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14화

Author: 유진
자존심과 체면이 바닥에 처박히는 순간이었다.

조민혜는 서둘러 자기를 창피하게 한 이곳을 떠났고 옆에서 보고 있던 민화영도 서둘러 민혜와 함께 떠나버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임유진은 어안이 벙벙했다. 백화점에서 나오자마자 사람들이 몰려들어 차를 부수는 장면을 본 것도 모자라 그 차가 민혜의 차라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뭐지? 쟤가 누구한테 원한 산 적 있어서 보복당하는 건가?”

“그러게. 그건 모르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유진을 보며 강지혁의 눈은 반짝거렸다.

“뭐 어찌 됐든 우리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말을 마친 유진은 지혁을 끌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때, 지혁의 발이 순간 멈춰 섰다. 고개를 돌려 봤을 때 지혁의 얼굴은 이미 새하얗게 질려있었고 뭔가에 충격을 받은 듯 버스 정류장 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왜 그래?”

“아…… 아니야.”

걱정스러운 유진의 말에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

하지만…….

‘방금…… 내가 잘못 봤나? 버스 안에 있는 사람을 그 여자로 보다니. 남편과 자식을 버린 그 여자가 여기 있을 리 없잖아.’

--

“혁아, 넌 절대 나처럼 되지 마.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네 모든 걸 바치면서까지 좋아하지는 마.”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같잖은 거야. 상대가 너한테 마음이 떠나면 네가 무릎을 꿇어도 붙잡을 수 없어.”

“혁아, 너도 언젠가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이 세상에 누군가가 너의 감정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고 너의 생사까지도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나는 네가 그런 감정은 영원히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어.”

‘누구야? 누가 자꾸 말하는 거야? 그만 말해. 여기서 떠나! 추워…… 너무 추워…… 여기 있지 마…… 더 있으면…… 얼어 죽을 거야!’

“혁아, 나 갈게. 네 아빠가 말로만 날 사랑한다고 하는 것도 이제는 지긋지긋해, 네 아빠와 함께라면 난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없어! 나도 이미 할 도리 다 했어!”

‘이건 또 누구야? 누가 자꾸만 말하는 거야?’

“가지…… 마세요…….”

‘이건 또 누구지? 아, 나잖아. 내가 그 여자한테 빌고 있었던 거야. 저 여자가 가면 아버지는…….’

“가지 마! 가지 마!”

지혁은 상대를 잡으려고 두 손을 허우적댔지만, 손에 잡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주위는 온통 컴컴했고 물에 빠진 듯 호흡마저 곤란했다.

마치 물에 빠져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하는 것 처럼 손을 마구 허우적댔다.

그러던 그때, 손에 갑자기 따뜻한 무언가가 느껴지더니 귓가에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혁아, 나 어디도 안가. 무서워하지 마!”

‘이건…… 누나? 유진이 누나? ’

지혁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 순간 지혁의 눈에는 청초하고 예쁘장한 얼굴이 들어왔다. 초조함 가득한 예쁜 두 눈, 뻐금거리는 빨간 입술, 마치 뭐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아, 이 여자가 나한테 무서워하지 말라고 했구나!’

한편, 지혁이 깨어난 걸 본 유진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혁아, 정신이 들어? 악몽이라도 꿨어?”

지혁은 탁한 숨을 내뱉었다. 이런 꿈을 꾼 것도 참 오랜만이다. 가차 없이 아버지와 지혁을 버리고 가던 그 여자의 모습, 상대가 떠나가는 걸 알면서도 떠나지 말라 붙잡지 않는 아버지, 하지만 아버지의 얼굴에는 우는 것보다도 슬퍼 보이는 씁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응, 악몽 꿨어.”

곧이어 나지막한 목소리가 지혁의 입술 사이로 비집고 나왔다. 그리고 지혁은 그제야 자기가 마치 지푸라기라도 잡고 있는 것처럼 상대의 손을 꽉 잡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꿈에 있을 때, 마치 곧 익사할 것 같다는 생각에 지푸라기를 잡았던 기억이 나는데…… 그게 이 여자 손이었어?’

지금껏 지혁이 누군가를 지푸라기처럼, 생명줄처럼 여겼던 적이 있었던가?

