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7화

Author: 천외선인
두 사람을 보고도 심유진의 마음에는 어떤 감정도 일지 않았다.

예전처럼 역겹지도 않았다.

어차피 이틀밖에 남지 않았고, 앞으로 다시 볼 일도 없을 테니, 마지막만큼은 좋게 끝내자는 생각뿐이었다.

그런 심유진의 모습에 박진성은 마음속으로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다.

그 느낌을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예전 같았으면 자신과 딸이 이틀만 집에 안 들어와도, 심유진은 수십 통의 전화와 수백 개의 문자를 보내서 잘못을 빌며 돌아오길 애원했다.

이번에는 열흘이 넘도록 집을 비웠는데도, 심유진은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았다.

박진성은 자신의 복잡한 심경을 억지로 해석하려고 애를 썼다.

‘심유진이 혼자 집에 있는 게 너무 불쌍해서 그저 측은한 마음에 돌아온 것뿐이야.’

박진성은 심유진이 자신을 미칠 듯이 사랑해서 본래의 모습조차 잃어버린 여자라고 확신했기에, 계속해서 그런 방식으로 심유진을 괴롭힐 수 있었다.

이번에 먼저 돌아온 것조차, 심유진에게 베푸는 은혜이자 다시 기회를 주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심유진의 얼굴에는 여전히 차가운 표정만이 남아 있었다.

박진성의 얼굴이 굳어지면서 물었다.

“뭐야? 우리가 돌아온 게 싫어?”

심유진은 박진성과 길게 말할 가치도 없다고 판단했다.

어차피 이틀 남았는데, 박진성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싸움을 이어 갈 필요가 없었다.

심유진은 그대로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갔다.

그런 심유진의 무심한 태도에 박진성의 마음은 조금씩 가라앉았다.

박진성의 심경은 복잡해졌다.

특히 지난날의 일들이 떠오르면서 불안감이 밀려들었다.

가장 힘들었던 시절, 심유진은 자신의 곁을 지키며 함께 걸었다.

심유진이 물을 마시러 들어왔을 때, 거실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바닥에는 꽃잎이 흩뿌려져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두 사람을 위한 저녁이 차려져 있었다.

그 광경을 보자 심유진은 비웃음만 나왔다.

‘이제 와서 이런 걸 준비하면 무슨 의미가 있지? 나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데.’

심유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손으로 코와 입을 가렸다.

그런 심유진의 행동을 보자, 박진성이 다급한 걸음으로 다가와 걱정스럽게 물었다.

“어디 아파?”

심유진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나 꽃가루 알레르기 있어.”

심유진은 원래 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장미를 좋아하는 사람은 강희연이었다.

박진성은 화를 내려다가, 요즘 심유진이 달라진 모습을 떠올리며 꾹 참았다.

심유진이 점점 종잡을 수 없게 변해 가면서, 자신이 심유진을 통제할 수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 사실이 박진성을 은근히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자신이 심유진에게 너무 냉담했던 건 아닐까 싶었고, 두 사람이 함께 걸어온 세월을 생각하니 결국 평소처럼 모진 말을 내뱉지는 못했다.

박진성이 갑자기 입을 다물자, 오히려 심유진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같았으면 조금도 참지 못하고 화를 냈을 사람이, 이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다니.

심유진이 의아해하고 있을 때, 박진성이 야간 크루즈 관광 티켓 2장을 꺼내 보였다.

“지난 결혼기념일이랑 네 생일, 내가 제대로 못 챙겼잖아. 이번에 다 보상해 주려고. 이번에는 우리 가족끼리 같이 가자.”

심유진은 그 자리에 서서 그저 바라만 볼 뿐, 티켓을 받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심유진은 자신의 변화가 너무 커서 박진성이 뭔가 눈치챈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그래서 갑자기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박진성이 무슨 생각을 하든, 때늦은 다정함은 아무 소용도 없었다.

바로 그때 강희연이 불쑥 찾아왔다.

강희연의 손에는 박수정이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 들려 있었다.

박수정은 신이 나서 강희연의 손을 잡았다.

“엄마, 고마워요! 엄마가 나한테 제일 잘 해 줘요!”

박진성은 얼굴이 굳어지며 딸을 타일렀다.

“함부로 엄마라고 부르지 마.”

하지만 박수정은 박진성의 말을 무시한 채 계속 고집을 부렸다.

“난 희연 이모가 우리 엄마였으면 좋겠단 말이에요! 저 못난이는 필요 없어요!”

