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이미 비사가 한바탕 휘젓고 간 뒤라 렌이 예민해져 있는 상태인데, 가란이 과거에 야츠키를 다치게 해서 생포해 오는 바람에...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살벌한 말다툼이 아주 그냥 살얼음판 같아서 쓰는 저도 덜덜 떨리네요. 참고로 벽류진 무사들 중에서 우리 렌이 나이는 가장 어리고, 리더인 테츠잔을 제외한 나머지 대원들은 다들 비슷한 또래랍니다. 그래서 평소 다 같이 모여 회의할 때는 반듯하게 존댓말을 쓰지만, 이렇게 1대 1 상황에서 자신의 강력한 의견을 거침없이 어필해야 할 때는 자연스럽게 반말이 튀어나오곤 해요. 그런 디테일한 성격 차이에서 오는 묘한 긴장감도 관전 포인트랍니다. 다음 회차가 몹시 궁금하시다면 구독과 함께 다음 장도 꼭꼭 함께해 주세요!
제 48화 도깨비의 탄생의 진실영주 거처의 참화는 여전히 매캐한 잿내를 뿜어내며 폐허의 전경을 드러내고 있었다. 불에 탄 목재가 타다 남은 검은 뼈대 사이로 스산한 바람이 휘몰아쳤다. 신지로와 가란 그리고 엄선된 세 명의 전령은 무너진 기와집의 잔해를 하나하나 걷어내며 흔적을 찾고 있었다. 뼈대만 남은 무거운 서까래를 들어 올리던 전령 중 하나가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멈칫하며 신지로를 급히 불렀다."신지로 님, 이쪽을 봐주십시오... 바닥이 어딘가 이상합니다."전령이 가리킨 곳은 화마를 처절하게 겪고도 기이할 정도로 온전하게 보존된 거대한 돌문이었다. 주변의 모든 것이 재로 변했음에도 그 문만은 세월의 때와 음산한 기운을 그대로 머금고 있었다. 가란이 무거운 팔로 문을 밀어젖히자, 퀴퀴하고 낡은 종이 냄새가 훅 끼쳐왔다. 그것은 오랜 세월 외부와 차단된 지하 비밀 서고의 냄새였다. 그 안에는 쿠로기리가 남긴 수백 년의 방대한 기록이 어둠 속에서 잠들어 있었다.신지로는 떨리는 손으로 횃불을 높이 들고 가죽 장정의 낡은 일기장을 펼쳤다. 책장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그동안 그들이 겪어왔던 도깨비들의 정체와 파편들이 퍼즐처럼 끔찍하게 맞춰지기 시작했다.인간과 도깨비가 지상을 두고 핏빛 전쟁을 벌인 끝에 항복을 받아내기까지 무려 150년이 걸렸다. 그리고 그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시작부터 끝까지, 어둠 속에서 인간의 파멸을 비웃으며 살아남은 자가 바로 오백 년을 넘게 살아온 쿠로기리였다.일기장의 갈피마다 기록된 지상의 역사는 충격적이었다. 쿠로기리가 태어났을 무렵의 지상에는 오직 인간들만이 번성해 있었고, 지하에는 무리도 짓지 못한 채 뿔뿔이 흩어져 서로를 물어뜯던 몇 안 되는 원시적인 도깨비들만 살아가고 있었다. 놈들은 서로를 갉아먹다 우연히 지상이라는 신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밤의 어둠을 틈타 몇 명씩 기어올라와 인간을 사냥하기 시작했다.인간의 살과 피가 지고의 맛이라는 것을 깨달은 도깨비들의 밤마실은 갈수록 대담해졌고, 그
제 47화 재(灰) 위에 남겨진 진실벽류진의 의무실은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짙은 그늘이 내려앉아 있었다. 신지로는 익숙한 손길로 약재를 섞으며 회진을 시작했다. 그의 발걸음은 긴 전쟁사의 기록을 쫓는 연구자의 그것처럼 침착했으나, 내면에서는 수만 가지 가설이 뒤섞여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테츠잔과 유우의 빈자리가 의무실 전체의 무게를 바꿔놓은 듯했다.가장 먼저 야츠키의 곁에 멈춰 섰다. 재생은 더디지만 확실했다. 그 옆, 의식을 잃고 잠든 미츠키의 상태를 살핀 뒤, 그는 시온의 침상으로 향했다. 