순간 드는 생각에 지혁은 갑자기 손을 놓아버렸다. 하지만 손에 전해지던 온기가 사라지자,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이윽고 얼굴이 점점 창백해지더니 허리를 숙여 배를 끌어안았다.

그 모습을 본 유진은 한시름 놓았던 마음이 다시 철렁했다.

“어디 아파?”

“아니야.”

지혁은 뭔가 참고 있는 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위경련이 온 것 같아. 조금만 지나면 돼.”

‘악몽 때문인가?’

솔직히 어릴 때 지혁은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에 위경련을 자주 겪었다. 하지만 근 몇 년 동안은 괜찮았었는데.

유진은 창백하게 질린 지혁의 얼굴을 보더니 이마를 덮고 있는 앞머리를 헤집어 확인했다. 이미 송골송골 맺힌 땀은 머리 한 층을 축축하게 적시고 있었다.

이에 유진은 따뜻한 물을 컵에 따라 가져 오더니 지혁을 부축해 앉게 했다.

지혁은 억지로 따뜻한 물 몇 모금을 마시더니 입을 꾹 다물었지만, 잇새 사이로 이따금 까득까득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치 혼신을 다해서 고통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나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기다려!”

유진은 걱정되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문을 나서기 전 이불로 지혁을 꽁꽁 감싸줬다. 추위라도 타면 배가 더 아플까 걱정돼서였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점점 멀어져가는 발소리가 잇따라 들려왔다.

지혁 혼자만 남게 된 방은 그 시각 유독 조용했다.

지혁은 여전히 눈을 감고 몸을 괴롭히는 고통이 언젠가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혼자인 건 늘 익숙했잖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본가에 오게 됐을 때, 집에는 물론 할아버지도 수많은 고용인들도 있었지만, 그는 늘 혼자인 것만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문소리가 들려오더니 익숙하고도 부드러운 목소리와 가쁜 숨소리가 작은 방을 메웠다.

“혁아, 내가 약 사왔으니까 얼른 먹어. 약 먹고 조금 쉬면 안 아플 거야.”

눈을 떠보니 하얀 입김을 내뱉으며 달려왔는지 헝클어진 머리를 한 익숙한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심지어 유진의 눈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예쁘장한 얼굴, 작고 정교한 코, 붉은 입술, 분명 유진보다 더 예쁘고 외모가 출중한 여자는 수도 없이 봐왔지만, 그 순간만큼 왠지 모르게 유진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마치 혼자만 있던 자기의 세상에서 처음 다른 누군가를 발견한 것처럼 말이다.

--

유진은 따뜻한 물을 들고 오더니 설명서에서 쓰여 있는 대로 약 두 알을 꺼내 조심스럽게 지혁에게 먹였다. 그러고는 이내 수건을 가져와 땀으로 흥건해진 지혁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아직도 아프면 눈 좀 붙여. 오늘은 내가 바닥에서 잘 테니까 침대는 네가 써.”

유진은 말하면서 지혁을 침대에 눕히고 돌아섰다. 하지만 유진이 떠나려고 하는 순간 지혁의 손이 갑자기 유진을 붙잡았다.

“왜 그래? 아직도 많이 아파?”

고개를 돌린 유진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그 모습을 약간 넋을 잃고 바라보던 지혁은 그제야 자기가 상대의 손을 잡았다는 걸 깨달았다. 솔직히 그 동작은 무의식적으로 나온 거였다. 그렇게 잡지 않으면 상대가 자기 곁을 떠날까 봐.

그리고 한참 뒤,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누나가…… 내 곁에 있어 줘.”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831화

