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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Author: 무구
“알아.”

단미가 바로잡듯 말했다.

“우리 둘의 감정과는 상관없는, 집안 간 정략결혼이었지.”

호건이 낮게 숨을 내쉬었다.

“네가 이혼하겠다고 하면 너희 부모님도 동의해?”

“나는 내 삶을 결정할 권리가 있는 성인이야.”

단미는 또박또박 말했다.

“내 결혼은 내가 결정해.”

호건은 입술을 다문 채 평소와 다른 단미를 살폈다. 눈에는 생각을 읽으려는 기색이 어렸다.

“걱정하지 마. JF그룹 돈 노리는 거 아니야.”

단미가 말을 이었다.

“재산 분할은 네가 정해. 난 이의 없어.”

“결혼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

호건은 가라앉은 눈으로 단미를 바라봤다. 경고인지 확인인지 모를 만큼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한번 끝내면 되돌릴 생각은 하지 마.”

‘이혼하고 나서 내가 다시 매달릴까 봐 걱정하는 건가?’

‘절대 후회하지 않아.’

단미가 답하려던 때 호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하룻밤 동안만 다시 생각해.”

호건이 단미를 한 번 바라봤다.

“내일도 네 뜻이 바뀌지 않는다면, 원하는 대로 해 줄게.”

단미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문 쪽으로 걸어가며 한마디만 남겼다.

“처리할 일이 있어. 오늘은 서재에서 잘 거야.”

단미는 말문이 막혔다.

‘봐. 또 저래. 할 말도 안 끝났는데 일부터 하러 가잖아.’

어차피 늦은 밤에는 가정법원 업무도 끝난 뒤였다.

단미는 굳이 붙잡지 않았다.

‘좋아하는 여자랑 이틀이나 시간을 보냈으니 밀린 일이 많긴 하겠지.’

‘실컷 바쁘게 일해라.’

호건이 안방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오히려 단미에게는 편한 일이었다.

...

다음 날 아침 7시, 단미가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단미를 본 가사도우미 오정란이 조금 놀랐다.

“사모님, 일찍 일어나셨네요.”

“좋은 아침이에요, 이모님.”

단미는 미소로 인사한 뒤 다이닝룸 쪽을 바라봤지만 호건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 서재에 있어요?”

오정란이 답했다.

“대표님은 오늘 새벽 6시에 나가셨어요. 지금쯤 회사에 계실 거예요.”

“뭐라고요?”

단미는 눈을 크게 떴다.

“평소엔 7시 반쯤 나가잖아요.”

호건이 출근하기 전에 이혼 이야기를 마무리하려고 일부러 일찍 일어났다.

‘오늘 새벽 6시에 이미 나갔다고?’

‘정말 그렇게 바쁜 거야?’

...

JF그룹 대표이사실.

밤을 꼬박 새운 호건은 의자에 기대 눈을 감고 있었다. 핸드폰 벨 소리가 울리자 피곤한 눈을 떴다.

책상 위 화면에 ‘여보’라는 두 글자가 떠 있는 걸 본 호건은 미간을 눌렀다.

마지못해 전화받자 바로 단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야. 그리고 충분히 생각했어. 내 답은 여전히 그대로야. 나 이혼할 거야.]

호건의 표정이 굳었다.

“회의 중이야. 오늘 일정도 많아. 이 이야기는 저녁에 집에서 하지.”

[알았어. 그럼 오늘 저녁에는 꼭 들어와.]

단미는 그 말을 확인하고서야 통화를 끝냈다.

핸드폰을 내려놓은 호건은 짧게 한숨을 쉬며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조금 뒤.

비서실장 고민석이 정교한 포장의 선물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

“대표님, 사모님께 드리려고 낙찰받으신 물품이 도착했습니다. 경매 주최 측에서 직접 와서 전달했습니다.”

민석이 호건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지금 댁으로 보내 드릴까요, 아니면 대표님께서 직접 가져가시겠습니까?”

호건의 눈이 선물 상자에 머물렀다.

“두고 가. 내가 가져가지.”

“알겠습니다.”

민석은 조심스럽게 상자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아,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민석이 보고를 이었다.

“대표님 출장 일정 동안 윤성산업 윤정해 회장이 계속 찾아왔다고 비서실에서 전해 왔습니다.”

호건이 바로 눈을 들었다.

“친환경 에너지 연구 사업 때문인가?”

민석이 답했다.

“그렇습니다.”

솔직히 민석은 호건의 장인이라는 윤정해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윤성산업은 원래 업계에서 두드러지는 회사가 아니었다.

지난 2년간 호건이 뒤에서 여러 번 길을 열어 준 덕에 지금은 중견기업 문턱까지 올라왔다.

‘대표님이 너무 잘 챙겨 줘서 장인이 욕심만 커진 건가?’

기업의 기술력과 재무 상태를 까다롭게 보는 대형 친환경 에너지 사업은 이름난 상장사도 심사에서 탈락하곤 했다.

그런 사업까지 자기 몫으로 생각하는 건 도가 지나진 처사였다.

욕심에도 선이 있었다.

그나마 호건은 공적인 심사에서 가족을 봐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민석의 속마음을 알 리 없는 호건은 밤새 풀지 못한 의문에 이제야 답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이혼 얘기를 꺼낸 이유가 이거였나?’

잠시 생각한 호건이 말했다.

“해율만 복합개발 사업 협력 제안서를 윤성산업에 보내.”

민석이 놀라서 되물었다.

“대표님, 윤성산업을 해율만 사업에 참여시키시겠다는 뜻입니까?”

해율만 사업은 친환경 에너지 연구 사업을 제외하면 올해 JF그룹이 추진하는 프로젝트 가운데 규모와 수익성이 가장 큰 건이었다.

