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나태웅은 동안에서 진정으로 인간의 온정과 냉정이 무엇인지 철저히 깨닫게 되었다.예전 강성에서 배씨 가문이 가장 냉정하고 무정한 곳이었다.하지만 동안에서 나태웅은 가장 연약한 친정이 무엇인지 완전히 깨달았다.안열의 처지가 한동안 나태웅을 정신 못 차리게 했다. 나태웅은 단지 안열을 이 시끄러운 곳에서 데려가 이 사람들과 더 이상 얽히지 않게 하고 싶었다.하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을 겪은 후 그때 사건을 명확히 밝히지 않으면 안열이 동안을 떠나 행복하게 사는 건 전혀 불가능한 걸 나태웅은 이제 완전히 깨달았다. “조사해. 제대로 조사해 봐!”나태웅이 냉랭하게 한 글자 한 글자를 말했다.안열이 말하길 안이연의 일은 자신과 상관없다고 했으니 나태웅은 자연히 믿게 되었다.그렇다면 안이연을 죽인 진짜 범인을 찾아내어 그 증거를 홉스에게 제대로 보여주기로 결심했다.진이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나태웅이 아픈 미간을 문지르며 말했다. “출발 준비해.”“네.”나태웅은 더 이상 동안에 머물 수 없었다. 만약 여기 머문다면 홉스의 사람들이 반드시 나태웅을 계속 감시할 것이고 옛날 일을 조사하려면 쉽지 않을 것이다. 나태웅이 떠나야만 홉스가 완전히 마음을 놓게 된다.나태웅이 출발하라고 말하자 진이훈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네!”“그리고 안열의 외할머니도 잘 찾아.”도대체 어디로 끌려갔는지 확인해야 한다.진이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찾고 있어요.”。하지만 이 일은 홉스가 한 짓이기에 지금 사람을 찾는 건 쉽지 않다.안이연이 홉스의 마음을 전부 차지하고 있었다. 지금 홉스가 안열이가 안이연을 죽였다고 확신하고 있으니 이 일들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안열의 남은 삶은 반드시 힘들다.한 시간 후.안열은 창백한 얼굴로 수술실에서 밀려 나왔고 아직 마취가 덜 깨어 정신은 흐릿했다.간호사는 안열의 휠체어를 디예에게 건네며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전달했다. 디예는 바로 안열을 휠체어에 태워 병실로 이동했다.안열이 침대에 눕자 디예
나태웅은 항상 안열을 혼자 여기 두고 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동안 사람에서 안열에게 호의적인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모두가 해치고자 했다.이런 상황에서 나태웅은 안열을 여기 그냥 두고 마음 편히 있을 수 없었다.“진이훈.”“네.”“항로 취소해!” 나태웅이 냉정하게 네 글자를 뱉었다. 나태웅의 휴대폰에는 이미 안열의 번호가 떴지만 상대방은 받지 않았다.안열이 공항을 떠난 후 반드시 홉스를 만나러 갈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전화를 받지 않으니....나태웅의 불안한 감정은 점점 더 짙어졌다.진이훈은 나태웅이 항로 취소한다고 하자 긴장됐다. “대표님, 이건 적절하지 않아요.”“뭐가?”“여기 있는 우리 사람들은 거의 공개적으로 활동하고 있어서 홉스와 정면으로 맞설 힘이 없어요.”나태웅이 항로 취소를 말한 것을 듣고 진이훈은 자연스레 무엇을 하려는지 알았다.지금 나태웅이 안열때문에 이렇게 마음을 쓰는 게 조금 안타까웠다.나태웅이 깊게 숨을 들이쉬며 눈빛이 어두워졌다. 진이훈의 말은 지금 상황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했다.나태웅이 안열을 데려가려 했던 순간부터 홉스는 이미 그들의 다음 계획을 장악하고 있었다. 모든 계획을 빠짐없이 상대 앞에 드러내는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대표님이 안열 씨를 구하려는 건 알지만 지금은 좀 더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처리해야 해요.”홉스와 정면으로 맞붙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나태웅이 숨을 깊게 들이켰다.안열이 돌아온 후 얼굴 부기가 거의 가시지 않은 것을 떠올리면 나태웅은 이를 갈듯이 화가 났다.‘도대체 어떻게 참아왔단 말이야? 반격할 줄 몰라? 왜 그 사람들에게 맞기만 해?’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화는 더 치밀어 올랐다.“먼저 돌아가고 그다음 방법을 생각해요.” 전이훈이 권했다.나태웅이 동안에 있는 동안 이미 홉스를 화나게 했다는 것을 전이훈도 이제는 깨달았다. 이 시점에서는 떠나는 게 더 나았다.。나태웅이 깊게 숨을 들이쉬고 마음을 억누르며 참았다. 그리고 말하지 않았다. 분명 이때 떠