    “지영아, 우리야 뭐, 이 나이에 사람들 말이 뭐가 무섭겠니? 우린 그냥... 네가 앞으로 후회 없이 잘 살아주길 바랄 뿐이야.”이해영은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딸을 바라보며 말했다.결혼도 하지 않은 채 아이를 낳겠다는 선택... 그건 딸이 스스로 험난한 길을 가겠다고 마음먹은 것과 같았다.한지영의 콧등이 시큰해졌다.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긴 세월 동안 부모는 자기 때문에 마음고생을 해왔다는걸.하지만 정작 자신은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했다는 사실이... 지금 더 뼈아프게 다가왔다.한종훈은 무겁고 단단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정말 이 아이를 지켜내겠다는 거냐? 후회하지 않겠어? 애 키우는 건, 강아지랑 고양이 키우는 거랑은 다르다. 앞으로 네 인생... 생각보다 훨씬 고될 수도 있어.”한지영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이미 마음 정했어요. 후회 안 해요. 이 아이가... 제 뱃속에 있는 한, 저는 이 아이의 엄마니까...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그 말에 아버지는 미간을 지그시 좁히다가 곧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그래. 그렇다면 낳자. 우리 집이 뭐, 애 하나 못 키우겠냐? 아빠가 지켜줄게. 너도, 그 아이도...”그 말에 한지영은 울컥한 감정이 다시금 밀려와 눈물을 쏟고 있었다.“아이고, 얘야. 울지 마, 울지 마! 너 지금 울면 안 돼. 감정 흔들리면 태아도 힘들어진단다.”이해영은 다급히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응... 안 울게요. 안 울게요.”한지영은 억지로 눈물을 멈추려 애쓰며 고개를 끄덕였다.지금 그녀는 그저 뱃속의 이 작은 생명이 무사히 버텨주기를 간절히 바랐다.그 시각, 임유진이 숨을 헐떡이며 병실에 들어섰다. 한지영이 입원했다는 말을 듣고는 바로 병원으로 달려온 것이었다.그리고 그토록 오래 이어져 온 한지영과 백연신의 사이가 완전히 끝났다는 사실을 듣자, 임유진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불과 이틀 전만 해도... 한지영은 백연신과 다시 시작할지도 모른다고 했었다.그런데, 어쩌다 모든 게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830화

    한지영의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달려온 그녀의 부모는 산부인과 병실 침대에 누워 있는 딸을 보고는 깜짝 놀라 허둥지둥 달려왔다.그녀의 팔에는 링거가 꽂혀 있었고 얼굴도 창백하기 짝이 없었다.“무슨 일이야? 갑자기 입원은 또 왜? 혹시 뱃속 아이한테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거야?”이해영이 다급하게 물었다.이곳은 시내에서도 가장 유명한 산부인과 전문병원이었다. 내로라하는 전문의들이 있는 곳이라 급한 상황이면 대개 여기로 온다.“입원해서 안정을 취해야 할 것 같아요. 오늘 아침에... 길에서 교통사고가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 아이 상태가 좀 안 좋아요.”한지영은 나지막하게 대답했다.“뭐? 교통사고?!”그녀의 부모는 놀라 동시에 목소리를 높였다.“아침에 사고가 났는데, 지금 이 시간까지 연락도 안 하고 뭐 한 거니?!”벌써 오후 네 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부모는 딸의 사고 경위를 재차 물으며 걱정했지만, 차가 가드를 들이박은 사고였고, 몸에 난 상처는 대부분 충격으로 인한 멍뿐이라는 설명에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럼 아이는... 상태가 어때?”이해영이 조심스레 물었다.“그리 좋진 않아요. 지금 심장 박동이 많이 약해서... 유산될 위험이 크대요. 그래서 병원에 며칠 입원해서 안정 치료받으라고 했어요.”그녀는 조용히 대답하며 링거 맞고 있지 않은 손을 살며시 배 위에 얹었다.사실 오늘 백연신이 병실을 떠난 직후, 그녀는 의사에게 아이를 지우겠다며 수술을 요청했다.하지만 수술 동의서가 그녀의 손에 쥐어졌을 때... 펜을 드는 순간, 손끝이 떨리며 도저히 서명할 수 없었다.그저 눈물이 마구 쏟아졌고, 종이 위를 적셨다.결국 그녀는 서명하지 못하고 이곳, 산부인과 전문병원으로 병원을 옮겼다.그것이 아마 모성애인 듯하다. 이성은 분명 아이를 지우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하지만, 감정은 말한다...“그래도... 이 생명을 내 손으로 끝낼 수는 없어.”이 아이가 스스로 그녀를 떠난다면 그건 받아들이겠지만, 그렇지 않고 아이가 하루라도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829화

