없이 밀쳤어요!”낮은 소리로 중얼거리며 말했다.방금 혜나가 자신의 따귀를 때린 걸 생각하자, 화가 치밀었다.지금 당장이라도 혜나를 쫓아내고 싶은 심정이었다.나 집사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지만, 더 묻지 않았다.“일하러 가!”“저, 집사 님, 혜나 일은..
배준우는 담배를 피우며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그는 량천옥이 지금 강제로 담을 뛰어넘어야 하는 처지라고 생각했다. 전에 량천옥이 F국에 갔을 때, 박씨 가문이 그녀를 어떻게 대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그런데 박씨 가문을 이용할 생각을 하다니.박윤은 바보가 아닌데 말이다! 설령 이번에 그녀의 뜻대로 된다 해도, 나중에 지금 진씨 가문을 벗어나는 것보다 더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박씨 가문에서 그러겠대?”배준우가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누르며 물었다.“아직 대답은 안 했어. 지금 그 여자가 계략을 꾸미고 있는 거지.”역시 예상대로였다!박씨 가문이 스케일이 어느 정도인지, 해외에서 오랫동안 생활했던 배준우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량천옥이 박씨 가문과 한 배를 타려고 한다고?박씨 가문이 그녀를 거들떠보기나 할지 의문이다.그리고 박설희, 박씨 가문의 장녀. 박씨 가문처럼 백 년의 역사를 지닌 가문이 어찌 출신을 보지 않을 거라 말인가?그녀는 정말 자기가 무슨 인물이라도 되는 줄 아는데, 박씨 가문은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이런 규율을 중시하는 집안에서 량천옥이 그런 제안을 해오면, 당연히 가장 먼저 배씨 집안 모든 것을 조사해 볼 것이다.그러면 그녀가 저질렀던 추악한 짓들이, 그녀의 계획을 방해할 것이다.“어떤 계략을 꾸미고 있는데?”“천의 주식 2%를 약혼 예물로 한대.”천의...!지금 F국에서 번성하고 있는 기업이다. 이것 역시 량천옥의 손에 있다.장풍 프로젝트는 천의 소유의 일부 프로젝트일 뿐이다. 량천옥은 장항 프로젝트를 배준우에게 뺏기지 않기 위해 천의 주식 지분 2%를 예물로 주면서까지 박씨 가문 장녀 박설희를 배준우와 결혼시키려 했다.“허, 영감은 알아?”배준우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량천옥의 어리석음을 비웃고 있는 것이다.“모를 거야. 아마 알았으면 이렇게 평화롭지 않겠지!”사실이다. 배항준은 동영 그룹을 배준우에게 뺏겼을 때, 한동안 성격이 괴팍해 졌었다.만약 량천옥이 천의 지분을 함부로 내주려 하
너무 어려서. 어린 나이에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그때의 장선명은 세상 물정을 잘 모르고 사랑과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자였다 불같았던 그 시절과 달리 지금의 장선명은 조금 진중해졌고 일을 처리할 때도 신중히 처리했다.“정말 그 일 때문에 두 분의 사이가 틀어진다면 제가 다 속상해할 거예요.”“왜 그렇게 선명 씨를 보호하는 거예요?”안지영이 가볍게 코웃음 쳤다.“전 그저 선명 도련님께서 다른 사람을 이렇게 아끼는 건 처음이라...”“...”안지영이 처음이라니, 그럼 그 여자는...‘됐어, 그만 생각해. 선명 씨도 이미 잊었다고 했는데 내가 자꾸만 파고들면 나만 속 좁은 여자 되는 거잖아.’안지영은 순수한 감정을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간단하고 순수한 감정을 갖는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안열은 안지영이 여전히 그 일을 신경 쓰는 것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안지영은 총명한 사람이니 옳은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안열은 안지영이 나태웅의 말 몇 마디로 흔들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았다.“선명 도련님께서 얘기하셨습니다. 부승호의 일은 본인이 직접 처리하겠다고요.”안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아요.”장선명이 그렇게 얘기했으니 안지영은 그 일을 장선명에게 맡길 생각이었다.전에 나태웅의 사건에서 안지영은 장선명이 끼어들지 않기를 바랐다. 괜히 나씨 가문과 장씨 가문의 싸움으로 번지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하지만 안지영은 이제야 깨달았다.나씨 가문의 사람들은 인간이 아니다.그들은 후과를 생각하지 않고 이 사람 저 사람 건드리고 다니니 이런 결과가 펼쳐진 것이 아니겠는가.“아, 맞다. 그날 밤 나태웅한테 약을 타기로 했잖아요. 그건 어떻게 됐어요?”안지영이 물었다.전에 두 사람은 나태웅에게 약을 타 다른 여자와 밤을 보내게 하려고 했다.하지만 그날 밤 이후 나태웅이 사라져 버렸다.그리고 그날 밤, 안열에게도 갑자기 사건이 생겼으니...안지영은 아직도 그날
