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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화

Author: 무구
호건이 책상에서 합의서 초안을 작성하는 동안 단미는 소파에 앉아 눈도 떼지 않고 지켜보았다.

어찌나 빤히 보는지 몸에 구멍이라도 뚫릴 것 같았다.

단미 쪽을 슬쩍 보았다가 곧바로 한 소리 들었다.

“한눈팔지 말고 빨리 써!”

호건은 말없이 자세를 바로 하고 키보드를 두드렸다.

30분쯤 지나자 단미의 요구를 반영한 양육권 합의서가 완성되었다.

더 넣고 싶은 내용이 있는지 물으려고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소파에서 담요를 두른 단미는 어느새 잠들어 있었다.

호건은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 없이 다가가 허리를 숙였다.

단미는 쿠션을 품에 안고 소파 등받이에 비스듬히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

감긴 눈을 덮은 길고 살짝 말린 속눈썹에는 아직 물기가 촉촉하게 남아 있었다.

호건이 손을 들어 엄지로 속눈썹을 살며시 쓸었다.

안쓰러운 눈에 죄책감과 미안함이 어려 있었다.

‘다 내 잘못이야.’

‘오늘 본가에 데려가지만 않았어도 울리지 않았을 텐데...’

‘마음을 다치게 하지도, 이렇게까지 불안하게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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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끝이라고 믿었던 우리   제107화

    호건이 책상에서 합의서 초안을 작성하는 동안 단미는 소파에 앉아 눈도 떼지 않고 지켜보았다.어찌나 빤히 보는지 몸에 구멍이라도 뚫릴 것 같았다.단미 쪽을 슬쩍 보았다가 곧바로 한 소리 들었다.“한눈팔지 말고 빨리 써!”호건은 말없이 자세를 바로 하고 키보드를 두드렸다.30분쯤 지나자 단미의 요구를 반영한 양육권 합의서가 완성되었다.더 넣고 싶은 내용이 있는지 물으려고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소파에서 담요를 두른 단미는 어느새 잠들어 있었다.호건은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 없이 다가가 허리를 숙였다.단미는 쿠션을 품에 안고 소파 등받이에 비스듬히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 감긴 눈을 덮은 길고 살짝 말린 속눈썹에는 아직 물기가 촉촉하게 남아 있었다.호건이 손을 들어 엄지로 속눈썹을 살며시 쓸었다. 안쓰러운 눈에 죄책감과 미안함이 어려 있었다.‘다 내 잘못이야.’‘오늘 본가에 데려가지만 않았어도 울리지 않았을 텐데...’‘마음을 다치게 하지도, 이렇게까지 불안하게 만들지도 않았을 텐데...’‘한밤중에 일어나 합의서를 달라고 할 만큼...’호건은 단미가 안고 있던 쿠션을 조심스럽게 빼냈다. 몸을 숙여 단미를 부드럽게 안아 올리고 서재를 나섰다.품에 안긴 따뜻하고 여린 몸을 침실로 옮겨 침대에 내려놓을 때까지도 단미는 깊이 잠들어 있었다.호건은 이불을 덮어준 뒤 단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잠든 얼굴에는 평소의 거리감도 냉랭함도 없었다. 희고 고운 뺨 아래로 부드럽고 도톰한 입술이 살짝 벌어진 채 고른 숨을 내쉬었다.호건은 한참이나 눈을 떼지 못했다. 이윽고 몸을 숙여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춘 뒤 조용히 방을 나갔다....다음 날 아침.단미는 잠이 덜 깬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한참 뒤에야 정신이 또렷해졌다.‘어젯밤에 김혜정에게 아이를 뺏기는 꿈을 꿨지.’‘그래서 지호건한테 합의서 써 달라고 갔는데... 내가 언제 방으로 돌아왔지?’‘잠깐. 합의서도 아직 못 받았잖아.’단미는 벌떡 일어나 얇은 이불을 젖혔다. 호건을