시온은 눈을 뜰 수 없음에도 신지로의 기척을 정확히 짚어냈다."신지로.""시온."신지로는 시온의 곁에 놓인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시온은 옅은 쓴웃음을 지었다. 보이지 않는 눈이 허공을 향했다."이제….무사로서는 끝이군.... 은퇴해야겠어. 다른 녀석들은 어떤가?.. 야츠키는... 아직도 상태가 안 좋은가?"신지로는 묵묵히 시온의 펄스를 짚었다. "야츠키는 살아있다. 모두 제 몫을 다했어. 오히려 의료라는 핑계로 최전선을 지켜보기만 했던 내가 면목이 없을 뿐이다. 시온, 너는 무사로서 할 일을 다했다.""아니. 전투원으로서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만 된 것 같아 찜찜하군.""그런 소리 마라. 네가 버텨준 덕분에 우리가 틈을 파고들며 움직일 수 있었던 거야."신지로는 특유의 무뚝뚝한 말투로 시온의 마음을 다독였다. 이어 그는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쿠로기리는 야츠키의 요기가 깃든 공격에 재생력을 잃었다. 그 틈을 타 마무리를 지었지. 하지만 이 모든 걸 감추기엔 상황이 너무 복잡해. 쿠로기리가 죽어간 그 영주 거처에 다시 가볼 생각이다. 뭔가 우리가 놓친 근거가 있을 거야."시온은 더 묻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회진의 마지막은 렌과 가란이었다. 둘의 몸은 만신창이였으나, 도깨비 사냥꾼 특유의 경이로운 회복력으로 상처는 눈에 띄게 아물고 있었다. 신지로는 가란의 어깨를 짚으며 상태를 확인했다."너희라도 멀쩡해서 다행이군.
제 46화 침묵의 무게, 무너진 계단벽류진의 성역, 외부와는 철저히 단절된 8인 정예만의 공간. 그곳에 위치한 의무실의 공기는 마치 멈춰버린 시간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렌이 조심스럽게 야츠키를 침상에 내려놓았다. 야츠키의 몸은 쿠로기리와의 격전으로 인해 끔찍하게 찢기고 파여 있었으나 그녀는 깊은 수면 속에서 미세하게 꿈틀거리며 스스로를 재구성하고 있었다.신지로는 전쟁사를 온몸으로 겪어온 의사이자 연구자였다. 그는 야츠키의 상처를 면밀히 살폈다. 도깨비의 재생력치고는 처참할 정도로 느린 속도였다. 일반적인 도깨비라면 벌써 아물었을 상처들이, 그녀의 몸 위에서는 마치 죽어가는 짐승의 흉터처럼 더디게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이를 악문 신지로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도깨비로서의 본능이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야츠키에게 자신의 육체를 빠르게 재구성하는 것은 아직 너무나도 먼 이야기였다. 신지로는 떨리는 손으로 야츠키의 환부를 핀셋으로 건드리며, 도깨비의 세포가 어떻게 인간의 살점과 뒤섞여 기이한 재생을 시작하는지 기록했다. 150년 동안 축적된 방대한 의학 기록물들과 비교해 봐도, 그녀의 재생 양상은 기존의 어떤 사례와도 일치하지 않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지로는 야츠키의 살점이 조금씩 서로를 끌어당기며 붙어가는 모습을 보며, 가슴 깊은 곳에서 일렁이는 일말의 안도감을 느꼈다.'다행이다... 재생은 되고 있어. 비록 느리지만, 죽지는 않았다는 증거야.'하지만 그 안도는 오래가지 않았다. 의무실은 오직 신지로가 다루는 약품 냄새와 동료들의 얕은 숨소리만이 가득했다. 신지로는 메스를 잡는 방법을 알고나서부턴 도깨비를 해부하고, 그들의 생태를 분석해 온 연구자로서 눈앞의 광경을 그저 ‘회복’이나 ‘상해’라는 단순한 단어로 치부할 수 없었다. 의무실 탁자 위에는 테츠잔이 평소 즐겨 읽던 병법서와 유우가 손질하던 보조용 단검이 놓여 있었다. 주인 잃은 물건들이 뿜어내는 정적은 그 어떤 비명보다 더 날카롭게 생존자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렌은 벽 한구석에 서서