    백연신은 자기도 모르게 갑자기 몸이 휘청이며 비틀거렸다. 한 손으로 침대 끝을 짚지 않았다면 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을 것이다.“너한테는... 내가 그렇게까지도 믿지 못할 사람이었어?”그의 목소리는 낮고 떨리고 있었다. 눈빛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과 절망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그의 눈빛은 고통이 되어, 마치 천둥처럼 쏟아져 내리며 한지영의 가슴을 거세게 쥐어짰다.이미 마음을 정하고 그와의 모든 인연을 끊기로 결심했건만... 그 눈빛만큼은 외면하기 힘들었다.‘신경 쓰지 마. 이건 착각일 뿐이야. 설령 나를 정말로 사랑했다고 해도... 그때뿐이야... 이걸로 됐어, 충분해. 더 이상 속을 순 없어!’“당신이 하는 말, 한 마디도 믿지 못하겠어.”그녀는 마치 다른 사람의 입을 빌린 듯 담담하게 말했다.“그래...?”백연신의 눈꺼풀이 천천히 떨렸다.그리고, 그는 차가운 손끝으로 그녀의 입술을 천천히... 스쳤다.“이렇게 우리 아이도 지워버리고, 나랑은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이 되는 거... 정말 후회 안 해?”그 순간, 한지영은 입술마저 얼어붙는 느낌을 받았다. 그의 손끝이 닿은 자리마다 서늘함이 퍼져, 마치 흐르는 피조차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그래요. 후회 안 해요.”그녀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녀의 마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응급실에서 진단을 받은 순간부터... 그리고, 뱃속의 아이도 마치 그녀의 결정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조용히 떠나려 하고 있었다. 태아의 심박수는 약했고, 의사도 말했다. 굳이 수술하지 않더라도 며칠 내로 유산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백연신은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 천천히 손을 거두며 질끈 두 눈을 감았다.“좋아. 지영이 네가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니... 나도 후회하지 않을게.”그의 목소리는 낮고 침착했지만, 그 안엔 무언가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숨어 있었다.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힘겨운 듯 천천히... 마치 온몸의 기운을 짜내듯 움직이고 있었다.그리고 다시 눈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828화

    한지영의 머릿속에는 문득, 오래전 그날의 대화가 떠올랐다.그녀는 그에게 장난스럽게 말했었다.“연신 씨, 우리 둘 다 칠십, 팔십이 되어도 이렇게... 키스할까? 그땐 너무 질려서 키스 같은 건 안 하게 되겠지?”그러면 그는 항상 다정하게 웃으며 말했다.“하하하. 지겨울 리 없지. 지영아, 네가 나이 들어도, 내가 너랑 함께 눈 감고 이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난 계속 널 안고 키스하고 있을 거야.”그때 그 말은, 마치 평생을 함께하자는 약속 같았다.하지만... 그 미래는 결국 오지 않았다. 그때도, 지금도...한지영은 그의 키스를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게 이어갔다. 마치 그 입맞춤 속에 마지막 인사를 담듯이...‘이건 우리의 마지막 인사야... 우리의 끝...’그들의 애틋한 입맞춤이 끝나고, 백연신은 한지영을 천천히 놓으며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쉰 듯한 애타는 목소리로 그가 속삭였다.“지영아... 아직 나 사랑하는 거 맞지? 응? 내가... 이렇게 너랑 입 맞출 수 있는 날을 얼마나 기다린 줄 알아? 다시는 안 올 줄 알았어...”5년이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그는 그녀를 단 한 번도 잊지 못했다. 이제야 비로소, 혈충의 저주도 사라진 지금... 그녀를 마음껏 안을 수 있게 되었는데...“지영아... 그때 내가 너를 떠났던 건... 백씨 가문을 되찾아야 너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있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야. 그리고...”하지만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지영이 말을 가로챘다.“나를 지키는 방법이... 다른 여자를 선택하는 거라면, 난 그런 것 따위는 필요 없어요.”한지영의 단호함에 백연신은 몸이 점점 굳어져 가는 걸 느꼈다. 그녀의 맑고 반짝이는 눈빛에는 슬픔과 단단함이 배어있었다.“지영아... 만약 그때 내가 그랬던 게, 정말 네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였다고 하면... 그렇다면 날 용서해 줄 수 있어?”백연신의 목소리는 간절했고 눈빛은 애처로웠다.그러나... 그녀는 담담한 눈빛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827화

