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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마지막 저녁.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6 09:28:13

⁠

⁠

"아뇨, 회사로 가주세요."

⁠

 다행히 입에서 나온 말은 거창하게 생각했던 것보다 하찮았지만 상황은 정리가 된 듯했다. 물론 차 안은 다시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했고 과장 보태서 비행기보다 빠르지 않은가 싶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목적지에 도착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평소의 설이현으로 돌아온 모습에 비서가 내심 기분 탓이었나 싶어 안심했다.

 탁

 하지만 애석하게도 비서의 기분 탓이 아니었다. 제 의자에 앉아 깔끔한 책상을 훑더니 눈을 질끈 감고 하이담을 만난 이후 진정되지 않는 감정을 대신 누르듯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제 동생, 그러니까 그 설태하가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일정을 캐내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그 노력이 가상해 일부로 의심하기 딱 좋게 비워둔 일정에 하이담과 접촉했다. 물론 그 자리에 하이담이 없으면 다른 여자였겠지. 어떤 여자든 상관없었다.

⁠

 그저 설태하를 낚을 미끼일 뿐이니까.

 그리고 자신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

 고의로 하이담에게 접근한 얼마 후, 설태하가 그 여자에게 정체를 들켜버렸다는 집안에서의 연락에 정말 자기 생각과 한치의 빗나감이 없는 점에서 집안에서 마주한 분노에 찬 얼굴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뻔하게 움직이니 자신을 이길 수 없다는 것조차 그 멍청한 동생은 알 리가 없을 테지만.

 이것을 빌미 삼아 조금 압박 아닌 압박을 줄까 했는데, 다시 받은 보고는 믿을 수가 없었다. 설태하의 동선이 평소와 달리 하이담과 비정상적으로 붙어 다닌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

"그 기억을 지웠는데도 말이지."

⁠

 그것이 이상했다.

⁠

"무슨 꿍꿍이지."

⁠

 게다가 같이 학생회를 했던 연하늘은 그렇다 치고, 하이담도 여전히 고교 시절 때부터 다른 인간들과 미묘하게 결이 다르다는 것이 다시 떠올랐다.

 그것이 몹시 거슬렸다.

 지루하고 의미 없던 고교 시절 인연이 이렇게 되돌아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

⁠

*  *  *

⁠

⁠

「 이담아, 설이현있잖아. 그 애랑은 얽히지 않는 게 좋을 거 같아. 」

⁠

 고교 시절 같이 학생회를 했던 연하늘의 말이었다.

⁠

「 괜히 설이현과 얽히지 마. 안 좋은 예감이 들어. 」

⁠

 그리고 며칠 전, 다시 만난 연하늘의 당부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했다. 평소 다른 사람들보다 감이 좋은 편이기에 그냥 하는 말도 아니고 한 귀로 흘려 넘길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자신은 당연히 소중한 친구인 연하늘의 말에 따라 당장 설이현과 거리를 두고 학창 시절 데면데면 인사형식의 가벼운 대화만 하는 그저 그런 사이로, 애초에 사는 세계가 다르니 어쩌면 앞으로 다시 만날 일도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평소처럼 지냈을 것이다.

⁠

"아… 어쩌지, 하늘아."

⁠

 하지만 이미 늦었다.

 자신은 이미 직접적으로 설이현과 얽히지는 않았지만, 간접적으로는 얽혔다.

⁠

"왜 밖에서 바보짓을 해?"

⁠

 제 집 앞 벤치에 앉아 머리를 부여잡으며 난리를 부리는 모습을 본 설태하가 의아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

"뭐야… 왜 이렇게 오랜만에 보는 거 같지…?"

⁠

 그 말에 설태하의 눈썹이 추켜 올라갔다.

⁠

"실제로 오랜만이거든?"

⁠

 자연스레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하이담의 옆에 털썩 앉았다. 자신이 옆에 앉아도 무슨 생각 중인 건지 혼자 끙끙 앓는 모습을 바라봤다. 자리를 비운 며칠 동안 변함없이 바보 같은 모습에 마음이 한결 놓이면서 집안에서도 모르는 것이 확실하게 된 지금.

 아무리 생각해도 하이담의 인생에서 설태하만 사라지면,

⁠

"너 때문이야."

"무, 뭐!"

⁠

 괜히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나 싶어 강렬하게 반응하자 하이담은 한숨을 잘게 쉬었다.

⁠

"밥은 먹었어?"

"넌 대체 왜 이렇게 밥에 집착하는 건데?"

⁠

 하이담의 인생에서 설태하만 떨어져 나가면 됐다.

⁠

"너, 무슨 일 있었어?"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거든?"

⁠

 그러니까,

 이것은 마지막이다.

⁠

"아니, 너 표정이 이상하니까."

⁠

 오늘을 마지막으로 괜한 일에 말려들게 한 대가를 저녁으로 갚고, 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이상한 관계를 끝맺을 것이다.

⁠

"내 표정이 뭐."

⁠

 오늘 저녁이 끝나면 처음부터 만나지 않았던 것처럼.

 몰랐던 것처럼.

⁠

"밥 먹으러 가자."

"……… 맛있는 걸로."

⁠

 그래, 마지막 저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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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다려, 늑대   59. 질투.

    ⁠⁠"태, 태―!"⁠자기 집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도어락을 열고는 거칠게 집주인을 밀어 넣고는 끌어안았다. 얼굴이 울릴 정도로 큰 심장 고동이 고스란히 느껴지니 저도 모르게 얼굴에 열이 올랐지만, 떼어낼 생각이 없어 보이는 행동에 슬쩍 고개를 올리자, 설태하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분노로 표출하고 있었다.⁠"동생, 왜 그런 표정이야? 본가에서 무슨 일 있었어?""너… 왜 난 이름으로 불러주지 않는데?""어, 어??""왜 설이현이랑 같이 있는데? 왜 집 앞까지 데리고 왔는데? 내가 없었으면 바보처럼 웃으며 집까지 들일 생각이었냐?"⁠목덜미에 얼굴을 묻으며 말하는 설태하에 당황스러워 저도 모르게 잘못한 것 같아 그 넓은 등을 토닥였다. 그 손길에 안정감을 느끼며 더 파고드는 터에 꼼짝없이 벽과 설태하 사이에 끼여 겨우 숨을 쉬었다.⁠"나 아파."⁠그 말에도 설태하는 꼼짝하지 않고 되레 하이담의 허리를 강하게 감았다.그 감정은 아마 집착이고 질투일 테지만, 설태하는 그 감정을 모른다.그래서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응―? 태하야. 일단 좀 놔! 나 아파!"⁠쓰다듬던 손으로 등을 툭툭 쳐도 꼼짝하지 않아 결국 혀를 내두르며 하이담이 힘이 빠져 축 처져 설태하의 어깨에 자신의 턱을 올리고는 조금 긴 뒷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설이현이 회사로 왔어. 그런 김에 같이 저녁 먹으면서 이야기 좀 나눴어.""무슨 이야기.""음…. 회사 관련 이야기도 했고… 설이현도 고양잇과니까 캣닙 좋아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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