  • 끝이라고 믿었던 우리   제106화

    “알겠습니다. 말씀대로 하죠.”의사가 지시했다.“꽉 붙잡아요.”팔다리가 꼼짝 못 하게 눌린 단미는 의사가 배를 향해 칼을 들이미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안 돼!”비명을 지르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단미는 반사적으로 배를 감쌌다.벽등에서 은은하게 비치는 빛과 조용히 흐르는 음악이 단미를 공포에서 조금씩 현실로 끌어냈다.악몽 속 광경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쳤다.단미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연신 숨을 몰아쉬었다. 한참 지나서야 겨우 마음이 가라앉았다.‘꿈일 뿐이야. 하지만...’김혜정이 아이를 탐내는 건 사실이었다. 꿈에서처럼 잔인하게 굴지는 않더라도, 나중에 다른 수를 써서 아이를 빼앗으려 들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호건은 양육권을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말로만 한 약속이었다.‘나중에 지호건이나 가족이 말을 바꾸면 어떡하지?’생각할수록 불안해졌다.‘안 돼. 지호건한테 법적 효력이 있는 서류를 받아 둬야겠어.’마음을 정한 단미는 곧바로 이불을 걷어 내고 일어났다.방을 나와 기세등등하게 호건의 침실로 향했다.잠들지 못하고 누워 있던 호건의 귀에 거세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호건이 눈을 번쩍 떴다.집에는 세 사람뿐이었다. 오정란이 한밤중에 이토록 요란하게 방문을 두드릴 리는 없었다.‘그럼 밖에 있는 사람은...’호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곧바로 침대에서 내려와 서둘러 문을 열었다.밖에는 얇은 잠옷 차림의 단미가 서 있었다. 머리카락은 흐트러져 있었고 얼굴은 창백했다. 촉촉하게 젖은 눈을 보니 분명 울었던 모양이었다.“무슨 일이야?”호건이 긴장한 채 다가가 손으로 뺨을 어루만지려 했다.“어디 아파? 왜 울었어?”단미가 그 손을 탁 쳐 냈다.“합의서 써 줘.”호건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단미를 보았다.“무슨 합의서?”“양육권이 나한테 있다는 합의서.”단미가 허리를 꼿꼿이 펴고 호건을 올려다보며 진지하게 말했다.“법적으로 효력 있는 걸로.”호건은 말이 없었다.‘한밤중에 찾아온 게 합

  • 끝이라고 믿었던 우리   제105화

    호건이 집에 도착했을 때 단미는 이미 자기 침실로 들어간 뒤였다.오정란에게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두기까지 했다.그 ‘아무도’가 자신을 가리킨다는 것쯤은 호건도 잘 알았다.문 앞에 한참 서 있으면서도 노크조차 못 하는 호건을 보며 오정란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아침에 나갈 때만 해도 괜찮았는데, 본가에 다녀와서 왜 이렇게 틀어졌을까?’“대표님, 사모님은 돌아오실 때 보니 기분이 많이 안 좋으신 것 같더라고요. 지금은... 화가 좀 풀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말씀 나누시는 게 어떨까요? 또 마음이 상하실 수도 있으니까요.”임신 중에는 그렇지 않아도 감정이 쉽게 흔들리기 마련이었다.호건이 고개를 끄덕이고 오정란에게 부탁했다.“단미가 점심을 얼마 못 먹었어요. 먹을 것 좀 만들어서 방으로 가져다주세요.”“네.”한 시간 뒤, 오정란이 음식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호건은 말없이 밖에서 기다리다가 오정란이 나오자 서둘러 물었다.“어때요? 먹겠대요?”오정란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드셨어요.”호건은 조금 안도하며 다시 물었다.“다른 말은 없었어요?”‘신경 쓸 가치도 없는 사람 때문에 아기까지 굶길 순 없잖아요.’단미가 했던 말을 떠올린 오정란이 호건을 한번 보고 대답했다.“특별한 건 없었어요.”“그럼 기분은... 지금 좀 어때요?”“돌아오셨을 때보다는 많이 나아지셨어요.”잔뜩 찌푸려져 있던 호건의 미간이 조금 펴졌다.“다행이네요.”오정란은 망설이다가 결국 말을 꺼냈다.“사실 아까 대표님이 돌아오셨다고... 살짝 말씀드려 봤어요.”호건의 눈에 긴장감이 어렸다.“그래서... 뭐래요?”오정란이 난처한 얼굴로 답했다.“눈앞에 나타나서 귀찮게만 하지 않으면... 어디에 있든 상관없다고 하셨어요.”호건의 표정이 바로 어두워졌다.오정란이 조심스럽게 덧붙였다.“그러니 당분간은 마주치지 않으시는 게 좋겠어요.”호건은 굳게 닫힌 방문을 한참 바라보다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단미는 쓸데없는 생각에 빠져 속을 끓이면서

