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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형과 동갑이며, 자신이 다니는 학교의 계약직.
허술하고 맹해 보이는데, 어딘가 예리한 구석도 보이는 여자. 평범하고 흔하게 널린 인간과 다른 자신을 보며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여자.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휩쓸려 있는 여자.
「 별다른 방법이 없으면 이렇게 하자. 내가 처신 잘할 테니까, 괜히 집에 알려서 혼나지 마. 」
여러모로 혼란스럽다.
"뭐? 진짜 그렇게 말했다고?"
"그래." "그 누님 대단하네. 혼란스러울 법한데… 네 걱정까지 해주네?"
설민재의 말에 입을 꾹 닫았다.
'걱정'. 하이담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걱정'이란 것인가?
"그런 의미는 아닐 거야. 분명 귀찮아서 그런 걸어지고."
애써 부정하는 모습에 설민재는 대꾸 대신 웃음을 꾹 참으며 생각보다 초조한 얼굴을 하며 고뇌하는 설태하를 지긋이 바라봤다.
"그렇지만 역시 그 누님 말대로 보고는 미루는 게 어때?"
"뭐?" "솔직히 집안에서 어떻게 나올지 너도 모르니까 이러고 있는 거잖아." 그 말 그대로였다. 집안 관리자인 그 영감탱이가 기억을 지우는 것이, 세뇌하는 것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보고 한다면 하이담에게 무슨 짓을 할지 예상되는 바가 하나도 없기에 쉬이 보고를 올릴 수가 없었다.
게다가 순전히 자신의 오해로 인해 이 모든 상황이 생겼으니 더욱더.
"야, 태하야."
"뭐." "이왕 이렇게 된 거… 잘 지내보는 건 어떠냐?" "뭐?" "내가 봤을 땐, 그 누님 예사 누님이 아닌 거 같아. 너랑 잘 맞을 거 같아." "시끄러워, 그런 멍청이랑 뭐가 잘 맞는다는 거야." "그래. 그 거지. 너도 멍청이잖아." "죽고 싶냐?"
그르렁거리는 설태하의 모습에 배를 잡고 깔깔거리며 뒹굴던 설민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자세를 고쳐 앉고 꽤 진지하고 인자한 표정을 하며 설태하와 시선을 맞췄다.
"하지만 짐승의 모습인 너를 보고도 열이 나서 걱정했다며. 부모도 못 하는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한 건데… 좋은 사람일 게 분명하잖아."
꽤 부드럽게 타이르고 이해하기 쉽게 말한 것 같은데 미간이 눈에 띄게 도드라진 설태하는 아무런 대꾸 없이 한참 동안 의아한 표정을 하는 설민재를 바라봤다.
"너 그 표정 재수 없어. 하지 마."
* * *
다행히도 그렇게 설태하와의 만남을 끝내고 돌아오자, 직원들은 교수들의 말에 어지간히도 시달린 건지 영혼이 나간 것처럼 각자의 자리에 앉았고, 곳곳에서 한숨 소리가 픽픽 들리는 것에 괜히 눈치가 보인 하이담이 서둘러 일을 정리하고 슬쩍 빠져나왔다.
계약직의 좋은 점은 정직원보다 퇴근이 빠른 점, 칼퇴근해도 뭐라 하지 않는 점이랄까? 내심 업무도 다 끝내고 자신을 지독히도 괴롭히는 권 주임에게 잔소리를 듣기 전에 탈출했다는 해방감에 한결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출근 때와는 달리 조금 정돈된 집에 괜히 설태하가 떠올라 머리를 긁적였다.
"에이, 설마."
자신의 착각이겠지.
모든 피곤함을 씻어내고 침대에 몸을 내동댕이치듯 던져 눈을 질끈 감았다가 코로 훅 들어온 낯선 냄새에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그리고 그 냄새의 주인이 설태하라는 것을 떠올리고는 잘게 한숨을 쉬고 다시 누워 지끈거리는 머릿속을 정리했다. 사람인데, 사람이 아닌 사람. 세상에 이런 일이 있다니. 정말로 TV에 나오는 것으로 모자라 어디 기관의 연구 대상이 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현실적이지 못한 상황이 다름 아닌 자신의 눈앞에서 일어났다는 게 다시 생각해도 믿어지지 않았다.