제 45화 멸살(滅殺)의 끝과 남겨진 재(灰)영주들의 거처는 멸망한 왕국 그 자체였다. 쿠로기리의 요기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모든 것이 썩어 문드러져 있었다. 고풍스럽던 기와지붕은 독기에 부식되어 뼈대만 앙상하게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고, 그들을 보호하던 높고 견고했던 돌담은 이제 승자의 시신을 감추어줄 무덤의 벽처럼 무너져 내린 상태였다. 한때 영주들이 거닐며 담소를 나누었을 정원은 독기에 짓눌려 형체도 없이 뭉개졌고, 그곳에 피어있던 꽃들은 모두 검게 타 죽어 재가 되어 흩날리고 있었다.전투가 끝난 자리에는 승리자의 환희 대신 기괴할 정도의 침묵만이 감돌았다. 렌은 각성의 여파로 깊은 잠에 빠져든 야츠키를 품에 안은 채, 더는 한 발자국도 옮길 힘이 없어 무너진 담벼락에 기대어 있었다. 그의 온몸은 쿠로기리와의 격전으로 인해 찢기고 파여 있었고, 뼈가 드러날 정도의 상처에서는 쉴 새 없이 검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가란은 부서진 도끼자루를 지팡이 삼아 짓이겨진 어깨를 틀어막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으나, 그마저도 핏물에 젖어 온몸이 후들거리고 있었다.신지로는 의식 없는 미츠키와 양 눈을 다쳐 허공을 더듬는 시온의 곁을 지키며, 자신의 마지막 남은 기력을 짜내 그들의 맥박을 확인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들은 시신을 수습할 힘은커녕, 스스로 영주 거처의 높은 돌담 밖으로 나갈 기력조차 없는 절망적인 상태였다. 8인의 정예 중 가장 강했던 테츠잔과, 뛰어난 지략으로 판을 짜던 전략가 유우는 이미 현장에서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신지로는 무너진 천장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읊조렸다."우리가... 끝까지 버텼어야 했는데."그것은 자책이자, 돌아갈 곳조차 잃어버린 자들의 처절한 탄식이었다. 그때였다. 무너진 영주 거처의 정문 너머로, 숲을 헤치고 그림자 같은 인영들이 나타났다. 벽류진의 일반 무사들이라면 결코 접근할 수 없는, 철저히 금기시된 공간. 그곳에 낯선 5명의 무리가 아무런 인기척도 없이 나타난 것이다.그들은 테츠잔의 전령 담
제 44화 裂(열) - 닿지 않는 환영과 끊어진 재생쿠로기리의 등 뒤에서 돋아난 가시들이 공기를 찢으며 야츠키의 복부를 꿰뚫었다. 야츠키는 비명 대신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쿠로기리를 노려보며, 자신의 배를 뚫고 나온 가시를 제 손으로 붙잡아 뜯어냈다. 살점이 뜯겨 나가는 소리가 마당에 울렸다."크큭, 도깨비의 혈통이라 이건가? 끈질기군."쿠로기리가 야츠키의 왼쪽 팔을 덥석 잡아 단숨에 꺾어버렸다.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둔탁하게 들렸지만, 야츠키의 보랏빛 요기가 뱀처럼 감겨들자 끊어진 신경과 근육이 실타래처럼 엉키며 순식간에 붙어재생되었다. 그러나 쿠로기리의 발길질이 야츠키의 가슴팍에 내리꽂혔고, 그녀는 먼지를 일으키며 바닥을 굴러 나뒹굴었다.쿠로기리가 기괴한 고속이동으로 순식간에 야츠키의 앞에 나타났다. 머리통을 짓이겨버리려 주먹을 내리꽂으려던 순간이었다.피잉-신지로의 손에서 날아간 은빛 침이 쿠로기리의 관자놀이를 스쳤다. 