  • 끝이라고 믿었던 우리   제104화

    “우리 손주며느리는 원래 어른한테 잘하고 사리도 밝은 애야. 제멋대로 구는 애도 아니고, 예의도 얼마나 바른데.”이영숙이 말했다.“그 애가 추석 선물 준비 같은 일을 호건이한테 미뤘다는 건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이 있었다는 뜻이지. 평소라면 절대로 그럴 아이가 아니야.”두 사람 사이에 분명 무슨 일이 있었을 것이다.서명희가 이영숙을 바라보았다.“두 분이 자칫 이혼이라도 할지 걱정돼서 연운사에서 서둘러 돌아오신 거군요?”이영숙은 부인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듯 눈매가 조금 누그러졌다.“그래도 이제 아기가 생겼잖아. 아이가 두 사람 사이를 다시 이어줄 끈이 될 거야.”“그럼 직접 나서지는 않으실 거예요?”이영숙이 짧게 웃었다.“그 녀석도 내가 끼어드는 건 싫다는구나.”“그래, 부부 일은 제 손으로 풀어야지.”이영숙이 덧붙였다.“제 아내 하나 못 붙잡는 녀석이 무슨 낯으로 그 큰 회사를 이끌겠어?”차가 본가를 빠져나오자마자 단미는 들고 있던 가방을 집어서 호건에게 세게 던졌다. 그리고 붉어진 눈으로 목소리를 높였다.“아침에는 내연녀를 집에 불러들이더니, 오후에는 내 아이까지 탐내? 당신이랑 당신 어머니, 대체 무슨 생각이야? 뭘 어쩌겠다는 건데?”온종일 쌓여 있던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가방을 겨우 받아 든 호건은 내연녀라는 말에 눈가를 움찔했다.“내연녀라니. 그런 말 함부로...”“이제 주채림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는 거야?”호건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말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그런 사이가 아니라고. 네가 오해한 거야.”“호건, 당신이 나한테 무슨 약속을 했는지 벌써 잊었어?”격해진 단미의 목소리가 떨렸다.“아이는 내가 키우게 해 주겠다고 당신 입으로 말했잖아.”“네가 키워. 아이는 네 곁에 있을 거야.”호건이 손을 뻗어 단미의 손을 잡고 달랬다.“걱정하지 마. 약속한 건 꼭 지킬게. 그러니까 제발 진정해.”“그럼 아까 어머니 말은 뭔데?”단미가 손을 뿌리쳤다. 분이 풀리지 않아 가슴이 거칠게 오르