"내가 여기저기 떠들어대도 바로 미친년 취급할 텐데."
심하면 정신병동에 가둘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자, 몸이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는 무엇이 그리 걱정인지 심란해 보이는 그 얼굴이 괜히 걱정되어 별 신경 쓰지 말라는 듯이 말했지만 막상 잘 먹혔는지는 모르겠다.
'무엇보다 설이현의 동생이 그런 상태라면 설이현도?'
떠오른 설이현과 설태하의 이미지는 사뭇 달랐다. 딱 봐도 성격은 달라 보였고… 그리고 그때 경호원이 설태하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아마 집안에서의 입지도 조금 다르지 않을까 싶었다.
"설마, 가정폭력…? 아니지, 너무 갔어."
설이현보다 키도 크고 덩치도 있어 보였는데 가정폭력은 잘 상상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 몸에 상처가 없다는 것을 두 눈으로 보지 않았나? 괜히 아침의 모습이 떠오르자, 얼굴에 열이 올라 이불을 코밑까지 당겨 그 모습을 애써 지우려 손사래를 쳤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실컷 만지기라도 할 걸."
설태하가 하이담을 빤히 바라보다 웃음을 꾹 참고 손을 놓으며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뭐, 됐어. 그런 놈 한둘도 아니고… 신경 안 쓰니까.""또 있어!?""있어. 짜증 나는 녀석.""괜찮은 거야?""괜찮아. 이거나 먹어."아무렇지 않게 자기 접시 위에 놓인 음식을 하이담의 입으로 넣어주는 모습에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윤채린은 더욱 정신이 혼미했다. 분명 겉모습은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설태하가 맞는데… 지금 저 하이담을 대하는 설태하의 모습은 두 눈으로 봐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낯설었다.'어… 음…."가게를 나와 둘 사이에 서게 된 하이담이 눈치를 슬쩍 보는데도 설태하는 아무렇지 않게 더 이상 볼일 없다는 듯이 하이담의 팔을 강하게 잡아끌었다. 그 모습에 괜히 오기가 생긴 윤채린이 하이담의 반대 손을 잡아 세웠다.이 어린애들 사이에 끼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머리가 지끈지끈 울렸다."언니, 나 태하랑 이야기할 게 많은데… 자리 좀 비켜주면 안 돼요?""아."그 말에 설태하가 매서운 눈빛으로 윤채린을 쏘아보며 하이담의 팔이 끊어질 듯 강하게 잡았다. 하이담이 쓸데없는 오지랖과 판단으로 자리를 마련하기 전에 먼저 자리를 옮기려고 했지만, 하이담은 이미 판단을 끝마친 건지 단호하게 설태하의 행동을 멈추게 했다."하이―.""미안한데, 안될 거 같아.""담?""네?""애가 이렇게 싫어하는데… 억지로는 좀… 나도 별로 안 내키고."미안함이 담긴 미소를 짓고 있지만 단호하게 거
"그… 내가 낄 분위기가 아니라서…? 친구랑 놀아?""장난해? 너 만나러 온 거라고. 쟨 우연히 만난 거야. 볼 일 없어.""야!! 설태하!""친구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돼. 너 친구도 별로 없으면서.""아~!! 그런 말이 아니잖아!!"설태하와 투덕거리는 하이담을 보며 입을 꾹 닫던 윤채린과 눈이 마주쳐 어색하게 웃어 보이자, 윤채린이 싱긋 웃으며 인사를 했다. 아무리 설태하가 볼일이 없다고 한들, 어린 시절 굉장히 따르고 좋아했다던 아이지 않나…. 왜인지는 언뜻 봐도 이해할 수 있었다.굉장히 반짝반짝하고 성격도 좋아 보였으며 귀여웠다.'역시 또래를 만나야지.'인정하기 싫었지만 역시 자신보다는 윤채린 쪽이 설태하와 훨씬 잘 어울렸고 자연스러웠다."