박진성은 재빨리 박수정을 안아 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딸에게 단단히 타일러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부녀가 위층으로 올라가자, 강희연은 거실에 장식된 꽃과 촛불을 훑어보더니 테이블 위의 크루즈 관광 티켓에 시선을 멈추고 비웃었다.

“계속 매달려 봤자 소용없어. 곧 현실을 똑똑히 보게 될 거야.”

“진성 오빠가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말이야.”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꽃이 필 무렵, 나는 이미 떠났다   제23화

    그날 이후, 박진성은 더 이상 찾아와서 방해하지 않았다.대신 조용히 곁을 지키는 쪽을 택했다.박진성은 심유진이 자신을 다시 받아들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저 천천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심유진도 박진성 부녀가 바로 맞은편에 산다는 사실에 점차 적응해 갔다.박수정은 예전처럼 가끔 집에 놀러 오기도 하고, 함께 밥을 먹기도 했다.박수정은 준호와도 아주 잘 지냈고, 별다른 다툼도 없었다.게다가 박수정은 이전보다 훨씬 철이 들어서, 준호를 챙겨 주고 양보할 줄도 알았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변화였다.하지만 심유진이 그 아이에게 베푸는 정성은 여전히 한정적이었다.예전처럼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지는 않았다.지금의 심유진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아이는 준호였다.박수정은 한때 자신이 죽기를 바라며 저주를 퍼붓던 아이였다.비록 다른 사람이 부추겨서 그런 말을 했다고 해도, 친엄마에게 그런 모진 말로 상처를 준 사실은 쉽게 잊히지 않았다.박수정도 엄마가 자신과 준호를 대할 때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준호에게 더 잘해 줬다.마음은 서운했지만, 그래도 질투하지는 않았다.자신이 예전에 잘못해서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이제는 엄마가 천천히 용서해 주기를 바랄 뿐이었다.소경훈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고,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심유진은 가끔 소경훈을 떠올렸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그도 잊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두 사람은 인연은 있었지만, 연분은 없었던 것이다.애초에 서로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었다.설령 함께하게 된다고 해도, 결국은 예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될지도 몰랐다.마치 심유진과 박진성처럼 맞지 않는 사람과 억지로 함께한다면, 끝에 가서 고통받은 것은 결국 자신일 것이다.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자신이 소경훈과 결혼한 상태라는 점이었다.만약 정말로 어쩔 수 없이 이곳을 떠나야 한다면, 이혼하려고 해도 여러 가지로 복잡해질 터였다.심유진은 길게 한숨을 쉬었지만, 깊게 생각하지

  • 꽃이 필 무렵, 나는 이미 떠났다   제22화

    지금의 박진성은 조심스럽기 짝이 없었다.심유진이 여전히 자신을 외면할까 봐, 큰 기대를 걸지 못했다.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니까.이것은 심유진이 곁을 떠난 뒤에야 박진성이 깨달은 이치였다.예전에 박진성이 심유진에게 가했던 모든 벌과 괴롭힘은, 이제 전부 자신에게로 되돌아왔다.심유진이 떠난 뒤, 박진성은 점점 더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박진성이 이 도시를 선택해 일부러 심유진의 곁에 남은 것 자체가, 한 번도 심유진을 포기한 적 없다는 뜻이었다.다만 자신이 심유진에게 준 상처가 너무 깊어서, 심유진이 자신을 용서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박진성은 심유진에게 몇 번이고 사과하고 싶었다.심유진이 어떤 방법으로 자신을 벌하든, 용서만 해준다면 무엇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심유진은 박진성에게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박진성을 볼 때마다 못 본 척하거나,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대했다.박진성은 사과하고 싶었고, 참회하고 싶었다.하지만 박진성이 심유진에게 저지른 일들에 비하면, 그 어떤 말도 너무나 창백하고 무력하게 느껴졌다.심유진은 말을 망설이는 박진성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나 이제 당신을 미워하지 않아.”박진성의 몸이 굳어졌다.심유진이 그런 말을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에 잠시 당황했다.설마 자신을 용서한 걸까?하지만 그 기쁨도 몇 초를 넘기지 못했다. 이어지는 말이 박진성을 끝없는 나락으로 밀어 넣었다.“당신은 나한테 그저 상관없는 사람일 뿐이야. 그러니 당신에게 큰 감정 같은 게 있을 리 없지. 예전 일도 벌써 다 잊었고, 지난 일에 계속 얽매여 있지도 않아.”한때 심유진은 박진성을 사랑해서 목숨까지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하지만 거듭된 고통과, 몇 번이나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경험 끝에 심유진의 마음은 조금씩 죽어 갔다.심유진은 한 사람을 완전히 꿰뚫어 보게 되었고, 자신의 사랑이 그 앞에서는 그저 한 줌