그 미남계에 안지영은 결국 어느샌가 넘어가고 말았다.장선명은 안열한테 안지영이 좋아하는 디저트를 가져오라고 했다. 안열은 그제야 두 사람이 사무실에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장선명은 다른 일로 바빠서 먼저 자리를 떠났다.안열은 디저트를 들고 오면서 안지영의 눈치를 보았다.“왜요?”“선명 도련님이 무슨 짓을 한 건 아니죠?”“잘못을 저질러놓고 나한테 무슨 짓을 한다면 그건 짐승이죠!”안지영이 씩씩대면서 얘기했다.그 말을 들은 안열은 입가를 씰룩이면서 얘기했다.“하지만 선명 도련님은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이 아닌데요.”장선명과 오랜 시간 함께 일하면서 장선명이 잘못을 사과하는 건 본 적이 없다.장선명이 잘못을 했다고 해도 그건 없었던 일로 될 테니까 말이다.“...”안지영은 안열의 말을 듣고 눈썹을 꿈틀거렸다.‘그럼 아까 한 말도 거짓말이었나?’안열이 안지영 앞으로 와서 안지영 목에 난 키스 마크를 발견했다.안지영이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나며 물었다.“왜 갑자기...”“도련님이 이런 방식으로 사과한 겁니까?”“네?”“격렬하네요. 이렇게 안 대표님을 입막음하다니...”“...”안지영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무거워졌다.아무리 둔감하다고 해도 안열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있었다.안지영은 얼른 핸드폰 카메라를 켜서 본인의 모습을 확인했다.목에 난 키스 마크들을 본 안지영은 그대로 숨을 들이켰다.“이...”하마터면 욕설을 뱉을 뻔할 정도였다.이 상태로 밖으로 나간다면 창피해서 얼굴을 못 들고 다닐 정도다.‘왜 하필 이런 집착남을 만나게 된 거지...’“좀... 과하긴 하죠?”안열은 안지영이 장선명 때문에 화가 나서 안열에게 화풀이할까 봐 약간 걱정이 되었다.오후 세 시가 되었는데 이제야 나오다니.두 사람이 얼마나 오랜 시간 붙어있었는지, 얼마나 격렬한 사랑을 나누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안지영은 단단히 화가 나서 케이크를 크게 한입 떠먹었다.안열은 장선명이 제대로 해명하지 않아 안지영의 화가 덜 풀린 것인
“나태웅이 두려워하는 게 뭐 있어요!”안지영이 화를 내면서 얘기했다.나태웅은 장선명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안지영에게 있어서 나태웅도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게다가 나태웅이 좋아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이게 사람 맞나 싶을 정도였다.“나태웅은 극단적인 거지 멍청한 건 아니야.”나태웅은 본인에게 유리하고 불리한 것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 안지영 앞에 나타난 걸 떠올리면... 장선명은 그런 나태웅을 가만히 둘 수 없었다.“그래도 이 사진들은 다 사실이죠.”“네가 이 사진 때문에 화를 내는 건 기쁜 일이지만 너한테 제대로 얘기해야 할 게 있어.”거기까지 얘기한 장선명이 말을 끊었다.안지영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뭐요?”장선명과 결혼 준비를 하면서 안지영은 이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소문 속의 장선명은 냉철하고 칼같은 사람이라고 했지만 안지영 앞의 장선명은 항상 웃는 얼굴로 자상하게 안지영을 대해주었다.그래서 안지영은 장선명이 도대체 왜 본인과 결혼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분명 비즈니스 때문에 시작한 부부 연기인데 말이다!사실 처음부터 안지영은 장선명이 왜 본인을 도와주는 건지 알 수 없었다.나태웅이 가져온 사진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목을 부드럽게 감싸고 코끝으로 안지영의 코끝을 가볍게 눌렀다.