설태하…! 얘기 좀…!""아, 그럼 같이… 그, 친구도 같이 밥 먹을래?""아!! 무슨!!""그럴까요!?""진짜 미쳤냐!?"* * *자신의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지금 설태하의 옆에 앉은 하이담은 분명 설이현의 옆에 있던 여자와 동일 인물이다. 설이현을 혐오하고 있는 설태하가 어째서 설이현과 함께 있는 하이담과 함께 있는지, 옆에 착 달라붙어 어울리지도 않는 행동을 하는지 눈으로 보고도 이해할 수 없었다.아니, 어쩌면 이해하고 싶지 않을 걸지도 모르겠다."이거 먹어. 흘리지 말고."하이담과 형제들의 관계가 궁금했다. 분명, 이 지지리 말도 듣지 않고 고집만 센 형제들과 무슨
"그러니까 내가 말했잖아.""주어를 먼저 말하라고! 주어를!!""아니, 알려줘도 난리네 진짜. 그래서 뭐!! 문제 생긴 건 없잖아!!"나름대로 억울한 설민재가 소리를 꽥꽥 지르며 설태하의 등짝을 때리자, 생각보다 거센 반항에 설태하가 질 수 없다는 듯이 설민재의 옷가지를 뜯으며 유치하게 다퉜다."…… 그래서 어때?""뭐.""네 마음!""뭘.""아직도 윤채린이를 보면 콩닥거리고 두근거리고 아련하고 울 것 같고… 막 그러냐?""…… 돌았냐?""아니~ 너 채린이 완전 좋아했― 억!!""시끄러워!! 꺼져!!"설민재의 엉덩이를 발로 강하게 차며 집 밖으로 내쫓고는 넓은 제 침대에 몸을 뉘었다. 괜히 짜증이 치밀어 올라 죄 없는 베개를 던지고 씩씩거리며 화를 삭였다. 설민재의 말이 틀린 건 없었다. 분명 어린 시절 자신에게 부모 격인 설용범을 제외하면 처음으로 관계를 맺은 타인이니까, 외부인이니까 그만큼 의지도 했다. 분명 좋아했다.그랬기에 기억을 잃고 설이현을 좋아하게 된, 그리고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던 윤채린을 보며 설이현에 대한 증오가 컸고, 분명 그 일을 계기로 복수할 생각으로 지내온 것은 사실이기에 부정할 생각은 없다.다만, 유학의 명목으로 2년 전에 갑자기 사라진 윤채린과의 재회가 자기 생각과는 조금 달랐다. 솔직히 다시 만나면 마지막, 헤어지기 직전처럼 지난 애정과 원망이 들끓어 자제하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종종 귀국한 윤채린을 피하기도 했었다. 그랬기에 그 갑작스러운 재회에 더 당황했지만… 당황했던 이유는 자신의 걱정과 달리 아무렇지 않았기 때문이다.눈앞의 윤채린을 왜 피했냐
"나, 너무 놀랐잖아… 혹시 이현이에게 붙들려 어디 해외로 팔려 가는 건 아닐까 싶어서."고개를 잘게 저으며 말하고 있지만 눈은 상당히 언짢아 보였다. 퇴근 시간쯤에 동네방네 그 설이현이 계약직을 납치했다는 말에 설마 하면서도 설태하와 묘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하이담을 생각하며 이해했다."형제라서 취향이 같은 걸까?""아하하, 그런 거였다면 조금 더 빠르지 않았을까?"주말을 쉬고 온 학교에서 하이담의 나락으로 간 평판은 설이현의 여자 친구가 아니냐? 혹은 설이현이 숨겨둔 스파이 아니냐는 소문과 함께 저절로 올랐다. 그 덕분에 매일 아침 일정과 다름없던 권 주임의 잔소리는 없어졌고 어쩐지 모두가 자신의 눈치를 보는 듯한 느낌은 기가 차면서도 나쁘지는 않았다.게다가 이건 전부 설이현이 자초한 일이니까, 어떤 소문이 나도 설이현의 책임이다. 그러니 하이담은 입 꾹 닫고 그전까지 잘 이용해 먹으면 됐다. 하지만 연하늘은 설이현의 그 행동 하나하나가 미심쩍은 듯 보기 드물게 표정이 일그러졌다."그래서, 둘이서 무슨 대화를 나눴는데?""음… 요점만 정리하자면 내가 태하랑 친한 게 불만인가 봐.""……… 애야? 은근히 어린 애 같은 구석이 있었네? 속도 좁고."3살짜리 어린애냐는 듯 기가 찬다는 듯한 연하늘의 표정에 키득키득 웃음이 나왔다."솔직히 이현이도 태하도, 이철이 오빠에게 교육 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그러지 마. 우리 오빠 안 그래도 망나니랑 바보 때문에 힘들게 살았는데.""우리 이담이에게 이런 남자들만 꼬여서 석이 오빠가 철이 오빠랑 결혼시킬 거라고 말하고 다녔나?""무슨 소리야. 큰일 나게. 그런