  • 끝이라고 믿었던 우리   제103화

    “단미야.”호건이 서둘러 다가갔다.“벌써 일어났어? 여기서는 잠이 잘 안 와?”‘내가 오늘 일찍 일어나지 않았으면 자기들끼리 저런 말을 하는 줄도 몰랐겠지.’단미는 앞을 가로막은 호건을 밀어냈다. 표정 없는 얼굴로 김혜정을 똑바로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제가 낳는 아이는 제 아이예요. 아이가 어디서 살지 사모님이 결정하실 권리는 없어요.”“그리고 저는 이 집안 아이를 낳아 주고 버려지는 도구가 아니에요.”단미가 이렇게 강경한 태도로 나올 줄은 몰랐던 김혜정이 눈을 부릅떴다.“어른한테 말하는 꼴이 그게 뭐야? 어디서 감히...”“어머니!”호건이 매섭게 쳐다보자 김혜정은 겁에 질려 입을 다물었다.“어머니부터 어른답게 행동했어?”김혜정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아들을 보았다.“너, 너... 네 아내 때문에 엄마한테 이러는 거야?”호건이 어머니에게 이토록 화를 내는 모습은 윤희도 처음이었다. 윤희가 얼른 김혜정을 붙잡았다.“엄마, 제발 그만해.”단미는 더 상대하지 않고 냉랭하게 돌아섰다.호건은 단미의 태도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앞치마를 벗어 던진 뒤에 단미를 따라갔다.“단미야...”손을 잡으려 했지만 단미가 거칠게 뿌리쳤다.단미가 빠른 걸음으로 거실에 가서 가방을 집어 드는데 이영숙의 목소리가 들렸다.“무슨 일이니?”낮잠에서 깬 이영숙이 비서의 부축을 받으며 내려오고 있었다. 실랑이하는 두 사람을 보던 이영숙은 단미의 표정이 좋지 않은 데다 가방까지 들고 나가려는 걸 알아챘다.“단미야, 어디 가려고?”이영숙을 보자 단미는 조금이나마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성을 되찾았다. 굳어 있던 얼굴도 누그러졌다.“할머니, 저 오늘 저녁에 친구랑 식사 약속이 있어서 먼저 가 봐야겠어요. 다음에 또 찾아뵐게요.”단미는 공손히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현관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윤희와 김혜정이 주방에서 나왔을 때는 호건이 당황한 얼굴로 단미를 뒤쫓아 나가는 참이었다.이영숙은 김혜정을 한 차례 서늘하게 쳐다본 뒤 비서 서명희의 부축을 받

  • 끝이라고 믿었던 우리   제102화

    무언가 더 말하려던 호건이 말문을 닫았다.“어, 그래.”호건이 방을 나와 문을 닫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윤희가 팔을 붙잡고 구석으로 끌고 갔다.“왜 이래?”윤희는 굳게 닫힌 방문을 한번 살피고는 목소리를 낮췄다.“오빠, 새언니 임신은 계획에 없던 거지?”호건이 표정을 굳혔다.“너... 쓸데없는 데 관심이 너무 많다.”“그럼... 새언니 뱃속 아기는 진심으로 사랑할 거야?”호건의 관자놀이가 움찔했다.“내 아내가 낳아 주는 내 아이인데, 내가 사랑하지 않을 리가 있냐?”“그건 모르는 거지. 새언니가 임신했다는 건 정말 기쁜 소식인데 집에 숨겼잖아.”윤희가 작게 중얼거렸다.“전에는 당분간 아이 가질 생각 없다고 말한 적도 있고.”호건은 입을 다물었다.‘내가 원하지 않았던가?’당분간 아이를 갖고 싶지 않다고 말한 건 단미였다.그 일로 어머니 김혜정이 단미를 괴롭힐까 봐 집에는 호건도 원하지 않는다고 했을 뿐이었다.잠시 침묵하던 호건이 입을 열었다.“우리 첫 아이야. 나도 많이 사랑해.”‘게다가 이 아이는... 꼭 필요한 타이밍에 찾아와 주었어.’“그럼 됐어.”윤희는 두 손을 모으고 기대에 찬 눈을 반짝였다.“오빠랑 새언니 둘 다 그렇게 잘생기고 예쁘니까 아기도 정말 예쁘겠다.”그 말을 듣자 호건의 눈매에도 저절로 다정한 웃음이 번졌다.‘당연하지. 엄마가 저렇게 예쁜데... 우리 아기도 분명 예쁘고 사랑스러울 거야.’...집이 아닌 본가에서 자는 터라 단미는 알람을 맞춰 두었다. 오후 3시 반에 일어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호건은 주방에서 직접 단미의 간식을 만들고 있었다. 옆에서는 윤희가 포도를 집어 먹으며 호건을 놀렸다.“예비아빠가 확실히 다르긴 다르네. 직접 요리까지 하고.”“새언니한테 뭐 해 주는 거야? 나도 이따 한 그릇 먹어보자.”가스레인지 앞에 서 있던 호건이 뒤를 돌아봤다.“온종일 쉬지도 않고 먹었으면서 또 먹게? 다음 분기에 디자이너가 치수 재러 오면 허리둘레가 몇 센티는 늘어 있겠다.”윤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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