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태오가 여유롭게 웃으며 혜진의 손목을 잡고 자리에서 이끌었다. 혜진은 못 이기는 척 그의 뒤를 따랐지만, 이미 그녀의 손가락은 태오의 온기를 거부하지 않고 있었다. 레이븐스 내부에 번지는 새로운 사랑의 바람은, 패배의 상처를 치유하는 가장 단단한 유대감이 되어주고 있었다.
그 달콤했던 휴식을 기점으로 레이븐스는 완전히 다른 팀으로 탈바꿈했다.
도욱과 서윤, 그리고 태오 코치는 블랙 베어스전의 패배를 철저하게 분석하여 밀집 수비를 파괴할 '플랜 B'를 완성했다. 서윤의 정교한 롱패스에만 의존하던 단조로운 리듬에서 벗어나, 혜진과 아름이 유기적으로 하프 스페이스를 파고들고 서윤이 2선에서 과감한 중거리 슛으로 수비벽을 끌어내는 다채로운 변칙 전술이 도입되었다.
시간은 무정하게 흘렀고, 리그의 판도는 유수처럼 빠르게 뒤바뀌
서윤은 정중하게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아름과 혜진을 이끌고 본관 로비로 걸어 들어갔다.로비 안쪽은 이미 먼저 도착한 다른 구단의 대표팀 베테랑 선수들로 가득 차 있었다.은은한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로비 중앙의 가죽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던 여자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채리안이었다.리안은 골든 이글스에서의 패배를 설욕하겠다는 듯, 대표팀 트레이닝복을 완벽하게 갖춰 입고 오만한 미소를 지으며 서윤의 앞을 막아섰다. 그녀의 뒤로는 대표팀의 주전 수비수들과 미드필더들이 파벌의 벽을 형성한 채 레이븐스 선수들을 차갑게 내려다보고 있었다."웰컴 투 파주, 한서윤. 구질구질한 레이븐스 클럽하우스에서 왕 노릇 하다가 여기 오니까 숨이 턱 막히지? 여기가 바로 진짜 천재들이 노는 곳이야."리안의 도발적인 언사에 혜진이 한 발짝 나서며 주먹을 쥐려 했지만, 서윤이 손을 들어 그녀를 노련하게 제지했다. 서윤은 리안의 오만한 눈빛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 보았다. 주변의 시선이 일제히 두 사람에게 집중되며 로비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내가 여기서 밀리면 레이븐스가 밀리는 거야.'서윤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차분하고도 냉소적인 목소리로 대꾸했다."잔디 색깔은 파주나 우리 구장이나 똑같아, 리안아. 진짜 천재가 누구인지는 말로 하는 게 아니라 오후 훈련 때 발끝으로 증명하는 거니까, 그때까지 그 자신감 잘 유지하고 있어 봐."서윤의 허를 찌르는 당찬 반격에 채리안의 안색이 순간적으로 흙빛으로 변했다.유럽 무대를 밟고 돌아온 자신을 향
라커룸 문이 열리며 백태오 코치가 걸어 들어왔다. 그의 깔끔하게 정돈된 갈색 머리칼과 다정한 미소는 언제나처럼 선수들의 긴장을 완화해 주는 묘약 같았다.태오는 곧장 혜진의 앞으로 걸어가 자신의 가슴 품에 소중하게 품고 있던 작은 가죽 노트를 내밀었다."혜진 선수, 이건 내가 특별히 정리한 대표팀 미드필더진의 동선 데이터북입니다. 채리안을 포함해서 대표팀 주전들의 패스 습관과 선호하는 공간을 전부 분석해 두었어요. 혜진 선수가 중원에서 길목을 차단할 때 가장 큰 무기가 될 겁니다."혜진은 멍하니 태오가 건넨 노트를 바라보았다. 손때가 묻은 가죽 노트 표지에는 그녀의 등번호와 이름이 정성스럽게 각인되어 있었다. 밤을 새워가며 자신만을 위한 데이터를 정리했을 그의 노고가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혜진은 컵을 만지작거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코치님, 이런 건 서윤 언니한테나 주시지 왜 저한테 주십니까? 전 그냥 몸으로 들이받는 것밖에 못 하는데요.""하하, 혜진 선수의 그 과감한 몸싸움이 빛을 발하려면 정밀한 타이밍이 필수적이니까요. 내가 준 데이터를 믿고 뛰어봐요. 