“그 사람이 살아있다고 해도 내가 사랑하는 건 너야.”“...”그 말을 들은 안지영은 심장이 순간 멎는 것 같았다.“정, 정말이에요?”‘잘못 들은 건가? 그 사람이 선명 씨한테 엄청 중요한 사람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과거는 과거일 뿐이야. 현재의 나는 네가 없으면 안 돼. 그 사람을 이미 다 잊었으니까 너랑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야.”장선명은 진지한 말투로 얘기했다. 안지영은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장선명을 쳐다보더니 심호흡을 한 후 얘기했다.“그렇게 많은 여자들이랑...”“나랑 그 사람들은 아무 사이도 아니야. 안열이 전에 얘기해줬을 텐데.”“그래도 남자들
“얘기해 봐. 어떻게 해야 화를 풀 거야.”“하, 다른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걸 정도였다면서요! 내가 화를 안 내고 배겨요?”안지영이 차갑게 얘기했다.“...”장선명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면서 물었다.“내가 누구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거야? 나는 왜 모르겠지.”“이...”안지영은 인정하지 않는 장선명의 모습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정말 화가 난 거야?”“당연하죠. 난 대용품이 되고 싶지 않다고요!”장선명은 화가 난 안지영을 보면서 본인이 왜 안지영에게 빠진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안지영은 느낀 것을 그대로 얘기하는 솔직한 사람이었다. 가식적으로 돌려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그래서 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이 좋았다.“누가 그래, 네가 대용품이라고. 나태웅이 그래?”장선명이 안지영의 두 볼을 가볍게 꼬집으면서 얘기했다.그 말투는 마치 딸을 대하는 아버지처럼 부드러웠다.안지영은 장선명을 힐긋 보더니 얘기했다.“수많은 사진이 증명하고 있잖아요.”그 사진만으로도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었다.“그 사진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절대 나태웅을 믿지 마. 응?”“흥.”“아직도 화가 난 거야? 제발 내 말 좀 들어줘.”“안 들을래요!”안지영은 아예 고개를 홱 돌렸다.안지영은 너무나도 솔직하고 가감 없는, 상대방에게 본인이 왜 화가 났는지 잘 알려주는 사람이었다.장선명은 화가 나 등을 돌린 안지영을 보면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원래는 좀 더 놀려주고 싶었지만 반응을 보니 그만해야 할 것 같았다.“알았어. 설명할게.”한숨 자고 일어났지만 여전히 이 일로 화를 내는 걸 보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니요. 됐어요. 설명하지 마요. 듣고 싶지 않으니까요.”진실이 두려워서 듣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장선명은 웃으면서 얘기했다.“왜? 내가 널 잡아먹을까 봐 무서워?”그 말에 안지영은 또 참지 못하고 장선명을 가볍게 때렸다.오전에 있었던 일을 생각
안지영은 오후 두 시에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하지만 안열은 사무실에서 안지영을 발견하지 못했다.‘설마 내가 한눈판 사이에 두 분이 나간 건가?’1시 30분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안열은 급한 마음에 얼른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를 받은 건 장선명이었다.“무슨 일이야.”그 말에서 안열은 이미 장선명의 짜증을 읽어냈다.안열은 약간 놀랐다.“선, 선명 도련님? 30분 뒤 안 대표님이 참석하셔야 하는 중요한 회의가 있습니다. 지금 안 대표님은 어디에...”휴게실에 있는 장선명은 고개를 숙이고 품에서 자고 있는 안지영을 쳐다보았다.오전에 너무 과했던 탓일까, 안지영은 계속 쭉 자고 있었다.“그냥 회의를 취소해.”“네? 그건...”“무슨 문제라도 있어?”“아, 아니요. 오늘 회의는 부승호도 참석하는 회의라... 알잖습니까.”부승호는 바로 하늘 그룹을 배신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번 회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장선명은 바로 알 수 있었다.