    “하지만...”“우진 씨, 먼저 나가줘요. 나도... 이 사람하고 정리해야 할 말이 있어요.”한지영이 조용히 말했다.연우진은 그녀의 시선을 보며 한 걸음 물러났다.그러나 병실을 나서기 전, 백연신을 향해 한마디 덧붙였다.“백연신 씨, 지영 씨 지금 몸이 불편하니까 무슨 얘기를 하든... 손은 대지 마세요.”하지만 백연신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한지영을 꿰뚫듯 바라볼 뿐이었다.연우진은 한숨을 내쉬며 병실을 조용히 빠져나갔다.그렇게 병실에는 백연신과 한지영... 두 사람만 남았다.“정말 그렇게까지 나랑 선을 긋고 싶어? 아이도 지울 거야...?”백연신의 차가운 목소리가 병실에 울려 퍼졌다.“그래요.”한지영은 숨을 깊이 들이쉬고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게 다... 예전 일 때문이야? 네가 다쳤을 때, 내가 헤어지자고 해서? 그 일 때문에 단 한 번의 기회조차 주기 싫은 거야?”그는 조용히 되물었다.“우리 이미 그때 끝난 사이에요. 이제 와서 다시 만날 필요도 없고요. 이 아이는... 우리를 더 힘들게 만들 거예요. 그저 짐일 뿐이라고요.”한지영의 목소리는 무미건조했지만, 그 말에는 독기 서린 가시가 박혀있었다.백연신의 눈빛이 아프게 흔들렸다.그녀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는 말할 수 없이 기뻤다.하늘이 내려준 기회라고 믿었다. 그녀와 다시 연결될 수 있는... 단 하나의 희망이었다.하지만 지금... 그녀는 그 희망을 ‘짐’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기적이었던 아이가 그녀에게는 짐이고 불행이었다.얼마나 아이러니하고 비참한가...“그런데도.... 넌 아직 날 사랑하잖아.”백연신이 나직하게 말했다.“지금도 나를 향한 감정이 남아있잖아.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날 이렇게 미워할 수 있어?”그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지영아, 나 맹세할게. 앞으로 남은 인생 전부를 바쳐서 널 지킬 거야. 널 사랑하고, 절대 떠나지 않을게!”“지킨다고? 사랑한다고? 절대 떠나지 않는다고?”한지영이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826화

    담당 의사는 연우진을 아이 아빠로 오해한 듯했다.하지만 연우진이 정정할 겨를도 없이 한지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이 사람, 아이 아빠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 일은 제가 알아서 결정할 테니 수술 준비해 주세요.”의사는 그녀의 확고한 태도에 조심스럽게 대답했다.“그렇다면... 알겠습니다. 곧...”“제가 아이 아빠입니다. 그런데 제가 동의하지 않으면 수술이 가능합니까?”갑작스러운 목소리가 병실 안에 울려 퍼졌다.순간, 모두의 시선이 병실 입구로 향했다.하얀 셔츠와 검정 슬랙스를 입은 백연신이 그곳에 서 있었다.셔츠는 다급히 입은 듯 단추도 매무새도 흐트러져 있었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그가 얼마나 급하게 달려왔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한지영은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익숙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백연신은 눈앞의 지영을 바라보며,천천히 다가왔다.그는 오늘 아침, 그녀에게 연락할 생각이었다. 드디어 모든 걸 정리하고 그녀에게 자신들의 진짜 시작을 이야기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그런데... 전화를 받은 사람은 연우진이었다.백연신은 한지영이 사고로 병원에 있다는 말을 듣자, 아무 생각도 없이 곧장 달려왔다.그런데 도착하자마자 들은 말은... 한지영이 스스로 유산 수술을 원한다는 이야기였다.“왜 아이를 지우려는 거야?”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차분했지만, 그 안엔 억누른 격정이 숨어 있었다.“만약 네 몸에 위협이 되는 상황이라면 나도 망설임 없이 수술에 동의했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아니잖아. 이 병원이 아니라도, 더 나은 곳으로 옮기면 충분히 아이를 살릴 수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우겠다는 거야?”한지영은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없이 입술을 깨물었다.백연신은 휴대폰을 꺼내며 말했다.“지금 당장 다른 병원으로 전원 수속시킬게!”하지만 그 순간, 한지영이 날카롭게 외쳤다.“필요 없어요. 이 아이를 지울지 말지는 내가 결정해요!”백연신의 손이 멈칫했다.그는 서서히 고개를 돌려 침대 위의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