그리고 파주에 가 있는 동안 내 생각 너무 많이 해서 전술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태오가 상체를 슬쩍 숙이며 혜진과 눈을 가까이 맞추자, 혜진은 순간적으로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지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누가 코치님 생각을 한다고 그래요? 정말 어이없어. 비키세요, 가방 챙겨야 하니까.""부끄러워하는 모습도 참 예쁘네요. 다치지 말고 잘 다녀와요. 매일 밤 데이터 체크 핑계로 전화할 테니까."태오의
태오가 여유롭게 웃으며 혜진의 손목을 잡고 자리에서 이끌었다. 혜진은 못 이기는 척 그의 뒤를 따랐지만, 이미 그녀의 손가락은 태오의 온기를 거부하지 않고 있었다. 레이븐스 내부에 번지는 새로운 사랑의 바람은, 패배의 상처를 치유하는 가장 단단한 유대감이 되어주고 있었다.그 달콤했던 휴식을 기점으로 레이븐스는 완전히 다른 팀으로 탈바꿈했다.도욱과 서윤, 그리고 태오 코치는 블랙 베어스전의 패배를 철저하게 분석하여 밀집 수비를 파괴할 '플랜 B'를 완성했다. 서윤의 정교한 롱패스에만 의존하던 단조로운 리듬에서 벗어나, 혜진과 아름이 유기적으로 하프 스페이스를 파고들고 서윤이 2선에서 과감한 중거리 슛으로 수비벽을 끌어내는 다채로운 변칙 전술이 도입되었다.시간은 무정하게 흘렀고, 리그의 판도는 유수처럼 빠르게 뒤바뀌었다. 그럼에도 레이븐스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6라운드, 7라운드를 거쳐 리그는 어느덧 뜨거운 태양이 그라운드를 달구는 한여름의 미드시즌으로 접어들고 있었다.시간을 건너뛰는 동안 레이븐스는 황금기를 맞이했다. 12라운드 원정 경기에서의 대승, 15라운드 홈경기에서의 극적인 무승부 등 거듭된 혈투 속에서 팀은 한층 더 단단해졌다.서윤은 이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리그 최고의 지휘관으로 우뚝 섰고, 그녀의 활약에 힘입어 레이븐스는 리그 3위까지 치고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다.민아름은 전방에서 리그 득점 선두 경쟁을 벌일 정도로 성장했고, 이은주는 라운드 베스트 10에 단골로 이름을 올리는 수문장이 되었다. 김정희를 중심으로 한 포백 라인은 콘크리트보다 단단한 조직력을 과시했다.
오늘 경기 내내 본부석의 시선 속에서 서윤을 지켜보며 억눌러 두었던 지독한 소유욕과, 패배로 상처받은 그녀를 온전히 위로하고 싶은 남자의 갈증이 한꺼번에 폭발하는 듯한 깊고 진한 입맞춤이었다.도욱의 큰 손이 서윤의 허리를 더 강하게 끌어당겨 틈도 없이 밀착시켰고, 서윤은 그의 단단한 어깨를 감싸 안으며 밀려오는 그의 숨결을 온전히 받아냈다. 고요한 강변의 밤공기 속에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와 심장 박동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한참 뒤 입술이 떨어졌을 때, 도욱은 서윤의 달아오른 뺨을 손가락 끝으로 부드럽게 쓸어내렸다."내일 오전은 공식 휴식이라고 했지? 감독 명령이다. 내일 아침엔 축구 생각은 완전히 지워버리고, 나랑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경기장 밖에서의 한서윤을 내가 온전히 독점할 수 있는 시간이니까.""치, 감독님이 이래도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오빠 말 들을게요."서윤은 그의 품에 다시 얼굴을 묻으며 든든한 안정감을 느꼈다.패배는 아팠지만, 그 아픔을 통해 두 사람의 마음은 한층 더 깊은 곳에서 맞물려 가고 있었다.다가올 라운드가 여전히 험난한 전장일지라도, 서로의 손을 잡고 일상 속의 작은 숨구멍을 공유할 수 있는 한 레이븐스의 기적은 결코 신기루로 끝나지 않을 것이었다. 서윤은 도욱의 손을 꼭 쥔 채, 다시 타오를 내일의 그라운드를 향해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초록을 벗어난 하루지독했던 패배의 여운을 씻어내듯