장선명이 차가운 눈빛으로 얘기했다.“부승호한테 얘기해. 오늘 저녁 날 만나러 오라고.”“직접 나서서 안 대표님을 대신하실 생각입니까?”안열이 놀라서 물었다.예전에는 안지영이 성장할 수 있게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던가.그래서 안열과 장선명 다 안지영의 뒤에서 묵묵히 안지영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동안 안지영은 많은 일을 혼자서 해결했다.부승호와 마주하는 것도 안지영에게 있어서는 그동안의 실력을 검증할 가장 좋은 기회다.“무슨 문제라도 있어?”그 말에 안열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아닙니다!”안열은 여전히 장선명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장선명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안열은 얼른 눈치껏 전화를 끊었다. 장선명은 전화가 끊긴 것을 확인하고 바로 폰을 꺼버렸다.안지영은 이미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지금 몇 시예요?”“피곤하면 그냥 자.”장선명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안지영은 눈
테이블에는 다른 사진이 더욱 많았다.나태웅은 정말 이를 갈고 해외로 간 것이 틀림없었다.이것까지 다 알아내다니...이건 장선명의 가장 어두운 과거이자 다시는 들추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하지만 그 일들이 지금은 나태웅 때문에 다시 밝혀지게 되었다.그동안 장선명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마주할 수 없었던 과거들이었지만, 안지영이 건네준 사진을 보면서 장선명은 어느새 그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내려놓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지금 와서 과거의 일을 돌이켜보니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그 여자가 누구인지 얘기하라고요!”안지영이 화가 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러면서 장선명의 품에서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장선명은 여전히 안지영을 꾹 잡고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안지영의 앞에서 사진을 바로 불태워버렸다.“뭐, 뭐 하는 거예요!”안지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장선명은 불에 탄 사진을 그대로 재떨이 속으로 던져버렸다.담배를 피우는 장선명을 위해 안열이 준비해 둔 재떨이였다.안지영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그동안은 쓸모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주 유용했다.테이블 위의 사진은 다 재떨이 안으로 들어가 활활 타올랐다.안지영은 멍해서 물었다.“그렇게 변명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변명? 이건 다 지나간 일일 뿐이야.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다 잊었고. 뭐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생각도 안 나네.”“...잊었다고요?”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안열이 그러지 않았던가.장선명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고.사진 속의 여자들이 모두 비슷하게 생긴 걸 보면 장선명은 정말 그 여자를 아주 사랑한 것 같았다.그런데 그걸 잊다니.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그런 안지영의 모습을 본 장선명은 환하게 웃으면서 안지영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또 입술을 맞췄다.“읍... 아니, 읍...”‘미남계를 쓰겠다는 거야?’안지영은 약간 화가 났다. 원래 이런 건 그냥 두면 찝찝한 편이다. 사실을 알지 못하면 마음에 걸리니까 말이다.