고요한 방 안에는 설태하의 목소리가 윙윙 울렸다."내가 거슬려? 방해물이냐? 역시 전에도 그냥 한 말인 거지!!?"점점 분노로 변해가는 목소리에 하이담이 눈을 질끈 감았다.「 내게 꽤 큰 피해의식이 있지. 한마디로 자존심은 센 주제에 자존감은 낮아.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어떻게든 내게 한 방 먹이려는 그 발버둥이 재미있어. 」우습다는 듯이 이야기하던 설이현의 말이 우습지 않다고 느꼈다. 오히려 하이담에게 설이현의 약점을 알아 오라느니, 그간 설태하에게 해왔던 것들을 전부 설이현과 친해지기 위해 그랬다고 생각하는 것이 화가 날 만도 한데 화를 낼 수가 없었다.'아프다.'심장에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찌릿찌릿했다. 그저 이 몸만 큰 어린애가 자신을 봐달라고 몸으로 울부짖는 것 같아 쓰라렸다. 어린 시절 자신을 보며 늘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며 안달 내던 하이철의 마음을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넌 내가 아직도 설이현 편에 서는 건 아닐까 무서워? 걱정돼?""……….""네게 난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야?"설태하가 조금 놀란 표정으로 바짝 굳어 숨을 들이켰다."그렇게 생각해? 내가 널 홀라당 버리고 설이현에게 넘어갈, 그런 사람으로 보이냐고!""………… 아니.""그런데 뭘 그렇게 초조해하는 거야?""…… 다른 그랬으니까. 전부… 그놈만 만나면 내게서 사라졌으니까."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그것보다는 당장에 벽에 꽂힌 손이 걱정되어 그 손을 확인하자 멀쩡한 손에 조금 당황
"태, 태―!"자기 집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도어락을 열고는 거칠게 집주인을 밀어 넣고는 끌어안았다. 얼굴이 울릴 정도로 큰 심장 고동이 고스란히 느껴지니 저도 모르게 얼굴에 열이 올랐지만, 떼어낼 생각이 없어 보이는 행동에 슬쩍 고개를 올리자, 설태하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분노로 표출하고 있었다."동생, 왜 그런 표정이야? 본가에서 무슨 일 있었어?""너… 왜 난 이름으로 불러주지 않는데?""어, 어??""왜 설이현이랑 같이 있는데? 왜 집 앞까지 데리고 왔는데? 내가 없었으면 바보처럼 웃으며 집까지 들일 생각이었냐?"목덜미에 얼굴을 묻으며 말하는 설태하에 당황스러워 저도 모르게 잘못한 것 같아 그 넓은 등을 토닥였다. 그 손길에 안정감을 느끼며 더 파고드는 터에 꼼짝없이 벽과 설태하 사이에 끼여 겨우 숨을 쉬었다."나 아파."그 말에도 설태하는 꼼짝하지 않고 되레 하이담의 허리를 강하게 감았다.그 감정은 아마 집착이고 질투일 테지만, 설태하는 그 감정을 모른다.그래서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응―? 태하야. 일단 좀 놔! 나 아파!"쓰다듬던 손으로 등을 툭툭 쳐도 꼼짝하지 않아 결국 혀를 내두르며 하이담이 힘이 빠져 축 처져 설태하의 어깨에 자신의 턱을 올리고는 조금 긴 뒷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설이현이 회사로 왔어. 그런 김에 같이 저녁 먹으면서 이야기 좀 나눴어.""무슨 이야기.""음…. 회사 관련 이야기도 했고… 설이현도 고양잇과니까 캣닙 좋아하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