안열은 디예에게 강제로 차에 태워졌다. 반항했지만 도무지 빠져나올 수 없었다. 차에 앉아 창밖의 흩날리는 눈발을 바라보며 안열은 비웃듯 말했다.“동안은 몇 년 동안 눈이 내리지 않았어요.”디예는 안열의 옆에 앉아 있었고 앞쪽에는 경호원과 운전사가 있었다. 안열이 도망치지 못하게 하기 위한 조치였다. 안열의 말을 들었지만 디예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차는 곧 로먼 가문 산하 병원에 도착했다. 디예가 먼저 차에서 내려 공손히 문 앞에 섰다.“이서 아가씨.”차 문이 열리는 순간 안열은 병원 특유의 냄새를 맡았다. 그 냄새는 숨 막히게 만들었다. 안열은 차에서 움직이지 않았다.“이서 아가씨?” 안열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고 그저 말없이 앉아 있었다.누구도 지금 안열 무슨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다. 디예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절망과 고통이 가득했다.안열의 눈빛을 본 디예는 가슴이 강하게 흔들렸다. 그러나 순식간에 고개를 숙였다.“이서 아가씨, 여기서 오래 지체하지 마세요. 내려주세요.”“디예 씨,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없어요.” 디예가 고개를 저었다.‘없었네. 없었던 거구나.’안열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그동안 그 사람의 곁에 다른 사람이 나타났어요?”홉스를 묻는 거였다. 디예는 고개를 저었다.“없었어요.”‘없다니. 그러니까 홉스는 정말로 한 사람에게만 충실한 사람이었네. 안이연이 홉스의 마음속에서 절대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어. 그렇다면 안이연을 위해 어떤 미친 짓도 할 수 있지.’“이서 아가씨, 먼저 차에서 내려주세요. 여기 추워요.”“그래요. 여기는 춥네요. 정말 추워요.” 안열은 가슴의 싸늘함을 느끼며 말했다.안열은 두 손바닥으로 배 위의 옷을 꼭 움켜쥐었다.그렇게 오래 지켜온 아이인데 결국...홉스가 도대체 무슨 자격이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떤 자격을 갖고 있든 지금 이 아이는 지켜낼 수 없다. 홉스가 미웠다. 그동안 안열은 홉스 때문에 밖에서 떠돌았지만 원망하지 않았다.왜냐하면 어차피
참 가혹한 말이었다.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안열은 아이의 친부를 경계하며 온갖 방식으로 숨기려 했다.그때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배 속의 아이는 자기 것이니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홉스의 한마디 말에 안열은 애석하게 느꼈다.“내 아이인데 내가 결정 못 해요?”“너는 엄마가 될 자격이 없어.” 홉스는 한 글자 한 글자 내뱉었다. 안열은 침묵했다.휴게실의 공기가 다시 얼어붙었다. 안열은 숨이 막히듯 홉스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엄마가 될 자격이 없다니? 그렇게 말하다니...’이곳이 바로 동안이었다. 말할 권리 따윈 애초에 없었다. 어릴 적에도 다 자란 지금에도.홉스는 안열의 눈가에 고인 눈물을 보고 마음은 더 차갑고 더 단단해졌다.“이연이 죽을 때 엄마라는 감정을 전혀 알지 못했을 거야.”안이연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 홉스가 안열에게 하는 모든 일은 안이연 때문이었다. 엄마가 되는 감정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으니 안열도 그럴 수 없다.참으로 우스운 논리이다.“내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난 안이연을 해치지 않았어요. 해칠 이유가 없어요.”안열은 거의 절규했다. 순간, 온몸이 무너져 내릴 듯 피로가 몰려왔다.‘왜 믿어주지 않는 걸까? 정말로 안이연을 해치지 않았어.’안열이 죽일 이유가 없다고 말하핮 홉스는 냉소적인 웃음을 터뜨렸다.“이유가 없다고?”안열은 침묵했다.“그럼 그 일기장은 어떻게 설명할 거야?”일기 그 단어가 나오자 안열의 얼굴은 순식간에 핏기가 사라졌다.맞다. 일기였다. 자신의 청춘과 마음의 변화를 고스란히 담아낸 기록이다.“내 마음의 팔, 구십 퍼센트를 적어놓은 일기를 보고도 이유가 없다고?”“맞아요. 내가 눈이 멀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해치고 싶었던 건 아니에요!”눈이 멀었다는 말이 홉스의 눈빛을 더욱 잔혹하게 만들었다.안열은 홉스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게다가 그 일기는 당신과 안이연이 약혼하기 반년 전에 멈췄어요. 그게 뭘 의미하