사무실에 들어간 장선명은 안지영이 그를 등지고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이미 뒷모습에서부터 안지영의 화난 모습이 보였다.앞으로 다가가 의자를 돌린 장선명이 두 손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잡았다.그리고 웃는 눈으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안지영이 화가 나서 씩씩 대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더욱 환하게 웃었다.하지만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웃겨요?”“질투하는 거야?”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약간 놀랐다.“화 안 났어요. 난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에요.”“그래?”“...”질투냐고?안지영은 질투가 뭔지 몰랐다.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가 다른 여자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속이 좋지 않았다.생각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안지영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장선명이 안지영을 번쩍 안아 들고 의자에 앉은 것이었다.장선명은 웃음기 가득한 시선으로 안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안지영은 놀라서 허둥대면서 얘기했다.“이거 놔요!”하지만 장선명은 움직이는 안지영을 놔주지 않고 그대로 입술을 가져갔다.안지영이 버둥댈수록 장선명은 더욱 깊게 안지영의 입술을 머금었다.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결국 안지영이 숨을 쉬지 못하자 장선명이 안지영을 풀어주었다.안지영이 손을 들어 장선명의 뺨을 치려고 할 때, 장선명이 안지영의 손목을 잡고 웃으면서 물었다.“화났어?”“흥.”안지영은 화가 났다.그것도 단단히 화가 났다.안지영은 장선명이 점심 전에 도착한 것이 분명 그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안열이 알려줬을 테니까 말이다.그런데 와서 아무 해명도 하지 않고 입술부터 들이미니, 너무 미웠다.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을 보면서 짜증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오히려 속 편히 웃으면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마지막에는 한숨까지 푹 내쉬었다.“그렇게 화가 난 거야?”말을 마치고는 안지영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안지영은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오자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안지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안열을 바라봤다. 안열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어휴, 됐어요. 더 얘기해 봤자 짜증만 나요.”더 말했다간 정말 참지 못하고 화를 낼 것 같았다.나태웅에 대해 할 욕은 이틀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였다.“...”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안지영은 뾰로통해진 채로 안열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안열은 휙 돌아서 사무실을 나갔다.지금 안열의 머릿속에는 나태웅에 대한 욕뿐이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감히 또 안지영을 찾아오다니.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온 건지......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안지영은 아까 안열이 한 말을 떠올렸다.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평소에는 똑 부러지고 영리한 안지영이지만, 이번만큼은 안열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뻔뻔하다는 뜻이라면... 나태웅은 원래부터 그렇게 뻔뻔했다.하지만 이번은...안열은 복잡한 생각에 머리를 휙 털었다.그리고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원래는 장선면은 점심쯤에 안지영을 데리러 올 예정이었지만, 안지영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왔다.안지영의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장선명은 안열이 자리에 앉아 아이스팩을 발 위에 올려놓은 것을 발견했다.“다리는 왜 그래?”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안열은 깜짝 놀라 손에 쥔 아이스팩을 떨어뜨릴 뻔했다.장선명을 보자, 안열은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읏...!”하지만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묻는 장선명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안열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들었다.안열은 고개를 숙였다. 차마 나태웅 때문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해 그저 둘러댔다.“그냥... 실수로 넘어진 거예요.” “어떻게 넘어졌길래 거기만 그렇게 다치는 거야?” 장선명의 시선은 예리했다.보통 넘어진다면 무릎이 먼저 다치기 마련인데 안열은 무릎은 멀쩡하
나태웅은 믿을 구석 하나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태웅이 가져온 정보 때문에 안지영은 더욱 속이 복잡해졌다.안열은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약 좀 바르고 올게요.”그 말에 안지영은 생각이 끊겨버렸다.정신을 차린 안지영은 안열의 발등이 부어올랐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선명이 사랑하는 사람...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안열은 본 안지영은 결국 또 나태웅에게 화가 났다.“왜 이렇게 된 거예요. 정말 나태웅을 못 이기는 거예요?”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맞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밖에서 싸우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안열은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제가 만약 나태웅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면 진작 죽여버렸을 겁니다.”“...”진작 죽여버린다니.그 ‘진작’은 과연 언제일까?다시 생각해도 나태웅은 정말 독설만 퍼붓는 사람이었다. 안열을 볼 때마다 개라고 욕하니까 말이다.그래도 전에 동영 그룹에서 출근할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안지영은 우물쭈물하면서 안열에게 물었다.“두 사람, 전에도 안 좋은 사이였어요?”안열과 나태웅이 만날 때마다 안열은 대수롭지 않아 했고 나태웅은 화를 냈었다.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그렇게 물으면서 안지영이 구급상자를 가져와 상처를 처리해 주었다.안열이 거의 소리를 지르면서 얘기했다.“앗... 아파요... 아파...”“...”안열은 평소에 고통에도 끄떡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니 나태웅이 얼마나 아프게 때린 것인지 알 수 있었다.“제가 무슨 원한이 있겠어요! 한 것도 없는데...”“...”“굳이 꼽자면... 안 대표님 일로 원한이 있는 거죠.”“나요?”“네. 저는 안 대표님이 선명 도련님과 결혼하기를 바랐으니까요. 아마도 그것 때문에 저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요?”안열을 말을 들은 안지영은 약간 마음이 복잡했지만 또 본인의 선택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안열은 장선명의 부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