  • 꽃이 필 무렵, 나는 이미 떠났다   제21화

    준호를 무사히 입양한 뒤로 심유진의 삶은 더욱 행복해지고 충만해졌다.이전보다 마음도 한결 나아졌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요즘 소경훈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보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회의가 끝나지 않은 걸까?’준호도 가끔 소경훈의 안부를 물었다.그럴 때마다 심유진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난처했다.두 사람은 침대 옆에 나란히 앉아 창밖에 흩날리는 눈송이를 바라보았다.두 사람의 생각은 저 멀리, 같은 사람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사실 심유진도 소경훈에게 먼저 전화하거나 문자를 보내고 싶었지만, 마땅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소경훈은 자신의 상사이긴 했지만, 회사에서 두 사람이 직접적으로 얼굴을 볼 일은 많지 않았다.게다가 준호 일은 그저 도와준 것뿐이었고, 그렇게 큰 희생까지 치렀는데 다른 일로 또 소경훈에게 폐를 끼치기도 미안했다.하물며 특별히 중요한 일도 없었다.소경훈에게서도 전화나 문자 한 통 없이, 계속해서 연락이 닿지 않는 상태였다.심유진은 마음을 다잡고 스스로에게 거듭 말했다.‘대표님이 한 건 전부 준호를 위한 일이야.’‘나한테 특별한 감정이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야.’‘괜히 기대는 하지 말자.’준호는 바이올린 수업을 듣는 것뿐만 아니라, 이제 유치원에도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벌써 그럴 나이가 된 것이다.학원 앞에서 다른 아이들이 엄마 아빠와 함께 오가는 모습을 자주 보았지만, 자신에게는 엄마만 있을 뿐 아빠가 없다는 사실에 속으로는 서운하기도 했다.하지만 그런 마음을 심유진에게 내비친 적은 없었다.그런 사소한 일로 엄마가 난처해지고 마음 아파하지 않기를 바랐다.소경훈은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정말 감감무소식이었다.심유진은 궁금했지만, 회사 사람들을 통해 소경훈에 대한 소식을 조금씩 들을 수 있었다.소경훈은 그동안 계속 해외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평온한 생활은 차질 없이 이어졌다. 심유진은 이런 삶이 좋았고 만족스러웠다.다만 옥에 티가 있다면, 박진성이 딸을 데리고 와서 바로 맞은편 동에 산다는 것이었

  • 꽃이 필 무렵, 나는 이미 떠났다   제20화

    소경훈이 갑자기 자신에게 자주 만나서 식사하자고 하는 것이 심유진은 조금 의외였다.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했다.지난번 두 사람의 만남이 특별한 결론 없이 끝난 뒤로는 한동안 연락이 뜸했기 때문이다.심유진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아니,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심유진 같은 여자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이혼한 데다 얼굴에 흉터까지 있고, 게다가 자신의 아이도 아닌 아이를 입양하려고 하는데.거부감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식사를 마친 뒤, 준호는 한 손으로는 심유진의 손을, 다른 한 손으로는 소경훈의 손을 잡고 무척이나 신나 했다.심유진은 입가에 미소를 띠고 얼굴 가득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심유진도 몰랐다. 이런 따뜻하고 행복한 시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어쨌든 지금 이 순간만큼은 충분했다.어떤 일이 있어도 심유진은 준호를 포기할 수 없었다.아이는 자신이 의지하는 곳이자, 앞으로 살아갈 힘이 되어 주는 존재였다.사실 조금 전 고깃집에 갔을 때, 심유진은 박진성 부녀를 보았다.하지만 일부러 못 본 척했다.이미 할 말은 다 했는데, 두 사람은 여전히 이곳에 눌러앉아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어떻게 매달리든, 심유진의 태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을 것이다.이제 겨우 과거와 이별하고 새로운 미래를 시작했는데, 지난 일이 지금의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돌아오는 길에 소경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해 봤어요? 혼자 준호를 키우는 건 문제는 없겠지만, 아이가 계속 아빠 없이 자랄 수도 없잖아요.” “아이가 자라는 데는 아빠의 존재도 중요하니까요.”심유진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제 상황도 아시잖아요. 이혼녀에 얼굴에 흉터도 있어요. 준호까지 입양하려고 하는데 누가 쉽게 받아들이겠어요? 조건도 복잡하고 걸리는 게 너무 많잖아요.”소경훈은 심유진을 잠시 바라보더니 조용히 물었다.“내가 받아들