윤정해는 예전에도 참여를 원했지만, 윤성산업은 1차 적격심사에서 탈락했다.

“그래.”

호건은 민석의 표정을 보고 속내를 짐작했다.

“내 개인 투자 몫을 윤성산업 쪽으로 넘겨.”

민석은 놀라 저도 모르게 말했다.

“그러면 대표님이 자기 돈으로 윤성산업 지분 참여를 만들어 주시는 셈인데요?”

“대표님, 지금까지 윤성산업을 충분히 지원하셨습니다. 줄 수 있는 기회도 여러 번 주셨는데 굳이 여기까지 하실 필요가 있습니까?”

민석은 남의 돈인데도 아까웠다.

호건이 무심하게 답했다.

“윤성산업 주식은 내 아내도 갖고 있어.”

민석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았다. 작게 중얼거렸다.

“그 돈을 사모님께 바로 드리는 게 훨씬 낫지 않습니까?”

윤성산업에 넣으면 단미가 주주라고 해도 실제로 가져가는 몫은 훨씬 적을 것이다.

호건이 그 정도 계산도 못 할 리 없었다.

다만 단미가 결혼 뒤 자신에게 무언가를 요구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생각했다. 방식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처음 꺼낸 부탁을 무시하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말한 대로 진행해.”

호건이 민석을 바라봤다.

“지금 바로.”

“알겠습니다.”

민석이 나간 뒤 호건은 피곤한 듯 눈썹 사이를 눌렀다. 잠깐 숨을 돌린 뒤 다시 업무에 들어갔다.

평소 같으면 일에 몰입하는 동안 시간 가는 줄도 몰랐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오후 5시 반이 되자 호건은 일을 정리했다. 단미에게 줄 선물 상자를 챙겨 집으로 향했다.

...

집에 들어서자 오정란이 반겼다.

“대표님, 오셨어요?”

“응.”

호건은 거실 테이블에 선물 상자를 내려놓았다.

“단미는요?”

오정란이 답했다.

“사모님은 오후에 나가셔서 아직 안 들어오셨어요.”

호건은 말없이 굳었다.

‘오늘 저녁에 꼭 들어오라고 해 놓고 자기가 외출했다고?’

“언제 돌아온다는 말은 없었어요?”

“네, 따로 말씀 없으셨어요.”

호건은 소파에 앉으며 오정란에게 말했다.

“전화해서 언제 들어오는지 물어봐요.”

오정란은 눈앞의 남자를 멀뚱히 바라봤다.

‘본인이 직접 전화하면 되잖아?’

오정란이 움직이지 않자 호건이 시선을 들었다.

그제야 오정란은 얼른 핸드폰을 꺼내 단미에게 전화했다.

“여보세요, 사모님. 언제 들어오세요... 네? 밖에서 식사하고 들어오신다고요?”

오정란은 굳은 얼굴의 호건을 힐끗 보고 급히 덧붙였다.

“사모님... 대표님이 벌써 들어오셨어요. 같이 저녁 드시려고 기다리고 계세요.”

마지막 문장은 오정란이 임의로 보탠 말이었다.

호건이 한 번 쳐다봤지만 굳이 그 말을 정정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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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일 아침, 병원.의사에게 지금 몸 상태로는 임신중절수술을 진행하기 어렵다는 말을 듣자 단미는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 굳었다.“왜요?”단미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생님, 지난번 상담할 때는 안 된다는 말씀이 없으셨잖아요.”“그때는 기본 검사만 한 상태였고, 오늘 수술 전에 필요한 정밀검사까지 끝낸 뒤 다 확인한 결과입니다.”담당 의사는 아침에 다시 진행한 검사 결과들을 펼쳐 놓았다.“현재 상태에서 무리하게 임신을 중지하면 출혈과 회복 문제를 포함해 산모의 건강 위험이 상당히 커질 수 있습니다.”“이후 임신 가능성에도 영향을 줄 수 있고, 다른 합병증이 생길 가능성도 있어서 저는 수술을 권할 수 없습니다.”...여린은 진료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문이 열리고 단미가 기운이 하나도 없는 모습으로 나오자, 여린은 겁이 나서 그러는 줄 알고 바로 달려가 손을 붙잡았다.“무서워하지 마. 요즘은 마취도 하잖아. 잠깐 눈 감고 있으면 금방 끝날 거야.”단미는 천천히 여린을 바라봤다.“의사 선생님이 내 몸 상태 때문에 수술하면 안 된대.”“뭐? 못 한다고?”여린은 완전히 멍해졌다.“몸이 어떻게 안 좋으면 수술도 못 해?”“나도 정확히 모르겠어.” 단미 역시 정신이 없었다.“전문용어를 너무 많이 설명해서 다 이해는 못 했는데, 쉽게 말하면... 나는 이 아이를 없애면 안 된다는 뜻이래.”여린은 급히 단미를 부축해 옆 의자에 앉혔다. 같이 걱정스러운 얼굴이 됐다.“그럼 이제 어떡해?”단미는 답답한 표정으로 입을 열려다 핸드폰 알림음을 들었다.화면을 확인하자 호건에게서 답장이 와 있었다.[알았어.]그 위에는 단미가 아침에 병원에 도착해 보낸 메시지가 남아 있었다.[나 지금 병원에 왔어. 오늘 오전 임신중절수술 받을 예정이야. 오후 2시 30분 가정법원 확인기일에는 늦지 말아 줘.]여린이 말했다. “수술을 못 한다면 그것도 운명 아닐까? 이 아이랑 인연이 있다는 뜻일 수도 있잖아.”“그럼 마음 편하게 낳는 쪽도 생각

  • 끝이라고 믿었던 우리   제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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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끝이라고 믿었던 우리   제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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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끝이라고 믿었던 우리   제2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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