안열은 그 말에 온몸이 떨렸다. 특히 홉스의 입에서 흘러나온 대가라는 두 글자를 들은 순간 이번 일은 결코 쉽게 넘어갈 수 없다는 걸 직감했다. 하지만 안열은 자비를 구하지 않았다.홉스는 안열이 아무 대꾸도 하지 않자 손짓했다. 곧 디예가 알아차리고 나갔다. 잠시 후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몇 명 들어왔다.홉스는 손에 들고 있던 시가를 꺼트리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너 임신했지?”비록 질문이지만 홉스의 어조는 이미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열의 굳건하던 표정이 그제야 미묘하게 굳어졌다. 부정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았다.홉스가 이렇게 물으면 이미 확실한 정보를 쥐고 있다는 뜻이었다.안열이 침묵하자 홉스의 입가에 싸늘한 웃음이 번졌다.“검사해 봐.”“뭐 하려는 거예요?”안열이 숨 막히듯 입을 열었다. “이서야, 대체 누가 너한테 그런 배짱을 준 거지야?”휴게실 안은 고요해졌다. 오직 홉스의 몸에서만 짙은 위험이 감돌았다. 안열의 가슴은 격렬히 뛰었다.홉스의 위협적인 목소리를 듣고 안열은 자신이 지금 무엇과 맞서고 있는지 정확히 깨달았다. 홉스는 분명 이 아이를 절대로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날 건드릴 수 없어요.”안열이 숨 가쁘게 내뱉었다. 안열의 말에 홉스의 눈빛이 매섭게 가늘어졌다. 손짓 하나에 의사들이 곧장 안열을 향했다.몸이 잔뜩 경직된 안열은 눈을 감은 홉스를 노려보며 말했다.“이러면 안 된다고 말했잖아요. 안 들려요?”홉스는 침묵했다.“무슨 자격으로 내 인생을 결정해요?”의사 중 한 명이 이미 안열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분노에 찬 안열은 손을 확 뿌리치며 소리쳤다.“놔!”곁에 있던 디예가 싸늘하게 말했다.“이서 아가씨, 차라리 얌전히 계시는 게 나을 거예요. 안 그러면 다치실 거예요.”하지만 안열이 순순히 있을 리 없었다. 안열은 한 의사의 복부를 정확히 가격했다. 그제야 홉스는 눈을 떴다. 그의 시선은 잔혹함만 남아있었다.“다쳐도 괜찮아.”차갑고 단호한 목소리였다. 지금 홉스가 원하는 건 단지 안열의 뱃
분명 주위는 눈 부신 햇살로 가득했지만 정작 나태웅은 단 한 점의 온기도 느낄 수 없었다.그 순간 나태웅은 다시 한번 안열에게서 무력함이란 게 무엇인지 알았다.안지영은 자신이 놓쳐버린 사람이었다. 그래서 안열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모든 걸 드러내며 자신의 마음을 알렸다.하지만 일이 이렇게까지 될 줄은 누가 알았을까?나태웅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 부은 안열의 뺨을 손끝으로 어루만지며 냉랭하게 단어 하나하나를 내뱉었다.“몸 잘 지켜. 다시는 그들이 널 때리게 두지 마. 응?”지금 이 순간 나태웅이 동안을 송두리째 불태워버리고 싶은 심정이라는 걸 아무도 모를 것이다.안열이 장선명 곁에 있을 때 나태웅은 늘 그녀를 장선명의 개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안열이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한 여자라는 걸 나태웅은 알고 있었다. 설사 개라 불린다 해도 절대적인 존엄을 지닌 개였다.“알았어요.”안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안열은 떠났다.디예는 이미 계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안열이 비행기에서 내리자 디예는 공손히 다가와 말했다.“이서 아가씨, 가시죠.”안열은 언제나 그랬다. 안열이 돌아온 이후 마치 디예의 세계에서는 어떤 일도 파문조차 일으킬 수 없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늘 똑같은 표정이었다.안열은 싸늘하게 디예를 노려보았고 그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디예 혼자서 자신을 데리러 온 줄 알았다. 그러나 뜻밖에도 홉스도 함께 와 있었다.공항 귀빈실.발을 들여놓자마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서늘함이 엄습했다.난방은 충분히 틀어져 있었지만 안열은 오직 한기만을 느꼈다.홉스가 내뿜는 기운이 얼마나 사람을 압도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홉스는 한 손에는 신문, 다른 한 손에는 시가를 들고 있었다.기척을 들은 홉스는 고개조차 들지 않은 채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리 와.”안열은 움직이지 않았다. 뒤따라 들어온 디예가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홉스는 늘 시간을 어기는 것을 혐오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늘, 어떤 원인이든지 안열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