  • 꽃이 필 무렵, 나는 이미 떠났다   제19화

    박진성은 딸을 데리고 떠나지 않았다. 대신 이곳에 남아서 심유진의 일상을 멀리서 지켜보기로 했다.박진성은 감히 인사조차 건네지 못했다.가까이 가면 더 미움을 살 것만 같아서, 멀리서 몰래 심유진의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자신을 볼 때마다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드러내고, 몸서리칠 만큼 자신을 혐오하는 심유진의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박진성은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자신이 한 짓이 심유진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남겼기에, 그렇게 밝던 여자가 자신을 악몽처럼 여기게 된 것일까?박진성은 비로소 깨달았다.심유진은 이곳에 온 뒤로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다.더 우아해지고 더 매력적이었으며,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밤이 깊어질 때마다, 박진성은 이렇게나 좋은 아내를 자신의 손으로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가슴을 후벼파는 듯이 아팠다.박진성은 필사적으로 심유진을 붙잡고 싶었지만, 동시에 잘 알고 있었다.자신을 그토록 사랑하던 여자는 이미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박수정은 제법 얌전해졌다.어린아이는 옆에서 조금만 이끌어 주면 옳고 그름을 쉽게 분별할 수 있었다.자신의 엄마가 다른 아이를 그렇게나 사랑스럽게 보살피는 모습을 보자, 박수정은 질투가 났지만 아빠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엄마가 용서하기 전까지는,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사실 박수정은 가끔 궁금했다.‘엄마는 왜 아빠를 용서해 주지 않는 걸까?’박진성은 복잡한 표정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박진성은 딸을 데리고 근처의 고깃집에 갔다.자리에 앉아 천천히 딸에게 고기를 구워 주며, 심유진과 함께했던 지난 시절을 이야기해 주었다.박수정은 아직 어려서 사랑이 무엇인지, 사람 사이의 정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하지만 부녀가 했던 행동이 엄마의 마음을 완전히 무너뜨렸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그리고 엄마는 못난이가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박수정은 문득 어릴 적 일들이 떠올랐다.엄마가 자신을 정성껏 돌봐 주던 모습이

  • 꽃이 필 무렵, 나는 이미 떠났다   제18화

    박진성 부녀가 다시 찾아온 것은 심유진으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지난번과 달리, 두 사람에게서 기세등등하거나 강압적인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특히 박진성의 눈빛은 확실히 부드러워져 있었다.하지만 그럼에도 심유진은 두 사람을 대할 때 여전히 혐오감부터 앞섰다.박수정이 심유진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엄마.”심유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박수정을 한 번 바라본 뒤, 준호의 손을 잡고 자리를 뜨려고 했다.그 모습을 본 박진성은 급히 심유진을 불러 세웠다.“잠깐, 우리한테 시간 조금만 줘. 몇 분이면 돼. 부탁할게.”박진성이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인 것은 심유진으로서는 의외였다.하지만 심유진이 그 악몽 같던 집으로 다시 돌아갈 리는 없었다.심유진의 마음은 이미 하루하루 반복된 고통 속에서 완전히 죽어 버렸다.박진성이 어떤 약속을 하든, 심유진은 그를 용서할 수 없었다.부녀에게서 멀어진 뒤에야 비로소 심유진의 삶은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딱 3분이야.”박진성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용기를 내어 심유진을 바라보았다.“지난번에 널 찾아왔을 때 내 태도가 잘못됐어. 심한 말도 많이 했고.” “이제 나도 수정이도 우리가 뭘 잘못했는지 깨달았어. 그리고 이 집에는 네가 꼭 필요하다는 것도.”심유진은 비웃듯 입꼬리를 비틀었다.“왜? 집에 또 가사도우미가 필요해졌어?”박진성은 급히 고개를 저으며 눈시울이 붉어졌다.“아니야. 난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내가 너무 몹쓸 놈이었어. 그래서 너한테 계속 상처만 준 거야.”“이번 일을 겪으면서 정신을 차렸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너야.” “강희연과는 완전히 연락을 끊었고, 딸도 잘못을 고치도록 교육했어. 이제 절대 예전처럼 너한테 말하지 않을 거야.”“우리 예전의 정을 생각해서 한 번만 더 기회를 줘.”심유진은 눈앞의 박진성을 바라보며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마치 아주 오래 전, 두 사람이 처음 함께하던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그때의 박진성은 집안이 가난했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