삐익, 삐이익.경기 종료를 알리는 심판의 긴 휘슬 소리가 베어스 아레나에 울려 퍼졌다. 0-1, 레이븐스의 패배였다. 기적 같던 5연승 행진이 리그 최하위 팀의 콘크리트 수비벽에 막혀 허무하게 중단되는 순간이었다.원정 라커룸은 지독한 패배의 독기로 가득 차 있었다. 누구 하나 먼저 입을 열지 못했다. 결승 골의 빌미를 제공한 혜진은 유니폼에 얼굴을 묻은 채 어깨를 가늘게 떨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아름은 축구화 끈을 거칠게 풀어헤치며 분통을 터뜨렸다. 은주 역시 골대 구석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백태오 코치가 슬그머니 혜진의 옆자리로 다가와 그녀의 어깨에 부드러운 수건을 얹어주었다. 태오는 평소의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워버린 채, 낮고 다정한 목소리로 혜진을 위로했다."혜진 선수, 고개 들어요. 오늘 패배는 혜진 선수 혼자의 잘못이 아닙니다. 상대가 공간을 완전히 잠갔을 때, 내가 더 정밀한 데이터를 제공하지 못한 탓도 커요. 오늘 흘린 눈물만큼 다음 경기에선 더 강해질 겁니다."태오가 손을 뻗어 혜진의 젖은 뺨을 조심스럽게 닦아주자, 혜진은 그의 품에 살짝 기대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가혹한 패배의 현장이었지만,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유대감은 한층 더 단단해지고 있었다. 정희 역시 서윤의 어깨를 토닥이며 베테랑다운 묵직한 조언을 건넸다."서윤아, 너무 자책하지 마라. 50라운드라는 장기 레이스에서 한 번도 안 지고 우승하는 팀은 세상에 없어. 오늘 우리는 너무 완벽한 축구만 구사하려고 하다가 저들의 진흙탕에 빠진 거야. 이번 패배로 우리의 진짜 문제점을 찾으면 돼."정희의 말에
"안 쓰인다면 거짓말이겠죠. 청소년 대표 이후로 그렇게 높은 분들이 제 경기를 보러 오는 건 처음이니까요. 게다가 채리안을 이기고 나니까 다들 저한테 기대하는 게 너무 많아진 것 같아서 무거워요."서윤이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자, 도욱의 손길이 일시 정지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서윤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은은한 오렌지빛 조명 아래로 그의 깊은 눈동자 속에서 거친 불꽃과 지독한 독점욕이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도욱은 자리에서 일어나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서윤의 몸을 안아 올리듯 냉탕 밖으로 이끌었다.단숨에 그의 넓고 단단한 가슴팍에 밀착된 서윤은 셔츠 너머로 전해지는 그의 뜨거운 체온과 미친 듯이 요동치는 심장 박동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도욱은 서윤을 벽면에 연약하게 밀어붙이며 그녀의 위를 거대하게 내려다보았다. 압도적인 체구 차이에서 오는 위압감이 치료실의 공기를 단숨에 뜨겁게 달구었다."무서워할 거 없다."도욱의 낮고 차가운 숨결이 서윤의 아랫입술을 스치듯 닿았다."협회 놈들이 널 국대로 데려가려 하든, 대형 에이전시 놈들이 수십억을 들고 널 흔들려 하든 상관없어. 넌 그냥 내 전술 안에서 네가 하고 싶은 축구만 해. 그 어떤 외부의 압박도, 비열한 시나리오도 내 지위와 명예를 걸고 내가 다 막아낼 테니까. 넌 그냥 내 옆에만 있으면 돼."그의 거칠고도 처절한 고백에 서윤은 가슴이 터질 것 같은 통증과 함께 깊은 사랑을 느꼈다. 도욱은 참지 못하겠다는 듯 서윤의 턱을 들어 올려 그대로 입술을 집어삼켰다.지독하게 깊고 진한 입맞춤이었다. 그의 뜨거운 혀가 서윤의 입안 구석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