독이 묻은 은침이 피부에 박히자 쿠로기리의 움직임이 찰나, 멈칫했다."지금이다!"그 틈을 놓칠 리 없는 벽류진의 무사들이 움직였다. 칼 한 자루만 남은 렌과 부식된 도끼날을 쥔 가란이 쿠로기리의 양쪽 옆구리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무사들의 일격이 괴물의 옆구리에 깊숙이 박혔다. 검신이 박힌 자리를 타고 검은 피가 솟구쳤다."이 벌레 같은 인간들이... 신성한 도깨비들의 싸움에 감히 끼어들어?"쿠로기리가 광기 어린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단순한 안개가 아니었다. 생존의 위협을 느낀 도깨비가 토해내는 최후의 발악, 썩은 살점의 냄새를 머금은 부식의 안개였다.그 안개는 시온의 참월도가 휘둘러진 궤적을 타고 그의 양 눈 속으로 파고들었다."아아악-!"시온이 비명을 지르며 두 눈을 감싸 쥐고 주저앉았다. 단순한 고통이 아니었다. 환청이 들리고, 뇌를 뒤흔드는 환영이 보였다. 눈앞에 나타난 것은 핏빛 안개 속에서 옷을 전부 벗은 채, 요염한 자태로 자신을 유혹하는 야츠키의 모습이
제 43화 야츠키 (夜月)"...야츠키...?"신지로는 넋을 잃은 채 야츠키를 바라보았다. 그가 알던 야츠키는 늘 미츠키의 곁에서 작게 숨을 죽이거나, 가냘픈 손길로 꽃잎을 틔워 방어막을 치던 연약한 소녀였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서 있는 존재는 그가 알던 야츠키가 아니었다.그녀의 몸을 휘감은 것은,반영체적인 요기가 비정상적인 보랏빛으로 소용돌이치며 그녀의 주변을 결계처럼 에워쌌다. 공중으로 흩날리던 그 아름답던 분홍색, 빨간색 꽃잎들은 더 이상 미관을 위한 장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죽음을 머금은 듯 시커먼 검은색으로 물들어가며 허공에서 기괴하게 개화하고 있었다. 야츠키의 사슴처럼 맑았던 눈동자는 이제 핏빛보다 더 진한 붉은색으로 타오르고 있었고, 부드러웠던 손끝은 날카로운 짐승의 발톱처럼 길게 돋아나 있었다. 신지로는 그녀의 뺨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눈물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요기의 압박에 온몸이 얼어붙었다.야츠키가 한 발자국을 내디딜 때마다, 마당을 지배하던 쿠로기리의 퀘퀘하고 먹구름처럼 무거운 독기 안개가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다. 마치 썩은 늪에 정화의 불길이 번지는 것과 같았다.구석에서 어깨가 찢긴 채 한쪽 무릎을 꿇고 있던 시온, 그리고 가란과 렌 역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렌의 이도류는 반쯤 바스라졌고, 가란의 도끼는 녹이 슬어 흉측하게 변해 있었다. 죽음의 문턱까지 내몰렸던 무사들이었지만 지금 야츠키가 뿜어내는 기세에 눌려 검자루를 꽉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오, 도깨비 아가씨. 아까랑은 분위기가 좀 달라졌는데?"쿠로기리가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며 웃었다. 야츠키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허공을 밟으며 마치 바람을 걷는 듯한 모습으로 쿠로기리를 향해 다가갔다. 그 움직임은 인간의 신체 능력을 아득히 상회하고 있었다."야츠키님...!" 렌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려다 멈칫했다."야츠키!" 시온과 가란의 목소리에도 그녀는 오로지 정면의 괴물만을 응시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