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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5-08 07:55:36

서윤은 코 끝이 찡해졌다. 독종이라 불리며 선수들을 몰아붙이던 남자는, 사실 누구보다 이 팀에 진심이었다. 그는 선수들이 잠든 시간에도 그들을 위해 싸우고 있었다.

"저… 감독님."

"말해."

"왜 저한테 그렇게 엄격하신가요? 주장 완장도 뺏으시고, 다른 선수들보다 더 심하게 몰아붙이시는 것 같아요."

그제야 강도욱이 마커를 내려놓고 서윤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얽혔다. 그의 눈빛은 평소처럼 차가웠지만, 그 안에는 묘한 열기가 서려 있었다.

"네가 이 팀의 심장이니까."

서윤의 숨이 멎는 듯했다.

"심장이 멈추면 몸은 죽어. 네가 흔들리면 이 팀은 영원히 쓰레기통에서 못 나와. 널 강하게 만드는 게 이 팀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다. 이해하나?"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무뚝뚝했지만, 그 안에 담긴 신뢰의 무게는 서윤이 감당하기 벅찰 정도였다. 그는 서윤에게 한 발짝 다가왔다. 그의 그림자가 서윤을 완전히 덮었다.

"그리고 넌, 내가 본 선수 중 가장 고집이 세더군. 그 고집이 실력이 되면 넌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선수가 될 거다."

강도욱의 손이 서윤의 머리 근처로 향했다가, 이내 멈칫하며 내려갔다. 짧은 침묵 사이로 두 사람의 거칠어진 숨소리만이 전술실을 채웠다.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서윤은 자신의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축구 때문인지, 아니면 이 남자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늦었다. 가서 자. 내일은 오늘보다 더 힘들 테니까."

강도욱은 차갑게 등을 돌렸다. 서윤은 그에게 인사를 하고 전술실을 나왔다. 차가운 밤공기가 얼굴의 열기를 식혀주었지만, 가슴 속의 울렁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심장이라니.'

서윤은 자신의 왼쪽 가슴에 손을 얹었다. 빠르게 뛰는 심장 박동이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이 독종 감독이 독이 든 성배일지, 아니면 구원의 손길일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공이 오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다음 날 새벽, 서윤은 어김없이 훈련장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라커룸 앞에 놓인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상자 안에는 최신형 축구화와 함께 짧은 메모가 적혀 있었다.

[스터드 닳았다고 핑계 대지 마라. 연습이나 해.]

거친 필체였지만, 서윤은 그 글자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온기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새 축구화를 신고 끈을 꽉 조여 맸다. 발에 착 감기는 감각이 기분 좋았다.

"감독님, 절대 후회하게 해드릴게요. 절 주장에 앉히지 않은 걸요."

서윤은 환하게 웃으며 운동장으로 달려 나갔다. 멀리서 그녀를 지켜보던 강도욱의 입가에도 아주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 사라졌다. 레이븐스의 아침이 다시 밝아오고 있었다.

그것은 더 이상 패배의 아침이 아닌, 승리를 향한 집요한 독종들의 아침이었다.

강도욱은 호루라기를 입에 물었다. 그의 눈에는 이미 다음 경기의 승리 공식이 그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누구보다 높이 뛰어오를 준비를 마친 서윤이 있었다. 두 사람의 치열하고도 뜨거운 동행은 이제 막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 덧나는 상처, 돋아나는 새살

새 축구화는 발을 단단하게 감싸 쥐었다. 마치 강도욱의 시선처럼 차갑고도 빈틈이 없었다. 서윤은 훈련장 벤치에 앉아 끈을 단단히 조여 맸다. 어제 감독실에서 보았던 보드판, 그리고 그가 툭 던진 ‘심장’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가슴 한구석이 간질거리면서도 묵직한 책임감이 어깨를 눌렀다.

‘내가 잘해야 한다. 내가 무너지면 정말 끝이다.’

서윤은 심호흡을 하며 그라운드로 나섰다. 동료들은 여전히 죽어 나가는 표정이었다. 며칠간의 고강도 훈련으로 인해 다들 파스 냄새를 풍기며 절뚝거렸다. 그때, 강도욱이 평소보다 더 날카로운 호루라기 소리를 내며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어제보다 더 두꺼운 서류 뭉치가 들려 있었다.

“전원 집합.”

선수들이 모이자 강도욱은 서류를 한 장씩 나누어 주었다. 거기에는 각 선수의 훈련 데이터와 함께 치명적인 단점들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었다.

“오늘 오후, 실전 연습 경기를 갖는다. 상대는 리그 중위권인 ‘그리핀스’다.”

선수들 사이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리핀스는 레이븐스가 지난 시즌 두 번의 맞대결에서 모두 대패했던 팀이었다. 체력도 전술도 완성되지 않은 지금 상태에서 경기를 한다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감독님, 이건 너무 빠릅니다! 아직 기본기 훈련도 다 안 끝났는데 경기를 하라니요?”

김정희가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강도욱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녀를 응시했다.

“전쟁이 네 사정 봐가면서 터지나? 너희가 연습장에서 굴러봤자 실전에서 쫄면 그건 그냥 시간 낭비야. 오늘 경기의 목표는 승리가 아니다. 내가 지시한 ‘투 터치 이내 패스’와 ‘공간 점유’가 실전에서 얼마나 안 되는지 네놈들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거다.”

그의 말은 틀린 구석이 없었지만, 선수들의 사기를 꺾기엔 충분했다. 강도욱은 서윤을 쳐다보며 덧붙였다.

“오늘 경기, 한서윤 네가 임시 주장을 맡는다. 완장을 돌려주는 게 아니다. 책임만 지라는 뜻이다. 팀이 무너지면 네 책임이다. 알겠나?”

서윤은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오후가 되자 그리핀스 선수들이 레이븐스의 훈련장에 도착했다. 그들은 레이븐스 선수들을 보며 대놓고 비웃음을 흘렸다.

“야, 쟤네 아직도 축구해? 해체된 줄 알았는데.”

“감독 새로 왔다더니, 그 성격 더러운 강도욱이라며? 불쌍해서 어떡하냐.”

그들의 목소리가 서윤의 귀에 박혔다. 팀원들의 얼굴은 분노보다 자격지심으로 물들어 갔다. 서윤은 주먹을 꽉 쥐고 팀원들을 모았다.

“다들 들어. 비웃음 당하는 거, 오늘로 끝내자. 감독님이 시킨 대로만 해. 우리끼리라도 믿어야 해.”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자 현실은 냉혹했다. 며칠간의 훈련만으로 팀이 단번에 바뀔 리 없었다. 그리핀스 선수들은 여유롭게 공을 돌리며 레이븐스의 수비진을 휘저었다. 강도욱이 강조했던 ‘투 터치’는커녕, 공을 잡으면 당황해서 걷어내기에 급급했다.

전반 15분 만에 첫 골을 내주었다. 수비수 박소희가 위치 선정을 잘못해 뒷공간을 내준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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